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권료가 어지간히 비싸서 투자금 착실하게 회수하려는 목적 때문인지(솔직히 값도 만만찮다) 향후 이어질 그래픽노블 시리즈의 전초전으로써 텃밭을 다지려는 것인지 어쨌든 시공사의 심원한 자금력을 다시금 느끼게 만들 정도로 요즘 사방에서 엄청나게 광고와 이벤트를 때려대고 있는 중인 [왓치맨]. 일본식 스타일의 만화에 익숙한 독자라든지 히어로물이라는 표면에 혹한 이라면 [왓치맨]의 절제된 색감과 촘촘하게 짜여진 컷구성, 그리고 묵직한 전개가 쉽게 받아들여지지 않을 듯싶다. 그러나 [왓치맨]은 마음을 가라앉히고 천천히, 진지하게 읽어내야 할 텍스트다. 그리고 그럴 만한 가치를 앨런 무어와 데이빗 기븐스는 완성시켜 보이고 있다. 어느 컷 하나 허투루 만들지 않고, 컷들간의 유기관계들이 끊임없이 의미와 복선을 파생시키는 [왓치맨]은 문학, 영화가 표현할 수 없는 그래픽노블만의 방식으로 쓰고 디자인했다는 앨런 무어의 자신감을 완전하게 증명해보인다. [새벽의 저주]와 [300]으로 MTV와 근육에 관해선 더할 나위 없는 감각의 소유자임을 증명해보인 잭 스나이더가 만들고 있는 영화판이 여기서 보여주는 사고의 경지에 도달할 수 있을지 충분히 의심 가게 만들 정도로.

 

주로 1권에서 나오는 액션씬(...)들로 채워진 예고편. 물론 잭 스나이더답게도 진골 히어로물틱하게 때깔이 업그레이드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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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로버필드]는 시청자에게 진득한 사유의 시간따윈 제공해주지 않는다. 핸드헬드로 찍은 카메라는 끊임없이 흔들리며 주인공들은 오로지 경악하고 소리 지르고 내내 촛점 잃은 카메라 덕에 제대로 보이지 않는 것들에 쫓겨 도망 다니는 것이 일이다. 그런 와중에도 스튜디오 영화답게 대규모 파괴씬과 군부대의 동원, 군중씬과 같은 블럭버스터적 장면들이 배치되어 있으며 이것은 [블레어윗치]의 적자인 이 영화가 어떤 식으로 저예산 인디물과 차별점을 마련했는지를 얘기해준다. 한마디로 [클로버필드]는 사유 같은 건 필요로 하지 않는 순수한 의미에서의 실시간 롤러코스터적 경험의 영화이며 그건 시청각적으로 끊임없이 두들겨 맞아야 하는 피해자의 입장에 서는 것과 비슷하다. 이 영화는 시청자를 옴짝달싹 못하는 공포의 무력한 체험자로 불러 세운다.

명백히 9.11의 다각화된 패러디인 [클로버필드]는 재난물의 양상을 보여주고 있는데, 도망다니느라 바쁜 이들에게 뉴욕의 미래를 맡길 가능성은 썩 없어 보인다. 물론 그런 방향으로 보는 이는 금세 이 영화에 흥미를 잃겠지만, [클로버필드]는 관객들이 주제 넘게 괴물에 맞설 바주카포를 찾아야 한다는 생각을 가질 틈을 현명하게 차단한다. 관객들은 희망찬 미래와 영웅주의적 심리상태를 갖추기 전에 주인공들과 함께 달리고 도망 가고 힘들어해야 한다. 그런 점에서 거의 불사조와 같은 엄청난 방어력을 가지고 뉴욕을 박살내고 돌아다니며 미시 영역의 자가컨트롤 공격병기까지 갖추고 있는, 설정적으로 볼 때 거의 무적인 괴물과 더불어 내내 도망자의 강박감을 표현해주는 어질어질한 핸드헬드는 정서적-육체적 피로에 의한 절망감을 선사해준다. 이것이 마냥 즐거운 체험이라고 하긴 힘들다. 그러나 유령의 집이나 호러영화들은 유쾌함을 통해서 자신의 정체성을 확보하진 않는다. [클로버필드] 또한 같은 종류의 영화다. 앉아있는 동안 팝콘의 소비량과 중성지방을 풍성하게 늘려줄 이런 영화들은 전통적으로 선택된 마조히스트들을 필요로 하는데 [클로버필드]는 거기에 더해 기술적 측면에서의 시신경과 위장의 강인함도 시험할지 모를 일이니 통각의 갯수를 늘려놓은 의미에서 첨단의 영상 사디즘을 보여준다고 할 수도 있을 것이다.

[클로버필드]에 대해선 이런 불만도 심심찮게 있다. '결국 형식만 좀 다를 뿐이지 내용이 일직선으로 뻔하고 기존의 괴수물에서 새로운 게 없다.' 그러나 유령의 집에서 진득하고 다채로운 스토리를 원한다면 [캐리비안의 해적]은 못 만들어졌을 것이다(사실 그 심심찮게 졸립게 만드는 해적영화가 그토록 글로벌적인 대박을 친 건 여전히 수수께끼이긴 하다). 놀이공원에서 [라쇼몽]이나 [밀러스 크로싱]을 감상할 이가 어디 있겠는가. 물론 [클로버필드]의 공포가 그리 단순한 것이 아닌, 7년 전 뉴욕에 대한 유사체험이란 걸 고려하자면 텍스트적으로 보다 흥미로워질 수는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UCC에서부터 화제를 일으키고 자발적으로 발생한 수많은 설정놀음들을 자양분 삼아 상업적인 성공을 거둔 이 영화 본체에 대한 것이라기보단 한참 부차적인 정치적 영역의 얘기로 보인다. [클로버필드]는 차라리 그 공포가 벌써부터(혹은 이제야) 마니악한 유희의 한 형태로 투사되기 시작했다는 어떤 증표로 받아들일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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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업자가 된 기념이라고 하면 웃기는 얘기지만 여튼 얼떨결에 [신데렐라 맨]을 보게 됐다. 이거 일종의 마조히즘인지도 모르겠는데.

연기들은 한결같이 좋다. 론 하워드와 러셀 크로우가 팀웍을 이뤘던 [뷰티풀마인드] 때와는 스타일이 상당히 달라진 연출도 지나침 없이 평균점 이상을 유지하고. 출중한 사운드 디자인이 지원해주는 시합장면에서의 격렬함도 좋다. 스토리도 뭐 망가진 퇴물의 눈물나는 재기전이라는 만고불변의 감동라인을 갖추고 있다. 개봉 당시 미국쪽 비평가들은 찬사 일색이었다. 그리고 거의 모두가 이 눈물 짜내는 영화가 오스카에서 한 자리 해먹을 거라고 예상을 했다. 그리고 망했다.

미국쪽과는 달리 이런 아메리칸 드림류의 영화에 별 감흥을 못 느끼는 듯한 우리나라 비평쪽에선 그저 그렇네 라는 평이 다수였지만. 암튼 모든 것을 갖췄음에도 성공하지 못한 영화라는 건, 시기의 문제라고 볼 수 있다. 그리고 소위 이런 감동의 재기스토리를 다룬 영화들은 그 어떤 스타일의 영화보다도 운과 시기에 좌우된다. 왜냐하면 그건 너무나 흔한 이야기니까. 짐 브래독 만큼 인생을 굴러먹은 인간이 리더스 다이제스트나 샘물에 실릴 법한 전형적인 스토리 라인을 돈을 주고 보러 갈 상황이라는 건 어떤 사회적 차원에서의 동일경험에 대한 욕망이 생기지 않는 한엔 힘든 바다. 좋은 연기자, 좋은 연출, 좋은 이야기, 좋은 지원력이 결합되었다고 해도 상업적 성공은 보장되지 않는다. 시장이란 그런 것들만큼 좋은 동네가 아니니까.

필연적으로 비슷할 수밖에 없지만 영 밍숭맹숭했던 [록키 발보아]보다야 훨씬 괜찮은 영화긴 한데, 암튼 퇴물들에게 삶의 희망과 용기를 부여해줄 수도 있는 영화가 내용과는 달리 결국 쫄딱 망했다는 게 역시 현실이란 그런 거야 식의 우울한 진리감을 다시금 선사해 줄 수도. 영화 속에서 브래독이 애들 찾아오려고 벌이는 절절한 구걸씬이 권투장면보다 더 기억에 남는 건 그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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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가본드 2008-07-17 02: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읽다가 록키가 생각났는데 ㅋ
어쨌든 저도 '록키막판'보단 낫다고 생각하죠..좋은영화였는데 쩝.

hallonin 2008-07-17 13: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록키발보아도 생각해보면 양키쪽 비평가들이 어지간히 뽐뿌질이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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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가본드 2008-07-11 14: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크리스천 베일과 (고)히스레져는 그들의 별로?였었던 작품때부터 빠돌이였다는.
맨날 커밍은 순인데 개봉은 언제 -_-;;

iamX 2008-07-11 20: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고담 시티는 대운하 언제 파나용?

hallonin 2008-07-11 21: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개인적으로 히스 레저는 별로였는데 이번엔 아주 굉장하게 해냈나 보더군요. http://dvdprime.connect.kr/bbs/view.asp?major=MD&minor=D1&master_id=22&bbsfword_id=&master_sel=&fword_sel=&SortMethod=&SearchCondition=&SearchConditionTxt=&bbslist_id=1343896&page=1


뭐 복당녀도 돌아왔겠다 국회도 개원했겠다 곧 꿈은☆이루어지지 않을까요.

배가본드 2008-07-17 02: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히스에게 오스카를 ㅜㅜ
 



http://passionate.b.ribbon.to/onamas1.htm

 

1. 가는 동네마다 오나마스 얘기뿐임. 어째 그런 데만 가는 건지도 모르겠지만.

2. 냉정하게 이성을 가진 사람이 생각한다면 웃기지도 않는 스케일 속에서 갖은 폼은 다 잴려고 하는 황망한 주인공이 등장하는 이 만화가 가진 덕후(외 다수) 대상의 정서적 흡착력은 바로 그 망상적인 캐릭터가 보여주는 음침한 인간형다운 것에 대한 동질성에서 비롯된다(그러니까 이 이야기가 효과적으로 작용할 수 있는 건 작용의 당위성 때문이라기보다는 망상과 불협화음적인 감정 상태에 대한 세심한 묘사에 의해서다). 같은 반 여자아이에 대한 망상을 키워 여자화장실에서 몰래 자위를 하는 일과를 가지고 있는 쿠로사와는 장소와 행위가 동시에 보여주는 협소하고 저열한 수준이 자가당착에 가까운 자신감과 언밸런스한 조화를 일으키며, 그 상충하는 작용들의 전시가 쿠로사와의 행위에 대한 해체 작용을 무의식적으로 불러온다. 그런 전제하에 소극적인 행동의식을 수반하는 망상과 기분파적인 공명의식과 적당히 자극적인 소재, 그리고 찌질함으로 파생된 음침한 이의 의식이 유지할 수 있는 현실적인 수준의 지평이라는 요소들은 이야기의 전개와 대전환부에 대한 설득력을 유지해준다. 그러니까 이것은 의외로 '적절한' 의식 수준을 바탕으로 진행되는 이야기다.

3. 캐릭터의 성격을 잡아내는 수준은 전반적으로 고르게 훌륭한 편. 캐릭터에 대한 명확한 포착과 드라마적 황금율에 가까운 비율 배치는 이 만화의 강점. 츤데레만 빼면. 아니 어쩌면 츤데레조차.

4. 추가로 도중에 발작성 발기현상에 시달리는 주인공을 보여주는 것은 뭐. 보여줄 게 없는 주인공에 대한 나름대로 극적인 현상 장치였는 듯.

5. 에바 이후로 일본 서브컬쳐 전통의 화두가 되어버린 닫힌 세계의 탈피, 열린 세계와의 적극적 접촉이란 주제를 견지함에 있어 여기서도 같은 종류의 반복을 보여주지만, 캐릭터 배치는 다소 다르다. 마이너한 이들의 응집주체인 나카오카는 오타쿠 문화의 어떤 적극적 행동양식과 집단화 의식을 대변한다. 쿠로사와와 키타하라는 그런 마이너한 취미 체제에조차 편입되지 못하는 이들이다. 그들은 작중에서 계속 마이너의 마이너를 지향한다.

6. NTR은 역시 마인드 임팩트에 효과가 좋음.

7. 츤데레가 승리한다, 라는 명백한 트렌드 쫓음은 비판의 여지가 있겠지만 뭐 그리 상관없어.

8. 작화적으론 연출 능력은 탁월한데 기본기는 좀 더 다듬어야 한다는 생각. 한마디로 작가가 덕구 출신.

9. 딸딸이를 소재로 인간 구원의 문제를 담아낸다는 건 그 조합만 보면 도저히 무리라는 생각이 절로 드는데 어떻게든 해낸 작가(들)를 보면 재주가 좋긴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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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고자라드 2008-07-02 22: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마기스텔은 여신

hallonin 2008-07-02 23: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니 됐고 뎀프시롤!!

ㅎㅎㅎ 2012-06-23 00: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ㅎㅎㅎㅎ 재밌게 읽었습니다 리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