“경찰 아저씨, 이 사람들 좀 보세요. 못된 짓 하려고 작당 중이에요.”
네코가 스마트폰을 귀에 갖다 대며 말한다.


“아니, 우리는 정의의 편이야.”
유토가 전대 애니메이션다수가 팀을 이뤄 지구를 구하는 내용의 일본의 특수 촬영물 속 히어로 같은 포즈를 취한다.


“뭐야, 그게.”


“그나저나 공원에 감시 카메라라니. 공원이란 곳은 모두가 마음 편히 가서 쉬는 곳 아니야? 그런 데를 감시한다고? 말도 안 돼. 그런 사회가 어딨어? 다들 내 말이 틀려?”


“우리는 레지스탕스! 정의를 위해 들고 일어선 시민들이다! 그래, 우리가 바로 정의의 사도!”
스미야가 노래하는 억양으로 외치고 활시위를 당기는 포즈를 취한다.


“악당은 바로 이런 놈을 두고 하는 말이겠지.”


고타로가 카 오디오 볼륨을 높인다.

 뉴스가 흘러나오고 있다.

―사망자는 가게를 운영하던 고타케 료지 씨, 65세.

경찰은 피 해자가 수차례 칼에 찔렸고 범인이 금품을 훔치지 않았다는 점에서 범행 배경에 강한 원한이 있는 것으로 추정하고 수사를 이어 가고 있습니다.

‘사고로’는 가게 앞에 줄을 설 만큼 유명한 라면 가게였으며, 피해자 고타케 씨는 가게 문을 닫고 다음 날 영업 준비를 하던 중에 습격당한 것으로 경찰은 추측하고 있습니다.

 

 


“사고로? 라면? 그 아저씨가 칼에 찔려 살해됐다고? 정말?”
유토가 눈을 휘둥그레뜨며 묻는다.


“사고로? 왠지 들어본 적 있는 것 같은데. 가마타에 있었나?”
스미야가 넓은 이마에 손을 갖다 댄다.


“정확하게 말하면 우메야시키. 근데 사망했다고? 죽은 거야? 그 아저씨가? 진짜로?”
유토가 옆에 앉은 네코를 보며 물었다. 네코는 고개를 갸우뚱한다.


“여름에 갔었잖아. 그 시끄러운 가게. 손님 때문에 시끄러운 게 아니라 아저씨 잔소리가 너무했지. 만화 읽지 마라. 스마트폰으로 사진 찍지 마라. 떠들지 마라. 후추 따위 없다. 다 먹은 그릇은 카운터 위에 올려놔라.”

 


“아, 생각났다. 라면 주세요, 하니까 우리 집은 라면 따위 없어! 하고 버럭버럭 화낸 거기 맞지?”


“응, 라면이 아니라 시나소바라고 했지. 그런데 시나중국 본토의 다른 명칭라는 명칭을 그렇게 마음대로 써도 돼?”


“그 아저씨, 성질을 너무 부려서 결국 뇌혈관이 터진 건가?”


“습격당했다잖아. 대체 뭘 들은 거야?”


“습격? 그럼 살해됐다는 거? 손님한테? 자꾸 뭐라고 해서?”


“그럴 수도 있겠다.”

 

“그런데 그렇게 불친절해도 줄을 서서 먹는 가게라니. 엄청 맛있나 보네?”
스미야가 돌아보고 물었다.


“흠, 긴장하고 먹느라 맛이 잘 기억 안 나.”
“뭐야, 그게.”
“그 특유의 긴장감은 실제로 가보지 않는 한 모를걸.”

 


“가도 그 아저씨는 이제 없습니당.”
네코가 익살을 떨며 말한다.


“그래도 줄 서서 먹을 정도면 역시 엄청 맛있나 보네.”
스미야는 아쉬운 듯 탄식했다.

 

 


“줄 서서 먹는 곳이긴 한데, 가게가 워낙 좁고 카운터 석밖에 없어서 그러기도 해. 한 열 명 앉을 수 있을까? 게다가 아저씨 혼자 일하니 회전이 느렸지. 그것도 모자라 손님한테 거만하게 굴고.
살해될 만도 해. 나도 살의를 느낀 적 있다니까."

유토는 껌을 입에 집어넣는다.

 


“하지만 우리 유토는 죄송합니다, 하고 얌전히 고개를 숙였지.”
네코가 키득키득 웃었다.

 

 

 

 

 


“속으로는 앞으로 두고 보자고 생각했다고.”

 


유토는 발끈해서 인상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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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과가 있으면 경찰이 보관 중인 얼굴 사진과 대조할 테니 위험하겠지만. 응? 설마 전과가 있는 건 아니지?”
스미야는 그렇게 덧붙이고 유토를 가리키며 웃는다.


“없어. 교대.”
유토는 방한모를 벗어 스미야에게 넘긴다.


“난 수영부였어.”
스미야는 양팔을 쭉 뻗어 자유형을 하듯 번갈아 휘젓는다.

 


“얍.”
거절하는 스미야 옆에서 방한모도 쓰지 않은 네코가 작은 돌멩이를 주워 일직선으로 카메라를 향해 던졌다.

탁 하는 건조한 소리가 울렸다.


“오, 대단하네. 한 방에 맞히다니.”
스미야가 휘파람을 불었다.

 


“맞혀도 고장 안 나면 소용없어.”
유토는 방한모를 다시 뒤집어쓰고 큰 동작으로 돌을 던졌다.


감을 찾았는지 돌은 카메라 렌즈 부분을 향해 일직선으로 날아갔다.

그러나 렌즈는 투명 필터로 보호돼 있었다.

필터에 명중한 돌이 그대로 다시 튕겨 나왔다.

 


“강화 유리? 폴리카보네이트?”
유토는 다시 한번 돌을 던졌다.

 

이번에도 정중앙 스트라이크였지만 필터는 깨지지 않았다.
유토는 오기가 생겨 연거푸 돌을 집어 던졌다.

그러나 필터에는 금 하나 가지 않았고, 오기 때문에 쓸데없는 힘이 들어갔는지 돌은 시간이 갈수록 전혀 엉뚱한 방향으로 날아가 잠시 후 멀리서 뭔가가 깨지는 소리가 들렸다.

 

 

어느 집 창문 유리가 깨진 듯했다.


“튀어!”
네 사람은 공원을 뛰쳐나가 거리에 세워둔 미니밴을 타고 현장을 떠났다.

 


“이게 다 사전 조사가 부족해서 그래.”
뒷좌석에서 유토가 투덜거린다.


“그래. 솔직히 그건 사과할게.”
고타로는 손 하나를 핸들에서 떼고 자신의 머리를 툭 친다.


“돌 던지는 것보다 케이블을 자르는 게 낫지 않았을까?”
조수석에 앉은 스미야가 말한다.


“사다리 같은 걸 붙이면 사람들 눈에 띄잖아.”
유토가 반박한다.


“가지치기 가위를 쓰면 되지.”
“그런 걸로 선을 자르면 감전되지 않아?”
“어떤 게 영상 선이고 어떤 게 전원 선인지만 알면 돼.”
“그래. 아무튼 사전 조사가 필요하다는 거네.”
유토는 운전석 뒤판에 펀치를 날린다.

 


“지당한 말씀.”
고타로는 또다시 자신의 머리를 툭 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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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리타 유토는 껌을 우물거리던 입을 멈췄다.

 

 


오른팔을 허리 뒤로 돌려 힘을 잔뜩 집어넣은 다음 위를 향해 거세게 휘두른다.

어깨에서 팔꿈치, 손목, 손가락이 하나의 채찍처럼 포물선을 그린다.

주먹 크기의 돌덩이가 허공을 갈라 캄캄한 하늘로 사라졌다. 


얼마 후 멀리서 툭 하고 흙바닥을 때리는 소리가 들렸다.


유토는 씹던 껌으로 풍선을 크게 불어 터뜨리고 다시 한번 같은 움직임으로 돌을 위로 던졌다.

이번에도 돌은 멀리 어딘가에 떨어졌다.
“야구부? 투수?”
하나사키 네코가 유토를 가리키며 킥킥 웃는다.


“동아리가 아니라 리틀 시니어. 어깨 나갔던 거 알잖아. 방금도 전기가 찌릿 흘렀다고.”
유토는 화난 것처럼 변명을 늘어놓고 세 번째 돌을 던졌다.

그러자 전봇대 꼭대기에서 퍽 하고 둔탁한 소리가 울리더니 돌멩이가 근처 지면에 떨어졌다.
“명중!”
이시하마 스미야가 손뼉을 친다.


“근데 변화가 전혀 없는데?”
네코가 이마에 손을 대고 고개를 뒤로 젖혀 허공을 본다.

 

시선 끝에 원통형 물체가 있다.

손전등 모양인데 빛을 발산하지 않고 끝에 렌즈가 달려 있다.
“손에 힘이 안 들어가. 이렇게 추우면 오기 전에 미리 말해줬어야지. 그럼 핫팩이라도 가져왔을 텐데.”
유토는 오른손을 입가에 가져간다. 어스름한 가로등 불빛에 희뿌연 숨결이 비친다.


“야마나시라고 들었을 때부터 밤에 추울 걸 예상해야 하지 않나?”
스미야는 라이트다운 재킷을 입고 있다.


“생전 처음 온 곳인데 그런 걸 어떻게 알아?”
긴팔 티셔츠 한 장만 걸친 유토는 다시 발밑에서 돌멩이를 주워 4미터 전방 위에 있는 CCTV를 향해 던졌다. 이번에도 돌은 명중했지만 카메라가 떨어지기는커녕 고개가 돌아가지도 않았다.

 

 


“렌즈를 노리라고, 렌즈.”
등 뒤의 어둠 속에서 영상을 촬영 중인 구스노키 고타로가 다가왔다.


“얼굴 찍히는 거 아니야?”
유토가 손으로 얼굴을 가렸다.


“그래서 이걸 준비했잖아.”
고타로는 유토의 볼 옆에 손을 갖다 대고 잡아당긴다.

유토는 눈 부분만 드러난 니트 소재 방한모를 쓰고 있다.

 

 


“그래도 정면은 위험해.”


“괜찮다니까. 여기가 우리 사는 곳도 아니고. 얼굴 좀 팔린다고 아무도 못 알아봐.”


스미야가 검지를 흔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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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야? 뭐야?”
니나가 고개를 좌우로 돌리며 허둥지둥한다.

알람 소리는 후진 트럭처럼 삑삑 반복해서 울린다.


“물을 다 넣었는데도 뚜껑이 열려 있어서 닫으라고 화내고 있어.”
스미야가 머리 위에 양손 검지를 세워 뿔을 만든다.


“돌아가? 돌아가는 거야?”
니나는 세탁기 가장자리를 꼭 붙잡고 허리를 숙인다.


“뚜껑이 열려 있으니 안 돌아가, 아마도.”
유토가 껌으로 작게 풍선을 분다.


“아마도? 안 돼. 돌아가면 절대 안돼.”
“절대 안 돌아가니까 그렇게 엉거주춤 있지 말고 이것저것 자세 좀 취해 봐. 니나 씨, 니나 님. 자자, 일어서, 일어서.”
고타로가 셀카봉을 빙글빙글 돌린다.

 


“정말? 정말? 괜찮은 거 맞아?”

“65킬로그램이 세탁조 위에 올라가 있는데 돌아가겠어? 뚜껑 닫아도 안 돌아가.”

“뭐래! 54야! 고타로, 너 죽을래? 아니, 죽기 전에 소리부터 어떻게 해봐!”

 

 


니나가 양 귀를 틀어막고 신음한다. 노보리토 역 앞에서 퍼포먼스 시늉을 하던 어느 봄날 밤, 양 손바닥 위에 목캔디 하나를 얹어 건네주던 가련한 모습은 화려한 네온사인 불빛이 연출한 마법
이었다고 고타로는 요즘 들어 생각하고 있다.
스미야가 세탁기 뒤쪽을 보며 긴 팔을 뻗어 먼지투성이 코드를 확 잡아당기자 경고음이 멈췄다. 그러나 정적은 찾아오지 않았다.

 


“야. 누가 구경하래?”
소리 지른 사람은 유토다.

조금 전 그 학생이 드럼 세탁기에 들어 있던 세탁물을 종이봉투에 쑤셔 넣으며 니나 쪽을 힐끔거리고 있었다.


“관람료 내놔.”
스미야가 싱글벙글 웃으며 위협한다.
“아니, 그전에 감기 걸리면 너 때문인 거 알지? 네가 문을 활짝 열어 놨으니까. 보상금부터 받아야겠어.”
니나가 미지근한 물을 손으로 떠서 학생 쪽으로 뿌린다.
“우리도 보상금 좀 받아보자!”
스미야가 원숭이 인형처럼 손뼉을 짝짝 치며 외친다.


학생은 연신 “죄송합니다, 죄송합니다”를 반복하다가 고개를 숙인 채 종이봉투를 품에 안고 빨래방을 나갔다.
“아니, 근데 진짜 보상금 받아야 할 것 같은데. 쟤 때문에 촬영이 엉망이 됐잖아. 짜증나네. 가서 한마디 하고 올게.”
유토가 바닥에 껌을 퉤 뱉는다.
“아니, 편집하면 돼.”


고타로가 말했지만 유토는 “일 처리는 확실히 해야지”라더니 양손을 포개고 손가락 관절을 뚝뚝 거린다.


“너무 심하게 하지마.”
“심하게 하는지 내가 감시할게.”


스미야가 이를 드러내며 웃고 두 사람은 함께 밖으로 나갔다.
문이 닫히는 것을 확인하고 고타로는 니나 쪽을 돌아보며 다시 스마트폰을 든다.
“너도 들어와.”


세탁조의 비너스가 어깨를 으쓱거리고 손짓한다.

고타로는 순간 멈칫하더니 기가 찬 얼굴로 말했다.
“뭔 소리야. 자, 계속한다.”
“평소에는 같이 하잖아.”

“지금은 일하는 중이야. 넌 모델, 난 카메라맨.”
“아무도 없으니까 괜찮아.”
“금방 올 거야.”
“오면 또 어때. 스미야랑 유토 둘 다 우리 사이 아는데.”
“그런 문제가 아니라.”
“앗! 좋은 생각이 떠올랐다! 더 많은 사람들한테 우리 사이를 알리는 거야. 알콩달콩한 모습을 셀카로 찍어서 믹스채널에 올리자!”


니나는 숙이고 있던 허리를 쭉 펴고 양팔을 분수처럼 높이 들어 올려 손가락을 위아래로 움직인다.
“믹스채널 같은 건 애들이 자기 과시하려고 하는 거야. 시선은 이쪽이 아니라 저 건조기 쪽.”
고타로는 니나의 제안을 단칼에 잘랐다.


“나도 아직 앤데.”
니나는 볼에 바람을 집어넣는다.
“그런 건 다음에. 오늘은 너만 찍으러 왔어. 네가 주인공이야.”
“하지만 결국 어디 사는 누군지도 모르잖아.”
“누군지 알려지면 위험하지. 자, 스마일, 스마일.”
“어차피 눈에 모자이크 집어넣으니 표정은 상관없지 않아?”
“볼과 입가에도 표정은 나와. 신나게 노는 상황인데 얼굴 찌푸리고 있으면 이상하잖아. 그러니까 스마일, 스마일. 얼른 귀여운 포즈 몇 장 딱딱 찍고 3분 만에 끝내자. 뒤풀이는 불고기.”

“그리고 빙수.”
니나는 볼 옆에 손을 대고 고개를 약간 기울인다.

 


“조금 더 야한 게 좋을 것 같은데.”
“이런 거?”
마릴린 먼로처럼 입술을 오므린다.


“좋아, 좋아. 좀 더 과감하게.”
“이렇게?”
이번에는 가슴을 강조하듯 몸을 앞으로 숙인다.

 

 


“좋아, 아주 좋아. 하나 더 갈까?”
“응, 그럼 서비스.”
니나는 튜브톱을 살짝 아래로 내리고 양손으로 탐스러운 과실을 감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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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렉터스 컷

 

우타노 쇼고 장편소설

이연승 옮김

 

 

 


시끌벅적한 환호성 속에서 고스게 니나는 양손으로 스웨트 셔츠를 붙잡고 훌렁 벗어 던졌다.

 E컵으로 추정되는 가슴이 히비스 커스가 그려진 튜브톱 안에서 출렁인다.
“오오!” 하는 굵직한 목소리와 함께 뒤이어 손 휘파람 소리가 삑삑 울려 퍼진다.

스마트폰으로 영상을 찍는 남자도 있다.


“니나! 니나! 니나!”


기세가 더해진 환호 속에서 니나는 트레이닝 바지 허리춤에 양손을 집어넣고 이번에도 망설임 없이 무릎 아래까지 내리더니 능숙하게 발가락을 움직여 벗어버렸다.

탄력 있는 장딴지, 적당히 살집 있는 허벅지, 그리고 하이레그 비키니 팬츠가 드러나자

환호성과 박수 소리가 좁은 코인 빨래방 안에 울려 퍼진다.


니나는 고개를 살짝 기울여 셀카 각도에서 손가락을 턱에 대고 V자 마크를 그리고는 다시 등을 돌려 눈앞에 있는 둥근 의자에 오른쪽 다리를 올렸다.

뒤이어 왼쪽 다리도 올려 좁은 의자 위에 올라선다.

큼지막한 엉덩이가 탄력 있게 흔들린다.

 

 

 
의자 너머에는 뚜껑 열린 세탁기가 있다.

니나는 아이가 담장 기어오르듯 세탁기 가장자리에 다리를 걸치더니 “영차” 하는 소리와 함께 세탁기 안으로 들어갔다. 세탁조 지름이 1미터는 되어 보이는 대형 세탁기다.

통통한 몸이 여유롭게 안에 담긴다. 니나는 허리를 조금 숙여 세탁기 가장자리에 양팔을 대고 그 위에 턱을 살짝 얹었다.

마치 욕조에 들어가 있는 것처럼.
“자, 그럼 온수를 채우겠습니다.”
오리타 유토가 샌들 소리를 터벅터벅 울리며 세탁기로 다가가 손뼉을 한 번 치고 100엔 동전을 넣는다.

 

“앗, 차가워!”
손톱으로 유리를 긁는 듯한 날카로운 비명을 지르며 니나가 세탁조 안에서 일어섰다.

주수구에서 물이 폭포처럼 쏟아져 그녀의 등을 직격하자 열아홉 고운 피부 위에서 물줄기가 솟는다.
“온수가 나온다고 적혀 있는데.

 

 

유토가 세탁기를 확인한다. 껌을 짝짝 씹고 있다.

“뭐가 온수야. 그냥 찬물이잖아, 찬물. 덜덜덜. 응? 좀 따뜻해진 것 같네?”
니나는 호루스의 눈 문신을 새긴 어깨를 양팔로 감싸고 허리를 숙여 다시 세탁조 안으로 들어간다.
“니나, 스마일, 스마일. 여긴 웨스턴오스트레일리아. 멍키미아 해변에서 돌고래랑 놀다가 호텔로 돌아가 욕조에서 편히 쉬는 그런 느낌으로.”
구석의 둥근 의자에 앉은 작은 체구의 젊은 남자 구스노키 고타로가 주문을 덧붙인다. 셀카봉에 장착한 스마트폰을 정면으로 향하고 있다.
“여긴 도쿄야. 하물며 빨래방 안에서 무슨.”
“네, 네. 손님. 그럼 이것으로 잠시 해변에 온 기분을 맛보시기 바랍니다.”
허리를 숙이고 양 손바닥을 비비며 세탁기로 다가가는 장신의 남자는 이시하마 스미야다. 입욕제가 든 작은 봉투를 뜯어 내용물을 세탁조에 투입한다.
“그런 느낌 전혀 안 나는데.”
니나는 짙은 파란색으로 물든 세탁조 물에 손가락을 담가 스미야를 향해 물방울을 튀긴다.
“야, 뭐야!

 


“겨우 한 방울 묻은 거 가지고. 난 지금 온몸이 다 젖었어.”

“넌 수영복 입었잖아.”
“그럼 너도 벗어.”
“그래? 벗고 같이 들어갈까? 그럴까?”
“죽는다.”
덜그럭거리는 소리가 유치한 말다툼 소리를 지워 없앤다. 보아하니 입구 유리문이 열려 있다.


“아, 추워. 바람.”
유토가 바깥에 있는 사람 그림자를 노려봤다.

그러자 잠시 후 유리문이 다시 조용히 닫혔다.


“끝나면 맛있는 거 사줄게. 스마일, 스마일. 불고기? 초밥?”
고타로가 니나의 비위를 맞춘다.
“빙수.”
“빙수? 이런 미친 추위에?”

가을비 전선의 영향으로 장마 비슷한 날이 이어져 이제 막 10월에 접어들었는데도 옷을 껴입고 있다.


명절 때 세 시간 기다리다가 결국 포기하고 욕하면서 돌아간 니코타마의 거기, 이렇게 추우니까 이제는 줄 안 서고 들어갈 수 있을 거야.”


니나는 입술 끝에 검지를 대고 요염한 자세를 취한다.
그때 다시 빨래방 안에 찬 기운이 들어왔다.

“아, 춥다고 했지!”
유토가 노골적으로 인상을 찌푸렸다.


“세탁물…….”


입구에 선 사람이 중얼거리면서 대답했다.


“뭐?”


“찾으러 왔습니다, 세탁물. 제 거를…….”


“얼른 챙겨서 사라져.”

 

 

 


그러자 학생처럼 보이는 남자가 주뼛주뼛 들어와 건조기로 향한다.
순간 요란한 알람 소리가 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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