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반 무 많이 서해문집 청소년문학 16
김소연 지음 / 서해문집 / 2021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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먹는 일은 중요하다. 그런데, 왜 '다 먹고 살자고 하는 일인데'라는 말은 어렸을 때 그렇게 하찮게 들렸던 걸까. 상황조차 따뜻한 어른들의 말인데, 끼니 거르지 말고 밥 먹고 합시다, 같은 말인데, 왜 그렇게 하찮게 생각했던 걸까. 어렸을 때는 뭔가 동물적인 일들, 생존을 위해 필수적인 일들을 하찮게 생각하는 태도가 있는 게 아니었을까. 그것보다 중한 게 있지 않을까,라고 생각했던 걸까. 시간을 건너고 난 지금, 먹고 사는 거 보다 중한 게 뭐가 있는지 대답하지 못하는 어른이 되어서, 그 마음을 이해하게 되는 거다. 

우리 역사의 순간들이 다섯가지 음식과 얽혀서 짧은 이야기들로 묶였다. 십대의 소년과 소녀가 겪는 음식과 관련된 순간들이다. 

6.25 피난길에 고구마 한 보퉁이, 전쟁 후 의정부에서 먹는 유엔탕(나중에 부대찌개가 된다), 평화시장 여공가족의 떡라면, 87 민주항쟁 가운데 떡볶이, 98년 IMF 시절의 치킨. 

커다란 역사를 겪어내는 한 사람, 한 사람이 강하고 단단하게 살아남는 이야기들이다. 

떡볶이와 얽힌 이야기는 좀 더 아팠는데, 함께 겪는 고난,에 대한 이야기로 읽히기보다 대립의 이야기여서 그런 것도 같다.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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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Book] 돌봄과 작업 - 나를 잃지 않고 엄마가 되려는 여자들 돌봄과 작업 1
정서경 외 지음 / 돌고래 / 202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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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에게 "왜 경험없는 사람 이야기를 들어?" 라고, 질문한 적이 있다. 

나는 아이를 이미 키운 나이 든 아주머니 말들을 들었다. 하나보다 넷을 키운 엄마 말을 들었다. 3개월의 아기는 낯을 안 가려서 맡기기 좋다고, 1년을 키운 아기는 엄마와 떨어지려고 하지 않으니 사람도 구하기 힘들다,는 말을 듣고 3개월 휴가만 내고 출근했다. 

친구에게 "왜 출산이나 육아가 이런 거라고 말해주지 않았어?"라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나는 내 엄마의 태도를 보고 배웠기 때문에, 먼저 아이낳은 나의 친구들 말에 내가 얼마나 무신경했는지 기억하기 때문에 말할 수 없었다. 어떤 괴로움이든 내가 겪어야 할 문제고, 내 경험의 보편성은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말할 수 없었다. 

직장의 후배에게 "선배는 말하지 마세요"라는 말을 들은 적도 있다. 

나는 내가 아이를 간절히 원했던 거라서, 출산 경험을 과장할 수도 없었고, 이미 지나간 일들이라 모든 순간들이 감사했다. 출산의 순간에는 항상 죽을 수도 있다면서 마음을 다 잡지만, 죽지 않았고 둘 다 건강하니, 그걸로 충분하다,였다. 후배는, 남자도 함께 듣는 출산 고생담을 엄마된 자가 저렇게 단순하게 묘사하는 걸 참지 못하는 거 같았다. 


젊은 엄마들이 만드는 책을 언니가 선물해서 받아 읽고 나랑 얼마나 다른지 쓴 적이 있다. 

(https://blog.aladin.co.kr/hahayo/11312880)


갯마을 차차차,를 보다가 덜컥 걸리는 게 있어서 쓴 적도 있다. 

(https://blog.aladin.co.kr/hahayo/13015445)


산후조리원을 보다가도 무언가를 쓴 적도 있다.

(https://blog.aladin.co.kr/hahayo/12151051)


어디에나 이야기는 있지만, 고양되고 독려되는 이야기는 있다. 지금은 여성이 얼마나 출산과 양육으로 착취당하는지에 대한 이야기가 고양되고 있다. 하나나 둘을 낳은 엄마들이, 일과 양육을 함께 하는 게 얼마나 힘든지에 대해 말하는 이야기가 팔린다. 프리랜서,라는 위태로운 직업군이 늘어나고 있으니 그런 직업군의 엄마들이고, 아이없는 젊은 여자들이 스스로의 확신을 강화시킬 수 있는 이야기들이다. 출산과 육아가 스펙이 되지 않아 애석해하는, 가치를 다른 것과 거래하는 세태가 강화되는 이야기들이라고 생각하면서 읽었다. 타겟 독자는 지금 책을 주로 사는 2~30대 미혼이거나 기혼에 아이가 없거나 하나거나 둘인, 억울하고 괴로운 여성들인 거 같다. 이 책을 쓴 엄마들과 비슷하지만 다른 전통적인 피라미드 조직의 말단에 속해서 아이를 셋 건사하는 나는 시큰둥하게 읽는다. 결국 개인이 겪어내야 하는 삶의 국면들에서, 어떻게 조언하겠어?라고 생각하는 내가 하지 못하는 말들이다. 난다의 거의 정반대의 행복을 읽고 그런 말들을 남겼었다.(https://blog.aladin.co.kr/hahayo/10081387) 책 속에서도 그런 모순이 충돌한다. 먼저 아이를 키운 어른들의 말들에 '너도 당해봐라'라는 말이라고 생각하기도 하고, '당사자가 아니면 입을 닫아야 한다'라고도 한다. 그러고도, 무언가 말하고 싶어하는 것은 도움이 되고 싶어서일 것이다. 받아들일 마음이 없다면 받아들일 수 없는 말이다. 하는 사람보다 듣는 사람에게 달린 일이다. 이 책을 읽고도, 누군가는 아이를 낳기로 하고, 누군가는 낳지 않기로 할 것이다. 짧지만 강렬하게 나에게 다가온 조언들은 있지만, 이렇게 긴 말들이 필요하지는 않다. 그저 찰나, 이유도 없이 깨닫게 된다.


정서경작가의 글은 최재천 교수의 유튜브처럼, 전하고 싶은 마지막 말이 전해지지 않을 것 같다. (https://blog.aladin.co.kr/hahayo/13686633) 아이가 살고, 내가 죽을 수 있다고 생각하는 짧은 순간 사랑을 알게 되었다는 말보다, ''이제 네 차례다'라는 음모'라던가 '보이스피싱에 낚여 나도 모르게 무시무시한 물건을 주문해버린 것 같았다'라는 말, 아이없는 여자들의 두려움을 고양시키는 말들이 남을 거 같다. 감정의 롤러코스터를 즐기는 사람의 글이다. 슬픔도 잔잔히, 기쁨도 잔잔히를 추구하는 나같은 사람은 '모두 지나가는 날들'이라고, 짧고 격렬하기 때문에 즐기라고 말해 줄 수 있을 뿐이다. 


임소연연구자가 선배 학자에게 듣는 '나는 타협을 잘 했을 뿐이야'라는 조언이 와 닿는다. 젊고 선명하기 원하는 새로운 세대에게, '오염되기를 두려워하지 말라'고 하는 조언이 절절하다. 


아티스트 전유진은 자기 공간에 대한 이야기는, 공감을 불러일으킨다. 내 방,이라는 아이의 요구를 거절하는 나 자신이 보이는 말들이다. 그렇지만 '출산과 육아를 하는 것에 관해 당사자가 아니면 그 어떤 말도 보태지 말자'라는 말은 너무 강경해서 물러서게 된다. 당신이 지금 하는 말은 무엇인가요?라고 질문하게 된달까. 더하여 다음 장에 '하지만 그게 뭔지 제대로 알려주지도 않으면서'라는 말이 붙는다. 양가성과 모순을 말하지 않을 수 없다는 전제 뒤로 이런 글들이 따라 붙는다. 어른들은 언제나 말해주고 있었다. 듣는 내가 미숙해서 알아듣지 못했다. 그 말 뜻을 몰랐고, 실감하지 못했다. 겪어보고서야 뒤늦게 그 의미를 알아차렸다. 제대로 알려주지 않았다는 원망도 아무 말도 보태지 말라는 당부도 기이하다.


또래집단의 말들이 더 잘 들린다.  

또래집단의 감수성과 조응할 말들이 더 잘 들린다. 

세상의 진실과 거리가 멀더라도, 또래집단의 말들의 파도 위에 올라탄 말들이 더 잘 전해진다. 

어쩌면 그래서, 모두 개별적일 수 밖에 없는 경험 가운데-누군가는 아이를 낳다가 죽을 뻔 하기도 하지만, 누군가는 두 시간 진통에 가뿐하게 낳을 수도 있는 거니까- 슬프고 억울하고, 쓸쓸하고 괴롭다는 이야기만 더 많이 돌아다니는 것도 같다. 


엄마이기 전에 아이였으면서, 아이였을 때, 엄마의 감정을 느꼈을 거면서, 왜 그러는 걸까.

어쩌면 엄마가 되기를 거부하는 아이의 마음이 이런 이야기들을 점점 더 커지게 하는 것도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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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을 읽는 맹자
맹자 지음, 임자헌 옮김 / 루페 / 201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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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자를 버린 논어,를 살 때 이 책도 샀다. 

그 책의 불만족스러운 점들은 이미 썼다.(https://blog.aladin.co.kr/hahayo/13110982)

이 책도 형식은 비슷하지만 순서는 다르다. 번역문이 검은 글씨, 옮긴이가 보탠 생각이 파란 글씨, 원문이 다음에 있다. 원문에는 음조차 없다. 역시 번역은 지나치게 현대어,이고, 옮긴이가 보탠 생각은 읽지 않았다. 

맹자,는 누가 남긴 기록일까. 

논어,는 제자들이 남겼으니 대화가 가르치고 배우는 형식이 많은데, 맹자는 그 대화상대가 다양해서 꼭 연극대본같다면서 읽었다. 공자의 어떤 태도를, 대중에게 가르치기 위해서, 연극을 하고 다녔던 걸까. 아니면 자신의 대화를 대본처럼 남겼던 걸까. 어떻게 그 대화가 남았는지, 어떻게 책이 되었는지 궁금해지는 글들이다. 

그래도, 끝까지 본문과 번역문을 읽고, 원문을 보고 그렸다. 

잘 알려진 이야기 말고 다른 이야기도 한 번쯤 듣고, 전쟁의 시대에 평화를 원하면서 정치인에 유세하러 다니는 지식인의 간절함을 본다. 

포스트잇은 읽을 때의 내가 드러난다. 

내가 가지는 불만이나, 어떤 세태에 대한 심사가 드러난다. 


사람들의 문제는 이거예요. 남의 선생 노릇 하기 좋아한다는 것!

孟子 曰: 人之患, 在好爲人師 -p215



유하혜는 한마디로 나만 잘하면 괜찮다는 사람입니다. 추잡한 군주를 부끄러워하지 않았고, 관직이 아무리 낮아도 사양하지 않았죠. 관직에 나아가서는 자기의 뛰어난 능력을 조금도 숨기지 않았고 반드시 올바른 방법으로 일을 처리했어요. 사람들이 그를 승진에서 누락시켜도 원망하지 않았고, 곤경에 처해도 걱정하지 않았죠. 더불어 사는 것에 대한 기본적인 배려와 질서를 모르는 무지렁이들과 함께 있을 때도 아주 여유 있게 즐기면서 굳이 떠나려 하지 않았어요. 그의 생각은 이런 거였죠. '너는 너고, 나는 나지. 네가 내 옆에서 옷을 훌러덩 벗어젖히고 무례의 끝판을 보여준다 한들 내가 더러워지겠어?'그래서 이런 유하혜의 삶의 자세를 들으면, 인색한 사람은 관대해지고 야박한 사람은 후해지게 되었습니다. -p281

柳下惠, 不羞汙君, 不辭小官. 進不隱賢, 必以其道. 遺佚以不怨, 阨窮以不憫. 與鄕人處, 由由然不忍去之. 爾爲爾, 我爲我, 雖袒裼裸於我側, 爾焉能浼我哉? 故聞柳下惠之風者, 鄙夫寬, 薄夫敦. -p284

나는 공자님은 못 될 거 같지만, 유하혜처럼은 어떻게 되어 볼 수도 있지 않을까 생각하면서 읽었다.


그럼 자네가 생각하기에, 만약 세상을 바르게 다스릴 참 지도자가 나온다면 지금의 각 나라 군주들을 모조리 싸잡아 죽일 것 같은가, 아니면 일단 교화시켜보고 그래도 고치지 않으면 그때 가서 죽일 것 같은가? 자기 것이 아닌데 자기 것으로 갖는 것을 모두 '도둑질'이라고 말하는 것은 그런 유의 일을 극단적으로 확장시켜서 말하는 것일세. 공자께서 노나라에서 관직에 있을 당시 노나라에서는 엽각이 유행이었네. 이를테면 '내기사냥'같은 거? 그러니까 아무래도 미풍양속은 아니지. 그렇지만 공자께서도 그걸 하셨어. 사람들하고 어울려야 하니까. 내기 사냥도 하는데 윗사람이 내려준 예물이야 당연히 받아도 되지. -p290

曰: 子以爲有王者作, 將比今之諸侯而誅之乎? 其敎之不改而後誅之乎? 夫謂非其有, 而取之者, 盜也, 充類至義之盡也. 孔子之仕於魯也, 魯人獵較. 獵較猶可, 而況受其賜乎?-p293

내가 아마도 질문하는 사람같아서, 여기 포스트잇을 붙인 거 같다. 너무 맑은 물에는 물고기가 살 수 없어,라고 말하는 것처럼, 극단으로 흐르는 엄격함은 좋지 않다. 


입맛도 그래요. 맛있다는 음식은 모든 사람이 맛있다고 느끼죠. 역대급 셰프 역아는 바로 그 입맛을 정확이 안 사람이죠. 입맛이 사람마다 다르다 해도 만약 개나 말의 입맛과 우리 입맛이 다른 정도로 달랐다면 어떻게 최고의 셰프라는 존재가 있을 수 있겠어요? 세상사람들이 모두 역아 셰프 식당에 굳이 예약을 잡고 꼭 먹어보려 하는 것은 사람 입맛이 서로 비슷하기 때문이죠. -p315

口之於味, 有同耆也. 易牙先得我口之所耆者也. 如使口之於味也. 其性與人殊. 若犬馬之與我不同類也. 則天下何耆皆從易牙之於味也? 至於味, 天下期於易牙, 是天下之口相似也. -p316~317

정체성 정치,에 대한 불만 때문에 이 대목에 포스트잇을 붙였을 거다. 소리도 그렇고, 마음도 그렇고, 맛도 그렇다고 반박하는데, 아마도 내가 가장 동의가 된 게 맛에 대한 거였나 보다. 


전쟁의 시대에, 사람은 선하게 태어났다는 걸 믿고, 가치를 바로 세워서 다스려야 한다고 말한 다. 좋은 분이고, 좋은 글이다. 


형식이나 지나친 현대어 해석이 마음에 들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끝까지 읽고 끝까지 쓸 수 있었던 데는 그래서 가능한 부분도 있었을 것이다. 그래서 고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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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Book] 왜 이대남은 동네북이 되었나 - 이리 치이고 저리 치이는 대한민국 이대남 보고서
이선옥 지음 / 담담사무소 / 202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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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꺼번에 여러 권을 뒤죽박죽 읽고 있다. 

마리 루티의 '가치있는 삶'(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301536219)과 스티븐 E. 쿠닌의 '지구를 구한다는 거짓말'(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297628702&start=slayer)을 시작했는데, 둘 중 어느 것도 빨리 읽어낼 수가 없는 와중에 받아서 읽었다. 가장 빠르게 끝냈다. 이미 많이, 메일링서비스로 읽었던 내용들인 데다가, 간결하게 쓰여진 글이다. 쉽게 읽히고 동의할 수 있다. 끝내고 다시 마리 루티와 스티븐 E. 쿠닌을 왔다갔다 하면서, 이미 마친 이 책에서 내가 아쉬웠던 건 뭘까, 생각했다. 

문과인 친구와 환경관련 수업을 같이 들을 때, 쿠닌같은 교수님이 수식을 칠판 가득 적어서 무언가를 설명했던 적이 있다. 오래된 일이라 기억이 잘 안 나는데, 그 화학식들이 깨끗하게 정리되는 마지막까지 공대생이던 나는 와 멋진데,라고 생각하고 나왔는데, 문과였던 내 친구는 도대체 뭐 하자는 거야,라고 했다. 설득을 할 생각이 있는 거야?라고 했던가. 

쿠닌도 마리 루티도 만족스럽지 않다. 과학의 언어도 감성의 언어도 어딘가에 걸려서 자꾸 멈춘다. 게다가 언어도 문화도 다르다. 

빠르게 걸리는 데 없이 읽은 이 책은 어떤가. 언어의 차이나 문화적 차이 때문이 아니라, 글이 가지는 어떤 입장 때문에 만족스럽지 않았다. 

논리적이고 합리적으로 설득하기 위해서 '나'를 지워야 한다고 생각했을 수 있다. 그렇지만,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뭐 매번 설득에 실패하면서 내가 그런 말할 처지는 아니지만, 좀 더 자신을 드러내고, 정직하게 말해야 소통도 설득도 가능하다고 생각하는 거다. '우리의 민주주의거든'(https://blog.aladin.co.kr/hahayo/8968440)을 읽고 옮겨 놓은 문구대로, 합리나 논리만으로는 설득하기 어렵다. 그럼 어떤 식으로 말해야 할까. 어렵네. 

이 책은 논리적이고 합리적으로 하는 설득의 노력이다. 20대 남성의 대변인이라고 불린다면 아마도, 그 말하는 방법이 남성적인 것이기 때문일 거다. 

남자와 여자가 얼마나 다른 방식으로 말하는지 생각하는 나는, 합리와 논리 대신 연민과 슬픔에 대해 말하는 건 어떨까,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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얄라알라 2022-12-17 12:0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한 번에 여러 책 읽는 재미와 기쁨이 큰듯 해요^^

별족 2022-12-18 07:48   좋아요 2 | URL
이런 것들을 비교하게도 되고^^
 
[eBook] 가상의 불량소녀 - 꼭 읽어야 할 한국 대표 소설 93 꼭 읽어야 할 한국 대표 소설 93
이익상 지음 / 더플래닛 / 2018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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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단편소설들을 읽고 있다. 동시대의 이야기가 아니라, 조금은 오래 전의 이야기들이다. 

얼어죽은 모나리자(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133819366),를 처음 읽었고, 보석반지(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133819364), 파금(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133819354), 다음에 읽었다. 

화자가 남자인 이 소설은, 알 수 없는 여자에 대한 이야기다. 

지금,여기를 살아야 한다고 하지만, 과거나 미래가 없는 여자와 미래를 기대하지 못하고 마친다. 

서로에게 호감을 가지면서 말하는 남자와 여자의 말들이 새삼스럽다. 사건이랄 것이 과연 있나 싶은데 화자가 그 시대의 남자라서 은근하거나 묘사하지 않는다. 처음 그 여자를 본 날, 다음에 전해 들은 풍문, 그리고, 밤 산책에서 마주치는 여자의 묘사들은 시대상에 비추어 불량한 모습들이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남자는 다시 만나기를 원하고 이야기나눈다. 과거나 미래는 없이, 현재만을 살 뿐이라고 말하는 여자가 다시 다른 남자의 팔을 끼고 가는 걸로 이야기는 마친다. 남자의 말들을 듣는 나는, 여자가 알 수 없고, 좋지 않다고 생각하면서도, 이 묘사가 부당하다고 생각하지는 않았다. 남자의 입장에서 하는 건조한 묘사 가운데, 남자가 안 되었다고 연민하게 된다. 

제목이 '불량소녀'가 아니고 '가상의 불량소녀'인 이유는 이게 모두 남자의 관점에서 그려지기 때문이고, 작가조차 여자에게 말할 기회가 없었다는 걸 인지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대화에서 드러나는 여자의 생각도 어느 정도 공감하는 나는, 그러면서도 미래가 없고, 이런저런 남자들과 얕은 관계만을 반복하는 그녀가 과연 지금을 충실히 살고 있는가, 의심한다. 지금, 여기를 산다,는 말은 오해를 불러오는 말인 거 같다. (https://blog.aladin.co.kr/hahayo/114060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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