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릴리언스
마커스 세이키 지음, 정대단 옮김 / 황금가지 / 201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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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돌연변이들이 등장한다. 평범한 인간인 노멀과는 다른 특이한(?) 능력을 선천적으로 가지고 태어난 자들에게 보통 인간들은 어떠한 감정을 가지게 되는 것일까? 그리고 자신과는 질적으로 다른 능력을 지닌 사람들과 함께 살아간다고 하는 것은 어떤 일일까?

그것은 완벽한 타자를 마주하고 살아야 하는 사람들의 심리와 제도, 타인을 어느정도까지 허용해야 할지에 대한 물음이다. 그리고 이 소설은 그러한 관점을 충실하게 반영하고 있다. 더우기 타자를 대하는 방식으로서의 가치와 제도... 권력에 대한 이야기이기도 하다.

 

전세계 사람들 중 소수 1%만이 특이한 능력을 가지고 태어나는 사람들을 '브릴리언트'라 부른다. 이들의 능력은 천차만별이다. 사람의 마음을 읽거나, 패턴을 자각하여 주식시장을 휩쓸어버리거나 벽을 통과하는 등 보통의 인간이 가질 수 없는 상상할 수 없는 능력을 선천적으로 타고나는 이들의 존재는 처음에는 축복처럼 여겨졌으나 점차로 인간들은 이들을 두려워하고 통제하려하기 시작한다.

 

정부는 아카데미를 세워 타고난 '브릴리언트'를 초기에 통제하려고 시도하고, 타고난 능력으로 뛰어난 범죄자가 될 수 있고 엄청난 테러까지 저지르는 이들을 사전에 통제하기 위해 특수 기구를 설립하고 이들을 쫒기 시작한다.

 

능력이 뛰어날지는 몰라도 브릴리언트도 같은 인간이다. 물론 인간같지 않은 인간임에는 틀림없지만 이들 역시 인간이 가진 모든 약점을 그대로 가지고 있다. 상상해 보라 자신이 사람의 마음을 읽을 수 있다면 이 세상을 살아갈 수 있을까? 자신의 앞에서 친절한 미소를 띈 사람의 생각이 증오로 가득차 있음을 알고 싶지 않아도 알 수 있을때...사람에 대한 신뢰를 가질 수 있을까? 아마도 세상은 지옥일 것이다. 그럼에도 어느 누가 나의 생각을 저절로 읽을 수 있다는 생각이 든다면 그 사람을 피하게 될 것이다. 그게 사람이다.

 

결국 새롭게 등장한 브릴리언트와 평범한 인간 사이에는 골이 패이기 시작하고 인구로 압도적인 다수인 보통사람들은 위대한 보통사람들의 시대를 열기 위해 브릴리언트를 차별하기 시작한다. 약자가 강자를 견제하기 시작하고 강자를 약자로 타락시키는 것이다. 이는 마치 니체의 경구가 현실로 나타나는 듯한 느낌이다.

 

그 싸움은 정말 의미가 있는 것일까?

차별을 위해 권력이 사용하는 방법은 다양하다. 교육에서 감청, 인신구속, 고문... 결국 두려움에 기반한 위협을 상정하고 위험을 사전에 방지하기 위한 모든 수단이 강구된다. 여기에 이 소설이 갖는 리얼리티가 있다. 브릴리언트라는 단어 대신에 사회에 위협을 가한다는 모든 개인이나 단체를 기입하면 이들을 대하는 권력의 대응을 날 것 그대로 느끼게 해 준다는 점이 이 책이 가진 장점이다.

 

재미는 물론이다. 곧 영화로 제작된다고 하니 기대할 만 하다.

허리우드에서 영화로 만들 정도니 결론은...?? 상상에 맡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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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스피 2015-02-09 23: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ㅎㅎ 저도 이 책 막 읽기 시작했는데 상당히 재미있더군요^^

머큐리 2015-02-10 16:18   좋아요 0 | URL
즐거운 독서 되시길...^^
 
박헌영 트라우마 - 그의 아들 원경과 나눈 치유 이야기
손석춘 지음 / 철수와영희 / 201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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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식인다운 외모와 다소 멋쩍어하는 듯한 미소, 눈에 띄지 않을 만큼 주위를 살피는 태도와 침착하고 과묵함. 왠지 무게가 있어 보이는 모습"

러시아 역사학자이자 해방 정국에서 서울 주재 소련영사의 아내였던 샤브시나가 기록한 박헌영의 첫인상이라 한다.

 

남에서는 빨갱이의 수괴로 북에서는 미제의 간첩으로 몰려 남과 북이 모두 지우고자 했던 비운의 혁명가가 있다. 이 책은 남과 북 모두 역사의 질곡을 겪으면서 그 와중에 희생당한 사람. 일제 강점기 내내 굽히지 않고 민족해방에 헌신했던 철저한 공산주의자이자 조선공산당 최고 지도자인 박헌영에 대한 이야기 이다.

 

요즘 젊은이(?)중에 박헌영에 대해 아는 사람이 있을까?

북한을 방문한 경험이 있는 저자 손석춘은 북한의 젊은이들도 박헌영에 대해 알지 못한다는 사실에 충격(?)을 받았다고... 하긴 미제의 스파이로 몰려 총살당한 반동 반혁명분자에 대해 체제가 어떤 정보를 주었을까마는.. 남과 북에서 외면당한 한 혁명가를 추모함은 비틀어진 역사를 바로잡는 하나의 시금석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박헌영뿐이랴... 박헌영과 오랜 동지적 관계를 가진 김삼룡, 지리산 산사람들의 총사령관 이현상...그리고 무엇보다 이 책에서 박헌영의 아들로 태어나 모진 세월을 견뎌야 했던 원경스님까지... 역사의 물줄기를 이토록 험난하게 넘겨야 했던 사람들이 있음을 보며, 격동의 현대사를 견딘다는 것이 어떤 것인가에 대한 새삼스런 감회가 일어났다.

 

미군정하헤서 정치활동을 금지당한 채 북으로 넘어갔지만 김일성의 견제를 받으며 지내다 한국전쟁 후 미제국주의의 스파이로 몰려 총살당한 비운의 혁명가이지만 아직도 남쪽의 일부 사람들은 박헌영의 스파이설을 믿고 있다고 한다. 뭐 북의 말을 믿는 것은 자유지만 제발 역사 공부 좀 했으면 하는 분들이 좀 있다. 그러고 처음으로 박헌영 간첩설을 제기하신 분이 '강철서신'으로 유명한 김영환씨라고... 이분 북에 밀입국까지 하신 주사파지만 현재는 북한에 대한 가장 강한 반대활동을 벌이고 계신 분이다. 극좌와 극우는 통한다는 사실을 온 몸으로 증언하시는 분...

 

샤브시나의 인상과 달리 일제에 의해 체포되어 감금되었을때 자신의 대변을 먹으며 정신병환자 행세로 출감하여 다시 독립운동을 했던 강철같은 혁명가이자 해방 후 가장 유력한 대중정당인 조선공산당의 지도자였던 인물이 이렇듯 역사 속에서 사라져 보이지 않는다는 사실... 이제 빨갱이란 표식으로  지워졌던 수많은 이 땅의 혁명가를 복권시켜야 하지 않을까? 공은 공대로 과는 과대로 투명하게 평가되는 날이 어서 왔으면 하는데...

 

얼마전 통합진보당의 해산결정을 보며.. 아직도 멀었다는 생각이 든다.

 

이 책에서는 원경스님의 기억에 의존하여 새로 밝혀지는 여러 사실들도 있다. 물론 정식으로 역사학계에서 인정하지 않는 부분들도 많이 있다. 특히나 흥미로웠던 부분은 '보천보 전투'에서의 김일성을 부정하고, 북으로 가면 처형 당할 것을 알고 남에 남아서 싸우다 전사했지만 시신 확인이 안되었다는 이현상의 이야기는 흥미롭다. 다만 사실 확인이 안된다는 점이 아쉽다.

 

또 하나 서슬퍼런 박정희 치하에서 박갑동씨가 '중앙일보'에 '내가 아는 박헌영'이란 글을 6개월이나 연재했다고 한다. 이는 박정희가 직접 부탁해서 이루어졌다고 하는데 "해방정국에서 박헌영선생(박정희가 선생이라 칭했다고)의 '8월 테제'를 아주 감명깊게 봤다고 그게 박정희 인생의 세계관이 되었다고 한 증언도 흥미롭다. 전형적인 2단계 민주주의 혁명을 주장했던 '8월테제'에서 군사쿠데타의 원형을 보았던것은 아니었을까? 아는 사람은 다 아는 얘기지만 박정희는 한때 남로당 당원이었다.

 

여러모로 흥미로운 책이다. 질곡의 역사를 살아간 사람들의 이야기는 분노와 함께 슬픔을 느낀다.

아버지의 박헌영의 복권에 대해 저자가 묻자 원경스님은 이렇게 대답했다. 

 

"한마디만 더 말씀드린다면, 아버지(박헌영)의 복권은, 우리 손(석춘)선생님이 어떻게 생각하실지 모르지만, 저는 급한게 아니라고 봅니다. 대신, 남로당 전체, 이름 없이 산화된 그 사람들의 명예를 정말이지 바로 찾아야 합니다. 물론, 박헌영 선생이 복권되면 그것도 덩달아 이루어질 가능성이 많아요. 일단 아버지는 아무리 금기시하고 억압해도 언젠가는 이름 석 자가 나오고, 100년 뒤든 언제가 됐든 학자들 입에서 나오게 되어 있습니다.  (...) 그런데 광복 운동했던 수많은 사람들, 그 많은 사람들이 모두 남로당이 되려고 그렇게 청춘을 불살랐던 것은 아니거든요. 남의 힘에 의해서 우리가 해방을 맞이하고 보니까 모든 게 뒤틀린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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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즈니스
박범신 지음 / 자음과모음(이룸) / 201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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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이 날 것 그대로 현실을 보여준다면...

박범신의 소설을 최근에 읽기 시작했다. 그 전에는 잘 읽지도 않았고 작가에 대한 묘한 편견 같은 것이 있었던 모양이다. 그나마 '은교'와 '소금'에 이어 세번째 소설이다.

솔직히 '은교'도 그렇고 '소금'도 그렇고 중년과 중년을 넘어선 남성의 시각이 굵게 그려진 작품들이라 어떤 점에서는 불편함이 없지 않았다. 그냥 남자의 외로움과 쓸쓸함을 너무 강조하는 듯 해서.. 이 사회에서 힘들여 노동하고도 인정받지 못하는 남성들을 위로하는 듯 해서...

 

'비지니스'에서는 오히려 '여성'의 시각이 두드러진다. 솔직히 여성적인 시각이 두드려져 있는지 모르겠다. 항상 여성에 대해서는 알 수 없다는 것이 내 생각이다 보니 어느 철학자 말대로 모르는 것에 대해서는 침묵을 해야 하므로...그냥 이렇게 정정하련다. 이 소설에서는 여성이 주인공이고 그녀의 독백이 많은 부분을 차지하고 있다고...

 

이제 지금의 시대는 비지니스의 시대이다. 깔끔하게 서로가 서로를 필요한 만큼 요구하는 시대. 그것이 기본적인 관계로 전환되어버린 시대. 그런 시대를 견디지 못하면 도태되어 버리는 시대. 그러한 시대에 대한 자조와 비판이 이 소설의 배경을 이루고 있다. 그리고 이러한 시대를 배경으로 하는 것은 물질적이고 향락적인 발전이다. 어느 도시의 신시가지와 구시가지의 대비는 발전과 저발전의 알레고리일 것이고 이 발전된 도시와 쇠락하는 구시가지의 대비는 현재의 사람들의 가치관이 어느 곳으로 이동하는지를 명백하게 보여준다.

 

그런 비지니스적인 관계가 초래하는 냉혹한 관계에 대비되는 위험한 관계는 사랑이다. 그렇다 노작가에게 구원과 위기는 사랑에서 온다. 시대가 아무리 강요하더라도 인간은 사랑의 열정을 품고 산다. 그것이 위험하다는 것을 알면서도 빠져든다.

 

"알고 보면, 진실로 두려운 것은 사랑밖에 없었다. 주리에게도 진짜 함정은 사랑이었고 내 젊은 날 역시 그러했다. 사랑만이 '비지니스'가 아닌 유일한 것이었으므로, 언제나 위태로운 추락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많았다"

 

그렇게 사랑으로 위태롭게 추락하는 소설의 주인공은 그 사랑으로 인해 새로운 구원을 얻는다. 그것은 비지니스로 유지해야 했던 주인공의 삶이 철저하게 파괴됨으로서 얻어지는 구원이었고 그 권이 진정한 구원일지는 확실하지 않다. 다만, 소설의 말미에는 이렇게 묘사된다.

 

"간간이 바람 소리도 들렸다. 창이 가끔 떠는 소리를 냈고, 그리고 먼 곳에서 바다가 돌아 눕는 소리도 났다. 이곳에 자리 잡은 뒤부터 귀가 더 활짝 열린 모양이었다. 어떤 날 깊은 밤엔 작은 별들이 몸을 뒤채는 소리까지 들리는 것 같았다.

  '지금.... 참 좋아..."

나는 흐뭇해서, 나도 모르게 혼잣소리를 했다"

 

우리는 이것을 구원이라고 해야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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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오기 2015-01-27 23: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박범신...은교 이후엔 읽지 않았는데, 요즘엔 비지니스로 전락하지 않은 사랑도 흔치 않다 생각....ㅠ

머큐리 2015-01-30 19:24   좋아요 0 | URL
바빠서 못 들어왔는데...누님의 반가운 댓글이...^^;;

순오기 2015-01-30 20: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앗~~누님 호칭도 올만이라 겁나게 반갑네요.ㅋㅋ
조만간 서울.인천 갈 잏이 생길듯하니 휘님과 다같이 보면 좋겠네요.^^

머큐리 2015-02-03 09:13   좋아요 0 | URL
되도록 주말에 왕림하여 주시옵소서~~~^^
 
비굴의 시대 - 침몰하는 대한민국 우리는 무엇을 할 것인가?
박노자 지음 / 한겨레출판 / 201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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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나 그랬던 듯 하다. 시대는 변하고 있지만 박노자는 변하지 않았다. 어쩌면 박노자의 글을 찾아 읽는 건 한결같은 그의 마음을 확인하기 위해서가 아닐까하는 내 자신에 대한 의심에서 일 수도 있겠다. 

박노자의 글은 어쩌면 단순하다면 단순하다. 이 사회에서 벌어지는 모든 악과 폭력은 체제에서 비롯된다. 자본주의라는 체제는 그 본성(?)상 어찌할 수 없는 체제이다. 사람들을 경쟁시키고 폭력을 통해 배제하고 비인간화시켜야 작동이 되는 체제이니 이 체제를 어서 바꾸어야 한다. 


어떻게? 

여기서도 박노자의 대답은 한결같다. 사회주의의 실현을 통해서...단순하게 자본주의를 인간화 시키는 것은 한계가 있을 수 밖에 없으니 체제를 전복해야 한다. 그리고 사회주의를 실현해야 하는 것이다. 그 방법은 혁명인 것일까?

실제로 제체를 뒤엎어버리는 방법은 혁명 밖에 없는 듯하다. 그런데 혁명을 해야 한다고 말은 하지만 혁명을 어떻게 준비해야 하는가에 대해서는 여전히 모호하다. 

아니 모호할 수 밖에 없다. 지금의 시대는 혁명이란 말 자체가 어불성설인 시대가 아닌가? 

혁명을 하자고? 미친 놈 소리를 듣거나 낭만적인 이상주의자 딱지가 붙기 딱 좋은 상황일테다. 

혁명따위는 집어치우고 니 앞이나 잘 처신하라고 쏘아 붙일 터다. 역시 자본주의다. 개인의 경쟁력이 최고의 지상과제인 이 시대를 그대로 반영하지 않는가? 이에 대해 박노자는 딱히 대답할 말이 없다. 그저 탄식만 할 뿐....


그러데 왜 박노자의 글을 읽는가? 끊임없이 변주하는 듯 하면서도 동일함을 유지하느 그의 글들을 읽어야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혁명에 대한 다짐을 하려고? 설마... 난 자보주의를 싫어하고 무한경쟁을 도모하는 이 사회를 증오하면서도 감히 혁명이란 말을 꺼내지 못하겠다. 그렇게 순치되어 온 것이다. 이런 나를 깨닫게 만드는 사람이 변하지 않는 박노자다. 그는 등에 처럼 사람등에게 불편한 질문을 던진다. 왜 이 숨막히는 체제를 가만히 놔두고 소소한 일에 분노하느냐고...그런데 정말 숨막히는 체제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얼마나 될까?


박노자에게 지금의 한국사회는 80년대의 혁명적 에너지가 고갈되어 순치된 사회다. 더 이상 타인과 사회에 대한 관심은 잃어버리고 각자도생하기 위해 목숨을 걸고 경쟁에 올인하는 사히다. 자본의 이익을 위해서 민중의 고통과 희생을 도외시하는 사히다. 그럼에도 무엇이 문제인지 모르는 사회다. 더불어 우파적 민족주의와 좌파적 민족주의가 발전에 경도되어 경합을 하는 사회다. 진정한 좌파는 쥐꼬리만큼 남아서 발버둥치는 사회다. 그럼에도 아직 희망이 있는 사회다. 어디에? 이렇게 험하게 굴러가는 사회에, 그리고 이 사회에서 발버둥쳐도 제대로 살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희망을 본다. 그런데 그 희망의 근거는 항상 우리를 좌절케 만든 근거이기도 하다. 


이 책에서 가장 많이 나온 긍정적 단어는 '연대'이다. 그리고 '사회주의'다. 

사회주의에 관한 한 양가적 감정이 들어있다. 이미 백일몽처럼 스러진 현실 사회주의는 사회주의라 할 수도 없지만, 그 나름대로 성취되었던 긍정적인 요소들까지 버려서는 안된다고 주장한다. 스탈린 식 사회주의를 배격해야 하지만 그럼에도 그 정치적으로 부자유스럽던 체제가 보호하는 가치 즉 노동자들의 존업성, 계획경제를 통한 완전고용, 직장에서의 평등과 부와 권력의 세습이 없었던 점 등에 대해서는 적극적인 옹호를 하고 있다. 이건 좀 생각해 봐야 하겠지만, 정치적 자유가 제한된 속에서 이런 긍정적인 가치에 대해 얼마나 평가해야 할지 감은 오지 않는다. 


다만, 모든 사람들이 이구동성으로 이야기 하는 연대의 가치에 대해서는 뭐 별다른 비판을 하지 못하겠다. 연대가 너무 안되서 문제이니.... 특히 시민사회와 노동계급의 연대는 항시 고민의 중심에 서 있을 수 밖에 없다. 계급의 정의가 있다고는 하나 임금을 받고 생계를 이어가는 사람들이 대부분임에도 자신을 노동자로 규정하지 않는 현실을 보면 게급은 사회적 위치에 대한 객관적 조건과 더불어 이른바 계급의식이라는 주관적 깨달음이 통합되지 않으면 나타나지 않는 듯하다. 다만 현재의 언론을 통해서는 계급적 자각을 이루기 힘들다는 점은 말해봐야 잔소리다. 


진부한 듯 새롭다고 해야 하나? 이 체제를 살아가면서 꼭 질문해야 할 문제에 대해 이른바 총정리를 해 두었다고 하자. 다만, 이 시대가 모멸의 시대이자 이제 비굴의 시대임에는 틀림없는 듯하다. 조금만 들여다보면 나타나는 이 혐오스런 감정들이 과잉되는 시대. 단순하게 살아남기를 넘어서기 위해 무엇을 준비해야 할까? 박노자에게 답을 구하지 말라. 다만, 박노자가 말하는 이 사회에 대해 공감했다면, 자신이 무엇이라고 해야 할 일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여기까지 박노자가 안내했으면, 다음은 독자 몫이다. 그리고 박노자는 이런 문제제기를 한 것으로 충분하게 자신의 역할을 한 것 아닐까? 


투박한 듯 날이 서 있는 변하지 않는 견결한 사회주의자를 난 사랑한다. 나와 의견이 같지 않은 부분도 많지만 그래서 더 사랑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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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서비행 - 생계독서가 금정연 매문기
금정연 지음 / 마티 / 2012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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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씨... 책을 읽고 맛깔스럽게 서평까지 써 째끼면서 자신을 삼류라 칭하는 금정연의 글을 읽게 되었다. 이미 책을 읽지 않아도 읽은 척하기 가장 좋은 방법이 남이 쓴 서평을 훝어 보는 방법이 나름 인정된 방법인지라 서평을 즐겨 챙겨보는(?) 편인데.. 스스로 생계형 독서가의 글은 여타의 다른 글과는 다른 쫄깃함이 있다.

 

그건 아마도 그가 생계를 위해 글을 써야 하는 직업을 가진 사람이고, 한때 어딘지는 몰라도 (겉 표지에 알라딘이라고 나와 있군) 인문분야 MD 출신이라는 점 때문일지 모르겠다. 아무래도 책과 가장 가까이 지내면서도 독서는 독서고 일은 일일뿐인 세상을 겪어 나오면 이런 쫄깃한 생계형 서평이 나오는 모양이다.

 

금정연의 서평이 얼마나 좋으냐면... 내 경우 서평을 읽고 책을 골라서 보는 경우가 간간이 있긴 해도 이 책에서 다룬 책들을 모두 읽어야 할 것 같은 느낌은 처음이다. 그가 펼쳐 놓은 향연에 얼마나 동참할 수 있고 즐길 수 있는 지와 상관없이 그냥 그렇다는 거다. 그렇게 한참을 낄낄 거리면서 고개를 주억이게 하는 서평의 향연이 펼쳐져 있다.

 

어떤 작품에 대해서는 책에 대한 이야기는 없다. 그 책을 읽고 난 후의 자신의 변화(?)나 감상만 남아있는 경우도 있다. 그거야 책을 분석하는 것이 서평일지 몰라도 그 책을 읽고 변화하는 것이 진정한 서평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절묘하게 맞아 가는 감상이 일품이다. 심지어 금정연식 글쓰기를 한번 시도해 보고싶은 생각까지 들게 만든다. 이 저자가 글을 쓰며 날리는 풍자와 조크를 따라잡기는 버겁겠지만... 어쩌겠는가 이런식의 서평을 하나 정도는 써보고 싶다는 욕망이 치솟는 걸...

 

남들이 뭐라하건 난 이 책을 통해 서평을 다시 써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읽은 책이 부족하고 그 깊이가 부족해도 오히려 그게 새로운 시각이 되는 서평을 낄낄거리며 농담하듯이 차곡차곡 쌓아두고 싶은 것이다.

 

이제 쌓아둔 책도 모자라서 서평까지 쌓아가고 싶은 욕망을 부추키는 이 시대 생계독서가이자 매문가인 금정연을 원망하노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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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해한모리군 2015-01-14 08: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금정연님은 글을 정~~~~~말 잘쓰죠? 저도 읽어보고 싶네요.

머큐리 2015-01-14 11:13   좋아요 0 | URL
금정연님 글 만큼 보고싶은 휘모리님...ㅎㅎ
잘 지내고 계시리라 믿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