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말 우연찮게 보게됐다. 그리고 날 한방에 날려버렸다. 끝.

1. 감독은 다이치 아키타로. 저 마사루 애니메이션판 감독이다....

그런데 그것보단 이 양반이 [후르츠바스켓]의 감독도 했었다는 것이 더 충격적이었다-_- 필모그래피를 보니 [리리카SOS]로 데뷔했으니 1995년부터 일을 시작한 중견. 아동물에서 이런 괴짜스러운 시리즈까지 가리지 않고 해치우는 전천후 스타일인 듯.

2. 그래서인지 오프닝은 마사루의 성우였던 우에다 유지가 맡아서 다음과 같은 노래를 들려준다.

코트의 안에는 마물이 살고 있어
믿을 수 있는 동료들은 모두 맛이 갔어
발레에 걸었던 청춘
그렇지만 모두 맛이 갔어
나와 당신은 친구는 아니지만
나의 친구와 당신은 친구
대충 그런 느낌
개그만화 일화

의미에 대해선 묻지마시라.

3. 5화까지 나온 현재 개인적으로 가장 재미없었던 에피소드는 2-3화. 쇼토쿠 태자와 그의 수행원이 중국으로 가는 길에 벌이는 촌극. 2화에서 두연인이 벌이는 밀담이 압권이었다.... '이쨔, 이쨔, 이쨔, 훗, 이쨔, 이쨔, 이쨔....'

4. 5화에 등장하는 마쓰오 바쇼는 일본 단시의 한 장르이며 오늘날에도 인기가 좋은 하이쿠를 정립시킨 이로 이름이 높다. 그의 말년을 채운 하이쿠 전국 유랑은 오늘날에도 관광코스가 따로 만들어져 있을 정도로 유명하며 5화의 배경이 바로 그즈음-_- 

5. 매화마다 보컬이 바뀌는 엔딩송의 중독성이 강하다.

6. 이건 1화. 부담없는 상영시간 5분.

http://webzine.sunchon.ac.kr/db/BBS/board5/owqwks.wmv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오래 전에 아는 이에게 빌려줬던 이 책을 어제 돌려받을 수 있었다. 한 병 분량의 참이슬과 오뎅탕 만 이천 오백원이 소요된, 확실하게 손해본 건이었다-_-

처음 이 책을 읽었을 때, 들었던 생각은

'요시나가 후미도 이제 다 갔구나....'

하는 느낌이었다. 여전히 시니컬하고 쿨하며 동시에 타인을 배려할 줄 아는 사려깊음을 가진 인물들이 나와서 특유의 포커페이스와 삐죽 튀어나온 입을 하고 인생에 대한 복잡다단한 이야기를 들려준다.... 그러나 그 모든 탁월함에도 불구하고 요시나가 후미의 스타일이란 것이 확고하게 정립이 됐다는 것을 보여준 동시에 매너리즘의 독소마저 내비치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을 가지지 않을 수 없었다. 이미 이 작가가 가진 인생관이 가진 이해와 관용, 생활사적 성찰의 폭넓음은 그녀가 주력으로 뛰던 야오이에 한정된 것이 아님을 몇 편의 비야오이물 단편집이나 모음집을 통해 증명한 바가 있다. 하지만 그에 비해 [사랑해야 하는 딸들]은 너무 밋밋한 것이 아닌가, 혹은 자신의 세계에 아주 안주해버린 게 아닌가 하는 의심이 들게 만들었다.

그녀의 단편집중 최고로 치고 싶은 아이의 체온.

그런데 오늘, 전철 안에서 [사랑해야 하는 딸들]을 다시 한 번 읽어보다가 문득, 그녀가 지금까지 남성들의 세계에만 천착해왔다는 걸 깨달았다. 그것이 야오이가 아니라 가족 간의 사랑을 다루고 있는 이야기에서조차도 그녀의 작품 속에 자리하고 있는 것은 그녀 특유의 남성 캐릭터들의 군집이었다. 그러니까 여자인 이 작가는 동성애와 탐미적 취향, 예절과 격식과 성욕이 들끓는 남자들의 세계를 거쳐서 [사랑해야 하는 딸들]에 와서야 비로소 여성들의 세계, 자신과 생물학적으로 가장 밀접한 이들의 이야기를 그려낸 것이다.

[사랑해야 하는 딸들]은 그 제목에서처럼 세상의 여성들에 대한 찬가다. 피학 경향이 있는 여자, 각자 컴플렉스를 가진 어머니와 딸, 너무도 스무스하게 부숴져버린 꿈을 안고 가게된 여자들과 사랑을 알기 때문에 사랑을 못하게 된 여자. 작가가 그 모든 여자들, 불완전한 존재로 설정된 그녀들을 바라보는 시선은 그녀의 전작들처럼 이해와 용서의 전례지만 그 속에는 남성들의 세계를 바라보던 것과는 다른 진지함이 배어있다. 전작들에 등장하던 이들이 보여주던 동성간의 끈적한 시선이 배제된 모녀, 혹은 우정의 관계로만 설명이 가능한 이야기들은 그녀의 전작들이 보여주던 은근한 음탕함이 사라져버린 세계인 동시에 그런 의미에서 보다 자유롭게 애정과 관계에 대한 질문을 적극적으로 환기시킨다. 여기서 사랑이라는 화두는 단순하게 남녀든 동성이든 간의 에로스적 애정의 연장이 아니라 여자들에 의해 부드럽게 전복되고 확대되는 아이콘이 된다. 물론 그녀의 작품군이 대개는 애정을 빙자한 인생찬가, 혹은 삶에의 이해에 얽혀있는 이야기였지만 [사랑해야 하는 딸들]에서 그 모든 체념과 회한, 자기만족과 깨달음들은 유난히 담담하면서도 살갑게 다가온다. 사랑은 차별적 개념이 되어 한 여자로 하여금 사랑을 포기한 사랑을 가지게 만들고 모녀들은 서로를 미워하면서도 이해하고 받아들이게 된다. 이 설득의 과정은 결코 쉬운 길이 아니었지만 [사랑해야 하는 딸들]이 보여주는 성과는 생각보다 훨씬 넓게 요시나가 후미의 만화가 가진 세계를 확장시켰다.

이젠 그녀의 백합물을 기대해도 좋은 것인가-_-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2002년에 만들어진 극장판 애니메이션을 보게됐는데.... 이렇게 피튀기는 만화인 줄은 몰랐다-_- 음모-살인-음모-살인의 라인이 폭주기관차처럼 펼쳐졌.... 였으면 좋았겠으나. 꽤 과격한 편인 스토리와는 상반되게 연출적인 측면에서 이 작품은 대단히 금욕적이다. 일단 성우들의 연기만 봐도 전반적인 프랑스 오락영화들에서 볼 수 있었던 배우들의 그 요란스러운 오버액션은 커녕 가장 감정적으로 격렬해야 하는 순간조차 차분하고 평평한 톤을 계속 유지.... 작화 속의 인물들은 어지간한 포커페이스.... 액션씬이나 폭발하는 감정의 소용돌이씬이나 위기상황이나 일반적인 대화가 이뤄지는 씬이나 모조리 별 차이가 없을만치로 올곧게 정적이거나 거리두기로 연출되어 있고....

그런데다 캐릭터들의 행동이 각 캐릭터들의 위치나 상황과는 여러 모로 거리감을 보인다. 중국인, 러시아인, 미국인 가리지않고 죄다들 프랑스말을 그토록 능숙하게 구사한다는 게 감상에 영향을 줬다손 치더라도 여기 등장하는 캐릭터들은 하나같이 지나칠 정도로 은유를 좋아하고 예절에 익숙하며 납득할만 한 플롯외의 범위에서 사람에 따라 차별적인 태도를 구사한다. 소위 프랑스적인 감수성이라고 불리는 게 존재한다면 바로 여기서 그 감수성이 모든 캐릭터와 상황전개에 덧씌워졌다고 봐도 좋을 정도. 상당한 함량의 역사적 지식과 배경이 동원된데다 그런 설정 하에서 인물들이 펼쳐보이는 맛깔난 페이소스에도 불구하고 전체적으론 상당히 심심했다....

아마 이게 원전이 아닐려나....

어언 반세기가 훌쩍 지났음에도 강력한 후까시 포스를 내뿜는 코르토 말테제의 존재가 그나마 위안.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그러고 그냥 돌아가긴 뭐해서, 결국 만화책을 질러버리고 말았도다.

15~16권에서 의료만화로의 전환을 시도하는 듯 했던 무한의 주인은 17권에서 비로소 루즈함을 조금 털어버린 듯, 뭔가 벌어질락 말락 한다. 물론, 아직도 벌어질락 말락이냐며 집어던져도 할 말은 없다....-_-

여전한 작품. 여전히 훌륭하다. 그리고 완결.

쇼타적 색기가 넘치는 히로인(?)이나 멀대에 흑발머리, 그의 친구 금발머리, 주종관계의 자연스러운 성립, 등등 꽤 괜찮게 설정된 시대극이란 걸 제외하면 야오이물의 정도를 걷는 물건이지만 넘쳐흐르는 감정과잉의 대사들로 가득하기 십상인 이쪽 장르치곤 제법 절제미가 돋보이고 깔끔한 연출에 힘입어 볼만한 작품으로 완성됐다.

그리고 이놈.... 절판인데다 속공생도회만큼 운이 좋지 않은 다음에는 어느 출판사에서도 별로 내고 싶어할 것 같지 않은 물건.....



대충 이런 만화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군대에서 들었던 얘기. 소위로 임관한 양반의 친구가 겪었던 이야기란다. 이 친구 되시는 양반이 부산역쪽을 어슬렁어슬렁거리다 의례적으로 붙기 마련인 어떤 삐끼 아줌마와 조우하게 됐는데 이 아줌마, 오천원에 한 번 일을 치루는 게 가능하다고 하더랜다. 이 친구 되시는 양반왈, '아줌마가 해줄 거요?' '아냐, 총각. 예쁜 애 있어. 따라와 보라니깐....' 안타깝게도 이미 총각은 아녔지만, 어쨌든 늙수그레한 아줌마도 2만원은 받는 게 시세인데 대체 어떤 여자길래 말도 안되는 가격, 오천원이냐 하여 관심이 동한 이 친구는 아줌마를 따라 골목을 타고 타고 꼬고 돌아가는 길을 가서 결국 어느 집 앞에 섰더랜다. 집 앞에 달린 다다미식으로 된 문을 열고 들어간 아줌마가 사람 부르는 소리가 들리더니 이윽고 문이 열리면서 빼꼼- 여자 한 명이 고개를 내밀었다. 친구의 증언, 이뻤단다. 목소리도 예뻤단다. '들어오세요....' 그래서 이 친구분, 웬떡이냐 싶어 힘차게 문을 열어제꼈단다. 그랬더니,

이 아가씨, 한쪽 다리가 없더란 거다.

이 친구, 있는 힘을 다해서, 뒤에서 들려오는 이모 아줌마의 그릇된 호칭(총각~ 총각!)에도 뒤도 안 돌아보고, 열심히 달아났다.

 

http://www.mediamob.co.kr/MediaMob/Article/ArticleView.aspx?PKId=8855

장애인의 성문제는 일종의 터부다. 아니, 적어도 한국사회에선 터부라고 부를 수도 없을 정도로 완벽하게 무시되는 영역이다. 결론은 인간사회에서 벌어지고 있는 여느 골치 아픈 문제의 결론들이 그렇듯, 인간의 기술, 제도와 법칙 선에서 온전하게 해결될 수 있다는 보장을 하지 못한다. 그러나 정말로 무력하지만 자각에서 비롯될 그 무력함이나마 가치있게 만드는 것은 문제를 직시할 수 있는 용기를 갖는 것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