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자크와 바느질하는 중국소녀
다이 시지에 지음, 이원희 옮김 / 현대문학 / 200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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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소설을 읽으면서 어쩔 수 없이 의문을 가지게 되는 부분이 문화대혁명에 대한 평가일 것이다.
이 책의 주인공들은 문화대혁명의 소용돌이 속에서 농촌으로 하방하게 된 지식인들의 아들들이고
이들은 농촌으로 강제 노역에 처하게 된 현실을 매우 부정적으로 바라보고 있기 때문이다.
문제는 지식인들의 문화대혁명에 대한 평가는 매우 부정적이어서 언제나 그럿듯 20세기 야만의
세월로 평가하는게 주저함이 없고, 이 소설 또한 그러한 인식선상에 닿아 있다.

이론적으로 대중노선을 표방하고 끊임없는 모순의 발현으로 인한 계급투쟁을 주장했던 모택동의
사상에 대한 평가를 떠나서, 정신과 노동의 이분법적 분화와 노동에 대한 천시를 노골적으로 드
러낸 점에서 이 책은 문화대혁명을 치루어 낸 또 다른 소설들과 맥락이 많이 틀려 보인다. 그것은
서구에서 소설을 발표한 저자의 경험일 수도 있으며, 전체적으로 보아 서구적 시각에 물들어 있는
문화대혁명에 대한 평가 일 수도 있을 것이다. 이 책이 프랑스에서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다는 점은
무언가 음습하다.  

그렇다고 소설의 분위기 자체가 음습한 것은 아니다. 소설은 유쾌하고 경쾌하며 그 어려운 상황 속
에서도 젊음이 가지는 낭만과 재기 발랄함을 잃지 않는다. 오히려 소설 속 화자와 친구는 어려움마
저도 자신의 재기 발랄함으로 극복하고 새롭게 자신의 영역을 찾아내는 지혜를 보여 준다.
아마도 독자들이 열광했다면, 그러한 재기발랄함에 매료되었을 것이다. 어려운 상황 속에서도
희망과 웃음을 자아내는 이야기는 항상 매혹적일테니까.... 

그냥 내가 아쉬운 부분은 전체적인 역사상에서 느껴야 했던 문제들이 그 재기발랄함으로 인해
묻혀버리고 지나갔다는 점이다. 개인과 전체 사회와의 관계가 이 소설 속에서는 희화화되어 버려
개인만 남고 사회는 스러졌다고 해야 하나... 문제는 그 총체성을 담보하기에는 나의 역사적 지식
과 인식이 너무 모자라다는 점이다. 그러니 이러한 푸념이 그저 푸념으로 끝날 수도 있겠다.

이 소설을 읽다가 문득 다시 다이오우잉의 '사람아 아 사람아' 나 '시인의 죽음' 간절하게 생각
나는 이유가 뭘까... 난 무엇을 기대하는 것일까?

더구나 발자크로 표상되는 서양 문명과 중국의 문맹을 극적으로 대비하는 점에서는 또 다른 오리
엔탈리즘의 혐의까지 두어야 했다. 결국 이 소설은 중국인의 시선이 아닌 서양인의 시선으로 본
문화대혁명의 소소한 일화들이며, 거기에는 암묵적으로 서양문화에 대한 우월함이 스며있다.
이 점에서 다이오우잉이 문제를 제기했던 것과는 상당하게 차이를 느끼게 만든다. 중국인이
바라본 혁명과 역사는 10대들의 단순한 치기로 웃음거리로 만들기에은 그 역사적 궤적이 가벼워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 내가 가진 문제의식이다.  

문화대혁명에 대한 평가는 아직도 진행 중이다. 그러나 지식인들의 고난이라는 선명한 주제는
문혁에 대한 이미지를 선점해 버렸다. 과연 말과 글을 선점한 지식인들의 기득권이 선명하게
나타나는 지점이 역시 문혁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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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9-27 11:19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0-09-27 15:46   URL
비밀 댓글입니다.

카스피 2010-09-28 22: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음 문혁이라..권력욕에 눈이 먼 모택동이 강청등과 합세에 일으킨 추잡한 권력투쟁의 산물이었지요.저는 위책을 읽지 않아서 잘 모르겠지만 문혁 자체로서만 놓고 본다면 이미 중국 공산당내부에서 모택동의 오류라고 판단하고 있다고 하더군요.다만 국부로 추앙받는 모택동이기에 그 사실을 널리 공표하지 않고 공산당 내부에서 갈무리 한것 같습니다.(일본의 신문사에서 모택동사후 문혁을 추적한 책에서 읽은 기억이 나네요)
문혁을 통해서 모택동이 다시 권력을 잡으니 모택동과 그 일파는 좋았을지 모르지만 당시 많은 인민들이 삶이 많이 피폐해졌으니 결국은 실패한 것이 아니었나 싶군요^^

머큐리 2010-09-29 08:38   좋아요 0 | URL
카스피님의 평가가 아마도 주류의 평가일 듯 합니다. 다만, 그렇게 간단하게 보기에는 문혁의 역사적 사상적 배경이 단순하지는 않다고 생각이 들어요. 거기에 대한 역사적 연구도 부족한 형편이고...앞으로 많이 고찰해야 할 역사적 과제가 아닌가 합니다.
 
순례자의 책
김이경 지음 / 뿌리와이파리 / 200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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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이 책의 성격을 어떻게 정의 내려야 할 지 모르겠다.
단편적인 이야기들과 그 이야기들이 전해지는 책들의 이모저모에 대한 해설이 있는 특이한
책이다. 마치 이야기를 통한 책의 여러가지 점을 생각해 보라는 듯한 구조들... 

이 책에서 나오는 이야기들은 모두 책에 관한 이야기들이다.
책이란 무엇인가, 어떻게 만들어 지는가, 어떻게 소비되었는가, 책을 사랑했던 사람들과 또
책을 증오한 사람들... 결국 모든 물음은 책을 읽는다는 것은 무엇을 뜻하는가와 인간에게
책이란 과연 무엇인가를 묻는다는 것이다.  

그리고 읽을 수록 신기하면서도 결국 알 수 없는 것이 독서라는 것.... 

나는 책을 왜 읽고 있는가?
그 질문에 답하기 위한 순례를 떠나야 한다는 사실을 일깨워 준다고 할까?
단순하게 외적인 책에 대한 사랑을 떠나 내적인 독서행위에 대한 질문을 던져주고 있지만
아직도 나 스스로에게 그 답을 찾지 못하고 있다.  

다만, 책에 대해 알기 위해 나 역시 순례의 길 속에 있다는 것... 그리고 그 길이 그렇게 호락호락
하지 않고 어쩌면 일생동안 추구해도 밝혀내기 쉽지 않을 것이라는 것... 그럼에도 나는 책을
읽고 있다는 것을 다시 한번 일깨우고 있다.  

나만의 답을 찾기 위해 떠나야 하는 그 순례의 길에 자그만 지침하나 내려준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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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9-26 22:42   URL
비밀 댓글입니다.

머큐리 2010-09-27 15:44   좋아요 0 | URL
그렇죠..^^

2010-09-27 02:20   URL
비밀 댓글입니다.

머큐리 2010-09-27 15:44   좋아요 0 | URL
그렇지 않아도 그려려고 합니다..ㅎㅎ 나중에 머라하기 없기에요..^^

마녀고양이 2010-09-27 08: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책 독특하죠?
블랑카님의 리뷰에 혹해서 읽었는데
깊은 맛은 없지만, 책이 소재라는 점과 독특한 착상, 책에 대한 재미있는 정보가
어우러져서 읽는 내내 즐거웠던 기억이 있습니다.

머큐리 2010-09-27 15:45   좋아요 0 | URL
마고님과 은근히 겹치는 책들이 꽤 많이 있다는 생각이...ㅎㅎ
 
발칸의 장미를 내게 주었네
정미경 지음 / 생각의나무 / 200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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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정미경의 소설들은 그렇다고 이야기하는 것 같다. 사람들은 근원적으로 고독하다고...
그 고독이 사회적 역사적 배경 속에서만 그런것인지, 아니면 실존적으로 그런것인지
아직 명확하게 파악되지는 않는다.
물론 자본주의적 소외에서 벌어지는 현상이 강하다고 하지만 (이 얼마나 남루한 표현
이란 말인가?) 글 속에서 느껴지는 분위기는 어쩐지 존재적 고독감들이 물씬 풍겨서
단순하게 시대적이란 말을 하기가 꺼려진다.

그녀의 소설 속에서의 인물들은 무언가 갈망하면서도 그것을 결코 이루지 못한다.
설사 이룬다고 할지라도 그것은 환상이며, 신기루이고 결국은 무자비한 일상과 자본에
갈리고 쓸려갈 일순간의 감정 같은 것이다.

소설들을 읽어가면서 차마 난 "아니야 삶은 이렇게 비루하지 않아" 라고 말하지 못하겠다.
그런만큼 암울하다. 암울하면서 왜 정미경을 읽고 있는가? 

다락방님의 페이퍼에서 처음 본 그녀...
그녀의 글이 이렇게 어두울줄은 정말 몰랐다. 낚였다고 봐야 하는건지... 

그럼에도 그녀의 글에서 난 눈을 뗄 수 없다.
그건 내가 살아가는 이 사회 속 사람들의 고독과 단절과 절망과 희망과 일상이 너무
낱낱히 보여준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더불어 내 속에 들어있는 자본주의적
속물성을 다시 한 번 아프게 찔러대기 때문이다.
그녀의 글 속에서 나오는 인물들 속에서 나는 자신을 바라본다.
절망하고 비루한 삶에서 고통받으면서도 아무것도 기대하지 않으면서도 미래에도
무언가 이루어질 것을 믿지않는 냉소 속에서... 내 다른 반쪽을 보는 것이다.  

언젠가 웃고있는 내 얼굴을 주름을 지적하던 사람에게 난 내 얼굴을 바라볼 수 없다고
더구나 지금 당신이 말하는 내 얼굴은 거을 통해서도 볼 수 없다고....말했다.
숨겨져 있는 나의 수많은 얼굴들.... 그 얼굴들의 한 조각을 그녀의 글에서 찾았다.
그래서 아프면서도 사랑스럽다. 고통스러우면서도 서늘하고 달콤하다.

이렇게 정미경이 이 더운 여름 나를 찾아왔다.
단순한 감상이 아닌 정말 철저하게 해부하고픈 이야기들을 들고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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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amoo 2010-08-23 21: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좋은 리뷰 잘 봤습니다. 정미경의 작품이 우울하시다면 강석경의 작품은 어떨까요? 전경린 작품은요? 시간이 되신다면 두 작가의 작품들도 읽어보시고 정미경의 작품과 어떻게 다른지 비교해 보는 것도 재밌습니다~

개인적으로 리뷰를 읽고 드는 느낌이..전경린 작품을 읽으면 색다른 후폭풍을 맞을 실 수 있을 것 같다는 얘감이 듭니다^^
 
나의 피투성이 연인
정미경 지음 / 민음사 / 200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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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를 사랑한다는 건 그가 살고 있는 방의 곰팡이 낀 더러운 벽에서 한 폭의 벽화를 읽어내는 건지도 모르겠다.
- 나릿빛 사진의 추억-10쪽

같이 여행 가서 찍은 필름을 맡길 돈도 없을 만큼 내가 어렵다는 걸 알고 여자는 처음엔 괜찮다고 말했고 좀 지나자 한숨을 쉬기 시작했으며 그 다음엔 이유 없이 울음을 터뜨리곤 했었다.
- 나릿빛 사진의 추억-11쪽

나는 누군가가 내 영혼의 자기장 깊숙이 들어오기를 원하지 않는다. 사랑 속에는 사람들이 흔히 기대하는 따스함, 열정, 몰입, 기쁨, 까닭 없이 터뜨리는 웃음소리 같은 것만 있는 것은 아니다. 그 눈부심 속으로 들어가 보면 마치 빙산의 아랫부분처럼 거짓과 권태와 배신과 차가움과 환멸같은 것들이 수면 아래 덕지덕지 붙어 있는 것이다.
호텔 유로-55쪽

아아. 인생을 일천 번이라도 살아보고 싶다. 이처럼 세상이 아름다우니까.
- 나의 피투성이 연인-94쪽

두 사람이 사랑에 빠졌을 때는 확실히 그런 순간이 있어. 사랑이란 어떤 것에 대해서는 너무 예민하게, 어떤 것에 대해서는 너무 둔감하게 만들어버리는 감정의 알러지 상태 같은 것이니까.
- 나의 피투성이 연인-109쪽

"필름, 내가 가지고 있을게요. 참, 제목이 뭐예요?"
두고 가면 버릴 것 같아서, 라는 말은 삼켜버렸다.
"달은 스스로 빛나지 않는다."
"무슨 뜻이에요?"
"대부분의 우린, 별이 아니라, 스스로는 빛나지 못하는 차갑고 검은 덩어리에요. 존재란 스스로 빛날 수 없는 것. 누군가의 시선 속에서, 타인과의 관계 속에서 만월도 되고 때론 그믐도 되고 그런 거 같아요."
- 달은 스스로 빛나지 않는다-24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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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해자 1
오쿠다 히데오 지음, 김해용 옮김 / 북스토리 / 200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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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쿠다 히데오의 소설의 특징은 무엇일까? 

'공중그네'를 통해 처음 접해 본 그의 소설에서 느끼는 것은 해학이었다. 그런데 그런한
해학의 저변에는 깊은 소외와 불안감이 깃듯 인물들의 등장이 있었다.
이 사회를 살아가면서 맺어지는 인간관계 속에서 폭발할 것 같은 인물들은 정신과 치료를
받으면서 무언가 해소해 나가기 시작한다. 그러나 그 치료라는 것은 그야말로 치료인지
아닌지도 모르는 사소하고 형식적인 것이었다. 그럼에도 등장인물들은 본능적으로 자신의
어려움을 해소하고 치료해 나간다. 어떻게?? 

'방해자'는 '공중그네' 이전에 씌여진 소설이다. 이 소설에서 오쿠다 히데오가 글을 쓰면서
문제로 느꼈을 만한 여러가지 모티브들이 종합적으로 주어져 있다고 보여진다.
우선, 조직 내 소외의 문제, 조직안에서 기계처럼 살아가야 하는 인간들이 겪을 수 밖에
없는 조직 내부 구조의 갈등과 희생이 주된 주제로 등장한다.
두번째, 사회적 소외의 문제이다. 특히나 체면과 예의를 중요시 하는 일본인의 정서상
범죄 소설에 등장하는 일반인의 최대의 문제는 주변으로 부터의 소외와 격리다.
범죄자 뿐만 아니라 그의 주변의 지인이나 가족은 결국 범죄자와 동일한 취급을 당하게
된다. 우리나라 추리소설을 많이 읽어 보지 않아서 공식적으로 비교하기 힘들겠지만
일본 추리소설에서의 이 부분은 매우 자주, 중요하게 언급되고 있다.  

거기에 더하여 자본주의 사회에서 느끼는 보편적 소외라고 할 만한 일들이 보인다.
자본주의 사회은 자본과 노동이 결합되어 있는 사회다. 더구나 자본이 그 우세한 힘을 가지고
노동에 대한 가치를 평가하는 체제다. 오쿠다 히데오의 소설 중 특히 반자본적인 소설은
'남쪽으로 튀어'일 것이다. 단순하게 해학적인 그의 작품을 볼때 '남쪽~'은 사실 매우 흥미로
운 점이 많다. 그런 자본주의 사회에 대한 문제의식이 '방해자'에도 고스란히 녹아있다.
더 재미있는 점은, 전공투 이후 일본 좌파에 대한 불신이 매우 크다는 것이다. 그이 작품에서
체제에 저항하는 사람들은 철저한 저항파이거나 타협하고 순응하는 이들로 크게 나눠진다.
문제는 순응파의 사고는 좌파를 표방하면서도 결코 좌측이지 않고 체체내부와 공존이 가능
한 정도라는 것.  

결국 그의 소설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조직과 이웃과 자본체제의 3중 소외에서 탈출구를  
찾지 못하고 좌충우돌하는 사람들이다. 어느 순간 해방을 느끼다가도 결국 구조에 갇혀
아무런 힘도 쓰지 못하는 사람들이 그의 소설에는 빈번하게 등장한다는 것이다.
'방해자'도 마찬가지여서 결국 조직과 사회와 자본의 질서에 완벽하게 포위되어 자신을
던져야 하는 사람들이 등장한다.
거기에서 소설의 리얼리티가 살아나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상하게 그의 소설의 말미는 항상 낙관적이라 느껴진다.  
사람과 사람이 사는 사회는 냉정하고 사람을 포위하고 억압하지만, 그래도 결국 사람은
사람과 의존하겨 살 수 밖에 없다는 사실을 놓치지 않는다고 할까?
소수지만 언제나 저항하는 사람이 있다는 것. 그것이 자신을 파멸로 이끌지라고 거기에
끝까지 저항하는 사람이 잇다는 사실이 그의 소설을 계속 읽게 하는 원동력은 아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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