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티븐 프라이의 그리스 신화 스티븐 프라이의 그리스 신화 1
스티븐 프라이 지음, 이영아 옮김 / 현암사 / 2019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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뒤죽박죽 들어본 이야기들이다. 책을 쓰라면 못 쓰고, 말을 하려면 버벅거리겠지만, 어디서 들어본 듯한 이야기들이다. 읽는 데 오래 걸렸다. 

책은, 이런 경로로 선택되었다. 

정치적 올바름에 대하여, 라는 책을 읽고(https://blog.aladin.co.kr/hahayo/12850004) 그 중에 스티븐 프라이,라는 사람의 말이 어쩌면 나의 태도 같아서 그 사람의 책을 읽어보자 싶었다. 

이야기는 하나인데, 이야기를 말하는 사람의 정치적 태도가 드러난다. 

정치적 올바름에 대하여, 토론하던 책에서 스티븐 프라이는 언어가 지금에 이르게 한 것이 존재한다고 믿는 자유주의 아나키스트, 같은 느낌이었다. 언어를 존중하기 때문에, 언어를 교정하려는 PC주의에 반대한다는 인상을 받았다. 

그리스신화,를 다시 쓴 이 책의 초반은 그래서일까 거부감이 들었다. 권위적인 것은 문제지만, 권위는 필요하고, 국가나 조직은 개인보다 강하다고 생각하는 나에게, 이야기를 전달하는 사람은 지나치게 권위를 무시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그게 그리스신화에서 신들을 묘사하는 것이 권위에 대한 반항처럼 보이는 것은 어쩔 수 없다. 지독하게 이기적이고 한심한 신들의 이야기이니, 그 자체가 그럴 수 밖에 없다. 그렇게 결점많은 신들이 강력한 힘으로 인간을 벌한다. 받아들이기 어렵다. 그렇지만 꾸역꾸역 끝까지 읽었다. 그리고 마지막에 '내 이야기가 '틀렸다'고 말하는 사람이 있다면, 신화는 어차피 전부 허구라고 답하겠다.-p495'라는 후기를 읽었다. 후기의 말들,을 읽으니 좋았다. 테오이 닷컴(theoi.com)은 기억하기 위해 적어 두겠다. 

포스트잇을 잔뜩 붙였는데, 어떤 마음으로 붙였었는지 기억이 안 난다. 형벌,에 잔뜩 붙어있는 것이 시험하는 신에 대한 어떤 태도가 동양의 태도와 달라서였던가 싶다. 아이를 살해하는 이야기들을 역시 그리스신화에서 만난다. 그런 이야기가 동양에도 있는지 생각했다. 

삶은, 인간은 복잡하고, 어떤 언어나 이야기도 인간이나 삶을 담지 못한다. 언어나 이야기가 담은 작은 조각들, 다시 이야기는 언어가 되어 남는다. 그리스신화는 서양인에게 자신의 언어의 유래, 소리로밖에 묘사하지 못하는 표음문자의 세계에서 언어가 가지는 의미를 담는 하나하나의 이야기들이다. 


하지만, 안 돼. 항아리를 열지 않겠다고 맹세했다. "약속은 약속이니까." 이렇게 혼자 중얼거리고 나자 판도라는 뿌듯한 기분이 들었다. 항아리의 마력에 넘어가지 않는 것이 의무라고 믿었으나 지금은 항아리가 그녀에게 치명적인 유혹의 노래를 부르고 있는 것처럼 느껴질 지경이었다. 이렇게 사람을 홀리는 물건을 침실에 놔두고 밤낮 할 것 없이 조롱당하고 유혹당하다 보니 부아가 치밀었다.-p178


하지만 닉티모스가 아버지를 이어 인류를 통치할 시간은 거의 없었다. 마흔아홉 명의 형제들이 난폭하게 땅을 약탈하면서 추태를 보이자 제우스는 인간 실험을 완전히 종결할 때가 왔다는 결정을 내렸다. 제우스는 구름을 몰아 거센 폭풍우를 일으켰고, 이윽고 땅이 물에 잠겨 그리스와 지중해 지역의 모든 사람들이 물에 빠져 죽었다.-p183


그렇다면 그들의 최종 목적지는 어디일까? 그들이 어떤 삶을 살았는가에 따라 달라졌던 것 같다. 처음에는 하데스가 직접 심판자 역할까지 했지만 나중에는 제우스와 에우로페의 두 아들, 미노스와 라다만티스에게 위대한 심판을 맡겼다. 두 형제는 죽은 후 이복형제인 아이아코스와 함께 지하세계의 재판관으로 임명되었다. 그들은 망자가 영웅이었는지, 평범한 사람이었는지, 아니면 벌을 받을 만큼 악한 인생을 살았는지 판결했다.-p188


인류의 최고 창조자이자 옹호자, 친구인 프로메테우스는 우리를 가르쳤고, 우리를 위해 도둑질을 했으며, 우리를 위해 자신을 희생했다. 우리 모두 프로메테우스의 불을 일부분 갖고 있으며, 그것이 우리를 진정한 인간으로 만들어준다. 그를 동정하고 칭찬해야 맞겠지만, 질투심 많고 이기적인 신들과 달리 그는 숭배와 찬양, 흠모 같은 건 요구하지 않을 것이다. -p193


하지만, 대부분의 이야기들이 그렇듯 이 이야기에서 우리가 실제로 발견하는 건 그리스 신화의 밑바탕에 깔려 있으면서 좀처럼 풀리지 않는 수수께끼, 폭력성과 애욕, 시정과 상징성이라는 기만적이고 알쏭달쏭하고 아찔한 수수께끼다. 너무 불안정해서 제대로 계산할 수 없는 대수학, 그것은 인간과 신의 모습을 하고서 단순하고 정확한 답을 내주지 않는다. 서사의 변화와 상징들을 해석하려는 시도는 재미있지만, 대입은 잘 먹히지 않고 나온 답들은 애매하게 얼버무리는 신탁만큼이나 모호하다. -p288


그래도 혹여나, 정말 혹여나 언니들과 그 마녀 같은 노파가 한 말에 일리가 있다면? 따뜻한 살과 단단한 근육이 멋지긴 하지만 신이라면 그 이상의 뭔가가 있어야 하는 거 아닌가? 세멜레는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뭐, 이틀 밤만 더 지나면 초승달이 뜨니까, 그 때 그 오지랖 넓은 고약한 할멈이 틀렸다는 걸 증명할 수 있겠지."-p298


익시온은 아름다운 디아와 결혼해놓고도 그녀의 아버지인 포키스의 왕 데이오네우스에게 약속한 지참금을 주지 않았다. 이런 모욕을 당하고 울분이 터진 데이오네우스는 앙갚음으로 기습 부대를 보내 익시온의 명마들을 훔쳤다. 익시온은 환한 미소 아래 짜증을 감춘 채 데이오네우스를 라리사 궁의 만찬에 초대했다. 그가 도착하자 익시온은 그를 불구덩이로 밀어버렸다. 접대의 율법을 명백히 어긴 것도 모자라 친족 살인이라는 훨씬 더 역겨운 죄까지 저지른 것이다. 그 당시 가족을 살해하는 짓은 가장 악랄한 금기로 여겨졌다. 익시온은 최초의 친족 살해를 저질렀고, 이 죄를 씻지 않는다면 실성할 때까지 에리니에스에게 쫓길 운명이었다.-p324


티로는 시시포스의 매력에 완전히 빠졌지만 아버지 살모네우스에 대한 사랑과 충성심이 그 무엇보다 우선이었다. 아들들이 자라서 자기 할아버지를 죽이게 놔두는 건 말도 안 되는 일이었다. 그녀는 신탁의 예언을 거역하는 방법을 알고 있었다. 

"이리 와, 얘야." 그녀는 큰아들을 불렀다. "강물을 보렴. 작은 물고기들이 보이니?"

소년은 강변에 무릎을 꿇고 강물을 내려다보았다. 티로는 아들의 목을 잡고 물속으로 밀어 넣었다. 몸부림이 멈추자 막내아들에게도 똑같이 했다.-p335


자기애는 다른 사람들이라는 거울에 자신이 사랑스럽거나 감탄할 만한 모습으로 비치는 것만 보고 싶은 욕구로 가장 잘 정의할 수 있을 것이다. 다시 말해 상대의 눈을 들여다볼 때 우리는 그들을 보는 것이 아니라 그들의 눈에 비친 우리를 본다. 이 정의에 따른다면, 자기애가 없다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p427


노부부가 힘들게 언덕 꼭대기까지 올라갔을 땐 거센 물살이 옆으로 지나가고 있었다. 

"이렇게 마을을 등지고 빗속에 서 있을 순 없어." 바우키스가 말했다. 

"당신이 뒤돌아보면 나도 그렇게 할게."

"사랑해, 나의 남편 필레몬."

"사랑해, 나의 아내 바우키스."

그들은 몸을 돌려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큰 홍수가 에우메네이아를 집어삼키는 모습을 보는 순간, 필레몬은 참나무가 되고 바우키스는 보리수가 되었다. 

두 그루의 나무는 영원한 사랑과 겸허한 친절의 상징으로 수백년 동안 나란히 서 있었다. 한데 뒤얽힌 가지에는 그들을 기리는 순례자들이 남기고 간 선물이 걸려 있었다. -p469


고대 그리스인들은 완벽과는 거리가 멀었을지 몰라도 인생과 세상, 그들 자신을 대부분의 문명들보다, 어쩌면 우리보다 더 솔직하고 밝고 관대한 시각으로 보는 기술을 개발했던 것 같다.-p4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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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Book] 100세 철학자의 행복론 100세 철학자의 행복론 1
김형석 지음 / 열림원 / 202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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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박하다,라고 쓰고 싶어서 구글에서 뜻을 찾았다. 욕심이 없고 마음이 깨끗하다, 느끼하지 않고 개운하다, 라고 나온다. 


친구랑 그저 살아가는 사람들이 대단하다,고 말한 적이 있다. 살아있다는 것이 참 대단하다고. 산다는 것은 쉽지 않다고. 

쪽글들인데 너무 좋은 말들이라서, 옮기다가 말았는지 남겨놓은 밑줄이 너무 없다. 그래, 내 맘에 와닿은 말들로만 밑줄을 쳤다. 그런데, 그 밑줄에 대해 설명을 붙이자니, 다시 글 전체를 옮겨놓는 지경이 될 거 같다. 


남이 나를 믿어주지 않고 내가 남과 협력할 수 없다면 우리는 아무 일도 할 수가 없다. - 41%


이렇게 본다면 내 육체는 공간 중의 공간이다. 나의 공간이라기보다는 나 자체인 것이다. 그러므로 공간의 상실은 육체의 상실, 육체의 상실은 삶과 나 자신의 상실이다. 이 상실을 막아볼 양으로, 이 상실을 사실이 아닌 양 도피해볼 뜻으로 예술을, 철학을, 종교를 만들어왔다. 그러나 사실은 사실이다. 마침내 자아라는 공간을 끙그리 잃어버릴 때가 오고야 마는 것이다. 정들었던 것들, 즉 하늘, 바다, 산, 숲길, 꽃, 새, 별, 달, 이웃, 집, 가족, 친구들은 물론이요, 나 스스로의 공간, 나 자신이었던 육체마저도 작별해야 할 때가 오고야 마는 것이다. - 72%


기독교도,임에도 불구하고, 철학자셔서인지, 예술이나 철학이나 종교를 육체의 상실로부터 도피하기 위해 만들어진 거라고 이야기하신다. 언제나 본질이 있다는 걸 상기하기 위해, 나는 이야기들에 휘둘리지 않기 위해 기억해두려고 밑줄을 남겼다. 만들어졌다. 인간이 만들었다. 스스로의 나약함을 볼 수 없어서. 그리고 그것이 꽤나 대단한 양 스스로를 속이고 있다. 스스로의 마음을 다스릴 수 있어야 과하지 않아야, 오래도록 살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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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Book] 마음 가면 - 수치심, 불안, 강박에 맞서는 용기의 심리학
브레네 브라운 지음, 안진이 옮김 / 웅진지식하우스 / 2023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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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미있게 읽었다. 

여성주의 베이스가 없거나 옅어서인지, 학문을 통한 균형감각이 고양되어서인지 남성을 인간으로 대하고 있어서 좋았다. 뭉뚱그려진 정체성이 아니라, 자신처럼 남성도 고민하고 괴로운 인간으로 연구한다. 

저자는 수치심과 죄책감을 구분하고 수치심을 불필요하거나 과장된 감정으로 본다. 계속 물음표가 떠다니는 것은 내가 가지는 수치심이라는 감각과 충돌해서인 거 같았다. 수치심은 뭘까, 검색했더니 심리적으로 수치심,이라는 말은 자신의 존재를 부정적으로 평가함으로서 발생되는 감정이다. 즉 수치심은 작고 보잘 것 없으며 형편없다고 느끼는 감정이다. 수치심은 평가하는 사람의 존재, 평가하는 사람의 평가 틀, 평가하는 사람의 태도와 깊은 관련이 있다.' 그렇게 정의되고 있는 것도 같다. 일상에서 내가 쓰는 수치심은 부끄러움인데, 심리학에서 말하는 수치심은 다른 건가, 싶기도 하다. 수치심이 아니라 죄책감을 통해 잘못을 바로잡을 수 있다고 말한다. 아이를 키울 때도, 내 자신을 돌볼 때도, 그리고, 다른 사람을 평가할 때도, 다른 사람의 평가를 받을 때도, 필요한 태도고, SNS시대 현대인에게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원래 사람들은 어떤 개념에 대해 정의를 내릴 때 '...이 아닌 것'으로 사고하는 경향이 있다. 특히 감정적인 경험과 관련해서 이런 경향이 두드러진다. - 4%


우리는 학문의 길에 들어서는 순간부터 대중과 일정한 거리를 유지해야 학자로서 위신이 서며, 대중과 너무 친해지면 권위가 실추된다고 배웠다. 일반적으로 '학자연한다'는 평가는 모욕으로 받아들여지지만, 상아탑 안에 있을 때는 '학자'라는 이름표를 갑옷처럼 챙겨 입으라고 배웠다. 그렇다면 나는 어떻게 해야 할까? - 5%


심각한 자기애성 인격장애의 근저에는 '수치심'이 있다. 따라서 누군가의 기를 죽이려 하거나 "넌 보잘것없는 존재야"라고 말해주는 방법으로는 증상이 고쳐지지 않는다. 수치심은 문제의 해결책이 아니라 원인이기 때문이다. - 8%


수치심은 우리가 차마 말하지 못할 때 힘을 얻는다. 그래서 수치심은 완벽주의자를 사랑한다. 완벽주의자들은 쉽게 입을 다물어버리기 때문이다. 만약 우리가 수치심을 인식하는 능력을 기른다면, 그래서 수치심이 들 때마다 그것을 알아차리고 말을 건다면 우리는 수치심의 공격을 막아낼 수 있다. 수치심은 자기한테 이런저런 설명이 붙는 것을 싫어한다. 우리가 수치심에 관해 이야기하는 순간 수치심은 수그러들기 시작한다. 마치 그렘린들이 빛에 노출되기만 해도 치명적인 타격을 입는 것처럼, 언어와 이야기는 수치심에 환한 빛을 비춰서 수치심을 제거한다. - 21%


"내 아내와 딸들을 위해 책에 사인을 해주셨죠? 아내와 딸들은 내가 말에서 떨어지는 꼴을 보느니 내가 말 위에서 당당하게 죽는 모습을 보려고 할 겁니다. 선생께서는 쉽게 말하겠죠. 남자들도 기꺼이 취약해져서 진짜 자기 모습을 보여줘야 한다고요. 허허. 그렇지만 여자들은 그걸 감당 못 해요. 우리가 그런 식으로 행동하면 여자들은 몸서리칠 걸요?"-30%


언젠가 나는 남자들 몇 명과 집단 인터뷰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차 안에서 이렇게 중얼거렸다. 

"이럴 수가. 나야말로 가부장적인 존재였구나."-33%


"두려움을 분노로 바꿔서 제 앞에 서 있던 친구를 제압했습니다. 그건 꽤 괜찮은 방법이었어요. 그로부터 20년 동안 나의 두려움과 취약성을 분노로 바꿔 내 앞을 가로막는 사람은 모조리 제압하며 살았죠. 나의 아내, 우리 아이들, 내 밑에 있는 직원들이라 해도 말입니다. 두려움과 수치심에서 빠져나오려면 그 방법밖에 없었어요."-34%


수치심 회복이란 중용의 길을 찾아가는 과정이다. 중용의 길을 택하면 우리는 상황을 외면하지 않으면서 자신의 가치관에 부합하는 방식으로 행동하는 데 필요한 용기를 얻을 수 있다. -35%


우리는 자신이 수치심을 많이 느끼는 영역에서 유독 다른 사람들을 엄격한 비판의 눈으로 바라보곤 한다. -35%


"여자들은 잘 모르고 있지만, 대부분의 남자들에게는 섹스를 두려워하는 마음이 있습니다. 남자들이 포르노라든가 폭력물을 찾는 이유가 거기에 있습니다. 그렇게 해서라도 힘과 통제권을 행사하려는 거죠. 거절은 극심한 고통이거든요."- 37%


진짜 소속감은 누군가에 대한 거부를 토대로 삼지 않는다.- 38%


취약성의 관점에서 본다면 연결이란 우리의 이야기를 들을 자격이 있는 사람들에게 그 이야기를 들려주는 것을 의미한다.- 55%


약하고, 화가 나 있고, 상처를 받았고, 수치스럽고, 고통스러울 때 우리는 뭔가를 비난한다. - 68%


육아는 가장 두렵고도 대담한 모험이다.-76%


'넌 나쁜 아이야'와 '네가 나쁜 행동을 했어'의 차이는 크다. 단순히 말의 뜻이 다른 게 아니다. 수치심은 뭔가를 해낼 수 있으며 더 나은 사람이 될 수 있다는 자신의 믿음을 갉아먹는다. - 78%


남학생은 나를 응시하며 말을 이어갔다.

"처음에는 내가 바보였구나 싶었죠. 잠시 동안이지만 나에게 화가 났고 선생님을 원망하기도 했어요 그런데 다시 생각해보니 내가 왜 고백을 했는지가 기억나더군요. 나는 룸메이트들에게 말했죠. '나는 대담하게 뛰어들었던 거야. 이 바보들아'"

그는 웃음을 띠고 있었다. 
"녀석들이 타이핑하던 손을 멈추고 나를 쳐다봤어요. 고개를 끄덕이며 이렇게 말하더군요. '오 계속해봐 이 바보야'" 
대담하게 뛰어들기에서는 이기고 지는 것이 중요하지 않다. 핵심은 용기를 낸다는 것이다. 부족한 느낌과 수치심이 우리를 지배하고 두려움이 제2의 본성이 되버린 세상에서 취약해진다는 것은 커다란 도전이다 당연히 불편하기도 하고 약간의 위험도 따른다 그리고 우리의 진짜모습을 드러내는 순간 상처입을 확률은 높아진다 하지만 나 자신의 삶을 돌아보고 대담하게 뛰어들기가 내게 어떤 의미였는가를 생각한다면 적어도 한 가지는 자신있게 말할 수 있다 내 삶의 바깥쪽에 서서 삶을 들여다보기만 하면서 만약 내 모습을 드러내고 진짜 나를 보여줄 용기가 있었다면 어땠을까를 궁금해하는 것만큼 불편하고 위험하고 상처가 되는 일은 없다고.- 87%


관람석에 앉은 사람들의 반응을 저울질하면서 당신의 가치를 평가하지 않는다면 삶은 어떻게 달라질 것 같은가? - 89%


좋은 책인데, 서양저자가 가지는 도전정신을 가지고 나아가라는 식의 태도는 여전히 있다. 삶에서 관람석과 아닌 삶은 무엇인가,라는 질문도 생긴다. 평범한 삶을 과연 긍정하는가, 싶은 면면들도 보인다. 더하여 마지막에 더해진 너무 여러페이지의 감사인사는 아, 서양사람들은 이름이 이렇게까지 중요한가, 싶은 생각도 들었다. 서양의 책표지 디자인과 동양의 책표지 디자인 모아놨을 때 느꼈던 그런 이질감(https://blog.aladin.co.kr/hahayo/12801476)이 좋은 인상으로 책을 거의 마친 순간, 수 페이지에 달하는 감사인사 때문에 다시 들었다. 이 말을 보태는 것이 관람석에서 비난하는 건가, 싶어서 맨 뒤에 사족으로 붙여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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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Book] 경희 - 꼭 읽어야 할 한국 대표 소설 8 꼭 읽어야 할 한국 대표 소설 8
나혜석 지음 / 더플래닛 / 201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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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렸을 때 티비에서 잠깐 나온 영화의 한 장면을 기억한다. 그 화면 속에서 임신한 젊은 여자는 불러오는 배를 보면서 스스로가 동물이라는 자각을 무언가 혐오의 감정으로 읊는다. 

어린 나도, 그 감각을 어렴풋이 공감한 것도 같다. 

충분히 좋은 엄마,에서 저자가 "사실 아이의 타고난 도덕성은 날것의 공포로부터 발달하기 시작하기 때문에 엄마나 아빠의 도덕성보다 훨씬 더 강렬합니다. 아이에게는 오로지 진실되고 진짜인 것만이 중요합니다. -p187~188 "라고 말하는 부분을 옮겨 적었다. 

아이가 가지는 청결의 감각이 결벽적이라는 인상을 받는 순간들이 있다. 어른이 되는 것이, 그런 결벽적인 감각들을 무디게 하는 것인지도 모른다고 생각하게도 되었다. 


알라딘에서 주는 적립금으로 옛날의 단편소설들을 100원주고 빌려보고 있다. 이 소설은 최초의 서양화가, 떠들썩한 스캔들의 주인공, 결국 행려병자로 죽은, 인생이 소설만큼 드라마틱한 나혜석이 쓴 짧은 소설이다. 일본에 유학하고 있는 여학생인 경희가 유학 중에 짧게 집에 돌아와 주변 사람들, 의 평판을 듣고, 종국에는 결혼하라는 부모의 독촉을 받으며 고민하는 이야기다. 

지난 시대의 이야기지만, 그 고민의 내용이 별반 다르지 않다는 느낌을 받았다. 환경은 달라졌지만, 사람들의 생각은 다르지 않다. 여자도 인간인데, 축첩하는 남편에게 고통받은 어머니는, 왜 나에게 결혼하라고 하시는 거냐,고 생각하는 경희에게 지금과는 다른 묘한 종류의 울분을 본다. 여자도 인간인데,라는 말에 인간은 무엇인가,라는 질문이 따라온다. 인간은 무엇인가? 인간의 삶은 어때야 하는가? 같은 질문들 가운데, 여성의 삶은 어때야 스스로에게 만족할 수 있을까,라는 질문까지. 공부하는 이유는 뭘까? 어떻게 살아야 할까? 질문들이 끝도 없이 이어진다. 결국 자신이 해야 하는 답이다. 

임신과 출산을 몸으로 겪는 스스로가 동물이라는 감각을 느끼는 여자라서, 인간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은 아마도 더 절박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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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Book] 가치 있는 삶
마리 루티 지음, 이현경 옮김 / 을유문화사 / 202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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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우 겨우 읽었다. 

1세계 여성의 글은 혼돈으로 부글거린다. 예전에 '행복의 경고'(https://blog.aladin.co.kr/hahayo/9118347) 를 읽을 때 느꼈던 '아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네'라는 느낌이 이 이 책에도 있다. 자아가 있어야겠는데 없는 거 같고, 욕망을 추구해야 하는데 욕망이 무언가 싶고, 어지러운 자아상을 받아들이라고 말하면서도 아닌 건 아니라고 말하고 싶어한다. 그런 충돌하는 마음 때문에 읽었다고 말하기 부끄러운 지경으로 넘기면서 겨우 겨우 읽었다.

이런 나의 어지러운 심정이, 이 책 자체가 아닌, 이 책을 옹호하는 많은 여성주의자들 때문인가도 한참을 생각했다. 불투명한 경계와 유연한 자아상을 말하면서 사안에 대해서 단정적이고 단호하고 결벽적인 언사를 하는 사람들을 너무 많이 만나서 그럴 수도 있다. 그런데, 책에도 그런 뉘앙스가 있다. 마음 깊이 이미 위계나 옳고 그름이 있고 스스로의 우월함을 의심하지 않는다. 추상적인 영역에서는 이렇게 말하면서, 현실의 영역에서는 다르게 말할 거 같다는 인상을 받는다. 

그러니까, 기질의 부름을 따라 사는 삶이 평범할 수 있다는 걸 받아들이지 못하는 사람이라는 인상을 받는다. 기질의 부름을 받는다면, 격정적인 사랑을 하면서 무언가를 창조하면서 사회적인 성취를 해낼 거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아닌가?라는 인상이 생긴다. 


추상적이기만 한 어지러운 말들,에 호감이 생기지 않는다. 


가장 "발달된" 자아는 고도로 구조화된 자아가 아니라 가장 덜 구조화된 자아로, 다양한 정체성의 차원을 유연하게 이동할 수 있다. - 22%


반면, 어떤 목표와 야망은 진부하기만 해 삶을 지루할 정도로 지극히 평범하게 만든다. - 24%


성평등에 관한 나의 주장은 다른 문화의 전통에 어긋나며, 내가 단지 서구적 가치관을 강요함으로써 서구 식민주의의 유산을 재생산하고 있다고 주장할 수 있겠다. 그러나 이러한 반대는 성평등이 특히 서구의 발명품이며, 사실도 아니지만 서구 여성은 차별을 받지 않는다고 시사함으로써 서구 사회에 지나친 공신력을 부여한다. - 25%


이것이 상황적 결핍은 우리가 맹신하도록 학습된 좋은 삶으로 이어지지 않는다고 인정하면서도, 근본적인 결핍은 우리 삶에 엄청난 가치를 가져다준다고 주장할 수 있는 이유다. - 29% 


그러나 대부분의 사람은 그 정도 수준까지 어떤 변화를 이루어 내지 못한다. 그리고 정말 변화를 이루어 내는 사람들조차도 일반적으로 자신은 무엇이든 이루어 낼 수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우리 중 상당히 비범한 사람들조차도 무엇을 하든 항상 자신에게 뭔가 부족하다는 느낌으로 인해 잘 만족하지 못한다. - 30%


트라우마를 겪은 사람들이 유독 세상을 가능성의 공간으로 바라보지 못한다는 것을 나 또한 인정하며, 번복하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견해는 흔히 과장되어 있다. 우리는 고통으로 가득 찬 삶을 살아온 사람들을 잘못 이해한다(또는 깔본다). - 46%


결과적으로 극단적인 이상화는 연인의 진실된 모습을 해칠 수 있지만, 반대로 연인을 그저 진부하기만 한 존재로 전락시키면 모든 것을 초월하는 사랑의 가치를 부정하게 된다. - 56%


실제로, 사건과 마찬가지로 편협한 마음 또한 열정을 먹고 자라기 때문에 둘은 혼동되기 쉽다. - 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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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돌이 2023-02-16 21: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 이책 샀는데 아직 안 읽었네요. 읽을 때 별족님의 생각도 유념하면서 읽어보겠습니다.

별족 2023-02-17 09:02   좋아요 1 | URL
책을 읽을 때 같이 읽고 있는 책들, 블로그 글들, 기사들, 얽혀서 생각이 이렇게까지 튀었어요. 링크는 고쳐뒀는데, 행복의 경고, 읽을 때는 격몽요결, 읽고 있었고, 블로그를 통해서 동아시아 유전자분석 기사 본 것도 연결되면서 계속 서구의 사고방식에 경계심을 갖게 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