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럼독 밀리어네어 - Slumdog Millionaire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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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영종료


먼저 작년에 소설을 읽고, 영화를 보았다....글쎄 아카데미 상을 휩쓸었다기에 소설만큼의 기대를 안고 봤지만....헐리웃식의 변주는 아직도 나에게는 영 불편한 모양이다. 퀴즈쇼에서의 퀴즈들은 사실 지식을 겨루는 장은 아니다. 오히려 단편적 상식과 운이 따라야 성공할 수 있는 세계가 퀴즈의 세계이고 이 영화는 이 점에 대한 많은 강조점을 두고 있다.  

학교도 제대로 못나오고....교환원 보조나 하는 주인공이 어떻게 퀴즈영웅이 되고 백만장자가 될 수 있는가는 오로지 그 사람의 인생과 연결되어 있는 단편적 우연의 중첩일 뿐이다. 소설과 영화에서는  주인공의 삶의 체험이 결국 퀴즈쇼의 승자가 되는 배경으로 작용하고 있지만....영화는 사랑에 방점을 두고 있는 것 같고 (지긋지긋한 헐리웃 식 낭만적 사랑의 승리?) 책에서는 생존하고자 하는 삶에 대한 긍정에 오히려 방점을 두고 있는 것 같다.  

현실의 퀴즈와 과거의 경험을 교차점으로 진행되는 과정에서 퀴스를 풀어내는 주인공의 비밀이 하나씩 벗겨지는데.....영화는 극적인 요소의 차용을 사랑하는 여인에게 두고 있다. 여성이 모든 걸 구원할 수 있는 것일까....오히려 영화 초반에 나타난 빈곤의 굴레와 그것을 벗어나기 위한 몸부림은 후반으로 갈 수록 점점 더 약해지고.....돈이 전부라 아니라는 여자 주인공의 말에서는 오히려 빈곤의 문제가 인생에서 더 큰 문제가 아니라는 듯한 느낌마저 들어 좀 황당한 느낌이.... 

빈곤이 문제가 아니라면 무엇이 문제였던 것일까..... 그들이 부모를 잃고, 헤어져야 하고, 폭력단에 걸려 불구가 될 뻔하고, 교육도 제대로 받지 못하고, 강제로 헤어져야 했던 모든 일련의 사건뒤에 빈곤이라는 원죄가 있음에도 불구하고.....빈곤을 제대로 보지 못하게 하고...빈곤 자체가 슬럼화된 도시를 배경으로만 거론된다면 문제의 해결점은 보이지 않는다. 오히려 빈곤함으로 인간성의 극단까지 파괴되는 군상들의 모습을 제대로 보여주진 못한 것이다. 빈곤이 싫어서 모든인간성까지 버려야했던 형까지 동생을 위해 목숨바치는 거룩함까지.... 

결국 서구의 눈에 비친 인도의 빈곤은 그렇게 아름답게 승화되기 위한 하나의 배경에 지나지 않은 것일까...여기에서까지 오리엔탈리즘을 느껴야 하는 것이 많이 아쉽다....그래서 오히려 영화보다 소설을 추천하고 싶다. 그냥 읽으시라....영화보다 훨씬 나을테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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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이트 클럽 - [할인행사]
20세기폭스 / 2008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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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스틸이미지 

-난 매일밤 죽었고, 매일밤 다시 태어났다. .. .. 새로운 부활 -

still #4  

- 기름 넣어주고 웨이터생활을 하면서, 먹물들의 노예로 살고 있지. 우린 필요도 없는 고급차나 비싼 옷을 사겠다고

   개처럼 일한다. 우린 목적을 상실한 역사의 고아야. 2차대전도 공황도 겪지 않았지만 정신적 공황에 고통받고 있다.

   tv를 통해 우리는 누구나 백만장자나 슈퍼스타가 될수 있다고 상상하지, 하지만 현실을 그렇지 않다는걸

   깨달았을때, 우리는 분노할수밖에 없다.
still #9 

 돈이 다가 아니야, 직업이 다가 아니야, 무슨 차를 타는지, 지갑이 얼마나 두둑한지, 그딴건 상관없어. 우린 움직이는 쓰레기다.   

자기가 사는 일상이 지겨운 사람이 있고 그 일상을 극복해 내기 위해 야생으로 복귀한다. 파이트클럽은 야생으로 복귀한 지킬박사의 이야기 이다. '지킬과 하이드'의 배경이 인간 본성에 대한 탐구였다면 '파이트클럽'은 사회적 본성에 대한 탐구일 수 밖에 없는 요인들이 있다.  

자본주의적 물질문명에 대한 냉소, 자기개발에 대한 조소, 직업이나 일상에 대한 거부...그리고 사회에서 소외받은 자들의 맹목적 헌신성....하나의 싸움 클럽이 테러리스트화 되어가는 과정이 매우 드라마틱하게 보일 수 밖에 없다. 단, 그들의 목표가 뚜렸하지 않고 '쓰레기'스럽다는 것이 안타까울 뿐이지만.... 

저항의 맥락은 여러가지가 있을 수 있다. 단지 담대해지고 내부적으로 강함을 느끼는 원시적 승리감에서 사회에 대한 조직적 테러로 진행한다 하더라도, 사회에 대한 분노에는 일정한 배경이 있을 수 밖에 없을 것이다. 영화에서 제일 안타까운 부분이 바로 배경에 대한 성찰이 보이지 않는 다는 것. 오히려 후반으로 갈수록 '하이드'의 악함을 반성하는 '지킬'의 모습이 오버랩되면서 영화는 하나의 부르조아적 휴머니즘으로 회귀한다. 

마지막 자신이 막으려는 테러가 실현되는 장면으로 영화는 마치지만....그것은 테러를 계획하고 실행했던 주체가 원했으면서도 막으려는 것이였고, 결국 원하지 않은 결말이기에 영화의 이중성이 드러난다고 봐야 한다. 옳다 그르다의 문제가 아니라 폭력에 대한 하나의 성찰로 봐야 하는 것이지는 모르겠지만, 폭력의 사회적 맥락으로서는 이 영화는 분명한 한계를 보이는 것 같다.  

단, 영화를 이끌어 나가는 에드워드 노튼과 브레드 피트의 연기는 압권 그 자체라는 것...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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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을 생각하다
파트리크 쥐스킨트 지음, 강명순 옮김 / 열린책들 / 2006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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즉 우리가 사랑에 대한 생각을 덜 할 때에는 그것이 확실해 보이는 반면, 막상 사랑에 대해 고민을 하기 시작하면 그때부터 우리는 점점 더 커다란 혼란에 빠지게 되는 것이다-11쪽

<정확하게 - 알지-못함>, 즉 <도데체-나는-그것이-무엇인지-모르겠다>는 사실이 바로 사람들로 하여금 붓이나 펜, 혹은 악기를 집어 들도록 만드는 가장 원초적인 동력이 된다 -12쪽

어쩌면 오늘날에도 에릭시마코스처럼 사랑을 효소나 호르몬, 혹은 아미노산의 영향으로 발생하는 무수히 많은 현상들 둥의 하나로 정의하는 사람이 있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그런 정의는 우리에게 아무런 의미가 없다. 생산적이지 못할 뿐만 아니라 아무것도 해명해 주지 않기 때문이다. -14쪽

소크라테스는 [파이드로스]에서 도취를 사랑에 빠진 상태로서, 병이자 광기라고 표현했다. 하지만 그것은 나쁜 도취가 아니라 이 세상에 존재하는 도취 중 가장 좋은 것이기 때문에 해로운 질병이 아니라고 했다. -15쪽

에로스는 위대한 마귀(daimon)로서 인간과 신의 중간자적 존재, 인간으로 하여금 자신에게 결핍된 것들에 대해 갈망하도록 만드는 그런 존재이다. 즉, 에로스는 아름다움이나 선함, 행복이나 완전함, 심지어는 불멸같이 신만이 가진 특성을 동경하도록 만든다. 사랑에 빠진 사람들은 그런 신적인 속성들이 연인에게 투영되어 있는 것을 본다. -16쪽

사랑을 배설물과 확실하게 구별해 주는 것은 뭘까?-17쪽

플라톤에 의하면, 바보들은 그들 자신에게 만족하고 있기 때문에 아름다움이나 선함, 혹은 성스러운 행복을 추구하지 않는다. 현명한 사람들 역시 이미 그 모든 것을 소유하고 있기 때문에 그런 것을 추구하지 않는다. 그러니까 단지 중간에 있는 사람들, 바보나 현자의 중간에 있는 사람들만 그것을 추구한다. -22쪽

사랑을 포기하려는 시도는 포기의 성공 여부에 관계없이 그 사랑이 사소한 것, 아무것도 아닌 것이라는 사실을 입증해 주는 것이다. -35쪽

사랑은 언제나 이성의 상실, 자포자기, 그로 인한 미성숙함이라는 대가를 치러야만 하는 것이다. -38쪽

사랑에 빠진 한 쌍의 연인은 자주 사회적으로는 이방인이 되는 경향이 있다.
사랑에 대한 이 모든 언급은 기이하고 당황스럽다. 왜냐하면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사랑은 인간이 줄 수 있고, 인간에게 일어날 수 있는 가장 좋은 것이자 가장 아름다운 것이라는 사실을 인정하고 있기 때문이다. 또한 사랑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간이 실행할 수 있는 가장 위대한 것, 가장 고귀한 것을 할 수 있도록 만들어 주기 때문이다. -3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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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로크백 마운틴
애니 프루 지음, 조동섭 옮김 / Media2.0(미디어 2.0) / 2006년 3월
구판절판


일 킬로미터도 채 못 가 에니스는 누군가가 내장을 손으로 한 번에 일 미터씩 끄집어내는 듯한 아픔을 느꼈다. 그는 길옆에 멈춰 섰다 눈송이가 소용돌이치는 속에 토하려 들었으나 아무것도 나오지 않았다. 여태 이렇게 기분이 더러웠던 적은 없었고, 다시 기운을 차리기까지는 한 참이 걸렸다. -328쪽

셔츠가 어쩐지 묵직했다. 그때 에니스는 잭의 셔츠 안에 셔츠가 하나 더 있음을 알았다. 잭의 소매 안에 조심스레끼워져 있던 또 다른 소매는 에니스의 체크무늬 셔츠였다. 오래전에 빌어먹을 어느 세탁소에서 잃어버렸겠거니 생각했던, 주머니는 뜯겨나가고 단추는 떨어진 더러운 셔츠. 잭의 셔츠가 두겹의 피부처럼 한 쌍으로, 한 셔츠가 다른 셔츠 속에 안긴 채 둘이 하나를 이루고 있었다.-353쪽

그는 아는 것과 믿으려 했던 것 사이에는 간극이 있었지만 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었다. 그리고 고칠 수 없다면 견뎌야 한다. -35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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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의 밥상 - 농장에서 식탁까지, 그 길고 잔인한 여정에 대한 논쟁적 탐험
피터 싱어.짐 메이슨 지음, 함규진 옮김 / 산책자 / 2008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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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자기 정권이 바뀌고 통상정책이 바뀌면서 세상이 시끄럽다... 교육, 대운하 등 여러문제가

중첩되어 시끄러운 것이겠지만, 누가 뭐래도 미국산 쇠고기 수입은 용납할 수 없는 문제로

대두되는 시점이다.

그 이유야 우리나라뿐 아니라 어느 나라, 어느 민족도 마찬가지겠지만, 먹는 거 가지고 장난

치는거 좋아 할 사람 하나도 없다. 차라리 잘된 것이 쇠고기 논쟁으로 먹거리에 대한 총체적인

사고를 할 수 있는 단초가 제공되고, 이로 인해 현재 우리가 누리는 음식문화에 대한 총체적이고

근본적인 질문을 할 수 있게 된 것이 그나마 위안거리라고 할까 (문제는 총제적 문제 검토와 상

관없이 미국산 쇠고기 정확하게 말하면 공장사육형 쇠고기가 곧 들오온다는 거지만....)

먹고 즉는 거 아니면야 무슨 논쟁거리냐고 쉽게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겠지만, 먹는 음식이

외관과는 다르게 쓰레기라면, 먹고 당장은 아니라도 길게는 10년 이후에 죽을 수도 있다면,

싸고 맛있어 보여도 실제로는 환경 오염과 건강을 해치는 비용을 감수해야 한다면 과연 그

음식이 우리가 그토록 신성시 하는 자본주의적 합리성과도 맞지 않을 것인데 왜 몇몇는 기를

쓰면서 그 쓰레기를 수입하려 하는지 의문이 들 수 밖에 없지 않을까.....

이 책을 읽고 나서 '잡식동물의 딜레마'를 읽고 있는데, 음식문화에 대한 총체적 비판의 틀은

비슷해보인다. 그러나 이 책이 지닌 도발적 논점이 하나 있는데 바로 '종차' 즉 동물차별에

관한 사항되겠다. 우리의 육식이 과연 윤리적으로 정당한가, 또는 동물의 고통에 기반한 먹

거리 문화는 과연 윤리적으로 정당한지가 논점이 되겠다.

난 채식주의자도 아니고, 사대적 개고기 식용 반대주의자도 아니며, 고기는 그냥 생각없이

그때 그때 먹는 사람이라 사실 육식에 대한 윤리적 문제제기는 너무나 먼 이야기처럼 보이는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세상의 모든 발전이 초기에 다 멀리 보이는 문제였고, 지금 당연시 되는

인종차별이나 성차별의 해소도 사실 100년도 안된 시간이라는 점에서 보면, 어쩜 마지막 남은

차별인 '종차별'에 대한 논의는 당장 시급하게 다가오는 문제일 수도 있겠다. 더구나 화석연료에

기반한 음식문화의 개선과 연계하면 정말 뚜렸하게 시급한 문제일 수도 있을 것이다.

자 여기서 미국산 쇠고기는 먹지 말아야 하고, 동물에 대한 윤리적 태도를 견지하려면 채식주의자

가 되는 것이 가장 윤리적이라는 저자의 주장에 대해 정말 진지하게 고민해 봐야 하지 않을까?

음식이 우리의 정체성을 규정한다면... 우린 정말 어떤음식을 어떻게 먹고 있는지 알아야하고

그 사실에 기반하여 태도를 정해야 하지 않을까?

단, 어떻게 결론내리던 싸고 맛있는 미국산 쇠고기는 결국 쓰레기라는거 미국 사람이 이렇게

선명하게 보여주니 무조건 이번 쇠고기 수입은 막아야 할 것이다.

단, 정말 국가와 민족의 발전을 위해 어쩔 수 없이 협정하고 목숨바쳐 미국산 쇠고기만을 먹을

각오로 청와대와 한나라당이 결단한 것이고, 향후 수입된 미국산 쇠고기만 먹겠다면....

그 진정성이야 이해하겠다. 그러나 거기에 대다수 국민을 끼워넣는다면 도데체 누구를 위한

발전인지 애매할 것이고, 지들이 그렇게 괜찮다고 주장해도 우리 농민을 위한다며, 비싼 한우만

먹을텐데 그 꼴을 보면 속이 뒤틀려서 어찌 살것인지 고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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