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의 변증법 - 페미니스트 혁명을 위하여
슐라미스 파이어스톤 지음, 김민예숙.유숙열 옮김 / 꾸리에 / 201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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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0년대를 지나면서 미국은 정치 · 사회적으로 커다란 변혁을 겪었다. 1960년대는 여성해방운동이 막 힘을 얻기 시작하며 결혼과 섹슈얼리티에 대한 전통적 가치들이 흔들리고 있던 시기였다. 슐라미스 파이어스톤(Shulamith Firestone) 역시 이러한 시대적 분위기 안에서 ‘여성 인권’에 눈뜨게 되었다. 서구 사회의 지배층인 백인 남성들은 흑인, 여성들을 열등한 존재로 격하시키고 이를 통해 자신들의 통제와 지배를 정당화시키는 구실을 했다. 1969년 미국의 급진적 페미니스트들의 주도로 시작된 ‘레드스타킹 선언(Red Stocking Declaration)’‘억압 계급으로서의 여성’을 사회적 관심의 대상으로 떠오르게 하는 계기가 되었다.

 

 

레드스타킹 선언을 지지한 파이어스톤은 이듬해에 《성의 변증법》(꾸리에, 2016)을 발표했다. 그녀는 이 책을 통해 단순하게 여성 평등만을 주장하는 기존의 페미니즘 시각에서 탈피해야 할 필요성을 보여준다. 마르크스(Marx)엥겔스(Engels)는 역사적으로 여성이 인간의 사회적 관계와 권력의 불평등한 분배에서 벗어나지 못했다고 주장했다. 사회주의적 관점을 이어받은 파이어스톤은 남성이 하나의 계급으로서 여성을 억압하고 있다고 봤다. 그녀의 논리에 따르면 여성에게 강요된 결혼, 출산, 가사노동은 억압적인 가부장제의 산물이다. 그리고 그녀는 여성들이 진정으로 해방되기 원한다면 낙태를 남성에게 의존하지 말고 여성 스스로 결정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녀는 여기에 한발 더 나아가 급진적인 미래를 제시한다. 파이어스톤은 인공 태반, 시험관 아기 시술과 같은 ‘인공생식’이 활성화된다면 ‘자연적 생식(生殖)’, 즉 임신을 대체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베티 프리단(Betty Friedan)나왈 엘 사다위(Nawal El Saadawi) 등의 페미니스트들은 프로이트(Freud)의 정신분석과 성 이론으로는 여성 문제를 제대로 다룰 수 없다고 지적했다. 그러나 프로이트를 바라보는 파이어스톤의 입장은 그녀들과 다르다. 그녀는 프로이트의 한계를 인정하면서도 섹슈얼리티의 본질을 파악한 프로이트 이론을 부정할 수 없다고 말한다. 파이어스톤은 프로이트 이론과 페미니즘의 공통점을 찾으려고 했고, 오이디푸스 콤플렉스(Oedipal Complex)가 나타나는 가부장제 핵가족의 문제점을 살폈다. 아들이 어머니에 대해선 근친상간의 욕망을 지니고 아버지에 대해선 경쟁의식을 가지게 되면 아버지와 같은 가부장적 권력을 차지하고 싶다는 상상을 한다. 그러나 ‘가족’이라는 친족 구조가 형성되어 있어서 아들의 근친상간 욕망이 억압되고, 아버지의 가부장적 권력은 유지된다. 그 권력 속에서 성장한 아들은 가부장제에 익숙한 ‘아버지’가 된다. 파이어스톤은 프로이트 이론을 끌어들여 오이디푸스 콤플렉스에서 비롯된 가부장제가 여성과 아이의 피억압을 심화시켰다고 설명한다. 그리하여 그녀는 가부장제 핵가족을 해체하는 대안으로 모든 여성과 아이들에게 ‘성적 자유’를 누려야 한다고 주장한다.

 

 

파이어스톤은 ‘(남성)문화’가 만들어낸 ‘사랑’ 개념도 여성의 자유를 억압하는 기제로 작용한다고 주장한다. 남성을 사랑하는 여성은 자신들의 존재 가치를 증명하기 위해 사랑하는 남성과의 결혼을 추구한다. 왜냐하면 결혼하지 못한 여성은 경제적으로 의존하지 않는 독립된 생활을 할 수 없다. 결국, 남편에게 경제적으로 의존하는 여성은 남성보다 열등한 존재가 된다. 사랑이 결혼으로 이어져서 가족이 형성되는 과정에서 남성과 여성의 불평등한 권력 관계는 유지된다.

 

 

맞벌이가 보편화한 지금, 이 시대 여성들은 결혼 후에도 계속 일하기를 원하고 있다. 그러나 경기 침체가 계속될수록 여성의 취업뿐만 아니라 재취업도 어려워진다. 이렇다 보니 좁은 취업문을 통과하기 어렵다고 판단하는 여성들은 취업 대신에 결혼을 선택한다. 이런 현상을 ‘취집(취업+시집)’이라고 부르는데, ‘취집’을 선택한 여성은 전업주부로 살아간다. 요즘 우리 사회에 ‘1인 가구’ 비중이 늘어나고 결혼을 기피하는 경향이 점차 뚜렷해지고 있다. 과연 파이어스톤이 예언한 대로 ‘사랑’이라는 현상이 작동하지 않는 사회를 볼 수 있을까? 그런 사회가 온다면 핵가족이 줄어들고, ‘자녀 없는 부부 가족’이 늘어날 수 있다. 그렇다면 ‘자녀 없는 부부 가족’은 부부의 불평등한 권력 관계가 작동되지 않는 최적의 친족 구조일까? 파이어스톤은 여성은 일부일처제를 지향하고, 섹스보다는 관계에 더 관심이 많고, 애정과 성욕을 혼동하는 동물로 본다. 반면 그녀가 보는 남성은 섹스 이외에는 아무것도 관심 없는 동물이다. 따라서 그녀는 사랑을 낭만화시키는 ‘(남성)문화’를 반대하고, “남성들은 사랑할 수 없다”(197쪽)고 주장한다. 결혼하지 않거나 자녀가 없어도 여성이 사랑하는 남성에게 경제적으로 의존한다면 ‘건전한 사랑’을 느끼기 어렵다. 파이어스톤이 지금 살아있다면 현모양처를 꿈꾸는 여성들에게 이렇게 말할 것이다. “사랑이 밥 먹여 주냐? 결혼이 네 인생 책임 지냐?”

 

 

파이어스톤은 《성의 변증법》이 문장 하나라도 삭제되지 않도록 그대로 출판되기를 원했다. 그래서 우리는 40여 년 전 스물다섯 살의 젋은 파이이스톤의 여성론을 생생하게 확인할 수 있다. 여성을 넘어 인간의 해방과 자유를 꿈꿨던 그녀의 작업은 현재 우리 시대의 요구와도 긴밀하게 맞닿아 있다. 하지만 《성의 변증법》도 시대적 한계에 갇혔다는 비판을 피할 수 없다. 파이어스톤은 프로이트의 이론을 지지하면서 자녀는 ‘권력을 가진 부모’가 되기를 원한다고 주장했다. 그녀는 부모의 양육이 자녀의 성장에 큰 영향을 준다는 입장을 옹호하는 셈인데 ‘부모의 양육’을 근거 없는 ‘가설’이라고 비판하는 주디스 리치 해리스(Judith Rich Harris)의 입장을 내세워 파이어스톤을 비판할 수 있다.

 

 

 

우리가 아이를 잘 성장하는 데 충분한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는 책임감을 느끼는 이유는 두 가지가 있다. 첫째는 오늘날 아이들은 제대로 대접 받을 권리가 있는 독립된 개체로 받아들여지며, 둘째는 한 아이가 어른으로 성장하는 데 유년기의 경험이 큰 영향을 미친다고 하는 “이데올로기적 도그마” 때문이다. 이 도그마를 믿는 사람들은 또한 유년기에 부모와 함께한 특정한 경험이 특히 결정적인 영향을 미친다고 생각한다. 이 믿음 역시 ‘양육가설’에 속한다. (주디스 리치 해리스 《양육 가설》 138쪽)

 

 

 

파이어스톤은 이스라엘의 집단농장인 키부츠(kibbutz)와 비슷한 공동체 사회를 만든다면 ‘남성과 여성’, ‘어른과 아이’로 구분되는 불균등한 관계가 해소될 거로 믿었다. 그녀가 상상한 미래의 공동체 사회는 ‘완전 평등 사회’이다. 그러나 아이는 남성과 여성을 동등한 존재로 인식하지 못한다. 아이는 또래 친구를 만나면서부터 자기 자신이 ‘남자아이’인지 ‘여자아이’인지 깨닫게 된다.

 

 

 

아이는 부모를 통해 자아를 형성하지 않는다. 아이는 자기와 유사한 다른 아이들을 통해 자아를 형성한다. (주디스 리치 해리스 《양육 가설》 323쪽)

 

 

 

주디스 리치 해리스는 아이가 친구들을 만나면서 ‘남성과 여성’을 구분하게 되는 ‘성별 범주’를 막을 수 없다고 주장한다. 그녀는 수렵채집 생활을 하고, 아이들의 수가 적은 유목민 무리가 성별을 구분하지 않는 완전히 평등한 사회에 가깝다고 말한다.

 

 

 

수렵채집 생활을 하는 집단에는 아이가 많지 않기 때문에 에페족 아이들은 남녀를 구별하지 않고 한데 어울려 놀았다. 에페족 아이에게 유의미한 사회범주는 남자아이와 여자아이가 아니라 어른과 아이인 것이다. 자녀가 성별에 따른 구별 없이 완전하게 평등한 성 개념을 갖기를 바란다면 아이를 수렵채집 생활을 하는 유목민 무리에 보낼 것을 권한다. 그게 아니면 아이들 수가 너무 적어서 놀이집단이 둘로 나뉠 수 없는 지구상의 어딘가로 보내는 것도 괜찮다. (주디스 리치 해리스 《양육 가설》 345, 346쪽)

 

 

 

인간의 역사에서 차별 철폐를 내세워 지상천국을 꿈꾸는 사람들은 많았지만, 그들이 원하던 지상천국은 ‘현실에는 존재하지 않는 장소(utopia)’였다. 그러나 파이어스톤은 현실보다 ‘성 구분 자체를 철폐하는 페미니스트 혁명’이라는 꿈을 더 소중하게 여겼다. 《성의 변증법》 출간 이후로 파이어스톤은 외부와 단절된 생활을 했다. 그녀는 정신병원에 입원하면서도 페미니스트 혁명 투쟁에 대한 끈을 놓지 않았다. 그녀는 정신질환에 시달리다가 2012년에 쓸쓸한 죽음을 맞이했다. 아나키스트 마 골드만(Emma Goldman)‘더 이상 꿈꿀 것이 없음은 죽음을 의미한다’고 말했다. 아마도 그녀가 죽음을 맞는 순간, 더 이상 꿈꿀 것이 없다고 생각했던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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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립간 2018-02-08 19:2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는 현실 세계에서의 최적 optimum이 이상 ideals이라고 생각합니다.

cyrus 2018-02-08 19:47   좋아요 0 | URL
마립간님의 말씀에 공감합니다. 최적의 조건 또는 환경이 서로 상반되는 양자를 만족시키는 경우가 잘 없죠.

마립간 2018-02-09 07:47   좋아요 1 | URL
제 글을 읽으셔서 알고 계시겠지만 저는
교육 방법에 방법에 있어, 자율성과 평등적 결과의 적점, 최적을 찾아 그것을 교육 제도로 택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상당수의 제도들이 상보성을 이해하지 못해 양쪽의 나쁜 결과를 왔다 갔다 한다고 생각합니다.

마찬가지로 (편애가 넘치는 정의감에 의존한) 페미니스트들의 많은 주장들이 최적을 찾기 보다는 상보적인 양쪽을 주장함으로써 더 나은 결과를 만들어 내지 못한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레삭매냐 2018-02-08 19: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싸이러스님은 곧 페미니스트 전문가가
되실 것 같습니다. 아니 ‘이미‘인가요.

cyrus 2018-02-08 20:47   좋아요 0 | URL
전문가가 되고 싶지 않습니다.. ㅎㅎㅎ 저는 ‘우물(알라딘) 안에 있는 개구리(딜레탕트)‘입니다. ^^

stella.K 2018-02-08 20: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런데 제목대로 사랑이 밥 먹여 줄 수 있어야 하는 거 아니니?
짜릿하고 후끈 거리는 것만이 사랑은 아니잖아.
하긴 난 배우자한테 밥은 먹여줄 수 있어.
하지만 그가 싸놓은 X 치우라고 그러면 도망갈 것 같아.
사랑이 밥 먹여주냐고 하면서 말이지.ㅋㅋ

cyrus 2018-02-08 20:23   좋아요 2 | URL
파이어스톤은 이 책에서 ‘남자는 (여자를) 사랑할 수 없다‘고 단호하게 말하지만, 성(sex)와 에로티시즘을 부정하지 않아요. 그녀는 에로티시즘을 완전히 부정하게 되면 성적 기쁨과 흥분마저 사라진다고 썼거든요. 여자를 진정으로 사랑하는 남자라면 본인이 싼 똥은 자기가 할 수 있는만큼 치워야죠. 혼자 똥 치우기 힘들어서 ‘사랑의 힘‘이라는 이름을 내세워서 여자에게 똥 치워달라고 부탁하는 것은 진짜 사랑이라 볼 수 없어요. 그건 사랑이 아니라 강요에요. ^^

stella.K 2018-02-09 13:35   좋아요 0 | URL
ㅎㅎㅎ 그렇지. 옳은 말이야.
그런데 내 말은 이 사람이 수족을 못 쓰게 되는
최악의 경우를 말했던 거지.
내가 조금 오버는 했지?
파이어스톤이 정말 맞는 말을 한 것 같다.

2018-02-08 21:02   URL
비밀 댓글입니다.

cyrus 2018-02-09 11:09   좋아요 1 | URL
‘사랑’이라는 단어가 남아 있어도 남녀 모두 행복하고 만족시킬 수 있는 ‘진짜 사랑’을 경험하기가 어려워질 것입니다.

AgalmA 2018-02-11 14:11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68혁명 이후의 유럽 페미니즘, 미국의 여성해방운동이 급격히 식었던 걸 생각할 때 한국의 페미니즘 운동도 비슷한 양상이 될까 좀 우려하는 중입니다. 사회-경제 불안정이 장기화되면 이러한 급진적인 운동은 대중의 장기적 응원을 받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속된 말로 먹고 살기 힘든데 자신과 밀접한 문제가 아니면 관심주지 않으니까. 오히려 먹고 살기 힘드니까 이런 페미니즘 움직임에 화풀이를 하는 것 같기도 하고요.
사상과 운동의 신선도가 계속 유지되어야 하는 게 관건입니다. 현재의 급진적 페미니즘으로는 화력이 약하죠. 다양성, 포괄성이 있어야 해요.
뻑하면 메갈리안 들먹이거나 결혼 기피하며 백마탄 왕자 잡는 된장녀 운운하는 인간들과 대결하려면^^;

cyrus 2018-02-12 13:43   좋아요 0 | URL
페미니즘 운동은 시대의 요구와 반응에 맞춰 변화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변화를 따라가지 못하면 정체될 수밖에 없어요. 여성 선거권이 도입된 이후로 영미권 자유주의 페미니즘이 정체되는 바람에 여성운동이 시들해졌어요. 우리나라 여성운동도 언젠가는 정체기(과도기)를 겪을 것입니다.
 

 

 

이토 준지 컬렉션 4화 첫 번째 에피소드

한기

 

 

 

 

 

주인공 유지의 이웃집에는 리나라는 소녀가 산다. 리나는 원인 불명의 병에 걸려 집에서만 지낸다. 유지는 리나의 집을 방문하는 의사를 목격한다. 의사가 올 때마다 리나는 공포에 질려 비명을 지른다. 유지는 창밖을 향해 멍하니 쳐다보는 리나의 눈과 마주친다. 유지가 자신을 보고 있다는 것을 안 리나는 한쪽 팔을 뻗어 마당을 가리켰다. 유지는 그녀가 창밖으로 내민 팔을 보고 깜짝 놀란다. 그녀의 팔에는 수많은 구멍이 나 있어 보기 흉할 정도였다.

 

리나의 몸에 난 구멍들, 그녀를 진찰하러 오는 의사. 유지는 이 두 사람을 볼 때마다 어릴 적에 세상을 떠난 할아버지를 떠올린다. 유지의 할아버지도 온몸에 구멍들이 생겼고, 그의 임종을 지켜본 사람이 의사였다. 유지의 친구 히데오는 유지의 방 책장에 꽂힌 할아버지의 일기를 발견한다. 일기에 벌레 형상이 새겨진 비취 조판에 대한 내용이 있었다. 비취 조판의 아름다움에 매료된 할아버지는 그것을 애지중지하며 다루었다. 그러나 비취 조판을 가지게 된 이후로 할아버지는 극심한 오한을 느낀다. 오한에 시달리는 할아버지를 찾은 의사는 그의 팔에 녹색 액체가 든 주사를 놓는다. 할아버지의 몸에 난 구멍들은 점점 커지고, 할아버지는 환각 증세를 보인다. 자신을 끔찍한 상태로 변하게 만든 원인이 ‘비취 조판의 저주’라고 생각한 할아버지는 비취 조판을 창문 밖으로 있는 힘껏 던진다. 비취 조판은 리나가 사는 집 마당 쪽으로 떨어진다.

 

 

 

 

 

 

 

 

 

 

 

 

 

 

 

 

 

* 이토 준지 《이토 준지 공포박물관 4 : 허수아비》 (시공사, 2008)

 

 

 

몸에 뻥뻥 뚫려 있는 구멍들을 볼 때마다 불쾌감을 느끼는 분이라면 이 만화를 안 보는 것이 좋다. 이런 사람들이 느끼는 반응을 ‘환 공포증’이라고 부르기도 하는데, 사실 환 공포증은 정신의학 학계가 공식적으로 인정한 용어가 아니다. 환 공포증의 실체를 부정하는 학자들은 구멍들을 보면서 생기는 ‘일시적인 불쾌감’을 ‘공포증’으로 규정하기 어렵다고 말한다.

 

 

 

 

 

 

이토 준지 컬렉션 4화 두 번째 에피소드

인형의 집

 

 

 

 

 

키티와키 유키히코, 키티와키 하루히코 형제, 막내 키타와키 나츠미는 인형사인 아버지와 함께 전국을 돌아다니며 인형극을 공연하는 일을 한다. 키티와키 집안은 주기적으로 이동하면서 인형극 공연을 한다. 그래서 전학이 잦은 편이다. 유키히코는 짧게나마 다니던 학교에서 히다카 키누코라는 소녀를 만나게 된다. 하루히코는 다양한 인형들이 보관된 창고에 키누코를 초대한다. 하루히코는 형 유키히코가 좋아하는 장 피에르라는 인형을 키누코에게 보여주지만, 키누코는 그 인형을 좋아하지 않는 반응을 보인다.

 

아버지는 ‘인형사가 인형을 조종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형은 아버지의 생각과 정반대이다. 유키히코는 ‘인형이 인형사를 조종한다’고 생각한다. 아버지는 인형을 좋아해서 인형사 일을 하는 것이지만, 유키히코는 그런 아버지의 삶을 못마땅하게 여긴다. 그는 아버지가 인형들에게 조종당해 떠돌이 인형사 일을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는 장 피에르를 가지고 가출한다. 아버지가 세상을 떠난 후에 유키히코는 인형극 공연 일을 청산하고 나츠미와 함께 평범한 삶을 살아간다.

 

 

 

 

 

하루히코는 우연히 나츠미와 재회하고, 형이 자신과 같은 동네에서 산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유키히코의 초대를 받은 하루히코, 나츠미는 그를 오랜만에 만난다. 유키히코는 경제적으로 안정적인 생활을 하고 있었고, 어엿한 가정도 있다. 그러나 유키히코 가족은 줄에 매달린 인형처럼 살고 있었다. 나츠미는 인형처럼 사는 유키히코 가족을 부러워하지만, 하루히코는 인형사의 조종에 이끌려 생활하는 형을 이해하지 못한다.

 

 

 

 

 

 

 

 

 

 

 

 

 

 

 

 

 

 

* 이토 준지 《이토 준지 공포박물관 7 : 신음하는 배수관》 (시공사, 2008)

 

 

 

 

 

 

 

 

 

 

 

 

 

 

 

 

 

* [절판] 게이비 우드 《살아 있는 인형》 (이제이북스, 2004)

* 시부사와 다쓰히코 《흑마술 수첩》 (어문학사, 2017)

* 크리스토퍼 델 《오컬트, 마술과 마법》 (시공아트, 2017)

 

 

 

제우스(Zeus)의 명령을 받은 프로메테우스(Prometheus)는 흙과 물을 이용하여 인간을 만들었다. 프로메테우스는 인간의 모습을 모방한 또 다른 생명체를 만들려고 하는 욕망이 반영된 존재이다. 인간의 손에서 시작되는 ‘인간 만들기’는 최근에 나온 놀라운 사건이 아니다. 인간은 오랜 옛날부터 ‘인공생명 창조’를 꿈꾸어왔다. 인간을 창조하는 신화를 짓고 골방에서 비밀스러운 실험을 했으며, 인간과 비슷한 기계장치와 인형을 만들어 자기 복제라는 욕망을 실현하려 했다. 《살이 있는 인형》은 ‘인형 만들기(복제, 생명 창조)’의 역사를 되돌아본다. 이 책은 프로메테우스처럼 생명체를 모방한 인형을 만들고자 했던 사람들의 욕망을 보여준다. 구석기 시대에 만들어진 빌렌도르프의 비너스(Venus of Willendorf)는 인류 최초의 인형이라 할 수 있다. 데카르트(Descartes)는 일찍 세상을 떠난 어린 딸을 잊지 못해 딸의 모습을 닮은 인형을 만들었다. 프랑스의 발명가 자크 드 보캉송(Jacques de Vaucanson)은 플루트를 연주하는 자동인형, 물을 마시면 꽁무니로 물을 빼는 자동 오리 인형 등을 제작했다. 생명체와 비슷한 인형을 만들려는 인간의 오랜 꿈은 로봇을 발명하는 계기가 된다.

 

《흑마술 수첩》, 《오컬트, 마술과 마법》에 환상적인 요소가 많은 '자동인형'에 대한 내용이 나온다. 중세 독일의 신학자 알베르투스 마그누스(Albertus Magnus)에 관한 전설에 따르면 마그누스는 별의 기운을 받아 움직이는 자동인형을 만들었다고 한다. 그런데 마그누스의 인형은 쓸데없이 말이 많았다. 마그누스의 제자인 토마스 아퀴나스(Thomas Aquinas)는 자신의 공부에 방해되는 시끄러운 자동인형을 망가뜨렸다.

 

 

 

 

 

 

 

 

 

 

 

 

 

 

 

 

 

* 유발 하라리 《호모 데우스》 (김영사, 2017)

 

 

 

단순 노동을 하는 로봇에서 인공지능(AI)에 이르기까지 인간은 현실에서 또는 상상 속에서 생명 창조 욕망을 구현하려 몸부림쳤으며 그 꿈은 조금도 사그라지지 않고 있다. 이제는 현재의 인류가 유전자를 복제하고, 인공지능을 창조하며 신의 영역에 도전하는 ‘호모 데우스(Home Deus)’로 도약할 것이라는 파격적인 주장도 주목받고 있다. 과연 인간은 자신과 똑같은 생명체를 창조할 수 있을까. 그런 날이 온다면 생명체를 창조하는 인간은 인공 생명체를 자유자재로 조종하는 ‘미래의 인형사’다. 신에 버금가는 힘을 손에 쥔 ‘미래의 조종사’가 많아지면 좋은 일일까. 《살이 있는 인형》의 저자는 인간과 닮은 생명체를 만드는 일에 부정적인 반응을 보인다. 저자는 인간성의 본질이 들어있는 ‘감정’을 인공 생명체에 온전히 불어넣기가 힘들다고 말한다. 그렇다면 인간은 인간과 닮은 인형을 만들기를 포기하고 스스로 신(초인적인 능력을 가진 인형)이 되려고 노력할 수도 있다. 그들의 노력이 만들어낸 미래가 유토피아일지 디스토피아일지 지금으로선 말하기 어렵다. 세상이 어떻게 변화하게 될지 지켜볼 수밖에 없다. 인공 생명체가 인간을 조종하는 일이 없기를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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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육가설 - 부모가 자녀의 성장에 미치는 영향에 대한 탐구
주디스 리치 해리스 지음, 최수근 옮김, 황상민 감수 / 이김 / 2017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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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들아, 너와 내가 태어나고 자란 강북에서 쭉 살자꾸나.

강북은 네가 살기 좋은 곳이란다.”

 

, 아버지. 하지만 저는 친구들 따라 강남에 가고 싶어요.”

 

    

 

 

만약 내 아이만큼은 제대로 키울 것이다라고 다짐한 부모라면 양육가설(이김, 2017)을 읽고 당혹스러울 것이다. 이 책을 쓴 심리학자 주디스 리치 해리스(Judith Rich Harris)가 강조하는 교육방식은 일반적인 부모가 생각하는 것과 정반대이기 때문이다.왜 아이는 부모가 키우는 대로 자라지 않는가?” 이것은 책 전체를 관통하는 아주 중요한 질문이다.

 

부모는 자식의 거울이라는 말이 있다. 부모가 어떻게 행동하고 교육하느냐에 따라 자식도 그렇게 닮아간다는 뜻이다. 양육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교육 전문가들은 부모에게는 자식을 사랑하는 만큼 옳고 그름을 인식시켜줄 책무가 있다고 주장한다. 아동발달에 대한 교재를 썼던 해리스도 잘못된 행동을 한 아이의 책임은 부모의 양육 태도에 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해리스는 양육에 대한 믿음을 의심한다. 그녀는 양육‘(가정)환경을 동의어로 사용하는 교육법이 타당한지 검토하기 위해 양육에 대한 통념을 뒤집는 각종 연구결과와 사례 등을 제시한다. 그리하여 그녀가 내린 결론은 이렇다. 부모의 교육이 아이에게 결정적인 영향을 주는 양육은 하나의 가정(假定, assumption)에 지나지 않는다. 1998년에 양육가설이 처음 세상에 나왔을 때 심리학계와 교육계는 이 책을 두고 찬반양론으로 첨예하게 맞섰다. 이제야 나온 국내 번역본은 2009년 개정판을 저본으로 삼았다.

 

심리학을 공부할 때 프로이트(Freud)B. F. 스키너(B. F. Skinner)를 지나칠 수 없다. 저자에 따르면 프로이트는 양육가설의 진정한 창조주. 프로이트는 부모의 양육 방식과 교육을 본격적으로 접하는 유아기에 인간의 성격이 형성된다고 했다. 스키너는 행동주의 심리학을 완성한 학자로 유명하다. 그는 본성이냐 양육이냐 하는 논쟁에서 철저히 양육의 편을 들어줬다. 스키너는 모든 사람을 바람직한 방향으로 행동하도록 보상체계를 만든다면 좋은 사회를 만들 수 있다고 생각했다. 두 사람의 영향을 받은 교육심리학자들은 부모의 역할이 절대적으로 필요한 유아기 교육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모든 사회에는 상황과 장소에 따라 다양하게 연결되면서 사람들이 살아가는 삶의 문화를 구성하게 된다. 작게는 가정에서부터 학교, 나아가 사회 전체에 이르는 다양한 관계가 형성되면서 사회질서의 모습을 그리게 되는 것이다. 가정은 인간의 사회화 과정에서 가장 근본적인 임무를 수행한다. 이런 이유에서 가정은 사회적 관습에 따른 올바른 가치판단의 기준이 형성되는 곳이다. 그래서 부모는 자녀를 안정적으로 성장시킬 의무가 있다. 부모로부터 배운 각종 생활양식과 규범은 아이에게 그대로 전수되어 학교 교육으로 이어진다. 따라서 가정에서 부모의 역할이 아이의 일생을 좌우한다고 우리는 학교에서 그렇게 배웠다. 그런데 양육가설은 우리가 상식적으로 생각했던 사회화의 통념을 깨뜨린다.

 

해리스는 양육 가설을 대체하는 집단사회화(group socialization)’ 이론을 제시한다. 성장 중인 아이들이 끼리끼리 또래 집단을 형성하고 집단 활동을 추구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반응이다. 한편 청소년기는 사회화가 가장 왕성하게 이루어지는 단계이다. 청소년들은 부모가 있는 가정환경보다는 자신을 둘러싼 같은 나이, 같은 성별의 친구들과 어울릴 수 있는 외부 환경에 크게 영향을 받고 또 모방한다. 유유상종(類類相從)’이라는 사자성어가 있듯이 아이들은 서로 친할수록 비슷한 언어(특히 또래 친구들끼리 통하는 은어와 비속어)를 쓰고, 비슷한 행동을 한다. 그래서 해리스는 아이의 성격이 유전적 요인의 영향을 받게되더라도 언어 선택 및 비속어 사용은 환경적 요인에 의해 결정된다고 말한다. 부모가 자녀에게 비속어를 쓰지 말라고 신신당부하듯이 가르쳐도 소용없다. 아이는 또래에 동화되기 위해 비속어를 쓴다. 비흡연자 부모 밑에서 자란 자녀는 비흡연자가 된다? 양육 가설을 믿는 부모는 우리 남편은 담배를 싫어하고, 아이는 착해서 담배를 피우지 않을 거예요라고 생각할 것이다. 하지만 아이는 부모보다 친구들을 따라하려는 경향이 있고, 친구들의 영향을 받은 아이는 부모가 키우는 대로 자라지 않는다. 여러분의 착한 아이는 집이 아닌 다른 곳에서 친구들과 맞담배를 피우고 있을지도 모른다. 아이는 원하기만 하면 얼마든지 부모를 속일 수 있다[1].

 

양육가설이 나온 지 이십 년이나 지났다. 부모의 의무교육 및 책임을 강조하는 기존 교육방식의 근간을 뿌리째 흔들리게 하는 그녀의 주장은 지금 봐도 과감하다. 최근 청소년 폭행 사건이 잇따라 발생하면서 소년법을 폐지해야 한다는 여론이 높아지고 있고, 가벼운 죗값을 받는 폭행 가해자들을 감안해서 폭행 사건의 책임이 부모에게 전가해야 한다고 보는 여론도 있다. 양육가설에 따르면 폭행 가해자의 부모는 아이를 잘못 가르쳤으니 피해 학생들의 고통을 생각해서 법적 책무를 받아야 할 것이다. 그러나 양육가설을 의심하는해리스의 관점에서 이 문제를 본다면 가해자 부모가 책임을 지지 않아도 된다는 의견이 나올 수 있다.

 

양육가설을 의심하는 저자의 주장을 자세히 알고 싶거나 도저히 믿을 수 없다고 생각한다면 직접 처음부터 끝까지 책을 읽어보도록 권한다. 저자는 양육을 완전히 부정하지 않는다. 그리고 저자는 자신의 주장이 자녀 교육을 소홀히 하는 철없는 부모들이 인용되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고 밝혔다[2]. 그래서 나는 이 글을 시작할 때부터 저자는 양육가설을 의심한다라는 식의 표현을 반복해서 썼다(몇 번 썼는지 직접 세어보시라). 내가 이 글을 쓰기 위해 고심해서 선택한 단어인 의심거부의 의미로 해석한다면 곤란하다. 저자는 근거가 불충분한 양육가설이 모든 부모와 자녀들에게 적용되는 게 아니라는 점을 강조했다.

 

자녀교육이 서툰 남편들은 자식의 행동에 마음에 안 들면 아내에게 불만 섞인 핀잔을 늘어놓는다. 아니, 도대체 애를 어떻게 키웠기에 이 모양이야!” 이 말인즉슨 애를 잘못 키운 건 엄마 탓이라는 뜻이다. 분명 양육자는 부모 두 사람인데, 일부 남편들은 아이를 낳아줬고 집에만 있는 아내를 진짜 양육자라고 여긴다. 남편들은 가족을 먹여 살리기 위해 열심히 일했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자신은 자녀 양육에 책임이 없다고 믿는다. 아이를 제대로 돌보지 않으면서 내 아이만큼은 똑똑하게 키우고 싶다고 생각만 하는 남편이 양육가설을 읽는다면 아이를 노심초사 돌봐야 하는 아내의 고충을 조금이나마 이해할 것이다.

 

 

 

 

[1] 양육가설453

[2] 양육가설4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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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2-06 17:11   URL
비밀 댓글입니다.

cyrus 2018-02-07 16:45   좋아요 0 | URL
제가 어렸을 때 아버지가 어머니에게 양육 책임을 묻는 듯한 말을 여러 번 한 적이 있어요. 그 말을 옆에서 들을 때 기분이 좋지 않았어요.

페크pek0501 2018-02-07 13:15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아이들을 키우면서 흔히 놓치기 쉬운 점이 있어요. 두 형제가 똑같은 부모 밑에서 태어나 똑같은 환경에서 자랐다고 착각해서 놓치는 것. 두 아이의 환경이 같지 않다는 것이에요. 아이들은 님께서 쓰신 것처럼 친구의 영향을 많이 받아요. 또래 집단의 힘은 세지요. 어떤 친구를 사귀느냐 하는 것도 중요한 변수이고 또 어떤 경험을 했느냐 하는 것도 중요한 변수예요. 그러므로 똑같은 환경에서 자라나는 건 아니라는 걸 부모가 놓치면 안 될 것 같아요. 두 형제가 학교 환경까지 같지는 않잖아요.

어쨌든 좋은 부모가 된다는 건 쉽지 않은 것 같아요. 저도 아이 키우면서 많이 부족했던 저 자신을 느끼곤 했어요.

cyrus 2018-02-07 16:49   좋아요 2 | URL
맞습니다. 남매, 형제, 자매뿐만 아니라 쌍둥이의 성격 또한 모두 같을 수 없어요. 자녀는 부모라는 내부 변수보다는 친구라는 외부 변수에 더 영향을 받기 때문에 어떤 친구를 만나느냐에 따라 성격이 달라질 수 있어요.

최수근 2018-02-07 13:5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역자입니다. 서평 감사히 잘 읽었습니다. :)

cyrus 2018-02-07 16:52   좋아요 1 | URL
안녕하세요. 책 읽는 데 가독성에 큰 문제는 없었습니다. 책의 만듦새가 좋았습니다. ^^
 

 

 

이토 준지 컬렉션 3화 첫 번째 에피소드

사거리의 미소년

 

 

 

 

 

 

 

원제는 「사자(死者)의 상사병」. 나즈미시 마을에 정체를 알 수 없는 ‘사거리의 미소년’이 등장한다. 마을에 사는 소녀들은 ‘사거리 점(占)’을 보기 위해 안개가 자욱한 사거리에 숨어서 기다린다.

 

 

 

 

 

 

 

 

 

 

 

 

 

 

 

 

 

 

* 이토 준지 《이토 준지 공포박물관 10 : 사자의 상사병》 (시공사, 2008)

* [구판 절판] 이토 준지 《사자의 상사병》 (시공사, 1999)

 

 

 

사거리 점을 보는 방법은 간단하다. 사거리를 걸어가는 소년을 만나면 그에게 다가가서 자신의 운세에 관련된 질문을 하면 된다. 그러면 소년은 즉각 답변해준다. 그런데 대부분 답변이 부정적이다. 사거리 점의 결과를 받아들이지 못한 소녀들은 자살하게 된다. 사거리 점을 보다가 자살을 선택한 죽은 자들의 영혼은 끔찍한 모습으로 사거리를 돌아다닌다.

 

 

 

 

 

 

이토 준지 컬렉션 3화 두 번째 에피소드

달팽이 소녀

 

 

 

 

 

 

짧은 분량의 이야기. 이 이야기 역시 「지옥의 인형 장례식」(이토 준지 컬렉션 1화 두 번째 에피소드)과 마찬가지로 불가사의한 현상의 원인을 보여주는 ‘기승’이 없고, 충격적이고 강렬한 그로테스크를 보여주는 ‘전결’만 구성되어 있다. 유코라는 소녀는 달팽이를 싫어한다(만화 단행본에서만 나오는 설정). 그런데 어느 날 갑자기 그녀의 입에 민달팽이가 계속 나오게 되고, 혀는 커다란 민달팽이로 변해버린다. 유코가 사는 집 주변에는 유코의 입에서 나온 민달팽이들로 가득하다. 유코의 부모는 유코의 몸속에 생기는 민달팽이를 제거하기 위해 소금을 잔뜩 푼 욕조에 유코를 눕히는데…‥.

 

 

 

 

 

 

 

 

 

 

 

 

 

 

 

 

 

 

 

 

* 이토 준지 《이토 준지 공포박물관 8 : 백사촌 혈담》 (시공사, 2008)

* [구판 절판] 이토 준지 《지옥탕》 (시공사, 1999)

 

 

 

구판(이토 준지 공포만화 콜렉션) 단행본 제목은 ‘달팽이 소녀’였고, ‘공포박물관’ 시리즈로 재출간되었을 때 제목이 ‘민달팽이 소녀’로 변경되었다.

 

 

 

 

 

 

 

 

 

 

 

 

 

 

 

 

 

 

 

 

* [절판] 얀 본데손 《자연의 장난 원숭이 여인》 (일빛, 1999)

* [절판] 에르빈 콤파네 《두 개 달린 남자 네 개 달린 여자》 (생각의날개, 2012)

 

 

 

인간의 몸에서 동물이 나오는 괴이한 현상은 고대 구전 신화에 등장하는 설정이다. 고대 이집트, 바빌로니아, 노르웨이의 전설 및 각종 문헌 등에 몸속에 산 뱀, 개구리, 도마뱀에 대한 기록이 있다. 히포크라테스(Hippocrates)는 독한 술을 과하게 마셔서 죽은 사람의 목에 뱀이 기어 나온 사례를 언급했다. 고대 로마의 박물학자 플리니우스(Plinius)는 뱀과 개구리가 사람의 소화 기관에 기생한다고 주장했다. 불가사의한 의학 현상들을 소개한 《자연의 장난, 원숭이 여인》(일빛, 1999)이라는 책에 고대 및 중세에 기록된 개구리, 두꺼비, 뱀을 뱉은 사람들의 이야기들을 볼 수 있다. 아쉽게도 이 책엔 ‘민달팽이를 뱉은 사람’에 대한 사례는 없다.

 

 

 

 

 

 

 

 

 

 

 

 

 

 

 

 

 

 

* 서민 《서민의 기생충 열전》 (을유문화사, 2013)

 

 

 

고대, 중세 사람들은 뱀이나 개구리 알이 있는 물을 마시면 몸속에 부화한 뱀과 올챙이가 성체가 될 때까지 자란다고 믿었다. 그들은 인간의 몸속에 자란 동물을 ‘기생동물’로 봤다. 아마도 옛 사람들은 몸속에 나오는 기다란 기생충(회충)을 ‘다 자란 뱀’이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회충은 인간의 몸에서 생활하여 대변을 통해 밖으로 이동한다. 《서민의 기생충 열전》(을유문화사, 2013)에 회충이 식도를 타고 입으로 나오는 사례가 나온다. 뱀과 개구리에 기생하는 스파르가눔(Sparganum)이라는 기생충은 다 자라면 만손열두조충이 된다. 이 녀석이 인간의 몸, 특히 인간의 뇌에 자리 잡으면 극심한 두통을 유발한다. 만손열두조충이 일으킨 두통에 시달린 환자의 몸을 수술했는데, 그 환자의 몸에서 꺼낸 만손열두조충의 전체 길이가 72cm이었다고 한다.

 

 

 

 

 

 

《자연의 장난, 원숭이 여인》, 《두 개 달린 남자 네 개 달린 여자》(생각의날개, 2012)열일곱 마리의 토끼를 사산(死産)한 메리 토프트(Mary Toft)라는 여성의 이야기가 나온다. 이 여성의 소식이 영국 전역에 알려지자 그녀의 토끼 출산을 보기 위해 의사들이 직접 구경하러 올 정도로 화제가 되었다. 그러나 이 기이한 사건은 메리의 자작극으로 밝혀졌다. 결국, 그녀는 사기죄로 교도소로 수감되었다. 놀랍게도 메리 토프트의 허술한 사기극에 속아 넘어간 의사들이 많았다. 인간의 거짓말은 끝이 없고, 순진한 사람들은 거짓말에 속아 넘어가는 실수를 반복한다. 자극적인 기사를 보도하는 황색 언론들은 ‘도마뱀을 낳은 여인’, ‘사람을 낳은 침팬지’라는 터무니없는 제목의 기사를 만들었다. 지금까지도 이런 황당한 보도를 전달하는 콘셉트로 일관하는 언론이 있는데 그게 바로 ‘위클리 월드 뉴스(Weekly World News)’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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곰곰생각하는발 2018-02-06 12: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ㅎㅎ잼있씁니다. 전 이토준치하면 항상 달팽이가 생각납니다..

cyrus 2018-02-06 16:31   좋아요 0 | URL
<소용돌이>에 나오는 달팽이 인간도 유명하죠. 호러 영화를 좋아하는 곰발님의 취향을 생각하면 곰발님은 영화 버전 <소용돌이>도 보셨을 것 같아요. ^^

2018-02-06 12:37   URL
비밀 댓글입니다.

cyrus 2018-02-06 16:32   좋아요 1 | URL
‘기레기의 역사’라는 책을 쓰게 된다면 한 권으론 부족할걸요. ㅎㅎㅎ

목나무 2018-02-06 13: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요즘 애니로 열심히 챙겨보고 있네요. ^^ 자기전에는 차마 못보고. . ㅋㅋ

cyrus 2018-02-06 16:33   좋아요 0 | URL
설해목님도 이 애니를 보시는군요. 만화책을 먼저 봐서 그런지 애니로 보면 무서운 느낌이 나지 않아요. ^^;;

카스피 2018-02-07 22: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ㅎㅎ 저도 애니 보았는데 역시 재미있더군요^^

cyrus 2018-02-08 14:24   좋아요 0 | URL
만화를 다 보고나면 다음 편 에피소드가 뭘지 궁금해요. ^^
 

 

 

1859찰스 다윈(Charles Darwin)종의 기원을 출판하면서 지구의 생명체는 신이 창조한 것이 아니라 진화에 의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진화론은 다윈이 처음으로 정립한 학설이 아니다. 다윈 이전에 여러 형태의 진화론이 등장했다.

    

 

 

 

 

 

 

 

 

 

 

 

 

 

 

* 찰스 다윈 종의 기원(한길사, 2014)

 

 

 

 

 

 

 

 

 

 

 

 

 

 

 

 

* 찰스 다윈 종의 기원(동서문화사, 2016)

* 찰스 다윈 종의 기원(동서문화사, 2013)

* 찰스 다윈 종의 기원(동서문화사, 2009)

 

 

 

 

 

 

 

 

 

 

 

 

 

 

 

 

* 양자오 종의 기원을 읽다(유유, 2013)

* 재닛 브라운 종의 기원 이펙트(세종서적, 2012)

 

 

 

 

 

 

 

 

 

 

 

 

 

 

 

 

* 장 바티스트 드 라마르크 동물 철학 (천줄 읽기)(지만지, 2009)

 

    

 

다윈의 할아버지 이래즈머스 다윈(Erasmus Darwin)<주노미아>(Zoonomia)라는 책에서 진화의 개념을 언급했다. 프랑스의 생물학자 라마르크(Lamarck)는 기린의 목이 길게 진화된 과정을 사례로 용불용설을 주장했다. 용불용설은 사용하는 신체기관은 발달하고, 사용하지 않는 신체기관은 퇴화한다는 학설이다. 라마르크는 하나의 생물이 어떤 행위를 통해 얻은 획득형질이 유전된다고 생각했다. 태어날 때부터 오른손으로 물건을 집거나 글을 쓰기 시작하면 오른손잡이로 살아간다. 이것이 생물이 후천적인 행위를 통해서 얻게 된 성질, 획득형질이다. 라마르크의 획득형질의 유전학설에 따르면 오른손잡이 부모에게서 자란 자식도 오른손잡이가 된다는 것이다.

    

 

    

 

 

 

 

 

 

 

 

 

 

 

 

* 팀 스펙터 쌍둥인데 왜 다르지?(니케북스, 2017)

* 네사 캐리 유전자는 네가 한 일을 알고 있다(해나무, 2015)

* 리처드 C. 프랜시스 쉽게 쓴 후성유전학(시공사, 2013)

 

    

 

사실 다윈은 라마르크의 학설을 부분 인정했으나 라마르크의 학설은 다윈의 자연선택설에 가려져서 거의 폐기처분 되다시피 했다. 라마르크는 병고와 가난이 겹친 생활고에 시달리다가 여생을 마쳤다. 그의 딸은 아버지의 업적이 후대에 재평가될 거로 확신했고, 그 마음을 아버지의 묘비명에 담아 새겼다고 한다. 최근에 후성유전학이 주목받으면서 잊힌 라마르크의 학설도 주목받고 있다. 후성유전학은 환경이나 행동으로 인해 변화된 유전자 정보가 후손에게 유전되는 과정을 연구하는 학문이다. 좀 더 많은 후속 연구가 필요하겠지만, 후성유전학은 환경적 요인을 받지 않는 유전자가 인간의 모든 것을 결정한다는 유전자 결정론을 반박하는 학문으로 성장할 수 있다.

 

우리 삶에서 유전자 결정론의 뿌리는 깊고 넓다. 학술지나 언론에 비만 유전자’, ‘공부 유전자같은 단어가 심심찮게 등장했다. 최근에 유전자가 지능 발달, 학업 부진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연구 결과도 나왔다.[1] 정말로 공부 유전자의 실체가 확증된다면 인간 본성을 유전적으로 설명하려는 시도가 많아지게 될 것이다.

    

 

 

 

 

 

 

 

 

 

 

 

 

 

 

 

 

 

 

 

 

 

 

 

 

 

* 염운옥 생명에도 계급이 있는가?(책세상, 2009)

* 앙드레 피쇼 우생학 : 유전학의 숨겨진 역사(아침이슬, 2009)

* 김호연 우생학 : 유전자 정치의 역사(아침이슬, 2009)

* 박진빈 백색국가 건설사(앨피, 2006)

 

 

 

 

 

 

 

 

 

 

 

 

 

 

 

 

* 조너선 마크스 인종주의에 물든 과학(이음, 2017)

* 박경태 인종주의(책세상, 2009)

    

 

 

 

 

 

 

 

 

 

 

 

 

 

 

* 스티븐 제이 굴드 다윈 이후(사이언스북스, 2009)

* 스티븐 제이 굴드 인간에 대한 오해(사회평론, 2003)

* 매트 리들리 본성과 양육(김영사, 2004)

 

    

 

그런데 과거에 유전자 결정론을 적극 지지하는 학문을 이용해 인간의 성향과 기질에 대한 개선을 촉구하는 시도가 있었다. 그 학문이 바로 생명과학의 흑역사로 기억되는 우생학이다. 다윈의 사촌 프랜시스 골턴(Francis Galton)은 우생학을 만들어 유전자 결정론을 옹호했다. 그는 인류의 진보를 위해서 상태가 불량한 나쁜 유전자를 없애고(네거티브 우생학), 우수한 좋은 유전자가 후손에게 전달(포지티브 우생학)되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리하여 영국, 미국, 독일 등에서 정신 이상자, 범죄자, 장애인 등을 사회로부터 제거하는 동시에 몸과 정신이 건강한 일등 국민을 양산하는 우생학적 정책들이 시행되었다.

 

우생학은 다윈의 진화론을 오용 또는 악용한 학문으로 알려져 있다. 유전자 결정론과 인종주의를 반대하는 과학자들은 우생학의 등장으로 초래한 반인륜적인 사건의 모든 책임을 다윈의 진화론을 잘못 이해한 정치인 또는 사회학자에게 전가한다. 그런 논리라면 우생학은 과학이 아니라 과학의 탈을 쓴 사이비 학문이 된다. 그러나 과학자들도 위험한 학문을 방조한 것에 책임이 없다고 말할 수 없다. 19~20세기 유럽에 도입된 우생학 정책들을 분석한 앙드레 피쇼(Andre Pichot)와 김호연우생학인종주의의 관계 또는 우생학사회진화론의 관계 등으로 이루어진 과학과 정치의 불온한 혼합[2]에 주목하여 우생학이 생명과학 분야의 지적 발전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고 지적한다. 그렇게 되면 우생학을 단순히 비과학적 측면으로만 비판해선 안 된다. 우생학이 본격적으로 유행하기 시작한 시기에 유전학은 지금과 같이 체계적인 학문이 아니었다. 그 당시에 멘델(Mendel)의 유전법칙은 아무도 주목하지 않은 아웃 오브 안중으로 인식되었다. 어정쩡한 유전학이 조금씩 성장하는 맹아기에 과학자들은 우생학을 학문으로서의 위치를 올려놓았다.

 

 

 

실제로 다윈은 사촌이 만든 우생학에 대놓고 지지한 적은 없었다. 하지만 과학으로서의 우생학이라는 관점에서 우생학을 본다면 다윈의 자연선택설이 우생학을 정당화하는 논거로 작용했다는 지적을 피할 수 없다. 불행하게도 자연선택설은 다윈이 의도치 않는 방향으로 왜곡, 변질되었다. 따라서 우생학의 어두운 역사를 살펴보려면 다윈의 자연선택설부터 시작해야 한다.

 

우생학은 20세기에 접어들면서 미국과 독일에서 가장 발전한다. 미국과 독일의 중산계급은 자신들의 사회적 지위를 확보, 유지하기 위해 국가적 차원의 우생학 운동을 지지했다. 중산계급은 사회주의의 영향으로 급속도로 조직화하여 계급 상승을 시도하는 하층 노동자계급의 등장을 반가워하지 않았다. 우생학에 매료된 중산계급은 하층 노동자계급을 생물학적 열등 계급’, ‘적자생존에 도태되어야 할 계급으로 인식했고, 국가 발전에 저해하는 사회문제의 모든 책임을 하층계급에 전가했다. 미국은 앵글로색슨족의 위대함을, 독일은 게르만족의 우수함을 강조하기 위해 악명 높은 우생학적 법률과 정책을 내세웠다. 미국과 독일의 우생학자들은 유전적으로 열등 인자를 가졌다고 판단된 여성들에게 강제로 불임 수술을 시키는 정책을 제안했다. 아이러니하게도 우생학 정책을 지지한 세력 중 하나가 페미니스트들이다. 미국 산아제한 운동을 주도한 마거릿 생어(Margaret Sanger)는 우생학을 지지한 페미니스트이다. 그녀는 건강한 여성의 몸으로 더 많은 아이를 낳으려면 산아제한 정책이 필요하다고 주장했고, 히틀러(Hitler)를 공개적으로 지지하기도 했다. 미국에서는 우생학을 전문적으로 가르치는 교육기관이 설립되었는데 이곳에 등록한 학생 대다수는 여성이었다. 그 이유는 우생학자들은 여성이 남성보다 개인의 육체적 · 정신적 기질을 정확하게 볼 줄 안다고 생각했고, 생식 문제는 오로지 여성과 관련되어 있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우생학의 역사를 정리한 앙드레 피쇼와 김호연(이 책에 몇 개의 오탈자가 보인다), 염운옥의 책은 우생학을 단편적으로 비판해서 접근하는 담론(과학이 아닌 정치학으로서의 우생학으로 비판하는 담론)의 한계를 지적한다. 염운옥의 책은 우파와 좌파를 사로잡은 영국의 우생학 정책을 중점으로 다루었고, 박진빈의 백색국가 건설사(앨피, 2006)는 강대국으로 발돋움하기 위해 내세운 미국의 혁신주의 속에 자리 잡은 우생학과 인종주의의 그림자를 보여준다. 결국 우생학은 과학자와 정치인들의 무지와 방관, 그리고 진보에 대한 지나친 낙관론이 결합하여 탄생한 최악의 학문이다.

 

 

[1] [“공부해도 성적 안 오르는 이유절반은 유전자 탓”] 서울신문, 2018124

[2] 김호연 우생학 : 유전자 정치의 역사(아침이슬, 2009) 2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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꼬마요정 2018-02-04 17:3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우생학에서 ‘학’자를 빼고 싶어요. 학문을 가장한 오만과 편견 덩어리 같다고나 할까요.

cyrus 2018-02-04 17:35   좋아요 1 | URL
권위 있는 과학자들이 인간을 차별하는 편견을 그럴듯한 학문으로 포장했어요. 과학 발전의 역사를 공부할 때 우생학의 탄생 배경을 알아야해요. 가끔 정신 못 차리는 과학자들이 사이비 과학, 유사과학을 잘 만들어내거든요.

짜라투스트라 2018-02-04 22: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글 잘 읽었습니다. 역시 우생학 또한 단일관점으로만 바라보면 안된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네요^^

cyrus 2018-02-05 14:03   좋아요 0 | URL
네. 저는 처음에 우생학을 ‘정치학‘의 관점으로 해석해서 ‘과학으로서의 우생학‘을 평가하지 못했어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