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말에 아이들이 나가 노는 중에 재방으로 보고 있다. 가끔 이가 빠지기도 하고, 회사의 묘사는 내가 이십년차고, 고지식한 제조업 공기업이라, 의아하지만 그러려니 보고 있다. 

어제는 결혼,에 대해 생각했다. 

서른 여덟의 배타미는 스물 여덟의 박모건을 만나고 있다. 배타미는 '나와 결혼하기 싫었던 건지'라고 묻는 전 남친의 청첩장을 받았고, 기묘한 술자리 합석에서 결혼에 대한 질문을 받는다. 배타미는 결혼할 생각이 없고, 박모건은 결혼할 생각이 있다. 배타미에게 피아노를 가르치는 젊은 여자는 '결혼할 의사가 없음에도 연애를 시작하는 것이 나쁜 거'라고 말한다. 

결혼하지 않겠다는 젊은 여자들, 결혼하지 않는 나이든 여자들,을 나도 알고 있다. 

내가 결혼할 때, 나의 친구들은 나의 결혼을 두고 한참을 이야기했다고도 한다. 그 자리에 내가 없어 아쉽다. 나는 지금도 가끔은 그 이야기들이 궁금하다. 무슨 말들을 했을까. 

나는 박모건의 말들이 모두 옳다,고 생각하고 있다. '어떤 만남도 이별이 있게 마련이다. 결국 헤어지는 연애도 있고, 결혼했더라도 결국 이혼이나 사별이 있을 수도 있다.' 끝없이 이어지는 연애,라는 게 가능한가. 배타미가 바라는 것은 무엇인가? 둘이 연애를 시작할 때, 나는 배타미가 자신의 나이 때문에 시작이 두려운 거라고 생각했다. 무모한 연애를 할 수 없어,라는 말을, 나는 '진지한 관계를 원한다'나 '결혼처럼 영원한 약속을 원한다'고 받아들였다. 그래서, 배타미의 결혼에 대한 태도까지 듣고 나니, 정말 원하는 건 뭘까, 생각한다. 언제까지나 영원히 달콤한 연애,를 원하나? 그게 가능하다고 생각하는 건가? 

결혼해서 행복하게 살았습니다,는 많은 로맨스들이 이야기를 끝내기 위한 맺음일 뿐이다. 그 다음은 어차피 관심이 없어서 이야기는 거기서 맺고 마는 거다. 이 드라마가 어찌 끝날지 모르지만, 사랑과 삶은 어떤 순간에도 끝나지 않지만, 연애를 맺는 것은 둘 중 하나 뿐이다. 결혼이라는 약속, 아니면 이별이 필요하다. 박모건이 결혼을 원하는 것은, 그 자체로는 지금의 연애가 충분히 행복하다는 말 그 이상이 아닐 수도 있다. 타미가 결혼을 원하지 않는 것은 자신의 정체성에 지표로 삼을 만큼 중요한 것인가? 너는 결혼을 원하고, 나는 결혼을 원하지 않으니 우리는 헤어지는 게 좋겠다,는 말은 그만큼 무게가 있는 말이기는 할까? 당장 달려가 모건을 잡았으니, 무게가 없었던 건데, 그런 말을 왜 자꾸 자꾸, 자꾸 하는 걸까? 


'내 멋대로 해라' ( https://ko.wikipedia.org/wiki/%EB%84%A4_%EB%A9%8B%EB%8C%80%EB%A1%9C_%ED%95%B4%EB%9D%BC_(%EB%93%9C%EB%9D%BC%EB%A7%88 )의 이나영-극 중 이름이 뭐였더라, 전경이다. 검색함.-이 고복수-양동근이다, 왜 양동근은 극 중 이름이 생각나는 걸까-의 불치병을 알고, 그 불치병을 숨기고 떠나려는 고복수에게 하던 말이 뭐였더라. 아, 나는 그 태도가 정말 좋은데. 사는 동안 살 테다. 사랑하는 동안 사랑하고, 버티지 못하면 도망갈 수도 있다, 아무 것도 모르는 채로 이별당하지 않겠다던 강경한 마음. 사는 동안 살아야지. 아직 죽음이 오지 않았는데, 오는 죽음이 두려워 살기를 포기할 수는 없다. 사랑하는 동안 사랑하고, 살아가는 동안 살아간다. 사는 동안 들러붙는 그 많은 형식들, 언설들, 적당히 수용가능한 만큼만 수용하면서, 내 자신을 지키면서 살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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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제인형 살인사건
다니엘 콜 지음, 유혜인 옮김 / 북플라자 / 2017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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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샀는지 집에 있었다. 딸이 내가 권한 책을 읽지 않듯이, 나도 딸이 '정말 재밌대'라고 말했는데 쳐다도 안 봤다. 짧은 사건의 묘사에 이미 나는 '센 설정으로 사람들을 끌어들이는' 책이라고 생각한 거다. 그런 일본 장르 소설, 많이 읽었다. 그렇다. 나는 이게 일본 소설인 줄 알았다. 그러다가,책 속의 인용문(https://blog.aladin.co.kr/maripkahn/10916052 )을 보고 읽어 볼 마음이 되었다. 버스 타고 오래 갈 일이 있어서, 챙겨 나서서 읽기 시작했다. 

읽기 시작하자 마자, 일본 장르 물이 아니라서 놀랐다. 영국이다. 

이야기는 어린 여자들을 살해하고 불에 태우는 잔혹한 범죄자가 법의 심판을 빠져 나가는 데서 시작한다. 그 사건 자체가 우경화되는 유럽을 반영하는 듯해서 물러서는 마음이 된다. 사람들의 인내심이 바닥나고 있어서, 정치나 언론, 법과 제도 그 어느 것도 믿지 못하는 게 그대로 소설이 된다. 이런 장르물이 세상은 나를 적대하고, 나만 유일하게 옳다,라는 태도를 가지는 것에 경계하는 마음이 된다. 책을 통해 고양시키는 마음에 대해 그 옛날 아빠가 걱정하던 그대로, 나도 지금 그런 걱정을 한다. 문체반정, 그러고도 남지, 싶다. 

어디선가 있을 법한 억울함들로, 어디선가 있을 법한 공포들로 직조한 이야기다. 짧은 도시괴담과 신문지면의 기이한 엽기범죄들. 무엇을 말하고 있는지, 생각하면, 이런 이야기들을 읽는 것은 세상을 사는 데 도움이 안 된다. 정치혐오, 언론 혐오,종국에는 사람에 대한 혐오를 강화시킨다.  

어렸을 때 장르물을 읽던 마음은, 세상 소중한 게 없어서 무섭지가 않아서 그랬던 거 같다. 책 속의 이야기를 멀거니 구경하는 채로 그렇게 재미있다고 생각했는데, 그 때는 이렇게까지 무섭지 않았는데, 지금은 다 너무 무섭다. 고고하게 선량하고 강한 장르물의 영웅보다, 그 영웅의 고난이 되는 사람들-인기에 영합하는 정치가, 시청률에 목 메는 언론인, 돈 몇 푼에 거짓 증언을 하는 종업원, 이리저리 여론에 휩쓸려 판단을 바꾸는 배심원-이 더 자주 더 가까이 있다고 생각하게 된다. 사람이, 세상이 그런 식이라는 걸 믿고 싶지 않다. 더 많이 선량하고, 더 많이 어쩌지 못하는 거였다고 서로를 불쌍히 여기면서 그렇게 살고 싶다. 

딸은 사놓고는 읽지 않았다,고 한다. 언제 어떤 이야기였는지 끝까지 다 읊어주리라. 

일과 거리를 두지 못하는 장르물의 영웅,이란 한심한 생활인일 뿐이라는 게 교훈이라면 교훈. 


책 속에서 '착한 사람은 없다'고 말하는 장면을 오려놓는다. 나는 그 상황을 반대로 돌려주고 싶었다. 누구라도 지나치게 몰아붙이지 말라고. 시험하지 말라고. 

˝자네도 나처럼 여기 오래 있다 보면 무슨 일이 생겨도 놀라지 않게 될거야. 슬플 뿐이지. 내가 수사관 생활을 하며 배운 게 있어. 누군가를 지나치게 몰아붙이면 결국은 그쪽에서 반격한다는 사실이야.˝
˝울프를 변호하시는 건가요?˝
˝그럴 리가. 하지만 그동안 ‘착한‘사람들이 서로에게 끔찍한 짓을 하는 모습을 수도 없이 봤어. 바람피우는 아내를 목 졸라 죽인 남편 학대하는 배우자에게서 여동생을 보호하려는 오빠. 결국은 깨닫게 되지...˝
˝뭘요?˝
˝‘착한‘사람은 없다는 것. 아직 지나치게 몰아붙여지지 않은 사람이 있을 뿐이야.˝- P3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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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Book] 자본과 영혼
김영민 지음 / 글항아리 / 201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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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북으로 받아서 점심의 산책길에, 퇴근 길에 걸으면서 읽었다. 

우리나라 철학자의 진지한 글을 읽고 싶어서 고른 책이다. 한 사람의 철학자가 쓴 진지한 제목의 책이다. 전체가 하나로 연결될 수도 있겠지만, 읽고 있는 내가 미흡해서 그저 쪽글들로 읽힌다. 그런데도 좋았다. 한글인데도 모르겠는 말들이 나와서 부끄럽기는 하지만, 서양 철학자의 책들을 읽을 때 느껴지는 유일성이나 독자성에 대한 자기 확신, 읽고 있는 나를 내려보는 듯한 태도,가 없어서 좋았다. 

글들이 말하는 사건이나 사람을 나도 알고 있는 것들이라, 재미나게 읽을 수 있었다. '우리들의 민주주의거든'을 읽을 때 가졌던 '모르는 일들에 대해 말하는 것에 대한 생경함'( https://blog.aladin.co.kr/hahayo/8968440 )이 없어서 좋았다. 우리나라 이야기라서 이미 나에게도 어느 정도 의견이 있어서. 살짝 의아한 글도 없는 것은 아니었지만, 함께 겪어 살고 있는 지금 세상의 일들에 철학자가 보탠 말들은 좋았다.

그리고, 지금의 내 마음에 드는 좋은 글을 찾았다. 처음부터 끝까지 다 옮겨놓고 싶을 만큼 좋다. 

결국 거의 다 옮겨놓은 셈이다. 

‘근본주의‘는 대개 병적 확신의 형태를 취한다. 그래서 인생에 관한 표지판들은 과신할 게 아니며, 우리는 그 속에서 그저 흔들리며 걸아가는 수밖에 없다. 무엇에 대해서든 확신은 이미 병적이므로, 확신을 선용하는 데에는 차라리 연극적인 거리감을 도입하는 게 현명하다.- P318

연극(적인 것)의 아름다움은 외려 제행무상(!)의 깨침 속에 있다. 그 의미에 강한 뜻이 없고, 그 성취는 봄꽃과 같이 아롱아롱할 뿐이다. 쉼 없이 지나가는 삶의 가치는 고집하거나 애착할 것이 아니요. 그 지나가는 사실에 대한 적확한 인정 속에서 지며리 생성시켜야 마땅하다. 바로 이 사실을 실천적 지혜 속에서 수용하는 것이 ‘연극적 수행으로서의 삶‘이라고 할 만 하다. 이 전망은 ‘바로 지금이 그때요 다른 때가 없는‘ 새로운 의욕의 사회학을 제공할 수 있지 않을까? 애초 세상이 태초의 허공 속에서 생겼듯이 인간의 의욕 역시 무상과 겸허의 거리감 속에서 더불어 발화하는 것이다.- P320

인류 문명사에 등장한 이 놀라운 연극적 실천의 성취들을 너무 ‘진한‘ 현실로 착각하는 순간 예술은 병이 되고, 사랑은 나르시시즘이 되며, 종교는 폭력이 되고 만다- P321

연극은 마치 아이들의 놀이처럼 제 깜냥으로 신실하고 진지하지만 무슨 확신의 토대를 갖는 일은 아니다. 이는 이 광대무변한 우주가 뜻이 없으면서도 화엄하고, 인생이 한 마당의 춘몽에 불과하면서도 가치 있을 수 있는 것과 마찬가지다. 사람이라는 현상은 뜻과 의미 없이는 존립할 수 없지만, 바로 이 뜻과 의미를 생성시키는 방식에 의해 그 존립의 가치는 결정된다. 사람들의 행위와 어울림을 생략한 채 ‘객관적‘으로 확보하려는 뜻은 이윽고 폭력의 진원지가 되는 법이며, 삶의 길과 틀, 전통과 전망을 도외시한 채 ‘주관적‘으로 확신하려는 뜻은 망상에 이른다. 그러므로 확신의 부재가 곧 무의미나 무가치로 낙착하는 것은 아니다.- P3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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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Book] 나의 미친 페미니스트 여자친구
민지형 지음 / 나비클럽 / 201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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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내가 페미니스트,라고 생각해왔다.(https://blog.aladin.co.kr/hahayo/7620022)

그런데, 이 책을 막 끝내고는 나는 이제 더 이상 페미니스트가 아닌 지도 모르겠다, 고 생각하게 되었다. 이미 '당신은 페미니스트가 아니'라고 그걸 선언하라는 말도 들어본 적 있으니-벌써 4년 전에-, 새삼스러운 건 아닐 수도 있다. 

나는 이 책을 '페미니스트에 대한 모욕'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읽는 내내, 작가가 남자일지 여자일지 계속 생각했다. 작가의 말까지 읽고는 여자인 거라고 생각했지만, 그래도 많은 페미니스트들이 나처럼 읽지 않았을까, 하고 서평을 검색했다. 알라딘에 하나 뿐인 서평은 '페미니즘 입문서'로도 볼 수 있다고 하고, 리디북스에 걸려있는 그 많은 서평도 대부분 공감,이 많다. 아, 여기 형상화된 페미니스트 여친에 공감한다는 거구나. 

나는 일반인 코스프레,를 하는 페미니스트, 였다. '페미니스트'라는 말을 언제나 자기 편한 대로 해석하는 사람들이 나의 어떤 행동에 '페미니스트라면서?'라고 말하는 게 싫었거든. 남초 회사에서 그저 칼퇴만 해도, 여자들은, 이라는 말을 듣는데, 게다가 '페미니스트'라면 또 무슨 말을 들을지 알 수 없었거든. 뼈를 갈아넣으라는 말을 들을 수도 있는 마법의 수사니까. '페미니스트 여자는 남자의 도움을 싫어하지', '페미니스트 여자는 직접 하려고 하지', '페미니스트 여자는 성에 개방적이지', 페미니스트 여자는 블라블라. 나는 나를 '무슨 주의자'로 규정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이었다. 그런 말이 필요한 말이 아니라고 생각했거든. 사안에 의견으로만 존재하고, 그 의견 가운데 아 저 사람은 성향이 저러하구나,라고 유추만 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페미니스트라고 다 같은 의견을 가질 수 없다고도 생각하기 때문에, 언제나 그런 식의 규정은 쓸모없다고 생각했다. 민주주의,라는 걸 말하면서도 백사람이 모두 다 같지 않은 것처럼 페미니즘도 그러하다고 생각했다. 그런 면에서 내 자신이 페미니스트,라고 혼자 생각하면서 누가 페미니스트 욕하면 발끈하고 파르르했던 거지. 그런 날들도 있었는데, 지금의 나는 내가 페미니스트가 아닐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나는 모욕이라고 생각했는데, 다른 많은 사람은 아니라면, '페미니스트'의 정의가 분명히 바뀌었고, 내가 받아들였던 그 정의(https://blog.aladin.co.kr/hahayo/7665372) 는 이미 아닌 건가, 싶어지기까지 했다. 

머리가 짧고 바지를 입고 담배를 피우는 것으로 묘사하는 페미니스트 여친,의 말들은 추상 속에 있다. 나는 '나'로 형상화된 남자의 말들이 현실 속에 있다고 생각한다. 


작가는 작가의 말에서 집 밖은 워킹데드,라고 말한다. 그 단정에 나는 또 물러선다. 좀비물,자체가 양아치-아치,가 자아가 있다고 생각하는 어리석은 존재,라는 불교용어라고 하는데, 나는 그 말을 듣자 마자 양아치,가 서양아치,라는 뜻이라고 생각했다. 딱 지밖에 몰라, 수준이라는 의미. 모든 말들의 어원처럼 여러 다른 이설이 있지만 내가 생각한 어원(서양아치,의 준말)도 있었다-스럽다고 생각하는 지경이기도 하고, 그런 식으로 연결하는 어쩌면 페미니즘도 '양아치'스러운 게 아닌가, 생각하는 지경이기는 하다. 


사랑과 혐오는 논리적으로 설명하기 어렵고, 내가 뒤죽박죽 엉망진창인 것처럼 상대도 그러하다는 걸 받아들이면 뭐 그렇게까지, 가 되는 건데, 자신과 다르다고 상대를 좀비라고, 세상을 워킹데드라고 묘사하는 것은 무엇에 도움이 될까, 싶다. 일말의 공통점이라도 찾아서 악착같이 살아가겠다는 각오(https://blog.aladin.co.kr/hahayo/10209495) 가 나에게 있어서, 그런지도 모르겠다.  


다 떠나서, 내가 그 페미니스트 여친이 담배를 피기 때문에 싫어하는 건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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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ra 2019-06-18 23:32   좋아요 7 | 댓글달기 | URL
매일 같이 쏟아지는 뉴스가 날이 갈수록
현기증을 넘어가는 정도인데도
그걸 받아드린 권력자들의 수준은 저 책의 주인공으로 설정된 인물보다도 못한 게 현실인데..
약자들에게 친절할 것을 요구하는 것도 어떻게 보면 무의식인
혐오 습관인 게 아닐까요.
혐오를 향한 혐오나 엄한데로 화살을 돌리는 건 경계해야 하겠지만,잘못된 것들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자기가 하고있는 게 약자혐오인지도모르는데다
발전할 노력조차 없다면... 그걸 신랄하게 꼬고 지적하고 분노할 권리가 피해자들, 약자들에게 충분히 주어져야 그것 또한 마땅하지 않을까요.
약자가 강자의 눈치를 보는 게 아니라, 설사 그 반대가 된다 해도
진정 건강한 사회를 위해서요. 소리치지 않으면 아무리 말하고 미리 배려해도 정작 들어야할 대상은 듣지 않는데 나 혼자 스스로를 검열하고 목소리조차 낼 수 없다면..
책 본 같은 독자로서 쓰신 리뷰보고 어떤 부분은 공감하고 어떤 부분은 의견 내고 갑니다. :)

별족 2019-06-19 05:50   좋아요 3 | URL
저는 연애, 에 대해 말하고 싶었어요. 연애하는 남녀가 싸우는 이유가, 티비에 나오는 뉴스,라면 그건 그저 오락일 뿐이지, 상대에게 뭘 요구하는 건 아니잖아요. 책 속에 여자친구는 그러지 않으니까요. 그리고 또 저는 페미니즘이 ‘일반화‘시키지 않는 거라고도 생각했거든요. ‘여자들은 이렇잖아?‘라고 묶어서 품평당하는 불쾌감에 대한 말을 거부하는 것, 그래서 저는 남자들을 그렇게 묶어서 일반화 하지 않아요. 그런데, 지금 책 속의 여자친구가 자신의 남자친구를 포함해서 하는 행위는 불쾌한 일반화,잖아요. 참, 저는 여자가 약하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https://blog.aladin.co.kr/hahayo/9769813

별족 2019-06-19 06:02   좋아요 2 | URL
https://blog.aladin.co.kr/hahayo/10258284, 미친 놈은 어디에나 있어요.
뉴스에 나오는 미친 놈들 때문에, 내 옆에 남자친구를 미친 놈 취급하면서, 미친 놈이나 들어 마땅한 욕을 내 남자친구에게 하는 것이 당연한가요? https://blog.aladin.co.kr/hahayo/10152825 , 100명의 살인자 가운데 95명이 남성 살인자고, 5명이 여성 살인자라고 해서, 내가 만난 남성을 살인자,라고 하는 것이 합당한가요?
뉴스를 보고 생긴 분노를 ‘조심해‘라고 말한 엄마에게 터뜨리는 건, 합당한 처사일까요? 관계 속에서 약자와 강자는 때에 따라 순간 순간 달라지는 건데, 늘 내가 여자니까 약자야, 그러니까 나에게는 자격이 있어,라고 말하는 것은 이상하지 않나요?

Rra 2019-06-19 09:53   좋아요 9 | 댓글달기 | URL
말씀하시는 걸 계속 들을 수록 약자면 약자답게 굴어야지,와 맥락이 다르지 않은 듯 하는 느낌이 듭니다.
자식이 걱정돼(물론 잘못된 의식의 흐름 그 자체이지만) ‘조심해’라고 말하는 엄마에 비유할 만큼, 주인공 남자에게 그토록 관대한 것과 반대로, 상대역 여자에게는 모든 관념적인 논리를 들이대시는 것도 너무 투명하게 보이구요.
한국 남자들이 한남이라며 싸잡아 욕을 먹는 이유는 기본적으로는 사회적 약자에 대한 개념이 없기 때문이고, 약자에 대한 배려와 그들의 입장을 고려하려는 최소한의 노력도 하지 않으면서, 반복되는 사안들의 심각성에 대해 무지한 것과는 별개로 문제를 제기하는 목소리를 미쳤다고 깎아내리기 때문인 거 같아요. 가해자 편들기와 별반 다르지 않는 태도를 일관적으로 보여주는 저 남자에게 정말 아무런 잘못이 없는 걸까요.

연애라는 측면에서 보신다고 얘기하셨는데, 결국 논지는 다르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사랑이든 연애든 우정이든 뭐가 됐든 관계를 지속시킬 수 있는 기본적인 소통의 자세는 존중이죠. 나에대한 존중, 상대에 대한 존중.

여자, 어린이, 장애인, 성소수자, 다문화가정 등등은 정신적으로 약하지 않고 물리적으로, 구조적인 위치상에서 약한 게 맞아요. 그 있는 그대로의 사실을 인정할 만큼의 사회적 개념도 가지고 있지 않기에 상대적으로 힘을 가진 이들, 그걸 고려해야하는 의무가 있는 이들이 그토록 욕을 먹는 거구요.
그래서 그들은 서로 돕는 겁니다. 그래야 살 수 있는 환경이란 게 있으니까. 서로를 이해할 수 있으니까.
일례로 퀴어들도 마찬가지예요. 모두가 호모포빅한 것도 아닌데 그저 아직 잘 모를 뿐인데 왜 너희 성소수자들은 조용히 해결할 수도 있는데 퍼레이드를 하고, 목소리를 내고, 한편으로는 세상을 다 싸잡기라도 할듯이 (잘 모를뿐인,)헤테로들에게 분노하기도 하느냐, 왜 그렇게 예민하느냐.
그건 권력자들의 입장이죠. 그들이 되어보지 않은.

100명 중 95가 미쳐 날뛴데도, 나는 아닌데 너는 왜 그렇게 무슨 전사라도 된 것처럼 나한테 화를 내냐, 왜 일반화하냐 라고 주인공 남자가 말하는 건,
편파수사 하지 말고 성범죄 제대로 처벌하고 여혐이 뿌리깊다는 걸 알아달라 절규하는 목소리를 막을 때마다 ‘양성평등이 되어야 한다’는 피켓을 드는 남자들의 그것과 얼마나 다를까요.
물론 그건 악하다기 보다는, 교육의 문제일 수 있죠. 한국이 얼마나 여성에게 잔인한지, 범죄의 심각성이 어느정도인지에 대한 최소한의 인지가 그들에게 없다는 게 젠더이슈 문제의 시발점이듯이.
하지만 네가 내게 친절하게 설명해주지 않았기 때문에 나는 널 이해할 수 없다, 이 패턴 그대로를 말씀하시면서 존중과 사랑을 말하는 건 어불성설이 아닐까요. 한쪽에 그것도 매우 권력자의 입장에 치우친.

일상생활, 크게는 삶 전체에 직결된 차별적 사안에 대해 지적할 때마다 쉽게도 나오는 바로 그 ‘왜 그렇게 예민하냐’ ‘왜 싸잡냐’는 그 시선에 대해 분노할 권리도 없다면.
보호장치가 아무것도 없이 덩그러니 위험에 노출된, 그럼에도 그렇다고 말하면 비웃음 당하는 입장의 사람들에게 그건 너무 가혹하지 않을까요.
인내심과 도덕성을 요구받는 게 늘 약자인 게 당연한 걸까요. 시종일관 잘못된 태도를 상대함에도?

별족 2019-06-19 10:10   좋아요 0 | URL
한국이 얼마나 여성에게 잔인한지,는 사실일까요?
세계에서 가장 여행하기 안전한 도시,가 서울이예요.
님이 보시기에도 제가 ‘페미니스트‘는 아니죠?

Rra 2019-06-19 12:40   좋아요 9 | 댓글달기 | URL
애초에 공부가 필요한 분과 쓸데없는 입씨름을 한 기분이네요.
매일같이 반복되는 뉴스가 뭐가 있는지부터 유심히 보시길. 쏟아지는 기사들 속에서 공통되게 보이는 여혐요소는 뭐가 있는지도 좀 살펴보시길 바랍니다. 낭만속에 살면서 엄한 사람들에게 책임 묻지 마시구요.

별족 2019-06-19 14:41   좋아요 0 | URL
사람 사이의 오해는 당연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그런 말들로 상처받지는 않습니다. https://blog.aladin.co.kr/hahayo/10685054 이야기 속에 갇혀서, 삶 자체를 무시하지 마시기 바래요.

Rra 2019-06-19 19:28   좋아요 8 | 댓글달기 | URL
시대상이 반영되는 문화와 예술의 역할까지 생각이 미치지 않으시는 건 관심이 없다면 그럴 수 있다쳐도 페미니스트라면서 입막음과 정숙함에 대한 의무에 더 힘을 쏟는 자신을 인지하지 못하는 건 좀 안타깝네요.
상처받으란 얘기가 아니고 님이야말로 현실은 외면하고 허울좋은 얘기만 하고계신 게 아닐지 돌아보시란 얘깁니다.
귀는 이미 닫혀있으신 거같지만.
실제로 일어나는 사건들을 보세요. 이렇다더라, 저렇다더라 하는 얘기만 듣고 따라가지말고.

Rra 2019-06-19 19:50   좋아요 8 | 댓글달기 | URL
몰카범 검거율이 2프로인데다 버닝썬은 새로 개업해도 아무 지장이없고 장자연 사건은 아직도 수사가 안되고 있는데다
가정폭력 성범죄가 매일같이 일어나도 (아동성범죄도) 몇년 받거나 집행유예받음 땡이고 가해자 여자일땐 신상 공개하고
조두순같은 아동성범죄자나 가해자가 남자일 경우 신상 비공개, 절대`남자`라고 표기하지 않는 게 디폴트인 곳이 님이 생각하는 정상적인 나라의 기준이신가보네요.
서울이 안전하단 말에 웃고갑니다. 본인 일이 아니라고 생각하는 건지. 귀막고 눈 가린다고 있는 게 없어지진 않아요.
 

 

1. 의천도룡기 

이국의 사람들과 싸움이 붙었다. 몸으로 칼로도 싸우지만 입으로도 싸우면서 "아프지 말고 살다가 죽어라"라고 페르시아 상인들에게 말하는 장면이 나온다. 그건 덕담처럼 들리지만 악담이라면서, '비명횡사'를 바라는 말이라고 해서 놀란다. 아, 오래 산다는 건 늙고 아픈 걸 피할 수 없는 거라는 걸, 그 옛날 사람들도 알고 있었는데, 지금의 나는 정말 안 아프고 오래 살다가 죽기를 바라는 구나, 맥락없이 터무니없게,라는 자각을 했다.





 

 

 

2. 5학년 3반 청개구리들 

절판이고 그림도 없지만 무언가 넣고 싶었다. 언제 읽었는지 모르겠다. 

내 기억에 남아서 아직도 답을 모르겠는 질문이 있다.  

책 속에서 아이는 부모에게 집안의 어려움을 나에게 말하지 말아달라,고 청한다. 아이인 자신은 할 수 있는 게 없으니, 부모의 그런 말은 나에게 부담이 되므로 부모가 그런 말을 자신에게 하는 것은 부당하다, 뭐 이런 말이었던 거 같다. 그 때 나는 그게 이상했다. 그리고 여전히 모르겠다. 아이도 가족인데, 집안의 어려움을 몰라야 할까? 알아야 할까? 아이가 받아들이는 무게감이 부모와는 다를 수 있으니, 부모가 보호자로 역할을 해야 하겠지만, 아이였던 나는 부모가 부모의 어려움을 내게 한마디도 안 한다면 좋을까? 

책 속의 아이와 다르게, 나는 알기를 원한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없어도 알기를 할 수 있는 일이 있다면 할 수 있기를. 나의 부모가 나에게 아무 말도 하지 않는다면 나는 참기 힘들 거 같다. 

그래도, 무언가를 요구하는 입장이 되었을때, 상대의 모든 말이 그저 변명같을 때, 그걸 내가 왜 알아야 하지, 싶은 순간들이 있어서, 여전히 헷갈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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