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짐이 많아서 이북을 기다리고 있다가, 언니한테 사달래야지, 하고 주문해 놓았다. 기다리는 중이다. 

1. 표류사회

쎄인트(saint)(https://blog.aladin.co.kr/bp/nurimaru)님이 남긴 북플 소개글을 보고 따라 들어간 책 소개를 보고 읽고 싶었다. 

대학시절 페미니즘을 만나고 사회생활을 하면서 점점 멀어져 지금 저녁마다 논어를 따라 쓰고 있는 내가 생각하는 어떤 지점이 언어화되어 있을 거라는 기대를 하고 있다. 

한국철학을 전공한 여성학자가 아이를 낳아 기르면서 페미니즘을 만나서 한국사회의 여성인식에 대해 썼다. 

서구 페미니스트의 세상인식에 뜨악해지던 나의 어떤 날들이(https://blog.aladin.co.kr/hahayo/10530930https://blog.aladin.co.kr/hahayo/12131800https://blog.aladin.co.kr/hahayo/12575630) 정연한 말로 표현되어 있을 것을 기대하면서 기다리고 있다. 


2. 젠더

서양 페미니스트의 책에서 느끼는 생경함은 이분법적 학문의 구조를 그대로 따른다는 데 있다. 남자와 여자, 육체와 정신, 그게 언어적으로 구분하기 위한 말이지, 실상은 하나하나 만나면서 정의해야 하는 거라고 생각하는 나는, 남자와 여자라는 말의 이분법이 확장되어, 나는 남자도 여자도 아니라고 주장하거나, 자신의 정신이 만만찮게 우월하다는 주장을 하는 건 기이하다고 생각한다. 

보부아르는 육체와 정신의 이분법을 스스로에게 확장하여, 그 이분법에 더하여 위계까지 받아들여서는 여성의 육체적 제약을 무시하는 말들을 거침없이 쏟아놓고, 여느 남성학자들이 하는 것처럼 여성들을 착취했다고 생각한다. 

버지니아 울프는 육체와 정신의 이분법 안에서 자신의 정체성이 주는 어떤 한계를 받아들이는데 실패한 것은 아닌가,라고 생각한다. 

여성과 남성, 육체와 정신, 이성과 감성의 이분법 사이에 위계라는 것은, 서양철학이 가져온 지금까지의 기반이라고 생각하는 나는, 이반 일리치의 젠더 책 소개를 보고 읽고 싶었다. 나는 일체성에 대해 말하던, 에코 페미니즘에 고개를 주억거리는 태도로, 도대체 어떻게 각각을 떼어놓겠다고 아무 말이나 한다는 건가. 생물학적 성과 문화적 성을 구분하려는 시도의 무용함에 대해 말하는 책이라고 한다. 신체를 벗어놓을 수 없는데, 내가 내 육체의 제약 안에서 사고하는 게 뭐 어때서? 그건 당연하고 자연스러운 거지. 

기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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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속에서 만난 탄압이나 검열의 순간이다. 적고 보니 일관성은 없지만, 국가는 살아낸 다음에 있는 존재이기는 하지만, 국가없는 삶이란 지나치게 위태롭다. 다양한 인간의 삶은 국가보다 앞서지만, 국가는 그 다양한 인간의 삶을 포용하면서도 스스로 강경하게 존재해야만 한다. 


1. 다산, 자네에게 믿는 일이란 무엇인가

조선 천주교 잔혹사,가 배경처럼 묘사된다.

나에게 주어진 적 없는 권력을 상상하고, 내가 왕이었어도 그렇게까지 탄압했을까, 생각한 적이 많다.

중학교 때, 갔던 해미읍성이나, 천주교 순교자에 대한 이야기를 들으면서도, 그렇게까지 잔인한 방식의 탄압에 대해서 생각하는 거다. 왜 죽이기까지 했을까? 

이 책을 읽을 때 놀랐던 것은, 그저 천주교를 믿기만 해서 죽음을 당한 것은 아니었던 거다. 울분에 사로잡혀, 서양을 천국으로 상상한 신자들은 사람을 보내, 서양의 군대가 조선을 복속시키기를 청했다고, 혹은 청하려고 했다고 한다. 그저 인간의 방식 중에 하나일 뿐인데도, 신에 대한 믿음과 신의 왕국인 서양의 평등한 세상을 상상하고-인디오는 인간인가?라는 논쟁을 하는 존재들인 줄은 모르고- 군대를 보내 탄압받는 천주교도를 해방시켜달라고 청했다고. 와, 내가 왕이라도 큰 벌을 줬겠는걸,이라고 생각하면서 읽었다. 

 

2. 문체반정

정조는 문체를 통제했다.

연암의 책들이 금지되었고, 소설체 문장을 쓰는 문사들은 발탁되지 못했다. 

두 권의 책은 문체반정에 대해 다룬다. 역사적 맥락에 대한 분석서와 소설.

교과서와 사회과학책, 인문과학책을 읽다가 소설을 읽으면 신이 나는 순간들이 있다. 소설이라고 해도, 무언가 말하고 싶은 바가 이야기의 형태로 나에게 온다. 

기득권자에게 위험해 보이는 이야기도 살아가는 중에 벌어지는 모순들도 소설은 가리지 않고, 사람들은 체제나 제도 때문이 아니라, 비어있는 공간에서의 삶 때문에 소설들에 끌린다. 사람은 이름이 없어도 살고, 나라가 없어도 살고, 법이 없어도 살고, 삶은 복잡하다. 끊임없이 변하고 있다. 법도 제도도 국가도 삶의 변화무쌍함을 따라잡을 수 없고 통제할 수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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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호랑이 2021-08-16 08:23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별족님 말씀처럼 한국천주교회사에서는 프랑스 함대를 청하는 초대 신자들의 행동에 대해 거의 언급하지 않기에 일반 신자들은 잘 모르는 경우가 많습니다. 단순히 제사 거부로 인한 가혹한 탄압 정도로 인식하지만, 내용을 들여다보면 그렇게 간단하지 않은 문제라 여겨집니다. 개인 신앙의 자유와 국가 체제 유지. 둘 다 소중한 가치임이 분명하지만 둘 중 어느 가치에 우선을 두는가와 지키기 위해 무엇을 내놓을 수 있는가는 사람마다 다른 듯 합니다...

별족 2021-08-17 06:53   좋아요 2 | URL
예전에 ‘논어 세 번 찢다‘에서 ‘종교로 통합하고 정치가 분열된 서양의 방식보다 정치가 통일되고 종교가 분열된 동양의 방식이 더 낫다‘는 말을 봤는데, 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https://blog.aladin.co.kr/hahayo/10881133 ) 제가 참으로 정치적인 인간입니다.
 

알라딘을 어슬렁거리다가 이렇게 나란한 두 권의 책 표지를 봤다.

서양에서의 저자의 무게라는 이렇게 거대한가 싶어 새삼 놀라면서 다른 책들도 찾아보았다.

 

 

 

 

 

 

 

 

 

 

 

 

 

거의 디자인 상 차별점이 없는데,  원서에 저자 이름이 더 잘 보이게 편집되어 있다.

 

 

 

 

 

 

 

 

 

 

 

 

 

 

 

 

 

 

 

 

 

 

 

 

 

 

 

 

 

 

 

 

 

 

 

 한국저자의 책이 번역출판되는 상황이 궁금해서 추가.

 

 

 

 

 

 

 

 

 

 

우쭐한 태도가 드러나는 것일까. 자아에 대한 감각이 다른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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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를 위한다는 착각, 을 읽었다.(https://blog.aladin.co.kr/hahayo/12746420) 아직 내 자신에게 대답하지 못한 질문들이 남는다. 

어쩌면, 이게 모든 인류(아직 문명사회의 풍요를 누리지 못하는 미개발국가의 사람들)를 풍요를 누릴 수 있는 같은 종으로 생각하는 서양인이 생각해낸 답인지도 모르겠다. 

내가 종말론적 확경주의에 가졌던 어떤 경계심리가 -이미 부유한 나라들이 무얼 할 수 있지?라는 질문들 같은 거- 다시 확인된다. 생존이 있어야 다음이 있고, 안전이 있어야 다음이 있는 거라는 생각을 하고, 그래서 찾은 서양인의 답이라는 생각을 했다. 기후양치기, 서식지 경쟁, 에너지 밀도, 에 대한 말들을 배운다. 


1. 고릴라 이스마엘(https://blog.aladin.co.kr/hahayo/603247)

이 책을 읽을 때 많이 무서웠다. 

서양사람들의 어떤 태도에 대해 더 많이 생각했다. 전 지구적으로 경계가 사라진 지금의 세상에서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어떤 태도가 필요한지 갈피를 잡을 수가 없다. 











2. 행복의 경고(https://blog.aladin.co.kr/hahayo/9118347)

재미있게 읽고 서평도 남겼다. 

역시, 동서양의 태도 차이가 많이 드러나서 그런 생각들을 많이 했다. 












3. 모성혁명 

오래 전에 읽었고, 나쁘지 않았지만, 껄끄러운 부분이 있어서 서평은 쓰려다가 결국 못 썼다.  

생태학자 여성이 아이를 임신하고, 자연과 연결된 자기 자신에 대해 말하는 책이다. 좋았고, 친구들에게 권하기도 했지만, 마음에 걸렸던 부분은 모순들이었다. 

오염된 물에 대해서 한참을 이야기하고, 그 물이 아기에게 간다고도 말하는 그 장에 잔뜩 사다놓은 생수병 사진이 있었다. 나는, 물이 오염되고, 엄마의 젖이 오염되고, 아이는 그 젖을 먹게 되,라는 말을 들어도, 어쩌겠어, 내가 그런 걸, 이라면서 받아들이는 입장인데, 이 사람은 생수를 사다가 쌓아놓은 거다. 이러면 안 되는 거 아닌가,라는 묘한 경계심이 생겨서, 그 인상이 꽤나 크게 남아서 아무 말도 쓰지 않았었다. 



동생이 준 아이들의 환경책을 내가 읽고도 인상을 남겼다.(https://blog.aladin.co.kr/hahayo/12646559 ) 

 

말로 너무 멀리까지 나아가는 서양의 방식에 적응하지 못하는 순간이 많다. 말이 행동과 같아야 해서 항상 조심하라는 태도가 강조되는 동양에서는 늘 내가 하는 말이 번데기 앞에서 주름잡는 일일까봐 조심하는데 말이다. 성큼성큼 얄팍하면서도 강경하게,  행동을 보아서는 저렇게까지 말하면 안 되는 사람들이 세상을 향해 크게 외친다. 타노스와 다를 바 없는 태도 같아서 깜짝 놀라는 어떤 말들을, 이면에 혹시 그런 게 있나 싶은 어떤 말들이 내게 닿는 순간이 있다. 

극과 극은 통하고, 말들의 강경함은 나를 물러서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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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 6일과 7일 아이들의 학교가 재량휴업일이었다. 휴가를 내고 친정엘 갔더니 앞선 휴일에 들렀다는 동생이 아이들의 어린이날 선물이라고 종이백에 책과 이것저것들을 넣어주었다. 환경직 공무원인 동생의 선물이다. 무엇이든 해야 하는 마음과 충돌하는 삶은 누구에게나 있을 테고, 나는 아이들의 책을 꺼내 읽는다. 모두 서양인 저자들의 책-https://blog.aladin.co.kr/hahayo/603247 , 나는 고릴라 이스마엘을 읽고 피식민지 동양인이었던 감정으로 서양인에 대한 두려움에 대해 쓴 적이 있다.-이다. 다시 식민지가 될 수는 없는데, 라는 충돌하는 감정이 닥친다. 야만에 굴복했던 문명인이 야만을 학습할 수밖에 없는 아이러니 가운데, 다시 그 야만이 뒤늦은 문명을 가르치고 있다는 생각을 하면서 삐딱하게 읽는다. 아무리 시스템과 체제와 위기에 대해 말해도, 두려움이 더 크다. 물러설 수가 없다,는 생각을 하는 거다. 


1. 기후에 관한 새로운 시선

중3인 딸의 종이백에 있던 책. 6개월 간 열심히 공부하고 썼다는 일러스트가 많이 들어간 책이다. 정치와 시스템에 대해 말하는데, 나는 정치와 시스템에 대한 확신이 없다. 왜 사회주의가 실패했는가?(실패했다고 하지 않을까?)에 대한 고민이 빠진 거 같다. 사회주의는 실패했고, 자본주의는 위태로운데, 환경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자본에 대항해야 한다는 말은 뭔가 공허하다. 민주주의 국가의 시민이 하는 정치적 선택이 과연 환경에 이로운가, 회의하는 순간이 훨씬 많다. 더 싼 전기요금에 대한 요구가 더 환경친화적인 전기생산에 대한 요구보다 클까? 

개개인의 행동을 요구하는 것-분리수거, 일회용품줄이기-이 개개인의 만족을 높이지만, 실질적인 효용은 없다고 산업과 시스템이 문제라는 말이 나는 공허하다.  

 

2. 내일을 지키는 작은 영웅들 

초5인 둘째 가방 속에 있던 책. 드라마틱한 순간과 사람을 묘사하는 이야기. 

가득 들어찬 화려한 문화 가운데, 역시 또 냉소적이 된다. 새우양식을 위해 해안가의 맹그로브 숲을 파괴하는 것에 저항하는 운동가, 원자력발전소에 저항하는 운동가, 벌목에 반대하다가 살해당하는 운동가, 운동가들의 이야기에 나는 말하기 어려워진다. 결국 사라질 것들인가, 싶어서. 나도 나의 아이들에게 자연과 함께하는 삶의 방식을 가르치고 있지 못하다. 도시는 아니지만, 도시인처럼 살고 있고, 아이들은 많은 시간 유튜브를 본다. 또래가 보는 문화 안에서, 지금 저 운동가의 삶의 방식은 다음을 상상할 수 있는지 모르겠다. 인간은 티끌처럼 작고, 다음을 상상할 수 없다면, 무슨 소용인가 싶은데, 숲이 잘려나가는 것을 자신의 아픔으로 느끼고 저항하는 어떤 삶의 태도가 다음 세대에 전해지고 있는지 모르겠다.  

 

3. 내일을 바꾸는 작지만 확실한 행동

초2인 셋째 가방 속에 있던 책. 그림이 들어갔지만 글밥도 많다. 서양인 저자의 책이고, 어쩌면 태도를 가르치기 위해 이런 저런 짧은 글들을 담았지만, 내가 보기에는 역시 부족하다는 인상을 받는다. 서양인이 쓴 생태주의 책에서 보이는 어떤 단정적인 태도, 자신만만함이 나를 물러서게 한다. 서양인이 쓴 동화에서 묘사되는 공포스러운 자연,과 다른가, 생각한다. 



노력하는 중일 텐데, 나는 겁이 난다. 인간을 위해서 환경도 자연도 지켜야 하는데, 언제나 경계가 분명하고 적이 필요한 사고방식 가운데, 나같이 미적지근한 사람을 용납하지 않을 것 같다고도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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