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Book] 개의 설계사
단요 지음 / 아작 / 202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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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로 배운다. 

AI, 대형언어모델, 퍼지이론이니 소설과 소설 말미에 붙어있는 네 개의 에세이. 아직은 일어나지 않은 소설의 이야기가 뒤에 붙어있는 실제 과학적 성취에 대한 이야기들과 겹쳐서 불안이나 걱정은 조금 더 커진다. 

전기를 만드는 회사에 다니는 나는, 챗지피티에 질문 하나를 던질 때마다 500미리 물 한병이 필요하다는 말을 듣고는 놀라서 한 번도 질문한 적이 없다. 대신 이렇게 질문하고 대답을 듣고 소설을 쓴 소설가의 책을 읽으면서 무언가 아는 척, 기술이란 참으로 무섭다고 생각한다. 

세상의 모든 정보를 통해 배우는 AI가 진실과 거짓을 구분하지도 못하고, 도덕적 감각도 없이, 잘 꾸며진 맥락 가운데, 사람처럼 섞인다. 사실, 사람이 어떤 존재인지도 모르는데, 그럴 듯하게 맥락을 파악하지만, 무언가 비어버린 대화란 사람 사이에도 벌어지는 일이니, 많은 만남이 채팅과 인터넷에서 이뤄지는 어떤 세상에서 상대가 사람인지 아닌지 알 게 뭔가 싶기도 하다. 

점점 더 많이 요구되는 건 가치관에 대한 거라는 생각이 든다. 


거부할 수 없을 만큼 강력하고 압도적인 힘이 무언가를 대신 결정해주는 상황은... 아주 매력적이거든요. 기술적으로 말하자면 결괏값은 무작위일지라도 경로 비용은 0으로 고정된 선택지라고 할 수 있겠죠." - 17%


다들 불합리한 균형 맞추기 게임에 중독된 상태로 태어난다. 밀어내는 사람에게 이끌리고, 너무 쉽게 풀리는 관계는 시시하고, 상대를 어떻게 해보려다가도 정신을 차려보면 즐겁게 내 갈비뼈를 빼내어 바치는 중이고.... - 25% 


게다가 설정값의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한 건 피차일반이다. 가치관이 합의된 허상에 불과할지라도, 모두의 꿈에 발맞추기 위해서는 갖가지 허상 중 하나를 받아들여야만 한다. - 30%


그래도 어쨌든, 면허가 박탈당하더라도 수많은 사람 앞에서 떠드는 값으로는 충분하다고 봐요. - 37%


하지만 아무리 곱씹어도 슬픔이건 죄의식이건 다가오지 않았으므로 나는 느끼지 않았다. 애당초 내가 그 뉴스를 본 건 가을에 접어들고서도 한참이 흐른 뒤였다. 정리된 의혹을 찾아 읽기는 편해도 흥미진진한 분위기를 만끽하기에는 늦은 시점이었다. - 56%


자신 바깥의 것들에 바쳐지는 맹목성이란 고결한 만큼 자기 본위다. 스스로의 몫이 아닌 것을 감히 자신의 일부로 여기기 때문에, 그 오만한 착각 때문에 몰락마저 기쁘게 봉헌하는 것이다. - 58%


"현존하는 것들이 존재하지 않는 것에 우선합니다."

박사는 그렇게만 답했다. 감정형 인공지능을 설계할 때 가장 먼저 주입하는 대원칙이었다. -64%


기호들의 관계로만 환원되는 이해도 여전히 이해입니다. - 76%


더 많이 학습했는데도 더 모르는 역설적인 상황을 빚어내지 않나 생각해봅니다(여전히 가설이라는 점을 다시 언급해둡니다). -82%


유연성을 발휘하는 친구와 악질적인 선동가를 구분하기가 어렵다는 겁니다. - 87% 


결국 인식을 약간만 왜곡시킨 다음 자기 본위로 끌어 오기만 하면 윤리학의 도구들을 사용해 묘한 일들을 정당화할 수 있게 됩니다. - 90%


그런 이유들은 곧잘 타인의 이유와 경합하므로, 인간이 맺는 상호관계란 '상대에게 자신의 이유들을 정당화하거나 상대의 정당화를 받아들이는 절차'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이런 종류의 수용과 거부가 행위의 도덕적 성격을 결정하고요. - 91% 


헌신과 애정과 자아도취를 혼동하고 그것을 믿어버리는 태도는 몹시도 인간적이기 때문입니다. - 94%


참, 소설의 이야기는 이북으로 67%에서 마친다. 뒤에 붙은 건 소설에 덧붙이는 말, 아마도 작가가 소설을 쓰면서 여러가지 생각했을 기술적 발달의 현재 상황인데, 읽어볼 만 하다. 


뇌, 인공 뇌, 뇌에 생긴 병, 같은 것에 나는 저항하는 마음이 있다. 이야기가 그럴 듯함에도 불구하고, 한참이나 이야기에 끌려들어가지 못한 건, 설계사의 성정이나 상황이었다. 아마도 사이코패쓰일 수 있는 약으로 다스리는 중인 설계사의 어떤 상황이 설계사를 가장 비중있는 화자, 내가 이입해야 하는 책의 화자로 받아들이기 어렵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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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Book] 한성부, 달 밝은 밤에 케이팩션
김이삭 지음 / 고즈넉이엔티 / 202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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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는 어떻게 만들까, 상상하면서 읽었다. 

추리소설이나 SF의 효용은 대중에게 과학이나 합리의 태도를 고양하는 거라고 생각하고 있다. 

많은 이야기들이 감정에 대한 거라면, 추리소설은 그런 게 아니라고, 우리는 진실을 알 수 있고, 모두 드러나게 마련이라는 합리성에 대한 믿음을 고양시킨다고. 

재미있게 읽으면서도 이제 나는 그런 시기를 지났나,라는 생각을 했다. 이제 나는 그런 걸 믿나, 합리라는 게 결국에는 가장 마지막 결정의 근거여야 한다고 믿는지 내 자신에게 물었다. 

추리소설이고 사건의 범인들을 추적하는 탐정의 시점으로 법과 제도 안에서 벌해야 한다는 태도를 가지면서도, 다시 드러나지 않는 범죄들을 어떻게 벌할 수 있을까, 어떤 선택은 불가피했던 게 아닌가 또 생각하게 하는 이야기다. 


"바꿀 수 있는 게 없다고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정말 아무것도 바꿀 수 없게 됩니다. 그리고 자신이 맡은 일은 제대로 해야지요. 저는 검험 산파이니 검시는 제 의무이자 권리입니다."-7%


자신의 역할을 제대로 해내는 건 좋은 일이지만, 윗사람의 업무까지 할 줄 아는 건 곤란한 일이다.- 13%


선택지가 많은 것은 괴로움이라, 뭐든 할 수 있는 시대에 제약많은 시대의 씩씩한 여성들 이야기에 혹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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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군파 - 내부 폭력의 사회심리학
퍼트리샤 스테인호프 지음, 임정은 옮김 / 교양인 / 201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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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편책이고, 오래 꽂혀 있었다. 궁금하네,라고 생각했지만 시작하고 얼마 안 지나서, 이런 얘기 흔하잖아,라고 생각했다. 

미국인 사회학자가 텔아비브 공항의 폭탄테러에 가담한 일본인을 인터뷰하는 것으로 시작해서, 일본 내 공산주의? 조직 내부에서 벌어진 숙청사건에 대해 쓴 책이다. 

젊은이의 결벽성, 이념의 경직성, 고립된 조직. 

일본에 공산주의를 이념적 지향으로 삼는 조직 두 개가 연합해서 탄압을 피해 산중에 비밀리에 모였다. 모여서 함께 하는 와중에 내부자를 숙청한다. 사소할 수도 있을 말이나 행동이 이념적 지향과 다르다고 폭력으로 깨우친다면서 직접 때리고, 결국 죽은 '동지'를 이념적으로 스스로를 넘어서지 못한 '패배사'로 규정한다. 그렇게 처음, '이탈자'를 죽이고, '동지'들을 숙청하고, 경찰 탄압에 맞서는 영웅적 서사 다음에 선 법정에서 동지의 살인자로 재판받는다. 

다 읽고 나서 남은 감상은 관찰자의 문화적 차이다. 내가 짧게 궁금하다고 생각하고도 오래도록 펴 보지도 않은 것에는 그렇게까지 궁금하지 않았던 게 있는데, 미국인인 저자는 더 오래 궁금했기 때문에 오랫동안 연구하고 책도 썼을 것이다. '사자왕 형제의 모험'을 읽을 때 가졌던 서구인의 무정부적 이상향에 대한 태도가 드러나는 것도 같다. 젊은이의 순수함이 어떻게 왜곡되었나,나 이데올로기는 잘못이 없는데, 사람들이 저지른 일탈처럼 묘사하는 것도 같다. 그런데 나는 이데올로기나 종교나 잘못이 없을까,라고 생각하고 있다. 같을 수도 있다고 믿는 다른 사람의 존재를 인식하면서 고양시키는 어떤 태도가 다른 존재를 용납하지 못하는 수준으로 치닫는 것은 얼마나 순식간인가 싶기도 하다. 종교보다는 정치가 고양되는 동아시아에서 벌어지는 정치적 숙청 사건을, 정치보다 종교가 고양되는 서구인의 관찰기록으로 보는 것은 덜컹거린다. 종교적 숙청을 수도 없이 자행한 서구인의 눈에는 정치적 숙청이 생경하겠지만, 동아시아인인 나는 왜 저 관찰자는 자기는 아닌 척 말하는 걸까, 싶기까지 했다. 관찰자가 가지는 이데올로기에 대해 옹호하는 심리도 느껴져서 뭐지, 싶기도 했다. 이데올로기가 그렇게 중요한가, 싶다. 



이러한 이론을 밀고 나가다 보면 결국 텔아비브 공항 습격 사건 같은 행위는 누구의 책임도 아니라는 결론이 나온다. 범인이 정신장애인이니 책임이 없는 것은 당연하다. 그렇다고 해서 그들의 정신장애에 다른 사람이 책임을 질 수도 없다. 나아가 이렇게 생각하면 사건의 원인을 정치, 사회적 상황에서 찾을 책임에서 모든 사람이 해방되고 문제는 개인의 심리 상태라는 차원에 묻히고 만다. 따라서 미국인은 일본의 다른 집단까지 텔아비브 공항 습격 사건에 공적 책임을 지고 나서는 데 크게 놀랐다. 책임 의식에 관한 일본인의 사고방식은 미국인에게 도무지 이해하기 힘든 것이다. - p67


이것과 꼭 닮은 사례로 1930년대 에스파냐 내전의 국제 여단을 들 수 있다. 그들이 에스파냐에서 벌어진 지역 분쟁에 다 같이 참여한 배경에는 더 큰 목적을 이루겠다는 신념이 있었다. 그들이 지원하는 투사들에게 개인적으로 공감하는 동시에, 더 큰 이념젹 관련성 때문에 에스파냐로 향한 것이다. - p73


당을 떠난 사람들에게 공산당의 지도가 사라졌다는 것은 이론과 방침의 옳고 그름을 따지는 최후의 심판에서 해방되었음을 뜻했다. 학생들은 새로운 이데올로기를 지지하고 창조하도록 자유롭게 풀려나 이데올로기를 두고 마음껏 논쟁할 수 있었다. 다음 10년간 당파 분열이 계속 이어졌고 새로운 조직은 학생 운동 안에서 서로 경쟁하는 파벌, 즉 섹트로 급격하게 불어났다. 분열의 원인이 된 논쟁이 무엇이든 간에 새로운 섹트는 자기 존재를 정당화하고자 독자적 이데올로기를 구축했다. 그러나 그 알맹이는 그들의 선배와 동료들이 지닌 이데올로기와 거의 다름이 없는 경우가 많았다. 섹트마다 특징적인 스타일이 만들어지기는 했지만, 대부분 일본공산당의 틀을 계승하여 수입을 얻고 조직을 유지하는 확고한 원천인 지방 학생 조직을 지배하고자 경쟁했다. -p 95


게다가 적군파 이론은 적군파에 속한 일본 청년 병사들을 그야말로 활동의 중심에 세워놓았다. 선택받은 일본 청년으로서 세계 혁명 전쟁에서 자신들이 전위라고 자각하기란 쉬운 일이었다. 요컨대 적군파 멤버들은 일본에만 머무를 필요가 없었고 훈련된 일본의 기동대와 독선적인 일본 대중을 상대로 하여 허무한 충돌을 거듭하며 좌절감에 빠질 필요도 없었다. - p100


적군파 초기 지도부는 적군파를 만들어 분트에서 떨어져 나오기 전에 이미 분트 내부에서 어느 정도 지위에 올라 있었다. 1960년대 후반에는 대부분이 대학 4학년이거나 유급한 학생이었다. 한편 모리의 군대는 어린 학생이나 노동자가 섞여 있었던 다이보사쓰 고개 그룹과 비슷했다고 할 수 있다. 다이보사쓰 고개 그룹만큼 소박하지는 않았지만 이론 투쟁에 아주 능숙하다고는 할 수 없었다. 단 그들이 지하 군대에 들어간 동기는 대부분 모험을 꿈꿨다기보다는 순수하게 혁명에 의한 변혁을 원했기 때문이었다. - p133


증언에 따르면 모리는 악당이라기보다 자기 기만에 능숙한 사람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만약 오자키의 죽음을 합리화하지 않았다면 자신이 지도에 실패했음을 인정해야 했으리라고 모리는 자백과 비슷한 자기 비판 과정에서 이야기한다. 따라서 책임을 전가할 수 있는 그럴듯한 해석을 쥐어짜내야 했고 실제로 그런 해석을 찾아냈다. 모리의 이론이 강력한 설득력을 지녔던 것은 바로 그 이론이 다른 멤버들도 공유하던 문제를 해결해주는 자기 기만이었기 때문이다. 감정적인 면에서 모리는 다른 사람들과 똑같은 상태였다. 단 그에게는 사태를 즉시 정당화할 수 있는 창조적인 힘이 있었던 것이다. 

이런 방향으로 분석을 밀고 나아가다 보면 결국 모든 이데올로기는 그것을 만든 사람의 자기 기만이 아니냐고 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내 의도는 그런 게 아니다. 그런 식으로 접근하면 이데올로기가 진실되게 가리켜 보여주는 사회 상황을 간과하게 될 뿐 아니라 이데올로기를 만들어내는 원천이라 할 수 있는 인간의 지성과 창조성을 경시하게 된다. -p200


야마다의 의견을 지지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지만 모리도 이 도전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모리는 정신과 육체의 고차원적인 결합에 의해 육체의 한계를 뛰어넘는다는, 선(禪) 사상에 기반을 둔 무사도 정신을 공산주의화 개념에 적용하여 야마다의 비판을 물리쳤다. 이런 생각은 전쟁 당시 일본의 군국주의와 꼭 닮았다. 열정에 불탄 수많은 군인들은 이런 관념을 믿었기 때문에 적국이 군비 면에서 얼마나 우월하든 간에 일본군의 정신력으로 적을 쓰러뜨릴 수 있다고 주장했다. -p206


나가타는 가와시마의 의견을 이론적으로도, 감정적으로도 받아들일 수 없었다. 나가타는 1969년에 가와시마에게 성폭행당했다. 당시 가와시마는 혁명좌파의 최고 지도자였고 나가타는 같은 조직 내 여성 운동 분야에서 지위가 중간 정도 되던 조직 운영자였다. 열성적인 활동가였던 그녀는 성폭력 때문에 운동에서 발을 빼기는 싫었다. 그러나 동시에 혁명좌파 내부에서 이 문제를 공개적으로 다룰 수 없다는 것도 알고 있었다. 혁명좌파의 방침은 여성은 여자이기 전에 먼저 혁명가로 살아야 한다는 것이었다. 따라서 성폭력 문제, 남자의 성적 우위 문제는 혁명좌파의 관심 밖이었다. 게다가 가와시미는 최고 지도자였고 나가타는 하부 여성 멤버엤다. 나가타는 성폭력 문제를 제기할 엄두도 낼 수 없었다. - p3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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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Book] 철학으로 저항하다 - 냉소주의의 시대, 저항의 감각을 키우는 철학 수업
다카쿠와 가즈미 지음, 노수경 옮김 / 사계절 / 202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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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나는 부모라서, 아이에게 이 책을 권하지 못 할 거 같다. 


저항,이라는 말이 멋지다고, 저항하는 사람이 멋지다고 생각했던 나의 젊은 날들이 있는데, 지금 부모가 된 나는 나의 부모님과 얼마나 다른지 알 수가 없다. 

철학으로 저항하다,라는 책이 가지는 지향이 '저항'이라서, 이 책의 의미에 대해 생각하게 된다. 

사람은 세상을 자신의 믿음으로 보기 때문에 누구에게라도 철학은 필요하다. 세상을 만인에 대한 투쟁의 장,으로 믿는다면 투쟁에 적합한 삶의 방식을 택해야 하고, 세상을 힘을 합해 함께 만드는 무엇으로 믿는다면, 또 그렇게 자신의 삶의 방식을 택해야 한다. 나와 다를 바 없는 너와 이 세상을 함께 살아가기 위해서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가 나의 질문이라서, 정치에는 명분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나는 선택의 순간 갈등한다. 

투쟁의 순간, 이익에 대한 말이 정직하다는 주장에 대해, 그렇다면 오직 이익 때문이라면, 나의 이 저항이 힘을 발휘할 공간은 생기지 않는 게 아닌가,라고도 생각한다. 나의 이익이지만, 나만의 이익은 아닌 이유여야, 이익이 걸리지 않은 다른 사람이 내 의견에 조금이나마 귀라도 기울여주지 않겠는가,라고 생각하는 거다. 

명분이나, 사명감이, 어떻게 들릴 지 알면서도, 함께 살아가기 위한 무언가를 같이 이야기하기 위해 필요한 것에 대해 생각한다. 


이탈리아의 가난한 어부 이야기를 자본주의에 저항하는 자의 숙명적 실패에 대한 것으로 이야기하고, 일본 아이누의 연어낚시와 아이누의 언어에 대한 이야기를 언어로 사로잡히는 사고의 저항으로 이야기한다. 

모든 것은 변하고 밥만큼 중요한 건 없다고 생각하는 한국인인 나는, 일본인 특유의 약함이 드러난다고 생각한다. 불교나 유교적 태도는 아닌, 서구화된 태도 가운데, 저항이나 정체성에 대한 말들이라도고도 생각한다. 


하지만 십자가에 매달린 채 곧 찾아올 죽음을 기다리면서 뚜렷한 의식으로 아내와 아들의 탈출을 본다는 것은 구원이 아니라 상궤를 벗어난 고통일 것입니다. - 34%


그러니까 이 저항은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았던 것이지요. - 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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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교와 여성 - 오리엔탈리즘적 페미니즘을 넘어서
리-시앙 리사 로즌리 지음, 정환희 옮김 / 필로소픽 / 202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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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스무살 무렵에 페미니즘에 경도되었었다. 제약이 많다고 느낀 스무살 여자애가 불만을 토로하는 서양 페미니스트,들의 말들에 신이 났었다. 나도 남자처럼 자유롭고 싶다고, 가지지 않은 몸으로 상대는 더 나을 거라고 착각하면서 불만의 말들을 했었다. 그러다가, 취업하고 일하면서, 결혼하고 아이를 기르면서, 점점점 멀어졌다. 

그래도 꽤 오랫동안 '에코 페미니즘'그러니까 인도 여성이 쓴 제3세계 페미니즘에 대한 기억에서, 페미니즘이 페미니스트가 세상을 좀 더 나아지게 할 거라고 믿었다. 

그런데, 알라딘에서 만나는 페미니스트들에게 '공부 좀 더 하고 오세요'라는 말들을 들으면서, 페미니즘이 발생한 서구철학의 토대가 문제고 구분하는 태도가 오히려 세상을 나쁘게 만들고 있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서구의 페미니스트,들이 말하는 억압받고 착취당하는 동아시아 유교문화권의 여성이라서, 삐딱한 마음으로 '웃기고 있네, 우리 엄마는 그렇게 멍청하지 않다고!!!'라고 반발하던 마음이 이제는 아예 페미니즘 대신 유교나 불교가 필요하다,라는 마음이 되어 버렸다. 

책은, 중국계 미국인 학자가 유교페미니즘의 가능성에 대해 말하는 책이다. 도시국가 이상이 되어보지 못하는 서구의 사상가들에게 미개하다고, 성차별적이라고 성억압적이라고 품평당하기 일쑤인 자신의 문화적 토양에 대해, 설명하는 말들이다. 뭐 나라면 애초에 페미니즘,이라는 분별적인 서구철학의 토양에서 자란 이론을 굳이 다층적이고 품이 넓고, 함께 살기 위한 태도로서의 포용적인 동양철학과 융합한다는 게 의미가 있나 싶지만, 책 속의 많은 말들은 속이 좀 시원했다.


다른 나라의 문화를 이해하는 어떠한 시도에서도 우리는 먼저 타자의 '타자성 Otherness'를 최대한 이해하여야 하며, [다른 나라 문화에 대해] 우리 자신의 문화적 가정을 부과하는 것을 삼가야 한다.-2%


성평등 문제에 관한 이론적인 영역에서는 서구 윤리 이론의 우월성을 강조하는 제국주의적 입장이 지속되고 있다.-3%


'유'가 갖는 의미의 유동성은 광범위한 해석을 허용하며, 더 중요한 점은 '유'의 정체성이 민족적이기보다는 문화적이라는 것이다. -4%


그러나 음양 은유를 서구의 이원적 여성성/남성성과 개념적으로 동일하게 받아들인다면, 그것은 중국의 상관적correlative 음양 우주론에 이원론적 형이상학을 부과할 뿐만 아니라 더 중요하게는 중국사회의 성억압의 원인을 오인하게 된다. 여성성과 남성성을 이원적으로 보는 서구의 패러다임과 달리, 대립적이지 않으며 상보적인 이원론인 음양은 중국의 성억압에 대한 적절한 이론적 정당화 기능을 수행할 수 없기 때문이다. - 5% 


그녀가 보기에 여자는 문학적 형태로 보존된 고대의 지혜에 대해 교육을 받을 때, 비로소 도덕적일 수 있으며 예법을 제대로 수행할 수 있다. - 6%


예를 들어 당唐나라 이후 황실 법령에 의해 보호된, 자발적인 선택에 의한 과부 관행은 배우자에 대한 정절 이상의 의미를 가졌다. 그것은 손아랫사람에 대한 윗사람의 권위를 강조하며 여성들이 자신들의 통합성을 수호하고자 하는 도덕적 의도였고, [재혼을 권유하는] 부모의 친권보다도 우선시되는 여성 고유의 재량권을 상징한다.- 7%


여성들은 '내'적 영역에서 문자와 붓 대신에 천싸개와 바늘로, 자신과 '우리들의 문화'를 전승할 딸들의 발을 속박시켰다. 이 장의 목적은 이러한 사회적 관행의 '성차별적' 요소들을 어떻게든 얼버무리려는데 있지 않다. 여기에서 언급된 관행의 대부분은 [오늘 날] 더 이상 사회적 이상 social ideal으로 실재하지 않는다. - 7% 


초기 프랑스 페미니스트인 쥘리아 크리스테바는 1974년 『중국 여성에 관하여』에서 대담하게도 한 장을 '공자-여자를 잡아먹는 자'라고 제목을 붙였다. 그리고 1990년대 중반까지 여전히 학자들에게 있어 유교는 현대적이며 우수한 것으로 상정되는 서구적 삶의 방식보다 뒤떨어져 폐기되어야 하는 가부장적 이데올로기로 특징지어졌다. - 9%


유교에 대한 울프의 인식에서 폄하적인 어조는 분명하다. 그녀에게 있어, 유교 - 구 중국의 쓸모없는 이데올로기- 는 가부장제 및 여성 혐오의 동의어이다. 페미니스트의 저작에서 반유가적인 정서는 매우 고조되어 있다. - 10%


예수회의 Confucianism이란 용어 발명은, 서양에서 쉽게 받아들여질 수 있도록 유 개념을 단순화하고 세속화하였다. - 10%


서양의 분석적 전통에 익숙한 현대의 독자들이 보기에, 이렇게 유의 정의를 동음이의어의 연관성에서 파악하려는 것은 합리적인 문자적 해석이라고 보기 어려우므로, 기이해보일 것이다. - 11%


한자를 식별하는 데 있어 주어진 단어의 의미는 개별적인 단어의 문자 그대로의 정의에서 오기보다는 항상 단어 또는 구 句의 군집에서 연관하여 유래한다. - 12%


앵거스 그레이엄 A. C. Graham이 말하듯 '유'의 강점은 고대의 문화를 보존하는 자로서 그들이 중국 문명의 수호자로 여겨졌다는 것이고, 따라서 '유'는 개인이 중국적 문화 정체성을 통합하는데 중요한 핵심 요소가 되었다. - 15%


정치 영역에서 과거시험은 두 가지 효과를 갖는다. 첫 번째, 공정한 방식의 시험에 참여함으로 문화 엘리트의 특권적 지위는 객관적으로 승인된다. 두 번째, 문화 엘리트의 지위를 인정하는 과정에서 결과적으로 국가는 통치상의 도덕적 권위와 정치적 합법성을 획득한다. - 17%


'유'는 무엇보다도 성인의 문명 질서라는 문화적 이념을 의미했다. '유'가 일종의 문화에 근거한 범주라는 점은, 여진족의 금 왕조가 유학을 문명질서로 채택했음에도 동시에 [한족들은 유학을 통해]고유의 민족적 정체성을 보존한 데서 분명하게 드러난다. - 18%


다시 말해서 '유'는 문화 또는 문명적 이상의 수호자라 할 수 있다. - 19%


중국세계에서 학문과 문장은 본질적으로 정치적인 것이다. - 20%


요컨대, 예수회가 '유'의 정체성을 받아들이고 중국 문인들에게 '유'로 받아들여질 수 있는 바로 그 가능성은 라이어널 젠슨이 말했듯이 '유'는 실제로 '다층적 상징'이기 때문이다. '유'는 그 시대에 멈춰버린 단일하고 고정된 교리를 의미하지도, 또 한족의 문인에게 국한된 민족적 관습 역시 아니다. 대신에 최소한의 수준에서 '유'는 경전 학습의 공동체에 참여하는 것을 의미하며, '유'는 다음과 같은 것들을 상징한다. 첫째, '성현'의 학문이다(따라서 '유'는 중국의 고급문화를 표현한다). 둘째, 학식 있는 '유'의 지위와 국가의 도덕적 정당성을 전제하는, 공자에 대한 국가적 숭배 행사에 참여하는 것이다(그러므로 '유'는 유가 문인과 국가의 복잡한 관계를 함의한다.) 셋째, 부자, 부부, 형제의 계측적 친족 관계에 근거하여 통치자와 백성들 사이의 상호 돌봄 및 의무를 강조하는 도덕정치의 문명적 이념이다(따라서 '유'는 가족-국가 예법의 은유를 표명한다). 넷째, 신과 인간, 자연계의 상관관계에 대한 공유된 가정으로, 조상이 신과 같이 추앙받으며, 천지인의 조화로운 일체를 구현하는 사람을 이상적 인간으로 여긴다(따라서 '유'는 유기적인 우주론과 내재적인 종교적 감성을 나타낸다.). 마지막으로, 자기 수양이라는 평생 과업에 참여하는 것이다. 유덕한 자아는 의례적 공동체의 인간관계망 내부에 위치하며, 그 인간관계는 부모-자식의 관계에서부터 시작하기에 효는 인간다움에 대한 도덕적 표현이 된다(그러므로 '유'는 덕 윤리를 나타낸다). - 21%


우선, 가장 기본적인 언어학적 수준으로 볼 때 한자의 '人(인)'은 일반적인 사람을 가리킬 때 사용되며 이는 성중립적이다. 즉 '남성'과 일반적인 '인간'은 문자적으로든 상징적으로든 동일시되지 않는다. - 23%


서구에서 모든 인간관계보다도 신[하느님]과의 관계가 우선되어야 하고, 모든 인간관계들은 일차적으로 신과 합일되기 위한 초월적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수단이다. 이와는 대조적으로 도덕 수양의 최고의 경지로서 인은 오직 인간관계에서만 성취되고 발전될 수 있다. - 24%


인간은 관계 안에서만 그리고 관계를 통해서만 이뤄진다. 타자 없이는 나란 존재도 없다. - 25%


가족은 공적인 것과 대립되는 것이 아니라, 국가 등의 천하를 질서 정연하게 하는 근간으로 이해된다. - 25%


그리고 유교윤리학에선 사적 자아와 반대되는 절대적 타자가 전제되지 않기 때문에, 상호 호혜성과 의사소통력은 인간관계 구조의 그 기초가 된다. - 26%


남녀라는 용어가 구별적인 성역할 관계를 함의하여 인간세계에만 사용될 수 있는 반면에, 모빈과 자웅이란 용어는 생식기로 암컷과 수컷을 구별하는 날짐승과 들짐승의 세계에만 사용된다. 순자가 보기에 남녀를 사회적인 역할과 의무에 따라 구별한다는 것은 인류의 지표이다. - 28%


친족적 역할을 넘어 '여성'에 대한 규범적인 설명을 얻으려는 외부 관찰자의 시도는 현지 정보원이 계속 그 주제를 구체적인 가족, 친족의 역할을 묻는 것으로 바꾸어 이해하면서 좌절되었다. 하지만 중국 사회에서 여성은 오직 딸이고 아내이고 어머니이기 때문에 '여성'일 수 있다. - 29%


동중서는 정확하게 "양 그 자체만으로 낳을 수가 없고, 음 그 자체만으로 낳을 수 없다. 음과 양이 하늘과 땅에 함께 참여하여야 삶이 있게 된다."라고 말했다. - 40%


양은 전적으로 남성이 아니며 음은 전적으로 여성이 아니다. - 40%


퍼스는 "『황제내경』에서 의학적으로 표준적인 몸은 음과 양의 관계를 포함하고 있으므로, 양성적이다."라고 말한다. 중국 의학 이론은 퍼스가 고전 유럽 의학의 '단성'모델이라고 부른 것을 거부한다. - 41%


건강한 몸은 음과 양이 균형 잡힌 몸이지, 한 쪽이 다른 한쪽을 지배하는 몸이 아니다. - 41%


열정, 육체, 내재와 같이 여성적인 것들에 비해 이성, 마음, 초월과 같이 남성과 관련된 것들이 갖는 특권적 지위는 페미니스트의 해석에 따르면 서구에서의 성억압에 대한 이론적 설명의 기초가 된다. 그러나 이와는 대조적으로 음-양 이항은 남성과 여성 사이에 사회적 자원과 권력이 불평등하게 분배되는 것에 대한 이론적 설명의 기초로서 기능할 수 없다. 음-양과 위계적 젠더 관계의 상관관계만으로는 왜 중국 여성이 평가 절하되었는지를 대표할 수 없으며, 또 그러한 이유를 설명할 수도 없다. - 41%


초기의 용례에서 내-외는 특정한 성별에 국한되지 아니하며 주로 질서정연한 황실과 혼란스러운 외부 세계 사이의 공간적 경계를 나타낸다. 그리고 그 경계는 결국 문명적인 것과 야만적인 것의 경계가 된다. - 45%


『논어』의 공자가 말하길, "법으로 인도하고 형벌로 질서를 세우면, 백성들이 형벌만 면하려 하고 부끄러워함이 없을 것이다. 덕으로 인도하고 예로 질서를 세우면, 백성들이 부끄러워함이 있고 또 선에 이를 것이다." - 45%


최소한의 수준에서 예를 안다는 것은 자신의 위치에 따라 적절한 사회적 정치적 질서를 만들고 유지하는 방법을 아는 것이다. - 46%


내-외 이항은 두 개의 상충되고 호환되지 않는 영역을 표시하는 절대적인 공간적 경계를 묘사하는 것이 아니라, 일련의 내림차순의 동심원에서 '중심과 주변부' 혹은 로저 에임스가 말한 '중심과 장' 사이의 상대적이고 가변적인 경계에 가깝다. - 49%


순자는 계속해서 구별짓기의 중요성을 설명했다. "사람이 태어나서 무리지어 살지 않을 수 없으니, 무리지어 살면서 구분이 없으면 다투게 되고 다투면 어지러워지며 어지러우면 곤궁해진다." 남자와 여자를 외와 내라는 두 개의 다른 젠더적 영역으로 구별하는 그 행위는 질서 있고 번영하며 문명화된 사회의 시작점이다. - 51%


내와 외가 본질적으로 관계적이며 상호적이므로, 여성이 '내'에서 하는 것은 '외'에 영향을 미친다. 국가와 그 구심이 되는 아내의 미덕이 병치된 것은 『맹자』의 다음 구절에 나타나는데, 여기에서 맹자는 나라의 변화가 두 여성의 공헌에서 비롯되었다고 말한다. "화주와 기량의 처가 남편의 죽음에 대해 애절하게 곡하였기에 나라의 풍속을 변하게 하였다. 안에 있는 것은 반드시 밖으로 드러난다." 간단히 말해서 가족과 국가, 또는 내와 외는 모순적인 영역이 아니라 관계적인 영역이다. - 53%


'시민사회'나 '공공 영역'의 개념은 서구 자유주의 전통의 발명품이다. 그리고 '시민사회'의 존재를 [이상적인] 규범으로 가정하는 것은 사실상 서구의 역사적 현실을 비서구사회의 이상화된 발전 경로로 투영하고 결과적으로 대안적인 발전 모델의 가능성을 배제한다. - 53%


중국에서는 서구와 상응하는 발전이 이루어지지 않았는데, 국가와 상업, 국가와 문인의 분리가 명확하게 정의되고 이루어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 53%


당파에 대항하는 유교적 정치 이념은 역시 『서경』「홍범」에 근거하고 있는데, 여기에선 정치적 결속에 있어 당파의 부재가 필요함을 강조한다. - 54%


게다가 중국 세계에서 가족, 친족적 영역 밖의 '여성'범주는 실재하지 않는다. - 54%


중국 젠더학에서 친족 위계와 젠더 격차 사이의 연관성 문제가 중요하게 취급되기 시작했다. 그러나 삶의 모든 측면에 걸쳐 여성이 남성에 획일적으로 예속되어 있다고 더 이상 인식되지 않는다. 대신에 젠더 격차는 친족 관계라는 복잡한 망에 위치하고 있는데, 이 친족 관계에서 젠더 격차는 연장자와 연소자 사이에 존재하는 사회적 불평등의 부분일 뿐이다. 성별은 그 자체로 인생에서 자신의 위치를 결정할 수 없다. - 54%


삼종지도는 종종 남성에 대한 여성의 선천적 열등성이나 예속의 표식으로 간주되었다. 사실 중국사회의 삼종지도는 여성의 친족 지위에도 불구하고 그 예속적 지위를 강조하기 위해 종종 '삼중의 종속 혹은 예속'으로 번역되곤 하였다. 

그러나 여성의 삶의 세 단계 모두에서 여성이 남성에게 종속되는 것으로 가정하여 삼종지도를 '삼중의 종속'으로 해석하는 데 지지하는 사람들은 중국 사회의 어머니가 갖는 권위 문제에 직면하게 된다. 사회 역사적 현실에서 어머니는 어떠한 형태나 형식으로든 아들에게 종속되지 않았으며, 오히려 그 반대가 사실이다. 어머니는, 특히 과부가 되면 아들이 황제라 할지라도, 아들에 대해 막강한 권력을 가지고 있었다. - 55%


황실에서 태후의 섭정이 제도화됨으로써 모친의 권위가 더욱더 분명해졌다. - 55%


왕조에 따라 부모가 불효자에게 체벌을 가할 수 있는 정도는 상이하였지만, 부모가 가정이나 황실에서 불효자를 처벌할 수 있는 권리와 당사자의 합의 없이도 아들의 배우자를 내쫓을 수 있는 권리는 어느 왕조에서나 항상 인정되었다. - 56%


아내는 남편과 같이 [동등하게} 존중받는데, 그녀는 남편이 가진 것과 동일한 특권과 지위를 누릴 권리가 있기 때문이다. - 57%


여성의 과거에 대한 체계적이고 역사적인 기록이 부족하여 여성의 역사를 끊임없이 재창조해야 하는 서구와는 달리, 중국의 열녀 전통은 전한의 궁중역사가인 유향으로부터 최후의 왕조인 청대까지 지속되었으며 어떤 의미에서 '여성에 대한 역사적 기억들'을 만들었다. - 58%


여성의 덕행과 악행은 집안과 나라의 흥망성쇠와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다고 간주되었다. - 58%


그러자 서오는 모임에서 사용할 충분한 초를 가져올 수 없던 것은 자신의 가난함 때문이고, 그러므로 항상 일찍 오거나 늦게까지 남아 그 자리를 청소했으며 다른 사람에게 불편을 끼치지 않기 위하여 먼 구석에 앉았다고 변론하였다. 게다가 서오가 변론하였듯이, 방에 한 사람이 더 있다 하더라도 빛이 증가하거나 감소하지 않을 것이다. - 59%


"집안이 가난해야 현명한 아내를 구하고, 나라가 혼란스러워야 좋은 신하를 구한다." - 61%


리사 라팔스가 언급한 것처럼 명말청초의 유덕한 여성을 표상하는데 인지나 변통과 같은 지적인 덕목이 생략되고 효행이나 정절로 모티브가 바뀐 것은, 의도적인 보수주의라기보다는 순전히 비극적 내용이 담긴 삽화가 주는 감정적 호소력에 의해 촉진되었을 수 있다. - 62%


문文(문화의 방식)은 무武(힘의 방식)와 반대로 남성만의 특권이다. 캠 루이와 루이스 에드워드는 문과 무의 중국적 남성성에 대한 그들의 이론적 작업에서 분명하게 말하길, 서구와 달리 [중국에서] 무(무예)는 '남성성'의 표식이 아니다. 문(문명적이고 세련된 존재방식)과 비교해볼 때, 무는 말하자면 남성성의 열등한 형태이다. - 76%


명말청초에 '내'영역에서 과부 추앙에 대한 관심이 고조된 것은 '외'영역에서 정치적 충성이 강조된 것과 얽혀 있다. - 77%


다시 말하자면, 재혼 그 자체가 반드시 여성에게 있어 어떠한 자유를 의미하지는 않는다. - 78%


따라서 정이의 과부정절에 대한 진술은 절대적인 교리로 이해되기보다는 엘리트의 덕 윤리 담론, 즉 규제적인 이상으로 이해되어야 한다. 과부가 재혼하게 되면 곧 정절을 잃는다는 정이의 비유는 유덕한 아내와 충성스러운 신하 사이의 전통적인 은유를 반영한다. - 79%


그러나 오직 정절을 지킨 과부의 집안만이 노역에서 면제를 받았다. - 80%


과부의 자결과 명나라 충신의 반청 운동이 연관되었기에, 실제로 청나라 초기에 과부의 자결은 청 조정에 의해 반복적으로 저지되었다. - 80%


과부 관행은 실실적으로 서민의 부인과 그 가족들이 지역 사회에서 사회적 영예를 획득하고, 사회적 지위를 높일 수 있는 황실 조정이 공인한 대안적인 경로였다. - 81%


가난 때문에 아내와 딸을 파는 것이 줄곧 용인되었던 사회에서 과부의 강제적인 재혼을 금지하는 청나라의 법률은 사실상 연장자의 뜻에 반하는 연소자의 불복종을 승인하였다. - 81%


과부 재혼은 과부 자기 자신을 제외하고선 가족의 거의 모든 사람에게 혜택을 주었다. 새로 결혼한 과부는 연장자 서열의 원리가 적용되는 친족 위계 구조에서 새댁이라는 밑바닥 지위를 맡아야 한다. - 82%


초기 페미니스트들의 저작에 체현된 신식민주의적 관점에서 제3세계 여성은 종종 서구의 백인 자매에게서 이론화되고 구출되어야 하는 대상으로 간주되며 차례로 서구의 백인 여성은 어떤 지역적 전통에도 구애받지 않는 자율적이고 도덕적인 주체로 간주된다. - 82%


따라서 손상되고, 쓸모없는, 꽁꽁 감싸진 한 쌍의 발은 가문의 부유함을 상징하였는데, 전족을 한다는 것은 가계 경제에서 여성 구성원의 나태함 정도는 기꺼이 감당할 수 있는 형편임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 83%


그것은 또한 지위의 표식이었으며, 사회적 인정의 표식이었다. 왜냐하면 가난한 집안의 남자들은 문학을 배울 수 없었고, 여성들은 전족을 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 84%


요컨대, 유교 세계에서 문학과 예절의 학습은 교양 있고 도덕적인 존재를 향한, 평생 이루어져야 할 자기 수양 과정의 기점이다. - 84%


그러나 서구가 윤리적 이론의 유일한 공급자이며 나머지 세계는 해결되길 기다리는 도덕적 문제라는 관점 아래에서 유교와 페미니즘이 양립할 수 없다고 가정하는 것은 페미니즘을 가장하여 인종적인 위계질서를 강요하는 것이다. - 87%


그러나 문화에 대한 진정한 이해가 결여된 상태에서, 페미니스트들은 또한 그들이 이해하고자 하는 바로 그 주제와 그 주제의 주체들을 지워버린다. 백인 남성과 백인 여성 사이에서 발견되는 주변화 패턴이 초국가적 페미니스트 담론에서도 동일하게 영속되는데, '서구 여성'의 주체성과 근대성은 전통에 묶인 '제3세계 여성'의 희생과 대조되고 있다. - 89%


사회적 관계 속에 자기 자신을 정위시키지 않으면 사람은 실존적 존재가 되지 못하며, 그러므로 이 세계에서 완전한 인격체가 되지 못한다. 이러한 [실존적] 출발점은 철저히 유교적인데, 그것은 유교의 성취되는 인격성과 전적으로 일치하기 때문이다. 유교적 관점에 따르면 사람은 오직 특정한 사회적 관계와 역할-가족 관계 역할로부터 시작하는-로 실현될 수 있는 특정한 사회적 덕목을 체화했을 때에만 '사람'일 수 있다. - 90%


그러나 사람이 사람이게 하는데 있어 어떠한 자격조건이 없다는 일종의 형이상학적 근거를 거부한다면, 사회적 관계의 중요성은 반드시 자아의 '일부'가 아니라 자아의 바로 그 '본질'로서 구체화되어야 한다. 다시 말해서, 사람은 오직 관계-내-존재일 때만 사람이다.  - 90%


효는 최소한의 수준에서 인간다움을 향하는 관문이다. 타인에 대한 진정한 돌봄은 인간이 되는 출발점이며, 그러한 점이 생략되고선 어느 누구도 그 자체로 대가를 받을 자격이 없다. 한 마디로 유교에서는 아무런 조건 없이 받을 자격이란 없다. - 90%


부모와 자식 사이의 타고난 관계에서 발견되는 효심을 이방인에게까지 확장함으로써 추상적인 사람에 대한 단순한 존중으로서가 아니라, 타자에 대한 진정한 돌봄이 성취되고 '보편화'될 수 있다. - 91%


자기가 관심을 기울이고 관계를 맺는 권역이 확대될수록 자아도 확대된다. - 91%


유교세계에서 사회적 관계는 본질적으로 위계적인 것이 사실이지만, 그 자체로 호혜적이고 상호보완적이기도 하다. 예를 들어 부자 관계에서 아버지와 아들은 사회적으로 불평등하지만, 아들에 대한 아버지 권위의 정당성은 아버지와 아들이 서로에 대해 실천하는 호혜적인 돌봄에 달려 있다. - 92%


나는 페미니스트이자 중국인으로서 그러한 긴장을 풀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동시에 나는 내 자신의 문화적 정체성을 우선시해야 한다는 강박감을 느낀다. 왜냐하면 여성이 몰역사적이고 몰문화적으로 있는 이론적 공간에서 나는 길을 잃어버렸기 때문이다. - 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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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풍오장원 2024-02-01 19:5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자기합리화와 변명하는 부류들을 정말 싫어하는데, 알라딘에서 페미니즘을 말하는 집단들을 보면 그게 느껴집니다.
그리고 남을 가르치려 하는건 좋은데 너무 그러면 같잖아 보일수 있다는 점도 알았으면 좋겠습니다...

별족 2024-02-02 06:55   좋아요 1 | URL
사실, 저는 세상 모든 글이 ‘자기합리화‘와 ‘변명‘이라고 생각합니다. -_-;;;; 내가 이렇게 살고 있는데, 이렇게 생각하고 있기 때문이야, 뭐 이런 식.
서구식 사고방식은 명쾌하고, 또 대결에서 이겼기 때문에, 젊은이가 혹할 수 있지,라고 생각하면서도, 역시 다시 한 번 더 생각해보라고 하고 싶습니다. 그런 면에서 저도 가르치려고 하는 거고 ^^
아인슈타인이 불확정성 이론은 말도 안 된다고 절대 용납할 수 없다고 젊은이들이랑 싸우는 건, 뉴턴역학의 세계에 사는 사람이 상대성 이론을 이해하지 못하는 거랑 같은 거라서, 안타까우니까요.
내가 뭔가를 이해하지 못할 때, 그런가, 뭘까, 갸우뚱하고 물러서면 될 일인데.
스스로의 옳음을 명백하게 믿는 사람들은, 이걸 관철시키려고 전쟁이라도 불사할 것처럼 점점 더 강경하게 말하는 거 같습니다. 그럼 스스로도 자신의 말에 갇혀 버리는데요.

추풍오장원 2024-02-02 07:55   좋아요 1 | URL
페미니즘을 싫어하는 사람을 어떤 논리와 근거로 여성혐오주의자로 낙인찍는걸까요.
자기가 보기 불편하거나 거슬린다고 발화 자체를 차단하고 싶은가 봅니다.

별족 2024-02-04 07:33   좋아요 1 | URL
사실, 입 닫게 하고 싶은 마음은 저도 있습니다. 그런데, 할 수 없다는 걸 알기 때문에 그저 다시 한 번 더 말하거나 그러는 거죠. 그런데, 동조자가 있다는 생각이 들면, 힘으로 강제할 수 있다고 생각하니까, 더 과격해지는 거죠.
그런 면에서 파시즘이나 나치즘이라고 조롱당하게도 되고요. 여성들이 고양시키는 문화,가 논리나 합리가 아니기 때문에 더 휩쓸리게 되는 것도 같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