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레롤스가 작곡한 곡들을 조르디 사발이 재생해 낸 이 앨범을 처음 들었을 때의 감각을 되새겨보자. 이게 뭐지? 미사곡? 그냥 합창? 마치 지리한 흐름이 끈질기게 계속 이어지는 거 같은 느낌. 광고문안에 새겨져 있는 '대단히 모험적인 기교?', '열정적이고 신비로워?' 그런 거 안 느껴짐. 에라 모르겠다 구석에 때려박아놓자.

이 앨범을 제대로 들을 수 있게 된 건 거의 3개월이 지나서였다. 한바탕 시덥잖은 고음악 섭렵이 지난 후에야, 그래서 어줍잖게 그 시절의 다성음악들에 겨우 익숙해졌을 때, 어째서 저런 묘사들이 이 음악들에 어울리는지 깨닫게 되다. 정말 당시의 미사곡으로선 파격적이라 할 스타일. 모험심 섞인 응용. 그래서 이 양식곡들이 당대에 비추어 얼마나 뜨겁고 변화무쌍한지 체감하게 됐다.

 



그리고 이건 한 3년만에 들어본 거 같은데, 처음 샀을 땐 거의 지뢰 밟았구나 수준의 돈날려먹었다는 자책감 들었었음. 해서 그때 기억만 안고서 팔려고 꺼냈다가 시험 삼아 듣고선 도로 집어넣었음. 뭐 역시 과거의 난 거기서 거기였던 거겠지.

 

아 뭐 일자무식, 인생벌판이어도 가끔씩 이런 깨달음의 순간이 있으니까 그 즐거움에 살아갈만 한 거 아니겠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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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론으로 얘기되는 거라면, 나인인치네일스의 [with teeth] 앨범은 절반의 성공과 절반의 실패 그 어디쯤인 듯 싶다. 확실히 내가 듣기에도 오랜 슬럼프를 끝내고 나온 앨범다운 피로감과, 이전의 자신의 색깔에 대한 거부감이 느껴지는 강박이 섞여서 개인적으로 무지하게 맘에 드는 곡과 어설프게 맘에 안 드는 곡들이 들쑥날쑥하게 있다고나 할까.

그런데 이 앨범이 나에게 있어서 충격적이었던 것은 13번 트랙 'Right Where It Belongs'를 처음 듣는 순간이었다. 바로 뒷편에서 힘겹게 웅얼거리는 것 같은 트렌트 레즈너의 목소리가 곡 말미에 가면서부터 관중들의 함성 소리와 함께 목소리의 발화 위치가 달라지도록 프러듀싱되어 있는데, 그 효과가 굉장했다. 마치 진흙벽 너머에서 들려오던 것 같은 목소리가 서서히 그 모습을 드러내면서 거대한 진공 효과를 통해 머리 속 세상을 가득 메우는 것 같은 느낌. 온전히 소리로만 구현된 그 입체감은 그제껏 경험해 본 적이 없는 환상적인 것이었다.

그때 썼던 이어폰이 빅터 HP-AL5. 가격은 만원 내외인 싸구려다. 그러나 그때 이후로 어디서도, 어떤 걸 써서도 같은 곡에서 그와 같은 느낌을 받은 적이 없었다.

오늘 어쿠스틱 플랜의 CDP와 프라이메어 프리+파워, 그리고 레벨 살롱2로 같은 곡을 들어봤다. 소리가 오른쪽에서 머물다가, 그 변화되는 부분에 이르자 서서히 가운데로 옮겨가며 공간을 확장시킨다. 이것은 하나의 단서인가.

처음 접한 것이 접할 수 있는 최고의 것이면, 그 환상과 후유증은 꽤 오래 가는 법이다.


n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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ジェロ(JERO) - 海雪(Umiyuki)

 

...뭔가 굉장히 많은 얘길 하고 싶어지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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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기말 2008-03-10 13: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하하 이거 정말 뭐라도 얘기하고 싶은 충동이;;

hallonin 2008-03-11 00: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힙뽕.
 



영국에서 나온 황병기 5집. 우리나라반에 이미 영어 설명문도 있고 하건만 뭐하러 또 영국에서 따로 내나 싶었는데 라이너 노트가 프리마스터를 맡은 디즈 헬러란 양반에 의해 다시 쓰여졌고, 그걸 독일어, 프랑스어, 스페인어로 나눈 걸 보면 보다 월드뮤직적인 색채를 강화하기 위해서였나 봅니다. 제목도 무려 [The Best of Korean Gayageum Music]이고.

그리고 이것도 국내반과의 차이인데 프러듀서인 오대환의 이름이 빠져있는 걸로 짐작할 수 있지만 요 영국판은 국내반과는 다른 음색을 들려줍니다. 역시 디즈 헬러란 양반의 솜씨인 거 같은데 이걸 전반적인 서구 취향이라고 해야 할지, 영국 취향이라고 봐야 할지, 아님 독일 취향인 건지(디즈 헬러는 아마도 독일계인 듯) 모르겠습니다만 우리나라반보다 한음 한음이 결집된 느낌이랄까요. 다만 그렇게 음의 결집이 이뤄진 대신 가야금의 깊은 울림이 만들어내는 여운도 그만큼 사라져서, 전체적으로 음이 얇아진 인상을 주고 있습니다. 샤미센 음색까지 떠올린다는 건 오버지만 박약한 지식으로 비슷한 인상을 찾다보니 그게 떠오를 정도로 얇아진 느낌이라고나 할까요. 프러듀싱을 달리 하면서 녹음시 공명통 밑에 질그릇을 받쳐 확성장치로 써서 얻어낸 효과가 상당 부분 실종된 것이 중요한 이유가 아닐까 싶습니다.

뭐 취향차라고 할 수 있겠지만 저 개인적으론 국내반이 훨씬 낫습니다. 물론 우리나라에서 굳이 영국반을 구할 필요 자체가 없는 거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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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 2008-02-22 14: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그러니까 bdafuck 님은 가야금연주며 헤비메틀,저팬팝까지 음악의 모든 장르를 가리지 않고 들으시는군요.

hallonin 2008-02-23 10: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뭐 원래부터 그런 놈이었으니..

다락방 2008-02-23 20: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정통재즈는 좀 어렵구요 그 외에는 뭐 그다지 장르를 가리지 않는다고 생각했는데요,
힙함이랑 레게음악은 정말 못듣겠더라구요. 흐음..

hallonin 2008-02-24 18: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자신이 싫어하는 음악을 억지로 들을 필욘 없죠. 그것 말고도 음악이 얼마나 많은데.
 



본체 표면 C급 시디들 속에서 민트급으로 골라내는데 성공. 익히 아는 사람이 많을 것도 같지만 허니패밀리의 전신인 그룹 허니입니다. 서태지가 4집 '컴백홈'으로 대박을 터뜨린 직후에 나온 갱스터랩 그룹이죠. 타이틀곡인 'X라는 아이'는 스타일이나 분위기가 '컴백홈'과 흡사해서 은근히 인지도가 높았으며 프러듀싱이 서태지였다느니 서태지가 작곡했다느니 하는 소문이 많았습니다. 후에 비가 속했었던 6인조 그룹 팬클럽에서 리메이크하기도 했었고. 개인적으론 O-24가 얘네들 스타일을 따라가길 바랬었는데 1집만 갱스터틱하다가 다음부턴 쌩아이돌 그룹이 되버려서 슬펐었다능.

비록 망했지만 여기에 참여한 면면들은 꽤 굵직한 편이었는데 철이와 미애의 미애, 서태지와 아이들 백댄서 출신 광범, 그리고 후에 허니패밀리가 되는 박명호가 멤버였고 작곡에 지누션의 션 노승환과 지금은 와이지에 있는 페리 등등 나름 현재 한국 힙합씬에서 알아주는 이들이 들어가 있습니다. 이 앨범에 투자한 양반인 최진열은 서태지와 아이들 매니저였다고 하고.

뭐 거물 스텝들이라지만 당시엔 그리 썩.... 그리고 뭐 갱스터랩이란 것도 국내에선 서태지에 의해 겨우 대중화된 정도였으니까. 그래서인지 돈 안 들인 아트웍의 촌스러움이 압권입니다. 그런데다 인쇄도 오류가 난 건지 페이지 가오 맞추려고 뺀 건지, 9번 트랙인 '너는 왜'의 가사가 없습니다.

곡을 들어보면 일단 미애는 처음부터 힙합에 적을 둔 게 아니라 테크노 댄스쪽을 파다가 이 앨범에서 처음 힙합을 시작한 가수여서, 뽕끼 섞인 테크노 댄스틱 목소리라고나 할까 영 어색한 목소리를 내는 트랙이 꽤 됩니다(특히 2번). 힙합 보컬이 아닌 트랙에서 더 위력을 발휘해준다고나 할까요. 광범이나 박명호 또한 남한 땅에선 접해 볼 수 없었던 엄청난 래핑.... 을 구사하는 건 당연히 아니고. 전체적으로 보컬들의 빈약함에 비교하자면 한국현, 페리, 션이 만져준 백뮤직의 퀄리티가 상당한 편입니다. 'X라는 아이'는 어째 보컬이나 백뮤직이나 동시에 잘 해준 편이지만. 앨범 전체적으로 가사는 청소년적인 성장통을 공통적으로 다루고 있다는 점에서 뭔가 앳띤 초창기 한국형 야매 갱스터랩다운 면모를 보이고 있습니다.

지식인을 보면 이 앨범에 서태지가 참여하긴 했는데 'X라는 아이'의 후렴구 랩메이킹을 도와줬었다는 네이버 지식인 정보(http://kin.naver.com/detail/detail.php?d1id=3&dir_id=30601&eid=/OMFzruCNlX2yrMq2sfnctVSBbNfnf4J&qb=x+O0zyBYtvO0wiC+xsDM)가 있습니다만, 다른 곳의 정보(http://blog.naver.com/taijihe?Redirect=Log&logNo=60003219753)를 보면 그보단 더 많은 부분에 손을 댔었던 것 같습니다. 어째 원곡보다 서태지쪽 랩핑이 더 좋다는 게 좀 비극적이네요.

듀스 3집을 22000원에 팔아대는 걸 보고 미래의 앨범 재테크의 달인이 될 자신을 상상하며 흥분해서 지른 건 아닙니다 절대로. 뭐 'X라는 아이' 시디 음원은 전부터 확보해두고 싶었고. 헤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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