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말의 바보
이사카 고타로 지음, 윤덕주 옮김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06년 8월
평점 :
구판절판


살짝 고백하자면 내가 밥벌이 하는 일이 출판사에서 일을 하는 것이고

그 일 중 하나가 바로 일본 책을 뒤져보고 그 책을 국내 출판과 연계하는 짓이다.

조금 더 구체적으로 고백하면 각종 일본 책을 뒤지는 척하지만

관심을 두고 재밌게 일하는 것은 일본 소설을 뒤지는 일.

그래서 요새 이러저러한 일본 소설을 뒤지며 계약을 해보려고 용을 쓰는데

이제 뒤늦게 이 시장에 진입하는 입장에서 순탄하게 진행될 턱이 없다.

하여 한숨 쉴 일이 대체이고 변기 붙잡고 통탄 일도 없다 할 수 없는 상황이 종종 발생한다.

그럼에도 업자로서의 정체성 이전에 독자로서의 즐거움이 대체의 모든 상황을

압도해버리는 다소 불성실한(아니 거의 무책임하다) 나라는 인간의 정체성은

이사카 고타로의 <종말의 바보> 같은 책을 읽어버리고는

아, 내가  이 책을 잡았어야 하는데 라는 생각 이전에

아, 읽어 행복하다 라는 감탄에 그저 겨워 즐거워해버린다.

그렇다. 이 소설은 쏙 내 맘에 들어버렸다.

어찌됐든 이 소설은 이렇게 나와주셨고, 독자로서 나는 즐겁게 읽어버렸다.

우선은 그게 좋은 게다.

그리고 내일 아침 잠깐 반성하고 다른 책 뒤지면 되는 거다, 라고 뻔뻔하게 자위하고

독자로서의 나의 정체성은 오롯이 보존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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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lowup 2006-09-28 21: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확실히 그런 느낌이 들어요.1~2년 사이의 변화인 것 같은데. 이젠 다 메이저에서 덤비는구나, 싶더군요.
문학동네나 작가정신, 현대문학에서 일본 추리 소설들이 나오는 게 맞나 싶은 건, 너무 구닥다리 생각인가요?
근데요. 왜 그렇게 이 책이 재미있었는지. 힌트는 줘야 할 거 아녜요?
정작, 그 소린 쏙 빼놓다니--;
궁금해요.

물만두 2006-09-28 22: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나무님 읽으시란 얘기죠^^

한솔로 2006-09-28 22: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6하 원칙 중에 기반하여 "내가(누가) 요새(언제) 지하철에서(어디서) 종말의 바보를(무엇을) 재밌게(어떻게) 읽었다"까지는 쓰는데 언제나 "왜"는 빼먹죠(아니 못 쓰죠-_-)
 
마왕
이사카 고타로 지음, 김소영 옮김 / 웅진지식하우스 / 2006년 8월
평점 :
구판절판


전체주의 정치세력에 맞서는 초능력 형제의 이야기 라니 근사하다!

책을 읽기 전 이렇게 두근거리는 마음을 주는 건 작가가 이사카 고타로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책을 읽은 후 입술 내밀고 불퉁대는 건 이사카 고타로가 쓴 작품이기 때문이다.

좀더, 좀더 명랑할 수 있지 않았나요, 이사카 고타로 선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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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만두 2006-09-26 17: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파시즘을 명랑하게 하라구요? 남쪽으로 튀어가 있는데 비슷해 보이지 않을까요^^;;;

한솔로 2006-09-26 17: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네, <남쪽으로 튀어>는 참 명랑하게도 싸우죠ㅎㅎ
 
플리커 스타일 - 카가미 키미히코에게 어울리는 살인
사토 유야 지음, 주진언 옮김 / 학산문화사(단행본) / 200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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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글쓰기의 윤리성이라는 걸 함부로 얘기할 계제는 아니지만

이 책의 경우 그 윤리성이라는 차원에서 괴로움을 준다.

물론 강간과 살인에 대해 다룰 수는 있다.

그러나 마우스나 키보드, 또는 조이스틱으로 조종되는 듯한 게임 속의 캐릭터들이

저지르는 강간과 살인이 굳이 책으로 묘사될 이유가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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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만두 2006-09-26 12: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별 둘... 역시 보지 말까요?

한솔로 2006-09-26 13: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음. 솔직히 많이 거슬렸는데도, 이 책이 시리즈라는 걸 아니까 그 나머지에 대한 궁금증은 조금 있습니다. 책이 나오면 아마 고민하게 될 듯합니다.

blowup 2006-09-26 15: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괴로워하면서도 궁금해 하시니. 진짜 괴롭겠는걸요. 일본문화를 더듬거려 보려면 여기까지 가봐야 하는 걸까요?

한솔로 2006-09-26 15: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마니악한 세계라서 감히 접근을 못하고 있지만 손가락만 살짝 담가 맛 보려고요^^
 
명창들의 시대 - 조선을 울리고 웃긴 소리광대들, 삼백 년 판소리사의 풍경
윤석달 지음 / 작가정신 / 200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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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하루키가 <노르웨이 숲> 서문인지, 후기인지 또는 그에 대한 후일담에 썼는지 기억은 티미하지만

여튼 그런 얘기를 하지 않았던가. 이 소설을 읽고 남자친구가 보고 싶어져서

기숙사 담이라도 넘게 된다면 행복하겠다고. 그런 물리적 힘을 가진 소설이었으면 한다고.

<명창들의 시대>를 읽는다면 명창들의 그 목소리가 듣고 싶어질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꽤나 근사한 경험이 될 것이다.

최소한 나는 그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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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lowup 2006-09-26 00: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물리적 힘을 가진 책. 그러게요. 손가락 하나도 움직이지 못 하는 책이 대부분이니. 그런 경험이 그립네요.

한솔로 2006-09-26 08: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물리적 힘을 가진 문학작품을 만나기란 참으로 쉽지 않죠.
 
스즈미야 하루히의 우울 - 스즈미야 하루히 시리즈 1
타니가와 나가루 지음, 이덕주 옮김, 이토 노이지 그림 / 대원씨아이(단행본) / 2006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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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취향과는 별개로 이른바 라이트 노블이란 장르(라고 할 수 있을지는 여전히 의문이지만)에

눈이 쏠린다(아니 취향과 별개라고 말할 근거도 없다. 안 읽어봤으니까).

그 쏠림의 이유는 어찌됐든 소설이란 장르가 예전 만큼 사람들에게 안 읽히고 있다는 것은

분명하며, 그 경향성은 좀더 강해지면 강해졌지 바뀔 가능성은 희박하다고 보기 때문이다.

물론 여전히 좋은 소설은 등장하고 있고 과거의 좋은 소설들도 건재하다.

아마도 평생 그 책들을 다 읽지 못하겠지만 그 리스트가 여전함에 내 삶은 즐겁다.

그럼에도 소설의 미래라는 걸 생각해보면 마냥 밝지 않다고 느껴진다.

어쨌든 수치로서 소설의 독자가 줄어드는 것은 확연하니까.

그렇다면 라이트 노블이 그 대안이 될 수 있을까.

장담할 수 없는 이야기. 허나  기존 소설 장르의 독자들이 빠져나가는 것에 비해

라이트 노블의 독자들은 계속 확대하고 있다는 것은 역시 수치상으로 나타난다.

일본 출판시장을 살짝 들여다보면, 한국보다야 소설 인구가 훨씬 탄탄하고

시장은 유지되고 있음에도 소설 독자가 줄어들고 있는 것이 사실.

그런 경향이 한동안 지속되다가 최근 조금씩 소설 시장이 넓어지고 있다는 보고가 나타나는 데

그 근저에는 라이트 노블과 휴대폰 소설의 성장이 한몫하고 있단다.

중고생들이 라이트 노블과 휴대폰 소설을 통해 소설을 읽기 시작하면서

다른 소설까지도 외연이 확대되고 있다는 말씀.

그렇다면 한국에서도 이런 식의 시도가 가능할 것인가라고 살짝 고민하며

스즈미야 하루히의 우울을 읽었다.

살짝 고민한 것 갖고는 역시 택도 없다라는 결론뿐.

여튼 재미는 있다. 재미라는 측면에서만 접근할 수는 없겠지만

재미조차 제대로 주지 못하는 것들은 또 얼마나 많은가.

진지하지 못한 고민의 푸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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