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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수 아비가 딸의 수행평가용 서류를 만들어준다. 수시로 대학에 들어간다. 

검사 아비가 아들의 학교폭력시비를 대법원까지 끌고 간다. 정시로 대학에 들어간다. 


무언가 지금 양 극단의 정치지형 안에서 악용하는 대표선수를 보고 있는 듯 전형적이다. 


시험이 전부가 아니니, 구구절절 서류를 보탠다. 학생이 얼마나 성실하고, 착실하고, 능력있고, 다종다양한 경험으로 노력했는지. 교수인 아비는 자신의 능력을 통해 아이의 서류에 구색을 맞춰준다. 불법은 아니지만 꼴사납다. 


학생이 공부만 잘하면 되지, 수능 100프로로 대학에 간다. 갈 수 있었던 데에는 친구를 괴롭히고도 반성하는 노력은 내팽개치고, 좋은 학교에 악착같이 적을 걸어두기 위해 검사인 아비는 자신의 법률적 지식을 동원해서 아이의 처분을 지연시킨다. 불법은 아니지만, 용서하기 어렵다. 


권력은 두 그룹간에서 왔다갔다 갈짓자로 움직인다. 

입시는 정시 100프로가 옳으니, 수시가 필요하니 또 갈짓자로 움직인다. 

권력을 가진 자들이, 자신이 가진 권력을 나쁘게 쓰기로 하면, 그걸 통제할 방법은 과연 있는가. 


어떤 제도든 부작용은 있고, 여기에는 이런 부작용이, 저기에는 저런 부작용이 있다. 

착하고 좋은 보통의 사람들은 부끄럽게 여길 일들이 이 제도가 강화되면 아무렇지 않게 하는 사람들이 생기고 다시 제도는 다른 쪽으로 당겨진다. 다른 쪽으로 당겨지면 다시 또 다른 식으로 부끄러울 짓을 아무렇지 않게 하는 사람들이 뻔뻔하게 고개를 쳐든다. 다시 다른 쪽으로 제도는 당겨진다. 

인간은 그럴 수 밖에 없는 것인가. 

자신의 삶을 계속 곱씹으면서 그렇게 살아갈 수밖에 없는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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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를 위한 전기요금 인상인가'(https://www.khan.co.kr/opinion/column/article/202303060300035)를 봤다. 

'에너지 요금 인상, 정말로 필요한가'(https://www.khan.co.kr/opinion/column/article/202303080300035)도 봤다. 


전기요금을 올려봤자 많이 쓰는 놈들은 압력을 안 받을 테고, 적게 쓰는 사람들만 고통받는다. 전기요금을 올려봤자, 기업의 이익은 주주들에게 간다,고 말하는 첫번째 글을 본 답답함이 채 가시기도 전에, 에너지는 공공재고 가치재니 비필수 분야의 절약과 국가의 세금 투입으로 요금은 올리지 말아야 한다, 는 두 번째 글을 봤다. 


많이 쓰는 사람들이 압력을 받는 누진요금이 있었는데, 폭염이 두 번쯤 지나고 없어졌다. 누진요금이 없어지고 나니, 생활가전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고 있는 중이다. 누진요금이 사라질 때, 에어컨이 필수,라고 했었지. 지금은 건조기와 식기세척기와 로봇청소기가 필수 가전으로 들어오고 있다. 사람의 삶이 거기 맞춰지고 나면 필수가 되겠지. 전기 없던 삶을 아예 기억하지 못하는 것처럼, 냉장고나 세탁기 없이 살던 두 세대 쯤 전이 아득하게 느껴지는 것처럼 말이다. 

필수,라는 말은 가져다 붙이기 나름이고, 많이 쓴다와 적게 쓴다,는 상대적인 개념이고, 우리 나라는 지금도 전기를 충분히 많이 쓰고 있다. 


요금을 올리지 말자는데, 어쩌자는 것일까.

에너지요금은 에너지에만 국한되는 게 아니다. 전기요금이 싸면, 전기를 쓰는 방식으로 삶을 바꾼다. 집에 콘센트만으로 존재하는 것들을 만들기 위해 자원이 들어간다는 걸 왜 모르는 체 할까.  

도대체, 필수적인 에너지 사용은 어떻게 정의하려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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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랑 통화하는데, 친구가 "똑같이 사랑도, 지원도 못 할 거면서 왜 셋씩이나 낳는 거야!"라고 말했다. 세 아이의 엄마인 나는 "야, 어떻게 똑같이 사랑한다니?"라고 반문한다. 

친구는 삼형제 중 둘째인 자신의 남편이, 가족과 송사 중인 그 연예인 같다면서 한참을 이야기한 다음이었다. 

부모는 자식을 똑같이 사랑할 수가 없어. 그리고, 큰 아이라고 그게 좋겠어. 상황마다 사정마다 다 달라. 나는 첫 아이한테 주는 건 다 사랑인 줄 알고 줬던 그 사랑이 미안했다고, 내어놓으면 깨질 무엇인 것처럼 참 이것저것 못 하게 했다고 말했다. 둘째가 태어나고, 둘째한테는 첫째보다 관대해진 게 있다고. 그리고 셋째는 또 셋째대로 태도가 다르다고 내 자신을 항변한다.

둘째는 위로도 아래로도 형제가 있다. 전적이지 않은 부모의 사랑을 짧게 독점한다. 둘째가 태어나면 첫째는 엄마를 빼앗긴 기분이 되니 첫째를 살피라는 조언도 참 많으니 그 사랑은 첫째와 나눠가지는, 첫째와는 다른 사랑일 수밖에 없다. 그런 사랑인 데도, 셋째가 태어나는 순간 다시 변한다. 막내인 셋째가 가지는 그래도 끝까지 말해보자,는 태도가 둘째에게 없다. 

가족과 송사 중인 연예인 덕에, 나도 내가 집에서 어떤지 내 자신을 관찰했다. 딸 셋에 막내가 아들인 집에 둘째인 나는 엄마랑 있으면 엄마한테 찰싹 붙어서 엄마 심부름을 한다. 언니는 방에서 충분히 늘어져 있다가, 엄마가 차린 밥을 먹고, 나나 동생이 있다면 부러 부엌에는 가지 않는다. 셋째는 적당히 적당한 수준, 에 내가 엄마가 시키는 일을 하는 수동적인 존재라면, 동생은 자기가 뭔가 하고 엄마에게 청하는 능동적인 방식이다. 이런다고 해서 내가 엄마 말에 꼼짝 못하고 엄마 말만 듣는 건 아니고, 나는 항상 '스스로를 보호하라'파 이기 때문에 내가 억울할 때까지 하지는 않으니까, 그 연예인처럼 가족과 사이가 틀어지지는 않는다. 가장 큰 차이는 내가 그만큼 돈이 없지. 

엄마는 내가 졸업하고 취업했을 때 월급을 주면 잘 저축했다 주겠다고 하셨었다. 그렇지만, 나는 흥,하고는 내가 가졌고, 결혼도 내 맘대로 내가 정해서는 내가 원할 때 했다. 

나는 약간 관심의 바깥인 둘째인 걸 좋아한다. 부모에게 억울하기 보다, 부모는 부모, 나는 나,의 태도가 있고, 큰 기대도 큰 실망도 없는 기대 밖의 존재인 내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씩씩하게 지금껏 살아가는 것이 맘에 든다.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는 일방이 아니다. 손바닥도 마주 쳐야 소리가 나고, 관계가 잘못 되었다면 바로잡기 위해 변해야 한다. 나는 잘못이 없고 상대가 변해야 한다,나 상대는 잘못이 없고 나만 변해야 한다,라는 관계는 없다. 

 

미워하는 마음을 키우면서, 마음 속에 억울함을 키우면서, 나 아닌 존재들에게 기대하면서 그렇게 살아갈 필요는 없다. 관계에서 언제나 자기 자신을 가장 우선에 두고, 상대도 그 자신이 가장 우선임을 잊지 말고, 오직 내 마음만 내 마음대로 할 수 있다는 걸 알아야 한다. 부모도 자식도 내 마음대로 안 되고, 사람이 달라지면 관계도 달라진다. 세상에 똑같은 사랑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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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에 검색하려는데, 검색창 아래 '한국남녀 임금격차'가 있길래 눌러봤다. 

제일 위에 올라온 기사는 '한국남녀 임금격차 26년째 OECD 1위 '(https://www.segye.com/newsView/20221204507705?OutUrl=daum)라는 기사다. 


브런치에 올라온 '우버(Uber)의 남녀 임금격차-긱이코노미는 평등한 남녀임금을 실현할 수 있을까'( https://brunch.co.kr/@nakmin2002/16) 까지 궁금해서 봤다.


밖에서 볼 때는 화가 났었던 것도 같은데-너무 오래된 일이다-, 안에서 볼 때는 시큰둥하다. 


가족임금을 지급하는 것이 가족을 꾸린 기혼 남성에게 유리한 제도,라는 비판을 여성주의 세례를 받은 대학 때 이미 들었었지만, 가족이 있거나 없거나 회사가 무슨 상관이야! 일한 대로 줄 거야!라면서 신경도 안 쓰는 회사는 정떨어질 거 같다. 

아이가 아파서 휴가를 내야 해요,라고 말할 수 있는 회사가 더 좋은 회사인데, 급여에서 출산축하금도 주고, 동일직급에 동일노동을 하지만, 아이가 있는 아빠에게 혹은 엄마에게 가족수당을 더 주는 게 왜 문제삼을 일인가? 싶다. 


연공서열에 따른 임금제도가 남녀임금격차를 만드는 가장 큰 원인임을 알고 있지만, 그렇다고 해서 연공서열 없는 성과급제도를 찬성할 수가 없다. 호봉제가 있는 직장은 시대에 뒤떨어진 인상이라는 걸 알고 있지만, 3년 일한 직원이 신입보다 급여가 작으면 화가 나는 게 또 사람 마음 아닌가. 


여자인 나는, 이만큼만 벌어도 먹고 사는데 불편 없는데, 왜 더 번다고 애써야 하지?라는 축이라서, 차라리 시간을 줄이고 돈을 덜 받고, 집에서 애들을 좀 더 기다렸으면 하고 바랐다. 그게 나의 선택이었기 때문에, 저런 식의 말들에 흔들리지 않는다. 


호봉제의 직장, 가족수당을 주는 직장이 시류에 뒤떨어진 어떤 형태처럼 보인다는 걸 알고 있지만, 그런 직장이 오히려 맘 편한 직장이란 걸, 저런 기사를 마구 퍼다나르는 사람도 알고 있지 않을까. 

호봉제는 과연 없어져야 하는 걸까. 근속년수가 짧은 게 직장에는 어떤 불이익으로 작용하지는 않나. 서로의 필요에 의해 일어나는 어떤 방향이 있는 게 아닌가. 


두번째 기사에서 여자들이 어떤 식으로 일하는지 드러난다. 밤 늦은 취객을 태울 때 더 돈을 벌 수 있다. 더 빨리 달리면 더 돈을 벌 수 있다. 그렇지만 여자는 그런 일을 선호하지 않는다. 


어떤 상황이든 이유들이 있다. 

그걸 뭉뚱그려서 부끄러워하라고 한다 한들, 뭐 안 부끄러워할 테다. OECD 꼴등? 뭐? 그래서? 뭐?

시대가 변하는 중이라 얼마나 오래 더 호봉제가 있을지 모르겠다. 이런 목소리,가 커질 수록 호봉제도 가족수당도 사라지겠지, 싶다. 내가 그래도 좋은 시절에 회사생활했구나,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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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풍오장원 2022-12-24 19:2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임금격차의 문제를 지적하며 호봉제를 없애려는건 그냥 남녀 공평히 저임금을 받게 하자는 것과 동일한 말이지요.

별족 2022-12-27 06:49   좋아요 1 | URL
임금격차의 문제를 지적하며 호봉제를 없애라고, 하는 건 아닌데, 실제 왜 그런지에 관심없이 저런 식의 말들을 하는 건 정말 이유를 모르겠습니다. 실상을 자세히 들여다보려는 노력 없이, 피상적인 내용들로 크게 주장하는 것 때문에, 뭔가 지금 여성주의가 동력을 얻는 거라는 음침한 생각도 합니다. 지금의 소비주의나 가차없는 능력주의에 잘 들어맞아서요.

별족 2022-12-28 09:55   좋아요 1 | URL
직업의 형태, 일자리의 형태가 달라지고 있고, 조직이 약화되고 있는 중인 것도 같고, 그런 식으로 조직이 약화되고 일자리의 형태가 달라지는 것이 계급? 계층? 신분을 고착화시키는 것도 같고, 복잡하고 어렵습니다.

추풍오장원 2022-12-28 20:23   좋아요 1 | URL
피라미드 구조의 조직이 점점 약화되고 일자리의 유연성이 높아질수록 사회의 계급은 고착화되고 공고화되는게 아이러니하지요.
 
[포르노랜드] 당신도 역시 그 스펙트럼 내에 있다

정리한 책 중에 포르노에 도전한다,(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153926)라는 책이 있다. 


스무살 무렵에 구해 읽은 책은 묘한 동감과 또 다른 생경함이 있었다. 

자유를 누리려는 사회에 진입한 여자인 내가 가지는 불만들-뭘 그렇게 다 하지 말래!!!짧은 옷도 입지 말고, 담배도 피우지 말고, 남자들이랑 놀지도 말고-과 충돌하고 무언가 삐걱거리는 기분을 느꼈다. 책 속의 어조의 강경함에, 그만큼 공감하지 못하면서 읽었을 거다. 기억이 안 나는데, 정리할 때 보니 밑줄이 있더라.

내가 사는 세상은 음란죄(https://ko.wikipedia.org/wiki/%EC%9D%8C%EB%9E%80%EC%A3%84)가 존재하고, 95년 연세대의 마광수 교수는 소설-그저 텍스트로 묘사했다고-을 쓰고 사회적 지위를 잃었다. (https://100.daum.net/encyclopedia/view/54XX72900091)

내가 이런 나라에 사는데, 허슬러와 플레이보이가 유통되고, 포르노가 산업인 나라에서 쓰여진 책을 읽으면서 무슨 생각을 했을까. 

그래, 나는, 아, 이 책은 음란죄가 있는 우리나라를 롤모델로 삼고 있는 거야,라고 생각했다. 이 책을 쓴 사람은 아마 우리나라의 어떤 제도나 상태들을 동경하고 있구나, 라고. 

비키니를 입고 강남대로에 오토바이를 타는 여자가 공연음란죄?로 처벌받을 수 있는 나라가 우리 나라다. 포르노가 불법인 나라다. 


이런 나라에서, 이미 충분히 너무나도 엄숙한 나라에서 무엇을 기대하면서 저런 강경한 주장을 퍼나르는 거지?라는 게 나의 의문이다. 뭘 바라는 걸까. 이미 불법인 나라에서. 포르노가 합법인 나라에서 불법으로 만들기 위해 하는 주장들인데. 

아이유나 설리가 롤리타 컨셉으로 장사한다고 시비거는 데 쓸모가 있으려나.

스펙트럼,이라고 하면서 아예 초장부터 잡으시려고 그러는 건가. 

초장부터 뭘, 잡아서 세상을 어떻게 바꾸려고 그러는 거지. 의문이 계속 생긴다. 




최근 서재에 '포르노랜드' 서평이 올라오고 있다. 여성학 책 다시읽기, 도서인데, 그 서평을 보고 썼는데, 북플에는 먼댓글인 게 보이지 않아서 책을 찾아 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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