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계장 이야기 - 63세 임시 계약직 노인장의 노동 일지 우리시대의 논리 27
조정진 지음 / 후마니타스 / 2020년 3월
평점 :
품절


언니가 이 책을 보고, 나라가 노년을 부양해야 한다고 SNS에 남겼다. 나는 나라가 부양하는 노년이 결국 코로나에 대응하는 스웨덴의 태도가 될 거 같아서 적개심이 생겼다. 

연휴라 정말 오랜만에 간 친정에 언니가 가지고 온 책을 읽었다. 나는, 스스로를 지키지 않는 사람은 다른 사람이 지켜줄 수 없다,고 생각했다.

나라가 부양한다고 한들, 이 아저씨가 노동을 하지 않을까, 법은 멀고 주먹은 가깝고, 일할 사람은 많고 일자리는 없는데 이보다 더 강경한 자세는 가능할까. 가끔 질문을 자기자신에게 해야 하는 게 아닐까.

자기 자신을 지키지 않는 사람을 타인이 어떻게 지켜줄 수가 있을까.

경력을 살렸다고는 하지만 모두가 젊은이를 원하는 분위기에는 버티지 못한다. 

새로 들어간 자리는 20년 근속의 전임자를 하루 아침에 통보도 없이 해고하고 들어간 자리였다.

열심히 일한다면 알아줄 거라고 생각한다. 도대체, 무얼 왜?

몸을 쓰지 않던 사람이 몸을 써서, 부서져라 일한다. 자신의 아들에게조차, 나는 이제 소득이 없으니 네가 벌어서 다녀야 한다,라고 말하지 않는다. 스스로의 책임을 진다고 생각하겠지만 정말 그러한 건가, 모르겠다.

모두에게는 저간의 사정이 있고, 저자에게는 저자의 사정이 있어-책에 쓴 거 말고도- 여전히 일을 하고 여기 책도 썼지만, 나는 이 책이 어떤 가치가 있는 글인 줄 모르겠다.  

법륜스님의 즉문즉설에서 '제 값을 달라고 하기 위해서 스스로를 비루하게 만들고 있다'라는 걸 들은 적이 있다. 읽는 내내, 일에 값을 매기는 와중에, 점점 점점 비루해져서, 정말 그 일이 비루해지는 느낌을 받는다. 먹고 살기 위해서 정년퇴직한 노인이 중노동을 한다,로 묘사되는 그 상황에 거부감이 들었다. 


댓글(2) 먼댓글(0) 좋아요(7)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dpark0409 2020-11-11 15:3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도 책 첫부분이 가장 이해하기 어려웠습니다
저자의 입장이 되어보지 못해서 하는 말일수 있지만
왜 자식의 학비와,결혼에 본인이 평생 일해 모은돈을 대줬어야 했나 안타깝네요
자기인생은 자기가 책임지고 사는거라 생각합니다
자기 노후도 자기 책임이고
성인이된후 자식들 앞길 또한 자식들이 스스로 책임지고 가야할길이라 생각합니다

그래도 책 자체는 의미가 있다고 생각되는게
우리사회가 비정규직 노동자들 특히 고령의 노동자들을 보호해주지 못하고있고
사회 구조적 문제가 많다는걸 보여주고 있습니다
이게 우리 청년들, 우리 부모님들의 미래가 될수있다 생각 합니다

별족 2020-11-12 09:06   좋아요 0 | URL
저는 일에 대한 묘사가 싫었던 거 같습니다. 누군가는 해야 되는 일,이란 것을 그렇게 묘사하는 것이 합당한가, 라고. 제가 분리수거때문에 스트레스를 많이 받고 있어서 그런 것도 같습니다.
 
피노키오는 왜 엄펑소니를 꿀꺽했을까? - 문자도 우리 문화 그림책 15
박연철 글.그림 / 사계절 / 2010년 1월
평점 :
구판절판


걸러서 들어,라고 동생에게 조언한 적이 있다. 엄마가 너한테 하는 말도, 내가 너한테 하는 말도. 거짓은 아니어도 의도가 있고, 그 의도 가운데 숨기고 싶은 말은 숨기고, 상황은 자신의 입장에서 편집되어 있어. 그러니까, 항상 걸러서 들어야 해. 곧이 곧대로 들어도 상관은 없는데, 그러다가, 자기자신을 보호하지도 않고 마구 마구 앞지르면 안 되. 다른 사람의 말은 그게 무엇이라도 너 자신보다 중요하지는 않고, 네 삶을 타인이 휘두르게 해서도 안 되고, 타인의 삶을 네가 휘두르려고 해도 안 돼. 소설도 드라마도 그렇다. 삶이 아닌 모든 것들,은 걸러서 들어야 한다. 

책은 큰 애가 아직 어렸을 때, 정말 대박이라는 서평(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6138708)을 보고 골랐을 거다. 너무 이르게 산 책이라서- 그 때 큰 애는 다섯살이었다- 아이는 그저 신기하게 병풍처럼 펼쳐지는 책만 신기해했고, 나는 이야기가 너무 뒤집혀있어서 난처했었다. 그런데, 이제 둘째가 4학년이 되고도 학교에 못 가는 날들에 책을 한 권씩 골라주는데도 책보다는 유튜브나 컴퓨터게임을 즐기고 있어서 그럼 엄마가 함 읽어줄께 하고 읽었는데 반응이 너무 좋았다. 아, 확 뒤집힌 뜻에 웃으려면 원 뜻을 아는 아이들이 읽어야 해. 내가 처음 읽었을 때 난처했던 마음은, 거짓말이거나 뻥이라고 말하고 있어도 아이들은 그걸 모를 수도 있어서였는데, 이미 4학년인 아들이 와하하 웃으면서 들으니 그대로 좋았다. 그 웃음이 원뜻을 알기 때문에 가능했다는 것도 아니까, 이 책이 나쁜 깨우침을 주지 않을 거라는 확신이 생기는 거다. 막 1학년 입학하고도 학교에 못 가는 막내는 오빠처럼 웃지 못하는 이야기였다. 나는 아이가 너무 재미나게 웃어서, 이 책이 좋은 책일 수도 있다고 생각했고, 작가의 말에 '많은? 것이 엄펑소니다'할 때는 내 마음 같았다. 세상에 말들을 적당히 걸러서 듣고, 적당히 엄펑소니라고 생각하면서 듣는 것은 삶보다 이야기로 가득 찬 세상을 살아가게 해 주는 힘이다. 

어느 날, 콧구멍을 파다가 문득 깨달았어요. 이 세상에 참 많은 것이 엄펑소니란 것을. 그렇지만 내가 할 수 있는 게 별로 없었어요. 나중에 화장실에서 똥을 누다가 문득 또 깨달았지요. 엄펑소니를 엄펑소니가 아니게 할 수 있다는 것을. 그래서 난 예술가가 되었고 이 책을 만들었답니다. - 작가의 말


댓글(0) 먼댓글(0) 좋아요(5)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멜트다운 - 도쿄전력과 일본정부는 어떻게 일본을 침몰시켰는가
오시카 야스아키 지음, 한승동 옮김 / 양철북 / 2013년 9월
평점 :
품절


동명의 책을 읽고 서평을 썼었다(https://blog.aladin.co.kr/hahayo/10890367 ). 거기 달린 댓글을 보고, 이 책을 검색해서 읽어볼 마음이 되었다. 후쿠시마 사고의 정황이 궁금했다. 기술적인 문제들, 해결하지 못한 상황들이 궁금해서 읽었다. 나의 궁금증이 향하는 방향과 기자의 궁금증이 향하는 방향이 다르고, 나는 참 일없이 말이 많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도 기술적인 어떤 문제가 기술적인기만 하다고 생각하는 것은 아니다. 

그렇지만, 책을 보면서 내내 거슬렸다. 조직 밖에서 조직을 비판하면서 가지는 우월하다고 느끼는 태도에 기득권이 아니기 때문에 자신이 옳다는 태도가 느껴졌다. 나는 기술적인 부분들, 그래도 현장은 이라면서 책을 봤고, 현장은 그 상황에서 최선이었다고 느꼈다. 이미 벌어진 일들, 설계결함을 인지하고도 개선하지 않은 것, 민간기업이라는 이유로 강력하게 규제하지 않은 것은 차곡차곡 끔찍한 사고의 원인이 된다. 내 관심사를 알아차리기 위해, 쓸데없는 정보 가운데 정렬을 시도해야 했다. 필요한 말이라고 생각해서 썼겠지만, 정말 필요했을지 나에게 의심스러운 말들이 한 가득이다. 문제를 해결하는 다음의 과정은 어쩌면 나의 관심 밖이었는지도 모르겠다. 후속조치과정에서 보상문제, 사고 수습과정, 정부와 기업, 국가의 문제까지 드러나고, 정쟁 가운데 실각하는 정부에 대한 묘사가 한가득이다. 

기득권이라고 부를 만한 어떤 출신이, 일본에도 한국에도 물론 있겠지만, 그게 그대로 부도덕과 등치가 되는 것은 아니다. 무엇을 했는가,와 어떻게 했는가,가 더 중요하지 않을까. 저자가 열거한 그 많은 연결들은 그 자체로 의미가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쓸데없는 말을 너무 많이 한다. 이 책은 왜 썼을까, 무엇 때문에,라는 질문이 생긴다. 다음의 더 나은 상황에 도움이 될까? 

저자는 원자력이 그 자체로 위험하다고 생각하고 있으니, 칼처럼 생각하는 나와의 거리는 애초에 멀고, 일본과 우리나라도 참 다르다는 생각이 들었다. 정치권력을 바꿔본 적 없는 나라라서 그런가, 과하다 싶은 그 특유의 약함을 견디기 힘들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언제까지나 너를 사랑해 언제까지나 너를 사랑해
로버트 먼치 글, 안토니 루이스 그림, 김숙 옮김 / 북뱅크 / 2000년 5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큰일이다. 아이들도 나도 코로나 상황에 적응하고 있다. 올해 입학예정이던 막내는 학교에 안 가도 좋겠다고 하고, 초4가 되는 아들놈도 개학 안 했으면 좋겠다고 한다. 엄마아빠 출근한 집에서 활개치고 노는 모양이다. 중2만 그래도 학교 가고 싶다고 한다. 그런데, 나도 야단 못 치겠는 게, 일주일에 하루나 이틀쯤은 고강도 사회적 거리두기 때문에 회사에 안 가게 되는 것에 나조차도 적응하고 있다는 거다.

어제도 그래서 출근을 못 했다. 출근할 때는 책을 한 권씩 골라주고, 일일연산지를 한 장 뽑아주고, 학교에서 문자가 오면 전화로 알려주는데, 어제는 책 읽기 싫다길래 읽어줬다. 초4에게는 다른 책을 읽어주고, 초1에게는 이 책을 읽어줬다. 

큰 아이가 아주 어렸을 때 읽고는, 한참 꽂혀 있기만 했었는데-사실, 아이들에게 인기가 있기는 사랑해,사랑해, 사랑해(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859324) ,고 이 책은 어른들이나 이해할 책이니까- 꺼내서 읽으니 새삼스러웠다. 그 때도 이런 기분이 들었었던가, 싶은 게 옆에서 듣는 초4는 어, 싶게 난데없이 '이중인격이다!'라고. 반응했다. 

아이가 태어나고, 자라고 자라서 엄마를 위해 노래를 불러주는 그 인생의 과정에서 위트라고 묘사되는 엄마의 말들에 그런 말이 튀어나온다. 깨어서 난장을 만들어놓는 아기에게 '내가 너 때문에 못 살아'라고 하거나, 더 자란 아이에게 '너를 동물원에 보내버려야지'하거나, '내가 동물원에 간 거 같다'라고 푸념하던 엄마가, 밤에 잠든 아이의 침대 머리맡에서 사랑을 노래하는 것에 지금의 나도 같이 뜨악해진다. 처음 읽었을 때 울었던 것도 같은데, 프렌즈의 조이가 낭독하며 울던 게 생각이 나는 것도 같은데, 내내 이중인격인 엄마가-깨어있는 아들에게 어쩌면 악담을 퍼붓다가, 잠든 아들 곁에서만 사랑을 노래하는- 따로 나가사는 아들네 집에 밤에 찾아가서, 몰래 잠든 아들 곁에 노래를 부를 때는 왜?왜? 왜??? 라는 심사가 되는 거다. 독립이 하고 싶은 아들이 독립을 한 집에 밤에 몰래 찾아가 노래 부를 일이에요???? 

잘 때가 제일 예뻐,라는 말이 가지는 공감대가 물론 있지만, 아이는 나를 기쁘게 한다. 고생스러운 만큼 큰 기쁨이 있기에 나는 아이에게 말로 상처주지 않으려고 애쓴다. 책 속의 엄마는, 아이와 사이가 좋은 것처럼 묘사되었지만, 그게 가능할까, 의심이 생긴다. 아이의 관점에서-적어도 나의 초4 아들 눈에- 이 엄마는 '이중인격'이다. 아이와 다시 보니, 좋은 책이라고 할 수 있을까, 의심이 든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4)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다산, 자네에게 믿는 일이란 무엇인가 - '배교자' 이승훈의 편지
윤춘호 지음 / 푸른역사 / 2019년 1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코로나19로 세상이 느려진 기분이다. 가라앉던 상황에 돌출한 종교가 비난받는 와중에, 저녁이면 원말 명초에 종교로 사람을 모아 정치투쟁을 하는 한족의 이야기 '의천도룡기'를 보고 있다. 헌신하는 믿음없이 불가능한 정치적 성취들을 나도 알고 있고, 젊은 날 내가 부모를 속이고-말하지 않았다- 달려나가던 집회의 현장이나, 혀 차는 소리를 못 들은 체 하고 소리높이던 내 자신을 기억한다. 믿음, 이라는 것에 의문이 생길 수 밖에 없고, 그래서 이 책을 읽고 싶었다. 나는 그저 학식도 높은 조선의 선비가 어떻게 기독교도가 될 수 있는지 궁금했다. 유학이라는 실용적이고 정치적인 학문을 익힌 조선의 선비가 사람들의 나약함을 자극하여 믿음을 그러모으는 천주교도가 될 수 있는지가 궁금했다. 그런 이야기는 물론 없다. 정치와 종교의 괴리만큼, 문제의 해결을 찾는 방식이 아예 다르고, 나에게 그걸 설명하는 건 애초에 불가능한 일일 수도 있다. 

책 속에서 내가 본 것은 정치적으로 소수파인 젊은이가 가지는 체제전복적 태도 가운데 스스로의 나약함이 선택받은 자라는 자기 확신으로 변하고, 종교공동체 안에서 갖는 권력에 도취되는 과정을 본다. 죽음까지 불사할 수 있는 비밀결사의 마음을 본다. 지금의 탄압에 비할 바 없는 탄압이다. 목숨을 걸어야 하는 탄압 속에서, 결국 배교자였으나 교우를 배신하지는 못한 이승훈이 완전한 배교자였던 정약용에게 보낸 편지형식의 글이다. 재판의 묘사에서 내가 생각하는 정약용의 이미지는 깨어진다. 어쩌면 저자의 기독교적 배경이 드러나는 것일 수도 있다. 그러나, 나도 살아오면서 가졌던 믿음을 버리고 있는 중이라 그저 나의 시대가 죽음으로 탄압받지 않는 게 다행이지 싶을 뿐이다. 믿음이 남겨놓은 흔적은 어딘가 내 안에 있지만, 지금 나는 그게 젊은 어떤 날의 열정이었을 수도 있다고 생각하고 있다. 

마지막 장을 덮으면서, 교우들을 죽게 한 성실한 자신의 배교가 마음의 빚이 되어 정약용의 저작이 되었을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나는, 글을 쓴다는 것이 모두 변명,일 뿐이라고 생각한다. 믿는 일이란, 삶을 바꾸는 일이라고도 생각한다. 믿고도 삶을 바꾸지 않는다면, 그 믿음이나 앎은 아무 것도 아니라고도 생각한다. 알고도 믿으면서도 살지 못할 때, 그 괴리들이 쌓여서 그 모든 흔적들은 글이 되는 것 같다. 다른 책을 읽으면서, 만난 글은 그래서 하릴없이 변명을 쌓는 내 자신에 대한 조소다. 


당연한 것은 말할 필요가 없다. 그 믿음조차 의식되지 않는 일에 대해서는 말할 필요가 없다. 말할 필요조차 느끼지 못한다. 행복한 사람은 행복에 대해 말하지 않는다. 결핍된 것이 의식되고 그래서 말하게 된다. 

그렇다면 산림에 숨어 사는 즐거움을 타인에게 말하려는 것은 그 즐거움의 결핍이 의식되었다는 것이다. 그래서 말을 통해 타인으로부터 확인받고자 하는 은밀한 두려움이다. -p137,  시적 상상력으로 주역을 읽다. 심의용 지음.

조선 천주교회의 젊은 영수 이승훈은 광신과 맹신의 언저리를 헤매고 있었다. 어느 시대나 나라가 박해하고 다수가 손가락질 하는 소수파의 신념은 강성으로 치닫기 십상이었다. 적절한 지도와 조언이 없는 상태에서 이승훈의 신앙은 외곬수로 흐르고 있었다. - P133

이런 와중에 일어난 프랑스 대혁명은 교황청의 권위에 직격탄을 가했다. 유럽 곳곳에서 교황권에 대한 도전이 벌어졌고 교황의 지도력은 땅에 떨어졌다. 일찍이 경험하지 못한 위기 국면을 맞아 교황청은 17세기에 보여 줬던 해외 선교에서의 유연성을 잃고 보수적인 원칙론을 고집했다. - P178

20대 시절 뜨겁게 천주를 믿었던 그 흔적이 제 영혼과 마음에 남아 있고 십자가에 매달린 구세주 예수를 버리는 것이 얼마나 큰 죄일까 두려워하던 30대 시절의 방황과 번민의 흔적이 육십 노인이 된 제 어딘가에 여전히 남아 있을 겁니다. 저는 그것을 부인하지 않습니다. 그것은 부인하려야 부인할 수 없는 것입니다. 이를 두고 아직도 정 아무개가 서학을 버리지 못한 증거라고 말하기도 합니다만 서학을 믿는 것과 그 믿음의 흔적이 남아 있다는 것은 다른 이야기입니다. - P266


댓글(0) 먼댓글(0) 좋아요(5)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