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과 다윈의 시대 - 인간은 창조되었는가, 진화되었는가?
EBS 다큐프라임 <신과 다윈의 시대> 제작팀 지음 / 세계사 / 201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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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논점은 명확하다.  

진화론이냐 지적설계론이냐?
인간이 혹은 생명이 진화했다는 사실을 믿느냐 아니면 알 수는 없지만, 보다 차원높은 존재의 설계에 의하여 설계되었음을 믿느냐는 것인데... 만일 다큐라면 어느 한 쪽의 손을 들어주는 것이 올바르다고 생각한다. 그냥 두리뭉실하게 범주의 차이에 의한 서로간의 소모적인 차이라고 해 버린다면 굳이 시간과 정성을 들여 다큐를 제작할 일도 그것을 책으로 낼 일도 없을 것이다.  

다큐를 제작하기 위해 인터뷰를 한 인물들도 쟁쟁하다. 소위 진화론의 스타 저술자들은 거의 다 망라되었고, 지적설계론의 거장(사실 난 이들이 누군지 잘 모른다. 별로 알아야 할 이유가 없었기 때문이다..^^;) 들도 빠짐없이 인터뷰를 했다. 그리고 나서 내리는 결론이 그냥 그렇게 봉합이라면 그건 좀 실망스럽지 않을까? 

그럼에도 과학과 종교가 대립하는 것이 누구때문인지 암암리에 드러난다. 근본주의자들 기독교인 중에 철저하게 축자무오설에 입각하여 성경을 해석하는 이들이 이 논쟁의 촉발자이고 진화론자들이 종교를 극도로 거부하게 만드는 사람들이다. 이슬람교도 별 다르지 않다. 종교의 비의성과 상징성을 인정하지 않고 극단적인 믿음을 강요하는 자들에게 진화론이란 척결해야 할 무신자들의 신앙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다만, 지금은 종교의 시대가 아닌 과학의 시대이고 그들의 도전은 과학의 모양새를 가장하고 있을 뿐이다.  

진화론이 그저 그런 과학이었다면, 아마 종교와 대립하는 일은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진화론이 이 사회에 끼친 영향을 보면 그저 단순한 과학이라고 치부하기 힘들 것이다. 진화론은 생물의 진화를 증명할 뿐아니라, 사회, 문화, 심리...이제는 모든 분야를 무섭게 잠식해 들어가는 토대가 되고 있다. 인간의 마음마저 진화의 산물이라는 선언은 종교인들을 발끈하게 만들만하다. 소위 물질적 세계는 과학이 정신적 영적 세계는 종교가 책임져야 한다는 암묵적 규칙을 무너뜨리고 당당하게 정신적 세계로 진군해 들어오기 때문이다.  

창조론과 지적설계론은 다르다고 한다. 창조론이 좀 더 기독교 창세기에 기록을 추종한다면, 지적 설계론은 굳이 하나님을 설정하지 않는다. 신이라고 꼭 부르지 않지만 생명를 설계한 어떤 존재를 상정한다. 그것이 알라든 하나님이던 고대의 어떤 신이던 상관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다만 그런 존재가 있음을 과학의 이름으로 확인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 지적설계론을 채택하는 사람들이 대부분 근본주의적 기독교인들이라는 사실은 바뀔 수 없다고 본다.  

진화론과 지적설계론의 대립은 무신론과 유신론의 대립으로 볼 수 있고, 유물론과 관념론의 대립으로도 볼 수 있으며, 전혀 범주가 다른 과학과 종교가 논쟁하는 것으로도 볼 수 있다. 이 책은 결국 범주가 다른 두 분야의 대립으로 간주하며, 계속해서 종교와 과학의 올바른 자리매김에 대한 논지를 이어가려고 한다. 왜 그럴까? 그것이 아쉽다는 것이다. 

우회한다고 진실이 가리워지는 것은 아닐진대... 두루뭉실한 결론은 이 책의 최대 단점으로 자리잡지 않을까?  그래도 중간중간 논점에 대한 정리들은 참고할 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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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철나무꾼 2010-10-01 21: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대니얼 데닛'의 <주문을 깨다>랑 일맥상통 하는 걸요~

그리고 밑에서 두번째 줄 '두루뭉술'이 맞는거래요.

머큐리 2010-10-02 00:42   좋아요 0 | URL
땡스에요..양철댁..
이 책에서도 대니얼 데닛은 중요한 진화론자로 나오지요..ㅎㅎ
도킨스를 지지해서 굴드에게 욕을 좀 먹었던 내용도 나오고..진화론자들도 치열하게 싸우던걸요..^^

마녀고양이 2010-10-04 09: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리처드 도킨스의 최근작을 못 읽어봐서 방향을 모르겠지만,
예전 <눈먼 시계공>에서는 지적설계론과 비슷한 뉘앙스가 있었죠.

진화란게 방향성을 갖고 있는듯 하다는 그런 것. 눈의 진화가 예로 나왔구요.
무작위 진화로 현재의 생물 기능이 과연 나올 수 있었겠느냐.. 이게 논점이었습니다.
갑자기 페이퍼를 읽고 리처드 도킨스의 최근 책을 빨리 읽고 싶다는 생각이 듭니다.
 
톨스토이, 도덕에 미치다 - 톨스토이와 안나 카레니나, 그리고 인생
석영중 지음 / 예담 / 200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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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대한 인물이라고 컴플렉스 없진 않을 것이다. 더구나 세기의 성자라고까지 부를 수 있는
톨스토이 역시 컴플렉스가 없진 않을 것이다. 그러나 가끔 우리는 위대한 사람은 위대한
사람이 가지는 아우라 때문에 그들의 실체( 뭐 이런게 있다면...)에 접근하지 못하는 경우가
있다.  

이 책은 톨스토이에 대한 책이다. 어떻게 보면 톨스토이의 전기라고 할 수도 있고 또 어뗳게
보면 테마 (여기서는 도덕)를 가지고 톨스토이를 분석한 책일 수도 있다.
이 책은 톨스토이의 책 '안나 카레리나'를 통하여 톨스토이의 삶과 사상을 조망하고 심심치
않게는 주요 작품까지 거론하며 톨스토이에 대한 입체적 분석을 한 책이다.
주요 키워드는 '도덕'... 도덕주의자로서의 톨스토이와 실제 육신의 정욕에 지배당한 톨스토이
의 격차가 그의 작품과 말년의 경향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탐구한다.  

1. 결혼을 증오했던 톨스토이 
 이 책을 통해 톨스토이는 결국 '결혼은 미친짓이다'라고 끊임없이 되뇌였다는 사실을 알았다.
낭만적이고 목가적인 결혼관을 가졌던 톨스토이는 평생 부인과 끊임없이 전쟁을 하듯 살아야
했고 말년에는 가출해서 객사한다. 그는 젊은 날 방탕했고 그로 인한 참회록도 썼지만, 가정에
대한 이상적 환상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실제 가정에서는 부인과의 극도의 불화로 몇번의
가출을 해야 했고, 결혼에 대해서는 그저 '합법적 매춘' 이상의 의미를 부여하지 않았다.
오... 이 과격함이라니.... 

2. 육신을 증오한 톨스토이 
톨스토이는 참회록에서도 나왔듯이 극도로 정욕을 증오한다. 그럼에도 왕성한 생산력으로
많은 자녀를 두었으니 그것도 참 아이러니 하다. 그는 그러한 자기 분열에 대해 많은 고뇌를
한 것 같다. 끊임없이 정욕을 질타하면서도 현실에서는 누구보다 정력적이었던 이 남자는
그 충돌 속에서 수 많은 예술작품을 생산해 내었으니 정욕과 이상의 충돌이야 말로 예술적
영감은 아니었는지... 

3. 예술을 증오한 톨스토이 
그럼에도 그는 자신이 창착한 세상 사람들이 우러러 마지않는 그의 작품들을 모조리 인류
에게 해악을 끼치는 쓰레기로 간주했다. '전쟁과 평화'가 쓰레기의 반열로 전락할때
우리는 도데체 어디서 고전을 찾아야 하는가? 그럼에도 그는 그렇게 평가한다. 더불어
클래식 음악과 프랑스 시... 한마디로 인간의 감정을 건드리는 우수한 예술은 전부다
쓰레기로 매도하는 그를 보며, 말년의 톨스토이는 정말 제 정신이었는지 가늠할 수 없게
만든다.  

4. 도시를 증오한 톨스토이 
그에게 도시는 타락의 장소다. 모든 악행이 벌어지는 장소이고, 선량한 사람이라도 죄를
지을 수 밖에 없는 장소다. 톨스토이 작품에서 나쁜 놈들은 전부 도시인이다. 그러나
농촌은 도시와 정반대로 상정된다. 거기에는 땀흘리는 노동이 있고, 선량한 사람들이
있다. 톨스토이는  도시를 떠나 농촌에서 살 것을 주장했다. 

5.육식을 증오한 톨스토이 
알라딘에 육식을 사랑하는 많은 분들이 질색을 하겠지만, 톨스토이는 육식을 죄악으로까지
보았다. 또한 육식을 통해 졍욕에 휩싸이고, 죄를 짓는다고 생각했다니, 현대인들을 보면
게거품을 물고 설교하지 않을까 한다. 더구나 채식주의자로 변신한 후 채식만 했다고 하니
그의 실천력에는 놀라울 따름이다. 이 밖에도 술, 담재, 마약류를 탐하는 것도 죄악시 했다
고 하니 일면 수긍이 가면서도 그럼 도데체 인간이 즐길 수 있는 건 무엇인지 답답해 지는
것도 사실이다.  

이 모든 것의 배후에는 '도덕'이 있었다. 죽음 앞에서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가를 생각했던
이 명민한 사상가는 결국 '도덕적인 삶'이 올바른 삶이라는 깨달음을 얻었다. 그리고
평생에 걸쳐 그것을 실행하기위해 노력했다. 그러한 노력의 결과로 우리가 그저 단순하게
대문호로 생각했던 이 사상가는 평생을 아이러니와 모순 속에서 자신의 고집을 관철하며,
그것을 작품으로 형상화 시켰고, 말년에는 자신의 작품까지 부정해 버리면서, 올바른 삶에
대한 무지막지한 도덕적 설교을 퍼부었던 것이다.  

사실 난 톨스토이의 단편 밖에 보지 못했다. 그가 쓰레기로 치부한 그의 위대한 작품들은
너무나 긴 이름들과 방대한 스케일로 인해 읽다 좌절하기 일쑤였다. 이 책을 읽고 난 후
어쩌면 그의 그 기나긴 책들을 다시 한 번 읽어야 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쩌면 톨스토이가
평생을 추구한 이 '도덕'이라는 키워드로 다시 작품을 읽는 다면 그에 대한 보다 심오한(?)
이해을 할 수있지 않을까하는 생각이 들어서다.  

고전이지만... 쉽게 접근하기 어려운 작가의 작품들의 작가와 생애와 작품과 사상까지
비벼주는 필자의 내공이 놀라운 책이다.
덧붙여 공산주의 혁명에 대한 톨스토이의 분석은 지금도 많은 시사점을 던져준다.
아니키스트적인 그의 사상이 혁명이 가진 폭력성과 강제성에 대한 회의를 지녔던 것은
엉뚱해 보여도 그만큼 그는 현실적인 사람이었음을 나타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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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그인 2010-08-30 20: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난 '도스토 예프스키 돈에 미치다'를 읽었었는데...ㅎㅎ
요거 잼있겠네요^^

머큐리 2010-08-31 08:44   좋아요 0 | URL
고것도 읽고 있는 중이에요.. ^^

pjy 2010-08-30 20: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원래 그런?넘들이 더 칠색팔색하면서 뒤꿍꿍이가 있다는....응?! ( '')
특히 고기를 신봉하는 저로선~ 아직 배가 덜 고파봤다는ㅋㅋㅋ

머큐리 2010-08-31 08:45   좋아요 0 | URL
아..머..고기를 너무 과격하게 싫어해서 그렇지.. 그래도 나름 이유는 타당하고 새겨들을만한 이야기도 있어요..^^;

yamoo 2010-08-30 20: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책을 안 읽어 봤어도, 내용이 잘 요약돼 있어 무슨 책인지 바로 알겠는데요~^^ 좋은 리뷰 잘 보고 갑니다~^^

머큐리 2010-08-31 08:46   좋아요 0 | URL
책 속의 풍성함에 비하면 리뷰는 엄청 허술해요..--; 나중에 함 일독해 보시길..^^;

양철나무꾼 2010-08-30 22: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혀 상관없는 궁금증 하나~!!!
억만년 전부터 궁금했는데여.
'머큐리'란 닉이 무슨 뜻이예요?
서재 주소는 '한니발'이라고 뜨네요~

묘한 궁금증을 유발합니다.

전 다른 책에서 톨스토이에 관한 비슷한 얘기를 읽고 매력 상실이었어요.
차라리,스탕딸이 좋아여.
암요,그렇고 말고여.

머큐리 2010-08-31 08: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억만년 전부터 지켜온 비밀이라... 알면 다치는데요..ㅎㅎ

양철나무꾼 2010-08-31 22:33   좋아요 0 | URL
다쳐도 좋다,머큐리가 있으니까~~~^^

맞는 것에 동그라미치기...( )
1.Mercurochrome
2.수은(mercury)
3.프레디 머큐리(Freddie Mercury)
4.그리스 신화로 치면 Hermes.
로마신화로 치면 Mercury.
(근데 전령으로 치자면 Arch님 말마따나 cupid가 더 어울린다고 강력 주장~!!!)

비로그인 2010-08-31 22:45   좋아요 0 | URL
제가 5월인가 남긴 댓글에 머큘님 닉네임에 관한 물음을 살짝 덧붙였는데 그때도 답을 해주지 않으셨지욥.

흠. 화성인은 들어봤어도 수성인은.. 혹시 이 소개사진이 진짜 말 그대로의 소개사진은 아니시지요?

허나. 만일 그렇다해도 저는 담담히 받아들이겠습니다.
(톨스토이와 도덕에 관한 페이퍼에 쓸데 없는 댓글이라니욥 ^^)

머큐리 2010-08-31 23:01   좋아요 0 | URL
이거 별 내용이 없어서...밝히기 머 하니까 그런거죠? 일부러 그런건 아니고..ㅎㅎ 정답은...알켜주면 재미없잖아요..^^

마녀고양이 2010-08-31 11: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톨스토이가 그랬다는 글을 저도 한번 읽었습니다.
정열에 넘치는 사람이었지만, 한편으로는 결벽증이 있는 사람같아요.
머큐리님의 리뷰를 보니, 부쩍 호기심이 드는군요?
흥미로운 책 같아요...... 톨스토이가 너무나 인간적이라는. ^^

일단 장바구니로.......
 
감성 지식의 탄생 - 지식채널e는 어떻게 태어나고 진화했나
김진혁 지음 / 마음산책 / 201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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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이 책의 부제는 '지식채널 e는 어떻게 태어나고 진화했나'이다.

이 책은 지식채널e에 대한 책이다. 그리고 지식채널을 담당했던 PD 김진혁의 자기 고백같은
글이다. 지식이라는 무거운 주제를 감성적으로 풀어나가 시청자들에게 많은 격려와 응원을
받았던 지식채널에 대한 이야기가 주를 이루고 있다.  

사실 지식채널은 숱한 화제를 뿌리고 다녔다.
시적 자막과 아름다운 영상, 배경음악, 소개되는 지식의 진실성과 그 이면에 드리운 날카로운
혹은 따뜻한 마지막 멘트까지... 한 번 보게되면 계속 볼 수 밖에 없는 중독성있는 영상이었던
것이다. 혹은 새로운 형식의 다큐멘터리라고 볼 수도 있을 것이다.
아직도 난 제목을 알지 못하는 여러편의 영상을 떠올린다.
그리고 그 영상에 숨결을 불어 넣은 아름다운 음악들을 기억한다.  

저자의 개인적인 생각인지 지식채널팀 전체의 생각인지 몰라도... 지식채널에서 추구하고자
했던 것은 '소외'를 다루고 그 '소외'를 극복하는 것이라고 한다. 소외에 대한 천착에서 시작
하니 지식채널이 따뜻하면서도 밀려난 사람들에 대한 애정을 표명했던 것이 아닌가 한다.
더불어 사실과 픽션이 섞인 허구의 '신화'를 벗겨내고 그 허구 속에 불편하나마 진실을 배치
하고 다른 시각으로 사물을 바라보게 만드는 힘도 대단하다 느껴진다. 이런 것을 결국 영상을
제작하면서 또는 지식을 다루면서 저절로 진화해 나간 면이 크다고 보여진다.

이러한 영상들은 그냥 거저 생긴 것은 아니다.
두 명의 피디와 여러명의 작가들이 각자의 관심분야에 대한 소재와 그것을 아이템화 시키는
작업을 통해 사람들에게 전달되는 것이다. 그것은 창의적인 사고 뿐만 아니라 고된 노동이며 
하나의 사실을 알리고 그 이면의 이야기를 짧게 압축하기 위한 그들의 피와 땀이었다.

이 책의 저자는 결국 촛불사태(?)에 대한 책임을 지고 물러나야 했고, 많은 이들이 안타까워
햇음에도 다시 돌아오진 못한 상태다.

교육방송이라는 제한된 방송에서 사람들에게 지식을 전달하고자 애썼던 그 기록들을 보면
그렇게 진실을 위해 노력했음에도 방송을 장악하려는 권력에 의해 배제되어야 했던 그가
안타깝다. 언론은 권력에 비판자가 되어야 하며, 권력과 손잡고 스스로 권력이 되려고 하면
불행해 진다는 그의 말은 원론적인 말이자 그 폐해를 직접 겪은 이로서의 쓰라린 고백이다. 

지식의 문제도 그렇다. 단순하게 이해하는 것이 아닌 무언가 가슴을 건드리고, 단순하게
해법을 주는 것이 아닌 해법을 찾도록 유도해 나가는 그리하여 앎이 삶으로 변하게 만드는
도구로서의 '지식채널'을 위해 그가 얼마나 많은 고민을 해야 했는지 알게된다. 
사람들에게 감동을 주는 작품은 그 이유가 분명히 있는 법이고 지식채널의 사람들의 공감을
받는 일은 그저 우연처럼 일어난 일이 아니라 그 속에 노력하는 여러 성원들의 의지와 땀이
있음을 다시 한 번 일깨워 준다.  

더구나 수백편의 지식채널의 내용중에서 시초점이 되었던 작품, 전환점 내지 분기점이 되었
던 작품들과 그 배경들에 대한 이야기를 읽고 있으면 다시 한 번 그 영상들을 찾아 보게한다. 

사실 지식채널을 영상으로 만나기 전에 난 책으로 만났다. 책을 통해 영상을 알게 되었다고
할까? 책으로 만난 지식채널도 파격이었지만, 영상도 그에 못지 않았고 그 전달 방식과
메시지의 간결하고 압축적은 힘은 새삼 감탄을 자아내게 했었다. 그리고 많은 학교에서 이
영상들로 아이들에게 교육을 진행하고 있다.  

지식은 중립적이지 않다. 지식채널의 성격을 순수한 보수적 관점에 가깝다고 말한 저자의
고백처럼 지식채널은 있는 사실을 중시한다. 물론 더 나아가려는 노력은 끊임없이 계속
되고 있다. 지식을 받아들임에도 사람들은 자신의 프레임을 유지한다. 그 프레임에 맞으면
받아들이지만 맞지 않으면 배척하거나 외면해 버린다.
단순하게 사실 또는 진실이라고 해서 사람들이 받아들이지 않는다는 것은 중요하다.
프레임에 대한 고민은 그래서 계속 진행 중인 것이다.

그는 자신이 말하는 것도 의심하라 말한다. 자신이 서술하고 이끌어온 이 책의 말미에 모든
것을 의심하라고 말한다. 지식은 그런 의심을 통과하고 검증해야 올바르게 구현될 수 있으
므로... 회의적 태도와 겸손이 좋기만 하다.  그리고 소외받는 이들의 비인간성을 따뜻한
시각으로 바라보고 극복하려는 그의 도전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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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된 연장통 - 인간 본성의 진짜 얼굴을 만나다
전중환 지음 / 사이언스북스 / 201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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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인간에게 미지의 세계는 많다. 저 넓은 우주공간에서 저 미세한 소립자까지 인간이 탐구하고
정리해야 할 인간이 발전함에 따라 더욱 더 늘어나고 있는 것 같다.
그 중에서 가장 흥미로운 부분이 바로 인간 그 자신이 아닌가 한다. 프로이트로 부터 시작된
인간의 마음에 대한 탐구는 이제 각 감정별로 세분화되어 인간들의 여러가지 행동이나 심리
치료에 도움을 주고 있다.  

그러나 정신분석 또는 심리학이 인간에게 미치는 영향만큼이나 그 가설이 과학적인가에
대해서는 별도의 논의가 필요해 보인다. 인간이 보이는 비이성적 상태에 대해서는 상태에
대한 설명자체가 그리 과학적으로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사실, 인문학적 심리학에 대해
과학적 심리학을 이야기 할 수 있는 토대는 있는가? 저 '오이디프스 콤플렉스'부터 시작
한는 심리학의 이론들은 그야말로 비유적으로 상징적이다. 또한 실험 심리학에서 규명하는
인간의 심리는 현상을 기술하되 그 원인에 대한 근본적 해명에는 약해 보인다.  

돌파구는 의외로 생물학에서 나타났다. 진화론에 입각한 진화심리학이 그 주인공인다.
물론 진화심리학이 모든 걸 해명하거나 규명하진 않는다. 그러나 인간 심리에 도사린
배후를 캐내고 그것을 증명하는 것에서는 기존의 다른 어떤 이론보다 과학의 모양을
띄고 있다. 이론적 가설을 세우고 검증가능하다는 것으로 기준으로 했을 때 말이다.  

최근 진화심리학에 대한 여러가지 책들이 번역 출간되고 있다. '욕망의 진화' 또는 '이웃집 
살인마'등의 책들이 있고, 최재천 교수를 비롯한 사회생물학자들의 저서들도 다수다.
하지만 이 책처럼 국내 저자가 진화심리학에 대한 간략하고 재미있게 써놓은 입문서는
아직은 없는 것 같다. 외국의 이론들을 우리의 정서에 맞도록 저술한 책이기에 한편으론
소중하고 다른 한 편으로 이제 우리사회에도 진화심리학에 대한 본격적인 논쟁들이 시작
될 듯 하다. (내가 과문해서 그렇지 이미 시작되었는 지도 모르겟다) 

이 책의 제목은 '오래된 연장통'이다. 인간의 진화는 꽤나 장구한 세월에 걸쳐 일어났고
인간의 심리는 그런 장구한 세월에 맞추어져 진화된 도구라는 의미의 제목이다.
그 도구들은 최신의 기계나 정밀한 기기가 아니라 투박하고 거친 도구일 수 밖에 없다.
그러나 인간은 이런 낡은 도구로 현재의 사회를 해석하고 적응하고 있다. 따라서 격차가
발생하는 것은 어쩔 수 없는 현상이다. 이성적 인간이 불합리한 행동을 행하는 바탕에는
이런 진화적 적응성의 문제가 있는 것이다. 그리고 인간 심리의 수수께끼는 이런 진화
심리학의 시각에서 볼 때 너무도 당연한 이야기일 수 잇는 것이다.    

이 책에서 다루는 주제는 광범위하다. 문화와 생물학적 진화, 웃음, 집단주의, 육식과 채식,
풍경, 발정기에 있어서의 남과 여, 도덕본능, 음악, 종교, 동성애...특히 왜 사람들이 이야기
을 꾸미고 즐기는가에 대한 진화심리학적 설명들은 기존의 틀에박힌 생각들을 깨주는
즐거움이 있다.  

진화심리학이 궁금하신 분들은 이 책부터 천천히 시작하시는 것이 어떠실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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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해한모리군 2010-06-30 10: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심리학은 과학이라는데 저는 왜 자꾸 점성술이랑 비슷해보이는지 모르겠어요 ㅎ
들으면 끄덕끄덕 하다가도 왠지 껴맞춘거 같은 느낌이...

머큐리 2010-06-30 13:50   좋아요 0 | URL
음...개별적인 심리분석은 저도 잘 모르겠지만, 큰 틀에서의 심리분석은 진화심리학이 인간을 이해하는데는 많은 도움을 주는 것 같아요...점성술도 고도의 심리적 전략이 들어있지요..ㅎㅎ
 
아무도 남을 돌보지 마라 - 인문학의 눈으로 본 신자유주의의 맨 얼굴
엄기호 지음 / 낮은산 / 200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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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자유주의에 대해 논란도 많고 그의 극복을 위한 대안들도 많이 나오고 있다.
'자유'라는 말에 유난한 애착이 많은 우리나라 사람들에게 이른바 새로운 자유란 무엇을 뜻할까?
이제 어느 곳에서나 등장하는 '신자유주의'라는 단어는 우리가 막연하게 생각해 온 '자유'라는
말에 대해 새롭게 접근하고 새롭게 사유해야 할 충분한 이유를 제공한다. 이 새로운 자유는 우리
에게 해방을 가져가 준 것이 아니라 또 다른 몰락과 공포를 가져다 주기 때문이다.  

자본주의는 그 출발에서부터  '자유'의 소중함을 알고 있었다. 
상업과 교역을 자유롭게 해야 하고, 그러기 위해서는 개인의 신체적 자유와 소유물의 배타적
지배의 자유를 누려야 했기 때문이다. 이러한 기본적인 '자유'가 전제되지 않고서 자본주의는
발전할 수 없다. 더불어 증가된 자유는 단순하게 소극적으로 타인의 영향으로 부터 자유로운
것 외에 사회적으로 평등한 기회의 보장을 강구하도록 했다. 여기서 민주주의와 사회권의식이
발생한다. 국가의 약자에 대한 배려와 통기기능에 있어서 국민의 보호가 첨부되었다.
경제적으로 자본활동의 자유로는 그 사회의 내적 갈등을 완화시키기 힘들기 때문이다. 더구나
두 번의 세계대전은 인류에게 커다란 각성을 촉구했다. 그러나 70년대 대두된 '신자유주의'는
80년대 현실적 정치적 힘을 얻음으로서 이전과는 근본적으로 다른 자본주의적 발전을 도모했
다. 세계화... 그 물결의 시작이 세계를 뒤덮으며 인간 삶의 조건을 극적으로 변화시켰기 때문
이다.  

이론적인 세계화가 경제학이나 사회학 교과서에 등장한지는 꽤 될 것이다. 그러나 우리가 현실로
겪어야 하는 세계화 즉 '신자유주의'는 1997년 부터 실제로 등장하기 시작한다. 국가 부도의 위기
에서 IMF가 강제하기 시작한 주식회사 대한민국의 구조조정은 '신자유주의'를 우리 피부 깊숙하
게 받아들기게 된 결정적인 계기가 된다. 이때부터 우리는 구조조정이니 자본의 민영화니 떠들
면서 경쟁과 효율이 최고가 되어버린 새로운 세계를 만나게 된다. 수많은 실업자들을 길거리에
내몰면서...  

흔히 MB정권의 행태가 민주주의를 10년을 후퇴시켰다고 이야기한다. 하지만, 이 책은 다르게
바라본다. 후퇴가 된 것이 아니라 신자유주의적 정책의 가속화에 따른 당연한 결과일 뿐이라
는 것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보면 진보정당의 실천이 왜 의미있는지 밝혀진다. 현재의 (진보적)
자유주의자들이 불신을 받는 이유 중 하나가 '자유'에 대한 불철저한 성찰에 있다고 할 수 있다.
이제는 단순하게 '자유'를 기본전제로 받아들일 수 없다. 신자유주의는 '자유'에 대한 새로운
성찰을 강요한다. 현재의 '자유'로는 자본주의를 극복할 수 없기 때문이다. 또한 그들이 신봉
하는 자유는 거꾸로 민주주의를 압살하기 때문이다.

흔히 맘몬이 지배하는 사회가 되었다고 개탄한다. 물질주의적 가치의 추구가 어떠한 가치보다
더 중요해진 세상이 되었다고 말한다. 그러나 이것은 당연한 수순이다. 사람들은 공포에 떨고
있는 것이다. 신자유주의 이데올로기를 수용하는 순간, 이제 모든 책임은 개인에게 돌아간다.
성공을 하건 실패를 하건 그건 온전하게 개인의 책임일 뿐이다. 거기에는 실패했을 경우 나락
으로 떨어지는 공포를 감내해야 한다는 것을 전제로 한다. 누가 나락으로 떨어지고 싶을까?
그러니 모두 성공을 외친다. 돈을 외친다. 그것은 생존이기 때문이다. 생존하기 위해서 살아
남기 위해서 물질을 추구하는 것이다. 그 심연에는 추방에 대한 공포가 자리한다.  
단순하게 물질만능주의 시대의 도래로 보기에는 그 공포의 심연이 너무 크다.  

자본주의 국가는 모든 국민을 보호한다는 전제 하에 수립되었다. 그러나 지금은 어떠한가?
국민들 중 일하고 세금을 내는 국민들만 보호된다.  그럼 국가가 보기에 필요없는 국민들은?
국가의 정책에 항의하는 국민들은? 모두 테러리스트가 되어 버린다. 용산의 희생자들은
'도심 테러리스트'라는 오명을 써야 했다. 이유는 단순하다. 자본의 논리를 거부하는 자국의
국민들은 국민이 아니다. 강제로 진압해서 척결해야 할 테러리스트일 뿐이다.
용산에서 쌍용에서 신자유주의자들은 국민을 보지 않았다. 테러리스트를 보았을 뿐이다.
이미 그들은 국가에서 보호해야 할 국민이 아닌 것이다. 그들이 가진 것이 없어서 자본에
저항했기 때문이다. 이제 국가는 국민을 보호하지 않는다. 자본의 질서에 편입해 순응하는
일부를 보호한다. 나머지는 감찰하고 저항하면 진압할 대상일 뿐이다.
지난 정부부터 진행되어온 신자유주의적 질서의 개편은 현 정부에서 더욱 맹목적이고 날
것으로 드러나는 것이다. 그래서 아무리 급진적 자유주의자라 해도 신자유주의에 대한
정확한 태도를 견지하지 않는 이상 그들은 어쩌면 협력해야 할 대상이 아니라 견제하고
비판해야 할 대상이 되어 버린다. 한나라당의 패배가 민주당의 승리로 귀결되어도 비판의
시선을 거두지 못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무엇으로 이러한 시대를 뚫고 나갈 것인다. 우리들에게 대안은 있는 것일까?
이 책은 명쾌하게 말하지 않는다. 다만, 이 '신자유주의'적인 질서에 대한 보다 심도 깊은
성찰을 요구한다. 그리고 주변에서 실천할 수 있는 일을 실천할 것을 권장한다.
촛불에서 보이듯 저항이 멈춘 것은 아니다. 물론 저항이 항상 성공하는 것 역시 아니다.
다만, 저항함으로서 우리는 돌파할 가느다란 틈새를 발견할 수 있는 것이다. 그 틈새가
어쩌면 우리를 구원한 튼튼한 동아줄이 될 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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