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Book] 2022 제5회 한국과학문학상 수상작품집 - 루나 + 블랙박스와의 인터뷰 + 옛날 옛적 판교에서 + 책이 된 남자 + 신께서는 아이들 + 후루룩 쩝접 맛있는
서윤빈 외 지음 / 허블 / 202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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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북으로 받아서 읽었다. 순서대로 읽으려다가 관심이 가는 대로 목차에서 골라 읽었다. 

루나를 읽고, 후루룩 쩝쩝 맛있는,을 읽고, 책이 된 남자,를 읽은 다음 블랙박스와의 인터뷰, 옛날 옛적 판교에서는 순으로 읽었다. 후루룩 쩝쩝 맛있는,까지는 작가의 말까지 읽었는데, 다음에는 뭐 굳이,라면서 읽지 않았다. 이렇게 다 읽었다고 김보영님 심사평을 읽었는데, 안 읽은 소설 이야기가 있는 거다. 뭐지 싶어서 다시 목차를 보고, 인터넷 서점에서 책 검색해서는 그 쯤 되는 페이지를 열어서 겨우 '신께서는 아이들을'을 읽었다.- 이북 목차에 빠졌다고 백자평에 올리고 나서, 알라딘 고객센터에서 출판사에 연락해서 수정해주셨다. 지금은 목차에 나오더라. 알라딘에서 받아 본 이북이 아닌데-_-;;; 무척 감사했다.- 나의 질문은 아닌 이야기들이었다.


루나,는 설정 자체가 신기했다. 바닷 속의 해산물을 채취하는 해녀와 같은 묘사로 우주에서 광물을 채취하는 공동체에 대해 묘사한다. 


후루룩 쩝쩝 맛있는,은 인간이 동물을 먹는 것의 역지사지 같이, 외계생명체가 인간을 먹는 것에 대한 이야기다. 무언가 그런 이야기기는 했지만, 뭔가 개그처럼 생각하면서 이야기를 읽고는, 작가의 말에 빈정이 상해서 다음부터는 작가의 말을 설렁설렁 읽었다. 


책이 된 남자,는 배경도 이야기도 여기는 아니다. 이야기는 두 가지 층위에서 굴러간다. 중세의 책 사냥꾼이 수도원에서 책을 필사하고, 그 책이 무엇인지 알게 된다. 뇌가 절편처럼 썰려서는 책 속에 갇힌 남자와 책을 통해 대화하면서 그 남자가 책이 된 과정에 대한 이야기도 전개된다. 테드 창의 '상인과 연금술사의 문' 생각이 많이 났다. 아예 모르는 세상 이야기라, 옛날 이야기 읽는 기분으로 읽을 수 있다. 


블랙박스와의 인터뷰,는 전뇌화라는 설정으로 우주 식민지에서의 삶에 대한 이야기다. 미래의 인간은 이렇게까지 죽음이나 이별을 견디지 못할 것인가, 생각했다. 나는 인간이란 전인적 존재를  믿고 있어서 전뇌화한 존재들에 대한 묘사가 싫다. 뇌만이 살아있으면 나란 존재는 살아있다는 식의 어떤 묘사, 유심칩을 갈아끼우 듯이, 온 몸을 대체하는 미래가 무언가 싫어서 계속 화를 내고 있다. 타인과의 관계는 어디에 있는가, 싶은 이런 기술의 개발들은 누구에게 필요한가,라고 질문하기도 한다.


옛날옛적 판교에서는,은 뭐지 싶다. 


신께서는 아이들을,에 대해서도 뭐지, 싶었다. 작가의 말을 스치듯이 읽고는 아마도, 아이들에게는 심판이 기다리는 어른들의 저승말고 다른 저승을 주고 싶었나보다, 생각했다. 과학소설이라기 보다 환상소설이고 나는 무언가 내가 공격받는 인상을 받는다.  


내가 이야기의 쓸모에 관심이 많은 사람이라서, 이야기를 쓰는 사람이 마음 속에 품은 질문은 뭔지 열심히 찾는 사람이라서, 모든 이야기가 하고 싶은 말이 뭔지 모르겠어, 에 더하여 특별히 내가 싫어하는 주제들이라 그랬다. 블랙박스와의 인터뷰,나 후루룩 쩝쩝 맛있는,은 잘 읽히고 주제가 뭔지도 알겠는데 싫은 이야기였다. 죽음을 받아들이지 못해서 영생을 추구하는 것은 끔찍하다고 생각하고 있다. 후루룩 쩝쩝 맛있는,은 이야기에서는 노골적으로 드러난다고 생각하지 않았는데, 작가의 말이 노골적이라 싫었다. 그 이야기는 우주 유머 같았다. 혈관만 교체해주겠다는 꽤 괜찮은 조건이 아닌가, 좀 키들거렸었거든. 그런데, 작가는 동물권에 대해서 말하면서 바꾸자고 덧붙였다. 아, 이야기는 그런 인상을 주지 않는데, 자신은 그런 의미가 있다고 생각한다고 왜 쓰는 거야, 라는 생각이 들었다. 

똑같이 영생,에 대한 이야기인데도 왜 나는 '책이 된 남자'에는 싫다는 감상이 덜할까 생각했다. 아마도 후회에 대한 말이라서 그런 걸 수도 있고, 배경이 이국적이라 그런 걸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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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 제5회 한국과학문학상 수상작품집 - 루나 + 블랙박스와의 인터뷰 + 옛날 옛적 판교에서 + 책이 된 남자 + 신께서는 아이들 + 후루룩 쩝접 맛있는
서윤빈 외 지음 / 허블 / 202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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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북 목차에 신께서는 아이들을,이 빠져 있었습니다. 관심가는데로 목차를 클릭해서 다 읽었다고 생각하고, 심사평을 읽는데 내가 하나 빠뜨린 걸 뒤늦게 알고, 겨우 페이지를 밀어서 읽었습니다. 어디에다 말해야 할 지 몰라서 여기에-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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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라딘고객센터 2022-06-17 16:4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불편드려 너무 죄송합니다. 출판사 전달하여 수정 파일로 교체되었습니다. 번거로우시겠지만 기존 파일 삭제 후 재다운로드 이용해 주시기 바랍니다. 이후 이용하시면서 불편하신 부분은 나의계정>1:1고객상담으로 연락주시면 신속하게 안내 드리고 있으니 참고해주십시오. 편안한 시간 보내세요. 감사합니다
 
붓다 순례 - 현대적으로 새롭게 해석한 인간 붓다의 위대한 발자취
자현 스님 지음, 하지권 사진 / 불광출판사 / 201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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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https://blog.aladin.co.kr/hahayo/11489172) 을 머릿 속에 담은 인상대로 남기고, 역시 또 머릿속에 남은 대로 페이퍼(https://blog.aladin.co.kr/hahayo/13639264) 에도 남겨 놓고는 정말 책 속에는 뭐라고 써 있었는지 다시 읽었다. 

읽으면서 내가 좋았던 이야기를 뒤섞었다는 걸 알았다. 

살인자 제자의 이야기는 뒤 쪽에, 무거운 것은 가라앉고 가벼운 것은 뜨는 인과론에 대한 이야기는 앞에 있었다. 그저 내 마음대로 섞어서, 페이퍼에 썼던 것이라, 다시 책 속에 있던 대로 써놓으려고 펼친다. 


어느 날 붓다가 갠지스 강변을 걷고 있을 때였다. 한 브라만교 사제가 신에게 올리는 기도를 통해 죽은 사람을 천상에 태어나게 할 수 있다고 하며, 그 당위성을 붓다에게 역설한다. 그러자 붓다는 주변의 조약돌을 갠지스 강에 던지며, 신에게 기도하면서 그 돌을 '떠올라라, 떠올라라' 외친다고 해서 돌이 떠오르겠냐고 묻는다. 사제가 안 된다고 하자, 붓다는 무거운 것은 가라앉고 가벼운 것은 떠오르는 것이지 신에게 기원한다고 바뀌는 것이 아님을 말해 준다. 

신을 숭배하며 자신의 기대를 충족시키려는 행동은 오늘날에도 많은 사람들이 범하는 오류 중 하나이다. 그러나 붓다는, 인간은 그 사람이 살아 있을 때 행하던 업에 의해 선업이 많으면 가벼워서 하늘로 가고, 악업이 많으면 무거워서 지옥에 간다고 할 뿐이다. 이것이 불교에서 말하는 '선인낙과 악인고과'의 인과법이다. - p23~24


이 대목을 겨우 찾아서 읽으면서, 이런 믿음을 그대로 받아들일 수 있는 불자들의 강인함을 존경한다. 어차피 확인할 수 없는 죽음 뒤의 일들에 대해, 쉽게 위로하는 말들을 하지 않는다. 나는 사람들이 그걸 알면서도, 종교를 통해 위안을 받고 싶어하는 게 아닌가, 종교에 삐딱한 태도가 있는데, 불교는 그런 태도가 없는 거다. 그래서 아마도, 토속종교의 관점에서 석가를 악신이라고 하는 건가 싶기도 하다.(https://blog.aladin.co.kr/hahayo/13277966) 무언가 신이라기에 냉정한데, 마음에 든다. 


살인마 앙굴리말라를 굴복시키다. 

사위성은 신통을 통한 타 종교와의 충돌 극복 이외에도, 앙굴리말라와 관련된 '기쁜 비극'이 서려 있는 곳이다. 앙굴리말라는 젊고 준수한 수행자였는데, 스승의 젊은 부인이 그의 외모에 반하면서 문제가 발생한다. 결국 젊은 부인의 유혹을 앙굴리말라가 거절하면서 상황은 극단적으로 치닫게 된다. 

부인의 입장에서는 앙굴리말라가 먼저 스승에게 자신의 행실을 말하게 될 경우, 당시의 법률상 죽음을 감수해야 했다. 그래서 남편에게 오히려 앙굴리말라가 자신을 유혹했다고 누명을 씌웠고, 스승은 제자의 행동에 분노하게 된다. 그 결과 깨달음을 얻기 위해서는 100명을 죽여서 그 손가락으로 목걸이를 만들면 된다는 기형적인 비방을 가르쳐 준다. 그러나 스승을 의심하지 않았던 앙굴리말라는 이를 신뢰해서 무차별 살인을 하기에 이른다.(중략)

극적인 상황은 마지막 살인을 앞두고 앙굴라말라의 어머니가 아들을 말리기 위해서 오면서 발생한다. 그때 붓다께서 신통으로 이러한 내용을 아시고, 어머니를 해치려는 앙굴리말라의 앞으로 나서게 된다. 그러자 앙굴리말라는 어머니 대신 붓다를 쫓게 되는데, 여기에서 걸어가는 붓다를 뛰는 앙굴리말라가 따라잡지 못하는 이적이 발생한다. 

이때 뒤쫓던 앙굴리말라가 "사문아, 게 섰거라."라고 하자, 붓다는 "나는 멈추어 있는데 네가 오히려 멈추질 않는구나."라고 답하신다. 이는 붓다는 고요의 깨달음에 멈추어 있는데, 앙굴리말라는 혼란 속을 방황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붓다의 이 말은 앙굴리말라의 어리석음을 자각시켜, 결국 그가 불교로 들어와 진정한 수행자가 되어 깨달음에 이르도록 한다. 

그러나 앙굴리말라가 마음을 고쳐먹었어도 그의 살인 행위는 지워지지 않아, 탁발을 나가면 사람들의 모진 돌팔매를 당하곤 하였다. 그러나 진정한 깨달음을 얻은 앙굴리말라는 분노하지 않고 자신의 잘못을 받아들여 얼마 뒤 죽음에 이른다. -p277~278


여기까지가 내가 페이퍼에 이상하게 합쳐놓은 두 개의 이야기다. 부처님은 인과율을 말씀하시고, 깨달았다고 해도 깨달음은 오직 나에게만 미친다.  


비유리와 만난 마하남은 최대한의 저자세로 인근의 연못을 가리키면서, 자신이 물에 들어갔다 나오는 시간만 포위를 풀고 도망치는 사람을 살려 달라고 부탁한다. '사람의 잠수 시간이 뭐 대단하랴'고 생각한 비유리는 외할아버지의 부탁을 수용한다. 그러나 마하남은 연못으로 들어간 직후 곧장 머리칼을 풀어서 물풀에 묶어 익사하는 방법을 택한다. 이로 인하여 상당히 오랜 시간이 지체되면서 많은 석가족들이 탈출하게 된다. 이때 도망 나온 석가족들이 다시금 건립하게 되는 것이 인도의 가비라국, 즉 '피프리하와'이다. 두 개의 가비라국 문제는 바로 이러한 비극적 사연은 안고서 존재하는 것이다. -p316


석가족의 나라가 망하는 풍경이다. 나는 왜 이 이야기가 좋을까. 석가족은 교만하여, 공주를 원하는 대국에 첩의 딸을 속여 시집보냈다. 그 딸의 아이가 왔을 때 석가 귀족의 아이들은 그 아이를 피가 천하다 모욕해서 원한을 사고, 왕이 된 그 아이는 석가족의 나라를 침공해 온다. 그 아이가 비유리이고, 비유리의 외할아버지가 마하남이다. 깨달음을 얻은 부처라해도 악업이 쌓여 벌어지는 일을 막을 수 없다. 악업이 쌓여 벌어지는 비극 앞에서 스스로 물 속에서 죽기를 택하는 왕을 보는 것은 무언가 비장하다. 


실제로 이 기록에는 깨달아 아라한이 되고도, 다른 이를 위해서 단 한 차례도 설법하지 않은 박구라 존자의 부도에 대해서도 나온다. 여기에 아소카왕은 단지 1전만을 공양한다. 이를 보고 신하들이 동일한 깨달음을 얻은 분인데 왜 그렇게 하느냐고 묻자, 왕은 "이 분은 세상에 무슨 이익을 주셨는가?"라고 대답한다. 이는 불교의 사회 포교와 관련된 매우 중요한 의미를 시사한다. 개인의 수행과 이익만을 위한 불교는 불교가 아닌 것이다. 

그런데 왕이 떠나기 전 그 동전은 다시금 튀어 올라 왕에게로 되돌아간다. 1전도 받지 않으려는 청정한 원칙이 박구라에게는 존재했던 것아다. -p319


이 이야기도 왜 좋은지 모르겠다. 깨달음을 얻고 세상에 도움이 되는 가르침을 주는 일이 불교에서 중요하지만, 가끔 너도 나도 가르치는 세상 가운데서 박구라 존자같은 사람이 있어도 좋지 않은가 싶어서 좋아하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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붉은돼지 2022-06-15 09:4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이런 이야기들 너무 좋습니다. 예전에 <죽음의 한 연구>를 읽을 때 내용을 잘 이해하지도 못하면서 너무 흥미가 당겨 열심히 읽었던 기억이 납니다. 일단 장바구니에 ㅎㅎㅎ

별족 2022-06-15 09:51   좋아요 1 | URL
책에는 이 이야기들 말고도 많은 이야기가 있습니다. 재밌어요!

별족 2022-06-16 08:24   좋아요 0 | URL
참 갑자기 저도 이해하지도 못하면서 열심히 읽었던 책이 생각났습니다. 카자르 사전-검색했더니 하자르 사전이라고 있는데-이요!!!
 
착각하는 CEO - 직관의 오류를 깨뜨리는 심리의 모든 것
유정식 지음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1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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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책의 말미에 믿음이 사실을 대체하는 순간, 문명이 멸망한다,고 까지 한다. 


내가 제일 좋아하는 육아서적인 인재시교,에 엄마들의 고민, '어떻게 하면 아이가 공부하게 할 수 있을까요?'나 '어떻게 하면 아이가 게임을 그만 하게 할 수 있을까요?'에 대한 답으로 들려주는 이야기가 있다. 길거리에 쓰레기통을 발로 차고 다니는 한 무리의 불량배들에게 앞으로 쓰레기통을 발로 차면 돈을 주겠다고 하고 돈을 주기 시작하다가, 어느 날 돈을 안 주면 이 사람들이 하지 않게 될 거라는 이야기다. 공부를 하게 하려면 그것에 대한 댓가를 지불하면 안 된다,에 더하여, 무언가를 하기 싫게 하려면 그걸 댓가를 받을 수 있는 무언가로 만들면 된다,는 이야기였다. 인간이라는 기이한 존재에 대한 통찰이거나 댓가라는 것이 가지는 함정에 대한 이야기라서 기억에 남는다. 나는 CEO가 아니라 엄마라서 경영서적도 육아서적으로 읽게 된다. 

늘 어렵고 힘든 방법이, 모호하고 불투명한 방법이 차라리 낫다고 스스로를 다독이면서 아이들을 키우고, 이 책을 통해 그런 사고방식을 강화한다. 내게 경영할 회사는 없지만, 키우는 아이들이 있으니, 나는 아이들에게 이렇게 할 거라고 생각하면서 읽는다.  

내가 회사에서 참 열심히 반대했던 것은 인사이동 마일리지에 대한 거였다. 여러 개의 사업장이 있고 선호하고 선호하지 않는 사업장이 있는 회사에서 비선호 사업장에서 가지는 어떤 박탈감을 해소하기 위해서라면서 인사이동 마일리지 제도를 만들었다. 제도를 도입하려고 했을 때 내가 반대하는 게 더 어려웠던 건, 이 제도 자체를 요구한 것이 늘 신입으로 충원되는 비선호사업소의 젊은 직원들이었다는 거다. 경영적으로 심각한 해악이 있는 제도 도입을 요구하는 젊고 어리석은 직원들을 설득할 말을 애써 찾다가 나를 보고 고개를 돌리면 지금 이대로가 좋아,라는 말 밖에 하지 못하는 순간 같은 거였다. 그러다가 결국 설득하기를 포기했다. 나의 외롭고 애석한 말들이 공정, 이나 정의란 말들 속에 파묻혀서 인사마일리지는 제도가 되었다.

굉장히 오래 걸려 읽었다. 읽으면서 포스트잇을 빡빡하게 붙였는데, 어느 순간, 이걸 어떻게 실행하지, 의문이 들었다. 이 책의 말들을 인용해서 나는 회사가 실행하려는 무언가를 반대할 수 있는데, 돌연 내게 고개를 돌리고 '그래서 어떻게 했으면 좋겠어?'라고 묻는다면 대답을 못하겠다. 게다가 회사가 이 책의 저자가 걱정하는 것만큼 시류에 민감하고 빠르게 변화하는 조직이라기 보다, 전통적이고 거대한 조직이라서 CEO가 아니라 젊고 '개혁적'이라 할 만한 사람들이 그런 해결방식을 들고 나온다. 들고 나와서, 나같은 반대자에게 '그래서 어쩌자고?'로 입을 막는다. 그래서 어쩌자고,의 답은 책 속에 없다. 책 속의 실험들이 나의 조직에 들어맞을 거라는 확신도 없다. 그저 조직을 조직의 문화를 믿음이 사실을 넘어서지 못하도록 그래도 어딘가에 악착같이 매달리는 나이 든 사람이 되겠다고 결심한다. 


똑똑하게 말하는 것과 똑똑한 것은 관계가 없다. 또한 말이 많은 것과 똑똑한 것 사이의 상관관계도 미약하다. 그럼에도 우리는 똑똑하게 말하는 사람과 말이 많은 사람, 그리고 남의 의견을 공격하는 나르시시스트를 높게 평가하고 그들을 리더로 대접하는 우를 자주 범한다.-p180


성과 뿐만 아니라 직원들의 역량도 정규분포에 기반해 상대평가하는 회사들이 많은데, 이 또한 조금만 살펴보면 논리적으로 매우 모순임을 알 수 있다. 직원을 채용할 때 역량이 떨어지는 사람부터 역량이 뛰어난 자까지 정규 분포에 들어맞게 골고루 뽑는 회사는 아마 없을 것이다. 기업의 채용능력에 형편없는 수준이 아니라면 역량이 중간 이상은 되는 직원들을 뽑을 것이고 직원 간 역량의 차이 또한 그다지 크지 않을 것이다. -p200


목표에 집중하면 달성 의욕은 커지지만 동기는 오래가지 못했던 것이다. 이 실험은 과정(경험)에 집중하는 방법이 목표 달성에 돌입하도록 만드는 데는 약점이 있지만 일단 돌입한 후에는 지속적으로 동기를 제공한다는 것을 보여준다.- p241


왜 그럴까? 피시바흐와 최진희는 목표가 사람들에게 돈과 같은 외적 보상처럼 인식된다고 말한다. 외적 보상이 내적 동기를 저하시키는 것처럼 목표도 그렇다는 것이다. 예컨대 '살을 빼겠다'는 목표는 운동을 경험하는 과정이 아니라 운동을 완료한 후에 얻어지는 보상으로 인식된다. -p242


지금까지 살펴봤듯이 돈은 목표 달성의 동기를 부여하는 데 매우 부적절한 도구다. 그런데 애석하게도 돈의 폐해는 여기에서 멈추지 않는다. 많은 기업들은 금전적 보상을 통해 직원들의 자발적인 협력을 기대하지만 사실 돈은 직원들 간의 협력을 깨뜨리는 가장 확실하면서도 가장 간단한 도구다. -p286


애컬로프는 이 결과를 '선물교환'이란 개념으로 설명한다. 경영자와 노동자 사이에는 서로 선물을 교환하는, 보이지 않는 장치가 작동한다는 것이다. 선물 교환의 개념을 풀어서 말하면 이렇다. 노동자는 자신의 업무량에 딱 맞춰 일할 수 있음에도 높은 임금으로 자신을 고용한 경영자에게 추가적인 노력(선물)을 제공하고, 경영자는 노동시장에서 얼마든지 낮은 임금을 주고 노동자를 고용할 수 있지만 추가적인 노력을 기대하고 높은 임금(선물)을 지급한다. 즉 경영자와 노동자 사이의 상호성에 입각하여 선물의 거래가 이뤄진다는 것이다.  

애컬로프의 연구는 직원들이 경영자의 생각보다 이기적이지 않음을 보여준다. 경영자는 노동자들이 정해진 목표에 딱 맞춰서 일하는 데다 '받는 만큼만 일한다'고 간주하지만, 실제로 직원들은 그보다 더 많은 업무를 수행함으로써 조직에 기여할 뿐 아니라 그렇게 하는 것이 당연하다는 것에 암묵적으로 동의한다. 

~ 선물이라는 이타심이 성과급이라는 이기심으로 변질되는 것은 정말 순식간의 일이다. 성과급은 이타적인 직원들이 잘 꾸려가던 회사를 이기심이 충만한 직원들로 가득 채우는 촉매제다. 그냥 둬도 괜찮을 텐데 '성과 극대화'란 욕심 때문에 직원들이 알아서 내놓는 선물을 발로 걷어차버리는 오류를 범하고 있지는 않은가? 성과주의가 진정 나아가야 할 방향은 직원들의 이타심을 보호하고 장려하는 문화인데 말이다. -p304~305


당신의 회사는 내부 경쟁을 권장하며 성과창출을 지상목표로 설정했는가? 그렇다면 성과를 창출하는 데 소요되는, 눈에 보이지 않는 비용을 생각해보았는가? 내부 경쟁은 도깨비 방망이가 아니다. 경쟁은 고비용의 경영방식임을 깨닫고 소모적인 내부 경쟁을 야기하는 제도와 문화를 걷어내는 일에 우선순위를 두어야 할 것이다. 

그렇다면 경쟁은 무엇으로 대체해야 할까? 동물과 인간은 본성의 원류를 공유하고 있기에 진화심리학 관점에서 본성이 우리에게 어떤 교훈을 이야기하는지 알아봐야 한다. 다행히 그 교훈은 다음의 한마디로 정리된다. "경쟁이 아니라 협력이다." -p319


사람들의 생각이 통계적인 모순임을 꼬집는 워비곤 호수 효과는 자신이 일을 잘한다고 말하는 직원들의 대부분이 실제로는 그렇지 않다는 점을 일깨운다. 따라서 "일 잘하는 사람에게 높은 보상을 주는 것이 당연하다."라는 직원들의 말은 "나는 남들보다 능력과 성과가 뛰어나기 때문에 '내게'높은 연봉을 주는 것이 당연하다."라는 의미일 가능성이 크다. 차등 보상을 선호한다고 말하는 직원에게 "보상을 차등화하면 당신이 남들보다 덜 받을지도 모르는데 그래도 괜찮겠는가?"라고 물어보면 잠시 생각하다가 "그래도 괜찮다."라고 답한다. 하지만 진짜로 괜찮기 때문이 아니라 자신이 남들보다 연봉을 덜 받을 가능성이 적고 다 많이 받을 가능성은 크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그렇게 답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차등 보상을 선호한다고 말하는 직원들의 의견을 액면 그대로 받아들여서는 곤란하다. 차등 보상을 실제로 시행하면 오히려 예전보다 '평가지표가 객관적이지 못하다', '평가가 불투명하다'는 식의 불만이 더욱 가중된다는 사실을 현장에서 접하곤 한다. 성공은 자신의 능력 덕이고 실패는 남의 탓이라고 보는 경향 때문인지 상사는 직원들로부터 필요 이상의 비난을 받는다. ~ 이처럼 차등 보상은 상사와 직원 양측에게 반목과 감정적 스트레스를 조장한다.

이러한 폐해의 원인 중 하나는 '나는 능력이 남들보다 우수하니까 적게 보상 받을 리가 없어. 오히려 많이 받아야 해. 다른 회사들도 다 그렇게 하잖아.'라고 생각하는 직원들이 차등 보상을 요구하고 인사 부서가 그에 동조했기 때문이다. 듣기 불편하겠지만 이러한 지적은 사실이므로 직시해야 한다. 직원들은 자신이 높은 연봉을 받을 것이라는 기대심 때문에, 혹은 능력이 떨어지는 다른 직원들이 능력 있는 자신과 비슷한 보상을 받는 것이 부당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차등 보상을 도입하라고 목소리를 높이는 것은 아닐까? ~ 때로는 직원들의 의견을 듣지 않고 시류를 따르지 않는 용기도 발휘해야 하는 것이다.-p346~347


최선의 방법은 평가의 불완전성을 평가자와 직원이 서로 인정하는 것이다. 객관적 평가가 가능할 것이라는 비현실적인 꿈을 꾸는 것보다, 평가는 본질적으로 불완전한 사람들이 행하는 것이기에 완벽할 수 없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서로 한발 물러서서 평가결과를 되짚어보며 잘못된 점을 수정해가는 것이 평가의 오류를 최소화하는 최선의 방법이다. 

물론 그렇게 한다고 해서 평가결과에 대한 직원들의 불만까지 없앨 수는 없다. 사람들은 자기 자신이 최고인 줄 알고, 항상 남과 나를 비교하는 까닭이다. -p377


사람들은 돈보다 가치 있는 일을 갈구한다. 의미 있는 일은 직원들에게 활기 넘치는 건강한 삶을 보장할 뿐만 아니라 나아가 조직에게는 생산성 향상과 혁신의 에너지를 선사한다. -p389


밀크만이 수행한 일련의 실험을 통해 알 수 있는 사실은 불안과 불확실성이 사람들에게 의지력의 고갈 상태를 유발한다는 점이다. 룸메이트가 어떤 피자를 사가지고 올지 모르는 것처럼 아주 사소한 불확실성조차 의지력을 감소시켜 장기적이고 혁신적인 대안보다는 즉각적이고 이로움이 덜한 보수적인 대안으로 빠져들게 만든다는 것이다. 이는 불확실성이 시시각각 변하는 환경 속에서 조직이 장기적으로 바람직하지 못한 대안을 선택할 가능성이 크다는 뜻이다. -p433~p434 


이 실험 역시 아무런 지식이 없는 상태에서는 분석을 해봤자 더 나은 선택을 하지 못할 뿐더러 오히려 나쁜 선택을 하게 됨을 일러준다. 

윌슨의 연구는 분석보다 직관이 우수하다는 인상을 우리에게 주지만 이것을 액면 그대로 받아들이면 곤란하다. '좋은 의사결정에 직관이 유리하냐, 분석이 유리하냐?'라는 질문은 간단히 답할 문제가 아니기 때문이다. 하지만 유능한 의사결정자가 되려면 자신의 직관을 믿고 따라야 할 때와, 분석을 통해 좀 더 많은 정보에 접근해야 할 때를 잘 구분하는 지혜가 필요하다는 점만은 꼭 알아두자. -p478~479


소칼이 장난을 친 이유는 인문학자들이 과학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면서 무조건 비판만 가한다는 점을 놀리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이는 한 번 읽어서는 이해되지 않는 말이라 해도 권위적으로 보이게끔 포장하면 쉽게 속아 넘어간다는 점을 보여준 또 하나의 사례였다. 

사람들은 권위에 약하다. 침팬지들이 우두머리에 복종하고 충성함으로써 생존의 안녕을 보장받으려 하듯 인간의 DNA에도 그런 본능이 강하게 남아있다. 권위를 나타내는 행동이나 말투, 눈빛, 분위기, 남성성을 강하게 풍기는 냄새 등을 통해 후광 효과를 연출하면 대개 꼼짝없이 권위에 굴종하려 한다. 사람들은 뭔가 의심스럽다 해도 전문가가 보는 앞에서는 그의 심기를 건드릴 만한 언행을 하지 않으려 하고 자신이 잘 알지 못한다는 사실을 겉으로 드러내려 하지도 않는다. 알지도 못하면서 우스꽝스럽게 "아, 정말 훌륭한 내용이군요."라며 맞장구를 치는 까닭은 다른 사람에게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으로 인식되어 '잘 아는 무리'로부터 축출되기를 원하지 않기 때문이다. 

언어학자이자 사회비판가인 노엄 촘스키는 "쉽고 간단한 말로 표현하면 전문가들은 유명해질 수 없고 일자리를 얻을 수도 없다. 그렇게 하면 사람들이 전문가의 말을 존중하지 않는다. 여기에 지식인들의 고민이 있다."라고 말한 바 있다. 전문가들이 쉽게 말해주길 원하면서도 동시에 쉽게 말하는 전문가를 신뢰하지 않는다는, 사람들의 이중성을 꼬집는 말이다. -p481~482


왜 이런 결과가 나타난 걸까? 웨이크와 귀노트는 세 번째 실험을 통해, 권력을 가진 사람은 예상 결과물에 지나치게 집중하는 '주의 초점'때문에 예상을 벗어나게 만들 잠재적 요소에 관한 정보를 충분히 감안하지 못한다는 점을 발견했다. 권력을 가진 자는 계획을 달성할 수 있다는 믿음이 지나친 나머지 근거 없는 낙관주의적 착각에 빠져 실행 중에 발생할 돌발변수를 무시할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다. -p5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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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 X다 - 부디 당신은 O를 골라요
김별로 지음 / 포르체 / 202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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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에 걸린 남자가 쓴 에세이다. 

내가 아는 사람이 암에 걸렸는데, 이 남자처럼 행동한다면 나는 어떻게 할까. 

아니면, 내가 아는 사람이 이 남자처럼 인생에서 고르지 말라는 것들만 골라서 결국 암에 걸렸다면 나는 어떻게 생각할까. 

내가 이해하지 못하는 선택을, 세상 사람 모두가 한 마디씩 입을 떼는 선택을 하는 사람이라고 해도 다 나름의 이유가 있다. 

가족력이 있는데, 언제나 모범적인 선택을 하는 형을 보면서 자신은 삐딱한 선택들을 해 왔고, 그 형이 모범적인 선택을 하고도 암에 걸리고, 모든 권하는 치료를 받고도 떠나는 걸 본다면 그건 그대로, 자신의 삐딱한 선택에 대한 나름의 이유가 될 것이다. 

암에 걸리기 전에 한 선택들에도, 암에 걸리고 난 다음의 선택들에도, 떠나는 연인을 잡지 못하는 것에도, 그저 나름의 이유가 있다. 

인생은 미지수고, 모든 순간의 선택들이 나의 인생이고, 내가 한 선택들이 어떤 결과가 될 지는 알 수가 없다. 모르는 채로 살아가는 거고, 모르는 채로 죽게 될 거다. 살아있는 순간에도, 죽은 다음에도, 가족들과 친구들과 사랑하는 사람들과 살아온 순간들의 모든 인연들은 죽는다고 끊어지는 것도 아니고, 여기 책으로 자기 이야기를 풀어놓은 사람은 책으로 만난 나같은 인연까지도 남기게 되는 거다. 인생을 모른다는 것을 불안의 근거로 삼기보다, 그저 받아들여야 하는 거라는 생각을 한다. 알 수 있는 건, 지금 내가 어떤 선택을 하는가 뿐이고, 그 다음은 그 다음 닥친 다음에야 생각해야 하는 거다. 그대로 내 삶을 받아들이고, 다른 사람을 받아들이고, 다른 사람의 선택을 받아들이는 수 밖에 없다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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