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은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Gabriel Garcia Marquez)One Hundred Years of Solitude(약칭 백 년’) 번역본 2(문학사상사, 민음사)의 번역 비판에 대한 두 번째 글이다. 주요 내용은 민음사 판 백 년2권 전체 본문과 이에 해당되는 문학사상사 판 백 년본문 속에 발견한 오역 문장과 오류들이다.

 

 

 

 

 

 

 

 

 

 

 

 

 

 

 

 

 

 

* 가르시아 마르케스, 안정효 옮김 백년 동안의 고독(문학사상사, 2005)

    

 

 

 

 

 

 

 

 

 

 

 

 

 

 

 

* 가르시아 마르케스, 조구호 옮김 백년의 고독(민음, 2000)

 

 

 

 

    

 

 

5

    

 

* 안정효 씨는 아우렐리아노 세군도(Aureliano Segundo)의 딸 레난타 레메디오스(Renata Remedios)의 애칭 메메(Meme)레메로 잘못 썼다.

 

 

 

 

 

6

 

* 원문

  A while later, faced with a new attempt by the workers the lawyers publicly exhibited Mr. Browns death certificate, attested to by consuls and foreign ministers which bore witness that on June ninth last he had been run over by a fire engine in Chicago.

 

 

* 문학사상사 335

  다시 얼마 있다가 노무자들이 또 들고 일어나려고 하자, 변호사들은 두 나라의 영사관과 외무부의 공증까지 받은 미스터 브라운의 사망확인서를 공개하였는데, 그 사망확인서에는 미스터 브라운이 시카고에서 불자동차에 치여 지난 79에 죽었다고 적혀 있었다.

 

 

날짜가 잘못 적혀 있다. 정확한 날짜는 ‘69이다.

 

 

 

 

7

 

* 문학사상사 358

 

아폴로 신의 거상(巨像, 세계 7대 불가사의의 하나로 에게 해의 로데스 항구에 있음역주)

 

      

Colossus of Rhodes: 로도스라고 표기해야 한다. 아폴로 신의 거상은 현존하지 않으며 로도스 항구(로도스 섬)에 세워져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므로 에게 해의 로도스 항구에 있음이라는 표현은 맞지 않다.

 

민음사 판 2174쪽에 로다스 섬의 거인이라고 적혀 있는데 이 표현 또한 오역이다. 정확한 명칭은 로도스 섬의 거상이다.

 

 

 

 

 

8

 

* 원문

  They found her dead on the morning of Good Friday. The last time that they had helped her calculate her age, during the time of the banana company, she had estimated it as between one hundred fifteen and one hundred twenty-two.

 

 

* 민음사 판 2203

  우르술라는 죽은 몸으로 성 목요일 아침을 맞이했다. 바나나 회사가 있던 시절 여러 사람들의 도움을 받아 마지막으로 그녀의 나이를 계산해 보았는데, 그 당시 그녀가 백열다섯 살에서 백스물 살 사이라고 결론지었었다.

 

 

성 목요일(Maundy Thursday)은 예수가 겟세마네 동산(Gethsemane)에서 체포된 날이다. 성 금요일(Good Friday, 수난일: 십자가형을 받은 예수의 죽음을 기념하는 날) 전날이다. 우르술라가 사망했을 때 그녀의 나이는 백스물 살이 아니라 백스물 두 살이다.

 

 

 

 

 

9

 

 

* 원문: Isaac the Blindman

 

 

* 문학사상사 406

 

장님 이삭

역주: 구약성서에 나오는 장님 이삭

 

 

* 민음사 판 2236

 

장님 이사악

역주: 동로마 제국의 황제(1155~1204)

 

 

장님 이삭에 대한 두 역자의 설명이 다르다. 둘 중에 뭐가 맞는지 필자는 잘 모르겠다. 민음사 판 2236쪽 역주에 언급된 동로마 제국의 황제는 이사키오스 2세 앙겔로스(Isaac II Angelos)를 가리킨다. 그의 출생연도는 불분명해서 1156년으로 추정하는 사람도 있다. 이삭과 이사키오스 2세 모두 말년에 장님이 되었다.

 

 

 

 

 

10

 

 

* 원문

  When he rode the bicycle he would wear acrobats tights, gaudy socks, and a Sherlock Holmes cap, but when he was on foot he would dress in a spotless natural linen suit, white shoes, a silk bow tie, a straw boater, and he would carry a willow stick in his hand.

 

 

* 문학사상사 420

  그는 자전거를 탈 때면, 곡예사의 흘태바지알록달록한 양말을 신고 셜록 홈즈의 모자를 쓰고 다녔지만, 걸어 다닐 때에는 티끌 하나 없는 단정한 양복에 흰 구두를 신고 비단으로 만든 나비넥타이에 밀짚모자를 쓰고 손에는 버드나무 단장을 짚고 돌아다녔다.

 

 

* 민음사 판 2254

  그는 자전거를 타고 돌아다닐 때는 곡예사 바지백파이프 연주자들이 신는 양말을 신고, 탐정들이 쓰는 모자를 썼으나, 걸어 다닐 경우에는 말끔하게 손질한 생 아마포 옷에 흰 구두를 신고, 비단 나비넥타이를 매고, 맥고모자를 쓴 차림으로 버드나무 단장을 들고 다녔다.

 

 

gaudy: 천박한, 촌스러운, 요란스러운, 번지르르한

 

인쇄가 잘못된 건지 아니면 안정효 씨가 잘못 적은 건지 알 수 없지만, 흘태바지가 아니라 홀태바지(통이 매우 좁은 바지)라고 써야 한다.

 

→ 영문판에는 백파이프 연주자들이 신는이라는 번역문에 해당되는 표현이 없다. 그렇다면 스페인어로 쓰인 책에 백파이프 연주자들이 신는’이라는 표현이 있을 수 있다. 필자가 스페인어 판을 확인하지 않았기 때문에 뭐가 맞는 번역인지 판단하지 않았다.

 

그런데 조구호 씨는 ‘Sherlock Holmes cap’탐정들이 쓰는 모자라고 엉터리로 번역했다. ‘Sherlock Holmes cap’은 셜록 홈스가 써서 유명해진 모자(원래는 사냥꾼들이 즐겨 쓴 모자). 탐정들은 홈스의 상징이라 할 수 있는 모자를 쓰고 다니지 않는다.

 

 

 

 

 

 

11

 

 

* 문학사상사 428~429(본문 아님)

  아우렐리아노 바빌로니아(Aureliano Babilonia)와 함께 토론하는 네 명의 친구 중 한 사람의 이름이 게르만(Germán)이라고 되어 있다. 스페인어로 된 소설이기 때문에 스페인어 발음에 가까운 헤르만으로 표기해야 한다(민음사 판본 2권 267~268쪽).

 

 

 

 

 

12

 

 

* 원문

  Aureliano put him up several times in the silver workshop, but he would spend his nights awake, disturbed by the noise of the dead people who walked through the bedrooms until dawn. Later he turned him over to Nigromanta, who took him to her well-used room when she was free and put down his account with vertical marks behind the door in the few spaces left free by Aurelianos debts.

 

 

* 문학사상사 431

  아우렐리아노가 은세공 작업실에 몇 차례 그의 잠자리를 마련해 준 일도 있었는데 그는 새벽까지 집 안을 배회하는 죽은 사람들의 발자국 소리에 불안해져서 뜬눈으로 밤을 꼬박 새우곤 했다. 나중에는 그를 니그로만타에게 맡겨두었는데, 그녀는 손님이 없어 한가할 때면 그를 자기가 주는 쓰는 방으로 불러들여서 즐겁게 해주고는 그에게 외상으로 봉사해 준 계산을 기록해 두기 위해서 손톱으로 아우렐리아노의 빚을 기록한 자리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다 새로운 손톱 장부를 마련했다.

 

 

vertical mark: 세로 줄

 

원문을 우리말로 해석하는 게 쉽지 않다. 어쨌든 손톱손톱 장부는 오역으로 보인다.

 

 

 

 

 

13

 

 

* 원문

  She was irresistible, with a dress she had designed and one of the long shad-vertebra necklaces that she herself had made.

 

 

* 문학사상사 432

  손수 지은 드레스를 입고, 청어 를 모아서 만든 기다란 목걸이를 걸친 그녀의 모습은 정말로 매혹적이었다

 

 

* 민음사 판 2270

  스스로 디자인한 의복을 입고, 송어 척추 뼈로 직접 만든 길다란 목걸이를 걸치고 있는 그녀는 저항하기 어려운 매력을 갖추고 있었다.

 

 

shad: 청어

 

vertebra: 척추 뼈

 

청어는 청어과에 속한 물고기이며 송어는 연어과에 속한 물고기다

 

 

 

 

 

14

 

 

* 원문

  There was a big white dog, meek and a pederast, who would give stud services nevertheless in order to be fed.

 

 

* 문학사상사 435

  그곳에는 또한 먹이를 얻으려고 수컷 노릇을 하는 하얀 암캐도 있었다.

 

 

* 민음사 판 2274

  동성애를 했지만 먹고 살기 위해 종견(種犬) 노릇을 하던 유순한 성격의 흰 수캐 한 마리도 있었다.

 

 

meek: 온순한, 유순한

 

pederast: (젊은 소년을 대상으로 한) 남색에 빠진 사람

 

stud: 종마(種馬)

 

 

 

 

 

 

15

 

 

* 원문

  Years before, when she had reached one hundred forty-five years of age, she had given up the pernicious custom of keeping track of her age and she went on living in the static and marginal time of memories, in a future perfectly revealed and established, beyond the futures disturbed by the insidious snares and suppositions of her cards.

 

 

* 문학사상사 436

  여러 해 전에 그녀는 백마흔 살이 되었는데, 그때부터는 자기의 나이를 헤아리려는 헛된 버릇을 버리고 정체된 추억 속에서 여분의 삶을 살아가면서, 카드가 예시한 내적인 고뇌에 찬, 이미 다 알고 있기 때문에 살아버린 것이나 다름없는 여생을 보내고 있었다.

 

 

정확한 번역은 백마흔 다섯 살이다.

 

 

 

 

 

 

16

 

 

* 원문

  Collons, he would curse. I shit on Canon Twenty-seven of the Synod of London.

 

 

* 문학사상사 442

 

우라질!” 그는 욕설을 퍼부었다. “전부 엿이나 먹어라.”

 

 

* 민음사 판 2283

 

제기랄, 런던 종교회의에서 승인된 교회법 27항에 똥을 처발라 버려야겠어.

 

 

의역문(안정효)과 직역문(조구호)의 차이

 

 

 

 

 

 

17

 

 

* 원문

  Three months later they received in a large envelope twenty-nine letters and more than fifty pictures that he had accumulated during the leisure of the high seas.

 

 

* 문학사상사 443

  석달이 지난 후, 그들은 카탈루냐의 할아버지가 항해를 하는 동안 심심할 때면 틈틈이 써서 모아둔 27의 편지50장이 넘는 예쁜 사진이 들어 있는 커다란 봉투를 하나 받았다.

 

 

오역. 정확한 번역은 ‘29통의 편지.

 

 

 

 

 

 

18

 

 

* 원문

  He sold everything, even the tame jaguar that teased passersby from the courtyard of his house, and he bought an eternal ticket on a train that never stopped traveling.

 

 

* 문학사상사 444

  그는 집 앞마당에 묶어놓고 길들여, 지나가는 사람들을 놀려먹던 표범을 포함한 가지고 있던 모든 것들을 팔아치우고는 영원히 내리지 않는 차표를 사서 기차를 타고 떠나갔다.

    

 

* 민음사 판 2286

  그는 집 마당에서 행인들을 놀리곤 하던 우리 속의 호랑이까지 모든 것을 다 팔아 종점이 없는 열차의 평생 탑승권을 샀다.

 

 

재규어(jaguar)는 아메리카 대륙에만 서식하는 동물이라 아메리카 표범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그런데 퓨마(Puma)의 이명이 아메리카 표범이다. 재규어, 표범(Leopard), 퓨마 모두 고양잇과 동물이다. 간혹 재규어와 표범을 동일한 종으로 보는 사람이 있다. 재규어와 표범을 구분하는 방법은 얼룩무늬 형태다. 나무위키의 재규어의 명칭항목의 설명에 따르면 남아메리카 국가에서는 재규어를 호랑이(tigre)라고 부른다. 스페인어 tigre’의 뜻은 호랑이와 재규어다(네이버 스페인어 사전 참조).

 

 

 

 

 

 

에필로그

 

다시 검토해야 할 번역문들이 더 있다. 하지만 필자의 부족한 외국어 독해 실력으로 할 수 없는 일(정확히 말하면 해선 안 되는 일이다)이라 이 글에서 제외시켰다. 번역문을 제대로 검토하려면 스페인어 판본도 함께 확인해야 한다. 그러므로 백 년번역본 2종을 비교 검토한 이 두 편의 글은 반쪽짜리 작업의 결과물이다. 당연히 번역문을 지적한 필자의 견해가 미흡하고 틀릴 수 있다. 필자가 쓴 두 편의 글에 대한 비판은 언제든지 환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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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ella.K 2020-12-05 15:0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와, 대단하다. 한 종으로 읽기도 쉽지 않은데
비교분석본을 만들다니.
요런 거 모아서 책 한 권 내도 좋을텐데 말야.
이런 페이퍼 꽤 되지 않나?

cyrus 2020-12-05 15:51   좋아요 0 | URL
번역 전문가도 아닌 ‘보통의 독자’인 제가 번역을 따지는 내용을 담은 책을 쓰면 역자와 출판사에게 혹독하게 까일 수 있어요.. ㅎㅎㅎ 이런 일은 전문가가 해야 해요.

scott 2020-12-05 15:44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대단!
안정효씨는 영어판 조구호씨는 스페인어판으로 번역했을텐데
이렇게 비교해놓고 보니 출판사쪽에서 제대로 교정은 안한것 같아요.
잘팔리니깐 그냥 내버려두고

마르케스는 영어본 번역이 훨씬더 유려해서(자신이 중구난방 산만하게 쓴 스페인어보다 훨씬 깔끔하게 문장을 엮어서) 많은 국가들이 스페인어 원본이 아닌 영어판으로 번역 출간 했다는데 옆나라 일본도 의역과 직역에 차이가 크네요.
스페인어권번역가 중에 조구호 씨 번역은 그나마 낫다고 생각했는데,,,,
오래전 대학가 신문에 자신이 번역한 마르케스 작품에 대한 글을 기고 하신적이 있는데 독자들한테 완벽하게 전달하려고 직역을 고집했다는걸 읽은 기억이 있어요

보르헤스에 픽션들 번역본도 송병선과 황병하 번역에 차이도 의역과 직역이였어요.
스페인어 원본과 비교해보면 송병선씨는 거의 자신의 언어로 번역해버렸고 황병하님은 한문장 한문장 꼼꼼할정도로 직역하며 상세한 주석을 달아놓으셨는데 보르헤스적인 언어를 이해하는데(여러번 읽으면서)는 황병하님의 번역이 훨씬 낫다고 결론을 내렸죠.
그이유가 지나친 의역이 원문을 훼손해버리는게 더 심각하더군요.


cyrus 2020-12-05 15:59   좋아요 2 | URL
네, 맞습니다. 교정을 제대로 한 출판사 측도 책임도 있어요. 가르시아 마르케스 읽기에 푹 빠져 있을 때 보르헤스 읽기에도 도전하려고 했어요. 개인적으로 저는 주석이 많이 있는 번역본을 선호해요. 주석 때문에 독서 속도가 느려지지만, 오히려 주석이 있어야 내용을 이해할 수 있거든요. ^^

scott 2020-12-05 21:5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영어-When he rode the bicycle he would wear acrobat’s tights, gaudy socks, and a Sherlock Holmes cap, but when he was on foot he would dress in a spotless natural linen suit, white shoes, a silk bow tie, a straw boater, and he would carry a willow stick in his hand.



스페인어-Cuando andaba en el velocipedo usaba pantalones de acrobata, medias de gaitero y cachucha de detective, pero cuando andaba de a pie vestia de lino crudo, intachable, con zapatos blancos, corbatin de seda, sombrero canotier y una vara de mimbre en la mano.

우선 스페인어 원문에서 pantalones de acrobata-곡예사 바지
medias de gaitero-‘gaitero‘가 백파이프 medias 는 양말 즉, 백파이프 연주자들이 신는 양말이라는 뜻(조구호 번역이 맞음)
특히 영어번역판에 셜록홈즈의 모자 라고 해석했는데 스페인어 원문에는 cachucha de detective-‘탐정들이 쓰는 모자‘라고 쓰여 있어요.(영어판이 의역 원문에 셜록 홈즈라는 단어가 없음)
안정효 번역에 [그는 자전거를 탈 때면]이라고 해석한 부분 스페인어 원문은[pero cuando andaba de a pie vestia de lino crudo]‘andaba de a pie vestia de lino crudo‘ 자전거를 타고 구석구석(목적없이)돌아다니는 어슬렁거리는 의미입니다. pero cuándo~접속사구 해석을 영어에서 단순히 ‘when‘으로 해서 안정효씨가 그냥00~때라고 번역한것 같습니다.

이단락부분은 영어판이 원문과 다른 의미에 단어 없는단어를 넣고 있는 단어를 뺴버림

스페인어 원문에 충실하게 번역한건 ‘조구호‘
안정효:조구호-50:50인것 같네요.

cyrus 2020-12-05 22:24   좋아요 1 | URL
역시 제가 예상한대로 스페인어 판 문장과 영문판 문장의 표현에 차이가 있었군요. 그럴 줄 알고 ‘백파이프 연주자들이 신는 양말’이라는 번역문에 대해선 오역인지 아닌지 판단하지 않았는데, ‘탐정들이 쓰는 모자’라는 표현을 오역이라고 잘못 지적하고 말았네요. 10번 항목의 내용을 수정해야겠어요. scott님이 인용한 스페인어 문장과 번역문을 분석한 의견을 수렴해서 개정문을 쓰도록 할게요.

혹시 부탁해도 될까요? 두 번째 글의 8번 항목의 ‘성 목요일(민음사 2권 203쪽)’, 13번 항목의 ‘송어(민음사 2권 270쪽)’에 해당되는 스페인어 원문을 확인해주실 수 있어요? 정말 궁금해요. 천천히 확인하셔도 돼요. 알려주신다면 제가 사례로 scott님이 원하는 책 한 권을 주문해서 보내드리겠습니다.

scott 2020-12-06 00:3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스페인어 원문8번 항목 - Amaneció muerta el jueves santo. La última vez que la habían ayudado a sacar la cuenta de suedad, por los tiempos de la compañía bananera, la había calculado entre los ciento quince y los ciento veintidós años.
*영어 번역본은 good friday라고 했는데 스페인어 원문(el jueves santo) ‘성목요일‘이라고 되어있네요
‘ ciento veintidós‘는 백 스물 두살이 정확한 뜻입니다.
‘ciento quince‘는 백 열다섯살정도
원문에는 백 열다서살에서 백스물두살 사이 라고 적혀 있어요
스페인어 원문 13번 항목-Era irresistible, con su vestido inventado, y uno de los largos collares de vértebras de sábalo,que ella misma fabricaba.

‘청어뼈( vértebras de sábalo)‘기다란 목걸이‘( los largos collares)

cyrus 2020-12-06 00:38   좋아요 0 | URL
알려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어제 제가 스페인어 원문을 확인하지 않고, 주제넘게 번역이 잘못 되었다고 지적했네요. 얼른 고쳐야겠어요.

약속한 대로 책 선물을 드리겠습니다. 선물 받는 일에 부담을 느끼지 않으셨으면 해요. 어제 scott님이 댓글을 단 일은 별거 아닌 일일 수 있겠지만, 제겐 큰 도움을 받은 거나 다름없습니다. 이 댓글을 확인하시면 성함, 주소, 전화번호, 우편번호를 비밀 댓글로 남겨주세요.
 

 

 

 

지난 8월 중순부터 9월 말까지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Gabriel Garcia Marquez)One Hundred Years of Solitude(약칭 백 년’)을 읽었다. 그동안 백 년을 완독하는 데 실패했던 나로선 숙원이 드디어 풀렸다. 백 년이 독서 모임 필독서가 아니었으면 올해도 제목만 아는 고전명단에 올랐을 것이다.

    

 

 

 

 

 

 

 

 

 

 

 

 

 

 

 

* 가르시아 마르케스, 안정효 옮김 백년 동안의 고독(문학사상사, 2005)

    

 

 

 

 

 

 

 

 

 

 

 

 

 

 

 

 

 

 

 

 

* 가르시아 마르케스, 조구호 옮김 백년의 고독(민음, 2005)

 

    

 

가장 많이 알려진 백 년번역본은 2(문학사상사, 민음사)이다. 번역본 2(실질적으로는 책 세 권)을 같이 읽느라 오래 걸렸다. 소설에 나오는 인물들, 부엔디아(Buendía) 가문의 가계도를 이해하지 못한 채 소설을 읽으면 헤맬 수 있기 때문에(예전에 백 년읽기를 여러 차례 시도했으나 과거, 현실, 환상이 복잡하게 뒤섞인 미로 같은 이야기에 적응하지 못해 포기했다) 정말 집중해서 읽었다. 역시나 백 년은 쉽지 않은 소설이었다.

    

 

 

 

 

 

백 년번역본 2(문학사상사 판본은 영어 중역본, 민음사 판본은 스페인어 직역본)에 대한 독자평들을 확인했는데, 2종 모두 번역이 별로여서 가독성이 떨어진다는 견해가 있었다. 확실히 2종의 번역본에 대한 독자들의 반응이 엇갈렸다. 문학사상사 판본이 민음사 판본보다 가독성이 좋다고 한 독자가 있었고, 반대로 민음사 판본의 번역을 선호한 독자도 있었다. 그런데 번역을 지적한 독자들은 어떤 번역문이 문제가 있는지 구체적으로 밝히지 않았다. 필자가 제대로 못 찾은 것일 수 있지만, 백 년번역을 요목조목 따진 독자 및 전문가 서평을 발견하지 못했다. 그래서 필자는 어색하거나 문제가 되는 번역문을 직접 찾아보게 되었다. 필자는 스페인어를 쓰고 말할 줄 모른다. 영어 까막눈이지만(), 백 년영문판을 참고했다. 내용 분량을 조절하기 위해 두 편의 글(첫 번째 글은 민음사 판본 1권의 문장들, 두 번째 글은 민음사 판본 2권의 문장들이 나온다)로 나누어 썼다.

 

 

 

 

 

 

1

 

 

* 원문

  Úrsula on the other hand, held a bad memory of that visit, for she had entered the room just as Melquíades had carelessly broken a flask of bichloride of mercury. Its the smell of the devil, she said. Not at all, Melquíades corrected her. It has been proven that the devil has sulphuric properties and this is just a little corrosive sublimate.

 

 

* 문학사상사 10

  우르슬라만큼은, 멜키아데스가 실수로 2산화수은이 담긴 병을 깨뜨린 순간 방에 들어섰기 때문에, 그의 방문에 대해 별로 좋게 생각하지 않았다. “그 냄새, 정말 악마의 냄새처럼 고약했어요.” 우르슬라가 말했다. “아닙니다.” 멜키아데스가 대꾸했다. 지옥의 악마한테서는 유황 냄새가 나는데, 그날 부인이 맡은 냄새는 거기에 비하면 퍽 고상했죠.”

 

 

* 민음사 119

  멜키아데스가 2염화수은이 담긴 유리병을 실수로 깨뜨리는 순간에 하필 그의 방에 들어갔던 우르술라는 그의 방문에 대해 좋지 않은 기억을 간직하게 되었다.

이건 악마의 냄새예요그녀가 말했다.

그렇지 않습니다멜키아데스가 바로잡아 주었다. 악마는 유황 성분을 지니고 있다는 게 밝혀졌고요, 또 이건 단지 약간의 염화수은일 뿐이지요

 

 

bichloride of mercury: 염화수은(II), 염화 제2수은, 2염화수은, 승홍(昇汞, corrosive sublimate)

 

염화수은: 염소와 수은의 화합물, 염화수은(II)화학식 HgCl2

 

산화수은(mercury oxide): 수은의 산화물(한 개 이상의 산소 및 다른 원소와 결합하고 있는 화합물), 화학식 HgO

 

 

 

 

 

 

 

2

 

 

* 원문

  He had been shipwrecked and spent two weeks adrift in the Sea of Japan, feeding on the body of a comrade who had succumbed to sunstroke and whose extremely salty flesh as it cooked in the sun had a sweet and granular taste. [중략] In the Caribbean he had seen the ghost of the pirate ship of Victor Hugues, with its sails torn by the winds of death, the masts chewed by sea worms, and still looking for the course to Guadeloupe.

 

 

* 문학사상사 91~92

  한번은 배가 파선되어 한국 동해에서 2주일 동안 표류하다가, 일사병으로 죽은 동료의 시체를 먹고 살았는데, 그 짭짤한 살은 햇볕에 잘 익어서 달콤하고 쫄깃쫄깃하더라는 얘기도 했다. [중략] 카리브 해에서는 빅터 휴즈의 해적선이었던 배가 죽음의 바람에 돛이 갈기갈기 찢어지고 돛대가 바다벌레에 갉아 먹힌 유령선이 되어 아직도 과달루페로 가는 뱃길을 찾아 헤매는 것도 보았다고 했다.

 

 

* 민음사 판 1141~142

  한번은 배가 파선되어 일본 해에서 두 주일 동안 표류하면서 일사병으로 죽은 동료의 시체를 먹고 살았는데, 소금기에 절고 또 절고, 햇볕에 익은 그 살이 쫄깃쫄깃하고 달콤하더라는 얘기도 했다. [중략] 카리브 해에서는 빅또르 우게스의 해적선으로 사용되던 배가 죽음의 바람에 돛이 갈기갈기 찢기고 바다 바퀴벌레에 돛대가 갉아 먹힌 유령선이 되어 여전히 구아달루뻬로 가는 뱃길을 찾아 헤매는 것을 보았다고도 했다.

 

 

동해명칭을 둘러싼 한일 양국 간의 국제적 갈등을 생각하면 영문판에 적힌 ‘Sea of Japan’과 두 역자의 명칭 모두 아쉽다. 동해는 특정 국가가 영유한 바다가 아니다. 그러므로 한국 동해’, ‘일본 해라는 표현을 쓰는 건 적절하지 않다. ‘동해라고 써야 한다.

 

 

Victor Hugues: 빅토르 우게스. 쿠바의 소설가 알레호 카르펜티에르(Alejo Carpentier)의 소설 The Age of Enlightenment에 나오는 주인공이다. 민음사 1142쪽에 빅토르 우게스에 대한 역주가 있다. 이 역주를 단 조구호 씨는 The Age of Enlightenment의 우리말 제목을 의 세기라고 썼는데, 원문의 의미에 부합한 제목은 계몽의 세기. ‘빅터 휴즈는 빅토르 우게스의 영어식 발음이다.

 

 

 

 

 

 

3

 

* 문학사상사 102

  쏟아져 나오는 피를 잉크를 말리는 압지처럼 흡수하는 그물침대의 무더운 늪 속에서 허우적거리며 레베카는 참기 어려운 고통 속에서 자신을 잃고 다시 태어났음을 하느님에게 감사드렸다.

 

 

필자가 밑줄 친 부분이 어색하다. 도대체 뭔 말이야?

 

 

 

 

 

 

4

 

* 문학사상사 177

 

세인트 엘모의 불꽃(St. Elmo’s fire)’에 대한 역주

도깨비불, 매일 밤 양초를 들고 정처 없이 마을의 거리를 헤매 다니던 프랑스 신부 엘모에게서 유래.

 

 

안정효 씨가 단 역주에 잘못된 내용이 있다. 엘모는 뱃사공들의 수호성인 포르미아의 에라스무스(Erasmus of Formia)가 와전된 이름이다. 포르미아는 이탈리아 라치오 주에 있는 도시 이름이다. 포르미아의 에라스무스는 프랑스 (출신의) 신부가 아니라 이탈리아 출신의 신부이다. 민음사 판에는 도깨비불이라고 번역되어 있다(1236).

 

 

 

 

 

 

 

에필로그

 

이 첫 번째 글은 민음사 판 백 년1권 전체 본문과 이에 해당되는 문학사상사 판 백 년본문 속에 발견한 오역 문장과 오류를 정리한 것이다. 사실 여기까지만 보면 2종의 번역본의 문제점이 많아 보이지 않는다. 그렇지만 필자가 글을 두 편으로 나누어서 쓴 이유가 있다. 오역으로 볼 수 있는 문장들이 민음사 판 백 년2권에 많이 나오기 때문이다. 물론 안정효 씨의 오역과 엉터리로 쓴 역주도 있다. 인지도가 높은 백 년번역본 2종의 번역 수준이 생각보다 심각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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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알벨루치 2020-12-05 12: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시루스박사님 반가워요 역쉬👍👍👍

cyrus 2020-12-05 14:28   좋아요 1 | URL
오랜만입니다. 잘 지내셨죠? ^^

카알벨루치 2020-12-05 19:41   좋아요 0 | URL
아랫분들 댓글 배틀에는 못 끼어들겠네요 시루스 박사님 스콧 박사님 두분 다 갑입니다 ^^

cyrus 2020-12-05 22:33   좋아요 1 | URL
경쟁이라기보다는 제가 scott님으로부터 도움을 받는 상황입니다. ^^

2020-12-05 13:07   URL
비밀 댓글입니다.

cyrus 2020-12-05 14:30   좋아요 0 | URL
꼼꼼하게 책 읽는 일은 시간을 많이 소모하는 일이고, 상당히 귀찮은 일이에요. 그렇기 때문에 꼼꼼하게 안 읽는 일이 반성해야 일은 아니에요. ^^;;

scott 2020-12-05 16:5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영어-Úrsula on the other hand, held a bad memory of that visit, for she had entered the room just as Melquíades had carelessly broken a flask of bichloride of mercury. “It’s the smell of the devil,” she said. “Not at all,” Melquíades corrected her. “It has been proven that the devil has sulphuric properties and this is just a little corrosive sublimate.”

스페인어-Úrsula, en cambio, conservó un mal recuerdo de aquella visita, porque entró al cuarto en el momento en que Melquíades rompió por distracción un frasco de bicloruro de mercurio.
-Es el olor del demonio -dijo ella.
-En absoluto -corrigió Melquíades-.
Está comprobado que el demonio tiene propiedades sulfuricas, y esto no es más que un poco de solimán.
*조구호 번역- 멜키아데스가 제2염화수은이 담긴 유리병을 실수로 깨뜨리는 순간에 하필 그의 방에 들어갔던 우르술라는 그의 방문에 대해 좋지 않은 기억을 간직하게 되었다.

「이건 악마의 냄새예요」 그녀가 말했다.

「그렇지 않습니다」 멜키아데스가 바로잡아 주었다. 「악마는 유황 성분을 지니고 있다는 게 밝혀졌고요, 또 이건 단지 약간의 염화수은일 뿐이지요」
*안정효 번역- 우르슬라만큼은, 멜키아데스가 실수로 제2산화수은이 담긴 병을 깨뜨린 순간 방에 들어섰기 때문에, 그의 방문에 대해 별로 좋게 생각하지 않았다. “그 냄새, 정말 악마의 냄새처럼 고약했어요.” 우르슬라가 말했다. “아닙니다.” 멜키아데스가 대꾸했다. “지옥의 악마한테서는 유황 냄새가 나는데, 그날 부인이 맡은 냄새는 거기에 비하면 퍽 고상했죠.”

*이렇게 놓고 비교해보니 확실히 조구호씨 번역은 스페인어판을 직역하셨고(나쁘게 말하면 어순을 뒤죽박죽 구글번역기 돌리듯) 안정효씨번역은 영어판으로 번역해서인지 의역을 했지만 스페인어판과 똑같이 우슬라와 멜키아데스에 주체를 뒤바꾸지 않고 어순도 정확합니다.

‘en que‘라는 시간 접속 부사구(that절이 아닌 시간 부사구 just as로 번역해야함) 뒤 주어를 조구호씨는 문장 첫머리 주어로 번역했는데 영어판 번역 우슬라가 주어로 나와야 정확한 번역입니다.

‘porque~‘구절도 이유를 뜻하는 ‘for~‘구절로 번역한 영어판이 정확하고

조구호 씨 번역은 어순을 뒤바꿔버릴정도로 엉망
solimán은 스페인어로 수은으로 만든 화장품
sulfurico((단수형)/sulfuricas 스페인어로 황산
sulphuric-영어로 유황

스페인어판 원본에는 ‘황산‘이라는 단어를 썼고 영어판에는 유황으로 번역했고 ‘corrosive sublimate‘ 는 영어판에서 염화 제2수은이라는 전문 화학용어가 아닌 원문이 품고 있는 진짜뜻(수은성분이 들어간 화장품/황산이 부식할때 나는 유황냄새로 번역(안정효)했네요

올려주신 번역본만으로 볼때 안정효 번역본이 스페인어판과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영어번역본이 정확하고 (원문이 품고 있는 의미를 안정효씨가 의역한것은 있음) 제2산화 수은이라고 화학적 용어가 아닌 마르케스는 수은이 들어간 화장품을 의미했고 (원문에서) 조구호 번역은 일대일 사전 찾아 번역기 돌려버린것 같아요

cyrus 2020-12-05 16:37   좋아요 1 | URL
스페인어 원문은 어디서 찾은 거예요? 영단어 몇 개 입력하면 어떻게든 영문판 텍스트를 찾겠는데 제가 스페인어를 몰라서 서반아 판을 찾는 건 포기했어요... ㅠㅠ

scott님이 저보다 번역문을 분석한 내용을 잘 설명하셨어요. 이런 소중한 댓글을 남겨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저는 어법을 몰라서 문장 속의 단어를 지적하는, 어떻게 보면 엄청 쪼잔한(?) 방식으로 번역문을 해석해요... ㅎㅎㅎ

scott 2020-12-05 16:5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스페인어판은 제가 이북으로도 갖고있고 워드로 직접 친것도 있어요 스페인어 전공은 안했지만 (포루투갈어로 읽다가 너무 훌륭해서)작년 재작년동안 마르케스 보르헤스만 줄창읽었어요 영어판도 읽었고 안정효 번역본도 읽었는데 안정효 번역이 크게오역(한국어의미로 해석하려고)한부분이 극히 적다는것 특히 마지막챕터는 이보다 더좋게 번역하지못할정도로 잘했어요

cyrus 2020-12-05 16:54   좋아요 1 | URL
번역 문제를 안 따지고 줄거리를 이해하는 목적으로 읽는다면 안정효 씨 번역문이 읽기 수월했어요. ^^

페넬로페 2020-12-05 23:1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는 정말 오래 전에 문학사상사판으로 ‘백년동안의 고독‘을 읽었는데
그때는 번역에 대해선 생각하지도 않고
하여튼 책을 읽으며 너무 감동을 받았거든요~~
그때의 좋았던 느낌이 지금도 생생해요^^
지금은 그 책은 없고
민음사판을 구입해 놓았는데
다시 읽으면 느낌이 어떨지 궁금하네요^^

cyrus 2020-12-06 07:54   좋아요 1 | URL
독서 모임에 참석한 분들은 안정효 씨가 번역한 책이 좋았다고 했어요. 이 책을 선호하고 좋게 본 독자들이 많아요. ^^

2020-12-06 00:04   URL
비밀 댓글입니다.

cyrus 2020-12-06 08:00   좋아요 2 | URL
저도 그래요. 책에서 본 내용을 정확하게 기억하지 못해요. 책 한 권을 다 읽으면 밑줄 치고 싶은 문장, 내가 생각하기에 알아두면 좋은 내용 등을 한컴 프로그램에 입력해서 파일 형식으로 저장해요. 제가 책을 더럽히면서 읽는 것을 좋아하지 않아서 이런 번거로운 작업을 하고 있어요. 그래도 파일로 정리해놓으면 언제든지 다시 볼 수 있어요. 그런데 이렇게 해도 제가 읽은 내용을 전부 다 기억하지 못해요. 예전에 파일에 저장해놓은 내용을 기억하지 못해서 다시 입력하기도 해요. 어찌 보면 시간을 낭비하는 일이지만, 다시 안 잊어버리려면 계속 입력해야 돼요. ^^
 

 

 

 

어제 공개된 두 편의 글에 언급했지만, 린다 리어(Linda Lear)레이첼 카슨 평전은 정말로 좋은 책이다. 이 책이 복간되지 않아서 아쉽다. 레이첼 카슨 전집출간을 기획한 에코리브르 출판사가 펴낸 카슨 평전은 전기 작가 윌리엄 사우더(William Souder)가 쓴 것이다(이 책을 번역한 김홍옥 씨는 리어가 쓴 카슨 평전의 역자이기도 하다. 그 외에 김 씨는 카슨의 책을 번역했다). 이 책은 침묵의 봄출간 50주년(2012년)에 맞춰 나왔다. 원제는 <On a Farther Shore: The Life and Legacy of Rachel Carson>이다.

    

 

 

 

 

 

 

 

 

 

 

 

 

 

 

 

* [절판] 윌리엄 사우더 레이첼 카슨: 환경운동의 역사이자 현재(에코리브르, 2014)

 

* [품절] 린다 리어 레이첼 카슨 평전: 시인의 마음으로 자연의 경이를 증언한 과학자(샨티, 2004)

 

    

 

사우더는 리어의 카슨 평전을 참고하면서 썼다. 리어의 책을 참고하는 일은 카슨 평전과 전기를 집필한 사람들의 공통점이다. 두 권의 책을 읽어 보면 중복된 내용을 확인할 수 있다. 그러나 사우더는 리어의 평전을 답습하면서 쓰지 않았다. 리어는 카슨과 관련된 수많은 자료(생전에 카슨이 공개하기를 꺼려했던 편지들도 포함된다. 예를 들면 카슨이 도로시 프리먼에게 보낸 편지들이다)를 면밀히 조사하여 대중에게 잘 알려지지 않은 카슨의 삶을 복원했다. 그뿐 아니라 카슨의 주변 인물들에 대한 정보까지 설명했다. 그래서 평전의 분량이 방대하다. 책의 분량이 많다는 것은 장점인 동시에 단점이다. 다만 사우더의 평전은 600쪽이 넘는 책이라 분량이 적다고 할 수 없다.

 

사우더는 카슨의 생태주의 관점에 영향을 준 학문적 배경과 그녀가 화학 살충제 문제에 관심을 가지게 된 사회적 배경에 중점을 두면서 평전을 썼다. 사우더는 ‘사회를 바꾼 지식인 카슨의 면모를 보여주려고 노력했다. 리어의 평전은 카슨을 포함한 여성 지식인들이 겪어야 했던 부당한 차별들을 제대로 보여준다. 카슨은 여성을 남성보다 열등한 존재로 보는 시선을 향해 비판적인 목소리를 냈지만, 자신을 페미니스트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 엘렌 레빈 레이첼 카슨(나무처럼, 2010)

평점: 3.5점   ★★★☆   B+

 

 

* 알렉스 맥길리브레이 세계를 뒤흔든 침묵의 봄(그린비, 2005)

평점: 3.5점   ★★★☆   B+

  

 

 

 

평전의 분량에 부담을 느낀다면, 평전을 대신할 차선책을 찾으면 된다. 엘렌 레빈(Ellen Levin)레이첼 카슨(Up Close: Rachel Carson)세상을 뒤흔든 선언시리즈 네 번째 책인 세상을 뒤흔든 침묵의 봄은 차선책으로 삼을 수 있는 책이다. 레빈의 책은 가벼워서 모든 연령의 독자들이 읽을 수 있는 장점이 있다. 이 책의 부록은 자연 생태 보호 및 환경 보전을 위한 국제협약과 의정서(몬트리올 의정서, 생물다양성 협약, 기후변화 협약, 교토 의정서 등)를 간략히 소개한 내용이다. 하지만 고쳐야 할 부분이 있다.

 

 

 

 여름 내내 레이첼과 메리는 PCW 과학클럽을 만드는 계획을 세웠다. 이름은 무 시그마(Mu Sigma)라고 정했는데, 스킨커 교수의 이니셜을 그리스어로 표기한 것이다. (레이첼 카슨, 48)

 

 

 

저자나 역자의 실수인지 아니면 잘못 인쇄된 것인지 모르겠지만, 대학생 시절 카슨과 친구들이 결성한 과학클럽 이름이 틀렸다. 정확한 이름은 무 시그마 시그마(Mu Sigma Sigma). 카슨이 장래희망을 과학자로 정하는 데 결정적인 영향을 준 메리 스콧 스킨커(Mary Scott Skinker) 교수의 이름의 머리글자를 따서 만들었다. 134쪽의 알바토로스 호187쪽의 몬샌토는 각각 앨버트로스 호(카슨이 해양생물 연구를 했을 때 탑승한 배 이름)몬산토(Monsanto, 지금은 합병되어 사라진 다국적 농업 기업)로 고쳐 써야 한다.

 

세계를 뒤흔든 침묵의 봄은 평전이 아니라서 카슨의 일생을 언급한 내용이 적다. 세계를 뒤흔든 침묵의 봄을 저자는 그린피스에 일한 적이 있는 환경 시사 전문가다. 저자는 침묵의 봄이 전 세계적인 환경운동을 탄생시킨 산파 역할을 한 ‘녹색 선언으로 자리매김하는 과정을 보여준다. 그래서 독자는 이 책에서 카슨 이후에 전개된 국제적 환경운동의 흐름을 한눈에 볼 수 있다.

 

이 책도 옥에 티가 있다. 토속적인 느낌이 나는 조류 보호를 위한 오두봉협회(15)전국오두봉협회(17)’는 전국오듀본협회(National Audubon Society)를 말한다. 북아메리카 조류 일람등을 남긴 박물학자이자 삽화가인 존 제임스 오듀본(John James Audubon)을 기려 만든 비영리 환경단체다. 여담이지만 경남 거창군과 전북 정읍시에 오두봉이라는 이름이 붙여진 산봉우리가 있다.

 

 

 천연자원의 사용을 놓고 자연보호운동가와 정부 · 기업 간의 갈등도 점점 더 커져갔다. 1905년 밀렵꾼들이 야생동물 보호구역의 관리를 살해하는 사건으로 절정에 이르렀다. 결국 자연보호운동가들은 헤치헤치 계곡(Hetch Hetchy Valley)을 보호하는 데 실패했고, 1913년에 그 계곡은 물속에 잠기고 말았다. 이 해에 마지막으로 살아남아 있던 나그네비둘기 마서(Martha)가 동물원에서 사망한 것도 상징적인 사건이라고 할 수 있다. (17)

 

 

나그네비둘기(passenger pigeon)의 또 다른 이름은 여행비둘기. 마지막 나그네비둘기는 1913년이 아니라 191491일에 멸종되었다.

      

 

 전 상원의원인 위스콘신 주지사 게일로드 넬슨은 1970년에 제정된 첫 번째 지구의 날 행사에 우드스톡(1969816일 뉴욕 주에서 열린 록 음악제. 30만 관중이 운집했다) 못지않은 광범위한 지지를 이끌어내는 데 큰 역할을 했다. (112)

 

 

우드스톡(Woodstock) 록 페스티벌은 1969815일부터 3일간 뉴욕에서 진행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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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12-04 12:27   URL
비밀 댓글입니다.

cyrus 2020-12-04 17:23   좋아요 0 | URL
휴식이 너무 길었어요. 올해는 시간이 엄청 빨리 간 것처럼 느껴져요. ^^

비연 2020-12-04 18: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레이첼 카슨 평전>.. 레이첼 카슨에 대해 급흥미가 생겨 읽었었는데, 전 여러모로 좋았더랬습니다. 그래서 친구한테 빌려주면서 읽어보라고 했으나... 좀 이따 돌려주더라는...^^;;;

cyrus 2020-12-05 08:09   좋아요 0 | URL
친구 분에게 빌려준 책을 돌려받아서 다행이에요. 영영 못 받을 수 있거든요. ^^;;
 

 

 

 

 

린다 리어(Linda Lear)가 쓴 레이첼 카슨 평전은 완성도 높은 책이다. 리어는 단조로워 보일 수 있는 카슨의 삶에 그녀에게 영향을 준 주변 인물과의 관계, 카슨이 마주한 과학계의 유리 천장(glass ceiling)과 차별 등을 엮어 입체적으로 서술했다.

    

 

 

 

 

 

 

 

 

 

 

 

 

 

 

* [품절] 린다 리어 레이첼 카슨 평전: 시인의 마음으로 자연의 경이를 증언한 과학자(샨티, 2004)

 

    

 

리어는 카슨과 관련된 모든 자료를 소장하여 관리하고 있다. 그녀는 카슨이 가장 좋아했던 친구이자 연인인 도로시 프리먼(Dorothy Freeman)에게 보낸 편지까지도 가지고 있다. 카슨은 독신으로 살았지만, 이미 결혼한 도로시와 단둘이서 시간을 보내는 것을 좋아했다. 카슨은 도로시에게 보낸 편지에 나의 흰 히아신스라고 표현했을 정도로 그녀를 향한 애정을 숨김없이 드러냈다.

 

 

 

 

 

 

히아신스는 그리스 로마 신화에 나오는 아름다운 소년 히아킨토스(Hyakintos)에서 유래된 꽃 이름이다. 히아킨토스는 태양의 신 아폴론(Apollon)의 사랑을 받을 정도로 외모가 아름다운 소년이다. 아폴론은 히아킨토스를 사랑했다. 그는 만사를 제쳐두고 아미클라이(Amyclae, 스파르타로부터 남쪽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도시)에 사는 히아킨토스를 만나기 위해 스파르타에 자주 갔다. 두 사람은 함께 사냥개를 데리고 산속을 누비고 다녔다. 그러던 어느 날, 아폴론과 히아킨토스는 원반던지기 시합을 한다. 불행하게도 아폴론이 먼저 던진 원반은 땅에서 튕겨 올라 히아킨토스의 얼굴을 가격했다. 얼굴에 치명상을 입은 히아킨토스는 아폴론의 품속에 숨을 거둔다. 히아킨토스의 상처에 흘러나온 피에서 꽃이 피었고, 그 꽃이 바로 히아신스다.

    

 

 

 

 

 

 

 

 

 

 

 

 

 

 

 

* 메릴린 옐롬, 테리사 도너번 브라운 여성의 우정에 관하여: 자매애에서 동성애까지, 그 친밀한 관계의 역사(책과 함께, 2016)

 

    

 

예로부터 예술가들은 아폴론과 히아킨토스의 에로틱한 동성애에 초점을 맞춰 두 사람의 모습(아폴론이 죽어가는 히아킨토스를 안은 모습)을 묘사했다. 히아킨토스를 사랑해서 본인이 직접 그에게 다가간 아폴론처럼 카슨은 도로시에게 만나자고 적극적으로 표현했다. 그리고 카슨은 도로시가 사는 지역 근처에 갈 일이 생기면 두 사람이 묵을 호텔 방을 예약했다. 하지만  가지 정황만 가지고 카슨과 도로시를 동성애자로 규정하는 것은 과대 해석이다. 여성의 우정을 동성애로 치부하는 해석은 관계 속에서 피어난 두 사람의 지적 열정을 가린다[주]. 두 사람 모두 숲과 바다를 좋아했고, 함께 생물을 관찰했다

 

여성의 우정에 관하여는 친밀한 관계 형성과 깊이 있는 소통을 지향한 여성들의 우정과 사랑을 소개한 책이다. 이 책에 따르면 유럽 중산 계급 여성들 사이에 성애와 무관한 로맨틱한 우정’이 유행한 시기가 있었. 특히 독신 여성은 한 발 더 앞서 나가 결혼의 대안으로 여성끼리 모여 사는 공동체를 만들기도 했다. 이러한 사례로 비추어 볼 때 카슨과 도로시의 관계는 로맨틱한 우정에 가깝다. 카슨은 도로시와 오붓하게 지낼 수 있는 별장을 마련했고, 도로시와 함께 별장 근처에 있는 숲과 바다를 산책했다. 비록 도로시는 남편과 함께 살면서 카슨을 만나러 다니는 이중생활을 했지만(남편은 도로시가 카슨을 자주 만난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오히려 남편은 두 사람의 관계를 지지했다), 시간이 지날수록 자연을 좋아하는 감정으로 이어진 두 사람의 우정은 더욱 돈독해졌다. 별장, 숲과 바다는 자연에 대한 애정을 마음껏 발산할 수 있는 두 사람만의 아늑한 장소였다.

 

카슨의 적극적인 구애는 외로움을 달래보려는 노처녀 인기 작가의 몸부림으로 봐서는 안 된다. 도로시를 향한 애정 표현으로 가득한 카슨의 편지를 보고난 다음에 침묵의 봄》의 논리 정연한 문체를 보면 묘한 괴리감이 생긴다. 하지만 도로시를 만날 때마다 마음이 들떴을 그녀의 모습은 과학자이자 작가로서의 평판을 떨어뜨리지 않는다. 오히려 그녀의 순수한 모습이 인간적으로 느껴진다.

 

친구 같은 어머니 마리아 카슨(Maria Carson)이 세상을 떠난 후 카슨과 도로시가 함께 있는 시간은 더 늘어났다. 암 투병에 지친 카슨에게 인생의 진정한 동반자를 찾는 일은 정말 중요한 문제였다. 도로시 프리먼은 카슨의 글을 좋아한 열혈 팬이 아닌 카슨이 믿고 의지할 수 있는 친구, 연인, 엄마와 같은 존재였다.

 

 

 

 

 

[] 독자에게 오해를 줄 수 있는 문장이라는 비판적인 의견이 있어서 이를 바로 잡기 위해 주석을 달았다.

 

동성애를 반대하는 사람들은 동성애자라고 하면 정상적이지 않은 성적 취향의 변태를 떠올린다. 카슨과 도로시의 관계를 연인 관계, 동성애로 보는 관점이 틀렸다고 할 수 없다. 하지만 카슨 평전을 쓴 린다 리어도 그렇고, 지금까지 카슨 평전을 쓴 몇몇 저자는 두 사람의 관계를 사랑인지 우정인지 명확하게 구분하기 어려운 복잡한 관계로 중립적으로 바라볼 뿐 동성애에 초점을 맞춰 진술하지 않았다. 동성애에 대한 편견을 가진 사람이 여성의 우정을 동성애로 본다면 그녀들의 깊이 있는 정신적 교류보다 육체적 관계에 더 주목한다따라서 필자는 카슨과 도로시의 관계를 동성애로 보는 견해에 비판적인 입장을 밝혔다.

 

내 견해가 동성애적 관계는 여성의 우정보다 지적으로 열등하다로 읽혀질 수 있다는 의견을 받았다. 정확한 지적이다. 그러므로 주석을 통해 동성애자의 열등함을 전제 하에 여성의 우정을 강조한 것이 아님을 분명히 밝혀둔다. 성소수자의 역사를 돌아보면 지식인이나 예술가로 활동한 동성애자들이 있었다. 필자가 이 사실을 본 글에 언급하지 않았다. 내 실수다. 혹시 이 글을 읽고 조금이라도 기분이 상한 성소수자 독자가 있다면, 이 자리를 빌려 사과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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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12-03 21:51   URL
비밀 댓글입니다.

cyrus 2020-12-03 22:19   좋아요 2 | URL
syo님, 어서 오시고요. 글만 안 썼을 뿐이지 책을 꾸준히 읽었어요.. ㅎㅎㅎㅎ

지금은 동성애에 대한 부정적인 시선과 편견이 과거보다 덜한 편이지만, 그래도 동성애라고 하면 사람들은 성적인 관계를 떠올립니다. 동성애자를 변태 취급하는 거죠. 그래서 성소수자 운동가나 페미니스트들이 동성애 차별을 비판할 때 동성애를 반대하는 사람들이 제일 먼저 하는 말이 동성애자가 많아지면 HIV/AIDS가 퍼지면서 나라가 망한다고 말합니다.

미국과 유럽의 여권신장론자들이 등장할 때 사람들은 그녀들을 동성애자라고 조롱했어요. 이제는 흔한 단어인 ‘퀴어’가 과거에는 원래 동성애자를 부정적으로 가리키는 단어였듯이 동성애자라는 명칭 역시 그런 부정적인 의미로 사용되었던 거죠. 남성 중심 사회에서 여성의 우정은 크게 주목받지 못했고, 오히려 부정적인 시선이 많았어요. 시간이 지나고 여권 신장에 대한 여성들의 목소리가 높아지면서 여성의 우정과 연대가 주목받기 시작했어요.

저는 카슨과 도로시의 우정이 ‘에로틱한 동성애 관계’로 비춰지면서 해석되는 것을 경계해야 한다는 뜻에서 말한 것이지 “동성애자는 지적으로 떨어진다”는 전제로 우정에 초점을 맞춘 것은 아닙니다. 성소수자의 역사를 돌아보면 지적으로 뛰어나고 예술적 감수성이 풍부한 동성애 커플이 있었어요.

syo님이 말씀하신 것처럼 “동성애 관계 속에서도 지적 열정의 교환이 가능하다는 전제”를 언급하지 않으면 잘못 읽혀질 수 있겠어요. 오랜만에 정말 좋은 의견을 받았어요. syo님의 의견을 수렴해서 수정하겠습니다. 고마워요. ^^

이하라 2020-12-03 21: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안녕하셨어요? 별일 없으시죠.. 제가 못보고서 딴소리하는 건지도 모르겠는데 한동안 리뷰를 못뵌 것 같아서 안부인사 드립니다..

cyrus 2020-12-03 22:21   좋아요 2 | URL
이하라님이 못 본 게 아니에요. 5개월 동안 제가 알라딘 서재에 접속하지 않았어요. 무언가에 미친 듯이 하다가 갑자기 하는 걸 멈추는 사람이 있잖습니까? 제가 그런 사람입니다... ^^;;
 

 

 

다른 독자들은 안경환 교수의 , 셰익스피어를 입다에 높은 평점을 줬다. 그 독자들은 안 교수의 책에 만족했다. 그러나 나는 이 책이 별점 네 개, 다섯 개를 줄 정도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책에 대해서 만족스럽지 않은 점이 한두 개가 아니다. 예전에 안 교수가 쓴 책을 보면서 느꼈지만, 안 교수의 책에서 드러나는 문제점은 한결같다. 사실에 맞지 않는 사소한 오류, 오자, 그리고 상식적으로 이해하기 힘든 그의 생각들. 지금부터 언급할 인용문 역시 아무리 봐도 이해할 수 없다.

    

 

 

    

 

 

 

 

 

 

 

 

 

 

 

 

 

* [우주지감 '나를 관통하는 책읽기' 6월 도서] 안경환 , 셰익스피어를 입다(서울대학교출판문화원, 2012)

 

 

 미인은 얻기 힘들다. 갖고자 하는 사람은 많으나 줄 몸은 다 하나뿐, 지극히 경쟁률이 높을 수밖에 없다. 그래서 용기 있는 자만이 미인을 얻는다는 서양격언도 있다. 일단 얻는다고 해도 지키는 일 또한 만만치 않다. 뭇사람의 시샘과 견제를 각오해야만 한다. 조그마한 틈새만 있으면 누군가가 파고든다. 미인은 속성상 현처가 되기 쉽지 않다. 항상 자신의 미모를 의식하고 살기에 큰 권력과 재물의 유혹에 흔들리기 쉽다. 시쳇말로 미인과 별장은 웬만한 사람이 갖는 것이 아니다. 유지하기에 일반 관리비가 너무 비싸다. 그저 범인(凡人)은 먼발치에서 바라다보고 입맛이나 다시는 것으로 만족해야 한다(248~249, 필자가 문장을 강조하기 위해 밑줄을 표시했음)

 

 

미인은 현처가 되기 어렵다는 안 교수의 개인적인 생각과 미인과의 교제를 별장으로 비유한 말에 동의하는 독자가 있을까. 아마도 이 책을 읽으면서 내가 밑줄을 표시한 문장에 드러난 안 교수의 여성관이 문제가 있음을 인식하지 못한 독자들이 많을 것이다. 나는 그런 독자들을 비난하고 싶지 않다. 나도 그렇고 대부분 독자는 어떤 문장을 처음 읽었을 땐 그 문장이 뭐가 잘못되었는지 단번에 알아차리지 못한다.

 

실제로 현처가 되지 못한 미인을 만났거나 미인을 아내로 둔 남자들의 증언을 들어본 적이 있는 사람은 저자의 생각에 동의할 것이다. 그런데 얼마 되지 않은 사례만 가지고 미인은 현처가 될 수 없다고 단정할 수 없다. 저자는 미인을 항상 자신의 미모를 의식하며 권력과 재물의 유혹에 흔들리기 쉬운존재라고 주장한다. 저자의 말은 부정적인 면모를 지닌 미인은 현처가 될 자격이 없다는 의미로 해석될 수 있다. 가부장인 남편은 아내를 통제하려고 한다. 그래서 여성이 남편을 순종하는 아내, 즉 현처가 되려면 미모를 의식해선 안 되며 권력과 재물의 유혹을 피해야 한다. 결혼 제도와 가부장제는 개인으로서의 여성의 삶과 욕망을 제거하고, 가부장제에 편입된 그녀에게 아내’, ‘엄마’, ‘며느리역할을 부여한다. 따라서 현처가 되지 못하는 미인이 있다고 보는 안 교수의 생각은 가부장제 문화에 익숙한 남성의 구시대적인 여성관과 유사하다.

 

안 교수는 미인과의 교제를 별장 관리하는 일로 비유한 시쳇말을 당연하다는 듯이 언급한다. 미인을 만나고 사귀려면 비용이 많이 드는데, 그 비용이 마치 별장 관리비와 같다는 것이다. 이 시쳇말에는 미인에 대한 부정적인 시선이 반영되어 있다. 시쳇말을 의심 없이 믿는 사람(특히 여성을 고깝게 보는 남성)은 미인을 경제권이 있는 남성에게 의존하는 존재로 볼 것이고, 또 재물의 유혹을 이겨내지 못한 미인은 돈을 헤프게 쓴다고 생각할 것이다. 지금도 미녀는 돈 많은 남자를 선호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다. 이런 고정관념에 사로잡힌 남자들은 그런 여성을 만나지 못하는 자신의 처지에 불만이 생긴다. 개인적인 불만이 점점 쌓일수록 여성을 냉소적으로 보게 되는데, 모든 여성은 돈 많은 남자를 만난다고 생각한다. 남성들의 불만은 여성을 교제하지 못할 정도로 경제적으로 빈곤한 자신을 혐오하는 동시에 여성이라는 존재 자체를 혐오한다.

    

 

 

 

 

 

 

 

 

 

 

 

 

 

 

 

* [절판] 안경환 남자란 무엇인가(홍익출판사, 2016)

    

 

 

여성에 대한 안 교수의 편견은 한때 논란이 되었던 남자란 무엇인가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다음 문장은 남자의 독점욕이라는 소제목이 붙여진 글에 있다.

 

 

 남자는 물건에 시간과 돈을 투자하면서 특별한 애착을 보인다. 여자에게도 소중한 물건이 있지만, 몇 가지에 한정된다. 보석류, 명품 가방, 옷과 구두 등등 대체로 자신의 성적 매력을 돋보이게 해주는 물건들이다.

 

(28, 단행본의 쪽수가 아닌 밀리의 서재에 등록된 전자책의 쪽수이다. 문제가 많은 책이 밀리의 서재에 있다는 게 놀랍다)

 

 

안 교수가 생각하는 남자에 대해서 알고 싶은 남성 독자가 남자란 무엇인가를 읽는 건 자유다. 하지만 편견이 반영된 저자의 글에 동의하는 남성 독자들이 없길 바란다.

 

이 글을 쓰면서 나도 신중하게 생각하면서 글을 써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안 교수의 생각과 그의 글 쓰는 방식을 잘근잘근 씹기 위해서 이 글을 썼지만, 사실 이 글을 쓴 중요한 목적은 나 자신을 스스로 돌아보고, 경각심을 높이기 위한 것이다. 나도 안 교수처럼 타인에 대한 편견을 가지면서 살고 있으며 무의식적으로 편견을 글이나 말로 드러낼 수 있다. 어떤 말을 하거나 글을 쓸 때는 신중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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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7-04 16:35   URL
비밀 댓글입니다.

cyrus 2020-07-08 16:09   좋아요 1 | URL
예전에는 실수하거나 착각해서 잘못 언급한 내용이 있으면 몰래 수정해서 지웠어요. 그런데 그렇게 해보니까 똑같은 실수를 반복해요. 실수를 반복하지 않으려고 내가 글 쓰다가 무엇을 잘못했는지 공개하는 일종의 반성문(?)을 써요. 내가 잘못한 점을 다른 사람에게 공개하면 이런 부끄러운 실수를 다시 하지 않게 돼요. 반성문을 쓰면서 느껴지는 부끄러움과 성찰은 오래 기억에 남아요.

테레사 2020-07-06 12: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ㅋㅋㅋ 편견은 참 고질병인가 싶네요..자기 멋에 도취된 ...엘리트의 글쓰기 같기도 하고 말입니다.

cyrus 2020-07-08 16:10   좋아요 0 | URL
네, 맞아요. 저뿐만 아니라 이 책을 읽은 독서모임 참석자분들도 그렇게 느꼈어요. ^^

transient-guest 2020-08-17 01:3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어떤 한 분야에서 대가가 되었다고 해서 모든 분야에서 그런 건 아니지만 종종 그렇게 여러 방면으로 뻗어나가면서 그리 되는 것 같습니다.

자강 2020-08-18 19: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남자란 무엇인가를 읽고선 당황했던 기억이 납니다. 책 제목인 남자란 무엇인가에 대한 내용보단 이것 저것 잡다한 내용들이 모여있어서 저자가 대체 무슨 말을 하려는지 모를 지경이더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