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Book] 100세 철학자의 행복론 100세 철학자의 행복론 1
김형석 지음 / 열림원 / 202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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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박하다,라고 쓰고 싶어서 구글에서 뜻을 찾았다. 욕심이 없고 마음이 깨끗하다, 느끼하지 않고 개운하다, 라고 나온다. 


친구랑 그저 살아가는 사람들이 대단하다,고 말한 적이 있다. 살아있다는 것이 참 대단하다고. 산다는 것은 쉽지 않다고. 

쪽글들인데 너무 좋은 말들이라서, 옮기다가 말았는지 남겨놓은 밑줄이 너무 없다. 그래, 내 맘에 와닿은 말들로만 밑줄을 쳤다. 그런데, 그 밑줄에 대해 설명을 붙이자니, 다시 글 전체를 옮겨놓는 지경이 될 거 같다. 


남이 나를 믿어주지 않고 내가 남과 협력할 수 없다면 우리는 아무 일도 할 수가 없다. - 41%


이렇게 본다면 내 육체는 공간 중의 공간이다. 나의 공간이라기보다는 나 자체인 것이다. 그러므로 공간의 상실은 육체의 상실, 육체의 상실은 삶과 나 자신의 상실이다. 이 상실을 막아볼 양으로, 이 상실을 사실이 아닌 양 도피해볼 뜻으로 예술을, 철학을, 종교를 만들어왔다. 그러나 사실은 사실이다. 마침내 자아라는 공간을 끙그리 잃어버릴 때가 오고야 마는 것이다. 정들었던 것들, 즉 하늘, 바다, 산, 숲길, 꽃, 새, 별, 달, 이웃, 집, 가족, 친구들은 물론이요, 나 스스로의 공간, 나 자신이었던 육체마저도 작별해야 할 때가 오고야 마는 것이다. - 72%


기독교도,임에도 불구하고, 철학자셔서인지, 예술이나 철학이나 종교를 육체의 상실로부터 도피하기 위해 만들어진 거라고 이야기하신다. 언제나 본질이 있다는 걸 상기하기 위해, 나는 이야기들에 휘둘리지 않기 위해 기억해두려고 밑줄을 남겼다. 만들어졌다. 인간이 만들었다. 스스로의 나약함을 볼 수 없어서. 그리고 그것이 꽤나 대단한 양 스스로를 속이고 있다. 스스로의 마음을 다스릴 수 있어야 과하지 않아야, 오래도록 살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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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Book] 마음 가면 - 수치심, 불안, 강박에 맞서는 용기의 심리학
브레네 브라운 지음, 안진이 옮김 / 웅진지식하우스 / 2023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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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미있게 읽었다. 

여성주의 베이스가 없거나 옅어서인지, 학문을 통한 균형감각이 고양되어서인지 남성을 인간으로 대하고 있어서 좋았다. 뭉뚱그려진 정체성이 아니라, 자신처럼 남성도 고민하고 괴로운 인간으로 연구한다. 

저자는 수치심과 죄책감을 구분하고 수치심을 불필요하거나 과장된 감정으로 본다. 계속 물음표가 떠다니는 것은 내가 가지는 수치심이라는 감각과 충돌해서인 거 같았다. 수치심은 뭘까, 검색했더니 심리적으로 수치심,이라는 말은 자신의 존재를 부정적으로 평가함으로서 발생되는 감정이다. 즉 수치심은 작고 보잘 것 없으며 형편없다고 느끼는 감정이다. 수치심은 평가하는 사람의 존재, 평가하는 사람의 평가 틀, 평가하는 사람의 태도와 깊은 관련이 있다.' 그렇게 정의되고 있는 것도 같다. 일상에서 내가 쓰는 수치심은 부끄러움인데, 심리학에서 말하는 수치심은 다른 건가, 싶기도 하다. 수치심이 아니라 죄책감을 통해 잘못을 바로잡을 수 있다고 말한다. 아이를 키울 때도, 내 자신을 돌볼 때도, 그리고, 다른 사람을 평가할 때도, 다른 사람의 평가를 받을 때도, 필요한 태도고, SNS시대 현대인에게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원래 사람들은 어떤 개념에 대해 정의를 내릴 때 '...이 아닌 것'으로 사고하는 경향이 있다. 특히 감정적인 경험과 관련해서 이런 경향이 두드러진다. - 4%


우리는 학문의 길에 들어서는 순간부터 대중과 일정한 거리를 유지해야 학자로서 위신이 서며, 대중과 너무 친해지면 권위가 실추된다고 배웠다. 일반적으로 '학자연한다'는 평가는 모욕으로 받아들여지지만, 상아탑 안에 있을 때는 '학자'라는 이름표를 갑옷처럼 챙겨 입으라고 배웠다. 그렇다면 나는 어떻게 해야 할까? - 5%


심각한 자기애성 인격장애의 근저에는 '수치심'이 있다. 따라서 누군가의 기를 죽이려 하거나 "넌 보잘것없는 존재야"라고 말해주는 방법으로는 증상이 고쳐지지 않는다. 수치심은 문제의 해결책이 아니라 원인이기 때문이다. - 8%


수치심은 우리가 차마 말하지 못할 때 힘을 얻는다. 그래서 수치심은 완벽주의자를 사랑한다. 완벽주의자들은 쉽게 입을 다물어버리기 때문이다. 만약 우리가 수치심을 인식하는 능력을 기른다면, 그래서 수치심이 들 때마다 그것을 알아차리고 말을 건다면 우리는 수치심의 공격을 막아낼 수 있다. 수치심은 자기한테 이런저런 설명이 붙는 것을 싫어한다. 우리가 수치심에 관해 이야기하는 순간 수치심은 수그러들기 시작한다. 마치 그렘린들이 빛에 노출되기만 해도 치명적인 타격을 입는 것처럼, 언어와 이야기는 수치심에 환한 빛을 비춰서 수치심을 제거한다. - 21%


"내 아내와 딸들을 위해 책에 사인을 해주셨죠? 아내와 딸들은 내가 말에서 떨어지는 꼴을 보느니 내가 말 위에서 당당하게 죽는 모습을 보려고 할 겁니다. 선생께서는 쉽게 말하겠죠. 남자들도 기꺼이 취약해져서 진짜 자기 모습을 보여줘야 한다고요. 허허. 그렇지만 여자들은 그걸 감당 못 해요. 우리가 그런 식으로 행동하면 여자들은 몸서리칠 걸요?"-30%


언젠가 나는 남자들 몇 명과 집단 인터뷰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차 안에서 이렇게 중얼거렸다. 

"이럴 수가. 나야말로 가부장적인 존재였구나."-33%


"두려움을 분노로 바꿔서 제 앞에 서 있던 친구를 제압했습니다. 그건 꽤 괜찮은 방법이었어요. 그로부터 20년 동안 나의 두려움과 취약성을 분노로 바꿔 내 앞을 가로막는 사람은 모조리 제압하며 살았죠. 나의 아내, 우리 아이들, 내 밑에 있는 직원들이라 해도 말입니다. 두려움과 수치심에서 빠져나오려면 그 방법밖에 없었어요."-34%


수치심 회복이란 중용의 길을 찾아가는 과정이다. 중용의 길을 택하면 우리는 상황을 외면하지 않으면서 자신의 가치관에 부합하는 방식으로 행동하는 데 필요한 용기를 얻을 수 있다. -35%


우리는 자신이 수치심을 많이 느끼는 영역에서 유독 다른 사람들을 엄격한 비판의 눈으로 바라보곤 한다. -35%


"여자들은 잘 모르고 있지만, 대부분의 남자들에게는 섹스를 두려워하는 마음이 있습니다. 남자들이 포르노라든가 폭력물을 찾는 이유가 거기에 있습니다. 그렇게 해서라도 힘과 통제권을 행사하려는 거죠. 거절은 극심한 고통이거든요."- 37%


진짜 소속감은 누군가에 대한 거부를 토대로 삼지 않는다.- 38%


취약성의 관점에서 본다면 연결이란 우리의 이야기를 들을 자격이 있는 사람들에게 그 이야기를 들려주는 것을 의미한다.- 55%


약하고, 화가 나 있고, 상처를 받았고, 수치스럽고, 고통스러울 때 우리는 뭔가를 비난한다. - 68%


육아는 가장 두렵고도 대담한 모험이다.-76%


'넌 나쁜 아이야'와 '네가 나쁜 행동을 했어'의 차이는 크다. 단순히 말의 뜻이 다른 게 아니다. 수치심은 뭔가를 해낼 수 있으며 더 나은 사람이 될 수 있다는 자신의 믿음을 갉아먹는다. - 78%


남학생은 나를 응시하며 말을 이어갔다.

"처음에는 내가 바보였구나 싶었죠. 잠시 동안이지만 나에게 화가 났고 선생님을 원망하기도 했어요 그런데 다시 생각해보니 내가 왜 고백을 했는지가 기억나더군요. 나는 룸메이트들에게 말했죠. '나는 대담하게 뛰어들었던 거야. 이 바보들아'"

그는 웃음을 띠고 있었다. 
"녀석들이 타이핑하던 손을 멈추고 나를 쳐다봤어요. 고개를 끄덕이며 이렇게 말하더군요. '오 계속해봐 이 바보야'" 
대담하게 뛰어들기에서는 이기고 지는 것이 중요하지 않다. 핵심은 용기를 낸다는 것이다. 부족한 느낌과 수치심이 우리를 지배하고 두려움이 제2의 본성이 되버린 세상에서 취약해진다는 것은 커다란 도전이다 당연히 불편하기도 하고 약간의 위험도 따른다 그리고 우리의 진짜모습을 드러내는 순간 상처입을 확률은 높아진다 하지만 나 자신의 삶을 돌아보고 대담하게 뛰어들기가 내게 어떤 의미였는가를 생각한다면 적어도 한 가지는 자신있게 말할 수 있다 내 삶의 바깥쪽에 서서 삶을 들여다보기만 하면서 만약 내 모습을 드러내고 진짜 나를 보여줄 용기가 있었다면 어땠을까를 궁금해하는 것만큼 불편하고 위험하고 상처가 되는 일은 없다고.- 87%


관람석에 앉은 사람들의 반응을 저울질하면서 당신의 가치를 평가하지 않는다면 삶은 어떻게 달라질 것 같은가? - 89%


좋은 책인데, 서양저자가 가지는 도전정신을 가지고 나아가라는 식의 태도는 여전히 있다. 삶에서 관람석과 아닌 삶은 무엇인가,라는 질문도 생긴다. 평범한 삶을 과연 긍정하는가, 싶은 면면들도 보인다. 더하여 마지막에 더해진 너무 여러페이지의 감사인사는 아, 서양사람들은 이름이 이렇게까지 중요한가, 싶은 생각도 들었다. 서양의 책표지 디자인과 동양의 책표지 디자인 모아놨을 때 느꼈던 그런 이질감(https://blog.aladin.co.kr/hahayo/12801476)이 좋은 인상으로 책을 거의 마친 순간, 수 페이지에 달하는 감사인사 때문에 다시 들었다. 이 말을 보태는 것이 관람석에서 비난하는 건가, 싶어서 맨 뒤에 사족으로 붙여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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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Book] 경희 - 꼭 읽어야 할 한국 대표 소설 8 꼭 읽어야 할 한국 대표 소설 8
나혜석 지음 / 더플래닛 / 201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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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렸을 때 티비에서 잠깐 나온 영화의 한 장면을 기억한다. 그 화면 속에서 임신한 젊은 여자는 불러오는 배를 보면서 스스로가 동물이라는 자각을 무언가 혐오의 감정으로 읊는다. 

어린 나도, 그 감각을 어렴풋이 공감한 것도 같다. 

충분히 좋은 엄마,에서 저자가 "사실 아이의 타고난 도덕성은 날것의 공포로부터 발달하기 시작하기 때문에 엄마나 아빠의 도덕성보다 훨씬 더 강렬합니다. 아이에게는 오로지 진실되고 진짜인 것만이 중요합니다. -p187~188 "라고 말하는 부분을 옮겨 적었다. 

아이가 가지는 청결의 감각이 결벽적이라는 인상을 받는 순간들이 있다. 어른이 되는 것이, 그런 결벽적인 감각들을 무디게 하는 것인지도 모른다고 생각하게도 되었다. 


알라딘에서 주는 적립금으로 옛날의 단편소설들을 100원주고 빌려보고 있다. 이 소설은 최초의 서양화가, 떠들썩한 스캔들의 주인공, 결국 행려병자로 죽은, 인생이 소설만큼 드라마틱한 나혜석이 쓴 짧은 소설이다. 일본에 유학하고 있는 여학생인 경희가 유학 중에 짧게 집에 돌아와 주변 사람들, 의 평판을 듣고, 종국에는 결혼하라는 부모의 독촉을 받으며 고민하는 이야기다. 

지난 시대의 이야기지만, 그 고민의 내용이 별반 다르지 않다는 느낌을 받았다. 환경은 달라졌지만, 사람들의 생각은 다르지 않다. 여자도 인간인데, 축첩하는 남편에게 고통받은 어머니는, 왜 나에게 결혼하라고 하시는 거냐,고 생각하는 경희에게 지금과는 다른 묘한 종류의 울분을 본다. 여자도 인간인데,라는 말에 인간은 무엇인가,라는 질문이 따라온다. 인간은 무엇인가? 인간의 삶은 어때야 하는가? 같은 질문들 가운데, 여성의 삶은 어때야 스스로에게 만족할 수 있을까,라는 질문까지. 공부하는 이유는 뭘까? 어떻게 살아야 할까? 질문들이 끝도 없이 이어진다. 결국 자신이 해야 하는 답이다. 

임신과 출산을 몸으로 겪는 스스로가 동물이라는 감각을 느끼는 여자라서, 인간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은 아마도 더 절박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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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Book] 가치 있는 삶
마리 루티 지음, 이현경 옮김 / 을유문화사 / 202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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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우 겨우 읽었다. 

1세계 여성의 글은 혼돈으로 부글거린다. 예전에 '행복의 경고'(https://blog.aladin.co.kr/hahayo/9118347) 를 읽을 때 느꼈던 '아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네'라는 느낌이 이 이 책에도 있다. 자아가 있어야겠는데 없는 거 같고, 욕망을 추구해야 하는데 욕망이 무언가 싶고, 어지러운 자아상을 받아들이라고 말하면서도 아닌 건 아니라고 말하고 싶어한다. 그런 충돌하는 마음 때문에 읽었다고 말하기 부끄러운 지경으로 넘기면서 겨우 겨우 읽었다.

이런 나의 어지러운 심정이, 이 책 자체가 아닌, 이 책을 옹호하는 많은 여성주의자들 때문인가도 한참을 생각했다. 불투명한 경계와 유연한 자아상을 말하면서 사안에 대해서 단정적이고 단호하고 결벽적인 언사를 하는 사람들을 너무 많이 만나서 그럴 수도 있다. 그런데, 책에도 그런 뉘앙스가 있다. 마음 깊이 이미 위계나 옳고 그름이 있고 스스로의 우월함을 의심하지 않는다. 추상적인 영역에서는 이렇게 말하면서, 현실의 영역에서는 다르게 말할 거 같다는 인상을 받는다. 

그러니까, 기질의 부름을 따라 사는 삶이 평범할 수 있다는 걸 받아들이지 못하는 사람이라는 인상을 받는다. 기질의 부름을 받는다면, 격정적인 사랑을 하면서 무언가를 창조하면서 사회적인 성취를 해낼 거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아닌가?라는 인상이 생긴다. 


추상적이기만 한 어지러운 말들,에 호감이 생기지 않는다. 


가장 "발달된" 자아는 고도로 구조화된 자아가 아니라 가장 덜 구조화된 자아로, 다양한 정체성의 차원을 유연하게 이동할 수 있다. - 22%


반면, 어떤 목표와 야망은 진부하기만 해 삶을 지루할 정도로 지극히 평범하게 만든다. - 24%


성평등에 관한 나의 주장은 다른 문화의 전통에 어긋나며, 내가 단지 서구적 가치관을 강요함으로써 서구 식민주의의 유산을 재생산하고 있다고 주장할 수 있겠다. 그러나 이러한 반대는 성평등이 특히 서구의 발명품이며, 사실도 아니지만 서구 여성은 차별을 받지 않는다고 시사함으로써 서구 사회에 지나친 공신력을 부여한다. - 25%


이것이 상황적 결핍은 우리가 맹신하도록 학습된 좋은 삶으로 이어지지 않는다고 인정하면서도, 근본적인 결핍은 우리 삶에 엄청난 가치를 가져다준다고 주장할 수 있는 이유다. - 29% 


그러나 대부분의 사람은 그 정도 수준까지 어떤 변화를 이루어 내지 못한다. 그리고 정말 변화를 이루어 내는 사람들조차도 일반적으로 자신은 무엇이든 이루어 낼 수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우리 중 상당히 비범한 사람들조차도 무엇을 하든 항상 자신에게 뭔가 부족하다는 느낌으로 인해 잘 만족하지 못한다. - 30%


트라우마를 겪은 사람들이 유독 세상을 가능성의 공간으로 바라보지 못한다는 것을 나 또한 인정하며, 번복하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견해는 흔히 과장되어 있다. 우리는 고통으로 가득 찬 삶을 살아온 사람들을 잘못 이해한다(또는 깔본다). - 46%


결과적으로 극단적인 이상화는 연인의 진실된 모습을 해칠 수 있지만, 반대로 연인을 그저 진부하기만 한 존재로 전락시키면 모든 것을 초월하는 사랑의 가치를 부정하게 된다. - 56%


실제로, 사건과 마찬가지로 편협한 마음 또한 열정을 먹고 자라기 때문에 둘은 혼동되기 쉽다. - 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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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돌이 2023-02-16 21: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 이책 샀는데 아직 안 읽었네요. 읽을 때 별족님의 생각도 유념하면서 읽어보겠습니다.

별족 2023-02-17 09:02   좋아요 1 | URL
책을 읽을 때 같이 읽고 있는 책들, 블로그 글들, 기사들, 얽혀서 생각이 이렇게까지 튀었어요. 링크는 고쳐뒀는데, 행복의 경고, 읽을 때는 격몽요결, 읽고 있었고, 블로그를 통해서 동아시아 유전자분석 기사 본 것도 연결되면서 계속 서구의 사고방식에 경계심을 갖게 되요.
 
[eBook] 지구를 구한다는 거짓말 - 환경을 생각하는 당신이 들어보지 못한 기후과학 이야기
스티븐 E. 쿠닌 지음, 박설영 옮김, 박석순 감수 / 한국경제신문 / 202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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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은 미래를 알 수 없다. 그래도, 미래를 알지 못하면 마음은 불안하다. 그래서 고래부터 거북이 등껍질로도 영매를 통해서도 신탁을 얻기를 원한다. 현대에 와서 불확실한 미래에 대한 불안을 해소하는 권위는 과학자에게 있다. 

학교에서 배울 때와 현장에서 일할 때 나의 불안한 마음이 커지는 것은 오차들 때문이었다. 숫자는 수학공식처럼 하나가 아니다. 단계마다 층층이 쌓이는 오차들 덕분에 내가 아는 것이 정확할 수 없다는 걸 받아들이는 것은 괴로운 일이다. 그래서, 나는 확신에 차서 말할 수 없는 사람이 되었다. 


'지구를 위한다는 착각'(https://blog.aladin.co.kr/hahayo/12746420)을 읽었었다.

이 책이랑 제목이 너무나 비슷해서, 계속 헷갈렸다. 지구를 위한다는 착각,도 원서 제목은 그런 게 아니었다. 지구를 위한다는 착각, 은 'Apocalypse never'였고, 이 책의 원서 제목은 'Unsettled'이다. 원서의 제목 정도가 적당하다는 생각이 든다. 기후란, 언제든 변할 수 있는 확정되지 않은 미래의 일이다, 란 의미에서 그렇다. 

'지구를 위한다는 착각'이 종말론적인 전망으로 불안을 극대화시키는 방식의 언설에 저항하기 위한 말들이었다면, '지구를 구한다는 거짓말'은 그런 종말론적인 전망이 가능하게 하는 과학의 한계에 대한 말들이다. 


기후위기, 기후정의, 마지막 기회,같은 넘쳐나는 말들 가운데 피로했다. '나는 그럼 뭘 해야 해?'라는 질문에 '정치인이 기업이 변해야 한다'고 자신의 잘못은 없는 양 빠져나가는 말들이 싫었다. 그저 인지도나 호응을 얻기 위해 과격한 말들과 행동을 일삼는 것처럼 보였다. 기업이나 정치인이 그렇게 행동하는 데, 소비자나 유권자인 나의 민원이 작동하는 거라는 걸 알고 있다. 5%의 물가인상조차 감당하기 어렵고, 당장 전쟁이 터지면 탄소중립이 뭔지 싶은 선택을 하게 된다. 

'지구는 괜찮아, 우리가 문제지'(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285827587)라는 책 제목이 어쩌면 내 맘이다. 


책은 한참동안 통계와 방법에 대해 말한다. 기후를 예측하는 과학자의 방법이 무엇인가. 그 방법은 얼마나 많은 오차와 불확실성을 포함하고 있는가,에 대해 이야기한다. 그 부분을 읽는 것은 너무 어려웠다. 조건을 다르게 여러가지 모델을 설계하고, 다른 결과를 얻는다. 결과의 오차범위가 있고, 결과의 한계가 있다. 두꺼운 연필로 그린 그림을 가는 연필로 다시 그릴 때, 그저 우상향 추세선처럼 보이던 것은 요동치는 선으로 변하고, 인간의 삶은 우상향 추세선에 달린 게 아니라 요동치는 가는 선 위에 있다. 100년도 못 살면서 천년 후를 걱정하는 것처럼 당장 내일 벌어질 일에도 일관성을 유지하지 못하는 정책들을 가지고, 무언가 개선할 수 있을 것처럼 확신에 찬 말들을 하는 게 참기 어렵다. 

인간이 없을 때도 공룡은 멸종했고, 지구는 뜨겁기도 차갑기도 했는데, 인간인 우리 때문에 지구가 뜨거워지고 있으니 불편을 감수하라,는 말을 들으면 나는 삐딱해지는 거다. 불편을 감수하라,가 이미 누릴 만큼 누리는 선진국에서 선진국에 진입하려는 나라들에 하는 말이라면 더욱 삐딱해지는 거다. 

과학적 방법론과 불확실성에 대해 말할 때 느릿느릿 나아가던 것은 공론장에서 왜 이런 말들로 흐르는지 설명하는 대목, 그러니까 정치와 의사결정에 대한 부분에서 빠르게 나아갔다. 책으로 읽을 때조차 불안을 감당하기 싫어한다. 


읽으면서 그래서 어떡할까요?라는 물음에 하는 저자의 대답 때문에 '누가 내 치즈를 옮겼을까'(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226139) 생각이 났다.  어린날 읽을 때는, 어른들 혹은 기득권자가 새로운 세대의 순응을 바라면서 만든 우화라고 삐딱했던 것도 같은데, 이 책을 읽으면서 떠올린 것은 세상의 변화를 그저 받아들여야 하는 순간이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인 거 같다. 젊은 어떤 날 내가 파도라고 생각했던 어떤 자만심은 지금 나는 그저 파도 위의 나뭇잎이라는 자각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아무리, 탄소배출을 제로로 만든다는 대의명분에 동의한다 해도, 당장 난방조차 끄지 못하는데, 그저 우리는 그 때 그 때 달라지는 상황에 옮겨진 치즈를 따라 삶을 바꾸는 생쥐같이 살아가야 하는 건지도 모르겠다. 


인간은 그렇게 작고도 크고도 한심하다. 



과학자가 자신이 윤리적이라 믿는 것을 위해 정책 토론장에 고의로 잘못된 정보를 전달할지 말지를 고심하는 것조차 자만심의 극치다. - 7%


존 케리 당시 국무장관은 연설 도중 인간이 초래한 기후변화를 대량 살상 무기에 비유하면서 이렇게 말한 적이 있다. "과학은 명쾌합니다.(...) 오바마 대통령과 저는 '평평한 지구 학회'같은 모임에 신경 쓸 시간이 없습니다." 하지만 과학은 확정적이지 않다. 공개 토론은 과학적 절차의 핵심이다. 과학자가 토론에 참여했다는 이유로 반과학적이라는 딱지가 붙을까 봐 두려워해야 한다는 건 말이 안 된다.- 10%


과학이 어떻게 정보 전달이 아닌 설득을 위해 사용되는지, 그리고 비전문가들이 그 설득에 어떻게 현혹되는지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불쾌한 사례다. -25%


미래에 어떤 상황이 벌어지든 평가보고서는 허리케인 데이터에 대한 설명을 누락시켜 대중을 속이고 있다. 이는 워싱턴 DC의 국립아카데미 건물 앞에 우뚝 서 있는 아인슈타인의 다음과 같은 유명한 격언에 반하는 것이다. "진리를 탐구할 권리에는 의무가 함께 수반된다. 사실이라고 인식한 것은 티끌만큼도 숨겨서는 안 된다." -41%


매우 불확실한 미래 예측으로 공포를 조장하는 헤드라인을 뽑는 것과 기존 데이터를 왜곡해 기후 관련 죽음의 공포를 조장하는 것은 별개의 문제다. - 55%


확실한 것은 언론, 정치인, 때론 평가보고서들마저 과학이 기후와 재앙에 대해 말하는 사실을 뻔뻔스럽게 잘못 전달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런 잘못은 해당 보고서를 작성하고 생각 없이 검토하는 과학자들, 보고서 내용을 무비판적으로 따라읊는 기자들, 이런 일들이 일어나도록 허락한 편집자들, 그러한 재앙의 호들갑을 부채질하는 활동가와 단체들, 그리고 대중의 침묵 하에 기만을 일삼는 전문가들이 만들어낸 것이다. 이러한 기후에 대한 수많은 인식 오류가 지속적으로 반복되면서 그것들을 합의된 '진실'로 바꿔 버린 것이다. - 59%


안타깝게도 뉴스의 보도 주기는 미친 듯이 빨라지고 기자와 편집자는 그 어느 때보다 시간에 쫓기고 있다. 현대 미디어의 다양성과 보편성은 신선한 '콘테츠'에 대한 수요뿐 아니라 기사를 제일 먼저 게재하려는 경쟁도 증가시켰다. 과학자들과 마찬가지로 기자도 편견을 버려야 한다는 직업적 규범이 있지만 그렇다고 해서 편견이 깨끗이 사라지는 건 아니다. - 60%


물론 이는 기후에만 국한된 문제가 아니며, 정치적으로 회색 지대를 혐오하는 유권자들에게도 일부 책임이 있다. 불확실성으로는 지지 기반을 다지기 힘들다. - 60%


언론은 NGO에 권위를 부여하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이들 또한 그들만의 기후 에너지 의제를 가진 이익 집단이다. 지지자를 결집하고 돈을 모으고 캠페인을 진행하고 정치적 힘을 휘두르는 강력한 정치행위자다. 많은 NGO에서 '기후위기'는 존재의 이유 그 자체다. 또한 더 공격적인 단체들에게 의제를 빼앗기는 것도 걱정해야 한다. - 62%


그리고 내 경험상 사람들은 자기 전문이 아닌 영역에 대해서는 자신이 선택한 미디어를 믿고 신뢰하는 경향이 있다. - 62%


"누가 개발도상국에게 탄소를 배출하지 않도록 돈을 지불할 것인가?"라고 묻는 것은 당연하다. 나는 이 간단한 질문을 많은 사람들에게 15년이 넘도록 했지만 아직 납득할 만한 답을 듣지 못했다. - 71%


절약을 장려하는 확실한 방법은 규제를 강화하거나 가격을 인상하는 것이다. 하지만 둘 다 정부가 추진하기에는 어려운 조치다. - 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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