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트] 레슨 인 케미스트리 1~2 - 전2권
보니 가머스 지음, 심연희 옮김 / 다산책방 / 202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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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은 강한 사람을 좋아한다. 육체적으로, 정신적으로 강한 사람. 

사람들은 이상적인 사랑을 상상한다. 완전히 이해하는 서로에 대한 환상. 

사람들은 이공계 사람들에 대한 환상이 있다. 삶을 단순하게 받아들일 거라는 환상.

이야기를 읽기 시작하면서, 소설가의 이력에 대해 훑었다. 60년대 연구소의 여자 화학자에 대한 이야기를 쓴 사람은 화학자인가, 싶어 살폈다. 소설을 쓸 때, 2020년에 65세가 된 작가는 광고업계에서 일했다. 

아가사 크리스티의 '두번째 봄'을 읽었을 때, 책 속에서 가정주부에서 소설가로 두번째 인생을 시작하는 주인공에게 편집자 쯤 되는 사람이 하는 조언 생각이 났다. 자신의 소설이 좀 더 현실감 있어야 할 거 같아서 조사를 많이 한 다음 쓴 조금은 무미해진 이야기에 대해 편집자는 환상 속 이야기가 더 사람들을 끌어당길 수 있다고 했던가. 이야기일 뿐이라고 생각하면서 읽었다. 특정하자면, 지금 이삼십대 여자들이 좋아할 만한 이야기를 만든 거라고 생각하면서 읽었다. 

엘리자베스 조트는 독학으로 대학원에 진학해서 석사를 마치고, 박사과정에 들어가기 전 지도교수에게 강간당하고 학위과정을 하차했다. 다행히 석사로 연구소에 화학자로 취직했는데 아무도 그녀를 화학자로 받아들이지 않는다. 그녀는 연구소의 스타 연구자와 사랑에 빠지고, 동거하면서도 결혼이나 아이를 원하지 않는다. 결혼하면 남편의 성을 써야 하는, 여성의 결혼 전 성과를 무화시키는 어떤 제도의 알력이 드러나는 이야기다. 한국인 여성이 이입하기에는 좀 무리가 있다. 결혼이나 아이를 원하지 않았는데, 연인은 달리기를 하다가 차에 치어 숨지고, 그녀는 임신으로 해고당한다. 부엌을 실험실로 개조하고, 딸아이를 키운다. 

엘리자베스는 돈을 목적으로 삼은 설교자의 딸로 아버지는 교도소에, 어머니는 멕시코에 살고 있다. 가족 내 의지처였던 오빠는 자살했다. 캐빈은 입양된 아이였다가 사고로 부모를 잃고, 고모손에 자라다가 고모마저 죽어서 보육원에서 자랐다. 사랑의 환상을 극대화하기 위해 둘은 서로를 만나기 전에 온통 적대적인 세상만을 마주한다. 그래도 캐빈은 학문적으로 인정받은 남자였고, 좋은 양부모에 대한 추억을 가지고 결혼을 원했다. 엘리자베스의 의사를 존중하지 못한 것처럼 보였기 때문에 아마도 그 남자가 살아남았다면 둘은 헤어졌을 것이다. 

강간당하고도 영향을 받지 않을 수 있는 강인한 엘리자베스를 보고 싶어할 것이다. 

사랑에서 우위를 점하고는 결혼을 거부하는 엘리자베스에 열광할 것이다. 

죽은 연인의 남겨진 아이를 낳기로 선택하는 엘리자베스를 또 그렇게 좋아할 것이다. 

그 와중에 학문적 성취에 대한 자기 확신을 가지고 연구하면서도 성과를 빼앗기는 것에 분개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게 부당한 일을 겪고도 대중적으로 다른 방식으로 유명해진다는 것에 기분좋을 것이다. 

그녀의 고난들 가운데, 그녀 옆에 서는 이웃의 가정폭력 피해여성이나, 연구소의 여성에 기분좋은 감정을 느낄 수도 있을 것이다. 

이야기이기 때문에, 결국 타인의 이야기이기 때문에, 소설 속의 삶을 이해하는 것은 어렵다. 고난이나 역경을 슬픔에 쓰러지는 사람을 보고 싶지 않아하기 때문에, 강한 사람을 원하기 때문에 이야기는 그저 드라마처럼 드러난다. 살아남았다는 것은 어쩌면 인생의 고난에 넘어지지 않았다는 것이고 이렇게 단순하게 밖에 서술될 수 없는 것은 아닌가, 생각하다가도, 역시 소설의 의미는 무엇인가,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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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면 당신이 원했던 괴담실록 - 유튜브 채널 괴담실록의 기묘한 조선환담 어쩌면 당신이 원했던 시리즈
괴담실록 지음 / 북스고 / 202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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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미나게 읽었다. 유튜브도 볼까 싶다. 

전설의 고향이 생각나는 이야기들인데, 역사 속의 인물들과 연결된다. 

그래서 더 신기하다며 재미있게 읽었다. 

사람들은 아무래도 이해할 수 없는 상황을 만나면, 이야기를 만든다. 

복을 받을 리 없는 사람이 왜 복을 받을까.

왜 그 천하의 명장이 그런 바보같은 전술을 택했을까. 

어떻게 그 비루한 왕족은 왕의 아비가 될 수 있었을까. 

같은 의문들이 이야기가 되었다. 

거인과 이무기, 지네괴물, 용, 귀신을 부리는 사람도, 사람과 다를 바 없는 귀신이 등장하는 이야기들은 어떤 시대상을 담고 있을까. 

어지러운 시대상과 지나온 역사 가운데,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말하는 듯한 이야기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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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Book] 빠빠라기
투이아비 지음, 에리히 쇼이어만 엮음, 유혜자 옮김, 이일영 그림 / 가교(가교출판) / 2012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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티비를 보는데, '주접이 풍년'이었던가, 임창정이 나오고, 임창정의 팬클럽 '빠빠라기'가 나왔다. 빠빠라기,가 뭐지 싶어서 검색을 하고 '하늘을 찢고 나온 사람'이라는 원주민 말이라는데, 책도 검색에 걸려서 읽었다. 

태평양의 섬에 사는 원주민이 서양을 여행하고, 자신의 동족들에게 '경계하라'는 말을 하는 책이다. 자신들의 언어에 없는 말들로 서양인의 삶과 문명을 설명하기 위해 노력한다. 몸을 감추는 서구의 문명에 대한 의아함이 가득하고, 절대로 그들처럼 되어선 안 된다는 호소문이다. 

읽으면서, 그럴 수 있다고 생각하면서도, 무언가 불쌍히 여기는 마음이 없는 것 같았다. 

짧은 여행은 그저 기이하다,고 할 법하지만, 추운 겨울을 겪고 나면 좀 이해할 수도 있지 않았을까, 

뭐, 나도 몸을 죄악시하는 문명은 도대체 이해하기 어렵지만, 태평양 한가운데 섬보다는 춥고 먹을 것도 없는데 사람은 많으니, 벽돌로 궤짝을 만들어 층층이 쌓아놓고 걸어들어가는 게 아닌가, 싶은 거다.

내 생각인 것처럼 말하지만 나의 많은 부분이 내가 살고 있는 상황들 때문이 아닌가. 추운 겨울이 있으니, 두꺼운 겨울옷을 어디 잘 보관해둬야 하고, 곡식이던 돈이던 모아둬야 하는 게 아닌가. 

서구인의 자신들의 삶이 문명이고, 무언가 대단한 양 주장하는 것도 꼴 사납고, 원주민이 자신들의 삶이 아름답고 대단하다고 말하는 것도 듣기 괴롭다. 

서구인의 문제는 자기들만 그렇게 사는 게 아니라 남들도 그렇게 살라고 못 살게 군다는 거기는 하다. 게다가, 몸을 죄악시하는 태도로 자연을 대상화시키고, 매연을 쓰레기를 참으로 열심히 내다놓기도 했지. 자연이 손상당하면, 문명화되지 않은 방식의 삶이 또 위협당한다. 결국 문명화의 시도들이 성공했다는 것은 괴롭다. 우월한 게 아니라, 적응한 거였는데, 잘난 체 했더니 속는다. 사람이란 그렇게 팔랑거리는 존재인 건가. 

다른 시공간을 사는 사람들은 이상해 보일 수 밖에 없다. 

아마 이 책이 유럽에 소개된 1920년대에는 문명인의 높은 자부심 가운데, 야만인의 자부심이 이상했을 것이고, 한국에 소개된 1980년대에는 유럽을 쫓아 내달리는 스스로의 열망 가운데 이상했을 거 같다. 그 시대에 필요했던 작용에 대한 반작용,이었겠지만 시간이 지나 지금도 유효한가, 질문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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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Book] 내가 틀릴 수도 있습니다 - 숲속의 현자가 전하는 마지막 인생 수업
비욘 나티코 린데블라드 지음, 토마스 산체스 그림, 박미경 옮김 / 다산초당 / 202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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뭔가, 동서양의 차이는 뭘까, 이런 생각을 계속 하면서 서양인 저자의 책을 보게 된다. 동양인이고 불교문화권 한자문화권에 살면서도 이런 책이 또 좋은 것은, 이미 많이 서구화되었기 때문인 것도 같다. 스웨덴에서 경제를 공부하고 기업의 임원이 되려는 순간에 일을 그만두고 숲속 승려로 수련하였다. 오랜 수련을 마치고 다시 고국으로 돌아가 승려가 아닌 삶을 살았다. 

어떤 이야기를 듣게 되는가, 뭐 그런 생각을 했다. 드라마틱한 변화라는 게 모두 다 선망하는 위치였기 때문에 더 많이 듣는다. 왕자였으면서도 그 모든 걸 버린 석가모니 부처에게 배움을 청한다. 현대라면 대기업 임원을 목전에 두고도 그 모든 걸 버렸다. 도대체 왜?라는 의구심으로 귀를 기울이게 된다. 인간이란 그런 존재인가, 싶다. 깨달음의 말들은 불교의 말들이라 그대로 좋다. 


17년 동안 깨달음을 얻고자 수행에 매진한 결과, 머릿속에 떠오른 생각을 다 믿지는 않게 되었습니다. 그게 제가 얻은 초능력입니다. - 4%

펀게시판,에서 문화권마다 특정한 정신병이 있다는 이야기를 본 적이 있다. 문화권의 특성 때문에 정신병의 양태가 달라진다. 무병이나 신병을 부르는 말이 서구문화에 있을까.  

기독교문화권은 결벽적인 신 때문에, 우리문화에서는 무병이나 신병이라고 부르는 것을 악마,라고 부르는 게 아닌가,라고도 생각한다. 


자신의 사고 과정을 한 발짝 떨어져서 바라볼 줄 알게 되고 다른 사람들도 자기와 똑같은 처지에 놓여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면, 우리를 갈라놓는 것보다 우리가 공유하는 것을 더 쉽게 알아차릴 수 있습니다. 우리가 어떤 사람이든 어디에서 왔든 어떤 이력을 지녔든 간에 우리의 내면이 작용하는 방식은 대체로 닮았습니다. 그 사실을 깊이 받아들이고 잊지 않는다면, 더는 모든 것을 완벽하게 파악한 양 시늉하느라 기진맥진하지 않아도 됩니다. 그 대신 다른 사람과 서로 돕고, 나누고, 진정으로 만날 수 있게 됩니다. 인공위성처럼 고독하게 홀로 부유하지 않는 대신, 다른 사람과 치열하게 경쟁하는 대신, 서로의 존재가 위안이 되는 관계를 맺을 수 있습니다.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고 서로 배우며 살아갈 수 있습니다. 남들의 아름답고 뛰어난 점을 발견하고도 그들만 못하다는 내면의 속삭임에 더는 시달리지 않을 수 있습니다. - 17%

서양의 어떤 태도가 함께 살아가는 것을 배우지 못하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어서 이 서양인 스님이 공동체에 대해 배우는 과정은 더 극적인 것도 같다. 요새 나를 사로잡은 질문은 왜 미국은 총기규제를 못하나,이다. 코로나에 대응하는 서구선진국의 어떤 모습-마스크 규제를 반대하는 대규모 집회 같은 것-이나, 아이들이 죽어나가는 데도 총기규제를 하지 못하는 미국의 모습은 함께 살아가는 걸 어렵게 하는 문화의 문제라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사실상 아무런 제지도 받지 않은 채 쉼 없이 떠들고 울먹이고 비난하고 비판하고 독설을 날리고 의문을 제기하고 불평을 일삼는 내 생각과 홀로 마주하는 것, 그것을 참을 수 없었습니다. 제가 아무리 진정시키려 애써도 제 마음은 끊임없이 인신공격과 자기 회의로 반격을 가했습니다.- 18%


"저는 숲속 승려가 되고 싶어서 모든 걸 뒤로하고 왔습니다."- 22%

이 말은 특이하게 결핍이 드러나서 옮겨 놓는다. '모든 걸 뒤로 하고'가 필요한 말이었을까,라고 생각했다. 


"갈등의 싹이 트려고 할 때, 누군가와 맞서게 될 때, 이 주문을 마음 속으로 세 번만 반복하세요. 어떤 언어로든 진심으로 세 번만 되뇐다면, 여러분의 근심은 여름날 아침 풀밭에 맺힌 이슬처럼 사라질 것입니다."

우리는 모두 스님의 손바닥 안에 있었지요. 잠시 침묵이 흘렀습니다. 다들 숨 죽이고 스님의 다음 말을 기다렸지요. 스님을 몸을 살짝 내밀더니 극적인 효과를 내려고 한 번 더 뜸을 들인 뒤 입을 열었습니다. 

"자, 다들 그 주문이 뭔지 궁금하시죠? 바로 알려드리겠습니다. 

내가 틀릴 수 있습니다. 

내가 틀릴 수 있습니다.

내가 틀릴 수 있습니다." - 40%

이걸 읽고 딸아이에게 알려주려고, 먼저 스님이 꺼낸 도입부를 흉내냈다. 궁금하지?라고 물었더니, 안 궁금하다고, 화나면 싸우고, 지면 지고, 이기면 기분좋을 거라고 했다. 이긴다고 기분이 좋다니, 조금 기다렸다가 가르쳐줬다. 


사람들이 우르르 나가자 결국 아잔 수시토 스님과 저만 남았습니다. 그 순간 제 모습은 아마 언짢음과 짜증으로 가득했을 겁니다. 그때 아잔 수시토 스님이 저를 온화하게 쳐다보면서 말했습니다. "나티코, 나티코. 혼돈은 자네를 뒤흔들지 모르지만 질서는 자네를 죽일 수 있다네." 

그렇습니다. 저는 또다시 주먹을 너무 세게 쥐었던 것입니다. 세상이 마땅히 어떤 모습이어야 하는지 다 안다고 상상한 것이지요. 그런데 세상의 모습이 제 생각과 맞지 않자 울컥한 것입니다. '세상이 이렇게 했어야 한다'는 생각은 늘 저를 작고 어리석고 외롭게 만듭니다.- 51%

이건 책을 덮고, 기록하기 전에 밑줄을 빠뜨린 거 같아서 열심히 찾았다. 어른이 되는 건 혼돈을 버티는 거라고 생각하고 있다. 불확실성이나 혼돈에 화를 내는 것이 쓸모없다는 걸 깨닫는 게, 세상에 확실한 건 없다는 걸 깨닫는 게 매일매일 살아가는 중의 깨달음이라서, 질서가 필요한 순간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 말을 남겨두고 싶었다. 


조금 덜 통제하고 더 신뢰하길 바랍니다. 뭐든 다 알아야 한다는 압박을 조금 덜 느끼고, 삶을 있는 그대로 더 받아들이길 바랍니다. 그래야 우리 모두에게 훨씬 더 좋은 세상이 되니까요. 우리가 원하는 방식대로 돌아가지 않는 일을 끊임없이 걱정하면서 살지 않아도 괜찮습니다. 우리 자신을 원래보다 더 작고 초라하게 만들 필요 또한 없지요. 우리가 선택할 수 있습니다. 목을 옥죄며 살 것입니까, 아니면 넓은 마음으로 인생을 포용하며 살 것입니까? - 52%


우리가 사는 우주는 모든 것이 임의로 이루어지는 차갑고 적대적인 곳이 아닙니다. 오히려 정반대입니다. 우리가 세상으로 내보내는 것은 결국 우리에게 고스란히 돌아오지요. - 75%


태국에는 멋진 속담이 하나 전해 내려옵니다. '부처의 등을 도금한다'라는 말이지요. 태국의 신도들이 정기적으로 절을 찾아 참선한 다음 금종이와 촛불, 향을 보시하는 전통으로부터 유래한 것입니다. 태국의 불상들은 대개 이 금종이들로 금박을 입히거든요. 이 속담은 자기의 선행을 다른 이들이 알아주지 않아도 상관없다는 뜻입니다. 아무도 보지 못한 불상의 등에 금박을 입힌다는 생각에는 그야말로 멋진 구석이 있습니다. - 83% 


이때 다른 누군가가 아는지 모르는지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자기 자신만은 알 테니까요. 우리는 늘 자기 자신과 함께 살아갈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우리의 행동과 기억은 우리가 앉아 있는 목욕물과도 같습니다.  - 84%


세상은 세상 그 자체의 모습으로서 존재하지 않지요. 세상은 우리의 모습으로서 존재합니다. 그러니 그 안에서 보고 싶은 모습이 있다면 우리가 그런 존재가 되어야 합니다.  - 85%


"화가 나긴 하지만, 그 화는 아무 것도 차지하지 못합니다."라는 뜻이지요. 

이 이야기는 우리의 내면이 떠오르는 모든 감정을 품을 만큼 매우 깊고 넓을 때 삶이 어떤 모습일지 보여줍니다. 그렇다고 어둡고 부정적인 감정을 모두 피하라는 말이 아닙니다. 다만 그런 감정이 곧 우리 자신이라고 믿지 않길 바랍니다. 그것이 내면을 전부 차지하고 물들이게 두지 말길 바랍니다. 그런다면 분노나 억울함도, 시기와 미움도 더는 우리를 해치지 못하고 곧 후회할 일을 저지르게 하지도 못합니다. - 92%


왜 우리 문화권에서는 죽음과 싸우고, 죽음에 저항하고, 죽음을 부정하는 것을 영웅적이라고 묘사할까요? 죽음은 왜 늘 무찔러야 할 적이나 모욕으로, 실패로 그려질까요? 저는 죽음을 삶의 반대라고 생각하고 싶지 않습니다. 오히려 탄생의 반대에 더 가깝지요. 증명할 순 없지만, 저는 늘 죽음 저편에 뭔가가 있다는 확신을 느껴왔습니다. 때로는 뭔가 경이로운 모험이 저를 기다린다는 느낌마저 들지요. - 95%

살아가는 게 혼돈이라고 생각하는 이유는 차례차례 논리를 쌓아서 계속 살아갈 동인을 찾을 수 없다는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논리로는 삶을 설명할 수 없다. 삶이 삶이기 위해서는 죽음이 필요하다,고 생각하는데, 자살을 권장할 수 없다고 생각하는 내 마음의 어떤 태도는 논리적으로 설명이 안 된다.-그런데, 어디선가 곡기를 끊는, 행위도 자살로 묘사하는 걸 보고 의아한 기분이 되기는 했다. 나는 지금의 연명치료는 원하지 않는다.- 능동이기보다 수동인 삶이라는 것을 받아들이는 어떤 마음의 노력 가운데, 죽음이나 질병을 격리시켜서 죽음이나 질병을 없앨 수 있다는 식의 은유적 믿음이 현대에 존재한다는 면에서 이건 서구문화권만의 문제는 아니라고도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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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Book] 2022 제5회 한국과학문학상 수상작품집 - 루나 + 블랙박스와의 인터뷰 + 옛날 옛적 판교에서 + 책이 된 남자 + 신께서는 아이들 + 후루룩 쩝접 맛있는
서윤빈 외 지음 / 허블 / 202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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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북으로 받아서 읽었다. 순서대로 읽으려다가 관심이 가는 대로 목차에서 골라 읽었다. 

루나를 읽고, 후루룩 쩝쩝 맛있는,을 읽고, 책이 된 남자,를 읽은 다음 블랙박스와의 인터뷰, 옛날 옛적 판교에서는 순으로 읽었다. 후루룩 쩝쩝 맛있는,까지는 작가의 말까지 읽었는데, 다음에는 뭐 굳이,라면서 읽지 않았다. 이렇게 다 읽었다고 김보영님 심사평을 읽었는데, 안 읽은 소설 이야기가 있는 거다. 뭐지 싶어서 다시 목차를 보고, 인터넷 서점에서 책 검색해서는 그 쯤 되는 페이지를 열어서 겨우 '신께서는 아이들을'을 읽었다.- 이북 목차에 빠졌다고 백자평에 올리고 나서, 알라딘 고객센터에서 출판사에 연락해서 수정해주셨다. 지금은 목차에 나오더라. 알라딘에서 받아 본 이북이 아닌데-_-;;; 무척 감사했다.- 나의 질문은 아닌 이야기들이었다.


루나,는 설정 자체가 신기했다. 바닷 속의 해산물을 채취하는 해녀와 같은 묘사로 우주에서 광물을 채취하는 공동체에 대해 묘사한다. 


후루룩 쩝쩝 맛있는,은 인간이 동물을 먹는 것의 역지사지 같이, 외계생명체가 인간을 먹는 것에 대한 이야기다. 무언가 그런 이야기기는 했지만, 뭔가 개그처럼 생각하면서 이야기를 읽고는, 작가의 말에 빈정이 상해서 다음부터는 작가의 말을 설렁설렁 읽었다. 


책이 된 남자,는 배경도 이야기도 여기는 아니다. 이야기는 두 가지 층위에서 굴러간다. 중세의 책 사냥꾼이 수도원에서 책을 필사하고, 그 책이 무엇인지 알게 된다. 뇌가 절편처럼 썰려서는 책 속에 갇힌 남자와 책을 통해 대화하면서 그 남자가 책이 된 과정에 대한 이야기도 전개된다. 테드 창의 '상인과 연금술사의 문' 생각이 많이 났다. 아예 모르는 세상 이야기라, 옛날 이야기 읽는 기분으로 읽을 수 있다. 


블랙박스와의 인터뷰,는 전뇌화라는 설정으로 우주 식민지에서의 삶에 대한 이야기다. 미래의 인간은 이렇게까지 죽음이나 이별을 견디지 못할 것인가, 생각했다. 나는 인간이란 전인적 존재를  믿고 있어서 전뇌화한 존재들에 대한 묘사가 싫다. 뇌만이 살아있으면 나란 존재는 살아있다는 식의 어떤 묘사, 유심칩을 갈아끼우 듯이, 온 몸을 대체하는 미래가 무언가 싫어서 계속 화를 내고 있다. 타인과의 관계는 어디에 있는가, 싶은 이런 기술의 개발들은 누구에게 필요한가,라고 질문하기도 한다.


옛날옛적 판교에서는,은 뭐지 싶다. 


신께서는 아이들을,에 대해서도 뭐지, 싶었다. 작가의 말을 스치듯이 읽고는 아마도, 아이들에게는 심판이 기다리는 어른들의 저승말고 다른 저승을 주고 싶었나보다, 생각했다. 과학소설이라기 보다 환상소설이고 나는 무언가 내가 공격받는 인상을 받는다.  


내가 이야기의 쓸모에 관심이 많은 사람이라서, 이야기를 쓰는 사람이 마음 속에 품은 질문은 뭔지 열심히 찾는 사람이라서, 모든 이야기가 하고 싶은 말이 뭔지 모르겠어, 에 더하여 특별히 내가 싫어하는 주제들이라 그랬다. 블랙박스와의 인터뷰,나 후루룩 쩝쩝 맛있는,은 잘 읽히고 주제가 뭔지도 알겠는데 싫은 이야기였다. 죽음을 받아들이지 못해서 영생을 추구하는 것은 끔찍하다고 생각하고 있다. 후루룩 쩝쩝 맛있는,은 이야기에서는 노골적으로 드러난다고 생각하지 않았는데, 작가의 말이 노골적이라 싫었다. 그 이야기는 우주 유머 같았다. 혈관만 교체해주겠다는 꽤 괜찮은 조건이 아닌가, 좀 키들거렸었거든. 그런데, 작가는 동물권에 대해서 말하면서 바꾸자고 덧붙였다. 아, 이야기는 그런 인상을 주지 않는데, 자신은 그런 의미가 있다고 생각한다고 왜 쓰는 거야, 라는 생각이 들었다. 

똑같이 영생,에 대한 이야기인데도 왜 나는 '책이 된 남자'에는 싫다는 감상이 덜할까 생각했다. 아마도 후회에 대한 말이라서 그런 걸 수도 있고, 배경이 이국적이라 그런 걸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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