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화의 얼굴 - 총을 들지 않을 자유와 양심의 명령
김두식 지음 / 교양인 / 2007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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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의 커다란 주제는 평화이고 주요한 문제의식은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에 대한 인권침해이다.
정전상태의 한반도와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는 역사적으로 계속 충돌될 수 밖에 없고, 특정종교단체에 국한된 문제로 축소되면서 양심적 병역거부자들은 일종의 인권의 사각지대에 놓여 고통을 받을 수 밖에 없었던 과거를 정리하고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자들의 대체복무에 대한 논의들을 이끌어 내고 있다. 저자 스스로가 기독교인이기에 기독교적 신앙에 따른 병역거부에 대한 논의들이 대부분을 있다.  

이 책을 읽으면서 느끼는 가장 커다란 울림은 누구나 이야기하는 '평화'가 사실상 실천으로 옮겨지는 순간 얼마나 사람을 위협하는 위험한 사상으로 둔갑해 버리는가에 대한 역사적 사실이었다.  

아마 주변에 전쟁을 선호하거나 폭력을 선호하는 사람들을 찾아보기 힘들 것이다. 그러나 폭력과 전쟁에 대해 무조건 반대하는 사람을 찾아보기도 힘들 것이다. 그 미묘한 차이는 전적으로 폭력과 전쟁을 거부하는 사람들에게 항상 위협적인 요인이었다. 자신과 타자를 나누는 근대적 세계관으로 볼 때 타자의 위협은 극대화되기 마련이고 이에 대한 대응으로서의 폭력과 전쟁은 용인해야 한다는 논의들이 대세를 이루기 때문이다. 여기에 절대적 평화를 이야기하는 사람들은 몽상가들이거나 심지어 배반자로 낙인 찍히게 되고 그들이 사회의 동질화를 거부하는 순간 바로 경계로 밀려나 버리게 된다.  

이미 서양의 역사는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자에 대한 대체복무나 병역면제에 대한 조치들을 행하고 있다. 그러나 한반도에서는 남이고 북이고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에 대해 매우 강경한 조치들을 취하고 있다. (이런거 보면 한민족이 맞나보다) 군사적 대치와 전쟁의 기억으로 인한 정신적 외상과 군사독재정권의 배경까지 같다보니 병역거부에 대한 강한 거부감을 가지는 모양이다. 남쪽은 종교적 덧칠까지 칠해져 있다. 주류 기독교 자체가 권력과 야합하면서 군대에 목사까지 파견하는 실정이고 적들의 섬멸을 기도하는 종자들이라 그들이 말하는 그리스도의 평화는 불신자를 박멸하는 폭력을 허용하고도 남는다. 오히려 교리가 다른 여호와의 증인들이 신앙을 위해 병역거부를 할 때 더욱 혹독하게 몰아붙이는 경향까지 있고, 양심적 병역거부에 대한 대체복무까지 특정종파 보살피기로 파악하는 편협한 이기주의를 보이고 있다.  

기독교인으로서의 저자는 기독교 내부의 평화전통을 되살리고, 기독교야 말로 평화의 종교임을 그리고 평화를 위해 양심적 병역거부를 선언한 사람들을 보호해야 함을 역설하고 있다.  

사실 양심적 병역거부가 문제가 되는 것은 시민혁명의 발발과 관련이 있다. 국가가 일정 나이의 국민을 징집하여 전쟁을 벌이는 근대에서야 양심적 병역 거부의 문제는 전면화 된다. 누구든지 국가의 부름을 받으면 나가야 하는 획일화된 행동패턴은 그 이외의 사고와 행동을 용납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사람을 죽일 수 없다는 신념과 평화를 원하는 마음에 대한 확고한 견해는 바로 탄압의 빌미가 될 수 밖에 없었다. 적들이 너의 가족을 죽이고 유린하는데 너는 아무 저항도 하지 않을 것인가..... 이것이 국가의 주문이었다.   

'정당한 전쟁'이론도 있다. 그러나 사실상 대량학살이 발생되는 현대의 기계전에서 과연 민간인이 희생을 당하지 않는 정당한 전쟁이라는 것이 존재할 수 있는지 의아스럽다. 정당한 전쟁은 용인하는 순간 정당한 전쟁에 대한 논의를 진행해야 할 것이고 정당한 전쟁의 요소들을 아무리 치밀하게 구성한다해도 전쟁으로 무고한 사람이 죽는다고 한다면 결국 정당성을 인정 받을 수 없기 때문에 정당한 전쟁은 내부 모순으로 무너지고 만다.
어쩌자는 말일까.... 전쟁이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병역을 이행하면 된다. 다만, 자신의 양심상 병역을 이행하지 못하는 사람들에 대해서는 그 사람의 견해와 양심을 존중하여 대체 복무의 길을 열어 주자는 이야기다. 그리고 그에 따른 일체의 차별을 없애자는 것이다.  

수긍할 수도 있고 거부할 수도 있을 것이다. 개인적으로 평화에 확고한 인식을 가진 사람들에게 대체목무의 길을 열어 주는 것이 합리적이라 생각한다. 그러나 연애인이 군대가는 것을 '노블리스 오블리제'라고 찬양하는 덜떨어진 국회위원이 존재하는 이 땅에서 군대는 영원한 정신적 외상일 수 밖에 없고 대체복무에 대한 논의는 병역회피의 좋은 구실로 여겨질 수 밖에 없는 구조인 듯하다. 

서양에서 먼저 진행되어 건너온 논의라 서양의 사례가 중심이 될 수 밖에 없고, 기독교 문명이 강하다보니 양심과 종교의 자유에 따른 병역거부가 중심이 될 수 밖에 없는 한계가 있지만, 종교적 이유말고 이데올로기와 사상에 따른 병역거부의 사례가 좀 더 많았으면 하는 아쉬움이 있다. 
(그건 그냥 욕심이고 투정일 뿐이라는 것도 알고 있다.) 

종교와 군대와 양심과 평화와 무엇보다 인간의 실천에 대해 많은 생각을 하게 해주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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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짓말의 진화 - 자기정당화의 심리학
엘리엇 애런슨.캐럴 태브리스 지음, 박웅희 옮김 / 추수밭(청림출판) / 2007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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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스로가 거짓말을 하고 있다는 것을 느끼지도 못하고 거짓말을 할 수 있을까?
인간은 거짓말 하는 존재이다. 의식적으로 거짓을 말하건 무의식적으로 거짓을 말하건
인간은 다른 사람을 속이는 존재이고 심지어 자신까지 속이는 존재이다.  

왜 거짓을 말하는 것일까? 이 책은 인지부조화와 거짓에 대한 인간의 심리를 이야기한다.
인지부조화란 불편함이다. 무언가 자신이 믿는 것과 현실이 맞지 않을 때, 사람은 심리적인
불안에 빠져 버린다. 이때 인간의 뇌는 불안을 제거하기 위해 자신의 정체성을 굳건하게
유지하는 방향으로 그 불편함을 해소하는데 여기에서 기억의 조작이 실현되는 것이다.  

인지부조화를 해소하는 것에는 장점이 있다. 인지부조화를 해소하지 못하면 인간은 만성
불안에 시달리며 자신의 정체성을 잃어 버릴 수 있기 때문인데, 그런 불안을 해소하기 위한
인간의 진화는 다른 한 편에서는 심리적 안정을 가져오기도 하지만 다른 한 편에서는 인간
스스로가 함정에 빠지는 오류를 범하기도 한다.  

이 책에서 예를 드는 자기정당화의 거짓에 대한 사례는 사람들이 심리적 안정을 위해 어떤
자기기만을 행하는지에 대한 생생한 증언이다. 특히 자신의 정체성을 구성하고 있는 기억
조차 자신의 정당화를 위해 마사지 당한다고 하면 그야말로 인지부조화를 해소하기 위한
심리적 완충 작용이 무엇을 의미하게 되는지 의아스러울 지경이 되어버린다. 다들 알고
있지만 우리의 기억은 완벽하지 않다. 오히려 우리가 기억하고 싶은 것만 기억한다.
아니 기억을 조작해 버린다. 무의식으로 조작당하고 조금씩 변형되기에 명백하게 알지
못할 뿐이다. 결국 개인의 역사도 승리자의 역사이고 패배한 역사는 사라지는 것이다.  

자기정당화를 행하는 인간은 오만하고 독선적이기 쉽다. 특히 권력자의 경우 자기정당화를
하기 시작하면 그 폐해는 걷잡을 수 없어진다. 자신이 잘못 생각했을 것이라곤 전혀 고려하
지 않는 독선적 행태는 이미 3년에 걸쳐 뼈저리게 느끼고 있는 중이다. 자신이 편하고자
정당화를 행할때 다른 사람들의 고통은 고려되지 않는다. 오히려 자신의 올바른 이야기를
왜곡하거나 오해하고 있다고 판단한다. 국민이 반대하는 4대강 개발에 대한 청와대의 지시는
항상 국민이 무언가 잘 모르기 때문에 반대한다는 결론을 내는데 여기에는 통치권자의 자기
정당화에 대한 힘이 작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자기정당화를 위해서는 타인을 악으로 만들어야 한다. 그래야 자기정당화의 마법이 강력하게
효력을 발휘하기 때문이다. 인간은 누구나 실수를 한다. 문제는 그 실수를 솔직하게 인정하고
다시 반복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인데 자기정당화의 덪에 걸리면 실수을 인정하지 않고 주변의
여러가지 요인이나 사람들의 탓으로 돌리고 자신의 책임을 경감하거나 무시하게 된다는 것이
다. 이 사실에서 타인에 대한 왜곡과 편견이 생기고 결국 파국으로 치닫게 되는 것이다.
그 파국의 와중에도 자신은 결코 잘못되지 않았다는 것이 자기정당화의 심리가 될 것이다.  

인지부조화의 두려움을 떨쳐버리고 사실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는 용기.. 평범하면서도 행하기
어려운 그 덕목을 주시해야 한다. 인간은 단순하게 먹기 위해사는 존재는 아니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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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철나무꾼 2011-01-05 04: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니 이 책에서 자기 정당화 까지는 이해할 수 있겠는데...
4대강 개발 까지요~?^^
인지부조화라잖아요,ㅋ~.

새해에도 건필하시구요.
좋은 글들로 좀 더 자주 뵐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머큐리 2011-01-06 08:32   좋아요 0 | URL
새해에도 양철님의 서재에 많이 놀러갈께요..^^

마녀고양이 2011-01-05 10: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자기정당화가 쌓이면, 참 걷잡을 수 없죠...
"문간에 발들이기" 이론이라던가요? 처음 발 넣기가 어렵지,
한번 발을 들여놓으면 쑤~욱 들어가기는 쉽다잖아요. 문득
'우리는 3분에 한번씩 거짓말을 한다' 라던가 하는 책 제목이 생각나네요.
아마... 의식하지 못 해도, 꽤나 거짓말을 하고 살거예요, 우리들 모두.

머큐리 2011-01-06 08:33   좋아요 0 | URL
심리학책이야 마고님께 한 수 배워야 할텐데요..ㅎㅎ
마고님..날 추운데 건강 조심하시고...
 
인문학, 세상을 읽다 - 인문으로 읽는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박민영 지음 / 인물과사상사 / 200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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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에게나 세상을 바라보는 관점이 있을 것이다.
관점은 창과 같이서 테두리가 한정되어 있는 그 너머를 보지 못하는 단점이 있다. 하지만 인간은 테두리를 넘어서지 못할 망정 관점이 가진 효용성을 알기에 그대로 진화했나 보다.  

인문학은 어쩌면 고답적인 학문이다. 그때 그때의 시류도 중요하지만, 뭔가 근원적인 문제에 대한 탐구가 우선이기에 정체되어 보이기도 한다. 최근의 인문학 위기 담론과 더불어 인문학을 실용과 결합시키려는 경향성이 눈에 많이 띄인다. 광고를 통해 인문학과 창조성의 문제를 연관시킨 책도 있고, 인간의 문제를 효율적으로 풀어내려는 경영과 인문학과 접합시키려는 시도도 보인다. 결국 인문학이 무용한 학문이 아니고 적용하기에 따라서 무궁한 쓰임새(?)가 있다고 주장하는 폼새인데 글쎄다... 난 무용한 인문학이 더 맘에 와 닿는다.  

그럼에도 인문학이 아무런 용도가 없음은 아닐 것이다. 근원을 파헤쳐 무엇인가를 궁리한다는 것은 무용해 보임에도 그 속의 유용함이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것이 실용적으로 판명되지 않을 지라도 인간과 인간이 섞여 살아가고 있는 이 사회를 이 시대를 읽어나가는 힘이 되는 것도 사실일 테다. 그렇지 않다면, 인문학이야 말로 무슨 필요가 있겠는가? 이 책의 부체가 '인문학으로 읽는 정치,경제,사회,문화'다. 인문학적 소양을 기반으로 이 사회의 전반을 두루 살펴보겠다는 의도이고 시도이다. 그건 고답적인 학문이지만 현실에 대한 균형감각을 잃지 않고 오히려 더 인문학을 통해 깊이있는 통찰을 할 수 있다는 선언이기도 하다.  

여타의 실용을 강조하는 인문학 서적과는 그 의도가 틀린 이 책의 장점은 역시 사람을 소외시키는 제반 사회현상에 대한 비판적 주시이다. 인간은 어쩔 수 없는 환경의 동물이다. 환경의 변화에 따라 인간의 태도와 생활은 변할 수 밖에 없다. 그것을 통찰해 내기는 쉽지 않다. 환경에 적응하다보면 환경자체를 당연시 여기게 되기 때문이다. 인문학의 힘은 그 당연함을 낯설게 보게 하는 힘일 것이다. 그럴때 자신의 인식의 틀 너머에 있는 새로운 것을 알게된다. 이 책의 역할은 결국 그러한 새로움으로의 초대인다.  

경제가 만능인 사회에서 정치와 경제의 관계를 묻는다. 경제가 정치를 좌지우지하면서 일어나는 모순된 현상들에 대한 고찰은 익숙하면서도 새롭다. 세상을 보는 관점은 욕망으로만 해결할 수 있는 것은 아닌가 보다. 경제에 관한 시선도 참신하다. 특히 신자유주의 경제질서를 주도하며 성장한 금융자본주의에 대한 통렬한 비판과 자유무역의 허구성에 대한 지적은 계속 고개를 끄덕이게 한다. 이 땅에 대한 부동산 문제도 그렇고... 그런데 출구가 보이지 않는다. 경제적인 문제를 경제로 해결하기 어려운 것은 경제도 결국 인간의 활동이라서 그렇다.  

가장 참신했던 시선은 노마디즘에 대한 비판이라 하겠다. 내가 즐겨 읽는 많은 철학자들과 사회학자들에게 보기 힘든 들뢰즈에 대한 비판은 신선하기 까지 하다. 노마드의 현실을 직시한다면 결국 신자유주의적 질서로 회귀하게 된다는 분석은 참고할 만 하다. 예전에 '유목주의는 침략주의'라고 주장한 어느 책이 혹독한 비판에 직면했다는 점에서 아직 들뢰즈는 이 땅에서 많은 영향력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완벽한 이론과 사상은 없는 법! 들뢰즈의 소수자에 대한 애정과는 별도로 한 번 따져볼 건 따져봐야 할 듯하다.  

총체적인 난맥상으로 병든 사회를 진단하는 글들도 탁월하다. 전문화의 환상과 노동의 소외를 다룬 글들도 그렇고 디지털 시대의 인간의 문제, 광고와 언론에 대한 분석도 좋다. 결국 이러한 문화적 환경이 현대인들을 얼마나 병리적으로 몰아가고 있는지... 결국 개인의 병리적 현상은 개인의 문제가 아닌 사회적 문제라는 인식에 도달한다. 인간과 인간의 관계 설정의 문제는 사회의 문제이고 이건 결국 인문학이 영원이 풀어내야 할 숙제임은 틀림없어 보인다.  

시류적인 글 속에서 느껴지는 인간에 대한 부단한 탐구가 돋보이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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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철나무꾼 2010-10-14 00: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요즘 책들을 읽으면서 제가 고민하는 부분이 바로 사람의 위치 설정에 대해서 입니다.
관심가는 책이고 관심가는 리뷰입니다~^^

머큐리 2010-10-14 18:25   좋아요 0 | URL
아마 평생토록 고민해야 할 부분이 사람의 위치 설정이 아닐까하는 생각을 해 봅니다. 양철댁님 힘 내세요..^^

호우 2011-12-08 01: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인문학으로 보는`이라는 제목으로 시작되는 글들이 참 많아지는 요즘입니다. 저도 하나 의뢰받았는데.. 한참써놓고 보니 인문학으로 보는 글이라는게 어떤건지.. 먼저 알아야겠더군요. 물론 인문학적 소양이 부족한데 의뢰받은 주제라 그렇습니다. 아무튼 이런 숙제를 해결해 나가는데에 큰 도움이 되었습니다. 감사합니다.
 
불편해도 괜찮아 - 영화보다 재미있는 인권 이야기
김두식 지음 / 창비 / 201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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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성과 논리도 중요하다. 하지만 감수성 역시 중요하긴 마찬가지다.  

김두식교수의 목소리는 나직하고 설명은 조근조근하다. 그러나 그가 낮은 목소리로 말하는 내용은 힘차다. 너무 힘차기 때문에 가끔은 숨이 가빠지곤 한다. 항상 자신을 낮추면서도 글을 읽는 사람들에게 힘있게 설득하는 모습은 김교수가 가지는 힘이다.  

제목부터 도발적이다. 불편해도 괜찮다니... 조금만 불편해도 사람들은 짜증내고 화내고 당장 무언가를 하지 않으면 못견디는 이 시대에 불편해도 괜찮다니... 편의성이 가장 우선시 되는 시절에 불편을 강조할 수 밖에 없는 사연은 간단하다. 모두 편하게 살 수 있는 세상은 허상이고 정말 편한 세상을 위해서는 불편함을 감수해야 하는 것이다.  

인권을 이야기 하는 책이다. 더불어 영화를 이야기하는 책이다. 다행스럽게 이러저러한 영화를 많이 본 덕분에 책의 맥락을 따라가기는 어렵지 않았다. 다만, 내가 본 영화와 이 책에서 설명하는 영화는 정말 같은 영화일 수 있는가 할 정도의 느낌이 틀릴 뿐이다. 그 차이가 바로 감수성의 차이고 감수성의 차이를 가로지르고 있었던 것은 '인권'이었던 것이다.  

이 책은 다수자에게 소수자를 이해시키기 위한 책이다. 주류이고 다수자인 나는 이 책의 고민을 공유하지 않을 수 없다. 아니 내가 가지는 시각을 전면적으로 교정시켜 주는 역할을 한다. 소수자와 다수자는 숫자를 가지고 나누는 것은 아니다. 숫자가 크다해도 이 사회의 약자들이라면 소수자일 수 밖에 없다. 청소년, 성소수자, 여성, 장애인, 노동자, 양심적 병역거부자들의 문제를 다루고, 더불어 사회를 어둡게 하는 사전검열과 인종차별, 제노사이드 문제를  다루고 있다.  

주변에서 많이 보지 않기에 보이지 않는 사람 취급을 받는 이 소수자들이 어떠한 삶을 살고 있는지 어떤 처지에 있는지 결국 그들과 우리는 다르지 않다는 이야기를 많은 영화를 매개로 설명하고 있다. 영화만으로도 인권을 다시 생각할 수 있는 영상교재 커리큘럼을 만들 수 있을 정도다.  

반드시 명심해야 할 경구들도 많다. 이를테면...

   
  모든 사회문제는 이런 양면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한쪽 이야기만 듣고 그쪽 논리를 따라가면 오히려 속이 편하지만, 양쪽 이야기를 듣고 나면 머리가 아픕니다. 그런 헷갈리는 상황에서 기억할 만한 원칙이 바로 '의심스러울 때는 약자의 이익으로' 해석하라는 것입니다.  
   

똥파리에 나오는 대사도 인상적이다 

   
  아, 이나라, 씨발. 애비들은 아주 좆같애. 이게 븅신들 같은데 지 가족들한테는 아주 김일성같이 굴라 그래. 이 씨발놈들이. 니가 김일성이야. 이 씨발새끼야. 김일성이야. 이씨발놈아  
   

가부장제와 폭력의 상관관계를 이렇게 노골적으로 말할 수 있을까?
김두식 교수는 인권을 아주 쉽게 정리한다면 결국 '남에게 대접받고자 하는 대로 남을 대접하라'는 황금율로 요약할 수 있다고 한다. 역지사지라고 남의 처지가 되어보지 않는다면, 그 사람에 대한 온전한 이해를 하기 힘들 것이다. 위치를 바꿔보는 것. 중요한 일이다.  

사람들이 위치의 전환을 하지 않는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오히려 생활하면서 끊임없이 위치의 전환을 시도할 것이다. 다만 그 위치를 위로 향하고 있다는 사실이 문제라면 문제일까? 낮은 곳에 위치한 사람들을 이해하기 보다는 패배자로 규정하고 연대하기 보다는 멀리해야 할 대상으로 여긴다. 자신은 그렇게 살지 않고 끊임없이 위로 가려고만 한다. 자신의 미래상에는 아래는 존재하지 않는 것이다. 설사 아래를 생각해도 그건 어느 정도 자신의 위치를 확보한 후에야 가능하다. 사람들도 낮은 위치에서 부르짖는 외침은 불평, 불만의 소리라고 치부하고 어느정도 기득권자가 주장하면 개혁적이라 평가한다. 웃기는 일이지만 현실이다.  

김두식교수자체도 기득권자가 아니라 할 수 없다. 그는 이 땅에서 최고로 여기는 대학을 졸업하고 고시합격에 지금은 대학교수다. 현판으로만 따지면 어디하나 부족함이 없는 사람이다. 그런 사람이 말하는 인권의 가치를 보면 사람들이 고개를 끄덕일만 하다. 그러나 이 사람의 글 속에는 그런 오만함이 없다. 계몽적이지 않고 그저 현실의 부당함을 잔잔하게 끄집어 낸다. 그리고 자신의 고민도 그대로 투영시켜 낸다. 그래서 설득력이 더 있는지 모르겠다.  

이 책의 저자는 김두식이나 기획은 국가인권위원회다. 인권을 생각한다면, 그리고 인권이 무엇을 뜻하는 것인지 생각해 본다면 결국 사람이란 어떤 존재인지를 생각해 봐야 한다. 그리고 사람과 사람의 관계란 어떠해야 할 지를 생각해 봐야 한다. 그런 관계에 대한 질문을 영화를 통해 풀고 있는 이 책은 어떤 인권 교과서 보다 구체적이고 설득력이 있어 보인다. 그건 아마 김두식이란 사람이 품고 있는 진정성 때문이 아닌가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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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마음껏 살아라! - 생의 끝자락에 선 아버지가 아들에게
티찌아노 테르짜니 지음, 이광일 옮김 / 들녘 / 201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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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을 목전에 둔 아버지가 아들에게 자신이 살아온 인생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준다. 죽기 전에 아들에게 꼭 들려주고 싶었던 이야기는 무엇이었을까? 

테찌아노 테르짜니는 1938년 이탈리아 피렌체의 가난한 집안에서 태어나 성장하고 1972년에서 1997년까지 독일의 세계적인 시사주간지 '슈피겔'의 특파원으로 홍콩, 베이징, 도쿄, 방콕, 뉴델리에서 주재하면서 베트남 전쟁, 캄보디아 내전, 문화혁명 후의 중국 등 아시아의 격동적인 현장을 누비고 다녔던 기자였다.  

저자가 태어나고 자라난 시대는 2차대전 이후의 경제 성장기였고, 젊은 시절 68혁명을 경험하고 제3세계에서 식민지 독립운동이 활발했던 시기이며, 정체되기 시작한 서구 운동에 아시아가 새로운 가능성을 던져주던 시대였다. 특파원으로서 기자로서 그리고 마오와 간디에게 많은 영감을 얻었던 저자는 아시아 특파원 생활을 통해 이상과 현실의 문제, 정치와 개혁의 문제 등에 대한 많은 생각을 했던 것 같다. 특히 서방기자였지만, 베트남 전쟁에서 당파적인 입장에서 미국이 침략전쟁을 반대했고, 중국의 문화혁명에 대한 지지를 보냈지만, 혁명 후 경직되어가는 사회를 보고 많은 절망을 한 것 같다.  

이 책에서 말하길 혁명은 사회개혁의 문제가 아니다. 오히려 혁명은 사람의 문제이다. 사람이 변하지 않고 또는 사람을 변화시키기 위한 혁명은 그 자체로 재앙이 되어 버렸다. 세상에서 사람을 가장 많이 죽인 정치가들은 그들이 미쳐서가 아니다. 그들은 일관된 자신이 계획과 논리로 무장하고 있었고 흔들림없는 신념이 있었다. 그리고 외적 강제로 사람들이 변할 수 있다고 보았다. 그러나 그것은 허상이었으며, 사람들은 결코 그렇게 쉽게 변할 수 있는 대상이 아니었다. 여기에서 그는 정치의 무용성을 발견하고 인간 존재 그 바닥까지 떠나는 여정을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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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철나무꾼 2010-10-09 05: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내가 '조선일보'문제에 엄격한 이유는 '조선일보'문제를 대단한 일로 생각해서가 아니라 기본이라 생각하기 때문이야.만 명의 사람에겐 만 개의 생각이 있을 수 있어.그러나 사람에겐 사람임을 증명하는 기본이라는 게 있고 '조선일보'와 상종하지 않는 건 그 가운데 하나야.'조선일보'에 글 쓰는 놈은 나쁜 사람이 아니라 사람이 아니야.

김규항의 한구절이 생각나서 옮겨봤어요.
리뷰가 '작성중'이었군요.이런 방법도 있네요.
'혁명은 사회개혁의 문제가 아니라,사람의 문제가 아니다'
이 구절에 밑줄 쫘악 그어 데려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