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사이비가 뭐야?"

모범택시2 때문인가. 유튜브에 가득 찬 '나는 신이다' 때문인가. 

인간이 신을 창조했다는 중1 남자애는 이런 질문을 하지 않지만, 초4 여자애는 질문을 한다. 

대답을 해 봐야 하나. 

쉬운 방법으로 우선, 한자 뜻을 찾아본다. 

似以非(같을 사, 써 이, 아닐 비)를 쓰고, 같아 보이지만 아니다,라는 뜻이라고 似是以非의 줄임말이라고 한다. 

"음, 한자 말인데, 같아 보이지만 아닌 거,라고 하네."

"불교도 사이비야?"

"아, 엄마는 뭐든 안 믿어서." 

뭐든 믿는 사람이라면, 내가 믿는 것은 아니고 저쪽은 사이비라고 하지만, 나처럼 아예 안 믿는 사람에게는 다 그저 그렇게 보인다. 

불교를 내걸고 사욕을 채우는 사람도 물론 있고, 기독교를 내걸고 사욕을 채우는 사람도 있고, 천주교를 내걸고도 사욕을 채우는 사람도 있다. 이슬람이라고 없을까. 

종교가 어루만지는 약하고 어리석은 마음,은 조종당하기 쉽고, 나쁜 사람이 그런 방식을 이용하기도 쉽다. 


사이비,가 아니라 그 무엇이라도, 네 마음 속에 중하고 귀하게 생각하는 것을 아니라고 하면, 믿음 만으로 무엇이든 해결할 수 있다고 하면, 의심하고 물러서라고 말해주고 싶다. 

가족을 찢어놓는다,라? 사이좋게 가족이 다 같이 믿으면 어떤가요? 

재산을 모두 바치게 한다,라? 정말 그런 걸로 구분할 수 있나요?

 

성스러운 아이돌,의 아이돌 씬을 보고 있으면, 아이돌,이 현대 종교는 아닌가,라고 까지 생각하고 있어서 뭐, 나처럼 경계없는 사람은 참 이것도 문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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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콘돔이 뭐야?"

비비의 TMI영상(https://www.youtube.com/watch?v=q1nIIW8GXnE)을 유튜브로 보던 딸아이가 묻는다. 아, 뭐부터 말해줘야 하나. 

"아기가 어떻게 생기는지 알지?"

"모르는데."

"에? 어린이집에서 배웠잖아? 남자는 고추가 있고, 여자는 "

"몰라, 그런데."

"아기가 생기려면 남자의 아기씨가 여자의 몸 속에 들어가야 잖아? 그런데, 아기는 안 생겼으면 하고 바랄 때 콘돔을 쓰는 거야, 고무장갑을 끼듯이 콘돔을 씌우고"


설명이 부족한 거 같은데, 더 듣고 싶어하지는 않았다. 

노골적인 부분들은 설명하기 어렵다고 두루뭉술하게 설명하고 있구나. 

성교를 아기를 만드는 일,이라고 한다면, 아기를 만들기 싫은데, 왜 그걸 하는지 설명했어야 하나, 싶기도 하고. 왜 그 유미의 사생활,에서 날뛰던 웅이의 공룡 이야기를 했어도 재밌었을 텐데, 말이다. 

오래 이야기하는 걸 불편해하는 건 나만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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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게 기억에 있을 리 없다. 

모두 다 이야기, 엄마의 이야기, 아빠의 이야기, 역사의 이야기. 시간이 흐르고 사람은 죽고 태어나고, 이 땅에 사람들은 변하지만, 여전히 살아있는 사람도 있고, 그 가운데, 이야기는 남아 나는 내가 피식민지의 역사를 가진 나라의 국민인 걸 잊지 않는다. 그래서, RM의 인터뷰 (http://tayom.tistory.com/339 ) 가 회자될 때 새삼스러웠다. 

자랑스러운 감정에 더하여, 괴롭고 모순된 감정들이 내게 있다. 


1. 도롱뇽과의 전쟁

https://blog.aladin.co.kr/hahayo/10213714


도롱뇽과 전쟁을 하는 인류가 아니라, 도롱뇽에 이입하는 바람에 재미나게 읽을 수 없었다. 

인간도 동물이라고 생각하는 동양인인 나는, ( https://blog.aladin.co.kr/hahayo/12615586 ) 

책을 읽는 내내, 도롱뇽이 서양인이 보는 일본인,같다고 느꼈다. 도롱뇽이었는데, 문명을 따라잡아서 공격하는 존재. 

유럽의 역사에 '세계사'라고 이름붙이는 사람들을 상상하게 되서 싫었다. 





2. 두번째 봄

(https://blog.aladin.co.kr/hahayo/7636123 )

이 책을 읽을 때, 내가 부러워하고 있다는 걸 알았다. 

제국이었다고 해도, 저런 삶을 내가 산다는 보장이 없는 계급이면서도, 저렇게 부유한 삶을 선망한다는 것이 부끄러웠다. 

식민지였다가 전쟁의 폐허 위에서 독재정치의 폭압 가운데 이르른 지금의 이 나라의 현실에서 책 속에 묘사된 삷을 선망한다는 것에 죄책감을 느꼈다. 


인간이 그럴 수 있는 존재라는 걸 알고 있어서, 내가 보지 않으면, 모른 채 할 수 있다는 걸 알고 있어서, 경각심이 들었다. 




3.고릴라 이스마엘

(https://blog.aladin.co.kr/hahayo/603247 )

좀 더 도전적이고 무시무시한 표지의 책으로 읽었지만, 읽으면서 뒷걸음질치는 순간들이 있어서 남겼다. 

피식민지의 기억이 있다. 선선히 생태적 삶으로, 경쟁적이지 않은 삶으로, 돌아갈 수 있다고 말하지 못한다. 









4. 소년,아란타로 가다

( https://blog.aladin.co.kr/hahayo/11354393 )


이 책보다, 이 책을 읽고 녹두꽃 드라마 속 묘사를 남겼다. 전봉준이 문명이나 진보,가 야만이라고 말하는 장면. 나도 그렇게 생각하고 있다. 마음이 없는 문명이나 진보는 인간을 어떻게 만드는가. 









지금 어떤 나라들이 지금 우리나라의 풍요를 선망하고 있고, 우리의 지금 부가 그런 선망 가운데 이루어지는 수출 위에서 가능했다는 걸 또 알고 있어서 부끄러운 마음이 된다. 


피식민지의 기억이 공동체에 남아 있다. 

축구를 할 때마다, 야구를 할 때마다, 기억하지 못하는 울분에 흥분하면서 열광한다. 

제국의 사람들이 평화를 말할 때, 그럴 듯한 말들로 환경과 생태를 말할 때, 그들처럼 쉽게, 크게 말하기 어렵다. 

식민지의 자연을, 식민지인의 시체들을 아래에 깔고, 자국 내 불만을 잠재웠던 그들의 역사를 알기 때문에, 그 가운데 일군 부를 토대로 올라가고 올라갔던 그들 국가의 안전망을 선선히 볼 수가 없다. 그럴 수 있었던 저들의 토대를, 그럴 수 없었던 우리의 토대를 알기 때문에, 노동자면서 사장처럼, 힘없는 국민이면서 정치가라도 된 양 갈팡질팡 하고 있다. 


다시 식민지가 될 수는 없어서, 스스로를 착취하고 있다. 알고 있다. 

균형을 잡아야 하는데, 어떻게 가능한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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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수 아비가 딸의 수행평가용 서류를 만들어준다. 수시로 대학에 들어간다. 

검사 아비가 아들의 학교폭력시비를 대법원까지 끌고 간다. 정시로 대학에 들어간다. 


무언가 지금 양 극단의 정치지형 안에서 악용하는 대표선수를 보고 있는 듯 전형적이다. 


시험이 전부가 아니니, 구구절절 서류를 보탠다. 학생이 얼마나 성실하고, 착실하고, 능력있고, 다종다양한 경험으로 노력했는지. 교수인 아비는 자신의 능력을 통해 아이의 서류에 구색을 맞춰준다. 불법은 아니지만 꼴사납다. 


학생이 공부만 잘하면 되지, 수능 100프로로 대학에 간다. 갈 수 있었던 데에는 친구를 괴롭히고도 반성하는 노력은 내팽개치고, 좋은 학교에 악착같이 적을 걸어두기 위해 검사인 아비는 자신의 법률적 지식을 동원해서 아이의 처분을 지연시킨다. 불법은 아니지만, 용서하기 어렵다. 


권력은 두 그룹간에서 왔다갔다 갈짓자로 움직인다. 

입시는 정시 100프로가 옳으니, 수시가 필요하니 또 갈짓자로 움직인다. 

권력을 가진 자들이, 자신이 가진 권력을 나쁘게 쓰기로 하면, 그걸 통제할 방법은 과연 있는가. 


어떤 제도든 부작용은 있고, 여기에는 이런 부작용이, 저기에는 저런 부작용이 있다. 

착하고 좋은 보통의 사람들은 부끄럽게 여길 일들이 이 제도가 강화되면 아무렇지 않게 하는 사람들이 생기고 다시 제도는 다른 쪽으로 당겨진다. 다른 쪽으로 당겨지면 다시 또 다른 식으로 부끄러울 짓을 아무렇지 않게 하는 사람들이 뻔뻔하게 고개를 쳐든다. 다시 다른 쪽으로 제도는 당겨진다. 

인간은 그럴 수 밖에 없는 것인가. 

자신의 삶을 계속 곱씹으면서 그렇게 살아갈 수밖에 없는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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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를 위한 전기요금 인상인가'(https://www.khan.co.kr/opinion/column/article/202303060300035)를 봤다. 

'에너지 요금 인상, 정말로 필요한가'(https://www.khan.co.kr/opinion/column/article/202303080300035)도 봤다. 


전기요금을 올려봤자 많이 쓰는 놈들은 압력을 안 받을 테고, 적게 쓰는 사람들만 고통받는다. 전기요금을 올려봤자, 기업의 이익은 주주들에게 간다,고 말하는 첫번째 글을 본 답답함이 채 가시기도 전에, 에너지는 공공재고 가치재니 비필수 분야의 절약과 국가의 세금 투입으로 요금은 올리지 말아야 한다, 는 두 번째 글을 봤다. 


많이 쓰는 사람들이 압력을 받는 누진요금이 있었는데, 폭염이 두 번쯤 지나고 없어졌다. 누진요금이 없어지고 나니, 생활가전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고 있는 중이다. 누진요금이 사라질 때, 에어컨이 필수,라고 했었지. 지금은 건조기와 식기세척기와 로봇청소기가 필수 가전으로 들어오고 있다. 사람의 삶이 거기 맞춰지고 나면 필수가 되겠지. 전기 없던 삶을 아예 기억하지 못하는 것처럼, 냉장고나 세탁기 없이 살던 두 세대 쯤 전이 아득하게 느껴지는 것처럼 말이다. 

필수,라는 말은 가져다 붙이기 나름이고, 많이 쓴다와 적게 쓴다,는 상대적인 개념이고, 우리 나라는 지금도 전기를 충분히 많이 쓰고 있다. 


요금을 올리지 말자는데, 어쩌자는 것일까.

에너지요금은 에너지에만 국한되는 게 아니다. 전기요금이 싸면, 전기를 쓰는 방식으로 삶을 바꾼다. 집에 콘센트만으로 존재하는 것들을 만들기 위해 자원이 들어간다는 걸 왜 모르는 체 할까.  

도대체, 필수적인 에너지 사용은 어떻게 정의하려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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