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루미()

 

No. 2



2024년 2월 24일 토요일

일글책


참석자: 너진(일글책 책방지기), 고요





예술 책 읽기 모임 <두루미>를 만들고 나면서부터 새로운 버릇이 생겼다. 책가방 안에 <두루미> 선정 도서를 챙겨 넣고 다니는 일이다. 다 읽은 책이지만, 생각날 때마다 다시 펼쳐본다. 하지만 책을 들고 다닌 진짜 이유는 따로 있다. 주말에 책방에 가서 내가 만든 독서 모임 선정 도서를 홍보하기 위해서다. 사실 홍보라기보다는 책 소개에 가깝다. 독서 모임 참석 인원 한 명 더 늘리려고 책을 소개하는 것은 절대로 아니다. 내가 직접 구매하고 읽은 책을 알리고 싶을 뿐이다. 평소대로 책 좋아하는 사람들 앞에서 책에 관해 얘기하는 것과 별반 다를 게 없다.


책방지기와 그곳에 자주 오는 분들에게 <두루미> 두 번째 선정 도서를 소개했는데, 그분들의 반응을 지켜보는 것이 재미있었다.

















[예술 책 읽기 모임 <두루미> 두 번째 선정 도서]

() 미리엄 엘리아, 에즈라 엘리아 (그림) 미리엄 엘리아, 신해경 옮김

미술관에 갑니다(열화당, 2021)

 


이거 진짜 미술책 맞아요?”

 

애들이 보는 그림책 같아요.”

 

이런 특이한 책을 어떻게 알게 되었어요?”



<두루미두 번째 선정 도서 미술관에 갑니다 어린이용 그림책을 패러디한 미술책이다. 판형이 작고, 분량이 얇아서 금방 다 읽을 수 있다이 책에 엄마와 두 자녀가 나온다. 엄마는 현대미술을 좋아한다. 엄마는 예술을 보여주기 위해 미술관에 데리고 간다. 하지만 자녀는 엄마가 소개하는 예술을 이해하지 못한다. 엄마를 잘못 만난(?) 어린 친구들은 미술관에 전시된 작품들을 볼 때마다 충격에 빠지고, 공포를 느낀다. 


현대미술은 정말 어렵다. 미술관에 갑니다에 나온 자녀는 현대미술 앞에만 서면 작아지고, 혼란스러워하는 대중들의 모습을 상징한다쉽게 설명하기 어려운 주제를 다룬 책이라서 그런지 책을 이해하는 것 또한 쉽지 않다. 우스갯소리로 미술관에 갑니다3분 만에 다 읽을 수 있지만, 그 책을 이해하려면 평생을 바쳐야 할지도 모른다. 미술관에 갑니다는 다 읽은 책인데도 다 읽은 것 같지 않은 책이다.


미술관에 갑니다는 독자가 스스로 질문하고 생각하도록 부추기는 책이다. 이 책은 여백이 너무 많다. 그 여백은 독자가 알아서 채워 넣어야 한다. 엄마와 두 자녀의 대화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분석하거나 난해한 작품들로 가득한 미술관을 어떻게 즐길 수 있는지 생각해 볼 수 있다.


미술관에 갑니다를 여러 번 훑어볼 때마다 <두루미> 모임 시간에 꺼낼 질문들을 만들었다. 질문 만드는 일이 상당히 어려웠다. 내가 만든 질문 몇 개는 바로바로 대답하기 어려울 수도 있다.



[질문 1] 

이해 안 되는 예술작품을 보면 어떤 반응을 해요? 현대미술을 잘 모르는 아이와 타인에게 이해 안 되는 예술작품을 어떻게 설명하실 거예요?



[질문 2]

누드가 있는 그림을 아이에게 어떻게 설명하실 거예요? 끝나지 않은 미술사 대논쟁 중 하나가 누드에 대한 반응입니다. 현재 걸작으로 알려진 누드 그림은 처음 공개되었을 당시 외설 논란에 휩싸였고, 대중들의 혹평을 받았어요. 반면 예술가들은 누드를 검열하는 태도를 표현의 자유를 억압하는 것이라고 인식합니다. 여러분이 생각하는 예술적인 누드와 외설의 의미는 무엇인가요?



[질문 3]

미술관에 가서 예술작품을 봤을 때 속은 기분이 든 적이 있나요?



[질문 4]

현대미술이 어렵고 난해한데도 미술관에 가는 본인만의 특별한 이유가 있어요? 미술관에 가서 재미있다고 느낀 적이 있었어요?



[질문 5]

철학자들은 현대미술을 철학으로 접근해서 이해하고 분석하려고 합니다. 철학으로 현대미술을 이해하는 방식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세요? 여러분이 생각하는 장단점을 말씀해 주셔도 됩니다.



<두루미> 첫 번째 모임에 이어서 두 번째 모임도 참석한 분이 계셨는데, 별칭은 고요. 고요 님은 한때 학생들에게 그림책을 읽는 것을 가르치는 일을 했고, 자녀와 함께 미술관에 가본 경험이 많은 편이다. 그래서 미술관에 갑니다가 마치 하브루타 학습 방식이 적용된 그림책처럼 느껴졌다고 말했다. 고요 님은 내가 준비한 질문들을 꺼내기도 전에 질문과 관련된 견해를 밝혔다.


미술관에 갑니다의 엄마는 자녀들이 작품에 대해서 질문하면 답변하고, 가끔 자녀들이 이해하기 힘든 작품에 어떤 의미가 있는지 설명한다. 하지만 고요 님은 자녀와 미술관에 가면 자녀들에게 작품을 보고 느낀 것을 묻지 않는다고 했다. 정확하지 않겠지만, 고요 님이 예술작품을 바라보는 방식은 이렇다. 그분은 작품의 의미를 찾기 위해서 생각하는 것보다 작품을 보고 감정을 느끼는 것을 선호한다. 나와 정반대다. 고요 님은 미술관에 갑니다의 글(부모와 자녀의 대화)보다는 그림을 유심히 봤다고 했는데, 나는 반대로 글을 반복해서 읽었다.

















* 정서연 요즘 미술은 진짜 모르겠더라: 난해한 현대미술을 이해하는 12가지 키워드(21세기북스, 2023)

 

* [품절] 김찬용 김찬용의 아트 네비게이션: 대한민국 1호 도슨트가 안내하는 짜릿한 미술사 여행(arte, 2021)

 



고요 님은 미술관에 갑니다와 함께 읽은 책 한 권을 추천했다. 책 제목이 현대미술을 접한 사람들의 감정 상태를 그대로 표현하고 있다요즘 미술은 진짜 모르겠더라. 맞아, 진짜로 모르겠다요즘 미술은 진짜 모르겠더라의 목차만 봐서는 대략 어떤 책인지 알 수 있다. 이 책은 미술이 생소한 독자들을 위해 현대미술과 관련된 미술 사조와 용어를 설명한 책인데 이와 비슷한 책을 추천하자면 김찬용의 아트 네비게이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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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삭매냐 2024-02-27 10: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현대 미술은 너무 작가의
주관이 강렬하게 반영되어서
그런진 몰라도 그닥 감흥이
없더라는...

cyrus 2024-03-01 09:56   좋아요 0 | URL
저는 처음에 ‘저게 뭐지?’라고 반응하다가 시간이 지나서야 조금은 어떤 의미인지 깨닫는 경우가 많아요. 물론 저의 주관적인 해석에 가깝지만, 현대미술을 이해하고 감상하는 데 정답을 찾을 필요가 없다고 생각해서 틀리더라도 크게 신경 안 써요. ^^
 




전망 좋은 []

 

EP. 24



2023년 2월 24일 토요일

하나의 시선






밤이 되면 책은 살쪄요. 열두 시가 넘으면 책의 무게가 늘어나기 시작해요. 밤에 살찐 책을 읽으면 내 눈꺼풀이 무거워져요. 이런, 책에서 자장가가 나오네요. 그럴 땐 사탕과 초콜릿을 항상 즐겨 듣던 노래처럼 꺼내 먹어요.[주] 조용히 있던 입과 혀가 바빠져요. 새벽이면 주전부리가 심해요. 새벽만 되면 지치는 눈을 흔들어 깨우는 방법이 뭐가 있을지 예전부터 고민해 왔어요. 그렇다면 이번에 향수로 코를 잡아서 흔들어 볼까?


대구 앞산에서 멀지 않은 동네에 <하나의 시선>이라는 책방이 있어요. 이곳에서 평일과 주말에 책 향수를 만드는 수업이 진행됩니다. 저는 어제 1130분에 시작되는 주말 수업을 신청했어요.


<하나의 시선>은 월요일을 제외한 평일과 주말 ‘11에 문을 엽니다. 수업 시작하기 전에 책방에 도착했는데, 책방 내부는 조용했습니다. 어제 오전 수업과 오후 수업이 진행되었는데, 오전 수업을 신청한 사람이 저 혼자였거든요.이 이렇게 될 줄 몰랐어요. 책 향수 수업을 일등으로 신청했고, 책방지기 하나가 만든 책방에서 하는 일일(One day)’ 수업, 아로마 테라피스트 선생님과 일 대 일로 했어요제 수업을 선생님의 반려견이 간식을 먹으면서 지켜봤어요<하나의 시선>반려동물이 들어올 수 있는 책방입니다.







책 향수를 만들기 전에 내가 좋아하는 향을 알아야 해요. 스무 가지 에센션오일을 하나씩 맡아 봅니다. 저는 오렌지 향, 레몬 향, 삭힌 홍어에 나는 암모니아 향을 좋아해요향을 한 번 맡으면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난 뒤에 다른 향을 맡아야 합니다. 아주 잠깐 코를 쉬게 해주는 거죠. 너무 빨리 향을 맡으면 에센션오일 고유의 향을 느낄 수 없어요. 스무 가지 에센션오일의 향을 다 맡으면, 코를 잠시 쉰 다음에 2차로 향을 다시 맡습니다. 처음 향을 맡았을 때 느낌과 다시 맡은 향의 느낌이 다를 수 있대요.


제가 고른 에센션오일은 레몬그라스, 페퍼민트, 유칼립투스, 시더우드(cedarwood), 프랑킨센스(Frankincense)입니다. 다섯 가지 에센션오일이 향수의 재료가 되는데, 이들을 조합하면 만족스러운 향이 나오는지 코로 확인해야 합니다. 두 가지 향을 동시에 맡아봅니다. 조합해 보니 페퍼민트 향이 강하게 느껴졌어요. 페퍼민트 향을 덜어내기 위해 향수를 만들 때 페퍼민트 오일을 단 두 방울만 넣었어요완성된 향수는 일주일 지난 후에 사용할 수 있어요. 일주일 동안 알코올이 증발하면서 향이 더 좋아집니다.


집에서 향수를 직접 만들어 보고 싶어서 선생님에게 질문을 많이 했어요. 선생님이 명함을 주셨는데 선생님 이름이 책방지기 이름과 비슷한 하나였어요. 세상이 이런 .







선생님이 향을 신중하게 맡고 있는 저의 뒷모습을 사진으로 찍었어요. 사진을 보는 순간 내가 엄청나게 집중하고 있다는 것을 알았어요. 책을 읽거나 글을 쓰는 일에 몰입하면 엄지손가락을 살짝 지켜 드는 버릇이 있어요. 이때 손의 모습이 엄지척하는 형태와 비슷한데, 어제 수업은 엄지척을 할 정도로 만족스러웠어요.















* [구판 절판] () 미셸 투르니에, (사진) 에두아르 부바, 김화영 옮김

뒷모습(현대문학, 2002)

 

* [개정판] [예술 책 읽기 모임 두루미’ 세 번째 선정 도서] 

뒷모습(현대문학, 2020)




에두아르 부바(Edouard Boubat)라는 프랑스의 사진작가는 우리가 무심코 지나치기 쉬운 사람들의 뒷모습을 주목했어요. 산책하는 사람, 연인, 무희 등 여러 사람의 뒷모습만 사진에 담았어요. 미셸 투르니에(Michel Tournier)는 뒷모습을 찍은 부바의 사진에 자신의 글을 곁들였어요. 두 사람의 글과 사진이 만나서 태어난 책이 뒷모습입니다투르니에는 뒷모습의 매력을 이렇게 표현했어요. 등은 거짓말을 할 줄 모른다. 뒤쪽이 진실이다.’







<두루미> 세 번째 모임 선정 도서는 뒷모습입니다. 독서 모임 도서는 제가 예전에 읽었던 것입니다. 뒷모습2002년에 처음 출간되었고, 2012년에 제가 이 책을 읽고, 서평을 썼어요. 그때 쓴 뒷모습서평이 이달의 당선작이었네요. 12년이 지나서 오랜만에 뒷모습을 봤습니다. 제가 가지고 있는 책은 구판이에요. 구판 표지는 상반신만 탈의한 여성의 뒷모습을 찍은 사진이었어요. 지금 나온 뒷모습앞표지는 구판과 달라요. 표지만 다를 뿐 내용은 같습니다.






 

책 속 사진과 내용은 같아도, 20대 때 읽었을 때 느낌과 30대인 지금 읽었을 때의 느낌은 달랐어요. 책에 눈으로만 맡을 수 있는 향기가 나요. 처음 책을 보면서 느낀 향과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난 뒤에 느껴지는 향은 달라요당신의 책장에 과거에 만난 책이 있으면 한 번 펼쳐보세요. 오랜만에 만난, 오래된 책이 새 책처럼 보일 거예요.




[]그럴 땐 이 노래를 초콜릿처럼 꺼내 먹어요.” (자이언티의 <꺼내 먹어요> 노랫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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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syche 2024-02-26 10: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책 향수 만들기라니! 저도 배워보고 싶네요.

cyrus 2024-02-27 06:52   좋아요 0 | URL
제가 책 향수를 사용하는 법을 언급하지 않았네요. 책갈피에 뿌리면 돼요. 주말에 원데이 클래스 열리면 또 만들어 보고 싶어요. ^^

햇살과함께 2024-02-26 11: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삭힌 홍어 향이라니 ㅎㅎㅎㅎ 상상만으로도!
저는 우디 향, 스모키 향이 좋습니다~
초집중하면 엄지척 하신다니 재밌네요! 사람마다 집중할 때 버릇이 다 있죠 ㅎ

cyrus 2024-02-27 06:56   좋아요 1 | URL
오일 향 맡느라고 저의 뒷모습을 누가 찍었는지 기억나지 않아요. 책방지기와 아로마테라피 선생님 둘 중 한 분일 거예요. 제가 집중력을 높여주는 향에 취했나 봐요. ^^;;

stella.K 2024-02-26 12: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헉, 오늘 글은 좀 느낌이 다른 것 같아. 네가 쓴 글 맞지? ㅋ 홍어 삭힌 냄새를 좋아하는구나. 독특한데?
맞아. 뒷모습에서도 그 사람이 드러나기도 하지. 목소리나 억양에서도 그렇고. 향수에 관심 많은 줄 몰랐네.^^

cyrus 2024-02-27 07:02   좋아요 1 | URL
당연히 제가 썼죠... ㅎㅎㅎㅎ <하나의 시선> 책방지기가 제가 쓴 독서 모임 공지 글을 보더니 ‘학술적’인 느낌이 나서 쉽게 쓰라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독서 모임 공지 글을 에세이 형식으로 써봤어요. ^^

감은빛 2024-02-27 17: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앞산 근처 책방이라는 안내를 읽으니, 환경운동 판에서 저와 인연이 있던 분들이 한때 대구 앞산 개발 반대 운동을 했던 것이 기억나네요. 정작 저는 한번도 앞산을 가 본 적은 없는데, 마치 잘 아는 동네 뒷산 같은 기분이 들어요.

[뒷모습] 저도 예전에 읽었던 책이예요. 지금도 책장 어느 한 구석에 있을텐데. 그렇죠. 같은 책이라도 언제 읽느냐에 따라서 집중하는 지점도 다르고, 감상도 다르죠.

cyrus 2024-03-01 09:58   좋아요 0 | URL
앞산이 다른 동네에 있어서 자주 가는 산은 아니에요. 어렸을 때 한 번, 학창 시절에 소풍으로 한 번 간 적 있어요. <뒷모습>의 사진작가 에두아르 부바에 대해서 좀 더 알고 싶은데, 자료가 많지 않아요. 사진작가의 다른 작품도 보고 싶은데 말이죠. ^^;;
 
환상의 미술 - 몽환적이고 신비로운 모든 것의 시각 자료집
S. 엘리자베스 지음, 박찬원 옮김 / 미술문화 / 2024년 2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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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협찬받고 쓴 서평이 아닙니다.




평점


3.5점  ★★★☆  B+








장막을 걷어라.

나의 좁은 눈으로 이 세상을 더 보자.

 

접어드는 초저녁

누워 공상에 들어 생각에 도취했소.

 

다들 행복의 나라로 갑시다.

 


- 한대수 행복의 나라(1974) 노랫말 일부 -



사진은 1977년에 재발매된 한대수 1<멀고 먼 길> 앨범 앞표지다.





상상화는 그리기 쉽다. 내 생각과 상상한 것을 그대로 그리면 된다. 어떻게 보면 상상화는 꾸밈이 전혀 없는 솔직한 그림이다. 하지만 완성된 상상화는 온통 검다. 알록달록하게 색칠해도 상상화는 까맣다. 다른 사람의 눈에 비친 상상화는 어두컴컴하다. 상상화를 그린 사람은 자신이 무엇을 그렸는지 잘 안다. 그렇지만 다른 사람들은 이해하지 못한다. 도대체 뭘 그린 거야?” 그들은 깜깜한 상상화를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몰라서 눈앞이 깜깜하기만 하다.


비현실적인 상상화는 이상하고두렵고불쾌하고난해하다이해하기 힘든 상상화는 오해를 불러일으킨다. 까만 상상화가 낯선 사람들은 상상화를 그린 사람의 내면과 정신세계를 의심한다. 아름다움을 찾을 수 없는 상상화는 모든 사람에게 환영받지 못한다우리 눈은 실물과 실체를 보는 것에 익숙하다익숙하지 않은 것이 시야에 들어오면 눈동자가 좁아지면서 저절로 눈꺼풀이 감긴다그래서 상상화가 항상 까맣게 보이는 것이다.


우리는 세상을 바라보는 눈을 창문으로 비유한다. 그러나 우리 눈은 낯설고 익숙하지 않은 세상을 흔쾌히 받아들이지 못한다. 이상하다고 느낀 물체나 존재에 거부감을 느낀다. 보기 좋고, 친숙한 세상만 보려고 하는 눈은 항상 열려 있는 창문이 아니라 장막이다.

 

상상화의 매력을 모르는 사람은 환상의 미술: 몽환적이고 신비로운 모든 것의 시각 자료집검은 책으로만 보일 뿐이다. 반대로 상상력이 흘러넘치는 사람은 이 책이 깊고 광활한 검푸른 바다로 보인다. 그들은 공상에 취한 상태다. 익숙해서 지루한 일상을 잠시 잊어버리고 환상의 검푸른 바다로 풍덩 뛰어든다환상의 미술솔직 과감한 상상화를 보지 못하게 만드는 장막을 걷어내는 책이다. 이 책을 쓴 저자는 오컬트, 죽음, 공포와 같은 어둡고 음산한 주제로 한 예술 작품을 좋아한다


바다에 들어가기 전에 반드시 준비 운동을 해야 한다. 몸이 물에 적응하는 시간이 필요하다. 환상의 바다는 쉽게 들어갈 수 있는 곳이 아니다. 이곳에 예술가들의 상상력을 먹고 자란 괴물이 득시글거린다. 환상의 바다를 처음으로 유영하는 사람들은 잠자는 예술가들이 세운 드림랜드를 헤맨다상상하는 일을 시간 낭비로 여기는 사람이 환상의 바다로 무턱대고 뛰어들면 눈동자가 깜짝 놀라서 갑자기 눈이 감겨버린다. 환상의 바다로 본격적으로 뛰어들기 전에 눈 풀기 독서를 해야 한다상상력이 부족하면 눈이 뻑뻑해진다. 이미 출간된 저자의 또 다른 책들, 오컬트 미술: 현대의 신비주의자를 위한 시각 자료집》(하지은 옮김, 미술문화, 2022년)어둠의 미술: 무섭고 기괴하며 섬뜩한 시각 자료집》(박찬원 옮김, 미술문화, 2023년)은 환상의 바다를 자유롭게 헤엄치는 데 필요한 상상력을 한껏 끌어 올려준다.


상상하는 것은 현실에서 도피하는 행위가 아니다. 새로운 현실을 확장하는 일이다. 상상하는 것은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혁신적인 일이 아니다. 기존의 유를 새로운 유로 바꾸는 일이다. 상상하면서 환상의 세계를 그리는 예술가들은 개방된 세계를 묘사한다. 개방된 세계는 현실적인 것과 비현실적인 것, 과거와 현재, 아름다움과 추함, 인간과 비인간이 혼재되어 있다개방된 세계에서는 어떠한 제한도 없이 상상력을 펼칠 수 있다. 상상력은 이상하고, 환영받지 못한 사물과 존재를 특별하게 만들어 준다상상력이 충만한 예술가는 자신의 작품을 이해하지 못한 주변 사람들의 반응에 신경 쓰지 않는다. 예술가에게 상상력이란 실패에 대한 두려움을 잊게 만드는 담력이다.







<cyrus의 주석>

 



* 13

 




 느릿느릿 걷고 힘이 센 퉁명스러운 성격의 외눈박이 거인, 장난스럽고 심술궂은 마법을 부리는 반짝반짝 날개 달린 자그마한 존재, 빛을 발하는 뿔이 달린 말을 닮은 짐승, 그 외에도 인어, 미노타우로스, , 난쟁이, 스핑크스, 사티로스, 백조 아저씨[주1], 잠 귀신! 키클롭스의 흙투성이 동굴에서부터 버섯들이 빚어낸 요정의 반지, 그리고 세상의 끝 어두운 숲에 숨겨진 마지막 유니콘까지. 모든 문화에는 환상적인 생명체에 관한 신나는 이야기들이 존재한다.

     

[원문]


 Lumbering one-eyed giants with surly personalities and prodigious strength; diminutive, winged beings twinkling with magic both mischievous and malicious; luminous equine beasts with shimmering horns, elusive and rare. Mermaids and minotaurs, dragons and dwarves! Sphinxes, satyrs, swan maidens and even the Sandman from the Cyclops’ dusty cave to the mushroom-spotted faerie rings to the last unicorn hidden in a dark wood at the end of the world, there are clamouring, tales of fantastical creatures to be found in every nook and cranny of every culture.

   


[1] 백조 아저씨는 오역이다. ‘maiden’처녀, 아가씨를 뜻한다. 백조 처녀(Swan maiden)’ 전설은 우리나라의 민담 선녀와 나무꾼과 비슷하다. 하늘에 내려온 백조가 여자의 모습으로 목욕하고 있었는데, 이를 훔쳐본 남자는 백조의 깃옷을 감춘다. 여자는 원래 백조의 모습으로 돌아가지 못하고, 남자의 아내가 된다.





* 47

 




 보리아 삭스는 상상의 동물: 괴물, 불가사의, 인간(2013)에서 모든 유인원에는 설인이 어느 정도 들어 있고, 모든 말에도 페가수스가 조금 들어 있다. 남성과 여성은 천사 같은 면도 있고 악마 같은 면도 있다. 켄타우로스, 늑대 인간, 마법사 맨드레이크[2], 스핑크스 같은 면도 있다라고 쓴다.

 


[2] 맨드레이크(mandrake)는 전설에 묘사된 식물 이름이다. 전설에 따르면 교수형을 당한 사람의 몸에 나온 정액에서 피어난다. 맨드레이크의 뿌리는 사람 형상과 닮았다. 맨드레이크를 뽑으면 뿌리가 비명을 지른다. 이 비명을 들은 사람은 미치거나 죽는다. 맨드레이크는 해리포터와 비밀의 방에 나온다. 맨드레이크는 중세 시대 마법사들이 마법의 약을 제조할 때 사용한 약초였다. 식물 이름이 아니라면 필 데이비스(Phil Davis)와 프레드 프레드릭스(Fred Fredericks)의 만화 <마술사 맨드레이크>(Mandrake the Magician, 1934년부터 2013년까지 연재)에 나오는 동명의 주인공 이름일 수 있다. 원서에 ‘mandrake’라고 적혀 있는데 맨드레이크는 대중적으로 널리 알려진 전자의 의미에 가깝다.






* 72~73

 

 지크문트 프로이트의 무의식에 관한 20세기 이론은 경계를 허무는 초현실주의자들에게 특히 깊은 영향을 미쳤다. 그들은 새로운 현대 신화를 추구하는 가운데 괴물 같은 기괴함을 포옹하여 강렬하고도 불안한 이미지를 만들어 냈으며, 꿈과 악몽에서 영감을 얻어 대체 현실의 끔찍한 장면이 연상되는 광경을 그려냈다. 살바도르 달리, 호안 미로, 파블로 피카소와 같은 선구자들은 악마와 유령으로 구성된 어둡고 환상적인 동물원을 창조했는데, 그것은 인종차별주의, 민족주의의 너무나도 현실적인 위협과 파시즘의 폭력을 상징하였다. [3]




[3] 살바도르 달리(Salvador Dali)는 온갖 기행을 일삼은 괴짜로 유명하다. 달리는 히틀러(Adolf Hitler)를 찬양했는데 그 일이 문제가 되어 초현실주의자 그룹에 제명당했다.





* 111

 





J. J. 그랜드빌 J. J. 그랑빌(Grandville)






* 143


 





 『백설 공주이야기를 소름 끼치도록 뒤틀린 반전으로 재해석한 닐 게이먼의 단편 , 얼음, 사과[주4]는 공주와 계모를 경쟁 관계로 보고, 실제로는 그리 사악하지 않은 여왕이 뱀파이어 같은 의붓딸 때문에 공포에 질려 이 괴물로부터 왕국을 구하기 위해 애쓴다는 내용이다.

 


[주4] 1995년에 발표된 닐 게이먼(Neil Gaiman)의 단편 소설 원제는 ‘Snow, Glass, Apples’. 소설의 모티프는 그림 동화집(Grimm’s Fairy Tales)에 실린 백설 공주. 게이먼의 단편 소설 제목의 ‘Glass’는 원작 동화 속 계모가 소유했던 말하는 거울을 상징한다. 따라서 소설 제목은 , 거울, 사과. 이 소설은 닐 게이먼 베스트 컬렉션(정지현 옮김, 하빌리스, 2023)에 수록되어 있다.






* 203

 




 만일 타임머신이 있다면 어디로 가고 싶은가? 선사시대를 목적지로 해서 트리케라톱스와 익룡과 잠시 시간을 보내다가 티렉스에게 잡아먹히기 전에 돌아오고 싶은가? [주5]



[주5] 타임머신이 현실적으로 실현 불가능한 기계라는 사실을 잠시 제쳐두고, 똑똑한 타임머신이 실용화된 세계에 살고 있다고 상상해 보자. 공룡을 만나고 싶으면 타임머신에 선사시대로 가자고 부탁하면 안 된다. 만약 타임머신이 당신의 부탁을 들어준다면 그 기계는 정품이 아니다. 정품이 아닌 타임머신을 타다간 짝퉁 과거로 가거나 현재로 영영 돌아오지 못할 수 있다. 선사시대에 가면 공룡을 볼 수 없다. 공룡은 이미 멸종되어 사라졌고, 그 대신에 두 발로 걷는 인류의 조상들을 만날 수 있다. 우리의 조상님들을 만나 보고 싶으면 목적지를 선사시대로 하면 되고, 트리케라톱스와 티라노사우루스를 보려면 백악기로 가면 된다.





* 더 읽어보기, 236

 

Dinotopia: A Land Apart from Time, James Gurney, 1992 [주6]

 

Fairs and Elves(The Enchanted World), Colin Tuubron, 1984

Wizards and Witches(The Enchanted World), Brendan Lehane, 1984 [주7]

 

Fantasy, The Literature of Subversion, Dr Rosemary Jackson, 2008. [주8]



[주6] 1993년에 다이노토피아: 공룡 나라 여행(오경아 옮김, 디자인하우스)이라는 제목의 번역본이 출간되었다.

 

[주7] 분홍개구리라는 출판사가 총 아홉 권으로 이루어진 <인챈티드 월드>(Enchanted World) 시리즈를 번역 출간했다. ‘Fairs and Elves’의 국역본 제목은 요람을 흔드는 요정(박종윤 옮김, 2005)이다. <인챈티드 월드> 시리즈 전권 모두 절판되었다.

 

[주8] 로즈마리 잭슨(Rosemary Jackson)의 저서 <Fantasy: The Literature of Subversion>1981년에 출간되었다. 국역본 제목은 환상성: 전복의 문학(서강여성문학연구회 옮김, 문학동네, 2001)이다. 현재 절판되었다.





* 책 뒤표지

 






이 책에 프란시스코 고야(Francisco de Goya)의 그림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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얄라알라 2024-02-23 15: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거울과 얼음의 차이는 많이 나는데^^;;

살바도르 달리 하면 ‘숟가락? 스푼과 낮잠‘ 일화가 압도적이어서 그것만 떠오르는데 히틀러랑 얽힌 사연도 있군요

cyrus님 어떻게 이런 고퀄 분석을 하실수가요. 번역가분들이 cyrus님 모셔서 강의하실 기회를 만들어주셔도 진짜 유익할 것 같아요^^

cyrus 2024-02-26 06:29   좋아요 1 | URL
달리의 작품 중에 <히틀러의 수수께끼>라는 제목의 그림이 있어요. 그림을 보면 왜 저런 제목을 붙인 건지 알 수 없어요... ㅎㅎㅎ

저는 전문가가 아니라서 전문가들 앞에서 가르칠 수준은 아니에요. ^^;;

감은빛 2024-02-27 17: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와! 그런데 알라딘에서 글 쓰면서 어떻게 이렇게 이미지들을 깔끔하게 예쁘게 넣으신 건가요? 저는 이미지를 넣으면 편집이 잘 안 되던데요. 신기하네요.

cyrus 2024-03-01 10:01   좋아요 0 | URL
사진을 편집하는 과정이 번거로워요. 사진 이미지 크기를 작게 조절해요. 사진 원본을 올리면 너무 크게 나오거든요. 그렇다고 사진이 너무 작으면 글씨가 작아지는 경우가 있어서 일단 보기 좋게 크기를 조절한 다음에 알라딘 블로그에 올려요. 마음에 들 때까지 사진 크기를 조절하고, 알라딘에 올리고, 다시 지우고.. 저는 이 과정을 반복해요. ㅎㅎㅎ
 



기서(奇書)내용이 기이한 책이다. 내용이 어려워서 읽기 힘든 책을 뜻하기도 한다. 추리소설을 즐겨 읽는 독자라면 잘 아는 ‘일본 추리소설 3대 기서가 있다. 오구리 무시타로(小栗虫太郎)흑사관 살인 사건(1934), 유메노 큐사쿠(夢野久作)도구라 마구라(1935), 나카이 히데오(中井英夫)허무에의 제물(1964)이다.

















* 오구리 무시타로, 강원주 옮김 흑사관 살인 사건(이상미디어, 2019)

 

* [절판] 오구리 무시타로, 김선영 옮김 흑사관 살인 사건(북로드, 2011)




올해가 《흑사관 살인 사건》이 발표된 지 90주년이 된 해다흑사관 살인 사건후리야기(降矢木) 가문의 성에 일어난 연쇄 살인 사건을 다룬 장편소설이다. 성이 중세에 유행한 흑사병으로 죽은 사람들을 매장한 건물과 비슷해서 흑사관이라는 별칭이 붙여졌다. 이 작품에 오구리 무시타로의 탐정소설 시리즈의 주인공이자 변호사인 노리미즈 린타로(法水麟太郎)가 등장한다. 노리미즈는 박식한 인물이다. 그는 자신이 아는 모든 지식을 설명하면서 불가사의한 사건을 추리한다. 그런데 문제는 노리미즈가 아는 게 너무 많아서 한번 말하기 시작하면 장광설이 되고 만다. 노미리즈는 종교, 점성술, 과학, 범죄학 등 다양한 분야의 문헌과 용어들을 언급하면서 설명한다. 흑사관 살인 사건이 기서로 평가받는 이유가 작품 전반에 나타나는 현학적인 내용이다. 독자는 인내심 하나만으로 방대하면서도 난해한 내용을 뚫으면서 읽어야 한다.

 



















* [절판] 유메노 큐사쿠, 이동민 옮김 도구라 마구라(크롭써클, 2008년, 전 2권)





도구라 마구라유메노 큐사쿠의 유작이다. 유메노는 이 소설을 써서 탈고하는 데까지 십 년을 바쳤다. 소설이 발표된 지 이듬해에 세상을 떠났다. 독특하게도 뇌와 기억을 소재로 한 추리소설이다. 그래서 혹자는 이 소설을 SF로 보기도 한다. 두 권으로 된 번역본이 출간되었지만, 절판되었다.

















* 나카이 히데오, 허문순 옮김 허무에의 제물(동서문화사, 2009)

 



허무에의 제물반 미스터리(anti mystery)’를 대표하는 걸작이다. 번역본을 낸 출판사는 동서문화사. 허무에의 제물의 역자는 해설에서 ‘600쪽이 넘는 소설을 단숨에 읽었다라며 운을 뗀다. 읽기 까다로운 작품을 완독한 것을 자랑하는 것일까, 아니면 어떤 작품인지 모르고 한 거짓말일까? 저작권을 무시하면서 책을 출판하고, 유령 역자(익명의 역자가 번역한 책에 고인이 된 역자의 이름을 쓴 것)’를 내세워 책을 펴낸 출판사의 전력을 생각하면 역자의 말이 미덥지 않다.

















* 윤영천 미스터리 가이드북: 한 권으로 살펴보는 미스터리 장르의 모든 것(한스미디어, 2021)




미스터리 가이드북을 펴낸 미스터리 전문가 윤영천일본 본격 미스터리의 흐름을 충분히 이해한 다음에 ‘3대 기서에 도전하라고 권한다. 단순히 기서라는 단어에 혹해서 도전한다면 그 시간에 다른 작품을 읽으라고 말한다. 미스터리 마니아가 그렇게 말하니까, 기서를 더 읽고 싶어진다.


















* 백휴 추리소설로 철학 하기: 에드거 앨런 포에서 정유정까지(나비클럽, 2024)




철학을 전공한 추리소설 작가 백휴는 추리소설로 철학 하기에서 추리소설은 오락소설이라는 통념을 깨뜨리기 위해 추리소설을 철학적으로 읽기를 시도한다나는 이 책을 프롤로그-12순으로 읽었다. 12장은 프롤로그의 심화 편이라 할 수 있는데, 추리소설을 철학적 관점으로 읽고 해석해야 하는 이유가 본격적으로 나온다그런데 12장에 인용된 철학자가 너무 많다. 철학 용어를 인용하면서 추리소설을 철학으로 독해해야 하는 이유를 설명하면 독자들이 부담스러울 수 있다. 근거를 설명할 땐 단순할수록 좋다. 오컴의 면도날(Occam’s razor)’이 필요해 보인다.


고전 추리소설에 묘사된 탐정은 추리력과 논리력이 뛰어나다. 가장 대표적인 탐정이 셜록 홈스(Sherlock Holmes)다. 추리력과 논리력은 어떤 현상을 올바르게 분석하게끔 해주는 이성이 뒷받침되어야 가능한 능력이다. 하지만 시대가 지나면서 서구 지식인들이 찬양했던 이성의 입지가 점점 흔들리기 시작한다. 니체(Nietzsche)로 시작해서 몇몇 철학자들이 이성의 한계를 지적한다. 추리소설 역시 이성과 반이성이 충돌하는 철학의 흐름에 맞춰 유행하게 되었다. 20세기에 나온 추리소설 속 탐정은 똑똑하지 않다. 사건을 해결하지 못해서 전전긍긍하거나 결국 해결하지 못하는 경우도 있다.

 

3대 기서 중 흑사관 살인 사건을 먼저 읽어보려고 한다. 처음에는 아무 생각 없이 읽으려고 했는데, 추리소설로 철학 하기를 읽고 난 후에 생각이 달라졌다. 추리소설 3대 기서를 철학적으로 분석하면서 읽어보면 어떨까? 읽기 어렵기로 악명높은 책들을 더 어려운 방식으로 읽어야 하는 상황이 부담스럽다. 비트겐슈타인(Wittgenstein)은 탐정소설 속에 지혜의 알갱이들이 많이 있다고 말했다. 지혜의 알갱이 한 톨이라고 찾지 못해도 좋다. 일단 흑사관 살인 사건을 끝까지 읽는 것이 목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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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넬로페 2024-02-15 07:3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추리소설인데 내용이 어렵고 그것도 철학적인 접근~~
그럼에도 어쩐지 도전해보고 싶은 생각이 드는데요^^

cyrus 2024-02-23 07:00   좋아요 1 | URL
내용이 어렵거나 특이한 책은 한 번이라도 읽어보고 싶어요. 어떤 내용인지 궁금하거든요. ^^

stella.K 2024-02-15 18:0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나도 읽는다면 흑사관부터 도전할까 했는데 네 글 읽어보니 미스터리 가이드 북이랑 철학하기부터 읽어야지 싶네. 미스터리물은 어렵지 않다고 생각했는데 만만히 봤다간 큰코 다치겠군.
근데 허무에의 제물이 그런 사연이 있었군. 저 제목도 사실은 문법상 문제가 있어 보이긴 한다. ~~에의는 잘못된 표현이라고 들었거든 일본식 표현이라고 하던데. 손 좀 보면 좋을텐데ᆢ

cyrus 2024-02-23 07:03   좋아요 0 | URL
저도 ‘~에의’라는 표현이 눈에 거슬렸어요. 동서미스터리문고 개정판이 나올 가능성이 희박해서 제목이 고쳐지는 일은 없을 거예요. ^^;;
 
COSMOS 우주에 깃든 예술
로베르타 J. M. 올슨.제이 M. 파사쇼프 지음, 곽영직 옮김 / 북스힐 / 202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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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5점  ★★★☆  B+





 “엄밀히 말해그대도 엄밀히 말하기를 고집하시기에 말인데전문가는 아무도 실수를 저지르지 않아요. 누군가 실수를 하는 이유는 지식이 달리기 때문인데, 지식이 달리는 한 그는 전문가가 아니니까요. 따라서 어떤 전문가도 어떤 현인도 실수를 범하지 않으며, 어떤 치자도 치자인 한 실수를 범하지 않아요.”


(플라톤, 천병희 옮김, 국가1341a, 55)

 




코스미그래픽: 인류가 창조한 우주의 역사(Cosmigraphics, 마이클 벤슨 저, 지웅배 옮김, 롤러코스터, 2024년)는 예술이 된 매혹적인 우주를 모은 화보. 이 책의 생김새는 우량아와 비슷하다판형이 크다. 게다가 양장본이라서 두께는 얇은데도 제법 무게감이 느껴진다그런데 눈에 확 띄는 책의 몸집과는 달리 내실은 좋지 않다책 속에 고쳐야 할 것이 많다.[주1] 책에 화려한 도판들이 독자의 눈길을 사로 잡고 있어서 가 나지 않는다. 


사실 코스미그래픽이 나오기 전에 이미 우주 그림들을 한가득 모은 책이 출간된 적이 있다. 그 책은 바로 코스모스(Comsos). 코스모스? 칼 세이건(Carl Sagan)이 쓴 그 유명한 과학책? 제목과 주제는 비슷하지만, 내용은 다르다아주 유명한 칼 세이건의 코스모스》보급판(홍승수 옮김, 사이언스북스, 2006년) 벽돌 책이다.[주2] 제목만 같은 코스모스코스미그래픽의 생김새와 비슷한 널빤지 책이다. 널빤지 코스모스의 부제는 우주에 깃든 예술이다.


코스미그래픽의 저자는 널빤지 코스모스의 존재를 알고 있다. 저자는 자신의 책에 널빤지 코스모스의 저자 이름을 언급했다.



코스미그래픽》 314쪽


 미술사학자 로베르타 올슨과 천문학자 제이 파사코프의 분석에 따르면, 그림 속 앉아 있는 노아의 왼쪽에서 하늘을 가리키는 사람은 므두셀라이며 그의 아버지 에녹이 점성술적 징조에 관한 내용을 써놓은 두루마리를 쥐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로베르타 올슨(Roberta J. M. Olsen)제이 파사쇼프(Jay M. Pasachoff)1985년부터 예술과 천문학의 관계를 연구하기 시작했다천문학적 현상이 주는 영감이라는 이름의 학술회의를 진행하기도 했다두 사람이 처음 만난 이듬해에 핼리 혜성(1P/Halley)76년 만에 나타났다. 오래전부터 사람들은 밤하늘에 나타난 혜성을 묘사했다. 널빤지 코스모스에도 혜성을 묘사한 그림들이 실려 있다.


이탈리아의 화가 조토 디 본도네(Giotto di Bondone)1301년에 혜성을 목격했고, 프레스코화 <동방박사의 경배>(1305년)에 혜성을 그려 넣었다조토는 세 명의 동방박사를 위해 예수가 태어난 마구간으로 인도한 베들레헴의 별(Star of Bethlehem)을 혜성처럼 묘사했다전문가들은 조토가 본 혜성이 핼리혜성이라고 주장한다.


예술가들은 어두운 밤하늘을 바라보면서 눈으로 빛나는 영감을 건졌다. 멕시코의 화가 디에고 리베라(Diego Rivera)일식(日蝕)에 매료됐다. 그는 프리다 칼로(Frida Kahlo)와 함께 지붕 위에 올라가서 일식을 관측했다고 한다독일의 판화가 알브레히트 뒤러(Albrecht Düre)는 자택에 천문관측소를 설치했다. 그는 연작 목판화 묵시록(1511)에 혼돈을 상징하는 유성을 그렸다.


플라톤(Plato)국가에 등장하는 트라시마코스(Thrasymachus)는 정의에 대해 소크라테스(Socrates)와 대화를 나눈다. 트라시마코스는 전문가는 실수하지 않는 사람이라고 주장한다그의 주장은 틀렸다. (삼단 논법으로 반박하자면) 전문가는 사람이다. 사람은 실수한다. 전문가는 실수한다. 지식이 부족해서도 실수하고, 지식이 많이 있어도 실수한다.


코스미그래픽과 널빤지 코스모스의 역자 모두 과학 전문가. 코스미그래픽의 역자 지웅배는 천문학자 겸 과학 해설자(science communicator). 널빤지 코스모스의 역자는 곽영직 교수. 곽 교수는 다작하는 과학 전문 저술가. 그가 직접 쓴 과학책, 번역서, 감수한 책들이 상당히 많다.[주3]


공교롭게도 코스미그래픽과 널빤지 코스모스, 두 책 모두 겉은 보기 좋으나 속에 흠이 많다. 널빤지 코스모스코스미그래픽못지않게 오자와 오류가 있다책 제목은 코스모스인데 책을 펼쳐 보면 카오스(Chaos, 혼돈)’역자들만 실수하는가? 이 책의 편집과 교정을 맡은 출판사 직원도 실수한다.






<cyrus의 주석>

 




[1] 코스미그래픽서평, <안녕하세요, 지구인. 제 목소리 들리십니까?>(2024년 1월 23일 작성)

https://blog.aladin.co.kr/haesung/15244507



[2] 칼 세이건의 코스모스번역본은 두 가지 버전이 있다. 2004년에 처음 나온 책은 판형이 큰 널빤지 책이다. 정가는 5만 원이다. ‘벽돌 책으로 알려진 코스모스보급판이다.



[3] 곽 교수가 쓴 책 중에 칼 세이건의 코스모스읽기(세창출판사, 2021)가 있다.





* 16, 19





보르기아 보르지아(Borgia)

 



* 33





단테의 낙원 단테의 천국(paradiso)




* 75





1851년 프랑스 쿠테타 1851년 프랑스 쿠데타





* 84

 

 리베라는 그의 아내 프리다 칼로[4]를 비롯해 몇몇 사람들과 함께 지붕으로 달려가 일식을 관측했다.

 


[4] 이 문장을 이렇게 고쳐 쓰고 싶다. “프리다 칼로의 남편 리베라는 프리다를 비롯해 몇몇 사람들과 함께 지붕으로 달려가 일식을 관측했다.” 리베라의 역겨운 여성 편력을 생각하면 프리다 칼로의 남편이라는 표현을 쓰고 싶지 않다.




* 88, 91





알렉산드르 브로딘의 오페라 <이고르 왕자

알렉산드르 보로딘(Aleksandr Borodin)의 

오페라 <이고르 공(, Prince Igor)>


오페라 제목을 이고르 왕자라고 쓰는 사람들이 있다. 이렇게 써도 틀렸다고 볼 수 없다. 그래도 가장 많이 알려진 제목은 이고르 공이다.

 




* 98, 133, 199, 275







고대 로마의 작가 플리니우스가 쓴 자연의 역사(Natural History)

[주5]



[주5] 국내에 알려진 플리니우스(Plinius)의 책 제목은 박물지.





* 160


드니 디드로의 스물여덟 권짜리 백과사전[주6]


[주6] 백과전서로 알려진 방대한 분량의 저작물은 드니 디드로(Denis Diderot)가 혼자 쓰지 않았다. 달랑베르(Jean Le Rond d’Alembert), 볼테르(Voltaire)가 포함된 100여 명의 지식인이 백과전서 집필에 참여했다. 디드로와 달랑베르는 백과전서의 공동 편집장이다.

 





* 206





우루술라 우르술라(St. Ursula)




* 133쪽






* 207





베르길리우스의 전원시 아이네이스』 

베르길리우스의 서사시 아이네이스[주7]



[주7] 아이네이스전원시가 아니다. 트로이의 장군 아이네이스가 긴 여정 끝에 로마를 건국하는 과정을 그린 장편 서사시. 전원시는 전원에서 사는 삶을 주제로 한 시다. 지금까지 알려진 베르길리우스의 또 다른 작품이 총 열 권으로 이루어진 전원시(Eclogues). 그런데 이 책 133쪽에 <Eclogues>가 한 차례 언급되는데 곽 교수는 작품 제목을 시선(詩選)’으로 오역했다.




* 217

 




 심지어 현실적이었던 사회주의 화가 -프랑수아 밀레[주8]단테의 코메디아의 큰 불Inferno[주9]5편을 나타내기 위해 상상력이 풍부한 캔버스화인 <유성>을 그렸다.

 


[주8] 저자들이 밀레(Jean-François Millet)사회주의 화가로 착각했다. 밀레1850년에 <건초를 묶는 사람들>을 살롱에 출품한다. 살롱전에 관람한 기자들은 그의 작품을 비난하면서 밀레를 사회주의자로 단정했다. 밀레는 자신에 관한 전기를 쓴 친구 알프레드 상시에(Alfred Sensier)에게 보낸 편지에 기자들의 비평에 불쾌감을 드러냈다. 밀레는 사회주의뿐만 아니라 공화주의와 민주주의도 배격했으며 비평가들이 자신을 어느 당파로 규정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았다. (참고문헌: 즈느비에브 라캉브르 외, 밀레, 창해, 2000)



[주9] 단테의 코메디아(La Divina Commedia Di Dante Alighieri)’는 단테 사후에 붙여진 신곡의 원제. <Inferno>신곡1부인 <지옥> 편이다.




* 242, 243

 




 우리은하는 어떻게 형성되었을까? 베네치아의 르네상스 화가 야코포 틴토레토가 상상력을 발휘해 그린 것처럼 비너스가 흘린 젖[주10]에 소용돌이치는 나선 형태를 더해 만들어진 것은 틀림없이 아닐 것이다.



[주10] 인용문은 틴토레토(Jacopo Tintoretto)의 그림 <은하수의 기원>을 언급한 내용이다. 틴토레토는 그리스 신화로 전해지는 우리은하의 기원을 묘사했다. 신화에 따르면 제우스(Zeus)는 전쟁에 참전한 암피트리온(Amphitryon)으로 변신하여 그의 아내 알크메네(Alcmene)와 동침했다. 알크메네는 임신하여 헤라클레스를 낳았다. 제우스는 아기 헤라클레스를 불사신으로 만들려고 헤라(Hera)가 잠든 사이에 젖을 물리게 했는데, 잠에서 깬 헤라는 아기를 밀쳐냈다. 이때 헤라의 가슴에 흘러나온 모유는 밤하늘에 뿌려져 은하수(Milky Way)가 되었다고 한다. 틴토레토의 그림에 묘사된 여신은 비너스(Venus)가 아니라 헤라다. 그림 오른쪽에 헤라를 상징하는 공작새가 있다.





* 253

 




 태양계의 주요한 행성들의 이름은 고대 그리스 로마 올림픽 신들[주11]의 이름을 따라 지어졌다.

 


[주11] 올림픽이 아니라 올림포스(Olympos)’. 올림포스는 열두 명의 신이 모여 있다고 전해지는 산의 이름이다. 올림픽은 고대 그리스의 올림피아(Olympia) 제전에서 유래된 단어다.





* 254




 

 갈릴레이는 지역의 유력 인사들에게 자신의 페르스피실룸으로 베네치아에 있는 마르크스 바실리카[12]의 종탑을 보여 주고, 이 도구로 바다 멀리에 있는 배를 얼마나 더 잘 볼 수 있는지를 확인시켜 이것이 상업적이나 군사적으로 큰 가치가 있다는 것을 증명했다.

 


[12] 마르코 바실리카(Basilica San Marco)





* 271





이탈리아의 미래학자 겸 화가였던 자코모 발라 [주13]



[주13]이탈리아의 미래주의(Futurism, 미래파, 미래주의자) 화가였던 자코모 발라(Giacomo Balla). 미래주의는 20세기 초 이탈리아에 유행한 근대 예술 유파다. 미래주의 예술가들은 과거와 전통 예술을 거부하고, 기계의 역동성을 찬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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