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자력발전 X, 핵발전 O
천가지 얼굴의 이슬람, 그리고 나의 이슬람
율리아 수리야쿠수마 지음, 구정은 옮김 / 아시아네트워크(asia network) / 2009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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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 전에 읽은 책인데, 뒤늦게 무언가 쓸 마음이 된 것은 링크 건 글에 무언가 말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이 책은 인도네시아의 여성 무슬림이 자신의 종교와 나라에 대해 쓴 글을 모아놓은 책인데, 읽은 나는, 나의 위치에서 나의 직업에 변명으로 삼았다. 여성에게 우호적이지 않으리라고 색안경을 끼고 보는 다른 사람들에게 자신의 종교에 대해 말하는 태도에 공감하면서 읽다가 아주 잠깐 아주 작은 꼭지에서 '원자력'에 대해 말했는데, 위안받았다. 늘 나의 일에 대해 고민하는 처지라, 그런 말이 아주 잠깐이었어도 위안이 되었다. 딱 한 꼭지, '함께 녹아내리거나 앉은 채 당하거나'. 한때 반핵론자,였었다던 이 여성학자이자 사회학자이자 칼럼니스트인 그녀가 쓴 그 딱 한 꼭지. 불의 고리 위에 위치한 자신의 나라, 인도네시아,에 아직 우리에게는 미개해보이는 그 섬나라에 2017년 원자력발전소-여기는 핵발전소,라고 번역되어 있다-가 가동될 거라고 말하며 '손가락질할지 모르지만, 지금 나는 핵에너지 개발이 현실적으로 필요할지도 모른다고 마음을 조금 바꿨다'라고 말했기 때문이다. 다시 읽어보니 열린 결말이지만, 그걸로도 충분했다. 그게 가장 커서 이 책에 대해 쓰지 못했다. 이 책을 권해준 다른 분의 서평말고 다른 말을 할 것도 없었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래도, 마음 속으로 참 고마웠다.


나는 원자력발전소에 다닌다. 취업을 할 때, 나는 공대였고, 원자력전공자였지만, 글을 쓰는 직업을 가지고 싶었다. 그러고 싶어서 집에 가서 말했는데, 아빠가 '그러지 말라'고 말하시는 뉘앙스에서, '아, 이제 더는 용돈받으며 살고 싶지 않'아서 그대로 취직했다. 

사람이, 그런 단순한 이유로 취직했다고 해도 일을 할 때는, 자신의 일이 다른 사람들 보기에도 번듯했으면 하고, 그리고 또 그 일이 의미있기를 바란다. 누군가는 먼저 속하고, 그 다음은 모두 다 변명이라고 할지도 모른다. 뭐 변명이래도 합리화래도 어쩔 수 없고, 아무튼 지금도 나는 여전히 일하고 있다. 통일의 교두보가 될 거라며, 신포에 원전을 건설하고 있을 때, 그 원전에 나도 가겠다,며 호기롭게 말하던 나는, 그게 모두 무산되고, 부안 폐기물처분장이 무산되고, 더이상의 신규원전을 건설하지 않던 시기에, 이제 우리나라에 원자력이 사양산업,이라는 걸 인정했다. 이게 생명을 다하는 때까지 안전하게,가 나의 역할이면 역할일 거라고, 첨단산업,이나 신흥산업,에 종사하는 것이 더 좋아보일 수는 있지만, 그게 더 '옳은'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산업화의 시기에 역할이 있었던 거고, 지금도 그만큼의 역할을 하고 있지만, 이제 더이상은 공급관리가 아니라 수요관리,인 거라고 이제 국민에게도 그걸 말해야 하는 거라고 생각했다. 

지금 내가, 한국에 살고 있는 내가, 불의 고리, 위에 인도네시아가 원자력발전소를 짓는다니 말도 안 된다며, 절대 안된다고 말하는 것은, '사다리 걷어차기'같은 거라고 생각하는 거다. 원자력,이 '절대 악'이라고 정의한다면, '우리나라에서는 더이상 안 돼'지만 '인도네시아, 그래, 니들은 니들 맘대로 해'는 옳지 못한 태도,다. 원자력,은 '절대 악'이 아니다. 원자력,을 '절대 선'처럼 묘사하는 게 잘못인 것처럼, '절대 악'으로 묘사하는 것도 잘못이다. 편리를 택한 책임을 나눠 지는 거고, 불편하더라도 그렇게 하자,고 이제 모두를 설득하는 노력을 해야 한다. 서울시의 '원전 1기 줄이기 운동'처럼. 


* 뒤끝처럼 보이지만, 어쩔 수 없다. 

* 영어로 nuclear는 'clear'라는 언어적 뉘앙스때문이라고도 들은 거 같지만 그건 근거가 없다. 

네이버 사전 

   atomic power plant 원자력발전소

 

 Enrico Fermi Atomic Power Plant

  엔리코페르미원자력발전소(原子力發電所)[미국(美國)]

 

아래는 검색

 

Kaiga Atomic Power Station - Wikipedia

Narora Atomic Power Station - Wikipedia Narora Atomic Power Station Location of

Narora Atomic Power Station in India Country India Location Narora , Bulandshahar District in Uttar Pradesh Coordinates 28°09′29″N 78°24′34.. _Stati.... 사이트 내 검색

 

The Global Intelligence Files - [OS] IRAN/RUSSIA/ENERGY - Bushehr Atomic Power Plant links to national po city's atomic power plant has been linked to national electricity grid several minutes ago, with a 40% capacity. This power plant includes two 230 and 400 kilovolt posts and its electricity... https://wikileaks.org/gifiles/docs/14/1469232_-os-iran-.... 

 

아래는 네이버 화학 대사전

 ~E. Fermi 등이 건설한 세계 최초의 원자로 CP-1(Chicago Pile No.1)이 임계(臨界)에 달하여, 핵분열 연쇄 반응의 인위적 제어에 성공했다. 이 원자로는 감속체의 흑연 블록을 쌓아올린 것이라는 점에서 (atomic) pile이라고 불렀으나, 후에 각종 형의 원자로가 출현한 후로는 원자로를 nuclear reactor 또는 neutron chain reactor로 부르게 되었다 [네이버 지식백과] 원자로 [原子爐, reactor] (화학대사전, 2001. 5. 20., 세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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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핵이 맞느냐 원자력이 맞느냐란 흥미로운 논쟁을 지켜보며...
    from 흔적의 서재 2015-08-29 09:19 
    세 사람이 있는 곳에는 반드시 스승이 있다는 孔子의 말씀을 인용해야 할지, 아니면 “물도 부처 나무도 부처”라는 한 스님의 말씀을 인용해야 할지 다소 난감한 상황이다. 전자나 후자나 모두 스승 또는 부처의 존재를 긍정하는 글이지만 전자는 좋은 의미의 스승 뿐 아니라 부정적인 의미 즉 배우면 안 되겠구나, 란 생각을 하게 함으로써 스승의 역할을 하는 사람도 있다는 의미의 말씀이다. 이럴 때는 “사소하게 던져진 기호를 유일한 단서로 삼아 온몸을 던져 해독해
 
 
별족 2015-08-29 05: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http://blog.aladin.co.kr/idolovepink/7736949
북플에서는 먼댓글이 안 보이네요. 아래 잔뜩 붙은 검색결과가 뜨아할 텐데-_-;;;

2015-08-29 08:39   URL
비밀 댓글입니다.

별족 2015-08-29 11:17   좋아요 1 | URL
뭐, 다니는 사람은 이런 생각이다, 정도로 들어주세요.

마립간 2015-08-29 08: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당분간 다른 서재의 방문을 자제하려 했는데, `원자력 X, 핵발전 O` 글의 밑에 댓글을 읽어버리고 말았습니다. 여러가지 감흥이 동시에 떠올랐습니다.

그냥 인사 댓글 남기고 갑니다.

별족 2015-08-29 11:37   좋아요 0 | URL
어떤 느낌이신지 말해주셔도 좋습니다. 저 때문에, 페이퍼 주인님께서 기분도 상하셨고,사실, 저도 좋은 기분은 아닌지라. 다른 분들께서 저보고 `잘못했다`고 하시면 반성하려구요.

마립간 2015-08-29 15:07   좋아요 0 | URL
너무 많은 생각이 동시 다발적으로 떠올라서 ... 말씀드릴 수 있지만, 이야기가 길어질 것 같네요.

한 가지만 말씀드리면, 저에게 `원자력 발전소`와 `핵 발전소`의 어감은 같습니다.

비로그인 2015-08-29 09: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글 잘 읽었습니다. 제 서재에 올린 글에 달린 qualia 님의 댓글에 댓글을 다셔서 누구에게 단 글인지 몰라 댓글을 달지 않았습니다. 대신(?) 여기에 먼댓글로 글 남깁니다...

qualia 2015-08-29 13:2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별족 님, 안녕하세요. 어느덧 찜통더위 여름도 슬슬 물러나고 있네요. 이젠 선선하다 못해 살짝 춥기까지 합니다. 전 아무리 더워도 여름이 좋은데요. 여름님이 서둘러 떠나는 것 같아 너무 아쉽습니다~^^

우선 용어의 적절성에 관해서만 말씀 드리겠습니다. 제 짧은 의견으로는 “원자력발전”도 맞고 “핵발전”도 맞는 것 같습니다. 어느 것은 맞고 어느 것은 틀리다고 딱 부러지게 판정할 수 없다고 봅니다. (그렇다면, 별족 님과 제 의견은 비스무레한 건가요? 이와 달리 감은빛 님과 흔적 님 의견은 원자력발전은 틀리고 핵발전이 맞다는 말씀이죠, 아마?)

원자력발전도 맞고 핵발전도 맞다고 말하는 까닭은 우라늄을 이용한 발전에는 우라늄 ‘원자 분열(the splitting of the atom/atomic fission)’도 발생하고 우라늄 ‘핵 분열(nuclear fission)’도 발생하기 때문입니다. 그 두 가지 분열 과정에서 발생하는 에너지로 전기를 생산하기 때문이죠. 즉 우라늄을 연료로 쓰는 발전 방식은 우라늄 원자 분열과 우라늄 핵 분열이라는 두 가지 물리적/물질적 사건이 반드시 발생해야 가능한 발전 방식이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그런 발전 방식을 가리키고 이름 지을 때 원자 개념과 핵 개념을 모두 고려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 ① 의미론적 적절성의 측면 ② 물리학적 사실의 측면 ③ 과학철학적 타당성의 측면, 이 세 가지 측면에서 따져볼 때, 원자력발전이든 핵발전이든 모두 나름대로 적절하고/올바르고/근거가 있는 타당한 용어라는 얘기죠.

[참고 : 영문판 위키피디아 “Nuclear fission”과 “Nuclear fusion” 항목]
https://en.wikipedia.org/wiki/Nuclear_fission
https://en.wikipedia.org/wiki/Nuclear_fusion

다만, 사용 주체/기관에 따라, 그리고 상황/문맥/목적에 따라, 원자력발전과 핵발전 가운데 하나를 더 알맞은 것으로 선호할 수는 있겠죠. 그러나 이것이 의미하는 바는, 한 용어가 다른 한 용어를 틀린 것으로 (혹은 사실을 왜곡하는 것으로) 완전히 배제하거나 밀어낼 수는 없다는 것입니다. 두 용어 모두 적절성/진리성/타당성을 나눠가지고 있기 때문이죠. 해서 우리는 두 용어 혹은 두 개념 모두 얼마든지 적법하게 쓸 수 있다는 결론을 내릴 수 있습니다.

따라서 위 용어들의 적절성/진리성/타당성 여부 문제에 관한 한, 감은빛 님과 흔적 님 견해는 설득력이 약간 떨어지지 않나 생각합니다. 이런 제 의견은 정치적/사회적 문맥은 제쳐놓은 것입니다. 거의 의미론적/물리학적/과학철학적 문맥에서만 아주 간략히 살펴본 것뿐입니다.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작성 : 2015-08-29 12:47)
(수정 : 2015-08-29 13:27)


비로그인 2015-08-29 16:39   좋아요 0 | URL
원자분열, 핵 분열이 다 일어난다면 핵/ 원자력이라 해야 맞는 것이 아닌지요? 둘 다라면 핵 분열이라 하는 것은 틀리고 원자력 분열이라 하는 것은 맞는가요? 틀리면 다 틀리는 것이 아닌가요? 입자 물리학 박사 이종필 교수가 이런 말을했지요. ˝핵에너지나 원자력 에너지, 핵 발전이나 원자력 발전, 핵폭탄이나 원자 폭탄.. 모두 한 가지 실체를 가리키는 용어입니다. 그 뿌리는 모두 핵에너지에서 비롯된 것인데요...˝(`과학 수다` 2권 198 페이지) 뿌리를 말해야 하는 것이 아닌가요? 그리고 정치적/ 사회적 문맥은 제쳐 놓고 의미론적/ 물리학적/ 과학철학적 문맥에서만 살펴보는 것은 타당하지 못하지요. 과학은 진공에서 생겨나는 것이 아니니까요.

별족 2015-08-30 01:28   좋아요 0 | URL
흔적님, 제가 말하고 싶었던 것은 `이름`의 정확함을 가르는 `고갱이`따위는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아예 틀린 말도 많이 쓰면 사전에 오른다,고 말씀드렸던 거구요.(아예 틀린 말은 아니라고도 말씀드립니다)
`이름`에는 고갱이가 없지만, 물질(원자)에는 고갱이가 있고 그 고갱이가 바로 `핵`이어서, `핵`이 쪼개진다는 것은 `원자`가 쪼개진다는 것과 같은 말입니다. (핵/원자력은 그러니까 반복하는 셈이지요). 사과의 사과씨를 쪼개면, 쪼개진 사과씨를 중심으로 자두와 살구(이런 비유라니 죄송합니다)가 생기는 방식인 거고, 이때 생긴 질량결손이 에너지가 되는 겁니다. 그 질량결손이 변한 에너지을 부르는 이름이 `원자력`이든 `핵력`이든 상관없었던 거구요. 영어를 근거로 들으셔서, 영어 예를 들었던 거구요.

애초에 `이름`의 정확성을 가르는 `본질`이 없다는 측면에서 말하자면 수력발전소에서 사용하는 힘은 `수력`인가요? `화력`은 무엇인가요?

정치/사회적 문맥을 제처 놓는다는 게 아니라, 여전히 `이름`에는 본질이 없고, 정치적으로 `핵발전소`를 택할 수는 있지만, 정치적 입장이 다를 수도 없을 수도 있는 상대가 `원자력발전소`를 택한 것을 `교정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는 것이었습니다.

귀머거리,가 비하어,라고 생각하는 정치적 입장도 있겠지만, 그렇게 들릴지라도 순우리말만 쓰겠다,는 정치적 입장도 있을 수 있는 거니까요.

서로 뜻만 통하면 대화를 할 수 있는데, `원자력발전소`를 `핵발전소`로 `교정하는`행위는 대화의 시작에서 정치적 입장을 정하라는 말이니까 좋지 않다고 말한 거였습니다. `원자력발전소`가 제가 느끼기에 충분히 `보편어`라고 생각했거든요.

별족 2015-08-30 00:21   좋아요 0 | URL
참, qualia님, 오셔서 댓글 달아주셔서 감사합니다.

비로그인 2015-08-30 09:48   좋아요 0 | URL
영어 이야기는 제가 아니라 감은빛님과 하셔야 하는 것이 아닌가요? 그리고 귀머거리 이야기도 제가 한 것이 아닙니다. ‘이름`에는 본질이 없다고 하셨는데... 질량결손 이야기는 저도 관심이 많은 부분이어서(가령 E = mc²등에서..) 알고 있습니다. 다만... 원자력발전소가 충분히 보편어라 생각하신다는 이야기는 과학자/ 공학자와 정치인들/ 건설업자들의 이해관계가 달라 전자(과학자/ 공학자)는 과학 원리상 원자력 발전소란 말이 무리가 없는 보편어라 생각하겠지만 후자(정치인들/ 건설업자들)는 자신들도 모르는 사이에 무언가 가리고 알리지 않으려는 생각에(감은빛님이 말했듯 근로자라는 말을 노동자라는 말보다 선호해 쓰는 것처럼) 원자력 발전소란 말을 쓸 수 있다는 말입니다. 그리고 제 글에도 썼지만 후발 개발국들이 핵 발전소든 원자력 발전소든을 지으려 할 때 반대하는 것을 사다리 걷어차기라 하는 것은 부적절한 말이라는 말을 하고 싶습니다. 반대자들은 정말 자신의 가족, 자신, 지역 사회, 더 나아가 국가의 안전을 우려하는 마음으로 후발 개발국들에서의 핵/ 원자력 발전소 건설을 우려하는 것입니다. 정말 우리는 누린 것을 그들은 누리지 못하게 하려고 반대한다고 생각하십니까? 그렇게 생각하는 것은 자유이지만 그러려면 사람들이 우리나라에서는 계속 그 혜택을 누리려고 하고 후발 개발국들에 대해서는 반대한다는 사실을 증명해야 합니다. 가령 감은빛님의 경우 우리나라에서도 반대를 하고 후발 개발국들에 대해서도 반대한다는 사실은 분명합니다. 이를 사다리 걷어차기라 할 수 있나요?

별족 2015-08-31 08:54   좋아요 0 | URL
흔적님, `영어`이야기를 님께 한 것은, 원자력발전소=핵력발전소,의 이 모든 이론적 배경이 결국 영어로, 우리에게 왔기 때문입니다.
귀머거리, 이야기를 또 님께 한 것은, `정치적인 배경`을 배제하고,를 설명드리기 위해섭니다.
사다리 걷어차기,라고 한 것은, 그 곳-대도시에도 간헐적으로 정전이 찾아오는, 전기를 공급하지 못하는 지역이 존재하는-의 사람들이 한 그 사람들의 선택에도 불구하고, 전 지구적 재앙 때문에 안 된다고 말하는 우리가, 이미 고속 기가 인터넷의 세상에 살고 있기 때문입니다.

마녀고양이 2015-08-29 13:1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문득 글을 읽게 되었습니다.
별족님처럼 자신이 종사하는 분야가, 그것도 매우 전문화된 분야를 ˝사양 사업˝이라고, 또는 ˝절대 악˝처럼 누군가 언급하는 것을 듣는다면... 하는 생각이 떠오르며 다소 마음이 울컥합니다. 동시에 현재 상황을 담담하게 받아들이며, 안전하게 유지하는 역할을 하겠노라고 말씀하시는 모습을 응원하고 싶습니다. 각자의 입장이 있고, 각자의 역할이 있는거니까요.

편리를 위한 책임을 나눠가져야 한다는 점, 동의합니다. 솔직히 편리해서 그 편리함을 맘껏 쓰는 입장이니까요. ㅠㅠ, 바람이 선선해지네요. 즐거운 날 되셔요.

별족 2015-08-30 00:13   좋아요 0 | URL
감사합니다.저는, 잘 살고 있습니다^^

감은빛 2015-08-30 04: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 글에 직접 먼댓글을 달지 않으셨지만,
댓글에 먼댓글이라고 언급하시기에 방문해서 읽고 갑니다.

저는 핵발전이 절대 악이라고 생각합니다만,
절대적인 정보가 부족한 상황에서 핵발전이 상대적으로(화석연료에 비해)
대안이라고 생각하는 주장에 대해서는 인정할 수 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정부가 올바른 정보를 줘야 한다고 봅니다.
재생에너지는 피크오일(화석연료 고갈)과 상관 없으며,
기후변화에 영향을 미치는 온실가스를 절감하는 효과를 가집니다.
게다가 핵발전의 위혐요소가 전혀 없으며,
지역 분산형 발전으로 송전선로 건설이 필요 없습니다.

게다가 인도는 이 나라보다 훨씬 더 재생 에너지 개발이 활발한 나라입니다.
(이건 통계를 통해 확인 하실 수 있습니다.)
저는 이 나라에 살고 있는 별족님과 제가 불쌍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별족님의 자녀와 제 자녀가 더욱 불쌍하다고 생각합니다.

별족 2015-08-30 07:11   좋아요 0 | URL
직접 먼댓글로 달았는데, 북플에는 안 보이더라구요.
우리나라가, 지금 현정부가 재생에너지 개발에 열심이 아니라는 건 알고 있습니다.(통계나 설명 사절합니다-_-;;;)

저는 제가 판단한 일로 제 자녀의 불행을 단정하지 않습니다.
 
노잣돈 갚기 프로젝트 - 제15회 문학동네어린이문학상 수상작 보름달문고 62
김진희 지음, 손지희 그림 / 문학동네 / 2015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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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읽기 전에 '구원확률 높이기 프로젝트'를 마쳤던 참이라, 연달아 프로젝트,라는 말이 거슬렸다. 무언가, 모양내려고 쓰는 외래어같은 느낌에, 덕분에 그 행위자체의 가치를 떨어뜨리는 느낌이 들었다. 앞서 읽은 책의 취지에는 동의하면서도, 계속 속으로 '종교는 그런 게 아니다'-'확률'을 높이기 위한 게 아니다-라고 밀어내고 있던 마음 때문인 것도 같다. 나는, 그러니까, '구원'이 안 중요했던 거다. 목적에 동의하지는 못하는데, 과정은 궁금해서 읽었던 책이었는데, 이 책을 읽으면서, 또 그런 기분이 되었다.


그러니까, 나는 이 책에서의 아이가 '살기로 마음먹는' 부분이 동의가 안 되었다. 

나도 오해하고 있는 걸 수 있는데, 나는 나쁜 짓을 하는 사람들은 딱 그 하루만 살아도 된다고 생각해서 그러는 거라고 생각하고 있었던 거다. 커다란 순환이 어느 순간 나에게 닥칠지 그런 생각 쓸 데없다고 생각해서 아마도 그런 거라고 생각하고 있었던 거다. 사는 게 화가 나서 친구를 괴롭히던 녀석이, 그러면서 더 살기 싫어졌을 그 녀석이 왜 그런 삶도 계속 살고 싶어하는 걸까,라고 생각했던 거다. 이렇게 생각하다 보니, 왜 굳이 노자를 빌려서, 다시 이승에 와가지고는, 그걸 갚겠다고 애를 쓰는지 모르겠다고. 나는, 누구라도 살기 싫을 수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인 거다. 

전제에 동의를 못하는 채로 읽는 책은, 몰입이 잘 안 되었다. 찜찜한 느낌으로 마치고는, 한번 더 읽었다. 

다시 읽을 때는 내가 엄마라서, 엄마들을 본다. 

죽었다 깨어나는 동우는, '엄마,아빠도 나를 안 믿어주는데'라고 생각하는 아이다. 

죽었다 깨어난 동우가, 예전과 달라져 배신자라고 부르는 성재는, '적당한 눈물과 적당한 연기로 엄마,아빠 쯤은 속일 수 있다'고 생각하는 아이다. 

아이에게 부모는 '최후의 보루'여야 한다고 생각했다. 세상 사람 다 믿어주지 않아도, 믿어주는 사람. 그런데, 그 믿음은 쉽지 않다고 또 느낀다. 아이를 믿는다는 건, 아이를 알아야 할 수 있는 거다. 아이와 시간을 보내지도, 아이의 말을 듣지도 않으면서, 아이를 믿는다는 건, 성재같은 아이를 만들 수도 있겠다, 싶다. 

'나들'인터뷰에서 서천석님의 말 중에, '지진이 났다고 사람이 죽지는 않는다고, 집이 무너지면 죽는 거라고. 부모는 집이라'던 말이 잊히지 않는다. 시대가 미쳤어도, 부모라면, 더 높은 기준으로 살아내야 하는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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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조영웅전 세트 - 전8권
김용 지음, 김용소설번역연구회 옮김, 이지청 그림 / 김영사 / 200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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싸우는 걸 구경하는 건, 재미있다. 내가 싸움구경을 좋아한다,라고 써야 맞나. 

고등학교 때 친구가, 시간이 나면 언제나 읽는다고, 너무 재미있다고 말했었다.

다 늦게, 읽기 시작해서는 펼치기 전에 예상했던 것보다는 훨씬 순식간에 읽어치웠다. 싸우는 걸 구경하는 기분이다. 홍콩무협영화를 열 편쯤 보아치운 기분이기도 하다. 

그렇게 보다가는, 잠깐 돌이켜 볼 때면, 도대체, 이사람들이 '의'라고 믿는 것에 대해 생각했다. 단일민족국가에 살고 있어서, 중국처럼 거대한 다민족국가에서 벌어지는 일들에 대해 이해해 보려고도 노력한다. 


이야기는 금의 침략으로 국토가 반토막나고, 다시 몽고의 부흥으로 위태로워지는 이십여년동안이 시대적 배경이다. 지배권력이 누가 되던지, 목숨을 귀히 여긴다면 상관없다, 싶다가도, 그런 방식으로 이런 마음을 설명해낼 수 있을까 궁금해한다. 

일곱권쯤 까지 읽다가 이 신출귀몰한 남자주인공이 겨우 열아홉이고, 남자주인공과 모험하는 사랑스럽고 영리한 여자주인공이 열다섯이라는 깨달음이 닥쳐서, 허탈해지기도 하고, 도둑질이 그 사람의 의협심이나 훌륭함을 갉아먹지 않는 '의협'의 도덕률에 대해서도 생각한다. 동양에서는 '개인'이 없었다고들 하지만, 그런 식으로는 말할 수 없는 게 아닌가,라고도 생각한다. 


흥분했더라도, 조금만 더 이야기나눴으면, 굳이 죽자고 싸우지 않아도 될 사람들이, 순식간에 욱,해서는 누구 하나 죽어버리고 그 죽음 때문에 다시 서로 복수의 시위를 당기는 이야기를 구경한다. 

아둔해도 꾸준하고 고집스러운 남자주인공도, 뭐든지 척척 해결하는 사기캐릭 여자주인공도 지금의 내게는 그저 너무 아이같고, 가장 마음 쓰인 사람은 여자주인공의 아버지인 황약사였다. 늦은 회한이 가득한, 세상 어떤 오해도 그저 내버려두는, 동사,라고 불리며 절세무공을 겨루고 또 원하지만, 사랑하는 여자와 외떨어진 섬에서 그렇게 살기를 원했던 사람. 지나치게 괴팍해서, 수하의 제자가 서로 사랑함을 말하지 못하고 아예 도망가게 만드는 사람. 결국 딸조차도 도망가게 만드는 아빠. 사위의 스승을 도륙했다는 오해도 그저 내버려 두고 변명하지 않기로 결심하고 그저 다시 싸우는 사람. 그저 그걸 감당하기로 하는 사람.  

사는 걸 써 놓는 건 그저 다 변명같아서, 이 변명하지 않는 사람,의 외로움이나 각오가 마음에 쓰였다. 억울하지는 않을까. 그저 최고의 무공을 인정받으면, 그런 죄들은 별 게 아닌 걸까, 별 게 아니라고 자신을 따로 떼어 둘 수 있었던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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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지 2015-08-24 10: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세상 어떤 오해도 그저 내버려두는, 동사,라고 불리며 절세무공을 겨루고 또 원하지만, 사랑하는 여자와 외떨어진 섬에서 그렇게 살기를 원했던 사람. 지나치게 괴팍해서, 수하의 제자가 서로 사랑함을 말하지 못하고 아예 도망가게 만드는 사람. 결국 딸조차도 도망가게 만드는 아빠. 사위의 스승을 도륙했다는 오해도 그저 내버려 두고 변명하지 않기로 결심하고 그저 다시 싸우는 사람. 그저 그걸 감당하기로 하는 사람.
사는 걸 써 놓는 건 그저 다 변명같아서, 이 변명하지 않는 사람,의 외로움이나 각오가 마음에 쓰였다.˝

예전에 읽었던 것이지만, 모든 김용 소설의 등장인물들 중에서 저는 곽정을 제일 좋아하고, 가장 처음에 읽었던 사조영웅전이 제일 좋은 기억으로 남아 있는 것 같습니다.

그러고 보니 황약사는 그런 사람이었죠. 맞아요. 끄덕끄덕
그런데 제목이 싸움구경이네요 ^^

별족 2015-08-24 10:52   좋아요 0 | URL
제가 고딩때 읽었다면 `곽정`을 좋아했을 것도 같아요.

저는 음, `한수철`님이 겹쳐 떠오르데요.
 
마음의 힘
강상중 지음, 노수경 옮김 / 사계절 / 201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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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은 점점 미쳐가고, 나는 점점 고립되는 느낌이 드는데, 이런 미쳐가는 세상에 아이들을 셋이나 낳아놨다는 자책이 마구 닥치는 와중에, 읽으면서 위로받는다.

아, 세상은 백년 전이나 지금이나, 그저 좁고도 현명한 인간의 길 밖으로 끊임없이 벗어나며 갈짓자로 둥그런 지구 위를 그저 뱅뱅 돌고 있는 거로구나,라는 깨달음.

인간, 인류의 삶이 무언가 더 '나아지는' 게 아니고, 그저 그렇게 살아내고 있는 거라는 그런 깨달음.

백년 전이나 백년 후나, 사는 모습은 많이 달라 보일지라도, 그 속에 인간들은 내내, 그런 고민들을 하며, 과거를 또 어떤 식으로 추억하며 회상하게 될 거라는 깨달음.

 

내가 살아가는 동안도 내 마음과는 다를 테고, 앞으로 아이들도 그럴 거라는 깨달음. 그 속에서 삶을 살아낼 수 밖에 없다는 깨달음.

 

마음의 힘은 백년도 전에 쓰여진 두 소설 나스메 소세키의 '마음'과 토마스 만의 '마의 산'에서 화자를 빌려와서는 그들의 고민이 현대를 사는 우리의 고민과 얼마나 같은지 보여준다. 그들의 두려움이 그들의 마음이 얼마나 현대인의 그것과 닮은지 보면서 위로받는 거다. 세계대전을 목전에 둔 세계에 살고 있는 사람들이 갖는 고민과 불안이, 미쳐버린 시대를 살아내는 사람들의 고민과 불안이, 지금과 얼마나 닮았는지, 인류가 걸어가는 갈짓자 걸음이 좀 더 좁은 폭으로 그나마 현명한 인간의 길에 수렴하기를 바라지만, 그럴 수도 그러지 않을 수도 있다는 걸 받아들이기로 한다. 

그 길이 더 높거나 더 나는 어떤 미래로 나아가고 있는 게 아니라는 걸, 또 그대로 받아들이기로 했다. 아이폰으로 비행기로 세계가 연결된 지금이, 태어난 곳을 벗어나지 못하는 삶보다 무언가 '나아졌다'고 할 수 있을지 자신하지 못하니까, 또 그대로 받아들이기로 한다. 무엇을 긍정하고, 무엇을 부정할 지 자신하지 못하는 것에 더하여, 나의 기준에서 미래를 비관한 다음 아이의 삶이 아마도 불행할 거라 단정하는 것은 또 무언가 내 아이를 나의 소유물,로 대하는 태도가 아닌가, 싶어 그만 두자,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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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그인 2015-10-17 10: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나쓰메 쏘세키 고양이로소이다 읽어봤는데 시대 차이를 잘 못 느꼈어요.

별족 2015-10-19 09:01   좋아요 0 | URL
저는, 읽은 게 도련님,뿐인지라. ^^
 
한국이 싫어서 오늘의 젊은 작가 7
장강명 지음 / 민음사 / 201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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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일터는 도시가 아니다. 5개 대도시(서울,대전,대구,부산,광주) 중 가장 가까운 곳도 세 시간은 걸리고, 가장 가까운 영화관도 한시간은 걸린다. 나는, 도시에서의 삶도 별다를 것은 없다고 생각하는 데다가, 직장이 안정적이니 뭐 만족한다. 그런데, 점점 도시화된 사람들이 들어오면서 정말이지 참고 듣기에 힘든 말들을 아무렇지 않게 한다. 직장 때문에 이주한 나도 이런데, 여기가 고향인 사람은 어떨까, 이런 생각을 하게 되는 지경이다. 익명게시판에 하도 그런 이야기를 아무렇지도 않게 해서 화가 나서, 구구절절 쓰다가 날려먹었다. 00에서 썩는다,며 분개한 사람의 글 아래, '사람이 생각을 하면 '썩지'는 않습니다. 지하철에 사람들과 어깨를 부딪치며 출근하는 삶이 부럽다면, 말리지는 않습니다만, 많은 사람들이 한다고, 그게 다 '말'이 되는 건 아닙니다.'라고 마치면서, 너무 심한 말인가 싶어 고민하는 틈에, 무언가 신비로운 조화로 모두 날아가버렸다. 너무 모진 말을 하고 싶지는 않다, 고 생각했다. 듣기 좋은 말만 하려고 하는 건가 싶어, 내 자신이 한심하기도 하다.

 

이 책은, 읽고 싶지 않았는데, 의외로 공감하는 사람이 많아서, 궁금해서 읽었다. 이게 2,30대 젊은이의 사고방식이라면 궁금했다. 호주 시민권을 취득한, '한국이 싫어' 떠나는 계나를 보면서, 노동자의 자존심도 내팽개치고 '강제'순환에 찬성하던 젊은 직원 둘과 한참을 이야기할 때 결국 가닿지 못한 부분들을 여기서도 본다.

보잘 것 없는 개인,인 자신은 할 수 있는 게 없으니, 전능한 누군가가 어떻게 좀 해 주세요.

나는 아무 것도 잘못한 게 없는데, 세상이 미친 거예요.

자신이 하는 말들이 어떤 것들을 고착화시키는지, 알아차리지 못한 채, 아무렇지도 않게 뱉으면서, 자신은 아무 책임이 없는 것처럼 말하고 그렇게 빠져나간다.

자신은 아무 책임이 없으니, 더 심한 말로 욕할 수 있고, 결국 네 의견은 상관없고, 나는 '싫!다!고!'라고 닫아버린다. 사회가 미치면, 그 속에 사람들도 미친 거다.

 

이, 소설은, 아첨같다. 사람들이 다 그러니까, 너도 그런 거다,라고 말하는 아첨.

소설,은 어때야 하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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