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에게26 + XXXX

 

    

 

 

 

 

 

 “후후, 후후.”

 여기는 사막. 하늘에 떠있는 해가 검붉은 빛을 내뿜는 사막이다.

 풀 한 포기 나지 않는 이 황량한 사막에 한 여자가 있었다. 그녀는 허공에 떠 있는 신기한 스크린을 보면서 웃고 있었다.

 “이 아이 꽤 하는데? 쓰러질 것 같으면서도 쓰러지지 않아.”

 온 사막을 휘감는 길고 긴 머리를 넘기며 그녀는 흥미롭다는 듯이 말했다. 스크린에는 그녀의 인형에게 담담히 말하는 보이더의 계약자가 반복 재생되고 있었다.

 저 탐스러운 풋사과를 보라! 그녀가 일으킨 강한 바람이 불어도 용케 나무에 달려있다. 지금 그녀가 살고 있는 이 인형도 금방 슬픔에 물들어 버렸는데 스크린에 나오는 저 계약자는 아니었다. 저 계약자는 금방 떨어질 것 같이 흔들거렸지만 땅에 떨어지진 않았다. 영약하게도 말이다. 그녀는 계약자의 신상정보가 담긴 전자 파일을 펼쳐들었다.

 

 계약자의 이름은 박선우. 나이는 18. 대명 외국어 고등학교 2학년 A반에 재적 중. 아버지는 자기가 태어나기도 전에 사망, 어머니는 돈을 벌러 외국 회사에 근무, 오빠는 자기를 지키려다가 집 근처 교차로에서 교통사고로 사망. 일찍이 고독에 찌들어 살던 그 계약자는 전장에서 의지하던 전우가 죽어도 그 시체를 눈물로 묻고 다시 최전방을 향해 달리고 있었다.

 그래서 재미있는 것이다. 그래서 쓰러뜨리는 맛이 있는 거다. 그녀는 알고 있다. 저 계약자라면 ‘A+급 절망을 낳을 수 있다는 것을. 마지막의 마지막에도 잡고 있던 희망이 절망으로 변이되었을 때에 생기는 그 에너지는 상상을 초월한다. 지금껏 믿고 있던 것이 사실은 거짓이고 허무라는 것을 깨달았을 때, 저 안경 쓴 계약자는 모든 것을 내팽겨 칠 것이다. 둘도 없는 친구도, 심지어 자신을 지켜주던 그 보이더도. 전부 다.

 

 그녀는 카르텔과 스마냐의 전쟁 때 보았던 보이더를 떠올렸다. 전쟁에서 할머니와 할아버지를 필사적으로 지키려고 하던 그 모습. 파르르 떨리는 팔과 다리, 힘줄. 그녀를 똑바로 쳐다보던 그 눈동자. 아직도 그 눈동자에서는 분홍색 유성이 떨어지고 있을까. 그 밤하늘을 닮은 눈동자가 아른거려 그녀는 입맛을 다셨다.

 방해의 그레이, 증오의 레드, 무기력의 화이트, 매력의 핫핑크, 슬픔의 세피아, 집착의 버건디, 망각의 블랙, 이 색채마법들 중에 두려움의 네이비와 섞을 수 있는 색깔은 뭐가 좋을까? 그녀는 그 네이비와 제일로 어울리는 색채 마법을 찾다가 흰색에서 눈이 멈췄다. 옳지, 이게 제일 낫겠다. 이 색이라면 저 계약자를 보이더에게서 떨어뜨릴 수 있겠지.

 

 보이더 디르 픽 메카트니. 그녀의 소울메이트, 그녀의 모든 것. 카르텔에서 찾아낸 자신의 거울. 이번에야말로 그녀를 사로잡고 말 것이다. 저 계약자를 보이더에게서 떨어지게 할 것이다. 그리고 자신과 보이더는 절망으로 뒤덮인 세계에서 영원히 함께 사는 것이다. 이것이야말로 천국! 파라다이스! 아아, 난 너만 있다면 다른 것은 다 필요 없어! 그녀는 황홀감에 몸서리를 치며 하늘을 바라보았다.

 여기는 사막. 하늘에 떠있는 해가 검붉은 빛을 내뿜는 사막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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