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문구의 문인기행 - 글로써 벗을 모으다
이문구 지음 / 에르디아 / 201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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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문구의 문인기행.  생각할 것도 없이 집었다.  저자뿐 아니라 이문구의 벗된 문인들 역시 대단한(?) 분들이기 때문이었다.  김동리, 신경림, 고  은, 한승원, 염재만, 박용래, 송기숙, 조태일, 임강빈, 강순식, 황석영, 박상륭, 김주영, 조선작, 박용수, 이정환, 이호철, 윤흥길, 박태순, 성기조, 서정주 이상 21인의 문인들과 저자 이문구 선생과의 우정과 그들의 글에 대한 이야기를 담은 책이다.   

  나는 세상에서 제일 부러운 사람이 괴테와 한 시대를 산 사람이고 두번째로 부러운 사람이 전혜린 여사와 벗했던 자들이다.  엄밀히 말하자면 대문호를 벗으로 두고 있는 사람들이 마냥 부럽다.  정말이지 부러워 미치겠다.  그들과 만나면 뻔질나게 책 이야기, 글 이야기를 할 테니 말이다.  밥을 먹어도 시적으로 먹고 똥을 싸도 예술적으로 싸겠지.  만날 이런 이들을 마주하며 사는 일은 삶 자체가 황홀할 것 같다.   

  이 책 역시 그랬다.  이문구 선생과 우리나라 대문호들의 만남과 우정이 몹시 부러웠다.  유유상종이라는 말이 딱 맞나 보다.  글쟁이한테는 글쟁이가 얽히고 섥히고 그림쟁이에게는 그림쟁이가 엮이는 법이다.  그들과 먹는 밥은 어떨 것이며 그들과 기울이는 술잔은 또 어떨까?  나는 술을 전혀 못한다.  (전혀라는 말은, 당최 먹고 싶지도 않고 먹어봐야 별 볼 일 없고 먹고 나서도 좋지 않다는 말이다.  아주 궁합이 안 맞다)  그런데 예전 피아노를 곧잘 치고 작곡을 하던 한 아이를 알고 지낸 일이 있는데 그때 그 아이와 처음 같이 마신 술이 소주였는데 왜 그리도 술술 잘 넘어가던지.  유일하게 내 이야기를(당시 쓰고 있던 소설을) 경청해주던 아이였고 쌍둥이처럼 정서가 닮았다며 하이파이브를 치던 아이였다.  소주 이후에는 맥주와 닭을 그리도 먹었는데 그때마다 잘 먹혔다.  글이, 음악이, 예술이 안주였던 것 같다.  지금에도 그런 이야기들과 혼이 사로잡힌 자기만의 열정을 말하는 이와 마주앉아 마신다면 잘 마실 수 있을 것도 같다.  그런데 어쩌자고 술 이야기를.  아아, 그래.  글에 대해 이야기 할 자들과 함께한다면 내게는 필요악이며 불필요하게 느껴지는 술조차도 아주 벌컥벌컥 들이킬 것 같다.  이 말이 하고 싶었다.     

  고은 선생님의 옥살이 일화는 참으로 감동적이었다.  역시 뼛속까지 글쟁이구나 싶었다.  집필행위가 불허된 옥에서 사전에다 긴요한 낱말마다 성냥개비에 인주를 묻혀 찍어두었다니.  그것 마저 금하자 단식투쟁까지 했다니.  필시 숨을 쉬는 심정으로 그 점을 찍었을게다.  글을 쓰는 사람에게 글을 쓰지 못하게 하는 것만큼 고된 형벌이 있을까?  글을 쓰고 싶은 그 간절함이 사전속 단어들에 점을 찍는 것으로 대신한 것일게다.  그저 글을 잘 쓰는 것이 아니구나.  그렇게 간절히 쓰고 싶은 거구나 싶어 참으로 감동받았다.   

  김동리 선생님의 올곧음과 신경림 선생님의 구수한 농촌아제같은 느낌을 글에서 만나니 이들은 정말 철저한 문인이구나 싶기도 했고 이들 역시 땀내나는 사람이구나 싶었다.  이들이 하는 이야기를 면전에서 듣고 이들과 면전에서 술과 밥을 나눌(혹은 나누었을) 저자가 왜 이리도 부러운 것인지.  그 자리에 그저 귀동냥하며 앉아만 있어도 얼마나 좋을지. 

  참 아름다운 이야기들이었다.  악착같이 글을 쓰는 이들에 대한 이야기, 그들의 인간적인 삶에 대한 이야기들.  땀과 펜 끝으로 치열하게 일구어낸 문학의 그 숭고함에 감동하며 읽었다.  필시 그들은 혈관에도 활자가 흐를게다.  그것들을 생생하게 글로 옮긴 이문구 선생의 글 역시 너무나도 좋았다.  단아하기도 하고 단정하기도 하고 무덤덤하게 써놓았지만 묘하게 향이 나는 글이었다.  그들의 문학과 문학 외적 이야기들이 재미있게 녹아있다.  읽는 내내 그들 뒤를 쫓아다니며 기웃거리는 파파라치가 된 심정이었다.  이야기는 끝이 났고 책은 덮혔다.  이제 나는 그들을 책 속에서, 그들의 작품 속에서 만나 넌지시 말이나 걸어봐야 겠다.  "저 혹시 선생님을 어디선가 만난 적이 있는 것 같습니다" 라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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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아이의 왕국
이보나 흐미엘레프스카 글.그림, 이지원 옮김 / 창비 / 201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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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랜만에 그림책이다.  초경을 시작한 여자아이의 마음을 섬세한 글과 상징적인 그림으로 표현한 그림책이라기에 호기심이 일었다.  과연 초경을 어떻게 표현하였을까?  상징적인 그림으로의 표현이라니 더욱 궁금했다.   

  표지부터 의미 전달이 명확했던 것 같다.  팬티 위에 혈흔과 같은 얼룩이 있고 그 얼룩 위를 꽃으로 수놓았다.  먼저 짚어볼 것은, 이 그림책은 그림책이지만 그 대상은 초경을 시작한 이후의 여자아이들 혹은 여성을 위한 그림책인 듯싶다.  이 책의 삽화는 저자 자신이 그렸다.  그렸다고 표현했지만 오로지 그리기만 한 것은 아니다.  콜라주 기법으로 삽화가 꾸며져 있다.  그것들이 모두 디자이너의 예술작품처럼 감각적이고 몽환적이다.  그림책은 그림만큼이나 중요한 것이 삽화가 아닌가 싶다.  이 삽화만 보더라도 이 그림책의 대상은 성인이나 초경을 시작한 이후의 여자아이들이 적당할 듯싶었다.  앞서 콜라주 기법으로 삽화를 꾸몄다고 했는데 그래서인지 마치 천조각, 레이스, 낡은 종이 등 삽화에 이용된 재료들의 질감이 느껴지는 듯했다. 

  이 그림책을 보며 나의 초경 때의 느낌을 생각해보려 애썼다.  나는 당시 내 또래 여자아이들에게 월경이 시작되며 그것은 팬티에 피가 묻는 것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초등학교 6학년때였다.  그때가 명절이었던가?  아니 방학이었나?  어쨌든 나는 우리 집이 아닌 큰아버지 집에 갔다가 그곳 화장실에서 처음 피를 보았던 것으로 기억한다.  놀라거나 무섭지도 않았고 담담했다.  '아 올 것이 온 거구나.  이게 그 생리라는 것이구나'  엄마에게 말했고 조그마한 패드를 건네받았다.  그때는 아무런 느낌도 생각도 들지 않았다.  그리고 학교에 갔는데 그때 한참 남자아이들이 여자아이들의 등에 가로지나가는 선에 민감했고(그들은 대개 여자아이를 등을 두드리며 부르는 척 하며 손바닥에 느껴지는 그 선을 감지했다) 자기네들끼리 "우리 반에서 한 애는 누구누구야", "아냐, 걔는 아직 안 했어" 따위의 말들을 주고받는 것을 자주 들었다.  여자아이들은 그보다 월경에 관심이 많았는데 "너 시작했어?" "배가 살살 아프던데 그렇더라고" "많이 아파? 무섭지 않아?" 라는 이야기들을 종종 주고받았다.  그리고 가정 시간에 2차 성징에 대해 배우며 여자가 생리를 시작하면 엄마가 될 수 있다는 뜻이고 어른이 된다는 뜻이라고 했다.  사실, 나는 나의 첫 생리가 자랑스러웠다.  나는 이제 여자가 된 것이니까.  그때는 그렇게 생각했었다.  그 후로 나는 매달 월경을 했다.  때로는 아팠다.(아니 늘 아팠구나.)  때로는 성가셨다.  하지만 이 월경이라는 것이, 이제는 너무 익숙해져 버려 어떤 감회를 느낀다거나 하지 않는 진부한 월례행사가 되어 버렸다.  그러나 이 책은 초경의 소중함과 여성성의 소중함을 이야기에 담았다. 

  무엇보다 초경을 그림책에 담는다면 자칫 성교육 동화같이 느껴질 법한데 이 그림책은 전혀 그렇지 않다.  삽화만큼이나 몽환적인 시선으로 초경을 묘사했다.  그렇기에 더욱 신비로움을 느낄 수 있었던 것 같다.  내가 초경을 처음 마주했던 때처럼 이것은 나에게 신비로운 일이고 아름다운 일이기도 하다.  아니 이것이 그런 것이라는 생각이 들게 했다, 이 그림책이.  여자의 삶으로서의 시작을 알려주는 붉은 꽃, 그것은 여자만이 볼 수 있고 피울 수 있는 꽃이다.  그 꽃을 새삼 신비하게 소중하게 생각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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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시나리오의 법칙 - 좋은 영화, 그저 그런 영화, 나쁜 영화에서 배우는
톰 스템플 지음, 김병철.이우석 옮김 / 시공아트 / 201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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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좋은 시나리오란 어떤 것일까?  모르는 몰라도 재미있는 게 아닐까.  책이든 영화든 감동, 감독, 저자의 하고 싶은 말....  뭐 이런걸 다 떠나서 첫째, 재미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영화나 드라마, 책의 기능 중 유희도 큰 부분을 차지하기 때문이다.  그다음 좋은 시나리오를 위해 필요한 요소는 또 뭐가 있을까? 

  이 책은 시나리오도 시나리오지만 영화를 분석했다는 점이 흥미롭게 여겨져 선택한 책이다.  <좋은 영화, 그저 그런 영화, 나쁜 영화에서 배우는 좋은 시나리오의 법칙>이라니.  내심 좋은 영화, 나쁜 영화가 궁금했다.  그저 그런 영화는 나 역시 그저 그런 정도로 궁금했고.  호호 

  제일 아쉬운 점은, 미국 영화를 분석 대상으로 하다 보니까.  국내 미개봉작이나 비인기 영화들이 몹시 많았다.  그렇다 보니 내가 못 본 영화들이 너무 많았다.  저자는 독자는 같은 공감대를 가지고 '맞아 맞아' 혹은 '작가는 이렇게 생각하는구나' 정도의 소통은 일어나야 하는데 못 본 영화들에게 대한 이야기에서는 저자와 아무런 대화를 나눌 수가 없었다.  따분하기까지 했으니 말이다.  이 책에 별 일곱 개를 주고 세 개를 삼킨 이유는 '독자의 무지로 인한 공감대 결여'로 볼 수 있겠다.  그러니 순전히 내 탓이다.  (바람직한 독자의 자세.  홍홍) 

  이 책에서 다룬 영화를 소개하기에 앞서 좋은 영화, 그저 그런 영화, 나쁜 영화로 분류된 각 영화들을 언급할지 말지에 대해 잠시 고민을 해봤다. (아무리 개인적인 서평이라지만 책을 읽지 않은 독자의 흥미를 일순간에 사그라지게 하는 것은 옳지 못한 것 같다.) 그러나 각 분류대로 소개하기로 마음 먹었다.  왜냐하면, 각 분류의 영화를 공개하는 것이 책에 대한 흥미를 떨어뜨리지는 않으리라는 생각이다.  도리어 '왜 이 영화가 나쁜 영화야?  왜 이건 좋은 영화라는거지?' 하고 궁금하지 않을까 싶다.  어찌 되었건 이 책에 관심을 갖고 있을 이들에게 이 부분은 부정적인 영향을 끼치지 않으리라 보기에 각 분류별로 나열해 보겠다.  (아, 쓰잘데기 없는 고민이었네.  온라인서점들에서 책목록을 친절히 제시하고 있구먼! ㅡㅡ;;) 

  '좋은 영화'로는 <아라비아의 로렌스>, <19번째 남자>, <이창>, <파고>, <킨제이 보고서>, <이 투 마마> 그리고 <재즈는 나의 인생>, <E.T>, <용서받지 못한 자>, <클루리스>, <사랑 게임>, <바운드>, <니모를 찾아서>, <아메리칸 스플렌더>, <즐거운 여행>, <러브 액츄얼리>, <이터널 선샤인>, <기품 있는 마리아>, <비포 선셋>, <세이빙 페이스> 이다. 

  '그저 그런 영화'로는 <콜래트럴>, <쥬라기 공원 1>, <쥬라기 공원 2>, <쥬라기 공원 3>, <아라비의 로렌스>, <트로이>, <킹 아더>, <알렉산더>, <킹덤 오브 헤븐>, <사랑할 때 버려야 할 아까운 것들>, <아메리칸 파이 1>, <아메리칸 파이 2>, <아메리칸 파이 3> 그리고 <스피드>, <딥 임팩트>, <아마겟돈>, <슈렉>, <진주만>, <슬립오버>, <인크레더블>, <미스언더스탠드>, <준벅>이다.  

  '나쁜 영화'로는 <타이타닉>, <앵커맨>, <스타 워즈 에피소드 1>, <스타 워즈 에피소드 2>, <스타 워즈 에피소드 3> 그리고 <사구>, <하워드 덕>, <윌로우>, <청혼>, <신의 영웅들>, <신밧드: 7대양의 전설>, <스텝포드 와이프>, <맨츄리안 켄디데이트>, <브로큰 플라워>이다.   

  위 영화들의 표기중 '그리고' 를 기준으로 앞의 영화들은 심도있게 분석한 영화들이고 뒤의 영화들은 가볍게 살펴본 영화들이다.  개인적으로 <킨제이 보고서>, <E.T>, <용서받지 못한 자>, <러브 액츄얼리>, <이터널 선샤인>, <비포 선셋>은 좋은 영화라고 나도 인정한다.  물론 시나리오뿐만 아니라 두루 보았을 때 인상적이었던 영화로 기억되고 있는 영화들이다.  의외의 것은 <타이타닉>이 나쁜 영화로 분류되어 있다는 것이었다.  저자는 여러부분을 짚어 그렇게 설명했는데 특히 여주인공 로즈의 캐릭터가 일관성이 없다고 했다.  '나는 잘 모르겠소이다' 다.  가만 생각하니 내가 얼마나 영화를 허투루 봤는가 싶다.  물론 나는 <타이타닉>이 시나리오 전문가 입장에서는 어땠는지 몰라도 좋은 영화로 기억하고 있고 앞으로도 그럴 것 같다.   

  위에서 말한 '좋은 영화', '그저 그런 영화', '나쁜 영화' 의 분류 기준은 시나리오다.  그러니 이 구분이 답은 아니다.  그런데 대부분 시나리오가 '좋은 영화'의 대부분을 나 역시 좋은 영화로 생각하고 있는 것을 보면 나 역시 무의식중에 영화에서의 '이야기'를 중요시 하는 것 같다. 

 이 책에서는 각 영화들을 어떤 이유로 그렇게 분류했는지 상세한 설명이 따른다.  그것들을 읽다 보니 왜 그렇게 분류되었는지 이해가 가기도 했다.  또 영화에서 시나리오가 얼마나 큰 부분을 차지하는지 새삼 깨달았다.  그러나 대부분의 영화들이 오로지 배우들과 감독에게만 포커스를 맞추고 있는 일은 참 애석한 일이다. 

  나는 이 영화들을 먼저 보고 이 책을 봐야했다.  그렇다면 분명 더 재미난 책이 되었을 것 같다.  뿐만 아니라 여기서 다룬 영화들이 다국적 영화라면 더욱 재밌지 않았을까 싶다.  일본 영화라든지.  또는 우리나라 영화들도 말이다.  그리고 어렴풋이나마 어떻게 시나리오를 써야 하는지를 알 것 같다.   

  이 책은 시나리오를 좋아하는 사람이나 영화를 좋아하는 사람에게 아주 좋은 책인 것 같다.  시나리오와 영화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그야말로 따봉이다.  나는 찬찬히 이 책에서 소개하는 영화들을 한 번 봐야겠다.  그리고 한 챕터씩 다시 읽어보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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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 그 녀석
한차현 지음 / 열림원 / 201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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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의 1990년대는 어땠던가?  91년도에 대구에서 서울로 전학을 갔고 어떤 아이를 처음으로 좋아go 봤고 그 여름 초경이 시작되었고 그 짝사랑은 96년도까지 지속되다 그해 처음으로 짝사랑했던 이와 전혀 다른 남자친구를 사귀었고 91년도에는 롤러스케이트장을 여러 번 갔었고 92년에는 김광석의 '사랑했지만'을 즐겨 불렀고 그해 그노래를 좋아하는 단짝을 만났고 93년도에 다시 대구로 전학을 갔고.  그해 여름방학 친구들이 보고 싶어서 서울 중학교 개학식에 맞추어 올라왔고 교문을 들어서다 학생과장이 "넌 무슨 새끼가 개학 첫날부터 지각이야?" 하면서 노려봤었고.  앞머리를 동그랗게 말고 다녔고 승마바지에 고리 바지가 한창 유행했던 그 때. 

 누가 내게 물었다.  "넌 니 인생에서 타임머신을 타고 돌아가고 싶은 때가 있어?" "어. 90년대!" 나는 줄곧 이렇게 대답했다.  90년대는 내 인생에서 가장 버라이어티한 일들이 많이 일어났던 때다.  나는 내 십대 시절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  초등학교 고학년 때부터 고등학교 때까지.  앞서 말한 것처럼 많은 일들이 다양하게 일어난 때다.  그만큼 재밌기도 했다.  

  이 소설은 90년대의 차현 오빠(그냥 그렇게 부르고 싶어요) 이야기다.  뭐지?  주인공 이름이 작가 이름이랑 똑같아.  이럴때 드는 의구심.  '이거 작가 자기 얘기 아냐?'  그리고 불현듯 그런 생각이 들었다.  제발 그랬으면 좋겠다.  이 풋풋한 사랑과 젊음, 꿈틀거리는 앞섬에 대한 고백이 창작이라면 왠지 서운할 것만 같은 이 기분은 뭐지?  미림 언니와 알티가 존재했으면 좋겠고 작가의 와이프 이름이 정말 은원이었으면 좋겠다는.  마치 예전에 TV우결(우리 결혼했어요)의 한 커플을 보고 '니들 둘이 진짜 결혼했으면 좋겠다' 하는 엉뚱한 생각과 비슷한 것일지도. 

  작가의 이야기에 등장하는 분위기나 음악들이나 이 모든 것이 전혀 낯설지 않은 것은 내가 그때를 함께 살았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새삼 타임머신을 타고 간 듯 그때로 돌아가 차현 오빠가 미림언니와 뽀뽀하는 그 골목 옆에서 몰래 훔쳐 본 듯한 기분이 들었고 정민이의 등장에 '제발 은원이랑 헤어지지 말란 말이야' 하는 생각이 들었다.  왜?  책을 읽는 동안 은원이 내 동네 친구처럼 친숙했기에.  결코 뒷 부분에 겨우 등장하는 정민은 그냥 스쳐 지나가길 바라고 있었다.  

  소설을 읽으며 오랜만에 마음이 편안했다.  박진감이 넘치지도 가슴이 먹먹해지지도 않았다.  그냥 오래전 내 일기를 펴 보는 것 같았고 지난 이야기를 조곤조곤 이야기하는 그 앞에 앉아 차 한잔 마시는 기분이었달까?  끝내 은원이 와이프가 되어 있는 끝 장면에서는 마치 동화의 해피엔딩을 본 듯 미소가 지어졌다.  그런데 정말 궁금하다.  이것은 작가 자신의 이야기일까?  아니면 사실에 소설적 요소를 약간 가미한 것일까?  아니면, 은원도, 미림도 모두 허구의 인물일까?  왜 이것이 궁금해지는지는 모르겠다.  다시 한 번 말하자면, 실재했던 이야기고 실재하는 인물이기를 바랄 뿐이다.  왜 이딴 것에 신경을 쓰느냐고?  글쎄다.  오래전 내 기억 속 풋풋하던 첫사랑이 떠올랐고 그때의 공기가 느껴졌던 글이라 그냥 그랬으면 싶다.  말 그대로 그냥. 

  근데 이 소설은 글의 분위기가 두 덩어리다.  아주 애잔하고 잔잔한가 싶더니 갑자기 젊은 남자의 느낌이 물씬 묻어나는 글이 되어 버린다.  뭐라고 해야 할까?  시원한 생수인가 싶어 한 모금을 삼키는데 마셔보니 소주였던 작은 술잔처럼 당황스러웠다.  아주 어색하지는 않은데 내 느낌엔 확연히 두 느낌을 갖고 있어.  이것도 궁금하다.  내 생각처럼 작가가 글을 내리 써 달리다 잠시(글의 첫 분위기를 잊을 만큼) 쉬었다가 다시 쓴 것일까?  그 부분이 조금 더 다듬어 졌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든다.  어디까지나 내 기분.   

  이 책을 읽고 나니 '제목 참 딱이구나' 싶다.  사랑, 그 녀석.  그래 그 녀석.  그런 녀석이 있었지 말이야.  내 그 시절을 꽉 채우고 있었던 그 녀석 말이다.  갑자기 내게 그때를 회상하게 한 그 녀석.  그 녀석은 여전히 누군가의 가슴에 존재하겠지?  아니, 내 가슴에 그대로 살고 있을 거야.  나처럼 좀 나이를 먹었을 뿐.  젊은 사랑.  그 녀석.  그때 그 녀석.  괜히 한 번 그리운 밤이다.  사랑, 그 녀석.  그래.  너!  너 말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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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탁환의 쉐이크 - 영혼을 흔드는 스토리텔링
김탁환 지음 / 다산책방 / 201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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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탁환 씨의 신간이라길래 봤더니, 이야기 만들기 비법서(?)다.  오호라~  이 책이 반가웠던 이유는 두 가지다.  첫째, 김탁환 씨의 글이 좋다고 생각해 왔던터고 둘째, 이야기 만들기에 관심이 있어서다.  그러니 김탁환 씨가 쓴 이야기 짓기에 관한 책은 꼭 읽어야 했다. 

  김탁환 씨의 소설뿐만 아니라 어떤 소설을 읽으면 정말 감탄하게 된다.  '아니, 이 작가는 이런 걸 어떻게 아는 거지?', '작가는 박식하기가 하나님 수준이어야 하구나', '어떻게 이걸 이렇게 표현하는 거야?' 하는 따위의 생각이 들때가 있다.  그런데 그런 글을 쓰기 위해 그야말로 얼마나 갈고 닦아야 하는지를 알려준 책이다.  이런 이야기들을 김탁환 씨는 자신의 이야기 짓기 방법을 보여주면서 이야기에 애정을 가진 자들에게 멘토가 되어주고 있다. 

  앞서 나 역시 이야기 짓기에 관심이 있다고 했다.  실지 관심 이상이다.  한때는 소설가가 되겠노라 어금니를 물어본 적도 있고 남몰래 습작에 수많은 밤을 샌 일이 있기 때문이다.  솔직히 말해, 글쟁이에 대한 욕심은 여전하다.  우습겠지만 사실이다.  이야기를 좀 하자면, 중학교때로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중학교 2학년때, 교내문학공모전이 있었다.  나는 내 이야기를 던져보고 싶었다.  물론 그 전에 원고가 있었던 것은 아니다.  그날로부터 몇 날 밤을 새서 한 편의 소설을 썼다.  분량은 단편정도였고 어린 고아소녀가 작가가 되고 그리하여 자신을 버린 아버지를 만나게 된다는 게 주된 내용이었다.  이 이야기가 나의 첫(이전에 단짝 친구와 함께 썼던 릴레이 소설을 제외하면) 소설 <작은 꽃의 희망>이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 소설은 내 이야기였다.  물론 나는 고아는 아니지만 이야기를 읽고 짓기에 대한 욕망이 정신없이 꿈틀대던 때였다.  투고를 하고 얼마지나 심사위원으로 계시는 국어 선생님께서 나를 불렀다.  그 국어 선생님께서는 3학년을 담당하는 선생님이셨다.  "너 고아니?", "아니요", "그렇구나. 가봐라" 이게 전부였다.  나는 참 영악했던 것 같다.  그 호출이 내게는 큰 의미가 있었기 때문이다.  '내가 고아인지 아닌지는 담임 선생님께 물어봐도 충분히 알 수 있어.  그냥 나를 보고 싶었던 거야'  나의 그 소설은 소설부분의 최우수상을 받았다.  그것은 내게 엄청난 사건이었다.  초등학교 3학년때 이후로 누군가가 내게 장래희망을 물을 때면 줄곧 나는 소설가라고 답해왔다.  그런 내게 내가 지은 첫 이야기로 인한 수상은 그 어떤 칭찬과 격려보다 강렬한 그것이었다.   

  그리고 나는 이문열의 <추락하는 것은 날개가 있다>를 읽고 아메리칸 드림을 간직한 두 남녀의 사랑을 그린 <빛바랜 사랑>이라는 단편소설 하나를 또 썼다.  물론 그것은 그냥 서랍 안에 지금도 묵어있다.  그리고 이십대때 <마스터베이션>이라는 소설 하나를 쓰다, 그것은 마무리가 안된 채로 한글 file로 갖고 있다.  개인적으로 가장 애착이 가는 소설은 미완성인 <마스터베이션>이다.  제목에 모두들 동그란 눈을 뜨며 당황하는데 야설이 아니다.  놀라지 마시길.  그 당시 나는 '글쓰기가 내게 어떤 의미인가?'를 끈임없이 고민했고 내 스스로 내린 답은 '자위행위'였다.  한 틴에이저 잡지에서 '자위행위'에 관한 남자아이를 인터뷰를 실은 것은 본 일이 있는데 그게 내 고백이었다.  '도저히 안 할 수가 없어요.  아무도 안 보는 나만의 방에서 은밀하게 할 수 밖에 없을 만큼 중독되어 있어요'  글쓰기가 내게 그랬다.  '도저히 멈출 수 없고, 그 쾌락의 맛에 참을 수가 없어 또다시 하게 되고 마는.  교감하고 동감하고 나눌 이는 없지만, 오로지 나 자신만을 위해 하는 행위.  그렇게 배설하고 말아야 기어코 후련해지는 행위.  글쓰기는 내게 이런 거야.'  나는 이것에 대해 쓰고 싶었다.  내 삶에 있어 글쓰기에 대한 열정이 얼마나 뜨겁고 붉은 것인지 써야만 했다.  그때는 PC가 없었는데 유치원을 마치고 담배연기 자욱한 PC방에 가서 새벽 3, 4시까지 미친듯이 타이핑을 하고 아침 7시에 기상해서 유치원을 가고 마치고 또 PC방에서 가서 소설을 쓰고, 한참을 그렇게 지냈다.  전혀 피곤하지가 않았다.  (여담이지만 그 소설을 '빨간등대'라는 필명으로 인터넷에 연재했을 때 꽤 오랜 시간 1위를 달리기도 했었다.  이거슨 자랑임. 흠흠)  그리고 유치원 일을 하면서 동화에 관심을 갖게 되었는데 그때 지은것이 <폴리의 고슴도치 나무>, <아카시아 언덕의 바람이야기>를 지었고 그리고 수십 편의 시와 몇 편의 수필을 더 지었다.  그런데 더는 이야기를 짓기 않게 된 것은 어째서였을까?  살기가 바빴던 건지, 이야기에 대한 애정이 그만큼 식은 것인지.  불행히도 둘 다인 것 같다.  그렇다고 전혀 안 쓴 것은 아니다.  그때를 시를 썼다.  시를 얕잡아 본 것인지, 내게 있어 시는 짧은 시간에 지어낼 수 있는 글 따위로 여겨졌기 때문이다.  몇 해 전에는 한 문예지에 시 몇 편을 장난처럼 투고했는데 예기치 않게 수상 소식이 전해졌고 수상과 동시에 시인으로 등단이 되는 것이었다.  그런데 나는 거절할 수밖에 없었다.  물론 욕심이 나기야 했지만 '시인'이라는 타이틀을 달고 글을 쓸 만큼 내가 시를 치열하게 사랑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런 내가 시인으로 등단을 하는 일은 시를 천대하는 것이고, 시인들을 엿먹이는(?) 치기 어린 짓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또 다른 숨은 마음이 있었다면 '나는 누가 뭐래도 소설가로 등단할 거야' 하는 욕심이 있었다.  이제 와서 말인데, 이제는 그냥 막연히 글쓰기, 글쟁이에 대한 사모와 동경만이 남은 것 같다.  나는 '내가 하고 싶은 일'과 '내가 잘할 수 있는 일' 사이에서 내가 잘 할 수 있는 일을 택해서 하고 있는 중이다.  그렇다고 '내가 하고 싶은 일'에 대한 욕심을 완전히 놓아버린 것은 아니다.   

  참 길게도 내 얘기를 하는구나.  서평이라는 것을 잊은 마냥.  나는 이 책을 읽으며 내 안에 '빨간마음'이 또다시 움찔움찔 하는것이 느껴져서 견딜 수가 없었다.  이런 마음은 '다시 소설을 써봐야겠어'로 귀결되었기 때문이다.  그러면서 내가 이야기를 짓는 방식에 대해 한 번 생각해 보게 되었다.  나는 그동안 아주 큰 오해를 하고 있었다.  뼛속까지 글쟁이에다 혈관에도 문자가 흐르는 글쟁이는 결코 손이 따라잡을 수 없는 엄청난 분량의 글을 집요하게, 막힘없이 써낼 수 있는 사람이겠거니 생각했었다.  그런데 그렇지 않았다.  한 편의 글을 짓기 위해 얼마나 그것들을 돌보는지, 살을 붙이기 위해 얼마나 많은 책들을 보고 메모를 남기며 초고를 완성하고 퇴고를 하는지.  이 모든 과정에서 얼마나 오래 머무르는지를 몰랐던 것이다.  타고난 글쟁이는 몇 날 며칠 신들린 마냥 써내려 가는 사람이 아니었다.  타고난 글쟁이는 글을 잘 지을 수 있는 그만의 방법을 가진 자였다.  김탁환 씨의 글을 보니 그동안 그의 글이 좋을 수 밖에(적어도 내게는) 없는 이유를 알 수 있었다.  <나, 황진이>에서의 단아하며 정갈한 문체(글에서 향기가 났다, 정말)나 <열하광인>에서의 긴박한 스릴감을 담기 위해서 그가 얼마나 끈질기게 글을 먹이고 글을 살찌우고 글을 길러 냈는지를 엿볼 수 있었기 때문이다. 

  책을 덮을 즈음, 자꾸 다시 글을 쓰고 싶다는 생각에 뭐 마려운 사람처럼 조급증이 일었다.  '그동안 내가 줄거리를 지어 아무 생각없이 쓰기만 했지 글을 짓는 단계와 과정은 전혀 없었구나' 싶었다.  '이게 프로와 아마추어의 차이구나' 싶었다.   

  다시 책으로 돌아가자.  이 책은 나같이 이런 사람에게 필요한 책이다.  글쓰기를 좋아하고 이야기가 될 것을 갖고 있지만 그걸 어떻게 풀어놓아야 할지 모르는 마음만 앞선 이에게 '천천히 니가 제대로 된 이야기를 쓸 수 있도록, 그 방법부터 터득해' 하고 말하고 있다.  이 책은 여행을 빗대어 쓰여 있는데 봄, 여름, 가을, 겨울을 저자와 여행하면서 이야기 짓기에 집중하도록 구성되어 있다.  그리고 쉬어가는 시간에는 내가 쓰는 글, 내가 이야기를 보는 눈에 집중하도록 질문들을 던지고 있다.  하나하나 답하다 보니 저자가 왜 이런 질문을 하는 것인지, 요점이 뭔지를 알 수 있었다.  '많이 읽고 많이 써라'는 당연한 소리를 몇백 장의 페이지를 할애해서 쓴 책들보다는 노골적으로 짚어준다.  그리고 작가의 자신감이 담긴 목소리도 있었다.  '일단 한 번 따라 해봐.  모르는 상황에서 다른 방법을 찾느니 그래도 내가 가르쳐주는대로 한 번 따라 해봐.  그리고 그 뒤에 니 스타일을 찾아도 늦지 않아' 하는. 

  숙제를 남겨두고 있는 듯하다.  아무도 재촉하는 이 없고 내게 이런 숙제가 있다는 것조차 알지 못하지만 누가 뭐라던 나는 이야기가 좋고, 이야기를 쓰고 싶다.  그것에 대해 끊임없이 이야기 할 수 있는 한 사람이 있다면 인생의 한 부분이 여물어질 것만 같다.  아, 완전히 잊어버린 것만 같았던 글에 대한 욕심.  내 가슴 한 켠에 고이 접어 넣어 놨을 뿐이지 버린 것은 아니었구나.  저자의 말처럼 영혼을 흔드는 글을 쓰는 게 그리 쉽지 않구나.  쉬워서도 안 되겠지.  아무렴 사람의 영혼을 흔드는 일인데.  그럼.  당연히 그래야지. 

  작가의 한 마디가 완전 와닿는다.  그것을 옮겨 적어보고 낙서 같은(실지 나는 서평을 누구 보라고 쓰지 않는다.  내가 보려고 쓰지.  농담같지만 사실!  우하하하) 서평은 이만 총총.   

"모두가 예술의 융합, 예술의 월경(越境)을 이야기하지만, 막상 그 수준이 낮은 게 현실이에요. 두 장르를 비스듬하게 나란히 세워둔 정도라는 표현이 맞겠지요. 다른 예술 장르끼리 만났으면 새로운 양질의 콘텐츠를 만들어내야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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