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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육박람회'가 된 초대형 학회…교수 주도 진보정치는 필패 

그저께 미국에서 어느 지방 주립대에서 교수를 하는 한 동료 분을 만났습니다. 서로 전공하는 분야가 흡사해 한 번 미주의 큰 학회에서 공동의 분과를 꾸며볼까 해서 동료 분에게 제안을 해봤지요. 그 동료 분은 일단 해보자고 긍정적으로 답한 다음 약간 더 생각을 덧붙였습니다:

그런데 말이지 나는 (전미)아세아학회 대회와 같은 거대형 학회가 비상히 싫어요. 어느 누구의 말대로 "인육의 박람회" (meat fair) 같은 것이지요. 젊은 학자들이 거기로 가는 게 학문을 논하러 가는 줄 아슈? 천만의 말씀, 권위자들에게 잘 보이려 가는 것이고, 아부하러 가는 것이지요. 뭐, 그걸 안하면 되는 게 있어야지요. 임명부터 정년 보장 심사 받는 일까지 말씀에요.

인육의 박람회

사실, 저도 미국에서 이와 같은 부분을 대략 눈치 챈 바 있어 새로운 이야기가 아니었는데, 당사자한테 그 솔직한 심정을 들으니 그 소회도 좀 달랐습니다. 권위자에게 '보인트'를 따면서 사는 모양이 본인도 피곤해 죽겠는데, 이것은 세상의 '혼네', 즉 본질이라는 게 그 심정이었던 것 같았습니다.

대체로 국내에서도 큰 학회에서 젊은 학인이 중진, 원로들 앞에서 논문을 발표하는 걸 '신고식'이라 하고 그 때와 그 다음 술자리에서 처신을 잘 하면 나중에 재미를 많이 보고, 잘 못하면 재미가 별로 없는 걸로 알지요.

그런데 국내 인문학 같으면 '문중' 식으로 발전돼 일단 지도 교수와 '문중' 선배들이 잘 챙겨주기만 하면 '문중' 바깥에서 굳이 억지로 '구애'를 하지 않아도 그리 살 만할 수도 있지요. 일본도 마찬가지입니다. 이와 달리 미국에서는 지도교수는 'doktor vater'형이 아니고 '챙겨줄' 도덕적 의무도 없고 하니까 각종의 '시혜자'들을 찾는 데에 더 많은 공을 들여야 하는 판입니다.

모양은 각각 다르지만 논리는 하나입니다. 사적인 관계의 힘에 호소하지 않는 이상 공적인 신분 상승이 불가능하고, 사적인 사회 자본의 축적만이 공적인 신분을 보장해준다는 논리입니다. 이건 대부분의 경우에서 계급 사회 안에서의 신분 이동 법칙에 해당될 거에요.

사적 사회 자본의 축적

이 법칙은, '지배 계급의 음모'라기보다는 오늘날 자본주의 사회의 역사적인 발전 경로와 관련이 있는 것이지요. 그 모태인 봉건사회에서 영주와 가신의 사적인 복속 관계는 바로 가장 중요한 공적인 관계망을 동시에 이루는데다 자율 도시에서도 상인, 장인 사회에서의 계급 질서는 철저한 도제식의 피라미드에 의존했어요.

자본주의 국가의 직접 전신인 절대 왕권 국가에서는 귀족사회란 혈연과 각종의 후견-피후견 관계로 철저하게 얼키고 설킨 곳이었으며 왕, 황후, 왕자와의 개인관계야말로 '신분상승'의 관건으로 통했지요. 부르주아 혁명은 일단 관념상 근대적 '공적 영역'의 탄생을 의미했지만 약 70년 전의 영국에서만 해도 특정 public school (귀족 기숙 학교) 색깔의 넥타이를 매지 않는 이상, 즉 '출신 고교 선후배 집단'의 힘에 의존할 수 없는 이상 어디를 가서 사람 노릇하기가 아주 힘들었지요.

결국 '공공성', '합리성'에 대한 오늘날의 욕구란 1950-60년대 고등교육 대중화, 공공영역 확장 이후에 가능해진 것이지요. 그런데 특히 보수성이 강한 학계에서는 지금도 후견-피후견, 추천-피추천 관계를 떠나서는 그 미시적 정치학을 논하기가 힘들지요.

"교수 주도의 진보 정치는 필패"

'음모'가 아닌 역사적인 부르주아 사회 발전의 합법칙적 결과지만, '개인 네트워크 확보 필요성'이란 기득권층에 참 편리한 사회 운영 조건입니다. 대체로 '인육의 박람회'에서 한 번 '권위자'에게 잘 보이려고 노력한 경력이 있는 사람이라면 나중에는 그 신념은 어떻게 되든간에 급진적 행동을 잘 못할 것입니다.

행동이란 생각에 의해서 이루어지는 것보다는 몸으로 훈습된 바에 의해서 이루어지는 것인데, '복종 훈련'을 많이 받은 몸은 그 다음에 반항을 많이 못하지요. 그리고 (저를 포함해서) 교수사회에서 후견-피후견 관계의 경험이 없는 사람이란 존재하지도 않고 존재할 수도 없기 때문에 교수사회란 어디까지나 본질적으로 보수적이지 않을 수 없지요.

그 일부 구성원의 신념적 지향은 진보적이라 해도 그 전체의 아비투스가 또 다르단 말씀에요. 그래서 진보정당 등의 관계자들에게 하는 이야기지만, 제발 교수를 지나치게 믿지 마시기를 바랍니다. 적절히 활용하고 아이디어 등을 받으시면 되지만 교수 주도의 진보 정치란 필패의 정치입니다. 노조에서 현장 투쟁의 유경험자들이 주도하는 게 제일 나은 듯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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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이] 2009-08-04 00: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지식인 사회만큼 더러운 곳도 없다던데ㅎㅎㅎ
 

 "쌍용노동자들이 범법자인가?…정의 없는 나라 필히 망한다"

제가 오늘 언론에서 쌍용차 사태에 대한 보도에서 '경찰이 출입문을 확보했다'는 식의 보도를 접하면서 그냥 경악해버리고 말았습니다. '확보'라니, 마치 적군과 전쟁하는 아군에 대해서 보도를 하는 모양인 셈이지요. 

파업하는 노동자들이 과연 거점 하나 하나씩 확보해서 결국 진압, 박멸해야 할 '범법자' 집단인가요? 잔인한 어법, 잔인한 사고이기도 하지만, 이 잔인성 이외에 커다란 문제는, 여기에서 거의 1천 명이 되는 노동자의 일자리뿐만 아니라 '정의' 그 자체가 짓밟힌다는 것입니다.

정의가 짓밟히는 현장

그리고 아무리 - 애당초의 이명박씨의 비과학적 소설 격인 공약대로 - 연간 7%씩 성장한다 해도 정의 없는 나라는 결코 행복할 수는 없습니다. 물론 현실적으로는 부동산 버블이 터져 마이너스 7% 성장이나 안됐으면 좋겠지만, 성장이 되든 말든 인간들의 한 집단으로서는 정의는 먼저입니다.

정의의 개념에서 핵심적으로 중요한 부분은 '과실에 대한 책임'과 '약자에 대한 배려'입니다. 즉, 대표적인 약자 집단인 피고용자의 경우에는, 그들에게 비록 책임의 일부분이 있다손 치더라도 일단은 강자 (자본/국가)는 최대한 그들의 이해관계를 배려하는 것은 롤즈와 같은 이들이 이야기하는 사회적 정의이지요.

그런데 이 쌍용차의 경우에는 해고라는 이름의 사회적 사형을 당하는 이들에게는 아예 이렇다 할만한 책임질 과실은 전혀 보이지도 않아요. 세계 자동차 업계의 위기부터 정부가 허용, 추진한 상하이차에의 매각까지, 노동자들과 하등의 관계가 없는 상황이거나 정부 직무유기의 과실입니다.

즉, 약자에 대한 배려의 의무를 지는데다 과실(불량 자본에의 졸속 매각 등)에 대한 책임을 다해야 하는 입장에 처한 정부로서는 공적 자금 투입을 통해 해고를 막는 길 이외에 정의롭게 행동할 도리란 따로 보이지 않습니다.

그런데 만약 이 도리를 행하는 대신에 공권력, 즉 합법의 탈을 쓰는 폭력을 행할 경우에는 과연 '국가'란 무엇이 될 것인가요? 성 아우구스티누스께서 일찌기 '정의 없는 국가'를 뭐라고 불렀나요? 맞아요, 강도 조직이라고 불렀지요. 강도 조직이 통치(점령?)하는 영토 안에서 태생적으로 살게 되신 여러 분, 탈주라도 꿈꾸지 않으시겠어요?

국민통합의 여러 모습

이건 정말로 큰일입니다. 쌍용차 노동자에게도 일생의 대불행, 잘못하면 인생의 파괴지만, 나라 전체로서도 도덕적 파탄으로의 길이지요. 사실 국가란 원래 그 국민을 통합시킬 만한 중심축 같은 게 필요해요.

예컨대 우리가 잘 아는 일본의 경우에는 근대 국가의 국민적 통합의 중심축은 천황이라는 신화이었는데, 인위적으로 조절하기 쉬운 신화인 만큼 이와 같은 형식의 통합은 큰 불행을 자초했어요. '중화 민족 웅비'를 중심축으로 하는 오늘날 중국의 인민 통합의 위험성이란 지금 회골(위구르)자치구에서의 피식민 민족에 대한 유혈 탄압을 보면 다들 아실 만도 하지요.

아니면 '조선민족제일주의'와 '육탄이 되어서 불구대천의 원수 미제를 파괴하겠다'는 걸 골수로 하는, 필연적으로 핵 프로젝트 등의 군사주의적 낭비를 필요로 하는 북한 식 인민 통합은 어떤가요? 역시 별로 바람직하지 않게 보이지요.

이와 대비해서 예컨대 북구 국가들의 국민 통합의 중심축은 '상호 양보, 타협, 그리고 인권 실현'쯤일 거에요. 이와 같은 세팅에서 노동계급이 진정한 사회주의를 포기한 게 문제지만, 어쨌든 적어도 국민 집단 안에서의 계급갈등 시 무력 사용이란 있을 수 없는 일이지요. 갈등이 있으면 협상과 타협이 있어야 한다는 게 그런 나라들의 국체라면 국체입니다.

미래 지향으로서의 공산 사회 건설을 포기한 것이 문제라면 문제지만, 어쨌든 그 포기를 대가로 해서 얻은 이와 같은 기본 설정은 그나마 현존하는 사회적 체제로서는 가장 '덜 나쁜' 것이겠지요. 대한민국도 살만 한 곳이 되자면 이쪽으로 가지 않고서는 도저히 불가능할 터인데, 지금은 우리가 아주 정반대 쪽으로 행진합니다.

남한식 국민통합의 위험성

1990년대까지는 남한의 국민 집단 통합 이데올로기란 반공주의와 개발주의(잘 살아보세!), 그리고 혈통주의적 민족주의(우리는 다 단군의 자손!)의 중첩이었어요. 일부 농촌지역에서 국제 결혼이 전체 결혼의 40%나 되는 이 시점에서는 단군 이야기는 일단 접게 되는 것이고, 부동산 경제의 몰락을 앞두고 있는 시점에서는 '부자 되기' 이야기하는 것도 의미가 없어요.

전체 부동산의 65%를 소유하는 최고상류층 1%나 그 주변 집단을 제외하면 이 나라에서 이렇다 할만한 경제적 희망이 있는 사람이란 극히 예외적이지요. 그러면 후자의 두 개 요소를 빼면 남은 게 뭐에요? 맞아요, 반공주의, 즉 뉴라이트 식의 반북, 멸북, 북한 붕괴론 등에 기반을 두고 있는 군사주의적 국민주의에요.

그러니까 우리 국민 통합의 기초로 우리가 상생, 타협, 인권, 비폭력을 삼지 않는 이상, 여전히 이 국민 집단을 하나로 묶는 기초 구조란 '대한민국의 아들'이라면 누구나 가야 할, 북한이라는 '적'을 상대로 할 군대일 것입니다.

우리가 정부의 책임과 약자에 대한 배려, 사회적 정의를 골자로 하는 온건 좌파의 길을 걷지 않는다면 유일하게 남은 게 이스라엘, 터키, 싱가포르 식의 군국형 국민 통합과 특히 이스라엘 식의 영속 전시 상태입니다.

물론 한국의 지배자들도 대북 전면전을 전혀 원하지도 않지만, 불장난하다가 또 무슨 사고가 일어날는지 전지전능하신 하늘만 아실 것이고요. 그러니까 쌍용차 노동자를 짓밟는 것은 결국 우리가 자멸적인 군사주의적 통합의 길을 걷는다는 징조지요. 차라리 망조라고나 할까요?

정의 없는, 강도 조직 수준의 나라는 필히 재앙을 맞게 돼 있고 그 궁극에 가서 망국을 맞게 돼 있습니다. 근대 일본의 예언자이자 함석헌의 스승 우찌무라 간조가 군국 일제보고 하던 소리인데, 지금 대한민국보고 해야 할 이야기인 듯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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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유욕' 버린 인간이 되는 과정…"우린 멀어도 아주 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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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이고, '영구적 혁명' 주문을 한 번 외웠다고 해서 공산주의자가 되는 것은 전혀 아닙니다. 공산주의자가 되는 것은, 결국 인간이 되는 과정이지요. <도덕경>적 의미의 정상적 인간, 뭘 가지려 하지도 않고 내세우려 하지도 않는 인간이야말로 공산주의자의 원형일 것입니다. 그러한 견지로 본다면 우리야 다들 멀어도 아주 멀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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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이] 2009-07-01 21: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읽고싶어요!!ㅋ

바이런 2009-07-02 11: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건 정말 잡설이고..게다가 박노자를 저 또한 좋아하지만.. 왠지 저 표지사진의 박노자는.. 히틀러를 닮게나왔어요-ㅅ-;; (박노자씨 미안요ㅜㅜ)

머큐리 2009-07-03 20:36   좋아요 0 | URL
박노자를 히틀러에 대비하시다니...정말 박노자 쓰러지겠어요...ㅎㅎ

turk182s 2009-07-03 22: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실제로 본결과 히틀러 정말 비슷합니다..
 

한반도 안보 문제들이 최근 주목받게 되면서 노르웨이 언론에서 전화가 자주 걸려온다. 보통 기자들은 북한이 핵과 미사일에 매달리는 ‘이유’를 묻는다. 기자들에게 본인의 생각이 어떠냐고 물으면 대개미국 새 행정부의 관심 끌기와 삼대 권력 세습 과정에서 내부 통합용”이라는 대답이 나오곤 한다. 물론 틀린 이야기는 아니다.

북한 대외 정책의 장기적 목표는 대미관계 정상화와 세계 자본 시스템으로 편입인데, 여기에서 대량살상무기 개발은 미국의 북침을 불가능하게 만드는 “보장”의 역할과 함께 미국을 협상 테이블로 끌어내는 “핵심 카드” 구실을 해왔다. 그리고 세종대왕함의 진수 등이 한국에서 국가주의 (“대한민국주의”) 정서를 부추겼던 것과 마찬가지로, 북한에서도 군사주의 열풍은 관제 내부 통합의 수단으로 기능한다. 전국을 병영화시키는 데에 있어서는 북한은 한국을 훨씬 능가하지만 군사주의적 근대를 극복하지 못한다는 것은 양쪽의 공통점이다. 그러나 북한의 최근 대외 노선 강경화를 단순히 위에서 이야기한 두 가지 요인으로만 설명하기 어렵다. 필자의 생각으로는 이명박 정권의 햇볕정책 포기와 일련의 강경책이 북한을 자극해 강경 일변도의 노선으로 밀어내는 데에 큰 몫을 한 것이다.

서방세계에서 북한을 언급할 때마다 “위협”과 같은 용어들이 당장 등장하지만, 사실 북한은 동북아의 최약체국일 뿐이다. 남한과 비교해도 북한의 국민총소득은 32배 더 적고 무역총액은 167배 더 적지만, 중국이나 일본과 같은 거인과는 비교라도 가능하겠는가?

북한의 마지막 카드는 “군사”지만, 그 군비지출도 세계 11위 군비 지출국인 남한의 약 20%에 불과할 뿐이다. 이 상황에서 1991년 소련 붕괴로 옛 후원자를 잃은 북한으로서는 새로운 후원자를 얻는 것은 절실한 과제다. 미국, 일본과의 관계 정상화에 상당한 노력을 기울여도 본의 아니게 “왕따”를 당하는 북한이 1999년 이후부터 남한의 햇볕정책을 크게 환영해 남북 협력 증진에 열성을 보인 배경은 바로 여기에 있는 것이다.

남한이 1970년에 일본 자본을 끌어들이기 위해서 마산 등지에 설치한 수출자유지역과 격이 비슷한 개성공단을 만들어주는 것은 여태까지 남한을 “가난한 미제 식민지”로 이야기해온 북한으로서 자존심을 접는 일이었다. 하지만 그들은 장기적으로 남한이야말로 북한이 세계 자본주의로 편입하는 데 “매개체”가 될 줄로 믿고 남한 자본의 진출을 유도했다. 북한 저임금 노동력의 착취 등 문제도 없지 않았지만 햇볕정책에 응해온 지난 10년 동안의 북한 관료집단의 태도로 봐서는 이 정책이 장기적으로 남북한을 하나의 경제 공간으로 묶어 평화적 공존의 기반을 조성하는 데에 크게 성공할 수도 있었을 것이라는 결론이 나온다. 북한 지배층도 계속 커져가는 중국 영향력을 상쇄할 또 하나의 힘으로서 남한을 필요로 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햇볕정책의 이와 같은 커다란 잠재력에도 불구하고 이명박 정권이 국내 보수층 결집과 대미 유착관계 강화를 위해 북한과 여태까지 맺어온 협정서 등을 거의 휴지조각으로 만들었다. 북한 소비시장의 70%를 이미 중국 제품들이 점유하고 있지만, 이제는 북한이 중국 경제권으로 편입하는 과정이 더욱더 빨라질 것이고, 북한 지배집단 내에서 군부의 목소리는 더욱더 세질 것이고, 통일은커녕 평화 공존 기반의 조성은 예측이 가능한 미래에 불가능해질 것이다. 한 번 속아본 북한이 두 번 속으려 하겠는가? 옛말대로 소탐대실, 자그마한 정치, 경제적 이득을 탐낸 이 정권은 한반도의 미래를 망치고 있다.


박노자 노르웨이 오슬로국립대 교수·한국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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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노자 - 노무현 전 대통령을 애도하면서: 인간 노무현과 정치인 노무현  

 

 노무현 전 대통령의 자살에 대해서 이야기를 들었을 때에 맨 먼저 느낀 것은 비통함과 돌아가신 이의 고통에 대한 동감이었습니다. 역설이지만, 한 번 국가의 수반이었던 사람은 최근 한 동안 국가라는 폭력기구의 수레바퀴 밑에 깔려 너무나 많은 고통을 받고 있었던 것이었습니다. 결국 그 무게를 견디지 못하고 스스로 비극적 선택을 하신 것입니다. 생각해보면 얼마든지 저 본인도 그 입장이 됐다면 자살을 생각해봤을 것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이건희나 이명박에 대해서 수사다운 수사를 벌인 적 없는 검찰들이 "상부"의 명령을 받들어 저인망수사를 벌이면서 노무현과 어떤 관계를 가진 거의 모든 사람들을 장기간에 걸쳐 괴롭혀온 것을 생각해보면 그 탄압의 중심에 있었던 노무현 전 대통령의 심정을 십분 헤아릴 만합니다. 마치 적군에게 포위 당한 한 성의 장군이 그 성에 갇힌 민간인들을 살리기 위해 "나 혼자 죽겠다! 내가 죽을 터이니 포위를 풀어라!"라고 하면서 적군 앞에서 자결하는, 유럽 중세사 책에서 꽤나 자주 나오는 이야기를 상기해볼 만합니다.
 
그런데 과연 어떻게 돼서 민주공화국 대한민국에서 검찰과 같은 공공기관이 정부의 정적이 되는 사람에게 "적군"과 다를 게 없는 존재가 됐는가요? 그러나 조선시대의 의금부나 사헌부보다 지금의 검찰이 "공안"이 아닌 "사안"의 기관이 되고 공공성을 잃은 것은 바로 우리가 직시해야 할 현실입니다. 대한민국이란 사실 극소수 재벌기업과 부동산부자 등 기껏해야 5%가 될까말까 하는 특권층의 사익을 보장해주는 폭력기구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은 21세기 벽두의 우리 자화상입니다. 그러한 사회에서야 노무현의 비극적인 선택으로 귀결된 "노무현 박멸 작전"은 가능했습니다. 그리고 가장 큰 비극을 이야기하자면, 이 대한민국을 그래도 5년동안이나 통치했던 노무현 자신이 사익추구집단에 봉사해주는 이 기형적인 국가 구조를 전혀 바꾸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물론 고인을 애도하면서 이와 같은 말씀을 드릴 것은 아닙니다만, 만약 정치인 노무현의 개혁이 성공했다면 개인 노무현의 자살이란 비극도 없었을지도 모릅니다.
 
여기에서 참 중요한 부분을 바로 봐야 할 것입니다. 모든 문제에 대한 책임을 십분 지고, 정권의 무자비한 탄압에 죽을 고생을 하고 있는 가족, 친척, 친구, 동지들을 위해서 그 한 몸을 던지신 개인 노무현은 대단히 아름다운 사람이었습니다. 사실, 노무현만큼 소탈하고 "편한" 고급 정치인을 대한민국에서 볼 수 없었습니다. "폼을 잡지 않는" 기질을 제가 인간들에게 가장 귀중하게 여기는 성격입니다만, 노무현은 바로 이와 같은 스타일이었습니다. 퇴임 후에 자신의 홈페이지에서 여러 사람들과 열띤 논쟁을 벌이셨던 모습을 봐도, "새 시대의 인간"이라는 인상을 받을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아름다운 바보"로 기억되는 개인 노무현과 구별돼야 할 것은 정치인 노무현입니다. 개인 노무현의 순진해보이는 미소도 우리에게 영원히 기억될 것이지만, 정치인 노무현과 얽힌 수치의 순간들 - 그 중에서는 무엇보다도 이라크 파병 등 -도 우리 기억에서 지워지지 않을 것입니다. 개인 노무현도 한국 현대사의 한 아름다운 장이 되겠지만, 정치인 노무현의 실패도 지금 우리 역사의 지워지지 않는 한 일부분입니다. 지금 개인 노무현에 대한 애도와 슬픔이 노무현의 정치적 계승자, 후계자들에게도 일정한 후광을 부여하지만, 조문의 파도들이 가라앉은 뒤에 이들이 과연 민심을 다시 한 번 얻을 수 있을 것입니까? 개인 노무현의 자살을 슬퍼하고 그의 서거를 애도하는 이 순간에도 바로 정치인 노무현의 통치기간에 대한민국이 OECD국가 중에서 자살율이 가장 높은 나라 (10만 명에 25명)가 됐다는 사실을 잊기가 힘듭니다.

개인 노무현이 최다의 사람들에게 최대의 행복을 가져다주고 싶어하는 "착한 사람"이었지만, 정치인 노무현이 그 수단으로 "시장"과 "경쟁"을 선택하는 최악의 오류를 범했습니다. 지나치게 급진적인 개혁도 잘못하면 낭패로 끝나기 쉽지만, 2002-2007년간의 개혁 시도는 "온건"하다 못해 결국 "개혁적" 색깔을 완전히 잃고 말았습니다. 개념이 없는 "개혁세력"들이 기존의 체제와 손을 잡으려고 온갖 노력을 했지만 결국에 바로 그 체제는 "개혁"의 지도자이었던 노무현을 사회적으로 타살시키고 말았습니다. 악어새가 되지 않는 이상, 악어와 친구가 될 수 없다는 것, 악어와 친구가 됐다고 착각하는 순간에 결국 먹이감이 된다는 것을 우리가 철저하게 배워야 합니다. 고인의 명복을 빌면서, 더 이상 이와 같은 비극들이 일어나지 않을 만큼 이 나라가 진정하게 개혁되기를 기원합니다...    



http://blog.hani.co.kr/gategateparagate/211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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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이] 2009-06-03 18: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유시민 등등의 이상한 놈들이 다시 세를 잡으려고 하는 것을 보고 있자면 웃기지도 않아요. 제일 나쁜놈은 수구세력보다는 그놈들이겠죠.

가시장미 2009-06-04 02: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박노자는 참 쉽고 참 예리하게 글을 잘 쓰는 것 같습니다. 잘 보았어요 :)

2009-06-04 08:54   URL
비밀 댓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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