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말에 왼쪽 손가락이 아팠습니다. 처음에는 중지 손가락에 통증이 생겼는데, 이틀 지나고 나니까 집게손가락에도 통증이 느껴졌어요. 폭염과 통증이 관통하는 책 읽기는 너무나 힘들었습니다. 고통스러운 기간에 읽었던 책이 사르트르《말》(민음사, 2008)이었습니다. 아픈 와중에 재미없는 책을 읽느라 힘겨웠습니다.

 

 

 

 

 

 

 

 

 

 

 

 

 

 

 

 

 

 

 

* 장 폴 사르트르 《말》(민음사, 2008)

 

 

 

《말》은 사르트르가 59세 때 쓴 자서전입니다. 이 책에 어린 시절의 사르트르를 볼 수 있습니다. 사르트르가 한 살이었을 때, 아버지는 세상을 떠납니다. 사르트르는 아버지의 죽음이 본인 생애의 큰 사건이라고 말합니다. 그렇지만, 어린 사르트르는 아버지의 상실을 긍정적으로 받아들입니다. 그는 어머니와 함께 외가에서 살게 되고, 외할아버지는 손자 사르트르를 애지중지하게 키웁니다. 키가 작고, 내성적인 성격이었던 사르트르는 또래 아이들과 잘 어울리지 못했습니다. 그의 유일한 놀이터는 외할아버지의 서재였습니다. 사르트르는 서재 안에서 시간을 보내는 것을 좋아했고, 다양한 작가의 문학 작품들을 섭렵했습니다. 보통 사람이라면 현실과의 접촉을 통해 세상을 알아가기 마련입니다. 그러나 사르트르는 책을 통해 얻은 상상과 관념이 현실이라고 믿었습니다.

 

 정신 상태로 보아 플라톤주의자가 된 나는 지식에서 출발해서 사물로 향했다. 나로서는 사물보다도 관념이 한결 현실적이었다. 왜냐하면 내게는 관념이 먼저 주어졌고, 더구나 사물로서 주어졌기 때문이다. 내가 세계를 만난 것은 책을 통해서였다. 그것은 동화(同化)되고 분류되고 규정되고 사색된 세계, 그러면서도 아직도 무서운 세계였다. 나는 책에서 얻은 무질서한 경험과 현실적인 일들의 부조리한 흐름을 혼동했다. 나의 관념론은 바로 여기에 유래한 것이며 나는 그것을 청산하는 데 30년이 걸렸다. [주1]

 

 

《말》을 번역하고, 이 작품에 대한 해설을 쓴 정명환 교수는 사르트르가 30년 동안 청산하는 데 걸린 관념론을 ‘문학병’이라고 불렀습니다. 어린 사르트르의 문학병은 점점 심해졌습니다. 그는 ‘조숙한 천재’인 것처럼 행동합니다. 예를 들면 가족들 앞에서 책을 읽는 척하고, 할아버지의 도움을 받으면서 작가에게 보내는 편지를 쓰기도 합니다. 이때 사르트르는 열 살도 되지 않은 꼬마였어요. 가족들은 그의 조숙한 행동을 보면서 대견하다고 느꼈고, 사르트르는 주위 어른들의 반응을 감지합니다. 어른들의 시선과 반응은 사르트르를 위한 ‘거울’이었습니다. 사르트르는 그 거울을 통해서 자신의 모습을 비추어보게 되고, 자신의 명석한 모습을 확인합니다.

 

하지만 사르트르는 ‘거울’의 실체를 의심하게 됩니다. 그러면서 본격적으로 자신의 존재가 무엇인지 고민합니다. 사르트르는 글을 쓰면서 자기 존재의 정당성을 찾게 됩니다.

 

 

 나는 글을 씀으로써 존재했고 어른들의 세계에서 벗어났다. 나는 오직 글쓰기를 위해서만 존재했으며, ‘나’라는 말은 ‘글을 쓰는 나’를 의미할 따름이었다. 그런들 어떠랴, 나는 기쁨을 알았다. [주2]

 

 

사르트르는 자서전에서 독서와 글쓰기가 어떻게 자신의 삶을 변화시켰는지 담담하게 보여줍니다. 자서전이라고 해서 책을 얕보면 안 됩니다. 사실 《말》은 사르트르의 첫 장편소설 《구토》 다음으로 한 번에 이해하기 어려운 책입니다. 저녁 독서모임에 참석했던 분의 말씀에 따르면, 《구토》를 읽다가 너무 어려워서 구토를 했다는군요.

 

 

 

 

 

 

 

 

 

 

 

 

 

 

 

 

 

 

* 변광배 《장 폴 사르트르 : 시선과 타자》 (살림, 2004)

 

 

 

《구토》와 《말》은 ‘실존주의 철학’으로 빚어낸 작품입니다. 그래서 저는 《말》이 품고 있는 실존주의 철학을 이해하기 위해 사르트르의 ‘타자론’을 공부했습니다. 《말》에서 어린 사르트르는 다음과 같은 질문에 대해 고민합니다. ‘나와 타자는 어떤 관계가 있는가?’ 자신과 타자에 대해 고민할 수 있는 유일한 존재는 인간입니다. 사르트르는 ‘의식 존재 여부’를 기준으로 이 세계에 존재하는 것을 두 가지로 구분했습니다. 의식을 가진 존재는 인간이고, 의식을 가지지 않는 존재는 사물입니다. 사르트르는 전자의 개념을 ‘대자존재’, 후자의 개념을 ‘즉자존재’라고 명명했습니다. 대자존재인 인간은 의식을 통해 타자와의 관계를 형성합니다. 인간은 고통, 고뇌, 고난, 질병과 죽음에 마주한 실존적 존재입니다. 우리가 하루하루 살아가면서 자신을 의식하고, 무언인가를 끊임없이 생각하고, 고민하는 모습은 실존적 불안에 대처하는 노력의 여정이라고 볼 수도 있습니다. 사르트르는 이를 ‘무용한 정열’이라고 했습니다. 어떤 삶이든 죽음에 이르면 생전의 흔적들은 잊히게 되니까요. 그래서 사르트르는 자신의 이름과 존재 가치를 불멸의 것으로 만들기 위해 즉자존재, 즉 책과 자신을 결합하는 시도를 합니다.

 

 

 오랫동안 나는 내가 태어난 것처럼 어디서든지 아무렇게나 죽게 되는 것이 두려웠다. 그런데 나의 천직이 문제를 깨끗이 해결해주었다. 칼싸움은 사라져 없어지지만 글은 남는다. 문학에 있어서는 증여자 스스로가 증여물로, 순수한 사물로 변신할 수 있다는 것을 나는 알았다. 우연은 나를 사람으로 만들었지만 너그러움은 나를 책으로 만들 것이다. 나는 수다를 떠는 나의 의식을 활자화하고 삶의 소음 대신 불멸의 기록을 남기리라. 그리고 육체 대신 문체를, 시간이라는 연약한 나선 대신 영원을 얻으리라. [주3]

 

 

사르트르도 대자존재 인간입니다. 그도 죽음을 두려워합니다. 그래도 그는 자신의 존재를 정당화하기 위해 자신의 의식을 즉자존재인 책과 결합하여 변신합니다. 이게 말이 안 되는 논리로 보이지만, 사르트르는 대자존재와 즉자존재의 결합 상태가 인간이 죽을 때까지 추구해야 하는 이상적 상태라고 주장합니다[주4]. 대자존재와 즉자존재의 결합 상태를 추구하는 인간은 ‘신이 되고 싶은 욕구’를 품고 있습니다. 신은 불멸의 존재입니다. 그래서 사르트르는 죽음으로 인해 육체가 소멸하더라도 의식하면서 살아온 자신의 존재, 더 나아가 자신이 쓴 모든 글이 ‘불멸의 상태’로 남길 원합니다. 저는 사르트르의 노력이 실패했다고 생각합니다. 아무리 뛰어난 프랑스의 지성 사르트르도 대자존재, ‘인간’입니다. ‘신이 되고 싶은 욕구’는 ‘무용한 정열’이며 절대로 충족될 수 없습니다.

 

‘읽다 익다’ 책방지기 은아 쌤은 《말》이 ‘계속 생각하게 만드는 책’이라고 평가했습니다. 이 책을 언제 다시 읽을지는 모르겠지만, 보면 볼수록 생각거리를 주는 책이라는 것은 분명합니다.

 

 

 

 

 

[주1] 장 폴 사르트르, 정명환 옮김, 《말》, 민음사, 2008, pp. 56.

 

[주2] 같은 책, pp. 166.

 

[주3] 같은 책, pp. 207~208.

 

[주4] 변광배, 《장 폴 사르트르: 시선과 타자》, 살림, 2004, pp. 16~17.

 

 

 

 

 

 

※ 우주지감 65번째 책모임

 

 

 

* 김한민 《비수기의 전문가들》 (워크룸프레스, 2016)

 

 

 

 

  일정 : 2018년 8월 28일 화요일 오전 11시 /

8월 30일 목요일 저녁 7시 30분

 

 

            장소 : 책방 ‘서재를 탐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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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알벨루치 2018-08-02 17: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손가락이 아프다 게다가 어려운 책을 읽는다 날씨는 너무 덥다...그래도 역시 Cyrus님입니다~

cyrus 2018-08-03 14:08   좋아요 1 | URL
손가락이 아팠던 시기가 독서모임 주간이라서 책은 안 읽을 수가 없었어요. ^^;;

stella.K 2018-08-02 18:1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그말은 옛날부터 있어왔던 말인데...
구토가 너무 어려워 구토할 것 같다는 말.
대자, 즉자 오랜만에 들어 본다.
어디서 들었지 했더니 <말>이었구나.

책에 맛 들이면 좀 그런 지적 교만같은 마음이 들긴하지.
책을 너무 많이 읽어서 미처버린 사람도 있다더군.
난 그러지 않으려고 적당히 놀면서 읽고 있어.ㅋㅋ

cyrus 2018-08-03 14:13   좋아요 2 | URL
저는 책 속에 갇히지 않으려고 독서모임에 참석해요. 요즘 독서모임 활동을 하면서한 가지 중요한 사실을 알았어요. 책을 많이 읽은 사람은 경험이 많은 사람을 이길 수 없다는 점이요. ^^

syo 2018-08-02 18: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덥고 괴로울 땐 좀 적당히도 하고 그러는 건데, 과연 독서기계 사이러스님.....

cyrus 2018-08-03 14:15   좋아요 0 | URL
syo님도 열심히 책을 읽었잖아요.. ㅎㅎㅎ 손가락이 아팠던 기간에 그냥 책만 읽었어요. ^^

syo 2018-08-03 14:25   좋아요 1 | URL
그나저나 좋은 소식이 들리더군요 ㅎㅎㅎ
축하합니다. 역시 사이러스님. 1등이 아니라는 사실이 놀라운 거지 수상 자체는 너무 당연하여 오히려 감동이 적은 상황입니다...

cyrus 2018-08-03 23:58   좋아요 0 | URL
고맙습니다. 오랜만에 리뷰 대회에 응모한 거라서 정말 열심히 썼어요. 솔직히 3등만 돼도 감지덕지라고 생각했어요. 눈에 띄지 않지만, 글을 잘 쓰는 분들이 많아요. ^^

목나무 2018-08-02 23: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책을 통해 불멸을 꾀하다니..
사르트르의 글을 읽기가 두려워집니다. ^^;

그나저나 손가락 통증은 좀 나아진 건가요? 아플땐 독서도 쉬엄쉬엄하셔요.

cyrus 2018-08-03 14:17   좋아요 0 | URL
지금은 다 나았어요. 아마도 에어컨 바람을 많이 맞아서 손가락 관절에 통증이 생긴 것 같아요. ^^;;
 

 

 

 

 

 

 

 

지난 수요일(25일)박차민정 선생님과 함께한 ‘《조선의 퀴어》 북 토크’가 진행되었습니다. 북 토크가 진행된 장소는 레드스타킹의 아지트인 카페 ‘스몰토크’였습니다. 좀 늦은 감이 있지만, 레드스타킹이 ‘책읽는사회문화재단’이 주관하는 독서동아리 활동지원 사업에 선정된 기쁜 일이 있었어요. 그래서 독서동아리 지원금으로 북 토크를 열 수 있었습니다. 레드스타킹에는 준비성과 실행력이 뛰어난 분들이 많습니다. 그분들 덕분에 제가 특별한 경험을 하게 되네요.

 

 

 

 

 

 

 

 

 

 

 

 

 

 

 

 

 

* 박차민정 《조선의 퀴어》 (현실문화, 2018)

 

 

 

이번 달 초에 북 토크 홍보가 시작됐어요. 저도 ‘알라딘 서재’에 홍보하려고 했었어요. 그런데 레드스타킹 공식 인스타그램에 북 토크 포스터가 공개된 지 며칠 지나지 않아 벌써 정해진 신청 인원이 다 채워져서 신청 접수가 조기 마감됐어요.

 

 

 

 

 

 

 

 

 

 

 

 

 

 

 

 

 

 

 

 

 

 

 

 

 

 

 

 

 

 

 

 

* 미셸 푸코 《광기의 역사》 (나남출판, 2003)

* 미셸 푸코 《감시와 처벌》 (나남출판, 2016)

* [읽고 있는 책] 미셸 푸코 《성의 역사 1 : 지식의 의지》 (나남출판, 2010)

* [읽을 예정인 책] 미셸 푸코 《성의 역사 2 : 쾌락의 활용》 (나남출판, 2018)

* [읽을 예정인 책] 미셸 푸코 《성의 역사 3 : 자기에의 배려》 (나남출판, 2004)

 

 

 

 

《조선의 퀴어》는 1920~30년대 식민지 조선에서 벌어진 성적 담론을 분석한 책입니다. 책은 그 시대의 전통적 성적 규범을 거부하는 동시에 성적 욕망을 표현하면서 살아간 ‘퀴어(Queer)의 역사를 보여줍니다. 박차민정 선생님이 《조선의 퀴어》를 쓸 수 있었던 건 미셸 푸코(Michel Foucault)가 있기에 가능했습니다.

 

 

 

 

 

민정 선생님은 책을 소개하기 전에 푸코의 사상에 대해 간략하게 설명했습니다. 푸코는 근대가 형성되는 과정에서 범죄자 · 정신질환자 등이 사회통제의 주된 대상으로 규정되었고, 정신병원과 의학 치료라는 담론이 형성됐다고 말합니다. 여기서 그가 말한 ‘담론’은 정상과 비정상을 구분하고 처벌하기 위해 지식과 권력이 담합하여 만들어 낸 개념입니다. 그래서 푸코는 정상과 비정상이 역사적으로 어떻게 변화해 왔는지 그 경계를 추적하고 그것이 미치는 효과에 대해 분석했습니다.

 

 

 

 

 

 

 

 

 

 

 

 

 

 

 

 

 

 

 

* [절판] 에스텔라 V. 웰든 《사도마조히즘》 (이제이북스, 2006)

 

 

 

푸코는 게이였습니다. 그리고 그는 사도마조히즘(Sadomasochism, SM)에 관심이 많았습니다. 실제로 푸코는 SM 플레이가 허용된 미국 캘리포니아의 게이 모임을 방문한 적도 있습니다[주1]. 푸코는 에이즈(AIDS)로 세상을 떠나고 말았는데요, 그는 세상을 떠날 때까지 자신의 성 정체성을 공개하지 않았어요. 푸코는 동성애가 용인되지 않은 사회에서 ‘괴상한(Queer) 경험’으로 점철된 ‘비정상인’의 길을 걸으면서 섹슈얼리티 연구에 몰두했습니다. 만약에 푸코가 1920~30년대 일본이나 식민지 조선에 태어나 살았다면 그는 ‘변태’로 취급받았을 것입니다.

 

자, 이제 본론으로 들어가죠. 일찍 외국 문화를 수용한 일본은 서양의 성과학도 자연스럽게 받아들입니다. ‘변태 붐(Hentai Boom)이라고 불릴 만큼 성 과학 지식이 유행했습니다. 성과학의 창시자인 독일의 정신의학자 크라프트에빙(Krafft-Ebing)은 사도마조히즘, 동성애 등을 ‘비정상적인 성적 욕망’으로 분류했고, 이를 묶어 ‘변태성욕’으로 규정했습니다. 이때부터 근대 섹슈얼리티의 계보가 시작된 거죠. 일본의 ‘변태 붐’은 현해탄(대한해협)을 건너 조선에까지 퍼지게 됩니다. 일본에 유학한 조선 지식인들은 일본이 수입 · 번역한 성과학을 접하게 되고, 이들이 본격적으로 조선에 성과학을 소개합니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 신문과 잡지는 집중적으로 ‘변태 붐’을 다룬 기사를 보도하게 됩니다. 그리하여 신문과 잡지는 여장한 남성, 동성애자, 심지어 남성 중심 성별 특권을 뛰어넘으려고 했던 신여성 등을 ‘사회 부적응자’ 또는 ‘변태성욕자’로 소개했습니다. 일제 식민지 통치가 극에 달했던 시기에는 ‘복장 단속’이 더욱 강화되었습니다. 양복을 입은 여성이나 여성의 옷을 입은 남성을 단속하기 위해서 만들어진 것이죠. 그래서 국가는 통치 권력을 동원해 퀴어한 존재 자체를 ‘불법화’로 만들어버립니다.

 

 

 

 

 

 

 

 

 

 

 

 

 

 

 

 

 

 

* 강병철 외 《성소수자 - LGBT(Q) 》 (알마, 2018)

 

 

 

성소수자를 ‘성도착증 환자’로 규정하는 일제의 통치 방식은 지금도 여전히 남아 있습니다. 과거의 권력은 강압적인 힘을 과시하여 대중을 통제했다면, 지금 현대의 권력은 자신을 ‘정상’이라고 생각하는 개인들, 즉 대중입니다. 대중은 자신과 다른 타자를 ‘비정상’으로 단정하여 그들의 행동을 규제하고 억압합니다. 이러한 권력은 눈에 보이지 않을 정도로 투명합니다. 그래서 대부분 사람은 ‘성소수자를 비정상으로 보는 차별과 억압’이 왜 심각한 문제인지 인식하지 못합니다. 미국의 페미니스트 시인 에이드리언 리치(Adrienne Rich)는 이성애 중심주의가 이성애를 따르지 않는 관계에 차별을 주고 억압한다고 주장했습니다[주2]. 따라서 식민지 조선부터 지금까지 성소수자를 처벌하는 통제의 근간에는 젠더 이분법과 이성애 중심주의를 유지하기 위한 성소수자 탄압의 역사가 함께 자리하고 있습니다.

 

 

 

 

 

박차민정 선생님이 바쁘신 관계로 행사 진행 시간은 부족했습니다. 선생님께 질문하고 싶은 말이 있었는데, 하지 못했어요. 다음부터는 눈치 보지 말고 제일 먼저 질문해야겠어요.

 

 

 

 

[주1] 에스텔라 V. 웰든, 최정우 옮김, 《사도마조히즘》, 이제이북스, 2006, 53쪽.

[주2] 백조연, 『‘동성애 찬성, 반대’에 대하여』, 《성소수자 - LGBT(Q)》, 알마, 2018, 61~6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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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7-30 19:2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8-07-31 14:23   URL
비밀 댓글입니다.

페크pek0501 2018-08-01 14: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간성도 있다는 걸 알았습니다. 여성도 아니고 남성도 아닌 경우에 해당합니다. 그런 사람들이 있다고 합니다. 독일이 간성인들에게 법적 권리를 부여했다고 하네요.

푸코뿐만 아니라 옛 외국 작가들 중에 게이가 많더라고요. 그들은 우리가 보지 못하는 인간의 특징을 알 것 같습니다. 우리보다 더 넓은 세계에서 인간을 본다고나 할까요.

문제는 조금이라도 특이하면 부정적으로 보는 시각인 것 같아요. 그들이 그렇게 태어나고 싶어서 태어난 건 아니라는 걸 알아야 할 것 같아요.

cyrus 2018-08-01 15:16   좋아요 1 | URL
가장 대표적인 동성애 작가가 오스카 와일드입니다. 일반적으로 그의 작품, 특히 <행복한 왕자> 같은 동화가 ‘어른과 아이를 위한 동화’로 평가받는데, 저는 그의 작품에 동성애 코드가 숨어 있다고 생각해요. <도리언 그레이의 초상> 초판이 나왔을 때 동성애를 간접적으로 묘사한 장면이 있었어요. 그런데 이게 문제가 되어 삭제된 채 2판이 출간되었어요. 지금 나오고 있는 <도리언 그레이의 초상> 번역본은 초판을 번역한 게 아니에요. 동성애 작가의 문학작품을 재평가해야 합니다. 이성애 관점이 아닌 퀴어 관점으로요. ‘퀴어 비평’라는 분야도 있답니다. 우리나라에는 생소한 비평 분야예요.
 

 

 

어제 ‘서재를 탐하다’ 책방에서 <로쟈와 함께 읽는 가즈오 이시구로> 강연이 있었습니다. 7개월 만에 로쟈 님이 책방을 방문하셨습니다. 강연을 잘 이해하기 위해서 일주일 전부터 이시구로가 쓴 두 편의 장편소설 《남아있는 나날》《나를 보내지 마》를 읽으려고 했습니다. 하지만 계획대로 되지 않았어요. 톨스토이《전쟁과 평화》를 지겹도록 수십 번 훑어봤고, 월요일에 정기적으로 진행되는 페미니즘 독서 모임을 위한 책도 읽었습니다. 페미니즘 독서모임 책과 관련해서 수박 겉핥듯이 레비스트로스의 인류학과 라캉의 정신분석학을 공부했습니다. 아무튼 여러 책을 꾸역꾸역 읽느라 이시구로의 작품을 다 못 읽을 뻔했어요. 다행히 《남아있는 나날》은 다 읽었어요.

 

 

 

 

 

 

 

 

 

 

 

 

 

 

 

 

 

 

 

* 가즈오 이시구로 《남아있는 나날》 (민음사, 2010)

* 가즈오 이시구로 《창백한 언덕 풍경》 (민음사, 2012)

 

 

 

로쟈 님은 이시구로를 ‘빈틈없는 작가’라고 평가했습니다. 지금까지 작가가 남긴 전 작품 모두 뛰어나다고 극찬했습니다. 의외의 평가였습니다. 저는 이시구로의 첫 작품 《창백한 언덕 풍경》을 읽었을 때 이야기 전개의 미숙함(독자들에게 끊임없이 질문하고, 해석을 요구하는 듯한 모호한 묘사들)이 보여서 썩 훌륭하다고 느껴지지 않았거든요. 그렇지만, 《남아있는 나날》은 로쟈 님의 표현대로 ‘빈틈없는’ 작품이었습니다.

 

이시구로의 작품들을 관통하는 주제는 ‘기억’입니다. 로쟈 님은 《창백한 언덕 풍경》, 《부유하는 세상의 화가》, 《남아있는 나날》을 ‘기억 3부작’이라고 말했습니다. ‘기억 3부작’은 이시구로의 초기 작품입니다. 이 작품 속 인물들은 기억을 통해 자신의 과거를 되돌아보는 과정을 거칩니다. 작가는 이 과정을 독자에게 보여줍니다. 그렇지만 이시구로는 기존에 기억을 다룬 작가들(예를 들면, 프루스트)과 달리 ‘기억의 부정성’을 극대화합니다. ‘기억의 부정성’을 좀 더 쉽게 설명하면, ‘왜곡된 기억’이라 할 수 있습니다.

 

《남아있는 나날》의 주인공 스티븐스는 최선을 다해 주인을 섬기는 것이 인생의 목표일 정도로 모든 감정을 억누르며 살아가는 집사입니다. 그와 같이 일한 총무 켄턴은 스티븐스에게 호감을 느끼고 그의 마음을 열려고 노력하지만, 스티븐스는 집사 일에만 몰두합니다. 스티븐스는 ‘위대한 집사’가 되고 싶어 합니다. 그는 충성과 헌신으로 주인 달링턴 경을 섬겼습니다. 소설은 20년이 지난 뒤 스티븐스가 켄턴의 편지를 받고 그녀를 찾아 길을 나서며 과거를 회상하는 것으로 시작됩니다.

 

스티븐스는 집사로서 최선을 다했던 지난 시절을 회상합니다. 만약 프루스트가 《남아있는 나날》을 썼더라면 이야기는 어떻게 전개되었을까요? 과거를 회상하는 프루스트의 인물은 집요하게 기억 속에 남아 있는 과거의 진실을 찾으려고 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시구로의 인물은 과거의 기억을 소환하지만, 끝내 진실을 찾아내지 못합니다. 독자는 알고 있습니다. 스티븐스가 과거를 회상하면서 무엇을 놓치고 있는지를.

 

달링턴 경은 독일 나치의 음모를 알아차리지 못하고, 그들의 생각(반유대주의)에 동조합니다. 그러나 스티븐스는 주인의 올바르지 않은 행동이 얼마나 심각한 것인지 인식하지 못합니다. 사실, 스티븐스는 집사로서 직분에 충실했으나 인생을 잘못 살아왔습니다. 그는 주인의 결점을 지켜보기만 했으며 끝까지 이 ‘불편한 진실’을 받아들이지 않습니다. 또, 켄턴과의 관계를 이어나가지 못하게 됩니다. 독자들은 작품을 읽으면서 스티븐스가 알아차리지 못한 ‘진실’이 무엇인지 확인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스티븐스는 소설이 끝날 때까지 자신이 살면서 놓친 ‘진실’이 무엇인지 찾아내지 못합니다. 놀랍게도 그는 여행하는 내내 ‘위대한 집사’에 대한 자신의 신념을 말하고 있을 뿐입니다. 그리고 본인이 살아온 인생을 긍정적으로 평가합니다. 스티븐스는 여행하면서 과거를 회상하지만, 본인이 만든 ‘왜곡된 기억’ 속에 머무르기만 합니다. 이시구로는 스티븐스의 회상을 통해 기억이 '신뢰할 수 없는 것'이라는 점을 부각합니다로쟈 님은 《남아있는 나날》의 결말을 보면서 한 편의 ‘섬뜩한 공포소설’을 보는 듯한 기분을 느꼈다고 했습니다.

 

이시구로의 다른 작품 《나를 보내지 마》, 《파묻힌 거인》에 대한 로쟈 님의 깊이 있는 설명이 있었지만, 제가 이 두 작품을 읽지 않은 관계로 강연 내용은 요약하지 않았습니다. 어제 강연에 맞춰 준비 독서를 제대로 하지 않아서 절반에 못 미치는 강연 내용을 전달하고 말았네요. 《남아있는 나날》마저 못 읽었으면 큰일 날 뻔했습니다. 아마도 강연 후기를 쓰지 못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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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크pek0501 2018-07-15 23: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인간의 기억이 많이 왜곡될 수 있음은 저도 잘 알고 있어요. 제 경험으로도 알게 됐어요.
예전에 쓴 일기장을 보니 제 기억이 틀렸더라고요. 그리고 더 브레인, 이라는 책을 보면
실험을 통해 인간의 기억이 얼마나 엉터리인지 증명하는 부분이 나옵니다.
기억만 엉터리가 아니고 심지어 인간은 누군가를 사랑하는지 안 하는지도 모르는 실험도 나옵니다. 사랑하지 않는데 사랑한다고 착각을 하기도 합니다.

<남아 있는 나날>, <나를 보내지 마>는 팟캐스트로 들어서 내용을 대충 압니다.
읽어 봐야겠단 생각을 했었죠. ㅋ

cyrus 2018-07-16 11:53   좋아요 0 | URL
예전에 쓴 리뷰를 다시 보면 책을 잘못 소개한 내용이 보여요. 기억에 의존하면서 책을 읽고 리뷰를 쓰면 엉터리 내용이 나올 수 있어요. ^^;;

레삭매냐 2018-07-16 13: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시구로 작가의 책, 거진 다 읽었는데
두 권 짜리 하나 못 읽었나 싶네요.

말씀 해주신 대로 책 읽고 나서 바로 기록
한 내용을 보면서 리뷰를 쓰지 않으면 불
상사가 벌어지는 것 같더라구요.

우리는 귀차니즘과 싸우게 되는 것 같네요.
 

 

 

 

 

 

 

 

 

 

어제 ‘《일탈》 읽기’ 첫 번째 모임이 있었습니다. 여성학을 공부하고 계시는 ‘책갈이’ 님이라는 분이 모임 후기를 썼어요. 책갈이 님은 서론1장 『여성 거래 : 성의 ‘정치경제’에 관한 노트』에 대한 내용 정리를 A1 용지 한 면에 다 채웠어요. 정말 대단한 일이에요. 왜냐하면 1장에 나오는 내용들이 엄청나요. 마르크스(and 엥겔스), 프로이트, 라캉, 레비스트로스의 사상이 나오고, 루빈이 네 사람이 주장한 이론을 비판합니다. 아주 깔끔하게 핵심 내용을 요약한 글이라서 《일탈》을 혼자서 읽기 시작한 분들에게 도움이 될 거로 생각합니다. 책을 먼저 읽고 난 뒤에 요약문을 읽으면 훨씬 이해하기 쉽습니다.

 

 

 

 

 

 

 

 

 

 

 

 

 

 

 

 

 

 

 

 

 

무려 900쪽에 달하는 <일탈>의 첫 모임은 거칠게 퍼 붓다가 잠잠해지기를 반복하는 빗발을 뚫고도 지난주 못지않은 인원이 참석했습니다. 그만큼 푸코의 <성의 역사> 이후 가장 급진적인 성 이론 실천가로 알려진 게일 루빈에 대한 관심이 크다는 방증일 것입니다.

 

서론과 1장 ‘여성거래’를 읽고 난 대부분 참석자는 “특히, 서론이 좋았다”라는 느낌을 나눴습니다. 서론에서 게일 루빈은 <일탈>에 게재된 논문이 저자의 삶, 그녀가 살아온 시대적, 공간적 상황 속에서 어떠한 맥락에서 연구 결과가 도출될 수 있었는지를 에세이처럼 풀어놓습니다. 인종차별과 종교적 우익 성향이 지배적인 미국 남부에서 어린 시절을 보낸 게일 루빈은 남부를 지배하는 세계관과 의제에 익숙했던 자신의 태도를 솔직하게 드러내고, 이후에도 삶의 과정에서 자신의 실수나 오류를 감추지 않습니다. 이러한 태도는 독자로 하여금 저자가 세계와 삶을 바라보는 태도가 ‘변화’에 있으며, 위치성에 대한 분명한 인식과 개인적인 것이 정치적이라는 페미니즘의 명제를 실천하는 연구자로서 저자에 대한 신뢰를 갖게 합니다.

 

특히, 1970년대 후반 ‘뉴라이트’의 부상과 백래시 현상, 젊은이에 대한 성적 순결을 권장하고, 낙태의 범죄화, 외설과 포르노 논쟁, 동성애 혐오 등은 현재 한국 사회에서 벌어지고 있는 갈등을 떠올리게 합니다. 또한, 민주주의 국가에서 소수의 이익을 위해 다수가 자신들의 이익과 상반되는 투표를 하도록 설득하는 데 성과 인종에 대한 혐오와 공포가 주요한 수단이 되었다는 부분은 고개를 끄덕이게 합니다.

 

1장 여성거래는 여성 억압의 원인을 분석하는 데 ‘재생산’과 ‘가부장제’라는 용어는 적절하지 않다고 비판합니다. 두 용어는 ‘경제적 체계’와 ‘성적 체계’ 사이의 구분과 성적체계가 일정한 자율성이 있다는 것을 전제합니다. 하지만 루빈이 주장하는 섹스/젠더 체계는 단순히 생산양식의 단순한 재생산적 계기가 아닙니다.

 

 

“섹스/젠더 체계는 한 사회가 생물학적 섹슈얼리티를 인간 행위의 산물로 변형시키고 그와 같이 변형된 성적 욕구를 충족시키는 일련의 제도입니다” (93쪽).

 

 

엥겔스레비스트로스가 주목한 친족체계는 섹스/젠더 체계를 관찰하고 경험할 수 있는 대표적 형태입니다. 또, 레비스트로스는 여성 교환이 사회의 기원을 형성하고 근친상간 금기를 문화와 자연의 경계에 위치시킵니다. 나아가 정신분석학의 오이디푸스 콤플렉스는 성적 인격(젠더)을 생산하기 위한 하나의 장치이고 강제적 이성애 제도를 합리화하는 이론적 배경입니다. 결론적으로 여성 억압의 원인은 여성 교환을 통해 친족제도를 성립시키고 여성 억압을 생물학이 아니라 사회 체계 속에 위치시킵니다. 따라서 여성교환은 섹스/젠더 체계들을 설명할 수 있는 개념의 무기고가 될 수 있으며 섹스/젠더 체계는 불변의 억압 장치가 아니라 정치적 행동을 통해 재조직될 수 있습니다.

 

루빈이 꿈꾸는 페미니즘 혁명은 여성억압의 해방 그 이상입니다. 강제적 섹슈얼리티와 성역할들의 제거, 즉 젠더가 없는 사회에 대한 꿈입니다. 그 꿈에는 한 사람의 해부학적 성이 그 사람이 누구이고, 무엇을 행하며 누구와 사랑을 나누는가 하는 문제와도 무관합니다. 즉, 섹슈얼리티가 사회와 정치적 의제의 중심이 아니라 주변으로 밀려나는 꿈입니다. 여자답다, 남자답다, 엄마답다, 선생님답다, 학생답다 등 “답다”의 구속복을 벗어버리는 꿈이기도 합니다. 그것은 <일탈>을 읽고 토론에 참석한 구성원 모두가 꾸는 꿈이기도 합니다.

 

다음 모임은 2장 “인신매매에 수반되는 문제”, 4장 “가죽의 위협”을 읽고 만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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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yo 2018-07-10 21:5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 책들 한 데 모으면 한 사람이 못 들겠네요.

cyrus 2018-07-11 07:51   좋아요 0 | URL
월요일 모임에 안 오신 분들의 책을 포함하면 무게가 어마어마해져요.. ^^;;

2018-07-11 00:38   URL
비밀 댓글입니다.

cyrus 2018-07-11 07:53   좋아요 0 | URL
처음부터 끝까지 다 읽는 건 아니고요, 읽고 토론할만한 챕터를 선별해서 읽을 예정입니다. ^^
 

 

 

 

 

 

 

<신청 방법>

 

일반인 15명 내외 (선착순)

현재 12분 신청하였습니다. 3분 신청 가능합니다.

 

참여비 : 15,000원

우리은행 : 583-362090-02-008 (김정희)

 

(★ 입금 후 문자 : 참여자 성함/연락처 ★)

 

 

로쟈 이현우 작가님이 대구 작은 책방 ‘서재를 탐하다’에서 문학 강연을 펼치십니다. 작년 11월 책방 ‘읽다 익다’와 ‘서재를 탐하다’에서 강연 이후 두 번째 방문이세요.

 

 

 

* [로쟈와 함께한 불금] 2017년 11월 25일

http://blog.aladin.co.kr/haesung/9732455

 

 

* [책 읽는 수준을 높이자!] 2017년 12월 9일

http://blog.aladin.co.kr/haesung/9762450

 

 

 

이번 강연은 로쟈 이현우 작가로부터 2017년 노벨문학상 수상자인 <가즈오 이시구로>의 작품세계를 들여다봅니다. 대구지역 문화공동체 [우주지감] 모임인 ‘이 작가의 책’에서 가즈오 이시구로의 작품을 만난 적이 있었는데요.

 

 

 

 

 

 

 

 

 

 

 

 

 

 

 

 

 

* 가즈오 이시구로 《나를 보내지 마》 (민음사, 2009)

* 가즈오 이시구로 《남아 있는 나날》 (민음사, 2010)

 

 

 

함께 읽었던 네 작품 중 좀 더 여운이 남았던 『나를 보내지 마』, 『남아 있는 나날』 두 작품을 중심으로 이야기를 펼쳐주실 예정이며, 함께 모인 분들과 궁금한 이야기를 나누는 시간이 마련됩니다. 

 

이현우 작가님은 러시아문학, 세계문학과 철학, 한국문학, 인문학 강연 등 다방면으로 이야기 마당을 펼치고 계십니다. 작은 공간을 직접 발걸음 해주심에 감사한 마음을 표하며, 더불어 함해 주실 분들을 기다리겠습니다. 대구에 사는 일반인이라면 누구나 신청 가능합니다. 

 

  - ‘서재를 탐하다’ 책방지기 김정희 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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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7-04 12:14   URL
비밀 댓글입니다.

cyrus 2018-07-05 06:39   좋아요 1 | URL
강연 듣고 난 이후에 가즈오 이시구로의 소설 읽기를 시작하셔도 괜찮습니다.. ㅎ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