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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보'라는 말을 너나 없이 가리지 않고 사용하다 보니 그 말의 원뜻까지도 알 수 없는 상황이
되어버렸다. 신자유주의자들까지 '진보'를 들먹이는 시대에 진보라는 가치를 가늠하는 기준은
무엇일까? 

홍세화의 칼럼은 '진보'라는 기준점을 다시 한번 생각하게 한다.
사회에서 가장 최하위층을 배려하지 않는 '진보'라는 것은 가당키나 한 것일까?

 www.hani.co.kr/arti/opinion/column/439443.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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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철나무꾼 2010-09-13 12: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렇기에 더욱 오늘 통합을 주장하는 진보 정치인들은 무엇을 위해 누구와 통합할 것인지 분명히 밝혀야 마땅하다. 조직되지 않은 비정규직 노동자들이고 그래서 표로 계산되지 않는다는 이유로 그들 편에 서지 않는다면 진보는 거추장스런 구호에 지나지 않는다.


저도 주먹 불끈 쥐고 읽었어요.
홍세화 님 글이 점점 응축되어 가고 있는 것 같아요~^^

마녀고양이 2010-09-13 13: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홍세화 님의 책에 홀랑 빠졌던 때가 기억납니다.

요즘 들어, 중도라는 이름으로 민주당을 지지한 제가
얼마나 순진한가에 대해서 생각합니다. 그렇다고 진보란 이름을
잘 알지도 못 하니, 그저 헤매고 있는 중입니다. ^^
 

냉철하게 생각하자 

천안함으로 무엇을 얻고 무엇을 잃고 있는지.... 

www.hani.co.kr/arti/opinion/column/426538.html 

 

참여연대는 “천안함 사건의 철저한 조사와 평화적 해결”을 요구했을 뿐이다. 그러나 우익단체들과 수구언론들에게 마녀사냥의 표적이 되고 있다. 다시금 프리모 레비의 말을 되새기는 마음이 편할 리 없다. “괴물이 있긴 하다. 그러나 그 수가 많지 않아 그리 위험하지 않다. 실제로 위험한 것은 의문을 품지 않고 무조건 믿고 행동하는 평범한 기계적 인간들이다.”  

(...................) 

천안함 사건을 기해 이명박 정권과 수구세력은 ‘북한 주적론’을 강화하면서 미국이 갖고 있는 전시작전권을 환수할 시기를 더 연기할 것을 주장한다. ‘북한 주적론’은 전시작전권을 환수했을 때라야 그 구체성이 있음에도 ‘북한 주적론’을 강화하는 한편 전시작전권 환수의 연기를 주장하는 모순이 무엇을 말하는지 우리는 정확히 알아차려야 한다. 그것이 북한을 중국 대륙에 밀어붙여 북한의 중국 종속을 심화시킬 뿐만 아니라 내부로 향한 칼날로 작용한다는 점을 주목해야 한다는 것이다. 단지 의문을 품고 진실을 요구하는 것만으로 간단하게 이적행위로 몰아붙일 수 있는 배경이 다른 데 있지 않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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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ephistopheles 2010-06-21 18: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무리봐도 천안함이 점점 부비트랩화 되어가고 있는 모양을 보입니다. 걸리면 모두 이적단체 이참에 바른소리 하는 단체 모조리 빨갱이로 몰아서...하고도 남을 정부다 보니..
 

 한겨레 2010년 3월 24일 

www.hani.co.kr/arti/opinion/column/411835.html

삼성권력은 선출된 권력이 아니다. 그러나 이미 국가를 장악했다. “권력이 시장에 넘어갔다”는 노무현 전 대통령의 말은 참여정부 역시 삼성의 손아귀 안에 있었다는 뜻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삼성권력 앞에서 검찰은 물론 특검도, 국세청과 금융감독원도, 국회와 사법부도 법과 정의의 실현을 요구하는 국민의 ‘혹시나’ 기대를 ‘역시나’로 하나하나 배반했다. 모두 존재 이유를 스스로 부정한 것이다. 이명박 대통령은 이건희 총수 개인을 특별사면함으로써 ‘국가는 자본의 청지기’라는, 비판적 국가론에서 일찍이 제기된 명제를 분명히 확인해 주었다 

도둑질 과정을 한번 무사히 통과한 도둑은 더욱 과감해진다. 앞으로 삼성 경영진의 불법과 비리, 회계조작과 탈세, 그리고 노동착취는 더욱 거칠 게 없을 것이다. 노동조합조차 없는 삼성자본의 무소불위에 맞설 수 있는 힘의 원천은 소비자밖에 남아 있지 않다.

(..........................) 

진짜 싸움을 벌일 때 역사는 진화한다. 그동안 근대성을 주로 강조해온 나 자신부터 스스로 다짐해야겠다. 자본권력과의 싸움, 그 정점에 있는 삼성권력과의 싸움을 회피하면서 노동운동은 물론 복지와 분배를 말하지 말자. 사회진보나 민주주의 성숙을, 생태, 양성평등, 참교육, 소수자 인권을 말하지 말자. 그건 다만 알리바이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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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ww.hani.co.kr/arti/opinion/column/378165.html 

그러나 용산은 일그러진 우리 사회의 자화상이며, 우리가 반민주주의, 반인권에 맞서 싸워야 할 최전선이다. 이 선을 넘지 못하면 어느 부문에서도 앞으로 나아갈 수 없다. 정부가 사과할 때까지, 수사기록 3000쪽을 공개할 때까지, 참담하게 희생된 분들의 넋을 조금이라도 달래고 유가족의 한을 풀 수 있을 때까지 우리는 용산을 말해야 하고, 용산을 말하기보다 용산을 찾아야 한다. 말보다는 행동으로, 입보다는 몸으로. 작년 촛불광장에서 만났던 우리가 용산에서 다시 만날 수 있다면…. 작년에 이명박 정권을 고개 숙이게 한 것은 말이 아니라 촛불의 힘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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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세화 칼럼 [한겨레 2009.08.26] 

www.hani.co.kr/arti/opinion/column/373109.html 

 

분명 나쁜 정당, 나쁜 신문이지만 다수가 그들을 멀리하기는 쉽지 않다. 윤리적 소비가 그렇듯이 한 사람 한 사람이 양심의 부름에 따라 불편함을 선택할 때 그 길이 조금씩 열릴 것이다. 그런 사회 구성원은 앞으로도 소수에 머물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지금까지 수많은 사람들이 희생을 무릅쓰면서까지 싸워왔는데 이 정도밖에 인간적인 사회를 이루지 못했나”라고 말하는 대신 “이나마 덜 비인간적인 사회를 이룩한 것도 소수의 사람들이 끊임없이 애쓴 결과다”라고 말해야 한다. 단 한 사람이라도 좌절, 절망, 한탄에 빠져선 안 되기 때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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