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SAC 아트 페스티벌대구 달서아트센터에서 열리는 지역민을 위한 예술 축제다. 이 축제에 총 6회의 공연 및 연주회가 편성되어 있다. 그중 다섯 번째로 순서로 진행되는 행사가 달서 청년연극제







826일부터 3주간 매주 토요일 오후 3, 7시에 청년 연극인들의 공연을 볼 수 있다. 내가 보려는 공연은 내일 선보이는 극단 폼(form)의 보이첵(Woyzeck, 보이체크).































* 게오르크 뷔히너, 임호일 옮김 보이체크 / 레옹스와 레나(지만지, 2019)

 

* 게오르크 뷔히너 원작, 타데우시 브라데츠키 연출 보이체크: 연습과 과정의 기록(올댓콘텐츠, 2011)

 

* [절판] 게오르크 뷔히너, 최병준 옮김 보이체크(예니, 2005)

 

* 게오르크 뷔히너, 박종대 옮김 뷔히너 전집(열린책들, 2020)

 

* 임호일 게오르크 뷔히너의 문학과 삶(지만지, 2021)




보이체크는 독일의 극작가 게오르크 뷔히너(Georg Büchner, 1813~1837)의 미완성 유작이다. 뷔히너는 보이체크를 포함한 희곡 세 편(당통의 죽음》과 레옹스와 레나), 단편소설 한 편(렌츠)만 남긴 채 23세로 요절했다. 걸출한 소설가와 시인들이 남긴 불멸의 고전들로 채워진 독일 문학사에 극작가 뷔히너가 있어야 할 자리는 좁아 보인다. 소설과 시는 책 좋아하는 독자들이 문학의 범주를 논할 때 가장 먼저 나오는 친숙한 장르다. 문학의 한 장르인 희곡과도 친해지면 고전으로 불릴 만한 극 작품을 접할 수 있으며 위대한 극작가를 만나게 된다. 보이체크는 지금까지도 여러 차례 공연된 고전 희곡이다. 뷔히너는 독일 문학사에 반드시 포함되어야 할 극작가다.


뷔히너는 낭만주의 문학의 중심지인 독일에서 태어났다. 낭만주의는 계몽주의 사상가들이 강조한 이성과 합리주의에 반발하여 생긴 사조이다. 그래서 낭만주의 문학은 감정과 상상력을 중시한다. 낭만주의자들이 현실 너머세계로 시선을 향하고 있을 때 뷔히너는 현실 그 자체’만 바라보고 있었다. 뷔히너는 유복한 유산계급인 의사의 아들로 태어나 대학에서 의학을 공부했다. 하지만 뷔히너는 안락한 삶을 살아가기를 거부했다. 그는 하층민을 억압하는 사회에 비판 의식을 가졌고, 정부와 지배 계급을 비판하는 팸플릿을 만들어 농민들에게 배포하기도 했다.


















* 장 코르미에 체 게바라 평전(실천문학사, 2005)

* [절판] 체 게바라 체 게바라의 모터사이클 다이어리(황매, 2012)



 

혁명가 기질을 드러낸 청년 뷔히너의 모습은 남미의 혁명가 체 게바라(Che Guevara)의 젊은 시절과 비슷하다. 체의 아버지는 병원 원장이었고 체는 의대를 졸업했다. 체는 오토바이를 타고 남미 대륙을 여행하면서 비참하게 살아가는 빈민들을 만난다. 오토바이 여행 이후로 체는 의사 가운을 벗어 던지고, 군복을 입어 혁명에 뛰어든다.


보이체크하층민이 주인공으로 나오는 희곡이다. 보이체크는 희곡의 주인공 이름이며 실존 인물이다. 보이체크는 자신과 교제한 과부를 죽여 처형당한 인물이다. 여기까지만 보면 살인을 저지른 범죄자다. 당시 의사들은 보이체크의 정신 상태를 관찰했는데, 그들이 남긴 보고서에 따르면 보이체크를 정신 이상자로 판단했다. 뷔히너는 이 보고서를 참고하면서 희곡을 썼다. 하지만 보이체크의 범행을 단순히 성격 결함에서 비롯된 끔찍한 일탈로만 보지 않는다. 뷔히너가 묘사한 보이체크는 인간으로 제대로 대우받지 못한 하층민을 상징한다


보이체크는 대위의 이발사로 일하지만, 궁핍한 일상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대위는 자신보다 계급이 낮은 비천한 보이체크를 깔본다. 보이체크의 연인 마리는 경제적으로 불안정한 일상에 권태감을 느끼고, 군악대장(‘고수장으로 번역되기도 한다)과 바람피운다. 보이체크는 돈을 더 벌려고 아르바이트까지 하게 된다. 그 일은 바로 의사의 황당한 실험 대상이 되는 것. 의사는 사람이 완두콩만 먹으면 당나귀로 변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의사는 자신의 생각을 증명하기 위해 보이체크에게 완두콩만 먹인다. 보이체크는 완두콩을 먹은 대가로 매일 2그로셴을 받는다


하층민을 차별하고 억압하는 사회 구조에서 인간과 비인간을 나누는 기준은 계급이다. 보이체크는 불평등한 사회 안에서 아이러니한 비극을 겪는 인물이다. 보이체크는 자신을 가난하고 쓸모없는 비인간으로 취급하는 현실을 견디지 못한다. 그의 분노는 마리에게만 향해 있다. 결국 살인을 저지르면서 분노를 표출한다. 보이체크는 살인자가 됨으로써 인간이길 스스로 거부한다.


보이체크는 일반적인 희곡과 확연히 다르다. 보이체크는 순차적으로 진행되는 기승전결의 서사 구조로 되어 있지 않다. 완성되지 않은 초고 형태라서 제목이 없는 27장으로 이루어져 있다. 연출 지시문도 많지 않다. 보이체크》에 27개의 글 파편과 뷔히너의 여백만 남아 있다. 연출가와 각색자는 새로운 대사를 추가해 뷔히너의 여백을 채울 수 있다. 배우는 뷔히너가 종이 위에 만들다 만 인물들을 무대 위에 올려 자신만의 연기력으로 빚어서 만들 수 있다. 그렇기에 극단 폼이 보이첵을 어떻게 보여줄지 기대된다.




댓글(2) 먼댓글(0) 좋아요(25)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stella.K 2023-09-01 20: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와우, 좋겠다. 난 언제 연극을 봤는지 기억도 나지 않는다.ㅠ
부럽다. 좋은 시간되길...^^


cyrus 2023-09-04 20:10   좋아요 1 | URL
토요일에 갑자기 일이 생겨서 공연 못 봤어요... 정말 그날 생각하면 너무 아쉽고 화가 나네요.. ㅎㅎㅎㅎ
 
화가들의 마스터피스 - 유명한 그림 뒤 숨겨진 이야기
데브라 N. 맨커프 지음, 조아라 옮김 / 마로니에북스 / 2023년 8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책을 협찬받고 쓴 서평이 아닙니다.



평점


4점  ★★★★  A-








Cry baby, cry baby, cry baby.

Honey, welcome back home.


[중략]

 

Honey, your heartache, too?

And if you need me, you know

That I’ll always be around if you ever want me.

 

 

- 재니스 조플린(Janis Joplin) Cry Baby(1971) 노랫말 -





명화는 걸작의 동의어다. 매우 훌륭한 예술 작품(傑作)은 사람들의 칭송을 받아서 유명해진 것(名畫)이다명화와 걸작의 정의는 모든 사람이 동의할 수 있을 정도로 단순하다. 하지만 명화와 걸작으로 불릴 만한 자격 및 조건은 천차만별로 다르다. 생각보다 복잡하다.


명화와 걸작에 피어나는 영롱한 빛은 세월이 지나도 사그라지지 않는다. 하느님께서 빛이 생겨라!’ 하시자 빛이 생겨났다.” 성경 첫 장면에 따르면 하느님은 하늘과 땅을 창조한 뒤에 빛을 만들었다. 빛나는 명화의 창조주는 예술가다. 그러나 명화는 예술가가 빛이(명화가) 생겨라!’라고 말해서 한순간에 나온 것이 아니다천재소리를 듣는다고 해도 예술가는 명화를 뚝딱 만들지 않는다. 예술가는 그림이 본인이 보기에[주1]좋았다고 생각할 때까지 붓을 잡고 휘두르는 사람이다. 명화 나와라 뚝딱!”하고 주문을 외치면서 도깨비방망이를 휘두르지 않는다.


엄마 품속에 먹고 자란 아기는 거대한 세상에 나오자마자 우렁차게 운다. 이와 마찬가지로 감정과 생각을 표현하는 예술가의 머리에서 태어나 완성된 예술 작품은 말이 없다. 예술 작품이 완성되자마자 응애, 저 명화예요라고 말하지 않는다보부아르(Simone de Beauvoir)가 남긴 명언을 빌리자면 명화는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 만들어지는 것이다. 캔버스에서 태어나는 것은 대중의 반응과 평가를 기다리는 예술 작품이다. 부모의 마음을 지닌 예술가는 갓 태어난 예술 작품을 귀한 걸작으로 생각한다. 예술가는 당연히 갓난 예술 작품이 누구에게나 사랑받는 멋진 명화로 성장하길 원한다. 하지만 갓난 예술 작품을 바라보는 대중의 말이 부드럽고 달콤한 모유 같은 칭찬이 아닌 뾰족한 꼬챙이처럼 생겼다면? 대중의 쌀쌀한 말은 갓난 예술 작품의 연약한 귀를 따갑게 만드는 소음이 된다. 뾰족한 소음이 무서운 갓난 예술 작품은 기분이 좋지 않아서 응앙응앙 울을 것[2]이다. 대중은 예쁘고 귀엽고 빛나는 걸작을 좋아한다. 그들의 눈에는 울기만 하는 예술 작품이 귀엽지 않은 실패작으로 보인다.


대중의 관심에서 멀리 떨어진 갓난 예술 작품에도 한 줄기 빛이 있다. 그 빛은 아주 얇아서 희미하다. 대중의 눈에 들리지 않을 정도로 조용하게 퍼진다그 모습이 화려하지 않지만, 대중들에게 인정받는 날이 언젠가는 찾아온다. 평범한 예술 작품은 그렇게 어엿한 명화가 되고, 무색에 가까운 빛은 알록달록 아름다워진다.


화가들의 마스터피스: 유명한 그림 뒤 숨겨진 이야기는 명화의 화려한 빛에 가려진 긴 어둠을 들려준다. 긴 어둠책의 부제인 유명한 그림 뒤 숨겨진 이야기, 갓난 예술 작품이 갓생사는 명화가 되기까지 앓아야 했던 성장통이다







보티첼리(Sandro Botticelli)비너스의 탄생』(1485년경)은 바다에 일은 거품에서 태어난 사랑의 신 비너스[Venus, 그리스 신화 속 이름은 아프로디테(Aphrodite)’]의 몸을 우아하게 표현한 작품이다. 거대한 조개 위에 서 있는 비너스의 자세는 너무나도 유명하다이 작품 속에 모든 남자가 홀딱 반하게 만드는 사랑의 신이 한가운데에 우뚝 서있는데도 처음에는 대중에게 많은 사랑을 받지 못했다. 1815년 우피치 미술관에서 공개된 이후부터 그림 속 비너스의 빛이 점점 커지기 시작한다. 아름다운 것만 보면 미쳐버린 남성 시인과 소설가들은 미술관에서 폭발한 비너스의 빛에 압도당한다. 그들이 여러 번 비너스를 언급하고 칭송함으로써 긴 어둠을 먹고 자란 보티첼리의 그림은 빛나는 명화로 만들어지게 된다.


레오나르도 다빈치(Leonardo da Vinci)모나리자』(1503년경)도 처음에는 여인을 그린 평범한 초상화였다. 희미한 미소의 의미도 수수께끼고, 미소 짓는 여인의 정체도 수수께끼인 모나리자는 어떻게 루브르의 A급 명화가 되었을까. 우리는 모나리자의 우아함과 다빈치 특유의 천재성 덕분에 명화가 빛을 발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모나리자의 빛을 유명하게 만든 사람은 다빈치와 그의 주변 사람들도 아니요, 건물 전체가 걸작이라고 할 수 있는 루브르도 아니다. 모나리자를 명화로 키워준 사람은 다름 아닌 여행 안내자들이다. 자본주의가 도시에 스며들던 19세기 이후부터 중산층은 충분히 먹고살 수 있을 정도로 부유해졌다. 돈 많은 귀족만 드나들던 미술관에 중산층의 발길이 잦아졌다. 관광업도 발전하면서 파리의 여행 안내자들은 관광객들에게 파리의 명소들을 소개했다. 그 명소 중 하나가 모나리자가 사는 집, 루브르다. 과장이 살짝 더해진 여행 안내자들의 입소문, 여기에 모나리자의 미소에 피어나는 수수께끼의 빛을 직접 느낀 관광객들의 입소문이 더해져서 모나리자는 가까이서 보기 힘든 특A급 명화가 되었다


저자는 모나리자의 예를 들면서 명화의 조건이 단순하지 않음을 강조한다. 앞서 말한대로 명화의 조건은 생각보다 복잡하다무조건 잘 만들고, 아름답다는 이유만으로 명화가 되지 않는다여기서 명화의 여러 가지 조건을 나열하지 않겠다. 다만 분명한 사실은 예술가의 인생은 짧고, 예술가의 작품이 진정한 예술로 인정받는 시간은 길다그 시간 속에 예술 작품은 까다로운 대중의 시선과 날이 서린 폭력적인 언어를 묵묵히 귀 기울여 들었다. 성장통은 너무 아팠지만 참고 견뎠다. 쓰디쓴 인내의 시간이 지나고 나서야 예술 작품의 빛은 무관심과 혹평으로 만들어진 두꺼운 어둠을 뚫어냈다. 한 송이 명화로 피우기 위해 작품은 먹구름 같은 어둠 속에서 그렇게 울었나 보다[3]. 우리는 명화라는 이름으로 남은 멋진 어른을 바라보고 있다. 한때 어두운 아기였던 그림의 서러운 이야기를 들어야 한다[4].






<cyrus의 주석>



[1] 하느님께서 빛이 생겨라!” 하시자 빛이 생겨났다.

그 빛이 하느님 보시기에 좋았다. 하느님께서는 빛과 어둠을 나누시고


(공동 번역 성서창세기, 1:3~4)




[2] 백석의 시 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마지막 행.

 

눈은 푹푹 나리고

아름다운 나타샤는 나를 사랑하고

어데서 흰 당나귀도 오늘 밤이 좋아서 응앙응앙 울을 것이다.




[3] 서정주의 시 국화 옆에서2

 

한 송이의 국화꽃을 피우기 위해

천둥은 먹구름 속에서

또 그렇게 울었나 보다.




[4] 박인환의 시 목마와 숙녀중에서

 

모든 것이 떠나든 죽든

그저 가슴에 남은 희미한 의식을 붙잡고

우리는 버지니아 울프의 서러운 이야기를 들어야 한다.




* 21


 1855~1856년 이탈리아 여행에서 에드몽 드 공쿠르(Edmond de Goncourt)와 그의 형제 (Jules de Goncourt)[5]은 마치 조각상 같은 금발의 비너스가 발푸르기스의 밤을 주관하는 파우스트 전설 속 환영 같다며 칭송했다.



[5] 에드몽이 형, 쥘이 동생이다. 따라서 그의 동생이라고 써야 한다.





* 31


 수년간 초상화의 모델과 그녀의 묘한 미소를 둘러싼 자극적인 이야기들이 생산되었다. 소문인즉 모델은 레오나르도의 정부였고, 비밀을 가진 여인이자 좋은 새어머니였다는 것이다.[주6]



[6] 모나리자모델이 다 빈치의 새어머니’라는 소문의 진원지는 정신분석학자 프로이트(Sigmund Freud). 프로이트는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유년의 기억>이라는 글에서 다빈치의 유년 시절을 정신분석학적 방식으로 분석했다











프로이트가 분석한 다빈치의 작품은 <성 안나, 성모 마리아와 아기 예수>(1519년경). 성 안나(그림 가운데)는 마리아의 어머니다. 그림에서 아기 예수를 안으려는 여성이 마리아. 프로이트는 성 안나의 얼굴이 마리아보다 젊게 그려진 것에 주목한다. 프로이트의 견해를 바탕으로 다빈치의 그림을 해석하면, 아기 예수는 젊은 두 어머니와 같이 있. 프로이트는 두 어머니로 해석할 수 있는 성 안나와 마리아가 각각 어린 다빈치를 키운 친모와 새어머니를 상징한다고 주장한다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유년의 기억>프로이트 전집의 열네 번째 책 예술, 문학, 정신분석(열린책들, 2020년)에 수록되어 있다. 성 안나의 미소는 모나리자 미소와 유사하다. 그런 이유 때문인지 다빈치의 새어머니가 모나리자의 모델이라는 견해가 나온 듯하다.






* 34


(월터 페이터의) 르네상스 역사 연구』 [7]



[7] 본서 25에 언급된 월터 페이터(Walter Pater)의 저서 제목은 르네상스 역사에 관한 연구. <르네상스 역사에 관한 연구>34쪽의 <르네상스 역사 연구>는 내용이 같은 책이다. 페이터의 저서는 르네상스라는 제목으로 번역되었는데, 번역본은 총 3종이다. 문예출판사(이덕형 옮김, 1982), 종로서적(김병익 옮김, 1988), 학고재(이시영 옮김, 2001)에서 출간되었지만, 모두 절판되었다.






* 152

 

 피카소는 고야가 1810년에서 1812[8] 사이에 만든 82점의 에칭에 감탄했다.

 


[8] 스페인의 화가 프란시스코 고야(Francisco de Goya)의 판화집 <전쟁의 참화> 관련 도판 설명문 중 일부다. <전쟁의 참화>1810년에서 1820년 사이에 만들어졌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7)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사람 없는 곳자연은 황폐하다.

 

윌리엄 블레이크천국과 지옥의 결혼』 지옥의 잠언’ 중에서, 서강목 옮김 -





The Haunter of the Dark러브크래프트(H.P. Lovecraft)가 죽기 한 달 전에 완성된 마지막 작품이다. 소설은 의문의 죽음을 맞이한 주인공이 쓴 일기 내용을 토대로 전개된다. 주인공은 프로비던스(Providence)에 거주하는 공포소설 작가 로버트 해리슨 블레이크(Robert Harrison Blake). 그는 아무도 살지 않은 음산한 교회에 호기심을 느낀다. 교회 건물에 들어간 블레이크는 지하실을 조사하다가 상자를 발견한다. 그가 열어본 상자 속에 빛나는 트라페조헤드론(Shining Trapezohedron)’[주1]이라는 정체불명의 물체가 있다. 블레이크의 일기에 그 물체와 관련된 구절이 있다. 상자 속 물건을 응시함으로써 어둠 속의 손님(The Haunter of the Dark)을 깨워 버렸다.”[주2] 블레이크는 상자를 열어본 일이 분명 잘못됐음을 인지했다. 하지만 이미 늦었다.

















[대구 장르문학 전문 책방 <환상문학> 여름 호러 독서 모임 선정 도서] 

하워드 필립스 러브크래프트, 김지현(아밀) 옮김 하워드 필립스 러브크래프트크툴루의 부름 외 12》 (현대문학, 2014)

 

하워드 필립스 러브크래프트정진영(정탄) 옮김 러브크래프트 전집 1》 (황금가지, 2009)




로버트 H. 블레이크는 러브크래프트와 편지 교류를 할 정도로 친분 있는 작가 로버트 블록(Robert Bloch, 로버트 블로흐)을 모티프로 한 인물이다. 로버트 블록은 별에서 찾아온 자(The Shambler from the Stars, 1935)라는 단편소설에서 선배 작가 러브크래프트를 모티프로 한 인물을 등장시켰다주인공은 무명 작가로, 뉴잉글랜드 출신의 신비주의적 몽상가(mystic dreamer)’로 묘사된다. 러브크래프트는 뉴잉글랜드 출신이며 생전에 무명 작가였다. 러브크래프트는 블록을 위한 후속작 The Haunter of the Dark를 썼다. 러브크래프트는 로버트 블레이크를 잔인하게 죽임으로써 (소설에서) 자신을 죽인 후배 작가를 향한 존경심을 드러냈다그래서 러브크래프트 전집 1에 수록된 The Haunter of the Dark제목은 러브크래프트의 의도가 반영된 누가 블레이크를 죽였는가문단으로부터 러브크래프트 문학의 계승자로 인정받은 블록은 1950년에 또 다른 후속작 The Shadow from the Steeple(첨탑의 그림자)를 발표했다.


로버트 블레이크가 로버트 블록과 연관된 가공인물이라는 사실은 크툴루 신화(Cthulhu Mythos)’에 열광하는 독자들은 알고 있다. 하지만 그들 대부분은 블레이크가 화가라는 사실을 크게 중요하게 여기지 않거나 혹은 아예 모르는 듯하다. 소설에 분명히 로버트 블레이크는 신화, , 공포, 미신에 전념했던 작가이자 화가(For after all, the victim was a writer and painter wholly devoted to the field of myth, dream, terror, and superstition)로 언급된다꿈과 신화에 매료되어 상상하기를 좋아한다는 점. ‘비현실적인 세계를 소설과 그림으로 묘사하기를 열정적으로 추구했지만, 결국 환영에 시달리다가 미쳐버린 점. 이러한 로버트 블레이크의 기이한 삶과 별난 성격은 영국의 시인이자 화가인 윌리엄 블레이크(William Blake)를 떠올리게 한다.
















* 윌리엄 블레이크, 서강목 옮김 블레이크 시선(지만지, 2012)

* [절판] 윌리엄 블레이크, 김종철 옮김 천국과 지옥의 결혼(민음사, 1990)

 




윌리엄 블레이크와 러브크래프트를 이어주는 공통점이 많다. 시를 썼다. ‘미치광이소리를 들을 정도로 괴팍한 성격의 소유자였다. 두 사람의 작품들은 동시대인들에게 비웃음을 샀거나 무시당했지만, 죽은 이후에 재평가받았다



































* 아당 비로, 카린 두플리츠키 미술관에 가지 전에: 리 보는 미술사, 르네상스에서 아르누보까지(미술문화, 2022)

 

* 노승림 예술의 사생활: 비참과 우아(마티, 2017)


* 나카노 교코, 이연식 옮김 무서운 그림 2: 매혹과 반전의 명화 읽기(세미콜론, 2009)

 

* 데이비드 블레이니, 강주헌 옮김 낭만주의(한길아트, 2004)




윌리엄 블레이크는 어린 시절부터 천사를 실제로 봤다고 말했을 정도로 영적 능력을 갖추고 있었다. 그가 쓴 글과 제작한 판화의 공통 주제는 꿈과 신화다. 자신의 영적 체험과 상상력을 바탕으로 비현실적인 현상과 세계를 묘사했다. 블레이크의 그림에 원근법은 없으며 인물 형태도 단순하다. 그림 분위기가 전체적으로 어둡고, 기괴하고, 우울한 편이다.


















* [절판] 하워드 필립스 러브크래프트 공포 문학의 매혹(북스피어, 2012)




내성적인 성격의 러브크래프트는 어렸을 때부터 집에서만 지냈다. 집과 그곳에 있는 책들은 러브크래프트에게는 지상 낙원이었다. 러브크래프트는 왕성한 독서를 통해 집 밖 세상을 이해했고, 이를 토대로 자신만의 시선이 반영된 소설을 썼다. 러브크래프트는 특이하고 난해한 윌리엄 블레이크의 글과 그림은 분명히 알고 있다. 그가 쓴 공포 문학의 매혹은 러브크래프트 본인의 독서 편력으로 구축된 공포 문학 개론서. 이 책에 러브크래프트가 생각하는 공포 문학의 정의와 공포 문학 작가들의 계보를 확인할 수 있다. 이 책에서 러브크래프트는 윌리엄 블레이크의 혼돈에 빠진 환영이 영국식 기괴한 이야기의 전형 중 하나라고 언급한다. 환영은 러브크래프트가 소설 속 인물을 설정할 때 자주 쓰는 개념이다. The Haunter of the Dark의 로버트 블레이크처럼 다른 러브크래프트의 소설 속 주인공들도 처음에 불가사의한 현상과 물체에 호기심을 느낀다. 하지만 위험한 호기심은 그들을 혼돈에 빠뜨려 파멸로 이르게 한다. 계속되는 환영에 혼란스러워하다가 끝내 정신 착란 증세를 보인다.






윌리엄 블레이크

벼룩 유령

1819~1820년경




생전에 혹독한 평가를 받은 윌리엄 블레이크는 낭만주의 문학과 낭만주의 미술 발달에 지대한 영향을 끼친 시인 겸 화가로 평가받는다. 블레이크의 시선은 눈앞에 있는 현실로 향해 있지 않았다. 그가 보고 싶은 것은 일상 너머 상상, 즉 상상력에 의해 만들어진 환상적이면서도 비현실적인 세계다






























* 단테 알리기에리, 윌리엄 블레이크 그림 신곡(민음사, 2007)

* 존 밀턴, 윌리엄 블레이크 · 귀스타브 도레 그림 실낙원(CH북스, 2019)




몽상가 블레이크는 단테(Dante Alighieri)신곡과 존 밀턴(John Milton)실낙원에 매료되었다. 블레이크는 신곡실낙원삽화 제작 작업을 착수하지만, 신곡삽화만은 완성하지 못했다. 블레이크의 삽화는 글자로 된 텍스트와 과장된 상상력이 절묘하게 결합한 작품이다. 블레이크는 삽화를 통해 자신만의 지옥, 연옥, 천국, 에덴동산을 새로 만들었다.

 

러브크래프트의 묘비명은 I’m Providence(나는 프로비던스)”. 외로운 몽상가가 죽을 때까지 품에 안은 프로비던스는 원래 을 뜻한다. 러브크래프트는 크툴루 신화의 모태를 만든 신이라면 윌리엄 블레이크는 천국과 지옥을 다시 만든 상상력의 신이다.






[1] 빛나는 트레피저헤드론(정진영 옮김, 황금가지). 우리말로 번역된 명칭은 빛나는 부등변다면체.

 

[2] 김지현 옮김, 어둠 속의 손님중에서, 하워드 필립스 러브크래프트: 크틀루의 부름 외 12(현대문학, 2014), 345.

 




댓글(4) 먼댓글(0) 좋아요(27)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stella.K 2023-08-15 16:4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ㅎㅎ 영화는 봤나?

cyrus 2023-08-21 20:43   좋아요 1 | URL
안 봤어요. 제목만 알아요.. ㅋㅋㅋㅋ

stella.K 2023-08-21 20:47   좋아요 0 | URL
내 그럴 줄 알았지.ㅎㅎ
꼭 봐라. 명작이다.

cyrus 2023-08-21 20:48   좋아요 1 | URL
드디어 저도 넷플 계정이 생겼어요. 그 영화 있으면 볼께요. 오랜만에 영화 리뷰를 써볼까 생각 중이에요 ㅎㅎㅎ
 
사이언스 원더랜드 -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를 과학으로 읽다
안세실 다가에프.아가타 리에뱅바쟁 지음, 김자연 옮김 / 애플북스 / 2023년 8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평점


4.5점  ★★★★☆  A





루이스 캐럴(Lewis Carrol)의 소설 앨리스 시리즈(이상한 나라의 앨리스거울 나라의 앨리스)’에 나오는 동물들은 독특하다. 그들은 잠깐 스쳐 지나가는 조연이다. 그래도 이상한 나라(Wonderland)’에 사는 존재답게 동물들의 외형과 행동이 범상치 않다. 양복 주머니 속에 있는 시계를 꺼내어 시간을 확인하고, 굴이 있는 쪽으로 급하게 달려가는 토끼는 앨리스가 처음으로 만난 이상한 동물이다. 이빨을 드러내면서 웃는 체셔 고양이(Cheshire cat)는 신출귀몰의 재주를 지녔다. 몸통만 사라지게 해서 미소 짓는 얼굴만 남게 할 수 있다. 동물들이 앨리스와 주고받으면서 나온 말장난 같은 대사는 독자들의 뇌리에 !’ 박힌 명대사가 되었다. 버섯 위에 앉아서 느긋하게 물담배를 피우는 애벌레는 자신을 멀뚱히 쳐다보는 앨리스에게 질문을 던진다. 너는 누구냐?”

 

사이언스 원더랜드동물학자의 주석이 달린 <앨리스>’. 이 책의 저자는 두 명의 프랑스 출신 동물학자다. 두 사람은 앨리스 시리즈를 동물학, 생물학, 생태학으로 독해한다. 수학자 마틴 가드너(Martin Gardner)가 써서 유명해진 주석 달린 앨리스와 같다고 해서 지레 겁먹지 않아도 된다. 사이언스 원더랜드주석 달린 앨리스처럼 어마어마한 개수의 주석이 본문에 주렁주렁 달린 벽돌 책이 아니다. 사이언스 원더랜드는 독자들을 배려할 줄 아는 친절한 책이다. 마틴 가드너의 책을 참고했지만, 지나치게 의존하지 않았다. 저자가 직접적으로 언급한 마틴 가드너의 주석은 단 한 개뿐이다. 사이언스 원더랜드에 달린 주석은 독자가 생소하게 여길 수 있는 생물학 관련 용어의 의미를 알려주는 역할을 한다.

 

애벌레는 입이 없다. 따라서 입으로 숨 쉬지 않는다. 그런데 이상한 나라의 애벌레는 입으로 물담배를 피운다! 공동 저자는 사소한 옥에 티를 그냥 지나치지 않는다. 원래 직업이 과학자인 공동 저자는 앨리스 시리즈에 등장한 동물들을 회의적인 시선으로 바라보면서 분석한다. 고양이의 미소는 이상한 나라에서만 가능한 신체적 현상이 아니다. 고양이도 인간처럼 입술을 움직이고 웃는 표정을 지을 수 있다. 하지만 고양이 미소를 제대로 보기 힘들다. 고양이의 입술 가장자리는 털로 뒤덮여 있다. 고양이의 미묘한 미소는 고양이 집사의 눈에 잘 보이지 않는다. 인간의 손과 팔이 달린 도도(Dodo) 는 물에 젖은 동물들을 위해 달리기 경기와 유사한 코커스 경주(Caucus Race)’를 제안한다. 도도 새는 코커스 경주에 참여하면 몸을 금방 마를 수 있다고 장담한다. 하지만 몇몇 동물은 달리지 않아도 된다. 가마우지는 물에 젖은 날개를 활짝 펴서 햇볕을 쬔다.

 

현실에 나올 법한 동물이 아닌 환상 동물또한 이 책을 쓴 저자들의 분석 대상이다. 거울 나라의 앨리스에서 나오는 난해한 시 <재버워키>(Jabberwocky)에 수수께끼 같은 동물들의 이름이 언급된다. 저자들은 <재버워키>의 이상한 동물들이 아무런 의미가 없는 공허한 존재로 여기지 않는다. 이상한 동물들도 알고 보면 현실 속 동물과 어느 정도 비슷하게 생겼다.

 

생태학은 인간과 동물, 인간과 자연이 서로 영향을 주고받는 관계를 연구하는 학문이다. 요즘 생태학에서 가장 많이 강조하는 용어가 생물 다양성이다. 지구의 모든 생물은 서로 연결되어 있다. 만약에 어떤 생물 종이 멸종되면, 그들과 협력하면서 지내온 다른 생물 종도 절멸 위기에 처한다.가짜 거북이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에 등장하는 동물 중에서 많이 알려지지 않은 존재다. 기괴한 모습의 가짜 거북이는 실제로 영국 빅토리아 시대에 유행했던 거북이 수프와 관련이 있다. 거북이 수프가 상류층 사이에서 인기 음식으로 알려지면서 수많은 거북이가 인간의 손에 희생당했다. 거북이 수프가 중산층들에게도 알려지자, 식용 거북이의 개체 수가 줄어들었다. 요리사들은 거북이 대신에 송아지 머리를 통째로 넣은 일명 가짜 거북이 수프를 선보였다. 지금은 거북이 수프를 즐겨 먹는 사람이 없다. 하지만 환경 오염과 무분별한 개발로 인해 거북의 서식지가 줄어들게 되면서 멸종 위기에 처한 거북 종이 점점 늘어나고 있다. 순진하기 짝이 없는 어린 굴들을 속여서 잡아먹은 바다코끼리는 소설 속에서 가장 잔인한 동물이다. 하지만 현실 속 바다코끼리는 북극곰과 같은 처지에 있다. 지구온난화로 바닷물 온도는 계속 높아지면 빙하가 녹는다. 빙하는 바다코끼리의 서식지다. 빙하가 많이 사라지면 바다코끼리가 다른 빙하로 이주하는 거리가 늘어난다. 그렇게 되면 바다코끼리는 먹이를 구하지 못한다. 그리고 이주를 포기하고 먹이가 전혀 없는 빙하에 계속 머무는 문제가 생긴다.

 

인간이 이상해지면 지구도 이상해진다. 유럽의 여름은 예전보다 더 뜨겁다. 따뜻해진 바닷물은 지난주에 한반도를 지나간 태풍의 영향력을 높여줬다. ‘이상 기후라는 단어의 의미가 무색해진 현실이다. 간간이 일어났던 이상 기후 현상은 우리 주변에 흔히 일어나는 일상 기후가 되어 버렸다. 이상해진 지구는 우리가 자초한 일이다. 그런데도 심각성을 크게 느끼지 않는 사람들이 여전히 많다. 그들은 태평하게도 이것 또한 지나가리라라고 믿는다. 심지어 지구온난화 자체를 부정하는 사람들도 있다. Oh my, curiouser and curiouser!(더더 이상해져, 더더 이상해진다고!) [주1]





[주1] “curiouser and curiouser!”


케이크를 먹고 몸집이 거대해진 앨리스가 한 말이다.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2장(Pool of Tears)의 첫 문장이다. 번역문 출처는 이소연이 옮긴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펭귄클래식코리아, 2010) 120이다.

 





<cyrus의 주석>



* 74


 1958년에 그림을 그린 머빈 피크[주2]는 새의 형태로 밴더스내치를 표현했는데, 이 새는 팀 버튼의 접접새와 상당히 닮았다.



[2] 열린책들 출판사에서 나온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최용준 옮김, 2009년)는 머빈 피크(Mervyn Peake)의 삽화가 실린 번역본이다. 밴더스내치(Bandersnatch)’는 캐럴의 시 <재버워키>에 나오는 괴물이다. 머빈 피크는 <재버워커>가 언급된 거울 나라의 앨리스삽화도 제작했는데, 열린책들 번역본에 수록되어 있다(169쪽 삽화 참조).





* 172


 찰스 다윈1859년에 발표한 종의 기원에서 설명한 것처럼, 작가 역시 공통된 조상을 가진 인간과 다른 종의 동물 사이의 연속성에 영감을 받았던 것일까? 단정하기 어렵다. [주3]



[3] 코커스 경주에 참여한 동물 중 원숭이가 있다. 캐럴은 땅속 나라의 앨리스(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원본)에 직접 원숭이를 그려 넣었다. 본문에 언급되지 않은 원숭이의 등장은 다윈(Charles Robert Darwin)의 진화론을 둘러싼 대중의 반응을 반영했다는 것이 앨리스 연구자들의 일치된 의견이다. 캐럴이 진화론을 믿지 않다는 견해가 지배적이지만, 마틴 가드너는 확신할 수 없다고 주장한다. 캐럴은 다윈의 든든한 지지자인 생물학자 토머스 헉슬리(Thomas Huxley)의 제자가 쓴 종의 기원을 읽었다. 그는 일기에 그 책을 무엇보다 흥미롭고 만족스러운 책이라고 평했다. 캐럴은 자연선택만으로 세상의 기원을 설명할 수 없으며 하느님의 창조력과 양립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참고문헌: 마틴 가드너, 승영조 옮김, ALICE IN WONDERLAND: 앨리스출간 150주년 기념 디럭스 에디션》, 꽃피는책, 2023년, 111~112),





댓글(2) 먼댓글(0) 좋아요(26)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바람돌이 2023-08-14 08: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신간소개에서 이 책 보면서 재밌는 기획이네 하고 지나쳤는데 내용도 좋아보이네요. 좋은 책 담아갑니다. ^^

cyrus 2023-08-15 15:18   좋아요 1 | URL
책 내용이 어렵지 않아서 청소년에게 권장할 만한 과학책이에요. ^^
 




고대 그리스 비극과 관련해서 가장 유명하고, 지금까지도 다양하게 해석되고 있는 여성이 헬레네(Helen), 안티고네(Antigone), 메데이아(Media) 등이다. 국내에서의 인지도가 다소 낮지만, 사실 이피게네이아(Iphigeneia)도 앞의 세 사람 못지않게 우여곡절을 겪은 비극적인 인물이다.































[대구 책방 <일글책> 시카고플랜 고전 읽기 모임 선정 도서] 

에우리피데스, 천병희 옮김 에우리피데스 비극 전집 1, 2(도서출판 숲, 2021)

1권 『메데이아수록, 2권 『헬레『타우리케의 이피게네이아 수록

 

[대구 책방 <일글책> 시카고플랜 고전 읽기 모임 선정 도서] 

소포클레스천병희 옮김 소포클레스 비극 전집》 (도서출판 숲, 2008)

안티고네』 수록


* 소포클레스, 김기영 옮김 오이디푸스 왕 외(을유문화사, 2011)

안티고네수록

 

* 소포클레스, 강대진 옮김 오이디푸스 왕(민음사, 2009)

안티고네수록

 




미케네의 왕 아가멤논(Agamemnon)은 트로이 전쟁에 참전하기 위해 결성된 그리스 동맹군의 총지휘관이다. 그런데 아울리스 항구에 순풍이 불지 않아서 수많은 군함이 꼼짝하지 못한다. 예언자의 신탁에 따르면 아가멤논의 딸 이피게네이아를 아르테미스(Artemis) 신에게 제물로 바치면 순풍이 생길 수 있다. 아르테미스의 도움을 받은 이피게네이아는 죽음을 면하고, 타우로이족이 사는 타우리케라는 곳에 살게 된다. 그녀는 신에게 제물을 바치는 일을 하는 사제가 된다. 제물은 표류 중에 타우리케에 당도하는 그리스인들이다. 타우리케에 있는 그들은 이방인이다


에우리피데스(Euripides)타우리케의 이피게네이아는 이피게네이아가 타우리케에서 우연히 만난 동생 오레스테스(Orestes) 일행과 함께 극적으로 탈출하는 과정을 그려낸 공연극이다


제물 바치는 신전에 이피게네이아와 하녀들이 함께 살고 있다. 하녀들은 포로로 잡혀 온 그리스인들이다. 하녀들은 합창하는 코로스(Chorus)극 초반부에 이피게네이아는 자신의 신세를 한탄한다. 여기에 맞춰 코로스는 이피게네이아의 불운과 비관적 상황을 강조하는, 상당히 어두운 분위기의 노래를 부르기 시작한다.



그대의 노래에 화답하여, 여주인이시여,

나는 아시아풍 가락의 야만적인 노래

부를 것인즉 이것은 죽은 자를 위한

무사 여신들의 만가에서나 울려 퍼지고

하데스가 환희의 찬가로부터

멀리 떨어져서 부르는 그런 노래예요.

 

(타우리케의 이피게네이아179~185, 천병희 옮김, 296)



에우리피데스는 아시아풍 가락의 야만적인 노래(180행)를 죽은 자를 위해 부르는 만가(挽歌)와 같다고 묘사한다. 좀 더 자세히 조사해 봐야 하겠지만, 그리스인들의 머릿속에 그려진 아시아(에 속한 나라)’는 우리가 생각하는 아시아와 다를 것이다. 그리스 비극 작품들을 꼼꼼하게 읽으면 이방인에 대한 그리스인들의 사고방식을 확인할 수 있다. 그리스인들은 자기 나라 사람이 아니면 이방인으로 간주한다. 때론 이방인을 민주정과 평화를 중시하는 그리스적 정체성과 상반되는 야만적이면서 호전적인 존재로 취급한다.


타우리케의 포로가 된 그리스 여성들은 자신들 또한 억압받는 이방인이지만, 또 다른 이방인들의 나라인 아시아를 야만적인 나라로 보고 있다. 그리스인을 이방인과 거리를 두면서 그리스 문화 및 민족의 우수성을 은근슬쩍 드러내는 타우리케의 이피게네이아』는 비극인데도 비극적으로 느껴지지 않는다코로스의 노랫말을 비판적으로 검토하자면, 타 국가로부터 억압받는 여성을 단순히 피해자범주로 분류할 수 없다. 그들의 정체성 및 사회적 지위와 관련된 인종과 계급은 피해자 집단 내에 차별을 생산한다. 여성은 단순하지 않다. 여성은 살아가는 과정이 비슷하고, 공통된 차별을 경험하는 단일하고 매끄러운 존재가 아니다


이방인을 향한 곱지 않은 시선, 거기서부터 생긴 편견과 차별은 아주 질긴 생명력으로 지금도 다양한 형태로 자라나고 있다. 인종 혐오와 차별은 잘라내도 그 자리에 또 다른 머리가 생기는 신화 속 괴물 히드라(Hydra)와 같다.

















[대구 장르문학 전문 책방 <환상문학> 여름 호러 독서 모임 선정 도서] 

* 하워드 필립스 러브크래프트, 김지현(아밀) 옮김 하워드 필립스 러브크래프트: 크툴루의 부름 외 12(현대문학, 2014)

 

* 하워드 필립스 러브크래프트, 정진영(정탄) 옮김 러브크래프트 전집 1(황금가지, 2009)

 

* 하워드 필립스 러브크래프트, 정진영, 류지선 옮김 러브크래프트 전집 4(황금가지, 2012)




고대부터 존재해온 인종 차별’ 히드라는 러브크래프트(Howard Phillips Lovecraft)의 소설 속에서도 살고 있다러브크래프트우주에서 온 미지의 존재가 등장하는 공포소설을 쓴 공포문학의 대가. 러브크래프트가 만든 괴물들은 소름 끼칠 정도로 외형이 끔찍하다. 불쾌한 냄새까지 풍긴다그로테스크한 괴물들은 소설 속에서만 나타나는 가공의 존재다. 하지만 인종 차별히드라는 소설과 현실 속에 살고 있다.
















* 미셸 우엘벡, 이채영 옮김 러브크래프트: 세상에 맞서, 삶에 맞서(필로소픽, 2021)




러브크래프트는 외국인 혐오증(xenophobia)이 있는 인종차별주의자. 그는 흑인과 유대인을 싫어했다. 자신의 몸속에 백인 앵글로색슨의 피가 흐른다고 생각했고, 순수한 백인의 피에 다른 인종의 피 한 방울이라도 절대로 섞이면 안 된다고 믿었다러브크래프트의 극단적인 인종 혐오를 상세하게 설명한 책이 러브크래프트의 삶과 작품을 비평한 프랑스 작가 미셸 우엘벡(Michel Houellebecq)러브크래프트: 세상에 맞서, 삶에 맞서.


그가 쓴 소설 몇 편만 골라서 읽어 보면 인종차별적인 문장들을 확인할 수 있다러브크래프트의 대표작 중 하나인 크툴루의 부름악마를 숭배하는 이누이트에 대한 묘사가 나온다.



 웹 교수는 48년 전에 고대 비문 발견에는 실패했지만 그린란드와 아이슬란드를 탐사한 일이 있다고 했다. 그때 그린란드 서부 해안의 고원 지대에서 쇠락한 에스키모 부족을 만났다. 그들의 종교는 악마를 숭배하는 기묘한 형태의 이교로서 무엇보다 극도로 잔인한 특성을 가지고 있어 웹 교수는 간담이 서늘해지고 말았다. 다른 에스키모 부족들은 그 종교에 대해 거의 몰랐고 설렁 거의 아는 이가 있다고 해도 몸서리를 치며 입에 올리기 꺼려했다.

 

(정진영 옮김, 러브크래프트 전집 1148~149)



아밀이라는 필명으로 소설가로 활동하는 김지현은 자신이 번역한 크툴루의 부름차별적인 의미가 담긴 에스키모(날고기를 먹는 사람들)’가 아닌 이누이트로 썼다. 실제로 이누이트는 고기뿐만 아니라 모든 음식을 익혀 먹는다. 


김지현 작가가 번역한 단편 선집 하워드 필립스 러브크래프트: 크툴루의 부름 외 12레드훅의 공포는 수록되지 않았다. 레드훅의 공포는 러브크래프트 팬과 러브크래프트 전문 연구자들이 인정하는 최악의 작품이다레드훅의 공포에 눈이 째진 동양인들(정진영 번역, squinting Orientals)’이라는 표현이 있다. 러브크래프트는 이교 집단을 아시아의 원숭이들이 공포의 전율에 맞춰 춤을 춘다(정진영 번역, Apes danced in Asia to those horrors)’라고 묘사했다.


우리가 무서워해야 할 것은 비현실적인 괴물이 아니다. 여기저기 떠도는 인종 차별괴물을 경계해야 한다. 이 녀석은 현실적인 괴물이다. 죽여도 다시 살아난다. 하지만 대부분 사람은 이 괴물을 제대로 보지 못한다. 눈에 보이는데도 심각하게 인식하지 않는다. 대중의 침묵과 무관심을 먹고 자라는 인종 차별괴물이 더 무섭다.






<cyrus의 주석>



* 크툴루의 부름중에서, 하워드 필립스 러브크래프트: 크툴루의 부름 외 12182

 

 바로 거기서 시드니 사임[주1]이나 앤서니 앤거롤라[주2] 같은 화가의 그림에나 나올 법한 기괴한 아수라장이 펼쳐지고 있었다.



* 183쪽 역주


 Sidney Sime(1867~1941)[주1] 영국의 화가. 환상적이고 기괴한 장면을 많이 그렸다. 



[1] 시드니 사임의 출생 연도는 1865이다.


[2] 앤서니 앤거롤라(Anthony Angarola) 이탈리아 이민자 출신이다. 러브크래프트가 가장 좋아하는 화가다. 흑인과 유대인 등 타 인종을 혐오한 순수 백인 앵글로색슨 혈통주의자인 러프크래프트가 이민자 출신 화가를 좋아했다는 사실이 아이러니하다.


 



댓글(2) 먼댓글(0) 좋아요(27)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추풍오장원 2023-08-09 16:5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레드훅의 공포 굉장히 매력적인 미스터리 스릴러물이라고 생각하지만 분명히 인종차별 요소가 두드러지는 작품이지요..

cyrus 2023-08-12 07:52   좋아요 0 | URL
러브크래프트의 소설을 읽다 보면 눈에 거슬리는 표현이 몇 개 나오지만, 러브크래프트의 한계를 인지하고 소설을 읽으면 무방하다고 생각해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