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Q 해리 쿼버트 사건의 진실 1
조엘 디케르 지음, 윤진 옮김 / 문학동네 / 201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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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소설가로서 성공하고 싶은 야망에 불타는 젊은이가 있다. 이미 한차례 성공을 맛보았고 두번째 소설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심각한 문제에 부딪힌다. 첫번째 작품이 성공한 후의 부담감 때문인지 두번째 작품을 쓸 수 없는 것이다.

 

여행도 다니고 자신만의 시간을 갖으며 창작에 대한 영감을 얻으려 했던 마커스 골드만은 자신의 대학 스승이자 소설을 쓰도록 가르침을 준 위대한 소설가인 해리 쿼버트에게 조언을 구하러 간다. 그럼에도 창작에 대한 문제를 풀지 못하고 뉴욕으로 돌아온 마커스는 스승인 해리 쿼버트에게 놀라운 사건이 벌어지고 이로 인해 새로운 소설을 쓰기 시작하는데...

 

참 밋밋하게 줄거리를 쓰고 있지만... 이 책은 여러가지로 경이롭다. 무엇보다 이야기가 후반부로 진행되면 될 수록 반전에 반전이 연쇄적으로 일어난다는 점에서... 그 반전이 각 인물의 캐릭터 속에서 일어난다는 점에서 매우 흥미롭다. 특히 마지막 해리 쿼버트가 가진 진실에 이르게 되면... 그냥 감탄사만 터진다.

 

헤리 쿼버트의 정원에서 시체가 한 구 발견되면서 시작되는 이야기는 해리 쿼버트의 사랑과 작품에 대한 창작열과 허영에서 출판계의 뒷모습까지 보여주면서 사건과 함께 잘 엮여져 나간다. 살해당한 소녀 놀라와 그와 관계했던 사람들의 진술을 통해 과거와 현재 대담과 새로 쓰는 소설이 교차하면서 사건에 대한 진실과 범인을 추적해 나간다. 그와 더불어 마지막 결론은.... 아....

 

글쓰기는 훈련밖에 없다는 것은 사실일터다. 이 책이 가지는 미덕은 결국 창작자가 어떠한 마음으로 창작에 임해야 하는지 그리고 산출된 창작물이 작가에게 어떠한 영향을 미치는지에 대한 배경 속에서 사건에 등장하는 인물들의 배치를 절묘하게 구성하고 있다는 점이다.

 

간단하게

잡으면 놓지 못하고... 끝나는 순간 감탄과 한숨이 교차한다고 해야 하나? 특히 마지막은 정말 반전 중의 반정이었다고 말하고 싶다.

사랑스러운 책... 허위가 가식을 덜어내면서도 끝까지 허위를 유지하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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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해한모리군 2014-06-27 08: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긴책을 계속 긴장하면서 읽게되서 놀랐어요. 이야기꾼 ^^*

머큐리 2014-06-30 11:42   좋아요 0 | URL
정말 오랜만에 정신없이 빠져든 책이었어요~~ㅎㅎ

루쉰P 2014-07-23 16: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책이 그렇게 재밌나요 음...읽어보고 싶은 욕구가 불끈 ㅋ

머큐리 2014-07-24 12:28   좋아요 0 | URL
읽어도 후회하진 않으실 듯 합니다~~^^
 
그저 좋은 사람
줌파 라히리 지음, 박상미 옮김 / 마음산책 / 200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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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은 제각기 자기가 읽고 싶은 것만 읽고 보고 싶은 것만 보는 건지 모르겠다.

요즘 20년지기 친구들과 사소하고 별스런 일도 여러 분쟁을 겪고 나서 느끼는 생각이다. 처음의 분란을 확인하고자 시도하면 어느새 새로운 분란으로 번져버리는 사태(?) 앞에서 사람과 사람의 사이에 참으로 많은 곡절이 생김을 느낀다.

 

이 책을 읽으면서 유난히 눈에 밟히는 구절들이 그렇다.

대부분 미국으로 이민온 인도인이거나 인도인 2세로 자라난 소설속의 주인공들은 어딘가 뿌리 뽑힌 불안정함을 드러낸다. 그리고 그 근원에는 가족이 있다. 아니 가족이라는 끈끈한 인연의 굴레가 있다고 해야 하나?

 

이미 저물어 버린 가족 이데올로기를 새삼스러 다시 펼쳐 보이는 건 아닐테고, 어쩌면 인도에서 뿌리뽑혀 미국으로 이민와서 가족과 함께 이질적인 문화를 버텨내면서 살아온 사람들의 이야기이니 가족이 전면에 대두되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결국 어느 누구도 가족의 품안에서 따뜻함을 느끼지 못하거나 가족이기에 어쩔 수 없는 애증을 갖고 살아야 하는 현실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다.

 

이를테면 '길들지 않은 땅'에서 부인과 사별하고 딸의 집에 방문한 아버지는 딸과 함께 살아야 할지 홀로 살아야 할지 고민한다. 그러나 딸과 몇일 보내고 나서 자신이 결코 가족의 굴레로 다시 엮이고 싶어하지 않음을 발견하다.

 

 

 

그는 다시 가족의 일부가 되고 싶지 않았다. 그 복잡함과 불화, 서로에게 가하는 요구, 그 에너지 속에 있고 싶지 않았다. 딸 인생의 주변에서, 그 애 결혼 생활의 그늘에서 살고 싶지 않았다. 더구나 아이들이 커가면서 잡동사니로 가득 찰 커다란 집에서 사는 것도 싫었다. 그동안 소유했던 모든 것, 책과 서류와 옷가지와 물건을 최근에 정리하지 않았던가. 인생은 어느 시점까지 규모가 불어난다. 그는 이제 그 시점을 넘겼다.    

 

결혼 생활이라는 건 어쩔 수 없이 나빠진다는 사실에서 딸을 보호하고 싶었다. 결과를 보면 그가 두려워했던 것들이 사실로 드러났다. 가족을 이루는 일 자체, 이 땅에 아이들을 낳는다는 자체가 때로 만족감을 주는 만큼 애초부터 어딘가 잘못된 일이다. 하지만 이건 그저 노인네의 , 이제는 아이처럼 되어버린 노인네의 생각일 뿐이다.

 

물론 가족이 무조건 경원 시 되는건 아니다. 분명히 사랑하는 사람이 있고 사랑하는 사람이 떠났을때의 아픔을 간직하고 있다. 그럼에도 때때로 엄습하는 단절감은 애매한 구속을 낳고 있다. 오히려 그 사람이 완전하게 지워질때 비로소 그에 대한 추억이나 기억을 가족이라는 굴레에 넣어도 거부감을 일으키지 않도록 한다.

 

세상에서 가장 가까운 사이면서도 어쩔때는 가장 어려운 사이에 대한 이야기들은 고향이 아닌 타항의 생활에서 더욱 커지게 된다. 인도 고유의 전통을 지켜야 했던 1세대와는 다르게 미국적 정체성을 애타게 갖고자 하는 2세대의 갈망은 단순한 세대차와는 다른 양상을 보인다. 인도인 뿐만 아니라 어쩌면 새로운 땅에 정착해야 하는 모든 사람들이 겪어야 할 일인지도 모르겠다. 그럼에도 인도 특유의 정서를 느끼게 한다. 인도 특유의 정서라... 왜 나는 이런 표현을 하는 걸까?

 

가족이란 어쩌면 '그저 좋은 사람'들의 모임일지 모른다.

그럼에도 그 불안한 가족의 틈에 무언가 연결되어 있는 정서가 이 책이 주는 미덕일테다. 그 정서를 무어라 표현하지 못하겠다. 경계에서 흔들리는 그 어떤 것. 끊어질 듯 위태롭게 이어져 있는 그 어떤 것... 아마 그 어떤 것이 우리를 가족이란 굴레에서 영원히 벗어나게 하지 못하나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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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 2014-06-12 14: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머큐리님 덕에 이 책을 다시 펼쳐들고 <길들지 않은 땅>을 다시 읽고 싶어지네요. 저는 이 책에서 <지옥-천국>만 여러차례 읽었거든요. 머큐리님의 리뷰를 읽고 다시 읽는 길들지 않은 땅은 제가 예전에 읽었던 느낌과는 다른 느낌을 전해줄 것 같아요.

머큐리 2014-06-12 19:01   좋아요 0 | URL
다락방님이 방문하시다니요...ㅎㅎ
영광입니다~~^^
 
사람들이 신을 믿는 50가지 이유 - 유.무신론자 모두가 알아야 할 신에 대한 논쟁
가이 해리슨 지음, 윤미성 옮김 / 다산초당(다산북스) / 201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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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사람들이 신을 믿을까?

오늘 퀴어퍼레이드에서 인상적인 푯말을 들고 나온 기독교인이 있었다.

 

동성애 죄 → 소돔 멸망

동성애 퀴어 → 핵전쟁 심판 위험!!

 

종교를 도대체 무어라 규정해야 할까? 한때는 기독교에 심취했던 나는 구약의 폭력적인 신에 질리고 의문을 품은 사실 자체가 죄가 되어 버리는 교회를 떠날 수 밖에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린시절부터 내 사고의 한 축을 담당했던 종교를 버릴(?) 수 없었다. 물론 애정이라기 보다는 비웃음에 가까운 시선이었지만...

 

아직도 예전의 교회 친구들은 날 위해 기도 한다고 한다. 물론 나는 기도할 대상이 없어 그들에게 교회를 떠날 것을 권고한다. 그러나 신앙은 단순하게 권고한다고 버릴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수많은 논쟁을 거치면서 난 그들을 설득시킬 수 없었다. 그럴때마다 더욱 더 종교에 비판적인 책들을 접하게 되었다. 어떤 책은 신을 아예 신화로 만들어 버렸고, 어떤 책은 마음의 전염병 취급을 했다. 어떤 책들은 무신론적인 논의보다 예수의 혁명성을 강조하였다.

 

그러나 이 책은 종교에 대하여 신앙에 대하여 일반 신자들이 가지는 확신이 얼마나 부조리 하고 비과학적인지 하나 하나 친절하게 풀어가고 있다는 점에서 또한 신앙인들에 대한 인간적인 이해로 접근한다는 점에서 새로웠다.

 

결국 신앙의 문제는 일종의 사회적 관습의 문제이고 마음의 문제일 뿐이다. 그들이 믿는 신은 세상에 존재하는 무수한 신들 중 하나일 뿐이고 이 세상에 단 하나의 신은 존재하지 않는다. 문제는 특정한 종교를 가진 신자들은 다른 종교에 대해서도 무지할 뿐만 아니라 자신의 종교에 대해서도 무지하다. 그러한 무지가 맹목을 낳는다. 재미있는 점은 타종교를 비판할때는 매우 날카로운 비판력을 발휘하면서 자신의 종교에 대해서는 한없이 관대하다는 점이다.

 

이 책은 참으로 다양한 편견을 깨뜨린다. 신자들은 종교가 인류에게 평화를 가져다 준다고 믿는다. 그러나 역사는 종교로 인해 얼마나 많은 피를 흘려야 했는지를 증명하고 있다. 또한 신자들은 자신의 종교척체험에 대해 증언하고 그것을 신이 존재한다는 증거로 여긴다. 그러나 그러한 종교적체험은 꼭 신을 믿지 않아도 이루어질 수 있다는 점 또 기독교인과 이슬람인이 모두 동일한 체험을 한다고 할때 과연 어느 신이 그런 체험을 할 수 있도록 하느냐는 점에서 종교적 활홍감이 신을 증명하지 않음을 보여준다.

 

지적설계론과 진화론의 논쟁도 쉽게 알려주고, 종교적인 국가가 무신론자들이 많은 국가보다 잘산다는 주장에 대한 허구성도 보여준다. 신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증거를 보이라는 신자들에게 신의 존재를 전파하려면 신의 존재부터 증명하는 것이 합리적임을 논증한다.

 

압권은 말세에 대한 저자의 비판이다. 말세는 결국 신자들에게 구원의 시간이요 비신자들에게는 심판의 시간임에도 많은 이웃들을 불구덩이로 몰아 넣는 말세에 대한 희구를 비판한다. 더구나 각 종교에서의 말세는 그 종교만 구원하는 아이러니를 드러낸다. 문제는 인류를 사랑하는 신과 말세는 매끄럽게 연관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인류를 사랑하는 신은 사랑이 넘치다 못해 인류를 전멸시키는 신이라는 이 엽기적 발상을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가?

 

신을 믿어야 사회가 유지된다는 신자들에게 인간의 이성으로도 얼마든지 조화로운 사회를 이룰 수 있다고 저자는 주장한다. 오히려 사회의 분열과 갈등은 종교로 부터 온 적이 많음을 다시 역사를 통해 증명한다. 그렇다고 종교를 믿는 신자들을 무지한 사람이라고 무시하지도 않는다. 종교는 거부해도 역사 속에서 종교를 통해 이루어진 문화는 인정하고 성숙하게 즐길 줄 아는 태도도 저자는 매우 중요시 여긴다. 이 책이 가진 미덕이다.

 

이유없는 동성애 비판이나 여성의 비하도 종교가 가진 맹목성 중 하나다. 신의 명령을 변명 삼아 자신과 다른 인간을 차별하는 인간에 대한 혐오에 대해 종교는 대답해야 한다.

 

동성애 죄 → 소돔 멸망

동성애 퀴어 → 핵전쟁 심판 위험!!

 

이 푯말에 대해 기독교인들에게 하고픈 얘기가 있다.

당신들이 그토록 원하는 종말에는 동성애가 만연해 진다고 한다. 자 동성애를 허하라~~ 그것이 종말을 앞당길 것이다. 그리고 종말이 오면 당신들은 하늘로 올라가 예수와 함께 복락을 누릴 것이다. 그런데 왜 당신들은 동성애를 두려워하는가?

믿음이 부족한 자들이여 동성애나 퀴어로 인해 하나님이 불로 심판한다고 두려운가? 그대 들은 이미 하늘로 올라갈텐데 무얼 그리 걱정하는가?

한기총은 푯말을 들고 있었던 그 분의 믿음이 약함을 빨리 깨우치도록 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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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탈핵 - 대한민국 모든 시민들을 위한 탈핵 교과서, 2014 올해의 환경책 / 『한겨레』가 뽑은 '2013 올해의 책' / 『시사IN』선정 '2013 올해의 책'
김익중 지음 / 한티재 / 201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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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더위가 시작되면 냉방기를 본격적으로 가동할 것이고, 전기 수급에 대한 위험을 경고하면서 절전홍보와 더불어 부족한 전기를 생산하기 위해 핵발전소 건설에 박차를 가하는 정부의 경고가 시작될 것이다.

 

싸고 청정하고 안전한 원자력 발전소의 신화는 다른 나라에서는 몰라도 이 땅에서는 여전히 그 위세가 등등하다. 원자력 발전 말고 무슨 대안이 있느냐는 대안부재론도 판을 칠 것이고... 바로 옆의 나라 일본에서 후쿠시마 사태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원자력 발전을 수출하여 국가 경제에 이바지 하는 자랑스런 대한민국의 원자력 기술은 국민에게 많은 자부심을 줄 것이다.

 

오죽하면 세월호 참사에도 꿈적하지 않던 대통령이 외국에 수출한 원전을 위해 훌쩍 떠나갔을까?

 

이 책의 미덕은 원자력 발전소... 아니 핵발전소의 위험과 신화를 모조리 해체하고 있다는 점이다. 특히 핵마피아들의 선전이 얼마나 허구적이고 핵발전소의 건립과 사용은 현재의 위험은 물론이고 미래의 세대에게 씻을 수 없는 범죄행위임을 밝힌다는 점이다.

 

무엇보다 핵에너지는 싸고 깨끗한 에너지가 아니라는 점을 분명히 하고 있다. 핵발전소의 값싼 전력은 핵발전소 사용 후 처리되는 비용을 모조리 제거하는 통계의 허구에서 시작한다. 핵발전소 가동 후 배출되는 핵폐기물은 그 자체로 방사능 덩어리고 자연환경을 교란하는 위험물질이다. 더구나 핵연료봉 등 고준위 방사선 물질은 방사능 반감기가 10만년이 걸리는 반 영구적인 위험물질이다. 그리고 현재의 인류의 과학기술로는 이러한 방사능 물질을 관리할 수 있는 능력이 없다. 결국 현재 펑펑 쓰는 전기는 향후 우리의 미래 세대에게 핵폐기물로 돌아올 수 밖에 없는 것이 현실이다.

 

오죽하면 10만년이란 시간 동안 핵폐기물이 보존될 수 있도록 하기 위한 폐기장소를 건설하기 위해 언어학자들까지 동원해야 할까? 10만년이면 인류의 언어가 어떻게 변화될지 모르기 때문에 폐기물 장소를 어떻게 표기해야 미래 세대의 인류가 이 위험한 판도라의 상자를 건드리지 않도록 할 수 있을지가 고민인 셈이다. 신화를 참고하면 판도라는 열지 말라는 금단의 상자를 열고 말았다. 온갖 재앙이 다 튀어나온 후 마지막으로 희망이 나왔다지만 핵폐기물에서 나올 것은 방사능 밖에 없으니 .....

 

더구나 방사능이 인체에 끼치는 부정적 영향은 이루 말할 수도 없다. 크게 암이나 돌연변이를 일으킨다는 알려진 위험 말고도 인체에 작용하는 유해성은 조사가 끝난 것이 아니다. 오히려 지금 파악하지 못하는 어마어마한 위험이 예상되고 있지만 그 사실이 사람들에게 널리 알려지지 않은 상태이다.

 

세월호 참사 이후 다음 재난은 핵발전소가 될 것이라는 괴담아닌 괴담이 나돌고 있다. 이게 괴담이 아닌 것이 지금까지 커다란 핵발전소 사고는 대부분 핵발전소가 많이 건설되고 30년 이상 운영된 낡은 발전소들이 문제가 되었다는 사실에 있다. 우리나라는 고리 원자력 1호가 30년이 넘었고, 좁은 영토에 비해 23개의 핵발전소가 운영되는 나라라면 통계적으로 위험성이 매우 높은 것이 사실이다. 더구나 납품비리에서 부터 자잘한 사고가 빈발하는 핵발전소가 지금까지 큰 사고가 터지지 않은 것이 신기할 정도이다.

 

더구나 핵발전소는 대도시 주변에 건설되지 않는다. 많은 사람들의 관심을 받기 싫기 때문일터, 주로 한적한 어촌 등에 경제개발을 미끼고 건설하고, 그곳에서 생산되는 전기는 영토를 가로지르며 대도시로 송전된다. 그 송전을 위한 송전탑이 곳곳에 세워지면서 토박이 주민들을 희생시키는데 밀양에서 싸우는 송전탑 반대 투쟁의 시발점은 핵발전소에 있다.

 

싼 듯 보이나 추가 비용은 얼마나 더 들지 알수 없고, 청정한 듯 하나 치명적인 방사능을 10만년이나 배출하고 안전하다고 하나 조그만 사고라도 발생하면 좁은 영토를 죽음의 땅으로 만들어 버릴 수 있는 핵발전소를 우리는 언제까지 허용하고 살아야 하나? 심지어 30년이 넘은 발전소의 운영을 10년이나 연장하면서도 안전검사도 부실한 이 땅에서 핵발전소는 핵폭탄보다 위험하다. 우리는 아무런 문제의식 없이 이 핵발전소를 안고 살고 있는 것이다. 오히려 감사하는 마음으로...

 

예전엔 '반전반핵가'라도 불렀는데, 이제는 핵에 대한 이야기는 금기 시 되어 있다. 북의 핵개발이나 남의 핵발전소나 모두 이 땅에서 추방해야 한다. 세계는 탈핵의 방향으로 이미 돌아서고 있다. 지금은 비용이 많이 들어 보이지만 결국에는 핵에너지보다 깨끗하고 싸게 사용할 수 있는 태양과 바람과 조력을 이용한 에너지를 개발해 내야 한다. 그리고 이미 그 길에서 많은 성공을 거두는 나라들이 있다.

 

물론, 이 책이 모든 해답을 주지 않는다. 다만 이책은 결단을 요구하고 있다. 잠시의 풍요를 위한 핵발전소를 용인하여 미래의 세대에게 파멸을 안겨 줄 것인지... 지금이라도 핵발전소를 포기하기 고통을 감수하더라도 깨끗한 자연을 물려줄 것인지를 ...

보통의 감수성을 가진 인간이라면 이 질문에 답은 뻔하다... 이젠 늦출 수 없다... 탈핵이라는 세계적인 추세를 인정하고 받아 들여야 한다. 그리고 핵발전소에 대한 미신을 치우고 탈핵을 위한 싸움에 나서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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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대한 사기극 - 자기계발서 권하는 사회의 허와 실
이원석 지음 / 북바이북 / 201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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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의 부제인 '자기계발서를 권하는 사회의 허와 실'에서 보이 듯이 자기계발서적의 본격적인 비판서이자 자기계발서적이 베스트셀러가 되는 사회의 구조를 들여다 보는 책이다.

자기계발 서적을 통해 성공하는 사람은 자기계발서적을 저술한 사람밖에 없다는 냉소가 있듯이 자기계발서적이 과연 개인에게 어떠한 영향을 주고 있는지 이제서야 면밀하게 살펴볼 수 있게 되었다. 미네르바의 부엉이는 황혼이 되어서야 날아가는 법.

 

자기계발서적의 원류는 미국이다. 자기계발서적 자체가 구조적으로 종교적 심성을 가지고 있다는 점에서 베버가 저술한 '프로테스탄트 윤리와 자본주의 정신'을 고려한다면 그 친연성을 볼 수 있을 것이다. 단순하게 기독교적 정신의 문제일 뿐만 아니라 그 작동하는 구조조차도 종교적인 성격을 배제하기 힘든 것이 사실이고 자기계발서적에 대한 믿음이나 구원, 치유의 성격과 그 자족적 만족의 성격을 보아도 종교적인 맥락과 떨어질 수 없다.

 

자기계발서적은 크게 윤리적 자기계발과 신비적 자기계발로 나눌 수 있다. 자기 계발이라는 단어에서 보이듯 가장 우선적인 면은 자조의 개념이다. 하늘은 스스로 돕는자를 돕듯이 스스로 노력하는 자가 성공한다는 것이 윤리적 자기계발의 근복적 사상이 될 것이다. 초기 척박한 환경에서 자연과 싸우면서 사회를 건설해야 했던 미국의 정신이 녹아 들어가 있다고 볼 것이다. 그러나 신비적 자기계발의 단계로 진입하면서 자기 계발은 이제 노력의 문제가 아니게 된다. 이 세계를 움직이는 법칙을 이해하고 그 법칙만 따라하면 성공은 저절로 굴러들어오는 어떤 것이 되어 버린다. 이러한 신비주의 자기계발의 대표적 저서가 '시크릿'이로 이런 신비주의의 성공은 이제 사회가 더 이상 스스로에게 노력하는 자에게 개방적이지 않다는 사실을 반증하고 있을 뿐이다. 노력해도 성공하지 못하는 사회에서 개인이 기댈 수 있는 것은 하늘의 도움 뿐이다.

 

한국 사회가 미국 사회를 일종의 에덴동산으로 생각하고 따라하기를 마다하지 않았다 해도 사실상 자기계발의 열풍은 IMF체체를 겪으면서 시작했다고 볼 수 있다. 이미 기존의 질서는 모조리 해체되고 개인이 생존의 벼랑끝으로 몰리고 기업이 무너지는 때에 무언가 해법이 절실하게 요구되는 때에 자기계발서의 열풍이 불었다. 자식과 마누라만 빼고 모조리 바꾸어야 한다는 대기업 총수의 말에서 이미 혁신과 변화는 이 어려운 시대를 이겨나갈 방법이었고 어떻게 변화하고 혁신할 것인가에 대한 지침에 목말라 있었던 것이다.

 

그러한 사회적 배경 속에서 자기계발 서적은 일정한 이데올로기를 함유하고 본격적으로 사람들에게 파고 들어가기 시작한다. 정리해고가 인생의 기회가 되고 안정적 직장에서의 근무가 인생의 실패가 되는 사회가 도래했을을 설파하고 무엇보다 개인이 스스로 학습하고 자신을 바꾸어야 성공한다는 사고를 퍼트리기 시작한다.

 

기업의 경우에도 이건 손해볼 것이 없는 것이었다. 모든 책임은 개인에게 있음으로 기업이나 사회나 국가는 사실상 개인에게 아무런 보상을 할 필요가 없어지기 때문이다. 더불어 인생의 성공이나 실패는 모두 개인의 노력에 따른 것이므로 실패한 자에게는 별다른 보상이나 혜택을 줄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사회는 역경속에서 성공한 사람들의 일대기를 찬양하며 이들의 성공에는 피땀어린 이들의 노력에 있음을 선전한다. 그리고 모든 사람들이 성공한 사람들과 같이 노력만 하면 사회에서 언제든지 성공할 수 있다는 환상을 퍼트린다. 그러나 이러한 환상 속에서 무한 경쟁으로 돌입해야 하는 개개인의 삶은 지옥으로 변할 수 밖에 없다.

 

자기계발의 강조는 주체의 변화를 강요한다. 지금 찌질한 현재의 자신이 아닌 성공할 수 있는 주체로의 변신을 강요하는 것이다. 이러한 강요는 주체의 변화를 내면적으로 끌어내기 보다는 어떤 기술적 측면을 강조하고 계량화하는데 중점이 있다. 결국 내면의 변화가 이루어지지 않은 상태에서 외면적인 변화만 이루어질때의 내외면적인 충돌은 주체의 분열을 가져올 수 밖에 없고 이러한 충돌이 최근의 힐링 열풍으로 되돌아 오고 있다고 본다.

 

이 책에서 자기계발의 어떻게 평가할까 물론 비평서이니 부정적일 수 밖에 없다. 하지만 기능적인 부분에 대한 일종의 해결책으로 일정부분은 수용할 수 있다고 본다. 그러나 전체적인 자기계발서적의 작용은 이 사회의 병리적 현상을 덮고 사람들에게 의무적인 자기계발은 강요하고 차별을 공인하는 작용을 한다는 것.... 자기계발서적은 결국 쓰레기일 수 밖에 없는 이유이다. 다만, 이러한 자기계발서를 대체하고 공동체에 희망을 줄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인가에 대한 새로운 대안은 어디있는지에 대한 답답함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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