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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닙니다. 새 걸 다시…….”
나이토가 허둥지둥 다시 주방으로 돌아가자 스미야가 입술을 쭉 내밀었다.
“역시 우리 누님. 행동 하나하나가 어쩜 이리 똑부러지시는지.”
“네 말은 어쩜 그리 하나하나 거슬리니?”
네코는 손가락으로 권총을 만들어 스미야에게 쏘는 시늉을 했다.

고타로와 유토가 손뼉을 치며 박장대소한다. 점포 안에 있는 다른 손님들이 무슨 일인지 신경 쓰는 듯하지만 눈에 띄게 고개를 돌리지는 않았다.


잠시 후 ‘오구라 크림 팬케이크’와 ‘살살 녹는 치즈 설국 포테이토’가 나왔다.
“하도 안 와서 다시 배불러졌어.”
네코는 포크를 집으려고도 하지 않았다.


“응? 뭐야, 이건.”
유토는 눈앞에 놓인 감자튀김 접시를 가리켰다.
“‘살살 녹는 치즈 설국 포테이토’입니다만…….”
나이토는 잔뜩 얼어 있다.


“이런 건 시킨 적 없는데.”
“네?”
“감자가 없어졌다고만 했지. 우리가 먹던 건 매콤 소시지랑 로스트비프 덮밥이었다고.”
“난 티라미수 먹던 중이었어.”
네코가 옆에서 거들었다.
“응? 그거 남은 건 내가 먹었는데.”
유토가 말했다.


“바보, 멍청이.”
“안 먹고 둔 사람 잘못이지.”
“그게 아니라 먹었다고 안 하면 새 걸 받을 수 있잖아. 하여튼 쓸데없이 솔직하다니까. 근데 나, 유토의 그런 면이 좋아. 쪽.”
누나와 친동생의 멋진 콤비 플레이를 바라보며 흐리멍덩한 얼굴로 꾸벅꾸벅 졸던 니나도 덩달아 웃었다.

 


“‘매운 초리소’랑 ‘고급 로스트비프 볼’로 괜찮으시겠습니까?”
계산서를 든 나이토의 손이 덜덜 떨리고 있다.

“안 괜찮아.”
창 쪽을 보며 턱을 괴고 있던 스미야가 중얼거렸다.

나이토의 표정이 한층 더 얼어붙는다.

스미야는 입에 문 담배에 불을 붙이고는 다리를 다시 포개고 서서히 그녀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새 걸 가져오면 그걸로 끝인가? 이 가게는 원래 이렇게 일을 대충대충 해? 손님을 향한 마음이라는 게 전혀 느껴지지 않잖아. 그래. 마음이 중요하다고, 마음. 우선 ‘미안합니다’부터 시작해야지. ‘죄송합니다’나 ‘사죄드립니다’도 괜찮고. 나이토 씨 맞나? 당신, 지금껏 우리한테 그런 말 한 번이라도 했어? 아무 사과도 없이 ‘네, 네, 알겠습니다. 이거라도 쳐드세요’야 뭐야? 뭐 이런 가게가 다 있어?”


“죄송합니다.”
나이토는 어깨를 잔뜩 움츠리고 고개를 숙였지만 스미야는 공세를 멈추지 않았다.


“이미 늦었어. 남이 시켜서 숙이는 고개에 진심이 담겨 있을까?”
“죄송합니다.”
“됐다고.”
“결례를 범했습니다. 지금 당장 새 음식을 가져다드리겠습니다.”
“아직도 정신 못 차렸네. 새 음식이니 뭐니 하는 걸로 상황을 회피하려는 걸 보니.”
“아뇨, 그런 게…….”
“됐어. 당신한테 말해봐야 소용없는 것 같으니 점장 불러와. 점장 말이야, 점장. 지금 당장.”
나이토는 새파래진 얼굴로 돌아갔다.

 

 

테이블에 있는 다섯 명은 농구 경기 퇴장 시간처럼 박수로 나이토를 보내고 키득키득 웃음을 터뜨렸다.
“새 비즈니스의 예감.”
고타로가 혼자 빈 옆 테이블로 이동했다.


잠시 후 머리숱이 적은 남자가 테이블로 왔다. 옆에 나이토는 없다.
“저희 직원 실수로 손님 여러분께 큰 결례를 범했습니다.”

점장은 옆구리에 양팔을 딱 붙이고 허리를 45도 각도로 숙인다.

“역시 점장. 군기가 팍 들었네.”
네코가 숟가락과 포크를 맞대고 두드렸다.
“그냥 기계적으로 고개 숙이는 것 같은데.”
유토가 코웃음을 쳤다.


“진심으로 사죄드립니다.”
점장은 더 깊이 허리를 숙였다.


“부하 직원도 당신처럼 고개 숙이도록 교육하는 게 상사의 책무 아닌가? 그걸 못했으니 점장으로서 실격.”
스미야가 나이프 끝을 들이밀며 말했다.
“죄송합니다.”

“그리고 애초에 말이지. 아까 그 아줌마는 어떤 그릇을 치울지 묻지도 않았어. 이 가게는 그런 기본적인 교육도 안 하나?”
“지당하신 지적입니다. 앞으로 더욱 철저히 교육하겠습니다.”
“앞으로 하건 말 건 지금 당장 우리한테 어떡할지가 중요하지. 모처럼 즐겁게 밥 먹으러 왔는데 기분을 아주 제대로 망쳤거든.”


“저희 직원의 실수에 대해서는 진심으로 사죄드립니다. 잘못 치운 음식은 새것으로 다시 가져다드릴 테니 말씀해주십시오.”


“이것 봐, 이것 봐. 결국 새것만 갖다 주면 다인 줄 알잖아. 그게 이 가게가 손님을 대하는 자세인가? 아무리 같은 요리를 내와도 우리의 즐거웠던 시간은 돌아오지 않는데?”


“됐어, 그걸 떠나 먹고 싶지도 않아. 입맛이 싹 사라졌어.”
네코가 하품 섞어 말했다.

 

 


“‘확산 요망. 해피 키친 슈쿠가와라 점은 손님이 다 먹지도 않은 음식을 멋대로 치우고 사죄도 안 하는 최악의 가게’라고 써서 SNS에 올려 볼까? 미리 말해두는데, 내 팔로워가 3천 명이야.”

유토가 스마트폰 화면에 검지를 붙였다 뗐다 했다.


“부디 선처 바랍니다.”
점장이 다시 한번 고개를 숙였다.
“그럼 성의를 보여봐.”
스미야가 테이블을 툭툭 두드리며 위협했다.


“저희 실수로 벌어진 일이니 음식값은 받지 않겠습니다.”
“이봐, 아직도 이해를 못 하네. 그게 성의라고? 반품하면 돈 돌려주는 거랑 똑같잖아? 당연한 조치 아닌가? 아, 진짜 인터넷에 퍼뜨려야겠네.”
“응, 올려버리자.”
스미야가 고개를 돌리자 유토는 스마트폰 화면에 검지를 갖다 댔다.


“잠깐만 기다려주십시오.”
점장이 엉거주춤 허리를 숙이고 신발을 벗었다.

그리고 정좌하고 앉아 바닥에 이마를 갖다 댄다.


“구경났어? 앙?”
유토는 은근슬쩍 관심을 보이는 다른 손님들을 제지했다.
옆에서는 고타로가 말없이 영상을 촬영하고 있었다.

 

 

“공짜로 밥을 얻어먹고 선물까지 받다니, 나쁘지 않네. 한 사람 앞에 다섯 장.”
유토는 상품권을 부채 모양으로 펼쳐 친구들 쪽으로 내밀었다.

해피 키친 슈쿠가와라 점 주차장이다.

점포는 간선 도로 옆에 있지만 주차장은 건물 옆과 뒤쪽에 걸쳐 있고 담장 너머는 주택가라 차가 드나들 때 빼고는 어둡고 조용하다.


“생각지도 못하게 다음 납품 영상도 찍었고, 아주 보람찬 하루네.”
고타로는 승리 포즈를 취하고 유토의 손에서 상품권 한 장을 뽑았다.


“탈 사람?”
스미야가 키 버튼을 누르자 검은색 미니밴 차량의 도어록이 해제됐다.


“잘 부탁해.”
네코가 뒷좌석에 올라탔다. 유토도 뒤따른다.

 

미니밴 차창에서 네코가 손짓했다.

니나는 그쪽을 향해 비틀비틀 걸어간다.

변덕스러운 게 나보다 더 고양이 같네, 하고 즐거운 웃음소리가 들린다.
“칫, 다음에 자러 올 때는 이불도 챙겨와!”
고타로는 악담을 퍼붓고 등을 돌려 자신의 경차에 올라탔다.


시동을 걸지 않고 담배를 한 대 피우며 니나의 마음이 바뀌기를 기다렸지만 결국 아무도 문을 두드리지 않았다. 스미야의 차는 짧게 경적을 울리며 주차장을 빠져나갔다.

 

 


고타로는 담배 홀더를 던지고 차에서 나갔다.

오줌이 마려워서 누고 가자고 생각했다.


주차장 구석 그늘진 곳으로 가서 바지 지퍼를 내리려 할 때였다.

 

 

시야에서 뭔가가 폭발했다.

그렇게 착각할 만큼 엄청난 충격이 그의 몸을 관통했다.

왼쪽 어깨에 마치 불붙인 담배를 다발로 짓누르는 듯한 통증이 느껴졌다.


방어하려고 상반신을 뒤로 돌린 고타로의 머리 위에 날카로운 그림자가 있었다.

 


“죽어! 죽어! 죽어! 죽어!”
연이은 저주 같은 말과 함께 가위가 고타로를 향해 내려왔다.

 

 

 

 

 

 

 

 

우타노 쇼고의 <디렉터스 컷> 5월 출간 예정입니다.

출간 전 연재로 1장까지 보여드렸습니다.

이 다음 내용부터 사건이 진행됩니다. 더 많은 이야기는 책을 통해 확인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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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그 꼰대는 어떻게 됐어?”
이시하마 스미야가 물었다.


“나중에 직접 확인해.”
오리타 유토가 히죽히죽 웃으며 대답했다.


“혼내줬어?”
“방송을 기다리라니까.”
“근데 그런 걸 방송에 내보내도 돼? 얼굴 팔릴 일은 없나?”
“이 세상에는 편집이라는 기술이 있지.”
고타로가 담배를 위아래로 휘두르며 대답했다.

 


“근데 그 아저씨한테 고소당하는 거 아니야?”
스미야가 다시 물었다.


“고소당할 짓 안 했는데?”
“했잖아.”
유토가 손가락질하자 고타로는 그의 얼굴에 대고 숨을 크게 내쉬었다. 마음은 고질라 입김 같은 담배 연기로 괴롭혀주고 싶지만 가열식 담배라 유해 물질이 거의 없는 희미한 수증기밖에 나오
지 않았다.
“이미 다 손 써뒀어.”
고타로는 아래를 향해 쥔 포크로 식은 피자를 푹 찌른다.


“무슨?”
스미야가 물었다.


“여기선 얘기하기 좀 그래.”
“뭐야 그게.”
“됐어. 얜 원래 한번 입 다물기로 한 건 죽어도 안 가르쳐줘.”
네코가 끼어들었다.
“착한 어린이는 몰라도 된답니다.”
고타로는 네코의 머리를 톡톡 두드렸다.


“착한 어린이 아닌데?”
네코가 귀마개 달린 니트 모자를 벗었다. 그 밑에 이마 쪽에 해골 그림이 새겨진 얇은 비니를 쓰고 있다.
“모자를 두 개나 쓰다니. 그렇게 추워? 아니면 추위를 많이 타나?”
스미야가 웃으며 묻는다.


“왠지 기분 나쁘게 말하네.”
네코가 스미야에게 눈을 흘겼다.
“여자는 원래 나이랑 상관없이 대부분 추위를 많이 타지 않나?”

“그 말이 뭔가 기분 나빠.”
네코가 비니를 뒤집자 가격표가 튀어나왔다.
“그대로 쓰고 나온 거야?”


“이것도.”
카디건 소매를 걷자 팔목에 밀리터리 무늬 머리끈이 팔찌처럼 채워져 있다.


“대단하네.”
“그치?”
반대편 손목에도 노란색 머리끈이 감춰져 있었다. 네코는 머리끈과 비니를 벗고 어깨까지 기른 머리카락을 대충 묶었다.


“대성공!”
유토가 우렁차게 외치며 와인 잔을 든다.

 


후타코타마가와에 있는 쇼핑몰 빌딩을 나온 지 세 시간.

그들은 다마 강을 건너 슈쿠가와라에 있는 패밀리 레스토랑에 모여 있다.

스미야는 바꿀 수 없는 근무 시간 때문에 ‘오후 반’에 참가하지 못했지만 뒤풀이에는 뒤늦게 달려왔다.


“그런데 말이지. 그때 왜 바로 구하러 오지 않았어? 내심 경비원을 불러야하나 긴장했잖아.”
니나가 볼에 바람을 집어넣었다.

눈이 반쯤 감겨 있고 말에 딸꾹질이 섞여 있다.


“그러니까 상황을 지켜봤다고 했지. 덕분에 좋은 숏들을 건졌어.”
고타로가 레드와인이 든 디캔터를 들어 자기 잔에 따랐다.


“여차하면 그냥 못 본 체할 생각이었던 거 아니야?”
“그럴 리 있나. 아무튼 둘 다 잘해줬어. 고생했어.”
고타로는 넌더리를 내며 웃고 담배 홀더에서 히트 스틱 꽁초를 분리해 피자 위에 버렸다.


“그럴 리 있어, 있어, 있다고! 고타로 짜증 나!”
니나는 고타로의 잔을 빼앗아 단숨에 절반을 비웠다.


“또 또 과음한다. 대체 몇 번이나 똑같은 소릴 하는 거야?”
유토가 잔을 빼앗았다.


“내놔, 내 거야!”
니나가 잔을 되찾으려고 팔을 뻗었다.

그러나 거리 계산을 잘못해 주정뱅이의 손등이 샐러드 볼을 직격하고 만다.

테이블 끝에 있던 볼은 포물선을 그리며 바닥에 떨어져 점포 안에 파멸적인 소리를 울렸다.
다른 테이블에서 일제히 시선이 집중된다.

그러나 그들은 즉시 다시 고개를 돌렸다.


“괜찮습니다. 제가 치우겠습니다.”
중년의 여성 점원이 다가왔다. 테이블 옆에서 허리를 숙이더니 바닥에 떨어진 채소를 한곳에 모은다.


“안 괜찮아. 야, 나이토. 너한테 하는 말이라구우.”
네코의 시비에 점원은 놀란 얼굴로 고개를 들었다.  

가슴에 단 이름표에 ‘나이토’라고 적혀 있다.


“네가 그릇을 빨리 안 치워서 부딪혔잖아. 니나, 안 다쳤어?”
네코는 그렇게 말하고 니나의 손을 들어 손등을 문지른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큰 소리로 소란을 피운 니나는 눈꺼풀이 반쯤 감겨 있다.


“음식이 아직 남아 있어서…….”
점원이 주뼛주뼛 허리를 일으켰다.


“배불러서 못 먹겠어.”
“그럼 치워드리겠습니다.”
테이블 위에는 식기가 잔뜩 놓여 있었다. 절반씩 겹쳐진 접시도 있고, 끝에 있는 접시는 테이블 밖에까지 튀어나와 있다. 거의 모든 식기에 음식이 남아 있다.

스파게티 카르보나라와 흰살생선 뫼니에르는 손도 대지 않았다.

모든 메뉴를 제패하겠다며 들어왔지만 채 절반도 주문 못 하고 다들 포만감에 배를 두드리고 있다.

 


“역시 우리 누님, 믿음직하다니까.”
양손에 식기를 들고 주방으로 향하는 나이토를 보며 스미야가 고개를 연신 끄덕였다.


“또 놀린다.”
네코가 주먹을 들어 올렸다. 스미야가 호들갑스럽게 손으로 머리를 감싼다.
“고타로오!”
니나가 대뜸 웃음을 풋 터뜨리며 외쳤다.
“뭐야?”
고타로는 이맛살을 찌푸렸다.


“고타로래, 고타로.”
니나는 빨대를 지휘봉처럼 휘두르며 키득키득 웃는다.


“그게 뭐.”
“이름이 이상하잖아.”
“뭐가?”
“구스노키 고타로! 무슨 전국시대 장수야?”
니나는 고타로의 어깨를 툭툭 두드렸다.


“완전 맛이 갔군.”
유토가 옆에서 귓속말하듯 나직이 말했다.


“네 이름도 이상한 건 마찬가지야. 니나라니, 미국인도 아니고.”
고타로도 취기가 올라 정면에서 되받아쳤다.
“니나는 귀여운데? 고타로는 이상해.”
“고타로가 이상하면 네코는 더 이상하지.”
“네코도 귀엽잖아. 냥코일본어로 ‘네코’는 고양이라는 뜻이다, 냐옹, 냐옹. 근데 고타로는 아저씨 같아. 고타로! 고타로오!”
니나는 고타로를 손가락질하며 말했다.


“뭐, 실은 고양이가 아니라 생쥐지만.”
네코가 웃음을 터뜨렸다.

“생쥐?”
스미야가 고개를 갸우뚱했다.

“쥐해에 태어나서 네코일본어로 쥐를 상징하는 ‘자(子)’를 ‘네’라고 읽는다야.”

“쥐해? 내가 개띠니까 개, 돼지, 쥐. 두 살 아래? 스무 살?”
“그럼 동생이지.”
유토가 담배를 입에 물었다. 몇 초 뒤 스미야가 부릅뜨며 목을 쭉 내밀었다.


“마흔넷 아니다.”
네코가 동생의 담배를 빼앗는다.
“알아, 알아, 쉰여섯! 우와, 젊다. 슈퍼 아줌마 파워!”
“죽을래?”
네코가 스미야에게 담배 연기를 내뿜었다.


“몰랐네. 왜 지금껏 안 알려준 거야?”
스미야는 유토를 팔꿈치로 툭 쳤다.
“알려줄 이유가 없잖아. 창피하기도 하고.”
유토는 이쑤시개를 입에 물고 다른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뭐가 창피해.”
누나는 친동생에게도 담배 연기를 뿜었다.


“누나가 아니라 엄마 아빠가 창피해.”
“뭐가 창피하단 건지 모르겠네. 너, 스물둘인 지금 아이를 만들었다고 치고 서른두 살 때는 섹스 안 할 거야? 마흔둘 때도 할 거 아니야? 그럼 스무 살 차이 나는 남매가 있어도 하나도 안 이상
해.”


“누님, 지당하신 말씀입니다.”
스미야가 벌떡 일어서서 허리 숙여 경례하자 네코가 머리를 툭 때렸다.


“냥코 언니, 너무 귀여워.”
니나는 네코에게 머리를 비빈다.
“근데 서른둘로는 전혀 안 보이는데. 엄청 어려 보여.”
스미야는 탄식을 한 번 하고 고개를 갸웃거리며 네코의 얼굴을 뚫어지게 쳐다봤다.

 

머리를 또 한 대 얻어맞는다.
“자세한 숫자는 언급하지 말아 줄래?”
“칭찬하는 겁니다!”
“어려 보인다는 말 자체가 실제로는 나이가 많다는…… 앗!”
네코가 불현듯 버럭 소리쳤다.

나이에 대한 이야기를 끈질기게 이어 가는 스미야에게 화가 나서는 아니다.

 

 

“일본풍 팬케이크 어딨어?”
네코는 유난스럽게 고개를 흔들며 테이블 위를 둘러본다.


“‘오구라 크림 팬케이크’는 조금 전 치워드렸습니다만.”
어느새 나이토가 한 번에 다 치우지 못해 남은 식기를 가져가려고 돌아와 있었다.


“뭐? 먹고 있었는데?”

“다 드셨다고…….”
“배부르다고 했지, 언제 전부 치우랬어? 그러고 보니 치즈 올린 감자도 없어졌잖아.”
유토가 눈을 치뜨며 매섭게 쏘아봤다.

 


“금방 다시 가져오겠습니다.”
“장난해? 치운 걸 다시 먹으라고? 음식 위에 다른 접시를 얹어서 가져가지 않았어?”

네코는 나이토를 위압하듯 천천히 머리끈을 풀고 보란 듯이 해골 비니를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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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네코와 니나는 아랑곳하지 않고 앞을 향해 걸어갔다.
“사진.”
그는 두 사람 앞으로 돌아와 막아서듯 서고 말했다.


“영감님, 여자 꼬시려면 스가모도쿄에서 유독 노년층이 많이 찾는 지역에나 가세요.”
네코가 중지를 치켜들며 말했다. 마흔 전후로 보이는 남자다.
퀼팅 재킷에 격자무늬 슬랙스, 진갈색 로퍼를 신은 모습이 그야말로 가정이 있는 중년 회사원의 휴일 옷차림이다.

 

 

 


“너희, 아까 사진 찍었지? 방금 가게랑 그전 가게에서도. 그리고 SNS에 올렸겠지. 트위터? 인스타그램? 핀터레스트? 아니면 라인 LINE으로 보냈나?”


“아, 재수 없어.”
네코가 조용히 내뱉고 남자 옆을 지나쳐 갔다.

 

남자는 게걸음으로 두 사람을 따라왔다.
“가게 허락은 받았나? 물론 안 받았겠지. 그럼 사진은 지우도록. 허가 없는 사진 촬영 자체가 금지인데, 심지어 가게에서 파는 물건을 몸에 걸치고 사진을 찍어 인터넷에 올리다니. 사람들한테
마치 내 물건이라도 되는 것처럼 보여주는 거야? 너희는 그것들을 사지도 않았는데?”


“뭐라는 거야.”


“사지도 않은 물건을 내 소유물처럼 다룬다. 그런 걸 두고 절도라고 하지. 시쳇말로는 도둑질이라고 하고.”


“안 훔쳤거든요.”


“실물은 훔치지 않아도 상품의 가치를 훔친거나 마찬가지야.”


“대체 뭔 소리를 하는 건지 모르겠네.”
네코는 발걸음을 멈추고 남자를 째려봤다. 니나는 불안한 듯 주변을 둘러본다.

 


“허락도 없이 남의 물건을 들고 사진을 찍거나 인터넷에 올리면 안 된다는 거야. 올린 지 10초 안에 지워지는 스냅챗이더라도.”

“안 올렸고, 그전에 찍지도 않았거든.”
“그럼 스마트폰을 확인해도 될까? 찍지 않았다면 사진도 없겠지.”
남자는 니나의 왼손을 가리키며 말했다.

본체와 비슷한 크기의 봉제 인형을 매단 스마트폰이 들려 있다.

 


“당신한테 왜 보여줘야 하는데? 지금 우릴 위협하는 거야? 신고당하기 싫으면 돈 내놓으라고 하려고?”
네코가 한쪽 눈을 찡그렸다.
“아니. 경찰이 와서 시끄러워지기 전에 충고하는 거야.”
남자는 양쪽 옆구리에 손을 대고 두 명의 소녀를 번갈아 쳐다봤다.꼭 학교 선생님 같기도 하다.


“아저씨, 괜히 친절한 척하지 마. 뭘 원하는지 뻔히 보인다고, 바보. 하여튼 우리 몸에 손가락 하나라도 대 봐.”
네코는 양손 중지를 세우더니 고개를 홱 돌리고 다시 발걸음을 뗐다.

 

 

그래도 남자는 물러서지 않았다.
“반항은 젊음의 특권이라지만 치고 빠질 때를 잘 구분해야지. 안 그러면 큰코다친다.”
남자는 계속 설교하며 두 사람을 뒤따라왔다.


그때 뒤에서 걸걸한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하여튼 꼰대들은 끈질기다니까. 뭐? 큰코 다친다고?”
오리타 유토가 껌을 짝짝 씹으며 나타나 두 여자와 남자 사이에 끼어들었다.

유토는 중년 남성의 팔을 붙잡고 확 잡아당기더니 만취한 사람을 끌고 가듯 성큼성큼 앞으로 나아갔다.
한 박자 늦게 구스노키 고타로도 나타났다.

 

그가 멘 숄더백 끈에는 액션 카메라가 달려 있다.


유토는 중년 남자와 어깨동무를 한 채 계단 쪽으로 돌아갔다.
뒤이어 고타로가 통로 안쪽으로 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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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 오늘은 소고기덮밥.”
“뭐?”

“곱빼기에 달걀 추가해도 돼. 테이블 도는 중화요리는 CCTV를 부수는 영상을 찍고 가기로.”
“뭐야, 그게.”


“영상이 채택되면 사례금이 나오는 시스템이라 오늘 촬영은 무보수야. 그런데 호화로운 저녁을 제공하면 본전은커녕 엄청난 적자라고.”
고타로는 운전대에서 양손을 떼고 항복이라는 듯이 어깻죽지에서 손바닥을 위로 향했다.

 


“근데 이것도 일이잖아. 일이면 경비를 청구할 수 있지 않아? 영상이 채택되고 안 되고를 떠나 밥값, 교통비는 받아야지.”
스미야가 말했다.


“저쪽도 쌈짓돈을 꺼내주는 거라.”
“저쪽은 저쪽 나름대로 다 계산하고 있을 텐데 우리가 알아서 길 필요 있겠어? 정당한 대가를 받지 못하면 인터넷에 올릴 거라 하고 받을 건 받자. 이건 당연한 권리야.”
유토도 기세등등하게 말했다.


“다음에 협상해볼게.”
고타로는 어정쩡하게 대답했다.
“아아. 밥도 못 얻어먹는 거면 나도 오늘 나오지 말걸. 니나, 하여튼 낌새는 잘 알아차린다니까. 얄미워.”
네코가 옆자리에서 몸을 축 늘어뜨렸다.


“니나는 학교가 바쁜가?”
동생이 얼굴을 찌푸리며 누나의 몸을 원위치로 돌린다.
“연합 모임.”
고타로가 대답했다.

 


“연합? 그거, 혹시 남자들이랑 연합하는 거 아냐? 남자친구로서 괜찮아?”
“걔는 원래 허풍이 심해서. 그냥 친목 모임 정도일 거야.”
“근데 정말로 미팅 자리이거나 하면 위험하지 않겠어?”
“다른 놈들한테 절대 뺏기지 않을 자신이 있을 거야, 얘는.”
네코가 허리를 쭉 펴고 손가락으로 고타로의 머리카락을 휘휘 휘저었다.

 

“아, 예쁘다!”
하나사키 네코가 진열대 위에서 놓인 고풍스러운 머리끈을 집어 들었다.
“네코한테 잘 어울리겠다.”
고스게 니나가 머리끈을 가리키며 말하자 네코는 머리끈을 양손으로 쭉 늘이더니 머리에는 가져가지 않고 팔찌처럼 손목에 찼다. 그리고 진열대에서 머리끈을 한두 개 더 집어 든다.

 

“얍!”
네코는 양팔을 가슴 앞에서 교차시켰다.

두 팔 모두 티셔츠 소매를 걷어 올리자 손목에서 팔꿈치까지 머리끈이 잔뜩 감긴 모습이 꼭 미셸린 사의 마스코트 같다.

 


“와, 신감각 패션.”
니나는 스마트폰을 들어 포즈를 취하는 네코의 사진을 찍는다.
네코가 머리끈을 진열대에 다시 던지고 두 사람은 통로로 나갔다.

두 사람은 지금 후타코타마가와에 있는 패션 쇼핑몰을 돌고 있다. 핼러윈이 끝나고 크리스마스는 아직 먼, 소매업자들에게는 빛이 들지 않는 시기지만 일요일 오후라 그런지 손님이 제법 많다.


“귀여워.”
옆 가게로 들어간 네코는 고양이 그림이 그려진 팔각모를 집어 들어 머리에 쓴 모자를 벗고 써봤다.

 


“응, 귀엽네.”
니나는 음소거 카메라 애플리케이션으로 사진을 한 장 찍었다.

 


“이것도 괜찮네.”
네코는 분홍색 중절모를 머리 위에 얹는다.
“그건 살짝 비스듬하게 쓰는 게 멋져.”
니나의 충고에 따라 검지로 챙을 조금 아래로 내린다. 그러자 니나가 곧장 다시 셔터를 눌렀다.
“그 포즈, 멋져!”

네코는 니트 베레모, 노르딕 문양의 다운해트 순으로 손에 집히는 대로 모자를 눌러쓴다. 그리고 모자를 쓰면 스마트폰을 향해 포즈를 취했다.

 


모자를 대략 한 번씩 다 써보고 두 사람은 맞은편 가게로 이동했다.

이번에는 네코가 머플러를 목에 두르고 그 모습을 니나가 촬영한다.


두 사람은 그렇게 가게 여러 곳을 전전했다.

셔츠를 몸에 대보고, 재킷을 어깨에 걸치고, 벨트를 허리에 두른 모습을 스마트폰으로 촬영한다.

 


캐릭터 잡화점을 나갈 때였다.

 

 

 

 


“거기 둘, 잠깐.”
누군가가 뒤에서 두 사람에게 말을 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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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데 난 유토의 그런 면이 좋아. 쪽.”
네코가 유토에게 손 키스를 날린다.


“하지마, 그런 거.”
“왜, 뭐 어때서. 좋아하니까 그러는 건데. 쪽.”
“친누나잖아.”
“친누나?”
스미야가 화들짝 놀라 목소리를 높였다.


“응. 그러니까 가족애라는 거야. 영화 같은 데 자주 나오지? 쪽.”
“일본 영화 맞아?”
“근데 성이 다르지 않나? 성이 하나사키 맞죠?”
스미야가 남매 사이에 끼어들었다.


“갑자기 웬 존댓말이야. 하나사키는 남편 쪽 성.”
유토가 대답했다.

 

 


“결혼했어?”
“스미야, 목소리가 너무 커.”
네코가 손으로 양쪽 귀를 틀어막는다.


“결혼했는데 이렇게 밤늦게까지 돌아다녀도 돼요?”
“왜? 유부녀는 꼭 집안일만 하라는 법 있어?”
“아뇨. 하지만 이런 건 좀, 이런저런 면에서 위험하잖아요.”
“불륜 같은 것보다?”
“그런 거랑 비교하자는 게 아니고…….”
“재미없거든, 우리 남편.”
“시청에서 일해.”

고타로가 말했다.


“고타로는 알고 있었어? 이런 건 처음부터 말해줬어야지.”
스미야가 어린아이처럼 입술로 뿌 소리를 냈다.


구스노키 고타로는 오리타 유토의 중학교 동창 친구다.

어릴 때부터 집에 종종 놀러 가기도 해서 누나에 대해서는 잘 알고 있었다.

이시하마 스미야와는 아르바이트를 통해 알게 된 사이고,
고타로는 비록 두 달 만에 그만뒀지만 스미야는 지금도 그 출장 뷔페 서비스 업체에서 일하고 있다.

 


“넌 사람을 프로필 보고 사귀니?”
네코가 따끔하게 지적하자 스미야는 어름어름 화제를 바꿨다.


“근데 요새는 칼로 찔러 죽이는 게 유행인가? 얼마 전 지하철에서 외국인이 칼에 찔렸고 공원에서도 어떤 아줌마가 칼에 찔렸잖아. 라면 가게 아저씨도 칼에 찔렸댔지?”
“시부야 스크램블 교차로에서도.”
고타로가 보충했다.

 


“그래. 얼마 전 핼러윈 때였나? 그것도 칼에 찔린 거였어?”
“아마도. 죽지는 않았지만.”
“전부 똑같은 놈 짓인가.”
“그럴 리 있겠어?”
“그래, 그럴 리 없지. 아무래도 칼로 찌르는 건 흔하니, 전부 총으로 쏴 죽였으면 모를까.”
“그나저나 정말 살벌한 세상이네. 역시 우리가 정의를 보여줘야 해.”
유토가 팔에 알통을 만들어 툭툭 두드렸다.

 


“그보다 배고파. 나, 테이블이 회전하는 중화요리 먹고 싶어.”
네코가 양손으로 확성기를 만들어 운전수를 향해 외쳤다.


“오늘은 노보리토에 도착하면 해산.”
고타로는 패기 없는 목소리로 응답했다. 차는 지금 한밤중의 주오 도로를 동쪽으로 달리고 있다.


“응? 나, 지금 잘못 들은 거 아니지?”
“뭐든 사준다며?”
유토도 불만을 드러냈다.


“촬영이 끝나면 사준댔지. 오늘은 안 끝났어. 그러니까 밥은 없다. 이런 걸 3단 논법이랬나?”

고타로는 냉정하게 말했다.


“말도 안 돼. 야마나시까지 원정 왔는데.”
“촬영 실패는 누가 사전 조사를 안 해서일텐데요.”


네코가 팔을 일직선으로 뻗어 앞을 가리켰다.

 

고타로는 룸미러에서 시선을 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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