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생 1~9 완간 박스 세트 - 전9권 - 아직 살아 있지 못한 자 미생
윤태호 글.그림 / 위즈덤하우스 / 201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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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 책값을 마지막으로 할인하는 시즌에 구입했음을 고백한다.

그리고 드라마의 인기에 영합했음도 인정한다.

그러나 드라마는 한 편도 보지 못했다. 그건 집에 케이블 방송이 나오지 않기 때문이고 아무리 재미있는 드라마라해도 인터넷을 뒤져가며 시청하지 않기 때문이다.

 

물론 가끔 웹툰으로 본 건 사실이다. 장그래가 인턴으로 합격했을때 붉은 눈의 오차장이 장그래를 끌고 간 곳이 쌍용자동차 희생자들의 영정이 있는 경복궁이었던 장면에서 울컥했던 기억이 아련했다. 그럼에도 처음부터 스토리를 잇지 못하고 띄엄띄엄 본 웹툰을 다시 정주행하기 어려웠고 결국 드라마의 인기와 도서정가제 시행 전의 할인행사를 통해 이 만화책을 구입할 수 밖에 없었다.

 

조그만 중소기업에서 직장생활을 하는 나에게도 미생의 직장인은 낯선 사람들이었다.

대기업을 다니지 못한 나로서 이 스토리는 그냥 환타지다. 어쩌면 직장인이란 이런 사람들이어야 한다는 롤모델을 전시한 듯한 이야기들...

 

우스개 소리가 있다. 아마 미생이 방송되면서 사장들의 눈높이가 많이 높아진 모양이다. 계약직이라도 신입사원들의 프리젠테이션은 방송에 나온 정도의 수준은 되야 된다고 생각한다나 어쩐다나..

여기서 자본이 원하는 노동에 대한 사회적인 편견을 읽는다. 돈을 적게 주고도 업무능력이 뛰어나고 열정적인 노동자를 뽑고 싶다는 열망... 미생은 아직 완생이 되지 못한 자들에 대한 사회적 고발보다 미생임에도 살아남기 위해 노력하는 젊음의 기특한 자기계발서로 읽힐 수도 있겠구나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럼에도 이 만화가 기지는 미덕이 있다.

그 미덕은 이 사회가 가지고 있는 불공정함에 대한 비판과 이 시대 젊은이들에 대한 안타까운 공감대가 잘 그려져 있는 것이다. 무엇인가 생활을 위해 노력하고 땀흘리는 사람들의 일반적인 이야기들, 영웅적이지 않지만 사회의 한 자락에서 묵묵히 일하고 생활한다는 것 자체가 얼마나 힘겨운 일인지 담담하게 풀어가는 이야기에서 느끼는 공감대는 판타지임에도 불구하고 이 작품이 현실적인 리얼리티를 결코 잃지 않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하나 쓰라린 현실...

난 이 만화를 통해서 이 사회의 노동의 구조가 얼마나 왜곡되고 어긋나 있는지 떠들었고 주변의 사람들에게 드라마를 보든 만화를 보든 미생을 좀 보라고 선전하고 다녔다.

어느 날 내가 알고 있는 한 계약직 사원에게 이 만화를 본 적이 있냐고 물었다. 그는 보지 않았다고 했다. 나는 참 좋은 작품이니 꼭 한번 보라고 말했다. 그때 그가 한 대답에 난 아무말도 하지 못했다.

 

"보면 눈물이 나올 것 같아서 못 보겠어요...."

 

아.. 얼마나 창피하고 부끄럽던지... 이 만화가 아니라도 주변에 그렇게 많은 미생들이 있다는 것을 안다고 했는데.. 얼마나 관념적인 사고였는지...

아는 만큼 보인다는 말이 있다. 어쩌면 눈물 없이 이 만화를 끝까지 읽어내려간 나는 아직도 한참 멀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결국 미생을 통해 난 또 한번 죽비로 호되게 등짝을 맞고 정신이 번쩍 들었다고 해야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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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멸감 - 굴욕과 존엄의 감정사회학
김찬호 지음, 유주환 작곡 / 문학과지성사 / 201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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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성이냐 감정이냐?

예전 같으면 무조건 이성이 우위라고 말하겠지만, 지금은 감정이 우선한다고 말해야겠다. 감정의 힘은 이성을 복종시킨다. 강정이라는 강력한 엔진으로 인해 벌어진 행동을 이성은 사후적으로 합리화한다. 인간은 이성적이라기 보다 감정적인 동물이다.

 

감정의 흐름이 개별적인 것만은 아니다. 물론 개개인의 감정은 온전히 그 사람만의 것은 틀림없지만, 개개의 감정도 사회에 영향을 받지 않을 수 없다. 여기서 이 책은 심리학적인 분석에서 사회학적인 분석으로 넘어간다. 한국 사회에서 유력하게 나타나는 감정적 키워드는 무엇일까? 저자는 '모멸감'을 키워드로 삼았다.

 

모멸감...모욕과 멸시를 합친 말이다. 저자의 주장에 따른면 이 사회는 모멸감이 넘실거리는 사회다.

모멸은 모욕하고 경멸하는 거, 즉 마음으로 낮추어 보거나 하찮게 여기는 것이다. 다시 말해 다른 사람을 의도적으로 또는 무심코 격하시키고 그 존엄성을 부정하는 것, 상대방을 비하하고 깔아 뭉갬으로써 수치심을 유발하는 행위다. 그러한 대접을 받는 사람이 느끼게 되는 감정이 모멸감이다.

모멸은 인간이 모든 것을 다 포기하고 내준다 해도 반드시 지키려는 그 무엇, 사람이 사람으로 존립할 수 있는 원초적인 토대를 짓밟는다. 그런 처지에 몰리면 인간이 처할 수 있는 가장 밑바닥에 떨어졌다고 느끼면서 자신 또는 남을 죽이고 싶은 충동마저 일어날 수 있다.

 

모멸감을 유발하는 상황은 매우 다양하다. 저자는 모멸감을 느끼는 범주를 비하, 차별, 조롱, 무시, 침해, 동정, 오해 등 7가지 범주로 나누어 설명한다. 물론 이는 개념적인 분류일 뿐 명확하게 구분되는 것은 아니다.

 

다름 범주들이야 이해가 간다 해도 '동정'의 경우는 좀 의하할 지 모른다. 힘들게 살아가는 사람을 보면서 가슴 아파하는 것은 인지상정이다. 그러나 타인의 상황에 대한 단정과 피상적인 감정이입이 정작 당사자들에게는 지극히 불편할 수 있음을 유념해야 한다. 어쩌면 우리는 값싼 동정으로 타인을 이해했다고 하면서 잊어버리는 것인지 모른다. 그들의 존재가 단지 나의 행복을 확인하는 배경으로만 여겨진다면, 그들은 한낱 대사이나 수단에 머물고 만다. 나와 그들 사이에 인격적인 관계는 성립하지 않는 것이다.

 

이 책에서 특히 많이 등장하는 것은 '감정노동'이다. 소비자는 왕이라는 구호가 실질적인 지위확인으로 등장하는 이 사회에서 감정노동자는 노동자라기 보다는 노예이다. 모든 사람이 노동자이고 소비자인 사회에서 소비자의 지위로 타인을 억압하는 풍토가 만연하다는 것은 아이러니한 일이자 내면화된 경쟁의 부작용이 표출되는 현상일 뿐이다.

 

물론 대안은 있다. 모두가 다 알고 있는 대안, 사회를 구조적으로 변경시키고 내면의 힘을 길러야한다. 항상 그렇듯이 대안이 대안으로 작동하려면 실천이 중요해진다. 그리고 항상 그것이 문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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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을 공유하시겠습니까? - 셀카 본능에서 잊혀질 권리까지, 삶의 격을 높이는 디지털 문법의 모든 것
구본권 지음 / 어크로스 / 201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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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시대의 문법이 바뀌었다. 세상은 하루하루 눈부시게 변해가고 있고 변화를 따라 잡기에도 허덕이는 시대다. 특히 빠르게 발전하는 디지털 세상은 조금만 방심하면 뒤쳐지는 느낌을 갖게 한다. 이 변화를 일견 긍정적이기도 하고 한편으론 부정적이기도 하다. 모든 사람들이 지식과 정보를 손쉽게 접하고 거리를 지우고 언제나 만나고 싶은 사람과 연락할 수 있으며, 이전보다 자신을 대중앞에 드러내기 쉬운 시대이기도 하지만 그에 대한 숙고 없이 지내다 개인의 프라이버시를 침해당하고 거대 권력으로 부터 자신의 일거수 일투족을 감시당하는 시대이기도 하다.

 

정보의 확산과 공유는 디지털 시대의 정신이기도 하다. 이러한 디지털 정신은 개개인에게 이전과는 다른 권력을 주었다. 거대 권력기과에 맞서는 개인의 힘은 과거에 비해 커졌지만, 동시에 국가기관의 힘도 비약적으로 커졌다. 우리들이 1984를 끊임없이 되뇌이는 이유다. 


실제 모든 정보는 충분히 약탈되고 공유될 수 있다. 이러한 세상에서 살아가기 위해 해야 할 개인적인 지침은 무엇일까? 일단 디지털 세상에서 자신의 존재를 지우는 방법은 없다. 심지어 과거의 행적도 지울 수 있는 방법은 없다. 과거는 포기하는 것이 좋다. 웹상에 공개된 정보를 지우기보다는 향후 자신의 행적을 통제하는 것이 현명하다. 문제는 향후 자신의 행적을 디지털 세상에서 드러나지 않게 하기 위해서는 디지털 기기들을 버려야 한다는 것이다. 스마트폰부터 외부와 접속하는 모든 기기를 사용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다. 심지어 교통카드기 되는 신용카드마저도....


이러한 것은 결국 세상으로 부터 철저하게 고립되는 것이다. 이건 사실상 현실적인 대안은 아니다. 이 시대는 자신을 스스로 노출하는 시대이지 자신을 감추는 시대가 아니다. 이미 SNS를 통해서 자신을 모든 사람들에게 노출하는 것을 아무런 문제의식없이 행하고 있다. 이미 페이스북이나 트위터는 초기 설정부터 스스로를 노출하도록 초기화 하고 있다. 이러한 정보는 결국 어디론가 흘러가 어떻게 사용될 지 아무도 모른다. 다만, 최근 빅데이터 이론을 보면 이렇게 모집된 정보는 국가나 기업의 중요한 자료로 활용될 수 있다는 것이고 실제 활용된다는 것이다. 


이제는 페이스북의 글이나 트위터의 글이 법정의 중요한 증거로 채택되고 있다. 개인의 생각을 증명하는 주요한 자료가 된다. 결국 아무생각 없이 그때 그때의 소회가 자신을 얽매는 동아줄로 변할 수 있다. 그 상태에 도달하기 전에 자신이 느끼지 못할 뿐이다. 디지털 시대에 잊혀질 권리가 대두되는 이유다. 


이 책의 장점은 단순하게 정보 통신에 대한 안내뿐만 아니라 디지털 시대의 삶의 풍경이 어떻게 변화되고 있는 가를 고민하게 만든다는 것이다. 삶의 태도와 행태가 달라지고 있다. 시간에 대한 감각에서 부터 교육문제까지 이 책이 전달해 주는 이야기는 간단하게 여길 수 없다. 


정보화 시대에 개인이 살아가는 방법은 무엇일까? 정보화 시대를 살아가기 위해 개인이 최소한도로 알아야 할 지식은 무엇일까? 이 정보화 시대가 인류를 어디로 이끌고 갈 것인가?

이 책은 장미빛 미래라고 칭송되는 정보화 시대의 어두운 일면도 친절하게 가르쳐주고 있다. 그 어두운 일면을 인식하지 않고 정보화시대를 말하는 것은 스스로를 족쇄로 채우는 일이다. 


디지털시대의 노예로 살 것인가 주인으로 살 것인가? 시대의 흐름에 떠밀려 갈 것인가 현명하게 항해해 갈 것인가?

다시 한 번 묻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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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망의 배신 - 화이트칼라의 꿈은 어떻게 무너지고 있는가 바버라 에런라이크의 배신 시리즈
바버라 에런라이크 지음, 전미영 옮김 / 부키 / 201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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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얘기다.... 미국의 교육받고 멀쩡하게 직장을 다니던 사람들이 어느 날인가 벼랑으로 몰리기 시작한다. 물론 경기 좋을 때야 잠시 직장을 쉬고 다른 직장을 구하면 된다. 문제는 이게 쉽지 않다는 것이다. 쉽지 않은 정도가 아니라 실업은 곧 전반적인 실패로 귀결되고 만다.

 

미국얘기다... 그런데 마치 이 땅의 얘기 같다.

마흔 줄 넘어 다니던 회사에서 짤려나간 친구가 있다. 재경쪽 일을 보는 친구였는데 회사의 인력 감축으로 권고 사직을 받았다. 노동법에 따라 이 친구는 1개월치 월급을 받고 퇴사 했는데... 부인과 자라는 애들 둘을 키우기 위해서는 어서 직장을 구해야 한다. 실업급여도 대략 6개월 정도 밖에 받지 못하는 상황이고 실업급여를 받는 다는 것은 생활을 유지하는 것이 아니고 생활을 바닥에서 견디는 것일 뿐이다.

 

다음이 문제다. 실직 후 다시 재기하기 위해서는 무엇이 필요한가? 자신감? 긍정적인 사고?

재 취업을 원하는 사람들은 절박하다. 그리고 무엇보다 새로운 직장이 필요하다. 그럼에도 새로운 직장은 나타나지 않는다. 인터넷에 수없이 자소서를 올리고 적당한 직장에 이력서를 보내고 아무런 답이 없는 경우가 태반이다.

 

한국에도 이직을 도와주는 코칭 산업이 있는지 몰라도, 이제 취업을 위해서는 혼자 힘으로 되지 않는다. 취업을 준비하는 사람들에게 취업을 쉽게 할 수 있도록 코치해 주는 사람이 필요하고 그것을 직업으로 삼는 사람들이 있다. 그들은 언제나 당당하고 항상 취업해 있는 상황을 그려보면서 실업자임에도 취업자처럼 행동하라고 코칭한다. 개인의 열망과 성격이 바로 취업을 할 수 있는 기반인 것처럼.. 그렇게 황당한 코칭을 하면서 돈을 받는다.

 

바브라도 실직자가 되어 취업을 준비한다. 그러나 그 속에서 만난 것은 몰락한 중산층의 비애였다. 실직이 오래 될 수록 점점 주변으로 밀려나가는 사람들의 모습을 그대로 경험했던 것이다. 물론 바브라는 이 실험을 관두고 다시 작가로 돌아가면 그만이다. 그러나 그렇지 않은 많은 사람들은 계속 벼랑으로 몰리고 있다. 그 벼랑의 끝에 희망은 보이지 않는다.  이 책의 제목이 희망의 배신인 이유다.

 

다시 한국에 있는 친구 얘기다.

이 친구 취업을 위해 뛰다뛰다 실업급여 기간도 지나버리고... 지금 생계를 위해 일당 5만원짜리 잡일을 하고 있다. 토요일도 근무해야 한다고 하니 주 40시간 근무제는 아닌 모양이다. 사무실에서 근무하다가 육체 노동을 하니 저녁 시간은 피곤해서 어디 움직일 기력이 없다고 한다. 여기서 사무직에서 내몰린 사람들은 악순환으로 접어 든다. 구직활동이 길어지면 생계를 위해 일을 해야 한고 일은 어쩔 수 없이 남들이 기피하면서 임금이 낮은 직종 밖에 구할 수 없다. 아니 구하기만 해도 다행인 지경이다. 그러나 일을 시작하면 구직은 더욱 더 힘들어 진다. 그렇게 점점 수렁으로 빠져 들어가는 것이다.

 

미국이나 한국이나 신자유주의의 모습은 비슷하다. 리엔지니어링, 다운사이징... 결국 기업은 사람을 줄이고 이윤을 늘리고 자른 사람들은 계약직이나 아웃소싱으로 처리하고 ... 기술의 발전은 고용을 늘리기 보다 줄이고 있는 현 상황에서 복지는 취약하고.... 이른바 중산층이 분해되어 가고 있는 것이다. 일부는 상층으로 대다수는 하층으로 ...

 

어디에 희망을 둘 것인가?

아니 희망을 갖느다고 해서 얻을 수 있는 것인가?

물론 대다수의 실직자는 희망을 가지고 산다. 그러나 이 사회는 그 희망이 이루어지기 힘든 상황이다. 더구나 미국의 코칭 문화는 사회의 구조적인 문제를 개개인의 문제로 치환해 버리는 이데오로기 작용까지 하고 있다. 여기는 그렇지 않은가? 우리 주변에 흘러 넘치는 자기계발 서적들은 모든 책임은 결국 개인에게 있다고 설파하고 있지 않은가?

 

저자는 결국 이렇게 말한다.

고립된 절망에서 집단행동으로 나아가려면 태도와 마음의 변화가 필요하다. 하지만 이 변화는 커리어코치들이 권하는 방식과는 다르다. 실업자와 불안한 취업자인 이들에게 필요한 것은 '호감'을 주어야 한다는 강박관념이 아니라 다른 사람들에게 손을 뻗쳐 공통의 문제로 끌어들이는 능력이다. 이때 다앙한 사람들, 특히 만성적인 억압에 시달리는 블루 칼라들과 함께할 수 있다면 더욱 이상적이다. .... 구직 활동을 하는 동안 한 번도 언급되는 것을 들어본 적 없는 이 자질은  다름 아닌 '용기'다 엄청난 역경 속에서도 같이 손잡고 변화를 위해 싸울 용기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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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탈핵 - 대한민국 모든 시민들을 위한 탈핵 교과서, 2014 올해의 환경책 / 『한겨레』가 뽑은 '2013 올해의 책' / 『시사IN』선정 '2013 올해의 책'
김익중 지음 / 한티재 / 201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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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더위가 시작되면 냉방기를 본격적으로 가동할 것이고, 전기 수급에 대한 위험을 경고하면서 절전홍보와 더불어 부족한 전기를 생산하기 위해 핵발전소 건설에 박차를 가하는 정부의 경고가 시작될 것이다.

 

싸고 청정하고 안전한 원자력 발전소의 신화는 다른 나라에서는 몰라도 이 땅에서는 여전히 그 위세가 등등하다. 원자력 발전 말고 무슨 대안이 있느냐는 대안부재론도 판을 칠 것이고... 바로 옆의 나라 일본에서 후쿠시마 사태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원자력 발전을 수출하여 국가 경제에 이바지 하는 자랑스런 대한민국의 원자력 기술은 국민에게 많은 자부심을 줄 것이다.

 

오죽하면 세월호 참사에도 꿈적하지 않던 대통령이 외국에 수출한 원전을 위해 훌쩍 떠나갔을까?

 

이 책의 미덕은 원자력 발전소... 아니 핵발전소의 위험과 신화를 모조리 해체하고 있다는 점이다. 특히 핵마피아들의 선전이 얼마나 허구적이고 핵발전소의 건립과 사용은 현재의 위험은 물론이고 미래의 세대에게 씻을 수 없는 범죄행위임을 밝힌다는 점이다.

 

무엇보다 핵에너지는 싸고 깨끗한 에너지가 아니라는 점을 분명히 하고 있다. 핵발전소의 값싼 전력은 핵발전소 사용 후 처리되는 비용을 모조리 제거하는 통계의 허구에서 시작한다. 핵발전소 가동 후 배출되는 핵폐기물은 그 자체로 방사능 덩어리고 자연환경을 교란하는 위험물질이다. 더구나 핵연료봉 등 고준위 방사선 물질은 방사능 반감기가 10만년이 걸리는 반 영구적인 위험물질이다. 그리고 현재의 인류의 과학기술로는 이러한 방사능 물질을 관리할 수 있는 능력이 없다. 결국 현재 펑펑 쓰는 전기는 향후 우리의 미래 세대에게 핵폐기물로 돌아올 수 밖에 없는 것이 현실이다.

 

오죽하면 10만년이란 시간 동안 핵폐기물이 보존될 수 있도록 하기 위한 폐기장소를 건설하기 위해 언어학자들까지 동원해야 할까? 10만년이면 인류의 언어가 어떻게 변화될지 모르기 때문에 폐기물 장소를 어떻게 표기해야 미래 세대의 인류가 이 위험한 판도라의 상자를 건드리지 않도록 할 수 있을지가 고민인 셈이다. 신화를 참고하면 판도라는 열지 말라는 금단의 상자를 열고 말았다. 온갖 재앙이 다 튀어나온 후 마지막으로 희망이 나왔다지만 핵폐기물에서 나올 것은 방사능 밖에 없으니 .....

 

더구나 방사능이 인체에 끼치는 부정적 영향은 이루 말할 수도 없다. 크게 암이나 돌연변이를 일으킨다는 알려진 위험 말고도 인체에 작용하는 유해성은 조사가 끝난 것이 아니다. 오히려 지금 파악하지 못하는 어마어마한 위험이 예상되고 있지만 그 사실이 사람들에게 널리 알려지지 않은 상태이다.

 

세월호 참사 이후 다음 재난은 핵발전소가 될 것이라는 괴담아닌 괴담이 나돌고 있다. 이게 괴담이 아닌 것이 지금까지 커다란 핵발전소 사고는 대부분 핵발전소가 많이 건설되고 30년 이상 운영된 낡은 발전소들이 문제가 되었다는 사실에 있다. 우리나라는 고리 원자력 1호가 30년이 넘었고, 좁은 영토에 비해 23개의 핵발전소가 운영되는 나라라면 통계적으로 위험성이 매우 높은 것이 사실이다. 더구나 납품비리에서 부터 자잘한 사고가 빈발하는 핵발전소가 지금까지 큰 사고가 터지지 않은 것이 신기할 정도이다.

 

더구나 핵발전소는 대도시 주변에 건설되지 않는다. 많은 사람들의 관심을 받기 싫기 때문일터, 주로 한적한 어촌 등에 경제개발을 미끼고 건설하고, 그곳에서 생산되는 전기는 영토를 가로지르며 대도시로 송전된다. 그 송전을 위한 송전탑이 곳곳에 세워지면서 토박이 주민들을 희생시키는데 밀양에서 싸우는 송전탑 반대 투쟁의 시발점은 핵발전소에 있다.

 

싼 듯 보이나 추가 비용은 얼마나 더 들지 알수 없고, 청정한 듯 하나 치명적인 방사능을 10만년이나 배출하고 안전하다고 하나 조그만 사고라도 발생하면 좁은 영토를 죽음의 땅으로 만들어 버릴 수 있는 핵발전소를 우리는 언제까지 허용하고 살아야 하나? 심지어 30년이 넘은 발전소의 운영을 10년이나 연장하면서도 안전검사도 부실한 이 땅에서 핵발전소는 핵폭탄보다 위험하다. 우리는 아무런 문제의식 없이 이 핵발전소를 안고 살고 있는 것이다. 오히려 감사하는 마음으로...

 

예전엔 '반전반핵가'라도 불렀는데, 이제는 핵에 대한 이야기는 금기 시 되어 있다. 북의 핵개발이나 남의 핵발전소나 모두 이 땅에서 추방해야 한다. 세계는 탈핵의 방향으로 이미 돌아서고 있다. 지금은 비용이 많이 들어 보이지만 결국에는 핵에너지보다 깨끗하고 싸게 사용할 수 있는 태양과 바람과 조력을 이용한 에너지를 개발해 내야 한다. 그리고 이미 그 길에서 많은 성공을 거두는 나라들이 있다.

 

물론, 이 책이 모든 해답을 주지 않는다. 다만 이책은 결단을 요구하고 있다. 잠시의 풍요를 위한 핵발전소를 용인하여 미래의 세대에게 파멸을 안겨 줄 것인지... 지금이라도 핵발전소를 포기하기 고통을 감수하더라도 깨끗한 자연을 물려줄 것인지를 ...

보통의 감수성을 가진 인간이라면 이 질문에 답은 뻔하다... 이젠 늦출 수 없다... 탈핵이라는 세계적인 추세를 인정하고 받아 들여야 한다. 그리고 핵발전소에 대한 미신을 치우고 탈핵을 위한 싸움에 나서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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