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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 이유는

첫째, 나이가 많다면 다른 정상적인 사회경험을 통해서 이런 심리를 해소했을 것이고

둘째, 이런 심리는 대개 사춘기 때 나타나기 때문이다.

 

 

 범인의 나이가 많다면 벌써 범행을 저질렀을 텐데 최근까지 유사 사건은 일어나지 않았다.

 따라서 범인은 25세 이하의 남성, 집에 어른 여성이 부재하거나 형제만 있고 인생에서 실패를 겪어본 사람이다. 사건 발생 장소는 건설 현장 꼭대기였는데 이는 도시에 대한 범인의 정복 심리를 만족시킬 수 있는 최적의 장소다.

또한 범인이 해당 장소를 잘 알고 있다는 뜻이 된다.

고로 범인은 건설 현장에서 일한 경험이 있는 사람일 것이다.

 

 

이렇게 왜곡된 성 심리를 가진 저소득자라면 윤락업소에 간 적이 있을 것이다.

성매매? 아니. 성매매를 했더라도 형편이 넉넉지 않아서 자주 하긴 어렵다.

그렇다면 급이 떨어지고 한밤중에 포르노 비디오를 틀어주는 비디오방에 자주 갔을 거라고 추측해볼 수 있다. 검시 결과를 보면 한 피해 여성의 왼쪽 손톱이 갈라졌는데, 떨어져나간 손톱이 시체가 눕혀진 부근에 떨어져 있었다.

그런데 이상한 점은 모든 피해자들 가운데 해당 피해자의 몸에 난 상처가 가장 적었다는 것이다.

 

 

 

이는 피해자가 성폭행을 당할 때 격렬하게 반항하지 않았다는 걸 의미했다.

손톱이 시체와 멀지 않은 곳에서 발견된 정황을 더해 종합해보면, 손톱은 범인이 피해자를 성폭행한 뒤 손으로 그녀의 목을 조르는 과정에서 피해자가 필사적으로 발버둥치다 그렇게 된거라고 볼 수 있다. 분리된 손톱에서 피해자의 것이 아닌 피부조직(혈액형 A형)이 발견됐는데 이를 통해 피해자의 손톱은 범인의 몸과 닿은 후 갈라졌을 가능성이 높다.

 범인은 뒤에서 목을 졸라 살해하는 방법을 썼기 때문에 피해자의 두 손이 닿을 수 있는 부위가 제한적이었을 테고, 가장 가능성이 높은 부위는 범인의 두 손이다.

팡무는 손톱이 부러진 게 아니라 갈라진 것에 주목했다.

 

 

 이는 손톱이 범인의 피부를 긁을 때 틀림없이 어떤 사물과 닿아서 갈라졌다는 걸 의미했다.

손에 착용하는 것 중에 어떤 물건이 손톱을 갈라지게 할 수 있을까?

 

팡무가 먼저 떠올린 건 메탈 재질의 손목시계였다.

 

 

건설 현장에서 일하는 사람인데 그런 손목시계를 착용하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어딘가 심상치 않았다. 그 사람은 분명 자신이 남들과 다르다는 걸 보여주고 싶었던 게 분명했다.

그렇다면 그는 분명 어느 정도 문화적 소양을 갖춘 사람이다.

건설 현장에서 아르바이트 중이고 어느 정도 문화적 소양을 갖췄으며 인생의 쓴 맛을 본 경험이 있는 25세 이하의 남성. 가장 적절한 답은 농촌 출신의 대입 낙방생이다.

이런 사람이라면 분명 다른 방식으로 공사 현장에서 일하는 농민공도시로 이주해 건축이나 운수업 등에 종사하는 농촌 출신 노동자들과 다르게 보이려고 할 것이다.

 

 

예를 들면 농민공들의 기름진 장발과 구별되는 짧고 말끔한 헤어스타일이나,

 ‘지식인’이라는 걸 보여줄 수 있는 안경,

시멘트가 덕지덕지 묻은 작업복과 대비되는 흰 셔츠 차림일 가능성이 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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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융샤오, 21세 남자, 고졸, C시 바타이진八臺鎭 사람.

2000년 대입 시험에서 떨어진 황융샤오는 1년 재수해서 다시 시험을 치렀지만 또 한 번 고배를 마셨다. 이후 숙부를 따라 도시로 와 여러 건축 현장에서 일한 경험이 있지만 근무 기간이 매번 길지는 않았다. 숙부의 소개로 해당 건설 현장에서 아르바이트를 시작했는데 나름 가방끈이 길어서 그런지 측량원으로 일하게 되었다.

 

그동안 황융샤오의 이미지는 성실하고 과묵한 청년이었던 터라 사람들은 그가 저지른 끔찍한 죄상을 듣고 하나같이 의외라는 반응을 보였다.

체포될 당시 황융샤오는 낡았지만 깨끗하게 세탁한 흰 셔츠를 입고 있었다.

 

팡무가 묘사한 용의자의 외모, 가정환경, 업무환경, 생활습관이 황융샤오와 놀라울 정도로 일치했다. 예상이 빗나간 거라곤 부모가 오래전에 이혼했다는 것과, 황융샤오에게 형제는 없고 누나가 한 명 있는데 재혼한 어머니를 따라 외지로 가버리는 바람에 왕래가 끊겼다는 것뿐이었다.

 

 하지만 이미 밝혀진 것만으로도 평범한 외모의 이 남학생을 다시 보게 되는 계기가 되기에 충분했다. 황융샤오가 사건을 저지를 때 팡무가 현장에서 그를 지켜 본 게 아닌지 의심이 갈 정도였다. 직접 보지 않고서는 그런 정확한 묘사를 해내는 게 불가능했기 때문이다.

 

 

팡무의 설명은 이랬다.

현장을 가보니 피해 여성의 바지가 무릎 아래로 내려와 있었는데 무릎 쪽에 찰과상 흔적이 있었다. 또 옥상 난간에서 피해자의 피부조직이 발견됐는데 가슴에 입은 찰과상과 맞아떨어졌다. 이는 범인이 피해자의 등 뒤쪽에서 성폭행을 저질렀다는 걸 의미했다. 후배위라고 부르는 이 체위는 상당히 많은 의미를 담고 있는 자세였다.

 

첫째, 후배위로 성교를 할 때 남성 이 뒤에서 상반신을 누르거나 두 손을 잡게 되면 여성이 벗어날 수 있는 폭은 최소화된다. 게다가 바지가 무릎까지 내려오면 두 다리를 움직일 수 있는 공간이 제한되어서 격렬하게 반항할 수 없게 되 는 것이다.

 둘째, 성 심리학적 각도에서 볼 때 후배위는 가장 원시적인 성교 체위로 남성에게 강한 정복감과 만족감을 안겨주기 때문에 다른 체위보다 훨씬 남성에게 심리적인 자극을 줄 수 있다. 그날 밤, 팡무는 어둠이 짙게 내려앉은 옥상 위에 섰다. 도시의 야경 전체가 한 눈에 들어왔고 저 멀리 불이 밝혀진 고층빌딩과 발밑을 지나가는 차량행렬을 바라보고 있었다. 기품 있게 차려 입은 여성은 거친 움직임에 무기력하게 발버둥치고 범인은 시야가 탁 트인 높은 곳에 서서 마음껏 욕망을 분출했으리라.

 

 

 

팡무는 눈을 감았다.

 

이 도시의 어느 고급주택에서 초조하게 아내를 기다리고 있을 사내여,

당신의 아내가 내 밑에서 개처럼 능욕당하고 있으리라곤 상상도 못하겠지?

어쩌면 범인의 눈에는 도시 전체가 거대한 여성의 생식기처럼 보였을지도 모른다.

범행을 저지르는 그 순간, 범인은 이 도시를 정복했다는 쾌감을 느꼈을 것이다.

 

그렇다면 현실에서 그는 ‘루저’인 게 분명하다.

 

 

비정상적으로 성적학대를 하고 살인하는 행위는 사회에 대한 분노를 해소하는 방식으로, 성행 위가 범인에게 특별한 의미가 있다는 걸 나타낸다. 또 그에게 초인적인 호기심, 신비감, 흥분을 느끼게 하는 동시에 수치심을 느끼게 한다. 만약 남성이 이른 시기에 여성과 정상적인 관계를 맺을 수 있다면 성에 대한 지나치게 강렬한 느낌은 사회 경험이 쌓이면서 서서히 사라질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범인은 여성과 정상적인 관계를 맺을 수 없는 사람일 가능성이 크다.

그리고 여성에게 제대로 보살핌을 받지 못한 환경에서 자랐을 것이다.

이런 성 심리를 가진 사람은 나이가 많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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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당국이 사건 수사 전담팀을 꾸렸지만, 일주일이 지나도록 사건 해결에 아무런 진전이 없었다. 전담팀이 골머리를 썩고 있는 동안, C시로 출장을 다녀온 딩수청丁樹成 경관이 신선한 제안을 하나 했다.

 

 J대에 다니는 범죄학과 대학원생을 찾으라는 거였다.

전담팀 책임자로 있던 타이웨이邰偉는 처음에 그 말을 듣고 딩수청이 농담을 하나 싶었다.

그런데 딩수청은 진지하게 다음과 같은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2001년 여름, C시에서 네 차례 연속으로 성폭행 살인사건이 발생했다. 피해자는 전부 25~30세 직장여성이었고 범인은 피해자를 성폭행한 뒤 끈으로 목을 졸라 살해했다. 사건은 C시에서 짓고 있던 네 개 고층빌딩 옥상에서 각각 벌어졌다. 당시는 딩수청의 직속상관이자 시 당국 경문보처經文保處, 경제문화보위의 준말로 공안의 직능부서 중 하나 처장이 던 싱즈썬邢至森C시 공안국 부국장으로 승진한 지 얼마 안 되었을 때였다.

신임 관리자는 악폐를 일소하는 데 열심인 법.

 

싱 부국장은 언론에 사건 상황을 일부 공개하며 보름 안에 사건을 해결하겠다고 시민들에게 약속했다.

그리고 이틀 뒤, 전담팀 책상 위에 어느 시민에게서 온 편지 하나가 도착했다.

편지에는 범인이 성심리가 왜곡된 변태라고 적혀 있었다. 또 여성과 정상적인 관계를 맺을 수 없기 때문에 성폭행과 살인을 통해서 자신의 욕망을 분출하는 것이며, 범인의 나이는 30세를 넘지 않을 거라고 단정했다.

 

 

처음에 전담팀 경찰들은 편지 내용이 추리소설 마니아의 기발한 상상에 지나지 않는다고 치부하고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그런데 싱 부국장은 이야기를 듣더니 상당한 관심을 보이며 발신인과 관련된 자료 조사를 지시했다.

 

발신인이 팡무라는 이름의 C시 사범대학 졸업생이라는 걸 알게 된 싱 부국장은 기대에 차서 곧바로 그를 찾았다. 두 사람은 사무실에서 30분 정도 대화를 나눴고, 싱 부국장이 직접 운전해서 함께 사건 현장에도 다녀왔다. 싱 부국장은 돌아와서 사건에 관한 모든 자료를 사무실로 옮겼다. 팡무는 자료를 빠짐없이 훑어보고 한밤중에(검시 결과, 사건 발생 시간은 밤 10~11시경이었음) 사건 현장에 다녀왔는데, 그때 딩수청 경관이 동행했던 것이다.

 

팡무는 네 건물 중 한 건물 옥상(사건 현장을 통틀어 가장 높은 건물이기도 함)에서 한참 서 있었다. 그러고는 마지막에 한 마디 툭 던졌는데, 그 말이 딩수청에게 깊은 인상을 남겼다.

 

 

 

 “범인은 여성을 성폭행한 게 아니라 이 도시를 성폭행하고 있었던 겁니다!”

 

 

 공안 국에 돌아온 팡무는 전담팀에게 다음과 같이 제안했다.

첫 째, 도시 전역에 있는 B급 비디오방, 그중에서도 공사가 진행 중인 건축 현장 근처 비디오방을 조사해서 아래 조건에 해당하는 남자를 찾는다. 20~25, 마른 체구에 짧은 머리, 165~170센티미터, 오른손잡이, 왼손에 손목시계를 차고 있고 왼쪽 손목에 긁힌 자국이 있으며, 고등학교 수준의 문화적 소양을 갖춘 안경 쓴 남자.

 

둘 째, 도시 전체에서 작업 중인 시공팀 가운데 상술한 특징에 부합하는 사람을 찾는다.

 

셋째, 위 조건을 갖췄으며 C시 주변 소도시에 서 대입에 떨어지고 도시에 와서 아르바이트를 하는 사람, 특히 집 에 남자 어른밖에 없는 외동아들이나 남자형제만 있는 사람을 찾는다. 팡무는 심지어 범인이 체포될 때 분명히 흰색 셔츠를 입고 있을 거라고까지 말했다

 전담팀 구성원들은 뜬구름 잡는 듯 한 이런 추측에 반신반의했지만 싱부국장은 부하 직원에게 팡무가 제시한 용의자 특징을 바탕으로 수사에 착수하라고 지시했다.

 

이틀 후,

기차역 근처에 있는 작은 비디오방 주인이 용의자와 인상착의가 비슷한 사람을 안다고 말했다. 그는 기차역 근처 건설 현장에서 일하는 아르바이트생이었다.

주인의 말에 따르면, 보통 공사장 인부들은 여럿이서 비디오를 보러 오는데 그 사람은 매번 혼자서, 그것도 꼭 한밤중에 성인영화를 보러왔다. 한번은 성인영화를 보다가 같은 건설 현장에서 일하는 동료를 만나자 얼굴이 시뻘게진 채로 몰래 빠져나와서 기억에 남았다는 것이다. 경찰들은 해당 건설 현장을 찾아가 작업장에서 비디오방 주인이 지목한 사람을 찾았다.

 

용의자의 이름은 황융샤오黃永孝. 건설 현장에서 측량원으로 일하고 있었다.

경찰이 증거를 들이밀며 왼쪽 손목을 보여 달라고 하자 황융샤오는 갑자기 도주를 시도했고 이내 경찰에 제압되었다.

공안 국에 와서 신문을 받은 그는 네 차례에 걸친 범행에 대해 모두 자백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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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시의 봄은 후텁지근했다.

벌거벗은 나뭇가지에 새싹도 아직 나기 전인데, 기온은 어느새 17~18도까지 올라간 상태였다.

타이웨이邰偉는 달리는 지프차에서 짜증스러운 듯이 단추를 하나 더 풀었다.

그는 무척이나 초조했다. 무더운 봄 날씨때문만은 아니었다.

경찰 생활 십 년만에 제일 까다로운 사건을 만났기 때문이다.

 

 

 

 2002314, J시 훙위안紅園구 타이베이다제臺北大街 83번지 밍 주明珠 단지 32402호에 사는 천모 씨(, 한족, 31)가 자택에 서 숨진 채 발견되었다.

검시 결과 사망 추정 시간은 오후 2시에서 3시 사이, 사인은 경부 압박에 의한 질식사.

 

피해자의 목에 선명한 손자국이 발견된 것으로 보아 범인이 피해자를 목 졸라 살해한 게 분명했다. 현장 감식 결과, 실내에 뒤진 흔적도 없고 사라진 물건도 없어서 강도 살인의 가능성은 잠정적으로 배제했다. 피해자는 상반신이 벗겨진 상태였지만 하의는 멀쩡했고 성폭행을 당한 흔적 이 없어 성폭행 살인도 아닌 것 같았다.

다만 범인은 살해 후 흉기로 피해자를 가슴에서 배까지 갈랐는데, 범행에 사용한 흉기를 현 장에 남겼다는 게 좀 의아했다. 피해자 남편은 그 흉기가 피해자의 집에서 쓰던 식칼이라고 증언했다. 현장은 차마 눈 뜨고 볼 수 없을 만큼 참혹했다. 피해자의 내장과 피가 도처에 가득했다.

경찰 이 주방에서 컵 하나를 발견했는데, 그 안에 들어 있던 액체는 피해자의 혈액과 우유를 섞은 것으로 밝혀졌다. 말로만 듣던 괴물, 흡혈귀를 떠올리게 하는 대목이었다.

 

그 뒤로 한 달여 시간이 흐르고 J시에 연달아 두 차례 살인사건이 일어났다.

피해자는 모두 25세에서 35세 사이의 여성이었다.

피해자의 가슴에서 배까지 부위가 갈라져 있었고,

현장에서는 다른 물질과 섞여 있는 피해자의 혈액이 발견되었다.

 

인구 200만 명이 사는 중형도시에서 살인사건은 흔한 일이었지만, 연쇄살인범의 수법이 너무 잔인하고 기이해서 J시에 적잖은 파문을 일으켰다. 이로써 수천 년 동안 잠들었던 흡혈귀가 부활했다느니, 중국을 침략했던 일본군이 남기고 간 생화학무기가 돌연변이를 일으켰다느니 하는 갖가지 괴소문이 떠돌았다. 시 정부도 해당 사건을 주목하면서 기한 내에 어떻게든 사건을 마무리 지으라고 공안기관에 주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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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젯밤 그들이 또 나를 찾아왔다.

늘 그랬듯 그들은 아무 말 없이 내 침대 앞에 섰다.

늘 그랬듯 나도 몸이 굳은 채 주위를 에워싸고 있는 까맣게 타버린, 머리 없는 몸뚱이들을 두 눈으로 마주했다. 이번에도 그는 내 귓가에 대 고 나지막한 목소리로 말했다.

사실 너도 나와 같아.

한밤중에 그들과 만나는 건 익숙해졌지만 여전히 식은땀이 흘렀다.

그들이 아무 말없이 떠난 뒤에야 나는 맞은편 침대에서 두 위杜宇의 잔잔한 숨소리를 다시 들을 수 있었다. 창밖에서 서늘한 달빛이 쏟아져 들어왔다. 기숙사 안에 가득하던 불길은 사라지고 썰렁한 기운만이 감돌았다. 나는 힘겹게 몸을 뒤척이며 베개 밑에 둔 군용 칼을 손으로 더듬었다. 투박하고 다소 굴곡이 있는 칼자루가 느껴지자 서서히 호흡이 편안해졌다.

그렇게 다시 깊은 잠에 빠져들었다.

 

 

 

가끔 나도 사범대학에 가보곤 했다.

학교에 가면 제2남자기숙 사 문 앞 화단에 앉았다. 예전에 그곳엔 오래된 회화나무가 한 그 루 있었는데, 지금은 가지각색의 이름 모를 꽃들이 미풍에 몸을 맡기며 아름다운 자태를 뽐내고 있었다. 나는 7층 높이의 화학과 학생 기숙사를 뚫어져라 바라보며 예전 모습을 떠올리려 애썼다.

 색이 바란 붉은 벽돌, 흔들흔들하며 금방이라도 떨어질 것 같은 목 재 창문, 페인트 자국이 얼룩덜룩한 철제 대문. 그리고 이 건물을 드나들던 새파란 젊은이들. 나약한 감정에 크게 한 대 얻어맞기라 도 한 것처럼, 순간 열린 기억의 수문으로 걷잡을 수 없이 슬픔이 밀려왔다.

나를 아는 사람들은 내가 말수가 적다고 생각할 것이다.

나는 되도록이면 혼자서 시간을 보내려고 한다. 혼자 밥을 먹고 혼자 길을 걷는다.

수업을 들을 때도 다른 사람과 함께 앉는 걸 꺼린다.

내게 다가오지 마. 나는 눈빛으로 나를 이해하려는 사람들을 밀어낸다.

 사람들은 나를 멀리하지만, 나는 주위에 있는 모든 사람의 성격, 천성, 생활 습관을 속속들이 알고 있다. 만약 교실, 식당, 교정에서 창백하고 무심해 보이는 얼굴로 끊임없이 다른 사람 을 살피고 있는 사람을 보게 된다면, 그게 바로 나일 것이다.

 

 

나는 J대학 난 위안南原 5기숙사 B313호에 산다.

내 룸메이트는 대학원에서 법리학을 전공하는 두위다. 같은 방을 써서 그런 지, 두위는 법대에서 나와 이야기를 나누는 몇 안 되는 사람 중 하나다. 두위는 내가 외로워 보일까 봐 늘 옆에서 챙겨 주었다. 사실 난 내가 어떻게 보이는지 전혀 신경 쓰지 않지만, 두위와 그의 과하다 싶을 정도로 애교스러운 여자 친구와 이야기하는 걸 거부하지는 않았다.

어이, 같이 먹자.”

 나는 양푼을 들고 고추장을 넣은 비빔국수를 먹으며 컴퓨터를 보고 있었다.

 모니터에 뜬 사진과 밑에 적힌 설명을 보느라 집중해 서 두위와 그의 여자 친구가 기숙사에 들어왔는지도 몰랐다. 어느 새 내 눈앞에는 고춧가루와 찌란紫煙, 향신료의 하나 가루를 뿌린 갓 구 운 양꼬치가 누런 기름을 줄줄 흘리며 탄내를 풍기고 있었다.

그걸 보자 내 안색은 등 뒤의 벽 색깔보다 더 창백해졌다.

 두위 가 눈앞에 들이민 양꼬치를 멍하니 바라보는데 이상하게 목구멍에서 꾸륵꾸륵 소리가 났다. 그러더니 곧 반쯤 먹은 점심이 손에 들고 있던 양푼으로 쏟아졌다. 나는 입을 틀어막고 토사물로 가득 찬 양푼을 들고서 문 밖으로 뛰쳐나갔다.

이윽고 등 뒤에서 천야오陳瑤의 목소리가 들렸다.

 “왜 저래?” 나는 힘없이 화장실 세면대에 비스듬히 기댄 채 대충 얼굴을 물로 씻었다.

고개를 들어 보니 군데군데 얼룩이 진 벽거울에 물과 땀으로 범벅이 된 창백한 얼굴이 비쳤다.

눈빛은 흐리멍덩했고 입가에는 미처 닦지 못한 토사물이 묻어 있었다.

 

두위는 난감해하며 나를 쳐다보았다.

야오야오도 방금 전까지는 네가 왜 그러는지 몰랐어. 근데 네가 컴퓨터로 뭘 보고 있던 거 같아서 자기도 따라 보더니만 결국 저렇게…….”

나는 두위 말에 대꾸도 없이 곧장 컴퓨터 앞으로 갔다.

내가 보고 있던 화면에 사진이 몇 장 있었다.

그중 한 장은 썩어 뭉개진 머리, 두부頭部와 목의 피부가 벗겨진 사진이었고, 나머지 세 장은 각각 피해자의 사지가 절단된 몸통, 왼팔과 오른팔 사진이었다. 2000년 미국 위스콘신 주에서 일어난 살인사건의 현장 사진이었다.

나는 그 사진들을 하드 디스크에 있는 심각한 시신 훼손이라는 이름의 폴더에 저장했다. 나는 일어나서 천야오 곁으로 다가가 허리를 굽히며 말했다.

괜찮아?”

 

심한 구토로 힘이 빠질 대로 빠진 천야오는 나를 보더니 순간 질겁하며 뒤로 움츠렸다.

가까이 오지 마!”

천야오는 바들바들 떨리는 손으로 컴퓨터와 나를 번갈아 가리켰다.

 

 이내 입술을 파르르 떨더니 두 글자를 내뱉었다.

괴물!”

야오야오!” 두위는 버럭 소리를 질러 제지하면서 불안한 눈으로 나를 쳐다보았다.

나는 두위를 보며 괜찮다는 듯이 웃어 보였다. 정말 아무렇지 않았다.

 

 

 

내가 괴물인 건 나도 알고 있으니까.

내 이름은 팡무方木,

 2년 전 발생한 재난에서 살아남은 유일한 생존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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