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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속에서 걸어나온 사람들 - 산월기(山月記) / 이능(李陵)
나카지마 아츠시 지음, 명진숙 옮김, 이철수 그림, 신영복 추천.감역 / 다섯수레 / 199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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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의 이야기-그건 기담이기도 하고, 역사 속의 이야기이기도 하다.-를 일본의 작가가 다시 썼다.

이걸 읽게 된 것은 우연한 기회에 신영복선생님을 뵈었고, 그래 '감옥으로부터의 사색'을 두번이나 읽다 치운 죄책감에 좀 가벼운 이야기로 선생님을 만나보자고, 책을 검색해서는 선생님이 감수하고 추천의 말을 쓴 모두가 최고라고 찬탄하는 '소설'책을 산 것이다. 그러니까, 아무 맥락도 닿지 않는다는 것. 이 책을 통해 그 죄책감이 사라질 리 없고, 심지어 선생님의 추천의 말은 너무 길어서 이 간결한 책에 군살을 만들어 버려 선생님이 미워지기까지 한다. 제목도 마찬가지, 이 앙상해서, 더 많이 생각하게 만드는 이야기에 너무 긴 제목이다. 그저 '산월기/이능'이라고 해도 좋았다. 추천의 말 따위 가볍게 덜어내고 훨씬-지금도 충분히 가볍지만- 가볍게 만들어도 좋았다.

이야기들은 모두 좋았다.

아, 내가 보태는 말이 또 그렇게 군더더기가 될까봐 두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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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사가 사랑한 수식
오가와 요코 지음, 김난주 옮김 / 이레 / 200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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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착하고, 나를 울게도 만들었지만, 결국은 내가 사랑하게 만들었다.

곧 잊어버릴 사람에게 마음을 주는 것, 이미 잊은 사람에게 추억을 말한다는 것은 가슴아픈 일 또는 멍청한 일이다. 

돌이켜보면, 내가 돌본다고 느끼던 사람에게 오히려 보살핌을 받고 있다는 걸 깨닫게 되고, 영리한 마음에서 한 말이 마음에 상처를 낸다.

멍청한 일인 줄 알면서도, 가슴이 아플 줄 알면서도 사랑하는 건 멈출 수 없고, 그 사랑은 누구나 찬미해 마지않는 이성간의 사랑이 아니어도, 따뜻하고 역시나 멈출 수 없고,  그렇다고 절대 덜하지도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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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이 이야기
얀 마텔 지음, 공경희 옮김 / 작가정신 / 200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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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들에서 기대한 것은, 책날개로부터 기대한 것은, 사람들의 이야기로부터 기대한 것은 이런 것이 아니었다. 좀 더 따뜻한 이야기였다.

내가 바라던 것은, 아직 파이가 인도를 떠나기 전, 길에서 세 명의 사제를 맞닥뜨렸을 때였고, 구명보트에서 리처드 파커가 파이에게 친근함을 의미하는 소리를 냈을 때였다.

길들이는 이야기는 어린왕자,의 왕자가 여우를 길들이는 스타일이 좋다. 현실은 파이가 리처드 파커와 동거하면서 200여일을 항해하는 동안의 길들임이 가깝겠지만, 왕자가 여우를 길들이는 판타지를 나는 좋아한다.

소설가를 만난 인도인이 말한 것처럼, 이 책을 읽고 내가 신을 가깝게 느꼈는가, 하면 그것도 아니다. 이 책이 그런 인상을 준 것은, 내가 바라던 그 장면들이 전부다. 세 명의 사제를 맞닥뜨린 순간이나, 파이가 모든 종교에 진지할 때 나는 기뻤다. 모든 신들을 내팽개치는 나의 냉소보다, 서로의 신들을 비난하는 사제보다, 모든 신들을 사랑하기로 결심한 파이가 훨씬 행복해보였다.

그렇지만, 그 장면들이 지나가고 나면, 책은 배경은 단조로우나 긴장이 흐르는 바다 위 풍경을 전한다. 상어떼가 아래로 지나는 바다 위의 풍경과 이야기는 흥미진진,하게도 느껴지지만 두 개의 서로 다른 버전이 그리 다르지 않게 느껴질 만큼 현실이다.

파이가 살아남은 것은 포기하지 않은 마음때문이었고, 그것은 물론 존경스럽다. 만약, 이 이야기에서 무언가를 찾아야 한다면, 그건 신에 대한 믿음에 대한 것이어야 하겠지. 포기하지 않는 마음이 신에게서 비롯되었다는, 무언가를 보지 못한 나는 신에 대한 믿음 대신, 포기하지 않는 낙천성에 대한 이야기를 보는 것이다. 신을 아는 누군가는 나에게, 그것이 바로 신의 증명이라고 말할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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궁궐의 우리 나무
박상진 지음 / 눌와 / 2001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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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산에 가는 것을 좋아한다. 산을 오를 때, 땀이 나는 것도, 내 몸이 그 수고들을 잘 해 내는 것도 대견하고, 봄이 되면 어여쁜 초록, 여름이면 캄캄한 초록, 가을이면 아름다운 색색, 겨울이면 하얀 산, 모두 모두 너무 좋다.

그렇게 오르다가, 나무들을 보고, 꽃들을 보면, 언제나 나를 즐겁게 하는 것들을 제 이름으로 불러주고 싶다. 너무 좋아한다. 산의 풍경들, 산의 나무들, 산의 꽃들, 산의 풀들. 그래, 제 이름을 불러주려고 책들을 찾았고, 내게는 이 책이 제일 좋았다. 나무의 이름들은 이야기들로 기억된다. 어째서 그런 이름을 가졌는지 알게 되면, 그 이름은 산길에서 만난 나무에게 저절로 붙는다. 상세한 나뭇잎의 묘사도 있고, 줄기의 모양도 있는 쓸모에 대한 묘사가 많은 도감을 읽을 때는 일어나지 않던 일이다. 나무에게 그 이름이 붙은 데도 이유가 있는 법이고, 이야기를 알고나니 이름도 쉽게 떠오르고 더욱 살갑게 느껴진다.

박태기나무, 이팝나무, 조팝나무, 생강나무, 고추나무, 밤나무, 함박꽃나무, 서어나무, 으름, 자두나무, 무궁화, 은행나무, 등나무, 닥나무, 다래나무, 돌배나무, 명자나무, 가죽나무. ...

늘 보고 알던 나무도, 모양은 알지만 이름은 처음 듣는 나무도 있다. 처음 만난 나무의 이야기도 반갑지만, 알던 나무의 이름 이외의 것들을 듣는 것도 즐겁다. 나무의 이름들의 유래나, 얽힌 이야기들을 듣고 있자니, 모든 나무들이 친구같이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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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의 노래 (1.2권 합본) - 우리 소설로의 초대 4 (양장본)
김훈 지음 / 생각의나무 / 200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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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니가 이순신 장군님의 광팬이 되었다. 그래, 산 지는 오래 되었는데, 손이 가지 않던 것을 지난 주에 마저 다 읽었다.

앞서 읽은 서평의 영향인지, 말마따나 처음에는 장군님 대신 김훈이 겹쳤다. 자전거 여행의 기운이 느껴지기도 했고. 그러다가, 이건 먼저 읽은 서평때문일 것이다, 마음을 다잡아 다시 읽으니, 말하는 사람이 장군일 수도 있겠다 싶었다.

 

장군 마음속의 살풍경이 막막하게 느껴졌다.

소설은 장군이 백의 종군을 마치고 죽는 순간까지를 묘사하고 있다. 일인칭 시점의 이 소설이 난중일기처럼 느껴지기도 하고, 가끔 장군의 마음 속은 지나치게 심란하구나, 싶기도 하고. 그런데도, 박정희에 의해 우상화된 영웅이라는 마음 속에 오랜 저항이 끊이질 않아서, 언니처럼 팬이 되지는 않을 거 같다. 그래 공연히 장군님이 손해를 보게 되는 거다.

무패의 장군이 있어, 그 난이 그렇게 끝났는데도, 그런 마음의 저항을 하고 있다니, 공을 인정하지 않는 선조나 다른 신하들과 다를 게 무언가 싶기도 하고. 전쟁의 풍경들이 가슴 아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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