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 전 대통령의 갑작스런 죽음은 많은 사람들을 깊은 슬픔에 잠기게 했다. 그의 지지자는 물론 그에 어지간히 비판적이던 사람들도 결국 그의 날엔 굵은 눈물을 함께 흘리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그렇다, 다른 사람의 슬픔을 함께 슬퍼할 줄 알기에 아직 우리가 사람인 것이다. 그리고 그 슬픔 속에서 우리는 조심스럽게 우리가 함부로 생략해선 안 될 또다른 슬픈 죽음들을 떠올리게 된다. 바로 노무현 정권 5년 동안 죽어간 사람들, 23명의 노동자 민중 열사들이다.
그 23명이 모두 애당초부터 노무현을 반대하거나 적대한 사람들은 아니다. 오히려 노무현이 가난하고 힘없는 자신들의 편일 거라고, 이런 사람이 대통령이 되었으니 이제 우리도 사람답게 살 수 있을 거라고 철석같이 믿었던 사람들이다. 그러나 그들은 그들이 그토록 믿고 기대했던 ‘고졸 출신 서민 대통령’에 의해 삶의 벼랑으로 내몰렸으며 배신감과 절망감에 몸을 떨며 죽어갔다.
오늘 의 열기 속에서 끝없이 나열되는 대통령 노무현의 업적들은 그르지 않다. 정치 개혁, 권위주의 탈피와 소통 강화, 지역갈등 해소 등등. 그는 정말 정치적 민주주의 발전에 그 어느 대통령보다 열정적이었다. 그러나 서민 대중의 실제 삶과 관련한 부분, 즉 사회 경제적인 민주주의에서 대통령 노무현은 모자람이 많았다. 특히 지난 30여년 동안 지구상의 가난하고 힘없는 사람들의 삶을 위협하는 신자유주의에 대해 그는 ‘도무지 이해가 안 갈 만큼’ 적극적이었다.
그러나 이미 그는 우리 곁에 남아 있지 않다. 그가 죽음을 선택한 직접적인 계기가 무엇이든 마지막 노무현은 더 이상 고집스런 신자유주의자 대통령이 아니라 “삶과 죽음도 자연의 한 ”이라는 무상의 경지에 이르렀다. 그러니 우리는 그의 잘못과 한계를 들춰내며 그의 죽음에 대한 슬픔조차 냉소하는 일도, 감상에 젖어 혹은 그를 죽게 한 미안함과 자책감에 젖어 그가 아무런 잘못이나 한계도 없었던 양 무작정 그를 찬미하는 일도 정중히 삼가야 한다.
우리는 스스로 제 삶의 모든 부질없는 것들을 정화하고 떠난 사람 앞에서, 감상이나 냉소가 아니라 그의 삶의 공과를 분명히 기억하되 그가 품었던 뜻을 정갈하게 되새기고 그가 남긴 꿈을 우리 삶에 잇는 게 옳겠다. 그의 꿈을 잇는다는 것은 무엇일까? 물론 그것은 고집스러운 신자유주의자 대통령 노무현을 잇는 게 아니라 그의 본디 꿈, 그가 아직 순수한 이상주의자이던 시절의, ‘바보 노무현’의 꿈을 잇는 것이다.
그 꿈은 누가 이을 수 있을까? 오늘 노무현의 후계자라 지목되는 사람들, 그가 제국주의 침략전쟁에 파병을 하고 자유무역협정(FTA)을 밀어붙이고 ‘공화국’이라는 별명까지 얻을 만큼 반민중적인 정치를 펼쳐 23명의 한 맺힌 죽음을 낳도록 내내 보좌한 사람들일까? 그들이 노무현의 꿈을 이을 수 있을까? 천만에. 여전히 자신들이 ‘이명박보다는 백번 나으니’ 아무런 반성할 것도 성찰할 것도 없다는 얼굴을 한 그들이 할 수 있는 일은 노무현의 꿈이 아니라 노무현의 잘못과 한계를 다시 되살리는 일뿐이다.
노무현의 꿈은 오히려 대통령 노무현이 가난하고 힘없는 사람들을 배신했음을 지적한 사람들, 끊임없이 노무현을 불편하게 함으로써 그가 잃어버린 제 본디 꿈을 회복하길 소망했던 사람들, 23명의 열사의 편에 섰으며 오늘 여전히 그들의 편에서 싸우는 사람들에게서 이어질 것이다. 바로 그들이 소년 노무현이 봉화산의 호미 든 관음상 앞에서 맹세한 꿈, 가난하고 힘없는 사람들이 사람답게 사는 세상을 만들겠다는 꿈을 이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