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아가신 양반들과는 단 한 사람과도 일면식이 없지만 사고를 접하고 그 부조리함에 우울할 수 밖에 없었던 사람 중 한 명으로서 고인들이 스틱스강을 무사히 건너길 빌며.
총기규제에 대한 건이야 절망적일 정도로 빈번히 언급됐지만 그럼에도 고쳐지질 않았으니, 이번에 이런 대형사고도 터졌겠다 찰턴 헤스턴이랑 별로 사이 안 좋은 민주당이 표밭을 먹어치우면 뜯어고쳐줬으면 싶은 마음이고.
망가진 이민 세대의 초상은 너무 명명백백하고 르포로도 여러 번 다뤄졌지만 정작 어떠한 사회적, 인식적 승화의 차원엔 못 이른 것이 아직 이 문제에 대해서 우리나라 사람들은 실질적으론 꽤 무감각하구만 하는 생각이 들었고. 사실 이게 진짜 문제인 거고.
아울러 같은 날 피디수첩에서 방송된 어학연수라는 간판 달고 가서는 씨뿌리고 오는 한국인 인간말종들 얘길 보면서 아 개새끼들 좆같다는 생각 들었고.
이후 사건의 여파가 전개되는 과정에서 내가 흥미있게 본 것은, 이 사건을 바라보는 우리나라 사람들의 태도다. 그것은 부끄러움과 사과라는 키워드다.
미국에서 이런 엄청난 사건을 일으킨 한국인이라는 사실이 지금 우리나라 사람들 전체에게 무거운 짐을 올려놔주고 있는 듯 하다. 집안망신이라는 거지. 일각에선 이번 사고를 일전의 장갑차 사고 때와 같은 미국과 관련한 대응들과 결부시켜서 논리를 진행시킨 곳도 있었다. 한마디로 우리나라 사람들, 미국에 대해 할 말이 없는 거라 이거다.
그런데 난 이 부끄러움의 논리에서 기이한 민족의식을 발견한다. 결국 우리나라 사람이니까, 우리 민족이니까 라는 공동체적 정신세계에서 발현되는 이 부끄러움은 궁극적으로는 장갑차 사고 때 촛불집회를 지지했던 다수의 여론과도 일치되는 종류의 것이다. 삶의 대부분을 미국땅에서 보내야했던 조승희라는 개인의 사고를 단지 호적이 이쪽에 붙어있고 생긴 게 비슷하다는 이유로 공동체사회의 수치로 치환시켜주는 것은, 그리고 미국(이라는 가상의 공동체라고 하자)에서 이에 관해 따질 때 할 말이 없다는 자책은 지독할 정도로 절절한 민족의식의 발현이다(이미 '미국'이 이 일을 가지고 따져온다는 생각을 한다는 것부터가 너무나 한국적인 견지에서 일반적인 동시에 전형적으로 비틀린 사고다). 즉슨, 같은 민족적 자각의 연장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지금 이 사건을 미끼로 소위 남한땅내의 반미여론에 대해 비판적 견해를 표출하는 이들 중 과거의 저 문제적 사건 때 그리 적극적으로 민족의식을 발산한 사람은 몇 없는 듯 싶다. 이 독특한 이중성은 민족주의라는 개념이, 그것을 표면적으로 부정하는 사람들에게조차 여전히 유령처럼 머릿 속을 두둥실 떠돌아다니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역사를 살펴볼 때, 조승희 같은 괴물이 없었던 나라를 찾기가 더 힘들 것이다. 되려 그에게서 발견되는 모종의 집단적 특성이라면 다민족국가, 이민자국가로서의 미국적인 특성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그런 점에서 그가 어째서 시민권을 취득하지 않았는지-못했는지?-가 궁금해진다). 그의 행위는 인간이 가졌던 범주의 것이다. 그러니 조승희라는 인간이 어째서 괴물이 되서 잔인한 부조리극을 연출해야 했는가는 그의 개인적 사정, 아직 제대로 드러나지 않는 사건의 경위, 이미 위험수위를 넘어선 도피성 이민의 허상과 그런 프로세스가 구축될 수 밖에 없는 이 나라의 현실, 그리고 미국의 형편없는 총기규제법까지 아울러서 냉정하게 다뤄져야 할 바이다. 그외의 것은 그저 논점만 흐릴 뿐.
관련해서 이번 사건 만큼이나, 고작 이틀 사이에 엉터리 정보들이 미친듯이 웹과 오프라인을 떠돌아다닌 현상(북핵 사태 때도 이렇진 않았다)이 근래에 전무했다는 점에서 또한 이 사건에 대한 '민족적 불안감'의 남다른 표출로 읽어도 됨직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