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유엔이 지정한 세계 난민의 날이다.

여느때와 다르게 난민의 날 지정이 눈에 들어온 것은 요즘 논란이 되고 있는 제주도 예멘 난민 때문이다. 내전으로 생사를 가늠할 수 없어 고국을 떠나 살 곳을 찾아 정처없이 떠난 예멘 사람들에게 제주도 정착과 난민신청은 그나마 삶의 가느다란 끈일터. 이러한 사람들에게 던지는 무자비한 혐오는 낯뜨겁다 못해 분노마저 일어난다.

 

이전부터 난민이나 흔히 말하는 불법체류 외국인에 대한 비난이나 혐오는 존재하고 있었지만, 이것이 대대적으로 증폭되고 확산되는 느낌이다. 왜 이렇게 되었을까?

 

추측건대, 이들이 백인이 아니며, 우리보다 가난한 국가의 구성원이며, 이슬람을 신봉하는 무슬림이기 때문에 논란을 부추키는 사람들이 있기 때문이라 생각한다.

 

백인에 대한 근거없는 추종이야 뿌리 깊은 식민주의적 근성과 인종적 차별을 당연시 하는 우리 내부의 문제도 심각하지만, 이슬람과 무슬림에 대한 저주에 가까운 혐오표현은 기독교인들이 자행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다. 무슬림이면 전부 테러리스트에 강간범으로 몰아서 향후 사회적 암덩어리로 각인시키고자 노력하는 이들의 댓글 속에서 살기마저 느껴진다.

 

지각없는 일부 기독교인들이야 그렇다고 해도, 일부 페미니스트 진영에서 제기하는 가부장적 무슬림 난민 반대는 도대체 어떻게 해석해야 하는지 알 수 없는 지경이다. 여성을 억압하는 무슬림은 난민 자격도 없다는 건지... 이슬람 사회의 여성의 지위가 낮은 문화적 전통을 난민들이 이 땅에 이식할 것이라는 두려움 때문인지... 소수자 차별은 반대하는 이념으로서의 페미니즘은 어디로 실종되고 페미니스트의 이름으로 난민 반대를 외치는 사태에 이르러서는 뭐라 할 말이 없어진다.

 

항상 극우와 극좌의 실천은 통한다는 진리는 여기서도 관통하는 것인지....

 

유럽은 난민과 이주민을 반대하는 포퓰리스트들의 선동으로 어지럽다. 그런데 이들을 따라 난민을 추방해야 한다는 주장들이 난무하는 걸 보면, 우리의 민주주의도 심각한 분기점에 도달한 것이 아닌가 한다. 인권과 민주주의는 같이 병진한다고 할 때 여성, 난민, 성소수자 등 소수자의 인권을 도외시하고 민주주의는 나아갈 수 있을까? 항상 파시즘의 그림자가 어른거리는 건 소수자의 탄압을 외면하면서 다수의 가치에 모든 것을 병합하는 폭력성 때문일터다.

 

난민을 받아 들이고 보호하자는 말을 꺼내면 바로 감성팔이 인권주의자로 몰리고 난민에 대한 보호는 국가가 절대로 받아들이지 말것을 강경하게 주장하는 사람들은 우리나라가 난민협약에 가입했다는 사실부터 주지해야 할 것이다.

 

피부가, 인종이, 종교가, 문화가, 성이 다르다고 해도 이들을 환대하는 것이 진정 인간적인 것이다. 환대의 방법과 정도는 서로 논의할 수 있지만, 다름을 차별로 전환하고 혐오로 대처하는 건 스스로 인간의 가치를 저버리는 것 아닌가?  난민 수용을 거부하라는 청와대 국민청원이 20만명을 넘어섰다고 한다. 언제부터인지 약자의 억울함을 호소하는 청원이 강자가 자신의 이익을 관철시키는 창구가 되어버린 모양새다.

 

소수자, 힘없는 자와 연대하자.

그것이 인권과 민주주의를 지키는 마지막 보루다.

이 당연한 말을 하면서도 참... 힘빠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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혜덕화 2018-06-20 17:4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사람이 종교보다, 피부색보다, 국적보다 먼저인데, 안타깝네요.
 

서른, 잔치는 끝났다 / 최영미

물론 나는 알고 있다
내가 운동보다도 운동가를
술보다도 술 마시는 분위기를 더 좋아했다는 걸
그리고 외로울땐 동지여!로 시작하는 투쟁가가 아니라
낮은 목소리로 사랑노래를 즐겼다는 걸
그러나 대체 무슨 상관이란 말인가

잔치는 끝났다
술 떨어지고, 사람들은 하나 둘 지갑을 챙기고 마침내 그도 갔지만
마지막 셈을 마치고 제각기 신발을 찾아 신고 떠났다
어렴풋이 나는 알고 있다
여기 홀로 누군가 마지막까지 남아
주인 대신 상을 치우고
그 모든 걸 기억해내며 뜨거운 눈물 흘리리란 걸

그가 부르다 만 노래를 마저 고쳐 부르리란 걸
어쩌면 나는 알고 있다
누군가 그 대신 상을 차리고, 새벽이 오기 전에
다시 사람들을 불러 모으리란 걸
환하게 불 밝히고 무대를 다시 꾸미리라

그러나 대체 무슨 상관이란 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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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시대를 마감하는 시였던 것으로 생각된다.

물론 누군가에겐 말도 되지 않는 패배적인 자조였을 터이고, 누군가에겐 씁쓸한 상처를

다시 돌아보게 만드는 시였을 터다. 나에겐 자조였고 상처를 되돌아보게 되던 시였다.

비판도 인정도 못하는 어정쩡한 상태... 그 상태를 넘어서지 못하고 그저 마지막 구절만

되뇌이곤 했다. 대체 무슨 상관이란 말인가

 

최영미가 <황해문화>, 2017년 겨울호에 실은 시가 다시 논란(?)이 된 모양이다.

그동안 숨겨져 왔거나 문제를 제기해도 묵살된 문단 내 성희롱과 관련하여 쉬쉬하던

문제들. 남성중심적인 사회에서 벌어지는 그 동안의 못된 관행들을 보면 놀라운 일도

아니다. 그럼에도 이런 사람들을 사회의 어른이라고 생각하면서 대접하고 부당한 행위

를 쉬쉬하고 덮어 줌으로 우리들은 '괴물'을 키워온 것은 아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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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물 / 최영미

 

En선생 옆에 앉지 말라고

문단 초년생인 내게 K시인은 충고했다.

젊은 여자만 보면 만지거든

 

K의 충고를 깜박 잊고 En선생 옆에 앉았다가

Me too

동생에게 빌린 실크 정장 상의가 구겨졌다.

 

몇년 뒤, 어느 출판사 망년회에서

옆에 앉은 유부녀 편집자를 주무르는 En을 보고,

내가 소리쳤다.

"이 교활한 늙은이야!"

감히 삼십년 선배를 들이박고 나는 도망쳤다.

En이 내게 맥주잔이라도 던지면

새로 산 검정색 조끼가 더러워질까봐

코트자락 휘날리며 마포의 음식점을 나왔는데,

 

100권의 시집을 펴낸

"En은 수도꼭지야. 틀면 나오거든

그런데 그 물은 똥물이지 뭐니"

(우리끼리 있을 때) 그를 씹은 소설가 박 선생도

En의 몸집이 커져 괴물이 되자 입을 다물었다. 

 

자기들이 먹는 물이 똥물인지도 모르는

불쌍한 대중들

 

노털상 후보로 En의 이름이 거론될 때마다

En이 노털상을 받는 일이 정말 일어난다면, 

이 나라를 떠나야지

이런 더러운 세상에서 살고 싶지 않아

 

괴물을 키운 뒤에 어떻게 

괴물을 잡아야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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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물들이 하도 많아서... 어떻게 잡아야 할지 모르겠다.

자신이 먹는 물이 똥물이라는 걸 불쌍한 대중들이 깨달아야 방법이라도 생기지 않을까?

그 불쌍한 대중들에게 똥물을 먹이는 걸 감내한 대가가 바로 괴물이니...

그냥... 올해부터는 그놈의 노털상 후보로 뉴스에 나오는 En의 모습을 보지 않았음한다.

지겹다 못해 가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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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로 2018-02-05 11: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한국은 문단 뿐 아니라 어디서든 그럴 것 같았어요. 이제 연애계도 이야기가 나오기 시작하고 직장에서도 그래야 할 것 같은데 한국은 너무 조용한 것 같아 이상해요. 비록 도망쳐 나오더라도 교활한 늙은이라고 한마디라도 한 최영미에게 박수를!

순오기 2018-02-05 11: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En이 고은이라는 걸 확실하게 드러낸 최영미의 용기~ 칭찬해요!♥
 

소수자의 소수자성은 숫자라기 보다는 자신들 목소리의 크기에 있다고 생각한다. 여성만 해도 하늘의 절반이라고 표현되지만 절반만큼의 지분을 가진 목소리 크기를 가지지 못했기에 '기울어진 운동장'에 '유리천정'이란 수식어가 설득력 있는 것이다.

 

소수자는 다수의 그림자에 가려져 그 존재 자체를 드러내기 쉽지 않다. 특히나 성소수자의 문제는 하나의 금기처럼 여겨졌다. 뭔가 그냥 성적 지향이 다수자인 이성애자와 다를 뿐임에도 그들은 세균이나 더러운 오염물 취급을 당해야 했다. 그리고 지금도 당하고 있다.

 

EBS 까칠남녀에서 최근 방영한 '성소수자 특집'은 소수자의 목소리를 가감없이 전달한다는 의미에서 진정으로 교육방송에서 해야했고 해야하는 프로그램이다. 그럼에도 게시판에서는 끊임없이 EBS를 질타하는 댓글들이 만연하고 심지어 EBS앞에서 프로그램에 항의하는 농성을 하는 사람들까지 등장했다. 마치 성소수자를 공개하면 다수의 사람들이 성소수자로 전락한다는 듯이...

 

언제부터인지 기독교 우파는 이 사안에 집중하기 시작했다. 마치 성소수자가 이 사회를 병들게 하고 사람들을 색정광으로 만드는 혼란한 세력으로 꾸며대며 선동을 한다. 이 땅의 기독교 역사를 돌아보면 권력에 빌붙어 이 사회를 이지경으로 만들어 놓은 책임으로 참회하고 회개하고 교회속에서 진정으로 눈물을 흘려야 할 사람들이 자신의 죄는 돌아보지 않고 또 다시 마녀사냥을 시작하고 있는 것이다. 이 사회의 위선과 불의에 기독교도 책임이 있다. 그러나 차별받아온 여성과 성소수자는 어떤 책임이 있는가?

 

성경 말씀이 글자 그대로 진리라고 외치는 자들이 소돔의 심판은 외치면서, 부자가 천국가는 것은 낙타가 바늘귀에 들어가는 것보다 힘들다고 말한 예수의 말씀은 돌아보지 않는다. 진리를 따르기엔 힘들고 남들 탄압하는건 즐거운 모양이다.

 

레스비언(L), 게이(G), 양성애자(B), 트랜스젠더(T). 이들이 존재함을 인정하자. 이들이 우리와 동일한 권리를 가지는 인간임을 인정하자. 이들이 지금껏 차별과 억압 속에서 고통받아 왔음을 인정하자. 이들도 다른 사람과 똑같이 행복을 추구할 권리가 있음을 인정하자.

 

도대체 사랑의 종교는 어디로 사라지고 증오와 혐오와 거짓이 난무하는 종교가 되었는가?

모르면 배우면 된다. 그 배움을 위해 EBS에서 특별히 교육해주니 열심히 보고 느끼길 바란다.

아... 그리고 반공의 아이콘이신 기독교 우파 여러분.... 북한 세습제 줄구장창 비판만 하지 말고 대형교회 세습제도 좀 비판했으면 한다. 거기서 농성하고 점거도 하고 좀 그래라.

힘센놈한테는 찍소리 못하고 약한사람만 두들기니 좋은가?

적어도 예수는 그렇지 않았다. 성전에서 깽판치던 예수의 기상은 사라지고 회칠한 무덤처럼 가식적인 정의가 혐오스럽다.

 

물론 전체 기독교인이 그렇다고 생각지는 않는다. 다만, 성소수자 이슈를 걸고 집요하게 혐오를 조직적으로 조장하는 세력들 중 다수가 기독교인이라... 참 거시기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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혐오 대상에 대표적인 것은 아마도 동성애가 아닐까 한다.

 

나 역시 동성애에 대한 일정정도 공포가 있었다. 동성애와 관련한 그 막연한 공포와 혐오스러운 느낌은 무엇 때문일까? 난 이러한 질문을 할 필요를 느끼지 못했다. 동성애자들은 변태새끼들이고 그냥 징그러운 호모였으니까? 내 주변의 사람들도 모두 비슷한 반응들이었기 때문에 이런 혐오감정에 대한 반성은 없었다. 솔직히 이유도 근거도 없이 동성애자는 모두 삐뚤어진 변태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고 만약 나에게 접근하는 놈이 있다면 죽도록 패고 한 대 더 때려야 할 막연한 적이었을 뿐이었다.

 

우연한 기회에 인천인권영화제에 자원봉사를 하게 되면서, 그해 출품해야 할 작품들을 리뷰하는 도중 어쩌면 내 일생의 영화를 만났다. 연분홍치마라는 영화창작 집단 소속 혁상 감독의 작품인 <종로의 기적>이 그것이다. 이 영화를 통해 나는 동성애에 대한 나의 가치관을 거의 180도 바꿀 수 있었다. 아마 인천인권영화제가 관객들의 인권감수성 함양과 인권의식을 높이는데 목적이 있었다면 그 해 영화제에서 가장 모범적인 관객은 내가 아니었을까?

 

동성애를 가장 반대하고 저주에 가까운 반응을 보이시는 분들을 분류해 보면 몇가지 부류로 나눌 수 있다. 우선 기독교인들, 진보적 민족주의자들, 이성애만이 정상이라고 느끼는 가족주의자들 등등.

이런 분류는 순전하게 내 개인적인 분류이고, 이들의 공통점은 정상적인 것이 있고 비정상적인 것이 있으며 비정상적인 것은 정상적인 것으로 만들던가 폐기해도 상관 없다고 생각한다는 것이다.

 

기독교인들... 하... 이 분들은 정말 답이없다. 성경에 동성애를 비난하는 구절 하나로 사람을 사람취급하지 않아도 된다고 생각하는지...동성애자들을 대하는 모습은 자신이 신의 대리인인지 신인지 헷갈릴 정도다. 하긴 성경은 일점일획도 틀림이 없는 하나님의 말씀이니 따라야 한다는 그 신념과 믿음에 대해서는 뭐라 평가하고 싶지 않지만, 같은 하나님의 말씀 중 '부자가 천국가는 것은 낙타가 바늘귀에 들어가는 것보다 더 힘들다'는 말씀은 하나님 말씀으로 취급도 하지 않고 세속의 부와 교회 크기로 하나님의 은혜를 강조하시니 더 이상 할 말이 없으시다. (참고로 난 하나님이 이 세상을 만드시고 보기 좋았더라는 말씀을 좋아한다. 기독교인의 입장에서 동성애자도 결국 신의 창조물일텐데 왜 그리 싫어하는지 모르겠다. 믿음이 부족해서 그런 모양이다) 

 

소수이긴 하지만 노동이나 환경, 평화 등의 견해는 진보적인데 동성애는 타락한 서구 문명, 특히 미 제국주의의 더러운 찌거기로 여기면서 위대한 한민족의 쇠퇴를 두려워 하시는 분들도 있다. 이분들 의견을 듣다보면 나치와 뭐가 틀린게 있을까 하는 생각이 ... 나치는 게르만 민족의 위대함을 유지하기 위해 유대인도 학살했지만, 동성애자도 무시로 학살했다.

 

이성애만 정상이라고 느끼고 가족은 이성끼리 만나서 결성해야 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 이들은 동성애가 비정상이라고 생각하며, 동성애를 일종의 변태적 일탈로 여기는 경향이 있다. 특히 남성간 동성애에 대해 더욱 혐오하는 경향이 있다.

 

이전에 나는 세번째 유형이 아니었을까 한다. 나는 왜 동성애자들이 싫었을까? 왜 두려웠을까? 그건 내가 그들에 의해 범해질지 모른다는 공포가 아니었을까 생각한다. 여성들이 남성들의 추행과 성폭력에 두려움을 갖듯이 난 나와 같은 남성에게 추행이나 성폭력을 당하는 것이 두려웠던건 아닐까? 그런 원치 않는 성관계를 상상했을때 소름이 돋아올라서 그들에 대한 근거없는 적대와 편견과 혐오를 키우는 건 아니었을까?

 

이렇게 공포와 혐오에 찌들다 보면 동성애자들은 박멸해야 할 대상이 된다. 더구나 에이즈를 전파하고 (동성애 가정은 인정하지 않으니) 가정을 파괴하고, 사회를 약화시키는 혐오스러운 존재로 전환되는 것이다. 그런데 과연 그럴까?

 

그들도 우리와 같은 사람이고 단지 성정체성을 다르게 느낄 뿐이다. 이러한 성정체성은 개인에게 매우 중요한 본질 중 하나이며 개개인의 성정체성으로 차별하는 것은 옳지 않다는 것이 정설이다.(물론 이 사회에서는 별로 인정하지 않는 부분이기도 하다)  에이즈는 동성애를 하면 발생하는 병이 아니라는 것은 이미 과학적으로 증명되었고, 가정이란 삶을 나누는 사람들의 집합이 되어야지 단순하게 이성애자들의 결합만으로 정의될 수 없는 것(이성애자들의 가정 중에 얼마나 폭력적이고 파행적이며 이상한 가족이 많은가? 그럼에도 우리는 이것을 정상가족이라고만 여기고 있다)이며, 개인의 성정체성에 대한 편견과 차별이 없는 사회가 차별과 혐오가 만연한 사회보다 더 결속력이 있는 것은 당연할 것이다.

 

이성이 되건 동성이 되건, 사람이 사람을 사랑하고 사랑하는 사람과 성애를 누릴 수 있고 함께 행복하게 보낼 수 있다면 그것으로 족하다. 김조광수와 김승환의 결혼은 결국 불허되었다. 이 사회의 사법쳬계가 이들의 결혼을 인정한 근거가 없다는 이유다. 법의 한계다. 그런 법은 수정하고 고치면 해결된다. 그러나 이들을 향해 뿜어지는 혐오적인 발언과 욕설은 차마 볼 수가 없다. 차이를 인정하되 차별하지 말자는 것이 얼마나 힘든 일인지 새록새록 깨닫게 된다.

 

인간이 가지는 감정 중 혐오와 모멸감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해 보는 기회가 되는 것 같다. 인간이기에 가질 수 있지만, 극복해야 하는 그 감정들에 휘둘리면 얼마나 많은 비극들이 벌어지는지..퀴어 퍼레이드에 참석하다 보면 '사랑의 종교'를 부르짖는 사람들의 '저주와 혐오'는 이 땅에는 인간의 질서만 있지 신의 질서는 보이지 않는 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그 깨달음을 다시 한 번 되새김질 할 시점이 얼마 남지 않은 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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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남역에서 조현증을 앓고 있는 남성이 여성을 살해하는 사건이 일어났다. 사건의 피해대상이 여성이었고 범인은 일면식 없는 대상 중에서 유독 여성을 상대로 범행을 저질렀다. 유독 여성이라 지칭하는 것은 남성들도 범행의 대상이 될 수 있는 환경과 조건이었지만, 범인이 최종 범행대상으로 선택한 것은 여성이기 때문이었고, 사건 후 범행동기에 대해 '여자들이 자신을 무시해서' 범행을 저질렀다고 진술했기 때문이다.

 

여기서 '여성혐오' 범죄 논란이 제기된다. 사실 여성 혐오에 대한 사회적 분위기는 여성의 지위상승과 비례하여 증가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성은 평등하다는 논리는 그저 이론적인 논리일 뿐이고 사실상 성적 평등이 이루어지지 않은 현실에서 여성은 언제나 약자이고 피해자일 수 밖에 없으며 결국 터질 것이 터진게 이번 사건이라고 할 수 있다. 아니 이미 지속되고 있는 여성혐오살인이 이제서야 사회적 논의의 수면으로 떠오른 것이 아닐까?

 

반론도 만만치 않다. 남성을 잠재적 살인자로 간주하다는 의견도 있고, '주토피아'를 인용하면서 "육식동물이 나쁜 것이 아니라 범죄를 저지른 동물이 나쁜 것"이라고 주장하는 의견도 있다. 더불어 남성을 잠재적 살인자로 간주하는 것은 결국 '남성혐오'가 아니냐는 주장도 제기 되고 있다. 경찰은 프로파일러의 의견을 들어서 조현증으로 인한 망상피해로 인한 범죄이지 여성혐오 범죄는 아니라고 발표해서 논란이 되고 있다.  

 

이 특정한 사건을 여성혐오살해인지 조현증으로 인한 망상으로 인한 살해인지 그 진위를 따지고 싶지는 않고 어떤 것이 진실인지 알 수도 없다. 다만, 우리사회에 여성혐오가 없다는 주장, 남성을 잠재적 범죄자로 몰지 말라는 주장에 대해서는 생각해 볼 거리가 좀 있다.

 

나는 딸을 원하지 않았다. 결혼 후에도 아이를 낳는 다면 당연히 아들이었으면 했다. 그 이유는 딸을 낳아서 기른다면 아들을 낳아 기를때보다 심적인 부담이 매우 클 것이라는 점 때문이다. (아들이야 밖에서 무엇을 하던 크게 걱정하지 않아도 되지만, 딸은 어디서 무엇을 하던 크게 걱정스러울 것이고 많이 불안해 할 것이이라는 이유) 난 왜 그런 생각을 했을까? 그건 이 사회에 대한 불신 때문이다. 아니 나 자신이 남성이지만 이 사회의 남성지배구조에 대한 불신 때문이다. 스스로 자신을 잠재적 범죄자라고 단 한번도 생각해 보지는 않았지만 난 이미 다른 남성들을 잠재적 범죄자로 규정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 사회에서 딸을 낳고 기른다는 것은 부모로서 무척이나 힘들고 어려운 일이라는 것을 이미 파악하고 있었고 그 이유는 가부장적인 남성지배사회 속에 있는 여성들을 보고 느끼고 있었기 때문이다.

 

페미니즘을 접했을 때 난 다른 어떠한 분과학문보다 접근하기도 이해하기도 어려워서 전전긍긍했던 경험이 있다. 아직도 난 페미니즘 공부가 어렵다. 아니 여성을 평등하게 대한다는 것이 어떤것인지에 대해서 아직도 어렵다. 그것은 여성들의 경험을 온전하게 나의 경험으로 느끼지 못하기 때문이 아닐까 한다. 즉 사회적 약자로서 이 사회를 살아가는 여성의 일상에 대해 나는 무지하며 무지하기 때문에 용감하게 여성에게 이것 저것을 요구했던 것이다.

 

남성으로서 나는 어두운 골목길을 혼자 걸어가면서 누가 뒤따라오는 것에 대한 두려움을 느껴본 적은 거의 없으며, 버스나 지하철에서 옆 사람에게 성추행을 당해본 적도 없고, 사귀던 여자가 갑작기 폭력적으로 돌변하여 구타할 지 모른다는 공포를 느껴본 적도 없었고, 심지어 어느 날 누군가가 날 남성이라는 이유로 죽이려 할지 모른다고 생각해 본 적도 없다. 이러한 일상의 경험을 주관화하여 여성들이 느끼는 일상의 공포에 대하여 이야기 할 때, 막연한 두려움과 공포로 일반화해 버리고 세계에서 가장 치안이 발달한 나라에서 여성이라고 오버하는 거 아니냐고 웃고 넘겼다.

 

그럼에도 저녁 늦은 시간에 조금이라도 인연이 있는 여성이 혼자 택시를 타고 갈 때 택시 번호를 스마트 폰에 찍어 놓고, 늦은 밤에든 여자들을 집까지 바래다 주는 것이 옳다고 생각한다. 왜? 그건 어디서든 잠재적 범죄자들이 튀어나올 지 모르는 현실을 자각하고 있기 때문이다. 남성들을 잠재적 범죄자로 여겨서 불쾌하시다는 남성분들 스스로 생각해 보시라. 누가 먼저 남성들을 잠재적 범죄자로 여기고 있는지... 난 남성들이라 생각한다. 그것을 여성들이 지적하고 나왔을때 나는 그런 사람이 아니라고 주장하는 것은 의미없다. 당신이 그런 남성인지 아닌지를 떠나서 다른 남성들은 당신을 잠재적 범죄자로 일반화하고 있을 것이다.

 

여성에 대한 혐오는 최근의 현상이 아니다. 가부장제가 안착하면서 남성에겐 여성은 어머니 아니면 창녀일 뿐이었다. 남성의 욕구에 맞추어서 배분시켜 놓은 여성의 자리를 생각하면 모든 역사는 여성혐오의 역사일 뿐이다. 여성은 남성에 비해 어린아이 같고, 이성이 모자라고 감정적이며, 남성없이 무엇하나 제대로 할 수 없는 존재이며, 심지어 남성에게 종속되어야 만 온전하게 되는 존재이다. 그런 여성들이 인간으로서 당연한 권리를 주장했을때 느끼는 남성들의 곤혼스러움은 이해할 수 있지만, 그것을 받아들여야지 여성들을 공격할 일은 아니다.

 

인터넷 상에 등장하는 별별녀들에 대한 모멸과 멸시를 보라. 남성들에게 그런 모멸적인 언어를 사용하는가? 최근에 등장한 메르스 갤러리에서의 미러링을 보니 그 동안 남성들이 여성들에게 퍼부었던 모욕과 조롱이 얼마나 상대방에게 상처를 주었는지 이제서 조금씩 깨닫고 있는 것 아닐까? 하긴 남성들은 이러한 미러링에도 발끈하면서 난리치지만, 여성들은 이러한 멸시와 차별을 몇천년을 받아왔던 것이다. 이래도 우리 사회에 여성혐오가 없다고 이야기 할 것인가? 단순하게 약자의 문제로 포괄하는 것이 옳다고 주장 할 수 있을까? 여성혐오를 단순하게 약자에 대한 억압으로 일반화 시킬 수 있을까? 여성이 소수자이고 약자 임에 틀림없지만 단순하게 약자로 통칭하여 일반화시키기에는 좀 어려운 여성문제는 분명하게 존재한다고 생각한다. 다만, 이것을 인정하기 어려워 약자의 문제로 여성문제를 물타기 하는 것은 아닐까?

 

인정 할 건 인정해야 한다. 아직 이 사회에서 성평등은 이루어지지 않았고, 여성혐오는 존재하고 있으며, 남성들이 잠재적 범죄자로 존재한다는 것은 이미 남성들도 인정하고 있는 것이 사실임을. 남성혐오를 조장하지 말라고 떠들기 보다는 더 이상 여성이기에 죽을 수도 있는 이 사회의 구조를 어떻게 변화시켜야 할 지 고민해야 한다. 여성들이 싸우고 있다. 남성들은 그 싸움을 지지하고 연대하여 나가야지... 난 아닌데 왜 자꾸 나한테 그러냐고 징징거리고 있으면 어쩌자는 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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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 2016-05-24 11: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머큐리님.
저도 역시 그 생각을 했어요. 남성들이 잠재적 범죄자로 보지 말라고 빼애액 거릴 때, 사실 남성들을 잠재적 범죄자로 보는 건 그들 자신이 아닌가 했거든요. 밤길이나 택시가 위험하다는 것, 오히려 남성들이 더 잘 알고 있는 사실이니까요. 무엇으로부터 위험한가요? 그들도 `다른 남성들로부터` 위험하다고 하죠. 자신 역시 다른 사람들에게 `다른 남자들`일 수 있는 건데요.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머큐리님.
최근에 지식인임을 자처하는 남자사람들이 자꾸 `모든 약자의 문제`라며 가르치려 들어서, 여자인 사람들보다 더 `옳은 페미니즘`을 가르치려 들어서 `남자들의 사고 한계인가`라는 회의에 빠져있었는데, 머큐리님의 글이 위안을 주네요.

머큐리 2016-05-24 11:51   좋아요 0 | URL
무수한 여성들이 가르침이 있어서... 그나마 이 정도라도 이해할 수 있었던게 아닐까 생각합니다...^^;;

무해한모리군 2016-05-24 14: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머큐리님이다!
제가 십년간 활동중인 팬사이트(성격상 여자가 다수)에 꾸준글 중 부모님의 남자형제와의 차별에 대한 얘기가 있습니다. 그 남자형제 얘기해보면 나도 감수하는게 많다고 하겠지요. 그런거지요. 왜 정당에서 여성할당을 하고 장애인 할당을 하겠습니까. 머리로 아는 것과 다른 백만서른가지가 있는거지요. 부자가 가난체험을 한다고 가난이 주는 절망감에 얼마나 다가갈까요. 그저 불편함을 조금 아는 정도에 그치기 쉽습니다. `내가 모를 수 있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이 지식인이겠지요.

그러나 현실에서 `말`로 논쟁할 때 저역시도 가능하면 남자 여자라는 단어로 가지 않습니다. 내가 얻고자하는 합의 외의 `그러나`로 시작되는 온갖 이야기를 하는게 피곤해서요 ㅎㅎㅎㅎ 군대문제도 가능하면 경제적인 문제로 지금같은 무상 노동력 제공은 가난한 사람이 세금을 많이 내는게 된다거나, `평화`나 `국방 효율성`이 떨어진다거나 하는 식으로 가는거죠. 여성은 사회적 약자인가 라는 큰명제보다는 비슷한 대학 진학률에도 여성의 낮은 정규직 취업률및 관리직 진급률이나 여성이 주로 취업하는 직종의 낮은 평균임금, 최저임금 수준 일자리에서 여성의 높은 비율 같은 구체적 사안에서 `왜`와 `어떻게 할까`로 나아가는 식으로만 얘기합니다. 다행입니다 이런거 설득하는 직업을 가지지 않아서 아하하하하

참, 그나저나 저 팬사이트 말입니다... 요 몇년새 어린친구들이 죽고싶다 취업하고 싶다는 글이 매일처럼 올라와서 그 절망이 어떤 분노로 갈까 아득해집니다.....

머큐리 2016-05-24 20:41   좋아요 0 | URL
요즘 청년들... 정말 고민이 많죠... 그 고민과 분노가 기성세대들에게 경각심을 주는 단계로 발전했으면 하는 생각이...ㅎㅎ
그나저나 부천 판타스틱 영화제가 이제 곧 입니다. 판타스틱 영화제만 하면 휘모리님이 자동 연상되는거 아시려나? ㅎㅎ

건조기후 2016-05-24 14:4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그럼에도 저녁 늦은 시간에 조금이라도 인연이 있는 여성이 혼자 택시를 타고 갈 때 택시 번호를 스마트 폰에 찍어 놓고, 늦은 밤에든 여자들을 집까지 바래다 주는 것이 옳다고 생각한다. 왜? 그건 어디서든 잠재적 범죄자들이 튀어나올 지 모르는 현실을 자각하고 있기 때문이다. 남성들을 잠재적 범죄자로 여겨서 불쾌하시다는 남성분들 스스로 생각해 보시라. 누가 먼저 남성들을 잠재적 범죄자로 여기고 있는지... 난 남성들이라 생각한다. 그것을 여성들이 지적하고 나왔을때 나는 그런 사람이 아니라고 주장하는 것은 의미없다. 당신이 그런 남성인지 아닌지를 떠나서 다른 남성들은 당신을 잠재적 범죄자로 일반화하고 있을 것이다.

이 부분은 정말 대자보로 만들어서 길거리에 붙이고 싶네요...

저도 정확히 그 지점의 모순을 말하고 싶었어요. 여자친구가 늦게까지 회식할 때 걱정은 왜 하고 택시 번호판은 왜 찍고 밤늦게 데려다주기는 왜 데려다주는지 한번만 생각해보면 답은 쉽게 나오는데... 그리고 여성혐오가 아니라 모든 약자의 문제라고 강변하는 것도 어이가 없어요. 약자의 문제라고 하면 조금 괜찮아진다고 생각하는 걸까요? 둘 다 일어나면 안 되는 일인데!

머큐리 2016-05-24 20:44   좋아요 0 | URL
저의 개인적인 경험상 남성이 여성주의에 대해 이해하고 공감하기에는 장애가 많고 심리적 저항이 만만치 않은 것이 사실입니다. 뭔가 회피하고 두려운 지점이 분명히 있거든요. 사실 남자들의 기득권은 작지 않거든요. 그럼에도 여성주의에 동의하고 실천하려는 남성들은 많이 있습니다. 같이 가야죠...
음 저를 아는 사람이 이 글을 보면... `너나 잘하세요~` 라고 말할게 틀림없을텐데...^^;;

Arch 2016-05-24 22: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에노 치즈코의 책을 보면서 이거 억지스럽지 않을까 싶은데도 요소요소 모든 것들이 다 여성혐오랑 관련이 있더라구요. 재미있고 아프게 읽은 책 중 하나예요.

글 잘 읽었습니다. 강남역 인근 여성혐오 살인사건과 최근의 분탕질에 대해 여러 갈래의 생각들이 정리가 되질 않네요. 뭐라고 얘기하고 싶은데 머릿속이 꽉 막힌 것 같아요. 원래 말을 조리있게 하는 편도 아니지만 ^^

머큐리 2016-05-24 23:47   좋아요 0 | URL
아치님이 조리 없으면 누가...^^;; 저도 사건을 접하고 나서 이러저러한 생각이 들어 한번 정리해 본 건데... 아직 머리 속에서 복잡하게 떠다니는 생각이 많아요. 조금씩 정리해 보려고 합니다.
아치님의 생각도 궁금하네요...

pjo9412 2016-05-25 08: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가부장제에서 글 내렸다. 개소리를 여자입장에서 듣기 좋게 장황하게 써놨네.

머큐리 2016-05-25 08:51   좋아요 0 | URL
글의 목적이 그거에요... 일부 남성들(분명 전체 남성들은 아닐테니) 입장에서 개소리가 여성들에게 어떤 의미가 있는지 생각해 보자는...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