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토요일(2023년 9월 9일, ep280) 놀라운 토요일, 을 보고 있었다. 

빽가, 전소미, 정동원이 게스트로 나왔다. 게스트소개를 하고, 시장을 한 바퀴 돌고, 1라운드 음식으로 얼큰해물수제비가 소개되었다. 

빽가가 "작가들이 너무했네. 나는 해산물을 못 먹는데"라고 투덜거리니까, 

문세윤이 잽싸게 "귀인이로구나!!!"라고 말했다. 

그 짧은 순간, 확 변하는 분위기가 좋았다. 

엄마라서 그런가, 어릴 때라면, 빽가에 이입했을려나. 나는 빽가가 그렇게 말했을 때 좀 미운 마음이 생겼고, 내가 그 작가라도 된 듯 불편한 마음이 되었다. 그런데, 문세윤이 "귀인이로구나!"라고 말하는 순간, 조그맣게 뭉치던 미운 마음이 훅 풀어져서는 픽 웃음이 났다. 열명 넘는 사람들 입맛을 모두 다 맞출 수 없다. 누구는 샐러드가 좋고, 누구는 국물이 있어야 한다. 해산물을 못 먹는 사람이 손님으로 오면 그 사람이 못 먹는 걸 내가 먹을 수 있으니 그 사람은 나에게 귀인이 된다,고 문세윤은 말할 수 있는 거다. 뒤에서 태연은 열무비빔밥이 같이 나온다고 그걸 드시면 된다고 빽가에게 말해주고 있다.

분위기,라는 게 있다. 좋은 분위기라야 좋은 장면을 만들 수 있다. 드러내어 말할 수 없는 미운 마음,은 분위기를 다르게 만든다. 생각해보면 내가 말은 못하고 뒤에서 미운 마음을 뭉치곤 하는 사람이라서, 그런 것도 같다. 상황에는 언제나 좋은 점도 나쁜 점도 있고, 모든 면을 완벽하게 누구나를 완전히 만족시킬 수 없다. 그런데, 그런 상황에서도 다른 해석을 빠르게 낚아채서 웃을 수는 있다. 빽가는 자신에 대해 알아주지 못한 작가가 서운했을 수 있고, 발언권 없는 작가는 그저 미운 마음을 뭉치고 있을 수도 있었는데, 문세윤은 날렵하게 상황을 눙쳤다.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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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 표지 두 장에서 의문이 생겨서, 두 장을 나란히 걸고, 별 말 안 쓴 페이퍼가 있다. ( https://blog.aladin.co.kr/hahayo/12801476

이렇게까지 저자에 대한 상이 다른 것은 자아상의 차이일까, 생각했다. 

더하여 서양에서는 어떤 사람이 '저자'가 되는가 생각하기도 했다. 

자신의 정신적인 문제 때문에 혹은 저자가 되는 것은 아닌가 생각하기까지 하는 지경이다. 적어도 관종이니까 책을 쓰겠지, 싶은 태도에 더하여, 가끔은 책 속의 이런 태도는 무엇에 도움이 될까 싶기도 하고 말이지. 도저한 자기 연민, 참기 어렵다. 


1. 소녀를 둘러싼 퍼즐

무료책이 풀렸었나, 꽤 오래 전에 이걸 다운받아 읽었었다.

시대적으로 동양을 우월하다고 하는 서양인의 묘사가 있어서 좀 놀라기도 했지만, 전체적으로 좋은 인상은 아니다. 

소녀는 유명인사가 되고 싶어 글을 쓴다. 그녀가 쓴 글은 내게 치기어린 걸로 보였다. 

읽으면서, 소녀에게 유명인사가 되라고 부추기는 엄마-기억은 왜곡이 있을 수 있지만-가 의아했다. 훌륭한 사람이 되라는 무언가 좋은 일을 하라는 조언이 아니라, 유명해지라는 조언이라니. 그건 좋은 조언인가. 그건 과연 엄마가 딸에게 할 수 있는 조언인가. 서양인의 악명조차 유명으로 생각하는 태도가 드러나는 거 같달까. 

소녀에게 어떤 조언을 지금의 한국사회가 한다면, 과연 책 속의 조언과 비슷이나 할까. 유명해지고 싶어서 글을 쓴다면, 그 글은 무엇을 쓰게 될까.   




2. 아내를 모자로 착각한 남자 

( https://blog.aladin.co.kr/hahayo/12520560 )

사람들이 같이 살아간다. 정신과 의사?인 남자는 자신이 만난 비정상인 사람들에 대해 썼다. 그런데 나는, 읽는 내내 정상과 비정상이 뭔지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도대체, 비정상이라고 측정하는 의사가 가진 기준은 어떤 의미의 척도인가, 라는. 결국 그 사람이 가진 표본 이상이 될 수 없는 연구들인데 말이지. 표본이 남성 뿐이라면, 여성이 세상을 보는 방식은 비정상이라고 할 수도 있고, 표본이 서양인일 뿐이라면 동양인이 세상을 보는 방식은 비정상일 수도 있다. 그 사람이 살아가는 환경에서 그 사람이 소수자일 때, 언제나 비정상의 딱지는 붙을 수 있는 게 아니라는 의문까지 드는 지경이었다. 

읽다가, 서양인은 왜 정상이 필요하지,라는 의문까지 드는 지경이었다. 사람은 다 다른데, 기준점이 필요한 건가, 싶었다. 



3. 자신의 존재에 대해 사과하지 말 것

이 책 때문인가. 이 책의 한글 제목이 맘에 들어서 받았는데, 전혀 상관없는 제목이다. 한글 제목이 다른 거였다면 나는 읽을 생각도 하지 않았을 텐데, 번역해 놓은 한글제목은 전혀 내용과 상관없어보이고, 영문제목을 그대로 번역했으면 쳐다도 안 봤을 거다. 

나는, 실격당한 자들을 위한 변론이란 책을 읽고 나서 이게 서구화된 사고의 틀로는 설명하기 어려운 거라고 생각했다. (

https://blog.aladin.co.kr/hahayo/10737472 ) 그리고, 이 책 제목의 '존재에 대해 사과한다'는 말이, '실격당한 자들을 위한 변론'을 읽을 때 느꼈던 '내가 이렇게 생겨먹은 걸 어쩌라고'라는 반항적인 감정을 떠오르게 했고, 그래서 읽고 싶었다. 존재에 대해 사과해서는 안 된다. 사과는 행동에 대해서만 해야 하는 거다. 

아직 시작한 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끝까지 읽을 수 있을지 모르겠다. 저자가 붙인 적 없는 제목에 공연히 기대하고 책을 고른 내 잘못이다. 저자는 그저 자신이 배운 과학을 통해 인간을 설명하고 싶어한다. 그런데, 과학책이라기에는 자아가 너무 돌출해서 읽기가 싫다. '출근하는 일처럼 여러분에게는 아무 일도 아닌 일이 나에게는 큰 장애가 된다'는 식. 어차피 다른 사람 마음 속은 알 수가 없잖아? 그런데, 자신은 진단명이 있다고, 남들에게는 그게 쉬울 거라고 생각한다고???

박사학위를 받고 멀쩡?하게 공부하면서 책도 쓰는 학자가 자신이 자폐스펙트럼에 ADHD라고 말하는 걸 듣고 있자니, 그런 진단명이 어디에 쓸모가 있는가 생각한다. 자신의 성취에 스토리를 보태는데 도움이 되는 건가. 

윤스테이를 보다가 깊은 데서 올라오던 분노 '먹으면 죽어????'같은 게-그 때 티비에서 외국인 투숙객의 못 먹는 음식 리스트를 체크하고 있었다. 비건이라는 건 뭐 그렇다 쳐도, 해산물도 못 먹고, 견과류도 못 먹고, 못 먹고, 못 먹는 것들, 도대체 지가 해먹을 거 아니면 적당히 좀 해라,라는 깊은 화가 갑자기 폭발했었다.- 닥친다. 그냥 같이 살아가기 위해서 불편을 조금씩 참을 수는 없는 거야. 네가 자폐에 ADHD면 어울려서 문제를 일으키지 않기 위해 네가 할 역할은 없는 거야? 내가 알고 너를 그저 이해해줘야 하는 거야? 라는 전혀 상관없는 방식의 화가 닥친다.

서양인들은 자기만 빼고 다른 사람은 다 괜찮고 좋은데, 자기는 괴로워 죽을 것처럼 좀 작작해야 한다. 이 저자의 책이 왕립학회의 좋은 책이 되었다면, 공감하는 사람이 많아서 베스트셀러도 된 거라면, 인간세상에 살아가는 게 모두에게 쉽지만은 않은 일이라는 걸 좀 인정해야 하는 게 아닌가, 라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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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 날, 집에 굴러다니던 잡지에 들어있던 짧은 이야기. 


잘 차려입은 교수가 식당에 밥을 먹으러 들어갔다. 

손가락이 하나 없는 종업원이 서빙을 했다. 

교수는 주인을 불러서 저런 종업원을 고용하는 것은 손님들에게 불쾌감을 줄 수 있다고 조언한다. 

식당의 주인은 교수의 말을 가만히 듣고 나서, "저는 배운 걸 실천하고 있는 겁니다."라고 대답한다. 


그 배움이란 것이 사람을 외모로 차별하지 말라는 거였던가. 


많이 배웠어도 하나도 실천하지 못하는 삶보다 적게 배웠더라도 배운 것들을 실천하며 사는 삶이 멋지다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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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강의

이 책을 읽을 때 법가와 유가에 대한 말이 기억에 남아 남겼다. 

https://blog.aladin.co.kr/hahayo/9686347

이미 썼지만 다시 쓰자면, 당시 대부 이상을 통제하는 방식은 관계이고, 이하를 통제하는 방식은 법이고, 법가는 대부 이하를 통제하는 방식을 전체에 확대하여 대부 이상에게도 법에 따른 통제를 요구하고, 유가는 대부 이상을 통제하는 방식을 전체에 확대하여 나라를 운영하는 방식으로 삼는 거라고 했다. 

더하여, 법가는 대부이상의 자결을 금지시켰다고도 했다. 스스로 벌하는 방식을 용납하지 않는다. 낮은 계급이 벌을 받듯 법에 따른 처벌을 받으라고 했다고. 

나는, 척지다,라는 말이 법과 관련된 말이라는 걸 알게 되었을 때(https://www.jbnews.com/news/articleView.html?idxno=96749) 그렇지, 법이란 그런 것이지. 법대로 하자,는 말이 너와 나의 인간 관계는 끝이라는 의미로 들리지,라고 생각했다. 공동체는 법으로 유지되지 않는다. 공동체는 예와 의리로 유지된다. 예와 의를 기리는 이야기들로, 법은 그저 하한선이다. 얼기설기 엮은 하한선, 인간이라면, 인간의 관계라면 해서 안 되는 일에 대해, 결국 마지막에 의탁하는 하한선이고, 할 수 있다면 하지 않는 편이 더 나은 어떤 것이다. 

그런데, 복잡한 법을 이용하는 사람들의 뻔뻔함이 공동체를 물들이고, 세상은 달라지고 있다. 

법으로 달려가는 사람들, 

이길 때까지 멈출 수 없는, 멈추지 않는 사람들, 

그런 사람들과 함께 살아가야 하다니!!!


2. 더 나은 진보를 상상하라


https://blog.aladin.co.kr/hahayo/10685062

시민운동이 동료시민을 설득하는 수고로움 대신, 법관을 설득하는 방식으로 택함으로써 초기 운동의 불가피함에도 불구하고 평판을 갉아먹었다는 묘사가 나온다. 


다른 사람과 이야기하는 일은, 쉽지 않다. 

다른 가치관을 가지고 설득하는 일은 더더욱 어렵다. 

그러니까, 여러 사람이 아니라 꼭 한 사람, 권위있는 한 사람을 설득해서 자신의 주장을 더 많은 사람에게 관철시키려고 한다. 민주적인 체하지만, 실상은 자신은 복종하지 않지만, 다른 사람은 복종할 거라고 생각한다. 그게 가능한가? 


낙태죄 완전폐지를 위한 청원에도 반대하는 마음(https://blog.aladin.co.kr/hahayo/12210402 )이었고, 비동의 강간죄 제정에도 반대하는 마음(https://blog.aladin.co.kr/hahayo/12367911 ) 이다. 

가스라이팅에 대해 말하지만, 이걸 법으로 규제할 수 있다고 생각하지도 않는다.(https://blog.aladin.co.kr/hahayo/12544871)

https://blog.aladin.co.kr/hahayo/13581886

법의 심판이 절대적이라는 생각에 사로잡히면, 시작한 순간 질 수 없다.

현대의 법정은 로마시대의 격투장처럼 이기고 지는 일만 남는다.

형사와 민사가 있고, 형사는 공동체가 규정한 죄를 심판하는 자리라서 그 기준은 공동체의 기준이 되고, 판결은 새로운 정의가 된다. 

정의당 성폭력 문제가 불거졌을 때 장혜영의원의 입장문에 대해 의견을 쓸 때(https://blog.aladin.co.kr/hahayo/12343250 ), 연예인 남친의 낙태종용을 폭로한 여자에 대해 쓸 때(https://blog.aladin.co.kr/hahayo/13052482 )형사와 민사에 대해 좀 더 설명하고 싶었다. 

사건이 벌어졌을 때, 공동체의 안위를 위해 두 사람이 괜찮대도 처벌해야 한다고 판단하는 게 형사다. 형사사건 중에도 그 영향이 작을 때 일부 반의사불벌죄(https://namu.wiki/w/%EB%B0%98%EC%9D%98%EC%82%AC%EB%B6%88%EB%B2%8C%EC%A3%84)나 친고죄(https://namu.wiki/w/%ec%b9%9c%ea%b3%a0%ec%a3%84 )를 적용하는 경우가 있지만, 그건 예외들이고 성폭력범죄, 아동범죄는 그간의 노력으로 예외가 아니다. 아동학대나 성폭력을 누군가가 신고하면, 피해자와 가해자 사이의 관계와는 상관없이 심판의 절차는 진행된다. 이제 심판대에 피해자의 자리는 없고, 공동체를 위해 죄를 심판하려는 검사와 자신을 변호하려는 가해자가 있다. 

장혜영의원은 정의당 내의 징계로 사건을 끝내려고 해당 사건을 고발하지 않았고, 고발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비난받았다.(https://namu.wiki/w/%EC%9E%A5%ED%98%9C%EC%98%81/%EB%85%BC%EB%9E%80 ) 


고소와 고발이 들어오면 이제 검사는 그 죄를 다뤄야 한다. 이건 무지한 내가 그저 형사와 민사를 구분하는 방식이다. 그렇지만 형사에도 특별히 성범죄나 아동범죄의 경우 피해자 변호인을 국가에서 지정해 의견을 청취하고 재판상황을 모니터링하고 피해자에게 알리도록 하는 제도가 있다고 한다. 그러니까, 지금 벌어지는 아동학대 재판은 그 판결이 세상의 새로운 기준을 만들 판례가 될 수 있다. 이미 신고한 아동의 학부모는 재판 당사자는 아니다. 그럼에도 의견을 낼 수 있고, 판결에 영향을 미칠 수도 있다. 

재판에 여론의 관심이 쏠리고, 이제 세상의 새로운 기준이 생기면 세상은 또 그만큼 변화한다. 그 변화는 좋을까, 나쁠까, 알 수 없다. 

그렇지만, 분명한 것은 나와 함께 공동체를 구성하는 상대가 나와 벌어진 갈등에 대해 나와 대화하기보다 법에 호소하겠다고 가장 먼저 결심한다면 그 공동체는 공동체로서 건강하기 어렵다. 

공동체를 위해 노력하지도 판단하지도 않는 개인들과, 갈등상황에서 언제나 심판자에게 달려가는 개인들, 그리고 개인들 위에서 심판하는 심판자만이 존재하는 세상을 어떻게 공동체라고 부를 수 있겠는가. 게다가 그 심판이란 것도, 호소한 개인이 받아들이지 않는다면 그 개인이 이길 때까지하염없이 늘어질 수도 있다. 그리고, 또 이기고 지는 것과 상관없이 그저 그런 귀찮고 지루하고 길고도 긴 그런 송사에 휘말리기 싫어서 더 뒤로 물러날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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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Book] 나목.도둑맞은 가난 민음사 오늘의 작가 총서 11
박완서 지음 / 민음사 / 201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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티비를 보다가 나목,이 박완서 작가가 젊은 날에 만난 박수근 화백에 대한 이야기라고 해서 읽어보고 싶었다. 책을 골라 읽기 시작했는데, 표제작은 나목,과 도둑맞은 가난이고 훨씬 많은 단편소설이 들어있는 단편소설집이다. 

전쟁과 가난, 속의 여자들이 화자다. 


(나목)전쟁의 참화 속에 가족을 잃은 젊은 여자는 살아남은 어머니에게 왜 너는 살고, 오라비들은 죽었는가 원망의 말을 들으면서 반쯤 무너진 집에서 산다. 미군부대의 초상화 그려주는 가게에서 통역으로 일하는 젊은 여자는, 모두 다 불행해졌으면 하고 바라고 있다. 나에게 이미 불행이 닥쳤으니, 이 전쟁이 계속되어 모두 다 똑같이 불행해지기는 미래를 자신이 알고 있다고 생각한다. 이런 암울한 태도 가운데, 만난 화가는 이해할 수 없는 존재라서 선망하게 된다. 어떻게 그런 상황에서 살아갈 수 있지,라는 선망의 태도가 드러난다. 


(부처님 근처) 해방 이후 좌우대립과 전쟁으로 가족의 죽음을 온전히 애도하지 못하는 여자가 화자다. 똑같은 처지의 어머니는 불교에 매달리고, 여자는 듣지 않는 이야기를 계속 하고 싶어한다.  


(지렁이 울음소리) 안온한 삶에서 모험을 바라는 여자는 여고시절 불만 많던 선생님을 다시 만나서는 젊은 시절 거친 성정을 잃은 듯한 스승이 다시 한 번 거칠어지기를 바라면서 만난다.


(이별의 김포공항) 화자는 할머니, 전쟁을 겪었고, 모진 세월 속에 아이들을 길렀지만, 아이들은 가난하고 앞이 보이지 않는 나라를 지금은 떠나 뿔뿔이 흩어져 있다. 미국,이라는 이상향으로 떠난 딸에게 가는 비행기 안에서 희망에 부풀어 떠나는 젊은이들 가운데서 뿌리뽑힌 심정이 된다. 


(부끄러움을 가르칩니다) 전쟁과 가난 끝에 무언가를 잃고 질주하는 듯한 느낌을 가지고 있다. 양공주가 되어서라도 가족 건사하기를 요구받던 젊은 여자는 내쳐지듯 결혼한 첫 결혼에서 아이없이 이혼하고, 글을 통해 흠모하던 지방의 시간강사와 결혼해서는 글과 다른 삶의 모순에 참지 못하고 이혼하고, 지금 세번째 투명하게 부를 추구하는 장사꾼과 결혼해서 다시 무언가 참지 못하는 순간들을 직면하고 있다. 부끄러움,을 아는 마음이 필요하다고, 내가 그건 잘 가르칠 수 있다고 생각하는 이야기다. 


(카메라와 워커) 오빠의 아이, 조카를 애지중지 키우는 고모와 할머니는 생각이 많은 게 화가 될까 봐 기술을 배우라고 아이를 다그치고 경로를 정해주고는, 멀리 고속도로 현장에서 일하는 조카를 만나서는 혼란에 빠진다. 


(도둑맞은 가난) 가난을 견디지 못하는 어머니는 허영심 때문에, 가족들과 함께 죽었다. 살아남은 딸인 화자는 꿋꿋이 가난 가운데 살아내는 와중에, 남자를 만나 사랑한다고 믿었다. 같이 살자는 말은 자기가 했지만, 사랑한다는 말은 듣고 싶었는데, 남자는 어느 날 홀연히 사라졌다가, 다시 나타나 가난하지 않은 자신이 부자 아버지의 시험 가운데, 가난을 겪었던 거라면서 시혜를 베풀려 한다. 가난조차 도둑맞은 기분이 되는 여자의 이야기다. 


이 책을 읽을 때 '전쟁같은 맛'도 읽고 있었는데, 아래는 화자가 자기자신을 거대하게 생각하지 않는 태도가 대조적이어서 남겨두기로 했다. 젊은 여자가 세상 모든 걸 가질 수 있을 거라고, 아니면 세상을 가진 남자를 가질 수 있을 거라고 자신만만할 수도 있었을 젊은 여자가 '나는 꼭 그만큼만 다른 여자와 다를 뿐인데' 라고 말하는 게 듣기 좋았다. 사랑하지 않은 남자의 기대를 충족시키고 싶지 않은 태도가 있는 거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런 태도가 나는 좋았다. 


사람들이 제각기 생김새나 성격이 조금씩 다른 것만큼 꼭 그만큼만 나는 딴 여자들과 다를 뿐인데, 태수가 나한테 바라는 것은 그만큼만은 아닌 모양이니 말이다. 그는 내가 마치 시궁창 속에서 피어난 장미꽃이라도 되는 것처럼 생각하는 눈치였고, 나는 그의 간절한 태도를 봐서라도 다소곳이 그런 척이라도 해줘야겠는데 그게 도무지 쑥스럽고 귀찮았다. 결국 나는 서툰 연기를 하면서까지 그의 마음에 들어야 할 까닭이 없는 거였다. 

나는 그를 사랑하지 않았고 사랑하지 않는 사이의 홀가분함을 한 발도 양보하고 싶지 않았다.(80/462 나목)


적당히 크고 든든한 손이었다. 사람들이 육신을 지녔다는 것 얼마나 크나큰 축복일까?

"아직도 볼이 붉은 소년이 있는 집을 꿈꾸나요?"

"왜 나빠? 볼이 붉은 사내아이, 착한 아내, 찌개 끓는 화로, 커튼 늘어진 창, 그런 건 너무 평범해서 경아야 뭐 흥미 있을라구."

"흥미가 있어지는군요, 점점."

"점점?"

"네, 점점 색칠을 하듯, 눈에 보이게 그런 것이 흥미 있어지는군요. 꿈이 아닌 모든 것이, 수증기가 아닌 모든 것이. 다시는 꿈을 꾸기도, 남의 꿈이 되기도 싫어요, 다시는."- (276/462 나목)

인간은 몸이 있어 경험한다. 어쩌면 소박한 소망들이 살아가게 하는 힘이라서 이 대목을 남겼다. 


모든 체험은 시간과 함께 뒤로 물러나 원경이 됨으로써 말초적인 것들이 생략되는 대신 비로소 그 전모를 드러낸다. -(309/462 부처님 근처)


꼭 뭣에 홀린 듯 신나는 분주 끝에 오는 절망적인 우두망 찰 (365/462 부끄러움을 가르칩니다)


나는 그럴 때 정신이 나가는 게 아니라 드는 느낌이었다. 비행기 소리가 멀어지고 들들대던 유리창도 멎은 후의 해맑은 정적의 일순, 나는 우리 살림이 얼마나 어벙한 허구 위에 섰나를 똑똑히 보는 것이었다.(365/462 부끄러움을 가르칩니다)


도둑맞은 가난,은 읽으면서 100년이 지난 것도 아닌데, 말이 참 많이 달라졌구나, 느꼈다. 

얼마나 많은 말들을 잃고, 사람들을 잃고, 생각을 잃고 있나,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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