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cm 다이빙 - 현실에서 딱 1cm 벗어나는 행복을 찾아, 일센치 다이빙
태수.문정 지음 / FIKA(피카) / 202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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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서점에 갔더니, 초등 4학년인 아들놈이 고른 책이다. 처음 들어보는 제목에 여태 이렇게 글자 많은 책을 즐겨 읽던 놈이 아니라서 '엄마가 먼저 읽어봐도 되냐?'고 묻고 먼저 읽었다. 

생물학적 나이에 0.8을 곱해야 미숙한 현대인이 옛날 사람들 또래랑 비슷해진다는 현대인 나이계산법 생각이 났고, 옛날에 옛날에 아빠가 이야기하던 생각도 났다. 그 때, 내가 막 결혼했고 아이는 없던 어떤 명절에 언니랑 여동생, 나랑 남편 아마도 넷이 모여서 사무실의 이상한 인간들에 대해 흉을 보고 있었다. 아빠는 옆에서 듣다가 지나가시면서 다른 사람 이야기 그렇게 하는 거 아니다,라고 하셨었던가. 재잘재잘 재미나게 떠들던 나는 '뭐래? 성인군자라도 되라고?'라면서 이야기를 계속 했었나. 책 속에서 '사무실에서 참기 힘든 사람'에 대해 서로 한 꼭지씩 쓰고는 당신도 해보라고 권하는 대목에서 떠올랐다. 나는 그걸 소수의 아주 가까운 사람들과 했는데, 그걸 이제 책으로 보란 듯이 하는구나. 그 때, 나는 아빠에게 그러지 말라는 조언을 들었는데, 이 사람은 그런 말을 듣기보다 책이라는 일방적인 매체를 통해 이 책을 읽는 당신도 한 번 해보라고 권하고 있구나. 

책은 서른살의 남자와 스물여덟살의 여자가 지금껏 자신이 너무 답답하게 살아왔다고 스스로의 행복을 찾아 딱 1cm 정도 일상을 벗어난 일탈을 하자,는 내용인데, 나는 뭔가 답답했다. 뭐야? 너무 어리잖아. 

또래집단이 모여서, 서로 듣기 좋은 말을 해준다. 주변에 이런 친구들만 있으면, 삶은 어떻게 될까, 싶다. 

아빠가 우리의 잡담에 당부를 했듯이, 나의 친구 중에 한 명쯤은 동감 말고 다른 말을 해주면 좋겠다. 덕업을 서로 권하고, 나쁜 짓을 서로 말리고, 그래서 들을 때는 입을 조금은 삐죽여도, 지나고 나면 한 번 더 생각하고 자신을 바로잡으면 좋겠다. 주변에 온통 조언들 뿐이라서 공감이 필요해서 쓴 책이란 건 알겠으나, 과연 공감이란 도움이 되는 감정인지 점점 더 모르겠다. 나쁘게 살라는 책은 아니지만, 자신의 착한? 삶이 단지 억압일 뿐이었다는 말은 기이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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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풍오장원 2020-10-17 23:2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이런 책은 솔직히 좀 많이 한심합니다. 말씀하신대로 너무 어리죠. 각자의 삶이 다 정당하고 옳지는 않을 텐데 말입니다...

별족 2020-10-18 07:46   좋아요 1 | URL
이럴 줄 알았으면 읽지 않으면 될 일인 건가, 싶기는 합니다. 유튜브도 뭐든 말하고, 싫으면 안 보면 되잖아요, 하고. 젊은 사람들이 무슨 생각을 하나 궁금해서 봤고, 내가 젊었을 때도 다르지는 않았던 거 같기는 한데, 지금은 너무 젊은 날의 부끄러운 말들이 글들로 남게 되는 거 같아 안타깝습니다.
 
레베카
대프니 듀 모리에 지음, 이상원 옮김 / 현대문학 / 201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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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점심마다 같이 걷는 동료가 뮤지컬을 보러 가면 어떻겠냐고 물었다. 시카고의 이야기가 부도덕하다고 깊게 실망한 나는(https://blog.aladin.co.kr/hahayo/10466911) 쭈뼛쭈뼛 거절했다. 그러고는 남편이 이미 사 놓은 이 이야기를 읽기 시작했다. 

심리스릴러,라는 이 이야기 안에서 사람들은 무엇을 보고, 무엇을 좋아하는 걸까. 

책을 다 읽고, 이것은 젊은 여성의 환상이 응축된 캐릭터가 등장하고 있다는 생각을 했다. 

이름조차 부여받지 못한 화자 나,는 스스로 경멸해 마지 않는 부인의 말벗 노릇을 하다가 대 저택의 안주인이 된다. 전형적인 신데렐라 스토리는 대저택의 안주인 노릇이 호락호락하지 않다는 것에서 환상이 깨어진다. 그러나, 여기에 다른 환상이 끼어든다. 순진하고 사랑밖에 모르는 젊은 여성이 가지는 신분상승의 환상, 말고 세상 어딘가에 존재하는 자신만만하고 유능해서 사랑을 이용하는 아름다운 젊은 여성에 대한 환상 말이다. 사랑하지 않는 여성, 그래서 남성을 조종하고 파괴적인 선택마저도 하게 만드는 젊고 아름다운 여성의 환상. 

첫사랑과는 결혼하지 않는 게 좋다,라면서 서양의 어머니가 딸에게 밀어놓는 책이라는데, 나라면 아이에게 권하지 않을 책이다. 

어떤 환상도 말하기는 좋지만, 좋은 삶은 아니다. '나'라는 젊은 여성이 자신의 고용인을 경멸하는 이유는 자아가 비대한 젊은 여성이 자신을 과대평가하기 때문이고, 스스로의 젊음을 자만하기 때문이다. 다를 바 없는 기준으로 세상을 보면서 단지 사랑인 양 말하지만, 화자인 이상 그게 정말 사랑인지 의심한다. '레베카'라는 유능하고 아름답다는 또 다른 환상 속의 여성은 늙음이나 죽음을 감당하지 못한다. 

이야기에서 교훈을 찾다니 너무 고리타분한가, 싶지만 이런 이야기가 고양하는 것은 자신만만한 젊은 여성이 남성쯤은 손 안의 인형처럼 조종할 수 있다는 어리석은 생각인 거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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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스피 2020-09-14 19:4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개인적으로 레베카를 추리소설로 보기는 뭐하지만 일부에선 고전추리소설의 명작으로 치는 작품이죠^^
 
[eBook] 아무튼, 산 - 이제는 안다. 힘들어서 좋았다는 걸 아무튼 시리즈 29
장보영 지음 / 코난북스 / 202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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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외로운 마음이 될 때, 변명하고 싶을 때 글을 쓰게 된다. 

나에게 직접적으로 말한 것은 아니어도, 여행하는 삶을 전시하고 싱글의 자유로움을 찬양하고, 도시의 번화함을 보여주는 말이나 글이나 노래나 그 어떤 거라도, 세상에 가득 차서 나를 외롭게 할 때, 내 삶을 의심하거나 불쌍하게 여긴다는 느낌이 들 때, 글을 쓰고 큰 소리로 들리게 하고 싶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내가 하는 말들은 언제나 내가 너무 돌출해서, 부끄럽다. 

미혼의 여성이 산을 타는 자신의 삶을 썼다. 책을 읽고 드라마를 보는 나는, 세상이 싱글의 말들로 가득 차 있다고 생각하겠지만, 책 속의 여성은 세상이 기혼자, 부모의 말들로 가득 차 있다고 느꼈던 건 아닌가 싶다. 편집자로 살다가, 어쩌면 선택의 순간 산을 선택했다. 산에서 달리면서 자신의 삶을 산다. 매일 매일의 말들이 자신의 삶을 평가하고 있다고 느꼈던 걸까, 생각했다. '이제는 안다, 힘들어서 좋았다는 걸'이란 책의 부제가 마음에 들었다. 그런데, 책은 더 많이 스스로를 드러내고, 무언가를 회피한다는 생각이 들게 한다. 

앞서 인용해놓은 문구(https://blog.aladin.co.kr/hahayo/11596640 중 '당연한 것은 말할 필요가 없다~')처럼, 결핍을 느끼기에 말하게 되는 순간들 같아서 경쾌해지지만은 않았다. 

나도 산이 좋다. 좋아한다고 해도 순간들, 지금은 흘러가게 두는 것도 좋다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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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 너머로 달리는 말
김훈 지음 / 파람북 / 202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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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훈의 장편소설을 남편이 사서 읽고 아쉬움 없이 뭔가 이상하다고 말했다. 궁금해서 나도 읽기 시작했다. 춘추전국이야기를 읽었을 때 만났던 무언가 쓸쓸한 초나라 유적에 대한 이야기가 생각났다. 

남편은 김훈의 소설에서 기대하는 비장미가 과한 인상이라고 말했다. 

나는 이야기를 만드는 사람이 가지는 한계에 대해 생각했다. 

마지막 작가의 말에 공감한다. 문명이 가득 찬 세상에서 삶의 생명력이 어디 있는지 의심이 든다. 

내가 생각한 소설의 효용은 논리나 합리로 말하지 못하는 감정에 대한 것, 모순이 가득찬 삶에 대한 것, 온갖 종류의 사람에 대한 것들을 조금이나마 이해할 수 있는 다른 길을 내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다가 만나는 온갖 이야기들이 이상하고 신기한 걸 원하고 찾는 사람들의 쏠림 가운데, 지나치게 삶과 멀어진다고 그건 좀 아니지 않냐고 말하고 싶은 순간들이 있었다. 이야기가 가득찬 세상에서 사람들이 쏠리는 이야기들이 점점 점점 공중으로 떠오르는 느낌이 드는 순간이 있다. 내가 말하고 싶은 건 너무 단순해서 쓸모가 있을까 싶은 그런 순간이 있다. 재미있지도 않고, 특이하지도 않고, 그래서 사람들이 좋아할 것도 같지 않은데, 사실 산다는 건 그런 거잖아, 이런 생각이 드는 순간이 있다. 그래서, 거슬러 가다 가다 아예 기록되지 않은 역사 속을 배경으로 사람도 아닌 말의 이야기를 쓴 작가가 말미에 그런 혼란에 대해 언급한 것이 조금이나마 공감이 되었다. 

그런데 이야기 자체는 어쩔 수 없이, 인간이 만든 이야기다. 비대해진 문명 가운데, 사랑의 허명을 잔뜩 뒤집어 쓴 인간이 만든 이야기라는 인상을 받는다. 기록하지 않는 초원의 문명이 초원의 미덕을 문명인인 내가 얼마나 알 수 있을까. 이야기가 가득 찬 문명의 삶에서 느끼는 모순을 이야기로 기록한다는 게 가능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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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분이 태도가 되지 않게 - 기분 따라 행동하다 손해 보는 당신을 위한 심리 수업
레몬심리 지음, 박영란 옮김 / 갤리온 / 202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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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방 읽어버릴 가벼운 심리책인 걸 알면서도 서점에서 보여서 사서 바로 읽고 딸의 책상에 올려두었다. 

제목 때문에 사고 싶었다.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알기 때문에, 딱 그 말이 해 주고 싶었다. 

송곳,을 읽을 때 노동운동가는 현장의 노동운동가에게 '사람들은 옳은 말을 듣지 않는다, 좋은 사람 말을 듣는다'라고 조언한다. 먼저 그 사람한테 좋은 사람이 되라고. 나는 그 말을 수긍했었다. 그런데, 맞닥뜨린 순간에 그게 어떤 말인지 알았다. 물론 내가 내 자신을 옳다고 생각하니까 이런 거겠지만, 갈등의 상황에서 갈등을 중재하고자 할 때, 어쩔 수 없이 크게 소리내는 사람의 틀린 말들로 말들이 휩쓸리는 걸 보게 되었다. 평소에 느껴 왔던 소외감 때문에, 거리감 때문에, 격앙되서 받아들이지 못한다. 이미 지난 일이니 여기 쓴다고 해도 괜찮으려나. 

여직원회장이 되고 그 첫 해 가을 쯤에 어린이집에서 입소순위를 조정하겠다고 운영위원회를 해서 엄마들에게 알렸다. 엄마들 중 한 명이 여직원회 임원이었고, 그 사안을 심각하게 받아들여서 안건으로 상정했다. 300명 못 되는 여직원회라고 해도 어린이집에 아이를 보낼 만한 엄마들은 다 휴직 중이라 발언권이 없는데, 결정이 되고 상황을 들어야 된다고 해서 알아봤더니, 그 전 해인가 부터 육아휴직을 3년 쓸 수 있게 되었는데, 직장 어린이집이다보니 부모 모두 회사 소속인 경우 무적 1순위고, 휴직자도 똑같이 적용되다보니 갈등이 생겼던 거다. 나는 좋은 분께 모두 맡겨서 만 3세가 되기 전에는 어린이집에 보내지 않아서, 그 무적 1순위가 무슨 의미인지 그게 왜 갈등상황인지 크게 실감하지 못한 데다가 그걸 물어보러 회사 담당자한테 갔더니, 3년 휴직을 줬는데, 어린이집 입소순위까지 유지해줘야 하냐길래 것도 그럴 듯해서 수긍했다. 그런데, 이미 복직한 엄마들, 아직 결혼도 안한 여직원들이 흥분해서는 직장어린이집에 부리는 전업 엄마들의 텃세인 양 성토하는 거다. 어차피 직장 어린이집이고, 전업 엄마라고 해도 아빠가 동료들인데, 우리 건데 그 엄마들이 욕심을 부린다는 식의 태도에 굉장히 생경한 기분이 되었다. 누가 등 떠밀어 다니는 직장이 아닌 데도, 아이를 똑같이 어린이집에 맡기면서도 전업 엄마들에게 거리감을 느끼는 복직한 엄마들이 지금까지 느꼈던 어떤 서러움들이 태도가 되어 판단하고 있었다. '저는 그 엄마들 부럽던데요'라고 말하는 미혼의 여직원에게도 기묘한 태도가 느껴졌다. 운영위원회라는 제도가 있고, 직장에 다니느라 바쁘다면서 참여하지 않은 직장 엄마들이 있는데, 그 결정에 대해서 그렇게 감정적으로 대응한다는 게 수긍이 되지 않았다. 

감정이 태도가 되는 일, 그저 송곳의 그 조언자가 말했던 '좋은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말이 어떤 말인지 나쁜 방향으로 실감이 났다. '좋은 사람이 된다'는 건, 도움을 청하는 사람에게 내 모든 권한을 발휘해서 도와주는 걸 테다. 그런 사람, 좋은 사람이 되고 나서야, 내가 청하는 도움에 조금이나마 귀를 기울이겠지. 감정을 털어내고 상황을 봐야잖아. 예전에는 1년 휴직이었지만, 지금은 3년 휴직이잖아. 어떻게 그걸 모두 가지겠다고 주장할 수 있는 거지. 질문이 생기고 질문에 답을 구하는 나의 물음들이 1년 휴직인 보편적인 상황을 근거로 한 법리해석,에 밀리는 식이었다. 감정이 폭발하는 이슈에, 나는 대응할 방법을 모르겠다. 어렵게 들어온 회사에서 어렵게 가진 나의 권리가 침해되었다고 생각하는 태도에도, 그 엄마들이 부럽다고 말하는 그 질투심에도, 바쁘다고 역할을 맡지 않았거나, 맡았다고 해도 전업 엄마들처럼 자유롭게 시간을 쓰지 못하면서 느꼈던 소외감에도 나는 할 말을 찾지 못했다. 건조한 수학식같은 서사를 늘어놓는 나는 아무도 설득하지 못했다. 관계지향적인 모임 안에서 나는 그 사람들과 동등한 존재라서 내 말에 실리는 무게보다, 크게 말하고 감정적으로 어필하는 사람의 말에 무게가 실렸다. 결정과 공지의 어긋남 때문에 그 해에 그냥 해프닝이 되고 말았지만, 그런 일들을 겪으면서 나는 점점 더 겁이 났다. 갈등을 다루는 정치라는 영역에서, 사람들이 얼마나 잘못된 방향으로 흐르는지, 점점 더 회의적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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