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충일에 범죄도시3라. 

가까운 영화관은 거의 매진이라, 먼 데까지 갔다. 아이들까지 태우고, 그런 운전은 처음이다. 

서둘러 출발해서 이르게 도착한 영화관에서 아이들에게 큰 팝콘은 하나, 콜라는 각각 하나씩 들려서 들어갔다. 영화는 15세 관람가다. 

군데 군데 웃음 포인트에 웃고, 왜 모범택시에서 약쟁이 아이돌로 나왔던 배우는 또 약 파는 클럽 양아치로 나온 거냐고도 했다. 

클럽을 중심으로 벌어지는 마약사건, 마약과 관련된 살인사건이 배경이고, 광역수사대로 옮겨 간 마석도(마동석)은 여전히 큼직한 주먹으로 범죄자들을 때리면서 사건을 해결한다. 무게중심을 나눠 가진 악당은 생각보다 매력이 없고, 흠 잡기 좋아하는 어른인 나는 아이들 웃음소리를 들으면서 따라 웃는다. 오랜만에 꽉 찬 영화관에서 다른 사람들의 웃음이 전염되어서도 웃는다. 

아들이 봐서 보는 드라마,로 모범택시,를 봤고, 지금 이로운 사기,를 보는 중이다. 

범죄도시3에서 법이나 절차를 귀찮아하면서 시원시원하게 나쁜 놈을 때려잡는 마석도를 보면서 빌런으로 등장하는 사람의 새삼스러운 직업을 보고 있자니, 상황이란 그런 것인가,라고 생각하게 된다. 법은 멀고 주먹은 가깝다. 무언가 근원적인 도덕심이 없다면 마석도와 주성철은 무슨 차이가 있는가, 라는 생각도 했다. 마석도와 주성철이 법을 무시한다는 면에서 다를 바 없는데도, 누가 내 편인지 분명한 이야기라 보면서 웃을 수 있다. 


법은 멀고 주먹은 가깝다,라고 어른들이 말하면 싫었던 것 같다. 

고등학교 때 선생님은 아이들 싸움에, 우리는 문명인이고 말로 해결할 걸 주먹으로 해결하려 하다니 야만적이라,고 하셨었다. 

법은 멀고 주먹은 가깝다,는 말에 반발하고 선생님의 말에 동조하면서도, 마음 깊이 두려워하면서 살았다. 

맞은 적이 없어서 맷집이 없어,라는 말이 나에게도 해당된다는 것도 알고 있다.

맞고 싶지 않다. 혹시라도 맞은 다음, 내가 어떻게 행동할지 상상하지도 못한다. 

독립투사라면 한 대 맞고 줄줄줄 불어버릴 지도 모르겠고, 옳고 그름이 몸의 고통 앞에서도 유효할지 상상할 수도 없다. 

법과 제도,라는 게 있으니, 심판과 응징을 법에 맡기라는 말이 성질 급한 사람들에게 얼마나 답답한 건지도 생각한다. 그래서 이런 이야기들이 생기고 이런 이야기들에 웃는다. 

무언가 문명이나 평화가 디폴트값인 것처럼 큰 소리내는 사람들에게 가지는 가소로움이 이야기로 눈 앞에 있고, 사람들은 이야기들에 열광한다. 법이나 문명이나 평화는 무척이나 허약한 토대위에 있고, 그 토대는 힘이 있지만 그 편에 서기로 한 사람들의 힘 가운데 겨우 유지된다. 환혼의 장욱이 환혼한 진무를 불에 태울 때, 겨우 유지되는 평화란 걸 잊지 않는다. 

공동체가 어떤 마음을 굳건히 하지 않는다면, 마석도와 주성철의 차이는 종이 한 장만큼도 되지 않는다는 걸 안다. 공동체의 굳건한 마음, 그 마음은 어떻게 유지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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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을 통해 연결되어 있다. 

전기와 통신과 물, 가스가 연결되어 내게로 온다. 

그래서, 어떤 말들이 허투루 들리지 않는다. 


전기를 만드는 회사에서 일한다. 

내가 취업했을 때는 전기를 만들고, 팔기도 하는 회사였다. 그래서 신입들에게 '세금'이 아니고 '요금'이라고 정정시킨다.  

만들기도 팔기도 하는 회사인데 공기업이라서, 같이 취업한 친구는 자기 물건 쓰라고 영업했지만-그 친구는 통신사였던가, 카드회사였던가-, 나는 아껴쓰라고 할 수 있어서 좋았다. 이익을 내려고 격렬하게 노력하지는 않는 회사라서 좋았다. 


보기 흉한 송전탑이 산을 가로지르는 이유나, 주렁주렁 통신선이 전봇대에 매달리는 이유나, 땅 속에 뒤죽박죽 파이프가 지나가는 이유는 편리 때문이다. 와이파이가 있지 않느냐고 하지만, 해저를 가르는 몸통보다 두꺼운 케이블을 지난 다음에야 가능한 일이기도 하다. 아니면, 머스크의 로망대로 촘촘히 띄운 인공위성이 하게 되는 일이기도 하거나. 


도시에서 나고 자라지 않았다. 

전기 말고는 어렸을 때부터 쉽게 집으로 들어온 것들이 아니다. 

어렸을 때, 물은 마당의 펌프에서 길어서 부엌에 통에 채웠다. 펌프가 수도꼭지가 되고, 그게 또 부엌으로 들어갈 때도, 그 물은 사람을 불러 뚫어 만든 지하수였다. 

여전히, 가스는 망에서 오고 있다는 걸, 자각하지 못한다. 아직도 엄마가 사는 시골집에는 떨어지면 트럭이 새 가스통을 싣고 와서는 다 쓴 가스통을 싣고 간다. 

전화는 언니가 고등학교를 갔을 때도 집에 없었고, 한참이나 없었고, 아빠는 동창회 전화를 돌리는 나에게, '전화요금은 괴산 중놈이 내느냐'고 화를 냈다. 


에코페미니즘,을 읽을 때였던가, 도시의 상수도망을 만들기 위해 시골의 지하수원이 고갈된다는 이야기를 읽었다. 쉽게 물을 쓰지 못하던 어린시절과 겹치면서, 언제나 물들이 귀하다. 


전기회사에 들어와서 '세금'이 아니라 '요금'이라고, 내가 쓴 만큼 내는 돈이라고 들으면서, 전기도 어린시절의 물처럼 느껴진다. 


인터넷망,을 유지하기 위해 얼마나 많은 자원이 들어가는지 듣고 나서는, 산다는 게 두렵다. 


그런데도, 망을 통해 공급되는 이 많은 것들은 망을 통해 공급되기 때문에 쉽게 자각하지 못한다. 

요금이 충분히 비싸지 않으면, 물을 물 쓰듯, 전기를 또 물 쓰듯 쓸 수 있게 된다. 자각이 없다. 내가 쓰는 물이 무엇의 댓가인지, 내가 쓰는 전기가 무엇을 치르고 내게 오는 건지, 아예 느끼지 못한다. 공기가 아닌데도 공기라고, 공공재라고, 생각하게 된다. 지금은 통신이나 인터넷까지도 그렇게 된 것도 같다. 필수재, 공공재, 그래서 비용을 올려서는 안 된다,고들 한다. 

정말 그래? 

게다가 망을 통해 공급되는 물건은 무언가 착각을 불러일으키기도 한다. 망 자체에 들어가는 돈에 대해 자꾸 잊는다. 관심은 최초생산방식에 집중되서, 망 자체의 중요성을 간과하게 만든다. 그리드,를 읽을 때 미국에서 집에 태양전지를 올리고, 만들 수 있을 때 만들어 팔고, 부족할 때 망을 통해 전기를 공급받는 부자들 때문에, 망의 부하는 커지는데, 비용을 청구하지 못하는 상황에 대해 듣는다. 이익이 나야, 망을 개선할 수 있는데, 이익을 낼 방법은 아예 없는 구조를 꽤나 진지하게 친환경이라 좋은 거라고 말한다. (최근 읽은 기사에서 한전에서 연간 망을 유지보수하는 비용이 6~7조라고( https://www.energytimes.kr/news/articleView.html?idxno=62713 )하더라.) 


물과 전기가 공공재라서 요금을 올리면 안 된다는 사람들은, 이게 얼마나 많은 자원이 투입되서 누리는 편리인지 댓가를 치르고 싶지 않은 걸까. 아니면, 내가 아니기만 하면 된다고 생각하는 걸까. 


https://www.youtube.com/watch?v=EyAhO7_981g&t=20s



https://www.youtube.com/watch?v=T65PZXxD7t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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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째 아들놈이 반찬투정이 심하다. 소시지나 햄이 없으면 상에 앉아서 한숨을 푹 쉬고 '먹을 게 없다'면서 숟가락을 드는 둥 마는 둥 물러난다. 첫째 딸이 그런 적이 없어서 이건 뭐지 싶은 날들에 생각을 했다. 왜 첫째는 안 그랬을까. 생각해보니 첫째를 키우면서 남편이랑 먹는 걸로 많이 싸웠다. 나는 남편이 딱 둘째처럼 하는 걸 보고, 화를 냈었다. 남편은 그 때, 내가 재주도 없고, 재능도 없다면서 젓가락을 깨작거렸고, 그럼 직접 해 먹어라, 도대체 뭐하자는 거냐고 싸웠다. 

그러니까 첫째는 고학년이 되어서는 자신의 후라이팬을 사달라고 했다. 스텐팬만 있는데, 코팅팬이 있어야 유튜브에서 본 요리들을 해 볼 수 있다면서 그랬지. 그러고는 동생들 밥을 해서 먹여 보는 방학도 여러날 있었다. 그러다가, 자신이 직접 하지 않는 밥에는 어떤 밥에도 화를 내거나, 투정을 하거나 하지 않는다. 

그럼 첫째 아이를 보고 둘째나 셋째가 반면교사 삼는 건 뭘까, 생각했다. 

나는, 언니가 엄마, 아빠랑 싸우는 걸 보면서 내 행동을 교정해 왔다. 

언니가 대학에 가고, 그 해에 친구들과 등산을 간다는데, 아빠가 잠자리에 누웠다가 다시 일어나 앉기를 반복하면서 걱정을 했다. 그러고는 결국 언니는 그 등산을 못 갔는데, 나는 그걸 보고 대학에 가서 무얼 하든 엄마나 아빠에게 허락을 구하지 않았다. 언니는 부모님과 더 가깝구나,라고 느끼지만, 그렇다고 해서 내 행동이 바뀌지는 않는다. 나는 언니가 부모님과 충돌하는 걸 보면서, 그러지 말아야 하는 것들에 대해 생각하고, 다르게 행동했다. 

그렇지만, 역시 첫째가 가지는 부모님의 상과 둘째가 가지는 부모님의 상은 확실히 다르다는 생각도 든다. 이 끈끈한 관계의 끈을 쌍방이 가지고 있다고 생각하는 면에서 언니는 부모님이 좀 더 단단히 잡고 있다고 생각하는 거 같다. 내가 하는 어떤 태도의 노력이, 이 인연의 끈을 잡고 있는 단단함의 크기가 나나 부모님이나 다를 바 없다고 생각하는 나는 할 수 없는 과격함이나 강경함을 언니한테 볼 때마다 놀라는 거다. 

가족이란 참으로 신기한 관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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티비로 유튜브를 봤다. 궁금한 노래들의 뮤직비디오를 찾아봤다. 

세븐틴의 손오공,과- 마치 된 것 같아 손오공- 조용필의 feeling of you.

그러고 있으려니, 딸아이가 와서는 르세라핌의 신곡들을 찾아 보는 거다. 

우선, 언포기븐,을 보고, 연결되서 나온 노래가 '이브,프시케, 그리고 푸른 수염의 아내'(

https://www.youtube.com/watch?v=D-AlVUXUrew ) 다. 


가사를 통해서 알 수 있는 게 없어서, 아이가 묻는다. 제목의 의미가 뭐냐고. 

셋 다, 하지 말라는 일을 하는 여자들이지. 


이브는 기독교에서 최초의 여자라고 하는데, 하느님이 처음 아담을 만들고, 심심하니까 그 갈비뼈를 뽑아 이브를 만드셨대. 그리고 둘이서 에덴동산-생각이 안 나서 그냥 동산이라고-에서 무사태평하게 살았어. 그런데, 하느님이 그 둘 한테 먹지 말라고 한 열매가 있거든. 그건 먹지 말라고 그것만 먹지 말라고 했는데, 뱀이 이브를 꼬셔서 그걸 먹어. 선악과라고 하는데 그걸 먹고는 거기서 쫓겨나는 거지. 


프시케는 그리스로마신화에 나오는데, 에로스의 신부야. 에로스는 사실 아프로디테의 아들이잖아. 여기는 이유가 있는데, 프시케 아빠가 자기 딸이 미의 여신 아프로디테보다 이쁘다고 떠벌리고 다닌 거지. 그러니까, 아프로디테가 자기 아들보고 프시케한테 화살을 쏴서 이상한 걸 사랑하게 만들라고 하거든. 그런데, 에로스가 화살을 쏘려다가 자기가 찔려서 우선 프시케한테 반하고, 엄마 몰래 결혼을 하는 거지. 그런데, 결혼을 하면서 자기 모습을 보지 말라고 해. 자기는 그래도 신이라서 그랬나, 이유는 잘 모르겠네. 그러고는 멋진 궁전에서 온갖 걸 누리게 해 주는데, 프시케가 자기 언니들한테 그걸 보여줬더니 언니들이 아마도 신랑이 괴물이라서 보지 말라고 했을 거라고 부추기는 거지. 그래 프시케가 몰래 에로스를 훔쳐보다가 들켜서는 에로스가 달아나버리는 거지. 다음에 프시케가 에로스를 찾아나서는 이야기도 있는데 그건 잘 모르겠네. 


푸른수염의 아내에서 푸른수염은 중세 성에 사는 남자인데, 결혼하면서 아내한테 성 안의 모든 문을 열어도 되지만, 절대 열면 안 되는 문에 대해 당부하는 거지. 그 아내가 그 문을 열었을 때 그 문 안에는 푸른 수염과 결혼했었으나 실종된 여자들의 시체가 있는 거야. 


둠둠둠 심장이 뛰지, 심장이 뛴다.

하지 말라고 했지만 어떻게 하지 않을 수 있지? 

이야기의 어떤 면들에도 불구하고, 이야기 속의 여자들을 좋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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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과 휴일 오전 농구를 하러 나갔다. 

운동장에서 농구를 할 만큼 하고, 해는 좀 더 올라가서 뜨겁다. 

아이들도 해가 뜨거웠는지, 이제 농구는 그만 하려는지 같이 운동장 가 그늘로 피했다. 

그늘로 피했는데 심심했던지 풀싸움을 시작했다. 

풀을 한 줄기씩 골라 뜯어서 어느 풀이 센 지 대결을 한다. 머리카락 싸움처럼 양 끝을 잡고 서로 가로지르게 해서 어느 게 끊어지는지 대결이다. 아이들이 풀을 고르는 게, 영 성에 안 차서, 질기고 질긴 풀들을 골라 나도 풀싸움에 들어갔다. 질기고 긴 풀 줄기를 여러개 모아서 대결에 들어갔더니, 초4 여자 아이가 둘러보고 쑥 솟은 민들레 꽃대를 여러 개 들고 왔다. 아, 아, 그건 정말 약해 빠져서 안 되는데. 속이 빨대처럼 텅 비고, 누군가 그 씨앗을 날리고 싶을 때 쉽게 꺾여서 어디든지 씨를 날릴 수 있는 약하디 약한 민들레 꽃 대 여러개를 가지고 오다니! 어쩜 이렇게 모를 수 있지!!!!


이 얘기를 엄마한테 하면서, 엄마가 나를 볼 때 그런 순간이 얼마나 많았을까, 갑자기 느껴졌다. 

그래도 엄마는 나를 놀리지 않았는데, 나는 벌써 여러 번 아이를 놀렸다. 내가 제일 한심하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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