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차 희망버스에 몸을 싣고 부산으로 내려갔다. 인천에서 2시에 출발...빡빡한 일정이라 중간에 휴게소 한번 들렸다가 내려간 부산은 그야말로 폭우가 쏟아져 내리고 있었다. 그 폭우 속에 모인 많은 사람들...
문화 공연이 끝나고 한진중공업까지 행진해서 걸어갔다. 도로 한편을 꽉 메운 사람들의 행렬.
장대비가 쏟아지는 밤중에 한 차선을 점거한 사람들의 행진에 부산시민들은 많이 불편했을까? 불편했으면 좋겠다. 그 불편으로 인해 왜 이 많은 사람들이 전국에서 모여서 자신들에게 불편함을 주고 있는지 궁금해하고 186일 동안 홀로 고공 크레인에서 농성하는 한 여성 노동자의 싸움을 알 수 있을테니...
1차 희망버스가 진행될때만 해도 난 감히 부산까지 내려갈 생각을 못했다. 개인적 일상사도 그렇고 주변에 참가하는 사람들이 같이 가자고 권하기도 사실 부담스러운 일정이기에 적극적으로 권하는 사람도 없었다. 그런데 이번에 참석하지 못하면 뭔가 후회할 것 같았다. 1차 희망버스가 소금꽃에게 희망을 주었다는 소식에 나도 그녀에게 조그만 희망을 선물하고 싶었다. 그녀의 싸움에 나도 지지한다고 이야기해 주고 싶었다. 그래서 개인신청으로 2차 희망버스 모집에 신청했다.
내가 탑승한 버스는 주로 개별적으로 신청한 사람들이 모인 버스였다. 모르는 사람들과 같이 장시간 여행하기위해 짧은 소개들이 있었고, 개별적으로 신청한 대부분의 사람들의 공통된 정서는 '후회'와 '희망'이었다. 이런 자리라도 같이 하지 못하면 후회할 것 같은 느낌과 나라도 가면 소금꽃에게 희망을 줄 수 있으리란 기대... 그것이 전부였다. 그리고 한 버스안의 우리들은 너무도 김진숙을 보고 싶어한다는 것을 느꼈다.
부산에 도착해서 쏟아지는 빗줄기 속을 걸어가면서도 난 한치도 그녀를 볼 수 없다는 생각은 해본적이 없었다. 경찰의 차벽이 나타나고 행진이 멈춰진 후에야 난 알았다. 저들은 소금꽃에게 더 이상의 희망을 용납하지 않으리라는 사실을... 그 사실을 깨닫는 순간 분노가 치밀었다. 도대체 왜 인간에 대한 애정이 권력에 의해 막히고 비틀려야 하는가? 회사를 뒤집으로 가는 것도 아니고 거기에서 저항하는 인간에게 힘을 실어주고 긴장된 싸움에서 잠시 벗어나게 어울리기 위해 가는 것도 불법과 폭력의 이름으로 권력은 거부했다. 그렇게 완강하게 거부하는 권력에게 항의하고 또 항의했다. 그 항의의 댓가는 쏟아지는 물대포였다. 최루액을 얼마나 많이 넣었는지 짐작도 하지 못할 그 물대포에 사람들의 바램은 멈춰져 버렸다. 아니 50여명이나 되는 시민들이 잡혀 갔다.
비는 쏟아지다가 그치고 그쳤다가 간간히 내리고....새벽에 경찰의 진압에 밀린 희망버스는 소금꽃을 보기위해 그녀와 함께 농성하고 있는 노동자들을 보기위해 많은 노력을 했지만 경찰의 차벽은 완강하기만 했다. 새벽 4시... 하나 둘씩 졸음에 겨워 노상에서 눕는 사람들이 생기고 아침이 다가오는 순간에 많은 사람들이 앉거나 누워서 잠을 청한다. 최루액에 살갖이 따가와서 어디 한군데 씻을데도 마땅치 않은 부산의 도로에서 ... 모든 악조건 속에서 사람들은 버티고 있었다. 어떻게든 저 벽을 넘어 그녀를 만나러 갈 희망에 도로에서 버티고 또 버텼다. 아침이 밝아오니 비는 그쳤지만 햇살이 장난이 아니다. 살갖을 태울듯하게 내리쬔다.
오전에 긴급 기자회견을 가지고 경찰에게 2가지를 요구했다. 잡혀간 사람들의 석방과 김진숙을 만나기 위한 평화적 집회의 보장. 희망버스는 원래 10일 오후 2시까지 일정이 잡혀 있었다. 경찰과 협상한 결과 30명의 대표자만 방문을 허락하겠다고 했단다. 잡혀간 사람들은 검찰 소관이라 풀어주는 문제는 자신들의 능력 밖이라고 했단다. 결국 전국에서 올라온 사람들 중 몇명만 허용하는 만남은 거부했다. 그리고 다시 다짐했다. 더 많은 사람들을 데리고 부산으로 오겠다고... 경찰이 도저히 막을 수 없을 만큼 많은 사람들을 데려오겠다고 다짐하고... 부산을 떠난다.
경찰과 협상하면서 기다리면서 많은 프로그램들이 진행되었다. 노래를 발언을 춤을.... 하지만 육신의 피곤함을 이기긴 힘들었다. 저녁부터 새벽까지 경찰과 대치하면서 체력적으로 많이 힘들었고 막상 갈길이 막히니 심적으로도 허탈했다. 빗속에서 땡볕 아래서... 육신의 고단함을 느낄때 난 소금꽃의 심정을 만분의 일 정도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사방이 용역과 경찰에 둘러싸여 한 사람 정도 누울수 있는 고공의 공간에서 전기도 끊어진 어두움 속에 비 바람이 불고 뜨거운 햇살에 익을 것 같은 순간이 얼마나 많았을까? 그녀는 어떻게 무엇으로 이겨 나갔을까? 무박 2일의 짧은 시간의 고통도 이러할진데 그녀가 가지는 고통의 무게는 얼마만큼일런지... 그리고 해고된 노동자들의 고통은 또 얼마만큼일런지...
이제 우리가 대답해야 한다. 소금꽃과 한진의 노동자에게 쌍용과 콜트와 유성과 그 밖의 비정규직이라는 굴레와 멍에로 고통받는 사람들에게 정리해고란 이름하에 벌어지는 살인행위에 대해 우리가 대답해야 한다. 소금꽃은 싸움은 이 사회에 대한 되물음이다. 돈이 먼저인지 사람이 먼저인지에 대한... 인간의 야만성과 인간의 신뢰에 대한 물음이다. 그 물음에 우리는 답해야 한다.
아침에 신문을 검색하다 유독 희망버스 기사 밑에 악의적인 댓글들이 많은 것을 보았다. 그만큼 저들이 불안해 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희망버스가 제대로 달리고 있다는 생각이다. 그래 저들이 불안해 하니 소금꽃을 못 봤다고 섭섭해 할 필요는 없을 것 같다. 이번에 못봤으면 다음에 보면 되니까... 다음에는 더 많은 사람들과 보면 되니까... 그때까지 소금꽃이 무사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