셰익스피어를 둘러싼 모험 - 셰익스피어 희곡을 두고 벌어진 200년간의 논쟁과 추적 걸작 논픽션 10
제임스 샤피로 지음, 신예경 옮김 / 글항아리 / 201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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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유골을 건드리는 자는 저주를 받을지어다. / 이 돌을 그대로 두는 자에게 축복이 있으니 / 선한 친구여, 내 이렇게 부탁하니 / 이곳에 묻힌 흙을 파내지 마시게.”

 

 

살벌한 느낌이 드는 묘비명이다. 묘비 근처를 지나가기만 해도 꺼림칙하다. 묘지 주인은 생전에 무슨 죄를 지었기에 무덤이 파헤치는 것을 두려워했을까. 이 묘비명의 주인공은 바로 영국의 대문호 윌리엄 셰익스피어다. 한때 그는 영국인들의 자존심을 세워준 최고의 인물이었다. 대영제국의 황금기를 누렸던 영국인들은 광활한 인도 땅과 셰익스피어의 능력을 맞바꾸려고 하지 않았다. 옛날에는 유명인의 유골에 신비하고 영험한 힘을 지녔다고 믿었다. 밤마다 무덤을 파헤치는 도굴꾼들이 극성을 부렸다. 다행히 셰익스피어의 유골을 건드린 사람은 없었다. 그런데 무덤 안에 있는 셰익스피어가 편안히 눈을 감지 못하고 있다. 사람들이 그를 끊임없이 괴롭히고 있기 때문이다. 셰익스피어가 허구의 존재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많아졌다.

 

희곡 37편과 소네트 150여 편. 셰익스피어가 남긴 작품의 수다. 52세에 세상을 떠난 한 사람의 작가가 썼다고 보기엔 실로 엄청난 양이다. 일례로 셰익스피어의 작품에 사용된 단어의 개수를 세어보면 약 2만 개가 넘는다. 셰익스피어 작품의 원작자를 둘러싼 논란이 계속되는 건 그 때문이다. 셰익스피어는 대학 문턱을 밟지 않은 시골뜨기였다. 그의 천재적인 어휘력은 당연히 의심의 대상이 된다. 지금도 그의 생애에 관해서 의견이 분분하다. 셰익스피어의 정체성에 대한 논란은 18세기부터 제기돼 왔을 정도로 오랜 역사를 지닌 주제다. 실제 작가를 두고서도 철학자 프랜시스 베이컨, 극작가 크리스토퍼 말로, 에드워드 드 비어(옥스퍼드 백작) 등의 다양한 설이 넘쳐나 문학계의 대표적 음모론으로도 꼽혀왔다. 그 뒤 논란은 논란을 낳았다. 심지어 셰익스피어가 실존인물이 아닐지도 모른다는 주장까지 나왔다.

 

사람들은 셰익스피어의 유골에 전혀 관심이 없었다. 오로지 그의 정체를 밝혀내는 일에 혈안이 되었다. 셰익스피어가 원작자라는 사실을 증명해주거나 반대로 이를 부정하는 증거를 하나라도 찾으려고 했다. 여기에 너무 집착한 새뮤얼 아일랜드라는 수집가는 천인공노할 짓을 저질렀다. 셰익스피어의 이름이 들어간 각종 서류와 문서를 위조했다. 델리아 베이컨은 죽을 때까지 셰익스피어 연구에 매달려 프랜시스 베이컨이 셰익스피어와 동일 인물임을 증명하려고 노력했다. 그녀가 작가 겸 전문 강연자로 명성을 얻었음에도 자신의 모든 능력을 셰익스피어에게 다 바쳤다. 말년의 델리아는 셰익스피어 연구로 마지막 인생 역전을 꿈꾸었다. 비록 성과가 미미했으나 그녀의 뒤를 이어 마크 트웨인, 헬렌 켈러 등이 베이컨 원작자 설을 신봉했다.
 
음모론에 관심이 많은 독자는 《셰익스피어를 둘러싼 모험》이 흥미진진하게 느껴진다. 그러나 짧지만 않은 논쟁의 역사를 따라가다 보면 유쾌하지가 않다. 셰익스피어 논쟁에 뛰어든 사람들은 셰익스피어 작품에 무한한 애정을 가졌다기보다는 죽은 위인을 이용하여 세간의 관심을 얻으려는 경향이 강하다. 심지어 셰익스피어의 작품을 제대로 이해했는지 의문이 들 정도로 그들의 주장에 허점이 많다. 셰익스피어 전문가도 예외가 아니다. 에드워드 멀론은 셰익스피의 삶과 그의 작품을 하나로 융합해서 셰익스피어의 정체를 증명하려고 했다. 말이야 그럴듯하게 보이는 증명이지 사실은 자의적으로 끼워 맞춘 추정에 가깝다. 《셰익스피어를 둘러싼 모험》의 저자이자 모험 안내자인 제임스 샤피로는 셰익스피어 원작자 논쟁의 주요 주장들의 문제점을 낱낱이 지적한다.

 

사람들은 증명되지 않은 실재의 빈자리를 용납하지 않는다. 그 자리에 상상력을 채워 넣어야 안심된다. 셰익스피어의 시대에 살아보지 않은 사람들이 자신이 속한 현 시대의 모습에 맞춰 셰익스피어의 정체를 재구성한다. 모두가 셰익스피어의 사람들이 된다. 우리가 아는 셰익스피어는 겉은 16세기 풍 복장을 하였지만, 속은 근대의 상상력으로 채워진 ‘박제가 된 셰익스피어’다. 셰익스피어의 사람들은 근대의 박제품이 된 ‘셰익스피어’에 둘러 모여서 지금까지도 진짜인지 가짜인지 쓸데없이 싸우고 있다. 박제품에 너무 집착할수록 셰익스피어를 안다고 말하는 사람들의 생각도 박제화된다. 이들은 소설이 작가의 자서전 하위 호환으로 여긴다. 작품을 읽음으로써 그 속에 작가의 생애를 간접적으로 알 수 있다고 믿는다. 착각의 해석은 셰익스피어를 당혹스럽게 한다. 

 

뜻하지 않게도 셰익스피어를 함부로 건드린 자는 저주를 받았다. 아일랜드는 위조 사실이 적발되어 크게 망신을 당했고, 델리아는 셰익스피어 연구에 몰두하다가 정신병 질환을 앓다가 세상을 떠났다. 그녀의 가족은 셰익스피어를 가짜라고 여기는 그녀의 주장을 정신병으로 인한 헛소리로 생각했다. 근거 없는 추정으로 세상의 이목을 끌려는 호사가들은 고인의 명예를 존중하지 않는다. 《셰익스피어를 둘러싼 모험》은 단순히 셰익스피어를 둘러싼 논쟁의 역사가 아니다. 음모론의 함정에 빠져버린 무지한 인류의 역사다. 호사가들 때문에 편안히 잠들지 못하는 셰익스피어를 위해서 묘비명을 새롭게 바꿔야 하지 싶다.

 

 

“셰익스피어를 함부로 건드리는 자는 저주를 받으리라. / 그를 그대로 두는 자에게 축복이 있으니 / 착한 독자여, 내 이렇게 부탁하니 / 이곳에 묻힌 나를 파내지 마시게.”

 

 

 

 

※ 딴죽걸기

 

* 12쪽에 델리아 베이컨의 사망연도가 생략되었다.

 

* "그곳을 조사하라는 조언 받았다." (44쪽)

 

* 랠프 월도 엘리슨 (449쪽, ‘랠프 월도 에머슨’으로 고쳐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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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ureka01 2016-04-27 08: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실존인물인지 전설인지 헷갈리기까지 하는 세익스피어..

전 책을 읽어도 글 나오기도 어려운데..하여간 그는 천재입니다.ㅋㅋㅋ^^

cyrus 2016-04-27 18:35   좋아요 0 | URL
저는 셰익스피어 원작자 설에 대해서 얼핏 들어봤어도, 이렇게까지 사람들이 심각하게 생각할 줄은 몰랐습니다. 진짜 별 희한한 가설이 많아요. 셰익스피어의 작품 속에 프랜시스 베이컨이 썼다는 사실을 암시하는 암호도 있다는 주장도 있어요. 다빈치 코드에 못지 않은 셰익스피어 코드입니다. ㅎㅎㅎ
 

 

 

http://noveltraveler.me/220671320943

서평도서 : 금희 《세상에 없는 나의 집》 (창비)

 

 

좋은 내용의 서평 한 편을 소개해봅니다. 글쓴이가 만든 ‘퀘스천 홀(question hole)’이라는 단어가 인상 깊었어요. 이 서평을 작성한 분은 ‘오늘의 작가상’ 최종 심사 위원으로 선정되었습니다. 이 서평이 알라딘 블로그에 작성되었으면 ‘이달의 마이리뷰’에도 선정되었을 겁니다. 우수 서평으로 선정된 맥거핀님, 헤르메스님, CREBBP님 모두 축하드립니다. 이왕이면 세 편의 우수 서평도 링크로 연결해서 공개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알라딘 이벤트 당첨자 발표 게시판에 공개된 서평 대회 결과를 확인하면 당선작 링크가 안 되어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매년 알라딘 서평대회나 물만두 서평대회가 열렸던 시절에는 당선작이 공개되었습니다. 요즘 대부분 닉네임, 실명(성과 마지막 글자만 공개, 이메일 주소(주소 뒤의 마지막 세 글자 비공개)를 공개하는 편입니다. 이러면 당선자가 누군지 잘 모르고, 당선작을 읽을 수 없습니다. 당선작을 공개하는 것이 프라이버시와 관련해서 큰 문제가 없다고 생각해요. 서평대회와 관련된 글은 당연히 ‘공개 상태’여야 합니다. 아무리 열심히 쓴 글이라도 ‘비공개 상태’면 심사위원은 그 글을 보지 못합니다. 이벤트 당첨자를 알릴 때 닉네임과 당선작 링크만 공개하면 사람들은 당선작을 읽게 되고, 이벤트에 당첨된 글쓴이에게 축하의 인사를 전할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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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ella.K 2016-04-26 15: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리뷰대회가 벌써 끝났나?
좋은 블로그 소개해 줬네.
근데 퀘스천 홀. 멋진 말이긴 하지만 뭔가 전문가적 냄새가 난다고 생각하지 않냐?
그 블로그 주인장 요즘 핫한 젊은 평론가다. 어쩐지 싶었지.
그런 전문가는 이달의 당선작 되면 알라디너들은 어쩌라고...ㅠ

cyrus 2016-04-26 15:11   좋아요 0 | URL
어제 블로그에 있는 글들 쭉 읽어봤는데, 글 솜씨가 좋았어요. 제가 지금까지 썼던 글들이 초라하게 느꼈어요. ㅎㅎㅎ 역시 글쓰기를 본업으로 삼고 있는 분이셨군요. 네이버에는 정말 글쓰기 고수가 많아요. 겸업으로 서평가로 활동해도 되겠어요. 그런데 누님 말씀을 듣고 보니까 최우수 서평 글쓴이가 정말 전업 문필가라면 선정 결과에 문제가 생길 수 있겠는데요. 독자를 뽑지 않고, 젊은 신인 평론가를 뽑은 거잖아요.

stella.K 2016-04-26 15:23   좋아요 0 | URL
그래. 맞아. 나도 같은 생각이야.
그거 아마추어를 위한 장 아니었어?
이상해. 뭔가 이상해. ㅉ

2016-04-26 15:17   URL
비밀 댓글입니다.

cyrus 2016-04-26 15:18   좋아요 1 | URL
저도 그렇습니다. 늘 있는 일이죠.. ㅎㅎㅎ

시이소오 2016-04-26 16: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분 제 블로그 이웃입니다. 전업 문필가는 아닌걸로 알고있어요. 소설가 지망생이죠^^

cyrus 2016-04-26 16:52   좋아요 0 | URL
그렇군요. 소설가 지망생이라면 수상자 선정에 별다른 문제가 없겠어요. ^^

2016-04-26 18:10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6-04-26 19:03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6-05-01 23:52   URL
비밀 댓글입니다.

cyrus 2016-05-03 13:15   좋아요 0 | URL
그렇군요. 수상작이라고 해서 모든 사람들을 만족시킬 수가 없죠. 서재지기님이 우수 서평작에도 링크를 만들어서 공개한다고 약속을 했는데, 곧 확인해봐야겠습니다.
 
공포특급 5 - 세계편
출판사 / 한뜻 / 199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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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3년, 93편의 무서운 이야기를 담은 《공포특급》이 엄청난 반향을 일으켰다. 이 책이 나온 시기는 6월. 본격적인 여름철을 맞아 독자들의 무더위를 시원하게 씻어주는 데 성공했다. 《공포특급》의 성공으로 괴담 전파의 물꼬를 텄다. 무더위를 잊기 위해 할머니가 들려주는 무서운 이야기를 듣는 것은 옛말이 됐다. 평범한 곳이라고 생각했던 집, 학교가 귀신들이 서식하는 오싹한 장소가 되어버렸다. 괴담을 원하는 독자들이 늘어났다. 이듬해에 나온 《공포특급 2》도 전작에 못지않게 좋은 반응을 얻었다. 출판사는 공포특급 시리즈를 계속 출간하기로 한다. 《공포특급 3》은 국내 작가들이 쓴 공포소설을 선보였다. 주류 문학이 완전히 점령한 한국에 ‘공포문학’이 첫 발을 내딛는 순간이다. 《공포특급 4 : 실화 편》은 일반 독자들이 참여해서 만든 특별한 책이다. 독자들이 겪은 으스스한 경험담이 소개되었다. 출판사의 도전은 거침없었다. 비록 후속작들이 1, 2권의 인기를 넘어서지는 못했지만, 출판사는 《공포특급》 출간에 대한 미련이 남아있었다. 여전히 사람들은 공포감을 느끼고 싶어 한다. 그런데 우리나라 공포 이야기만 들려주면 식상하다. 출판사는 외국의 무서운 이야기를 소개한다. 그 책이 바로 《공포특급 5 : 세계 편》이다.

 

오늘날 독자들은 1권을 많이 기억한다. 《공포특급》을 즐겨 읽었던 독자 중에는 후속작의 존재를 알고 있으리라. 그렇지만 후속작을 기억한 독자도 많지 않다. 한뜻출판사에서 펴낸 《공포특급》 시리즈는 총 7권으로 되어 있다. 5권과 6권이 전작보다 인기를 얻지 못해서 그런 건지 마지막 7권은 1권처럼 도시 전설을 소개했다. 7권도 역시 망했다. 그때는 《공포특급》의 아류작이 넘쳐나던 시기였다. 1993년의 명성을 되찾기가 불가능했다.

 

《공포특급 5 : 세계 편》은 외국 괴담 수록집이라기보다는 영미 작가들이 쓴 공포문학 작품 앤솔러지에 가깝다. 추리소설 번역가 故 정태원이 질적으로 우수한 공포 단편소설을 엄선하여 번역했다. 작품 중간에 외국 괴담과 공포 실화를 수록했다. 아무래도 한국형 괴담에 익숙하지만, 외국 공포문학 소설을 낯설어하는 독자들을 위해서 기획한 것으로 보인다. 《공포특급 5 : 세계 편》에 있는 작품들은 다음과 같다. 작가들의 이름을 보시라.

 

 

 

 

 

 

 

역시 정태원의 안목은 대단하다. 《세계 편》은 1996년에 출간되었다. 지금으로부터 딱 이십 년 전에 레이 브래드버리, 로버트 셰클리, 리처드 매드슨의 작품을 소개했다. 윌리엄 W. 제이콥스의 『원숭이 손』은 공포문학 앤솔러지에 많이 등장하는 단골 작품이다. 말라비틀어진 원숭이 손의 저주에 관한 이야기다. 정말 유명한 작품이니 꼭 한 번 읽어 보시라. 비록 공포심을 드러내는 극적 장면이 고전적인 플롯이 되었지만, 공포문학을 논할 때 이 작품이 빠지면 안 된다. ‘호러 킹’ 스티븐 킹은 이 작품을 모티프로 한 소설을 남기기도 했다.

 

로버트 블록《사이코》의 작가다. 그는 장편뿐만 아니라 공포를 소재로 한 단편작품도 남겼다. 로버트 블록과 어거스트 덜레스‘러브크래프트 서클’에 소속된 작가다. 특히 덜레스는 러브크래프트 사후에 크툴루 신화를 체계적으로 확장한 장본인이다. 생전에 좋은 평가를 받지 못한 러브크래프트는 덜레스 덕분에 죽어서도 불멸의 작가가 될 수 있었다. 다만, 크툴루 신화를 비판적으로 보는 독자들에게 덜레스는 애증의 대상이다. 그는 러브크래프트에게 영향을 준 작가들의 작품을 임의대로 크툴루 신화에 편입했다. 레이 브래드버리는 SF 작가로 유명하지만, 생전에 공포문학 작가로서 명성을 얻었다. 브래드버리는 1942년부터 소설가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초창기에 장르문학 전문 잡지 <위어드 테일즈(Weird Tales)>을 통해 소설을 발표했다. 러브크래프트도 <위어드 테일즈>에 단편을 기고한 적이 있다. 브래드버리는 소규모 출판사 아컴 하우스(Arkham House)의 발행인으로부터 공포문학 단편집 출간을 제안 받는다. 아컴 하우스의 발행인이 바로 어거스트 덜레스다. 아컴(Arkham)은 러브크래프트의 소설에 나오는 가상의 도시 이름이다. 『비석』은 위어드 테일즈 1945년 3월 호에 발표되었다. 최근에 나온 브래드버리 단편 선집에 없는 작품이기도 하다. 숙소의 방 한가운데 비석이 놓인 불가사의한 상황을 공포심 있게 그려낸 전개가 일품이다. 

 

로버트 셰클리는 미국 출신의 SF 작가다. 미래학자 앨빈 토플러는 그의 소설이 교과서에 수록해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그리폰의 먹이』는 1950년에 발표한 작품이다. 주인공은 고서점에서 괴물 그리폰을 관리하고 사육하는 방법이 적힌 책을 발견한다. 호기심이 많은 주인공은 책에 있는 내용에 따라 자신의 집에 그리폰을 사육한다. 단순한 호기심으로 인해 자신의 목숨마저 위협받는 무시무시한 상황이 연출된다. 리처드 매드슨의 『하얀 실크 드레스』는 1951년에, 『귀뚜라미』는 1960년에 발표된 단편소설이다. 두 작품 모두 ‘나폴리탄 괴담’ 장르의 이야기다. 나폴리탄(Napolitan)은 공포 단편소설에 자주 사용되는 기법의 하나다. 이야기의 발단과 결말이 확실하게 드러나지 않은 점이 나폴리탄의 가장 큰 특징이다. 미지의 상황은 독자들의 상상력을 자극하면서 공포심을 유발한다.

 

공포문학 앤솔러지 출간이 과거보다 많이 뜸해졌다. 그러므로 레이 브래드버리와 리처드 매드슨 같은 거장들의 공포문학 작품을 접하기가 쉽지 않다. 절판된 책을 만나기가 어렵지만, 책을 직접 찾아서 읽어 보는 게 훨씬 낫다. 정태원은 《세계 편》의 목차에 이런 말을 남겼다. “기회가 다시 있다면 공포소설의 대표작들을 연대기 순으로 정리해서 전집을 만들어보고 싶다” 너무 이른 그의 부재가 안타깝게 느껴지는 대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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맥거핀 2016-04-25 23: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무슨 cyrus님은 책 백과사전 같습니다. 이제 모르는 책 있으면 물어봐야지.

cyrus 2016-04-26 12:12   좋아요 0 | URL
다른 독자 서평이나 네이버 백과사전, 위키백과에서 정보를 찾아요. 저도 모르는 게 정말 많습니다. ㅎㅎㅎ
 

 

 

 

 

 

어제 ‘책 나누기 행복 더하기 행사’에 다녀왔습니다. 어제 대구 낮 온도가 27도까지 오를 정도로 더웠습니다. 벌써 여름이 성큼 다가온 것 같았습니다. 행사는 1시 30분부터 시작했습니다. 행사가 시작되는 시간에 맞춰서 10분 일찍 행사장에 도착했는데, 너무 일찍 와버렸습니다. 도서 교환전이 2시 40분부터 시작하기 때문입니다. 한 시간 동안 공원 벤치에 앉아서 기다리기는 시간이 아까웠습니다. 알라딘 서점에 가서 책 구경하면서 시간을 보내기로 했습니다. 정말 책 구경만 하려고 했습니다. 그러나 좋은 책이 보이는데 그냥 지나칠 수가 없었습니다. 결국 지갑을 엽니다. 

 

 

 

 

 

 


한 달 전 마립간님의 서재 블로그에서 봤던 책을 샀습니다. 폴 나먼의 《허수 이야기》라는 책입니다. 마립간님이 알라딘에 검색하면 나오지 않는 책으로 이 《허수 이야기》를 소개한 적이 있었습니다. 네이버도 마찬가지입니다. 《허수 이야기》가 없는 책으로 나옵니다. 책 상태가 좋았고, 가격이 반값이라서 장바구니에 담았습니다. 그런데 책 내용이 무척 어려워 보였습니다. 고등학생 때 배운 수학 내용을 다 잊은 상태라서 허수의 개념 자체를 몰랐습니다. 책을 펼치면 눈이 어질합니다. 화려하면서도 난해한 수학 공식이 많습니다. 목차를 보면서 《허수 이야기》가 쉬운 책이 아니라는 사실을 뒤늦게 깨달았습니다. 목차의 부제가 마치 수학 논문 제목과 비슷한 느낌이 듭니다.

 

 

 

 

 

2시 40분에 맞춰서 다시 행사장으로 향했습니다. 교환전 시작하기 10분 전에 행사장에 도착했는데, 벌써 사람들이 천막이 세워진 곳에 모여 있었습니다. 일반도서, 아동도서, 원서, 과월호 잡지, 사전류 등의 책들이 기다란 탁자 위에 놓여있습니다. 책의 절반은 남산 다락골 작은 도서관에 보관되었던 책입니다. 책에 도서관 직인과 분류번호 스티커가 그대로 있습니다. 나머지 책은 사람들이 집에서 가져온 것들입니다. 집에 있던 책(권수 무제한)을 가져오기만 하면 행사 관계자가 도서 교환권을 줍니다. 이 교환권만 있으면 3권을 무료로 가져갈 수 있습니다. 역시 일반도서가 있는 탁자 주변에 사람들이 많이 서 있었습니다. 저는 정신 바짝 차리고 눈에 힘을 주면서 책 제목을 유심히 살펴봤습니다. 책 내부 상태도 꼼꼼하게 확인했습니다. 교환권을 접수하는 곳에서 이미 불량 상태의 책이 있는지 확인했을 겁니다. 그래도 조금이라도 파손되거나 낙서가 있는 책이 간혹 있습니다. 내년에 있을 도서 교환전에 가고 싶은 분이라면 이 점을 유의하시길 바랍니다.

 

 

 

 

 

무료로 가져갈 수 있는 책이 세 권이라는 점이 너무 아쉬웠습니다. 가져가고 싶은 책이 일곱, 여덟 권 있었어요. 어떤 책을 가져가야 할지 고민을 빨리했습니다. 너무 생각이 많아지면 마음속에 콕 찍어둔 책을 다른 사람이 가져갑니다. ‘뿌리깊은나무’에서 나온 《한국의 발견》 시리즈를 만났습니다. 어제 처음 봤습니다. 11권 모두 탁자 위에 놓여 있었습니다. 헌책방에 가면 낱권만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완질을 보는 기회가 잘 오지 않습니다. 하지만 이런 귀한 책을 다 가져갈 수 없습니다. 아쉬운 마음에 잠시 책 고르는 일을 멈추어 사진만 봤습니다. 출간연도가 오래된 도서관 장서치고는 보존 상태가 훌륭했습니다.

 

 

 

 

 

 

천막 아래서 책을 열심히 고르는 사람들이 있는 반면에 행사장 중앙에는 독서골든벨 같은 이벤트가 진행되고 있었습니다. 행사 진행자의 목소리가 얼마나 크고 우렁찬지 책 고르는 데 방해가 되었습니다. 눈으로 책을 고르고 있을 때 귀가 독서골든벨 문제를 들을 수 있는 정도였습니다. 부모와 자녀들을 위한 레크리에이션 행사도 있었습니다. 땡볕이 뜨거웠을 만한데 아이들의 표정은 밝았습니다.

 

세 권의 책을 고르는 데 한 시간 남짓 소요했습니다. 조용한 헌책방에서 책 찾을 때보다 더 피로감이 몰렸습니다. 책을 다 고르면 행사 자원봉사자들에게 교환권을 주고 천막 밖으로 나가면 됩니다. 그런데 교환권을 받는 일을 맡은 자원봉사자가 사람들이 가져가는 책 권수를 확인하지 않은 것 같았습니다. 그러니까 못된 마음을 가진 사람이라면 책 세 권 이상은 가져갔습니다. 솔직히 어제 저도 책 욕심이 생겨서 꼼수를 써볼 생각도 했었습니다. 하지만, 마음을 고쳐 비양심적인 행동을 하지 않기로 했습니다. 교환전에 책을 더 많이 가져올 수 있는 좋은 방법이 있습니다. 교환전에 갈 때 가족이나 친구를 동행하세요.

 

 

 

 

 

 

행사 참여를 위해 접수하면, 도서 교환권뿐만 아니라 상품과 기념품으로 교환하는 응모권도 받을 수 있습니다. ‘행운의 다트게임’이라는 소소한 이벤트도 열렸습니다. 다트판에 비누, 치약, 초콜릿, 여행용품 등 상품 이름이 적혀 있습니다. 갖고 싶은 상품이 적힌 곳에 다트를 던지면 됩니다. 저는 치약을 받았습니다. 상품이 마음에 들지 않으면 다시 던질 수 있습니다. 그렇지만 상품을 받으려고 행사에 온 것이 아니라서 결과를 번복하지 않았습니다.

 

 

 

 

 

김영하 작가 사인회가 4시부터 시작했습니다. 30여 분 정도 기다렸습니다. 레크리에이션 행사를 구경하다가 김영하 씨가 사인회가 진행하는 곳으로 천천히 걸어오는 모습을 봤습니다. 저는 직감적으로 사인회가 곧 시작될 것 같은 생각이 들어서 저도 얼른 사인회 장소로 발걸음을 옮겼습니다. 저는 2등으로 사인을 받았습니다. 행사 진행자가 작가 사인회 시작을 알리니까 아이들이 우르르 사인회 장소로 달려갔습니다. 한 줄로 서서 기다리는 아이들의 모습이 정말 귀여웠습니다. 서서 기다리고 있는데 제 뒤쪽에 인기척이 느껴 져서 살짝 뒤를 돌아봤습니다. 유치원생 혹은 초등생으로 보이는 여자아이가 서 있더군요. 이 아이들은 김영하 씨가 어떤 사람인지 알고 있을까요?

 

 

 

 

 

 

어제 제가 가져온 책은 아리스토텔레스의 《소피스트적 논박》, 앙리 마스페로의 《불사의 추구》, 아이작 아시모프의 《바이센테이널맨》입니다. 《소피스트적 논박》은 도서관에 있던 책입니다. 완전 새 책 같았습니다. 돈 한 푼 안 내고 정가 2만 원의 책을 얻었습니다. 앙리 마스페로는 프랑스의 동양사학자입니다. 그의 아버지는 이집트 고고학자입니다. 앙리 마스페로는 고대 중국사, 베트남사, 중국 도교 연구 등에 뛰어난 업적을 남겼습니다. 우리나라에 《고대 중국》, 《도교》라는 제목의 저서도 소개되었으나 《불사의 추구》와 함께 모두 절판되었습니다. 《불사의 추구》는 다양한 중국 도교 수련법을 소개하고 정리한 책입니다. 무협소설에서 볼 법한 수련법이 언급됩니다. 신선술(神仙術), 장생술(長生術), 연단술(鍊丹術), 그리고 방중술(房中術)도 나옵니다. 《바이센테이널맨》은 로빈 윌리엄스 주연의 영화로 더 많이 알려졌습니다. 원제는 ‘이백 살을 산 사람’입니다. 1976년에 발표된 중편소설입니다. 이 소설로 그해 아시모프는 SF 작가의 노벨상 격인 휴고 상을 받았습니다. 1992년에 로버트 실버버그와 함께 중편소설을 개작하여 장편소설로 다시 만들었습니다. 장편소설 제목은 ‘양전자 인간’입니다. 안타깝게도 이 작품은 아시모프의 유작이 되고 말았습니다. 《바이센테이널맨》은 1995년에 《양자인간》이라는 제목으로 첫 선을 보인 적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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곰곰생각하는발 2016-04-23 15: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정보력이 만만치 않으시네요. 이게 다 책에 대한 애정에서 비롯할 테죠 ? 후후..

cyrus 2016-04-25 14:45   좋아요 0 | URL
저보다 책 좋아하는 분들이 남긴 서평이나 블로그 글을 읽는 일이 좋다 보니 관심이 많아진 것 같습니다. ^^

stella.K 2016-04-23 17: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서울도 오늘 청계광장에서 행사를 한다고 하는데
하필 날씨가 안 도와주는 것 같다.
미세먼지에 황사라니. 왜 오늘 같은 날 그런 최악의...
물론 난 날씨가 좋았어도 안 갔겠지만...

김영하는 계속 한국에 있는가 보다. 몇년 간 독일인가 어디에 있을 거라고 했던 것 같은데.ㅋ

cyrus 2016-04-25 14:50   좋아요 0 | URL
여기 행사장 바로 옆에 공공도서관이 있어요. 사인회가 끝난 뒤에 작가 강연이 도서관 강당에 열렸어요. 강연까지 듣고 싶었는데 오후에 약속이 있어서 사인 받고 집으로 돌아왔어요. ^^

yureka01 2016-04-23 22: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런 기회가 와도 업무시간이니 못가니 아쉬웠어요..^^...

cyrus 2016-04-25 14:51   좋아요 0 | URL
행사장에 아이들이 많이 왔습니다. ^^

yamoo 2016-04-23 22: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대구에서도 이런 행사를 하는군요! 작년에 서서울공원에서 비슷한 행사를 한 적이 있지요. 서울 쪽은 권수 제한이 없고, 있더라도 5권 정도가 책바꿔가기 장터의 제한 권수지요. 지난 주에는 제가 자주가는 도서관에서 도서관 책을 나눔하는 행사를 했습니다. 권당 5권씩 받아갈 수 있는 행사였죠. 알바생이 휴대폰에 정신줄을 놓고 있어 사람들이 6-7권씩 마구 가저가더이다. 저도 7권 가지고 왔지요..ㅋㅋ

근데, 소피스트 논박은 제대로 건지셨네요!ㅎㅎ

cyrus 2016-04-25 14:56   좋아요 0 | URL
그 날 책 욕심을 부렸어야했군요. 지금도 생각하면 몇 권 더 챙기지 않은 게 후회됩니다. 도서관에 오래된 책들을 따로 보관하는 장소가 있어요. 안 그래도 보관 공간도 마땅치 않을 텐데 시민들을 위해서 책을 나눠주는 행사를 열었으면 좋겠어요. 제가 사는 곳에 거리가 가까운 도서관은 몇 년째 과월호 잡지만 주고 있습니다. ^^

페크pek0501 2016-04-25 14: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책 세 권을 고르는 데 한 시간이나 걸리셨다니 신중하셨군요. 저도 구입할 책을 고를 때면 무척 신중해지더군요. 다 구입할 순 없는데, 몇 권만 사야 하는데 살 게 많을 때 정말 고민이 됩니다.

중고서점이나 도서 교환 행사를 활성화하는 것에 찬성합니다. 저도 가까이에 그런 행사가 있다면 가 보고 싶군요. 책 구경은 늘 즐거우니까요...

cyrus 2016-04-25 14:59   좋아요 0 | URL
책값이 부담스러워서 중고 서점을 찾는 손님들이 늘어났어요. 도서 교환전이 많아지면 알뜰하게 책을 사려는 사람들이 매우 좋아할거예요. ^^
 
역사란 무엇인가 - 독점계약 번역 개정판
E.H. 카 지음, 김택현 옮김 / 까치 / 201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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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폄(褒貶)이란 잘한 일은 칭찬하되 못한 일은 나무라는 것이다. 역사를 배움으로써 다시는 시행착오를 거듭하지 않도록 나아갈 바를 제시해 준다. 시간의 변화에 따른 역사의 내용을 바탕으로 현재의 의미를 파악하고, 미래를 예견하는데 기본 토대가 되는 역사학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그런데 역사학에 대한 편견이 역사학의 포폄 정신을 가로막고 있다. 역사학은 ‘과거 지향적’이라는 믿음이다. 인류가 살아온 모든 삶의 활동을 연구하는 학문이 역사학으로 보는 것이다. 이런 믿음이 강화되면 역사는 이미 완료된 고정불변의 실체가 된다. 기록으로 완성된 역사의 내용은 정설로 남게 되고, 이후 지속적인 연구 가능성의 여지가 없어진다.

 

역사교과서에 정리된 역사는 이미 그것을 저술한 학자들이 연구한 것이니 그것을 그냥 받아들이기만 하면 된다는 인식이 일반적이다. 이건 역사학을 죽이는 일이다. 이러다 보니 역사학은 ‘죽은 학문’이 되었다. 정부와 여당은 국정교과서 논리를 강행하려고 현행 교과서가 패배주의를 가르친다고 주장했다. 이것은 ‘역사학 위기’ 담론의 정치적 배경이다. 역설적으로 역사에 간섭하는 지배집단이 역사학을 죽이고 있다. 그들은 ‘과거의 영광’을 다시 찾으면서 힘을 잃어버린 역사를 자기들의 입맛에 맞게 재창조해 권력을 강화한다.

 

뉴라이트는 ‘자랑스러운 대한민국’을 만들려고 시도한다. 그들이 갑자기 역사를 이용하는 목적은 세계 불황으로 인해 잔뜩 움츠러든 시장경제체제의 기를 펴기 위해서다. 뉴라이트도 시장경제의 약점을 목격했다. 그래서 국정교과서를 통해 시장경제의 약점을 은폐하고, 성장발전의 긍정성을 강조하고 싶어 한다. 자신에게 친숙한 과거를 고정불변한 소유물로 보는 자유경제원의 반쪽짜리 역사관은 현실에 대한 실천적·비판적 개입이 사라져버린 역사학의 죽음을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역사학의 임무를 모르는 사람은 에드워드 카가 반대하는 인간의 부류다. 집단세력은 자신들이 사랑하는 위인을 역사 밖으로 놓아두려고 한다. 가장 대표적인 인물이 이승만, 박정희다. 이승만과 박정희의 유령을 소환함으로써 국민에게 그들을 찬양하고 사랑하자고 전도한다. 카의 표현을 빌리자면 ‘수상한 명령’이다. 역사 밖의 위인은 역사가의 비판적 개입을 피할 수 있다. 그뿐만 아니라 위인을 ‘최고 존엄’으로 격상시킨다. 북한에 있는 일이 실제로 남한에서도 이루어지고 있다. 시장경제에 대한 간섭을 반대하던 뉴라이트는 위대한 권력자의 힘을 빌려 역사를 간섭한다. 그리고 국정교과서를 반대하는 입장을 반 정권세력으로 규정한다. 뉴라이트가 논하는 역사는 그들만을 위한 헛된 로맨스에 불과하다. 자유경제원은 자유주의를 가장한 엘리트 집단일 뿐이다. 그들의 역사 남용을 내버려둘수록 ‘저항적 지식인(intellectual dissident)’의 존재가 희미해진다.

 

카는 《역사란 무엇인가》에서 ‘역사란 현재와 과거의 끊임없는 대화’라는 유명한 명제를 남겼다. 카는 나아가 “역사는 하나의 과학이며 동시에 진보의 과정이어야 한다”고 역설했다. 그렇지만 카의 명제는 우리나라에서만 힘을 크게 뻗치지 못하고 있다. 애석하게도 우리나라 역사학은 카가 지향하는 방향으로 진행되지 않았다. 과거에 대한 해석이 수정되고 발전되기는커녕 여러 집단의 이해관계가 역사를 둘러싸고 끊임없이 충돌하고 있다. 역사를 남용하는 정부와 엘리트 집단은 현재와 과거의 대화를 끊고 있다. 국정교과서 논리를 밀어붙이면서 역사학의 숨통마저 끊으려고 한다. 정부와 뉴라이트는 ‘이승만, 박정희, 국정교과서’를 절대로 포기하지 않을 것이다. 우리나라 역사학뿐만 사회 전체가 아주 불행한 방향으로 가고 있다. 과거를 너무 사랑할수록 미래에 대한 믿음과 미래에 한 발 내딛는 추진력을 잃어버린다.

 

 

 

 

 

역사는 지배세력을 만족시켜주는 박제품이 아니다. 과거에 벌어졌던 상황이 후대에 의해 끊임없이 재평가되어야지 역사학이 살아 숨 쉴 수 있다. 지배세력 이데올로기와 손잡은 역사는 ‘사실’과 거리가 멀다. 즉, 올바른 사실을 가지지 못하고 일부러 눈 감는 지식인은 ‘뿌리가 없는 쓸모없는 존재’다. 그들이 생각하는 역사학은 죽은 거나 다름없다. 카는 ‘과거의 죽은 손’에서 자신을 해방하자고 강조했다. 역사 또한 마찬가지다. 현재를 비춰야 할 역사의 거울이 과거의 죽은 자들에게 빼앗길 위기에 처해 있다. 과연 우리 사회와 역사학은 언제 이승만과 박정희의 죽은 손에서 해방될 것인가. 가까스로 과거에 해방되더라도 앞으로 펼쳐지게 될 상황이 너무 어둡다. 국정교과서라는 책의 감옥이 우릴 기다리고 있다. 역사 밖으로 나온 이승만과 박정희의 살아있는 유령이 책의 감옥 내부를 떠돌아다닌다. 그들은 빅 브라더처럼 역사와 그 역사를 바라보는 국민의 눈을 감시한다. 현재와 과거의 진정한 대화가 점점 불가능해진다.

 

 

 

※ 서평대회 이벤트에 응모하기 위해 쓴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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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ureka01 2016-04-21 22: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백번 공감!~

cyrus 2016-04-23 11:23   좋아요 0 | URL
고맙습니다.

북다이제스터 2016-04-21 22: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하지만 별점 만점이 아니라서 섭섭합니다. 흑 ㅠ
제 인생 최고의 책인데요. ㅎㅎ

cyrus 2016-04-23 11:24   좋아요 0 | URL
문체가 조금 더 매끄러웠으면 별 다섯 개였습니다. ^^

페크pek0501 2016-04-22 12: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고전으로 유명한 책에 대한 서평을 쓰셨군요. 제가 존경하는 책입니다.
저도 이런 책은 별점에 만점을 주셔도 된다고 생각합니다. 젊은 시절에 꽤 충격을 받았던 책이었어요.
앞으로 신간에 갖는 관심을 줄이고 고전과 현대 책의 비율이 고칠현삼은 아니더라도 5대 5가 되도록 읽어야겠습니다.

cyrus 2016-04-23 11:27   좋아요 0 | URL
제가 이 책을 처음 읽었을 때는 그냥 ‘카가 말한 역사란 이런 거구나’하는 생각만 들었습니다. 최근에 개정판으로 다시 읽어보니까 전에 읽은 느낌과 완전히 달랐어요. 역사의 기본 개념을 잊고 있는 우리 사회가 얼마나 심각한 상황인지 알게 되었습니다.

yamoo 2016-04-23 22: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카의 이 책을 저는 3번 정도 읽었는데, 지금까지 리뷰를 쓸 생각을 못했네요. 언젠가는 리뷰를 써야 할 거 같습니다~

서평대회 열심히 응모하시는 군요~ 좋은 결과 있기를 바라겠습니다..ㅎㅎ

cyrus 2016-04-25 15:00   좋아요 0 | URL
서평대회는 복불복이죠. ㅎ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