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크라테스
루이-앙드레 도리옹 지음, 김유석 옮김 / 소요서가 / 202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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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점  ★★★★  A-





만약 세상의 모든 철학이 장난감 블록이라면? 모든 철학자가 즐겨 쓴 철학 장난감은 무엇일까? 이 철학 장난감의 원산지는 그리스 아테네. 제조 일자는 기원전 5세기(B.C. 500~401). 제조사는 아리스토클레스(Aristocles)제조사 대표는 체격이 상당히 좋다. 특히 이마와 어깨가 넓다. 그래서 사람들은 제조사 대표를 플라톤(Plato)’이라고 부른다.[주] 플라톤은 철학 장난감을 널리 보급하기 위해 아카데미아(academia)’라는 학교를 세웠다빠르게 변하는 유행의 흐름 속에서도 아테네산 철학 장난감은 지금까지 꾸준히 사랑받고 있다. 철학 장난감의 이름은 소크라테스(Socrates).


소크라테스 장난감의 주 소비층은 아테네 청년들이다아고라(agora)에 가면 소크라테스 장난감을 만지작거리는 청년들을 볼 수 있다철학 장난감이 큰 인기를 얻게 되자, 유사품들이 족족 나오기 시작했다군인이었던 크세노폰(Xenophon)소크라테스 X’를 만들었다. 그리고 소크라테스 회상이라는 철학 장난감 설명서를 썼다







* 루이-앙드레 도리옹, 김유석 옮김 소크라테스(소요서가, 2023)

 

* 플라톤, 강철웅 옮김 소크라테스의 변명(아카넷, 2020)

 

[대구 책방 <일글책> 고전 읽기 모임 선정 도서, 파이데이아 독서 목록 2년 차(2024)]

* 플라톤, 천병희 옮김 소크라테스의 변론 / 크리톤 / 파이돈 / 향연(도서출판 숲, 2012년 구판)

 

[대구 책방 <일글책> 고전 읽기 모임 선정 도서, 파이데이아 독서 목록 1년 차(2023)]

* 아리스토파네스, 천병희 옮김 아리스토파네스 희극 전집 1(도서출판 숲, 2010)




희극작가 아리스토파네스(Aristophanes)는 소크라테스 장난감 열풍을 비꼰 구름이라는 작품을 썼다. 그는 소크라테스 장난감을 당시에 유행하던 또 다른 철학 장난감 소피스트(Sophist)처럼 묘사했다소크라테스 장난감 열풍은 오래 가지 못한다. 소크라테스 장난감을 고발하는 고소인들이 등장한다. 결국 소크라테스 장난감은 청년들을 타락시켰다는 죄목으로 재판에 처했고, 판매 정지 처분을 받는다. 사형이나 다름없는 결과였다. 플라톤은 소크라테스 장난감 재판의 경과를 기록으로 남겼는데, 그 책이 바로 소크라테스의 변명이다.


아카데미아를 졸업한 플라톤의 후계자들은 포기하지 않았다. 소크라테스 장난감 제조 방식과 용도를 기억하기 위해 기록했다. 그들은 크세노폰의 소크라테스 장난감과 같은 유사품들과 철저히 구분하기 위해 아리스토클레스에서 만든 장난감을 소크라테스 P’라고 붙였다. P는 제조사 대표 이름의 머리글자다. 플라톤의 후계자 중 가장 유명한 아리스토텔레스(Aristotle)는 소크라테스 장난감의 단점을 보완해서 자신의 이름을 붙인 철학 장난감을 만들었다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의 노력 덕분에 소크라테스 P’는 믿고 쓰는 정품 철학으로 인정받을 수 있었다.


지금도 사람들은 플라톤의 소크라테스 장난감을 가지고 논다. 반면 정품이 아닌 소크라테스 장난감은 쓸모없는 짝퉁으로 취급받는다소크라테스 장난감 연구자들은 정품과 짝퉁을 한데 모아 진짜 소크라테스의 모습을 복원하고 싶어 한다. 그들은 실제 소크라테스 장난감을 다시 만들기 위해 고증의 필요성을 느꼈고, 이른바 소크라테스의 문제에 뛰어들었다어떤 연구자는 플라톤의 생각이 반영된 소크라테스 장난감 또한 정품이 아닐 수 있다고 의심한다. 그들은 짝퉁을 선호한다


고대 철학 장난감을 연구한 루이 앙드레 도리옹(Louis-Andre Dorion)순수한 진품에 가까운 소크라테스 장난감을 복원하는 작업은 불가능하다고 주장한다. 소크라테스의 문제는 절대로 해결할 수 없다고 본 것이다. 그의 저서 소크라테스는 지금까지 전해져 오는 소크라테스 장난감들의 용도와 특징을 꼼꼼하게 정리한 책이다. 저자는 플라톤의 소크라테스 P’, 크세노폰의 ‘소크라테스 X’, 아리스토텔레스가 생각하는 소크라테스, 아리스토파네스의 희극 구름에 묘사된 소크라테스를 주목한다.


소크라테스한 사람만의 소크라테스’를 보여주는 책이 아니다. 얼룩덜룩한 소크라테스를 상세하게 보여준다. 소크라테스 장난감은 한 사람만 소유할 수 없다. 고대부터 현대까지 수많은 철학자가 소크라테스 장난감을 가지고 놀았다. 소크라테스 장난감은 철학자들의 생각 흔적들이 묻어 있어서 지저분하다. 이로 인해 사람들은 소크라테스가 못생겼다고 생각한다철학자들은 소크라테스 장난감 블록을 자신만의 방식으로 조립했다그들이 많이 사용할수록 완전한 소크라테스는 점점 희미해진다니체(Nietzsche)플라톤의 소크라테스 장난감을 망치로 두드려서 잘게 부순 철학자. 그는 소크라테스 장난감에서 나는 도덕 냄새를 매우 싫어했다.


소크라테스의 지저분함에 매력을 느낀 독자라면 다양한 종류의 소크라테스 장난감으로 재미있게 놀아 보자. 처음에는 익숙하지 않겠지만, 여러 명의 소크라테스를 만날 수 있다. 젊은이의 혼을 사랑할 줄 아는 유혹의 대가 소크라테스(플라톤), 성찰의 중요성을 알기 전에 자연 탐구에 관심을 보인 소크라테스(아리스토파네스), 덕의 획득보다 신체를 돌보는 일을 중요하게 생각한 소크라테스(크세노폰) 등을 만날 수 있다. 이제 골치 아픈 소크라테스의 문제’는 잊자. 소크라테스가 좋든 싫든 가장 오래되고 유명한 철학 장난감을 만져본 모두가 소크라테스의 사람들이다.





[] 아리스토클레스는 플라톤의 본명이다. 플라톤은 이마 혹은 어깨가 넓다라는 뜻이다.



<cyrus의 주석>

 

책 제일 뒤에 참고문헌 목록국내 자료_고대 문헌국내 자료_2차 문헌이 나온다. 여기에 고쳐야 할 부분이 있다.

 


* 국내 자료_고대 문헌, 189

아리스토텔레스, 형이상학, 김진성 옮김, 이제이북스, 2007.

2007년 번역본은 절판되었고, 2022 서광사에서 재출간되었다.

 

* 국내 자료_2차 문헌, 191

박규철, 소크라테스의 도덕 · 정치철학, 동과서, 2003.

정확한 제목은 플라톤이 본 소크라테스의 도덕 · 정치철학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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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ella.K 2023-12-26 10: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 이 책 재밌겠다. 근데 철학책답찮게 좀 얉네. 🤔

cyrus 2024-01-01 10:55   좋아요 0 | URL
분량이 얇다고 가볍게 보지 마세요... ㅎㅎㅎ 이 책에 ‘플라톤의 소크라테스’를 따로 설명한 장이 있는데 꽤 깁니다. ^^
 
시간여행을 위한 최소한의 물리학 - 세계적인 과학 커뮤니케이터가 알려주는 시간에 대한 10가지 이야기
콜린 스튜어트 지음, 김노경 옮김, 지웅배 감수 / 미래의창 / 202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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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5점  ★★★☆  B+






“자네들 가운데 아무도 이분을 알지 못한다는 것 잘 알아 두게.”

 

(플라톤, 향연216c~d, 강철웅 옮김, 아카넷, 2020년)




리처드 파인먼(Richard Feynman)양자역학과 전기역학을 통합한 양자전기역학을 정립한 미국의 물리학자다. 1965년에 파인먼은 양자전기역학으로 노벨물리학상을 받았다. 하지만 그는 물리학을 배우는 대학생들에게 양자역학에 대해 농담 섞인 진담을 남겼다.



I think it is safe to say that no one understands 

quantum mechanics.


양자역학을 제대로 이해한 사람은 단 한 명도 없다고 말할 수 있다.



이 말인즉슨 우리가 경험할 수 없는 데다가 확률에 기반한 양자 세계를 완벽하게 이해할 수 없다는 고백이기도 하다양자역학처럼 과학자들이 설명하기 곤란하게 만드는 과학 용어가 하나 더 있다. 그것은 바로 시간이다.


고대 로마의 교부 철학자 아우구스티누스(Augustinus)는 과학자들보다 먼저 시간의 불가사의한 실체를 인정했다.



 시간이란 무엇인가? 아무도 나에게 묻지 않을 때는 잘 알고 있는 것 같은데, 막상 설명하려 하면 모르겠다.



시간 여행을 위한 최소한의 물리학 서문은 시간을 잘 모른다고 밝힌 아우구스티누스의 말을 인용하면서 시작한다. 책은 물리학적 관점으로 바라보는 시간을 다룬다이 책을 쓴 과학 해설자(science communicator) 콜린 스튜어트(Collin Stuart)는 시간을 과학계의 가장 오래된 불가사의라고 소개한다. 그는 본론에 들어가기 앞서 시간은 과학자들도 이해하기 어려운 개념임을 알려준다. 시간에 관한 무지를 정직하게 고백한 저자의 태도는 학생들에게 양자역학의 기기묘묘함을 알리고 싶은 파인먼의 심정과 같다.


우리는 1년은 365일로 이루어져 있다고 배웠다. 그렇지만 왜 1년이 365일이 된 이유를 아는 사람은 드물다. 하루의 길이는 달과 지구 사이에 생긴 중력의 영향에 따라 달라진다. 달의 중력은 지구의 바닷물을 밀거나 끌어당기는 조석 현상을 일으킨다. 달의 중력을 가까이서 받는 바다의 해수면은 높아진다


바다는 자신이 어디에서 태어났는지 모른다. 누군가는 얼음이 있는 혜성이 지구에 내려와서 바다가 생겼다고 주장한다. 혜성이 지구에 충돌하면서 거대한 얼음이 녹아 물이 된 것이다. 혜성이 아니라 물이 있는 소행성에서 왔다고 주장하는 사람도 있다. 중력의 영향으로 여러 개의 소행성이 부딪히면서 우리가 아는 태양계 행성들이 생겼다. 물이 있는 소행성과 물기가 전혀 없는 건조한 소행성이 충돌하면서 생긴 태양계 행성이 지구다


바다는 달의 중력이 가까이 올 때마다 자신의 고향이 우주임을 확신했다. 우주가 그리운 바다는 달의 중력이 내민 손을 잡고선 놓지 않는다. 하지만 스스로 도는(자전) 지구가 가만히 있을 리 없다. 바다가 떠나면 지구는 생명체가 살 수 없는 행성이 되고 만다. 지구의 자전 방향은 달의 반대쪽이다. 달이 바다를 당기면, 지구가 달이 있는 쪽으로 기울어진 물을 자기 쪽으로 끌어당긴다. 달과 지구 사이에 바다가 끼이면 지구 자전 속도는 느려지고, 하루 길이가 늘어난다. 바다는 아주 오래전부터 달과 지구 눈치를 보면서 지내왔다. 양쪽에서 자꾸 당길 때마다 엄청 아팠을 텐데 바다는 달과 지구를 포기하지 않았다. 바다가 떠날까, 남을까 고민할 때마다 하루 길이는 조금씩 조금씩 늘어났다. 지금도 하루 길이가 100년마다 0.0017초씩 길어지고 있다고 한다.


시간 여행을 위한 최소한의 물리학은 분량이 얇은 책이다. 하지만 얇다고 해서 만만하게 보면 안 된다. 시계 안에 갇힌 시간을 부숴버리는 도끼와 같은 책이다. 시계 안에 갇힌 시계는 과거, 현재, 미래순으로 안정적으로 흐른다. 하지만 이 책은 우리를 혼란스럽게 하는 시간의 복잡한 특성을 알려준다. 아인슈타인(Albert Einstein)은 시간은 과거, 현재, 미래로 흐르는 것이 아니라 시간 안에 과거, 현재, 미래 모두 있다고 생각했다. 물리학자들은 이러한 개념을 블록 우주(block universe)’라고 부른다. 이곳에 시간은 존재한다. 다만 시간은 흐르지 않는다. 어떤 물리학자들은 시간을 완전히 없애고 싶어 한다그들에게 시간은 복잡하게 묶여 있어서 풀기 어려운 고르디우스의 매듭(Gordian knot)’이다양자역학만큼 까다로운 시간을 없애면 시간의 실체에 대한 오래된 난제가 단번에 해결한다고 생각하는 것일까


입문서를 잘 쓰는 저자는 독자가 이해하기 쉽도록 방대한 내용을 선별하고 요약한다. 하지만 글 쓰는 과정에서 개념이나 이론에 대한 설명을 절반 정도 생략해야 한다. 

 



* 24쪽


 원자는 매우 작다. 대서양 전체의 물을 뜨는 데 필요한 티스푼의 개수보다 물 한 티스푼 속에 들어 있는 원자 수가 더 많다. 원자를 머릿속에 그리는 가장 간단한 방법은 태양계의 축소판이라고 상상하는 것이다. 가운데에 있는 핵은 태양과 비슷하다. 행성이 태양 주위를 맴돌 듯이 전자는 핵을 맴돌고 있다.



저자는 원자 모형을 태양계 구조로 빗대어 설명한다. 저자는 러더퍼드(Ernest Rutherford)가 제안한 원자 모형을 참고했다. 눈에 보이지 않는 원자를 독자가 이해할 수 있도록 단순하게 설명하려는 저자의 의도는 좋다. 하지만 지금은 원자를 설명할 때 러더퍼드 원자 모형을 보여주지 않는다실제로 태양 주위를 도는 행성처럼 전자가 원자핵 주위를 돌면 뉴턴 고전 역학과 전자기학으로 원자가 안정적인 형태로 유지되는 이유를 설명하기 어렵다왜냐하면 전자가 원자핵 주변을 돌면서 전자기파가 나오기 때문이다전자는 궤도를 이탈하면서 원자핵 쪽으로 향하고정면으로 충돌한다.[주1] 러더퍼드 원자 모형은 양자역학이 본격적으로 주목받기 전에 나온 것이다오늘날 원자 모형은 양자역학의 특성이 반영되어 있다. 이 모형에 핵 주변의 전자가 도는 궤도가 없다. 오직 전자가 존재할 확률만 알 수 있다. 이러한 원자 모델을 오비탈(orbital)’이라고 한다.




* 26쪽


 윤초로 두 시간 체계를 조정하지 않고 계속 두면 언젠가는 한밤중에도 시계가 정오를 가리키는 황당한 상황에 이르게 될 것이다.



지구 자전 운동은 안정적이지 않다. 앞서 언급했듯이 지구 자전 운동이 느려지면 시간 길이가 달라진다. 이러면 표준 시계의 시간과 맞지 않게 된다. 이런 오차를 줄이려면 1초를 늘리는 윤초를 도입해야 한다저자는 윤초가 없으면 일어날 수 있는 문제점만 설명한다. 하지만 윤초가 있어도 문제가 생긴다. 2012년 미국의 온라인 커뮤니티 <레딧>(Reddit)이 윤초를 추가하자 홈페이지 서버가 다운됐다. 컴퓨터와 정보통신업계는 윤초로 인해 생기는 디지털 재난을 방지하려면 윤초를 폐지해야 한다고 줄곧 목소리를 냈다.[주2]  


작년 프랑스 파리에서 열린 국제도량형총회에서 2035년까지 윤초를 폐지하기로 결정되었다(윤초 폐지를 유일하게 반대한 국가가 러시아다). 그리고 올해 12월 아랍에미리트 두바이에 열린 세계전파통신회의에서 2035년까지 윤초를 원칙적으로 폐지하는 결의안이 채택되었다.[주3] 



* 45

 

 태양 다음으로 우리에게 가장 가까운 별인 프록시마 센타우리(Proxima Centauri)4.2광년 떨어져 있다. 빛이 우리와 프록시마 센타우리 사이의 40km나 되는 거리를 이동하는 데는 4.2년이 걸린다는 뜻이다.



별과 우주에 관심이 많은 천문학도라면 프록시마 센타우리에 대한 저자의 설명이 미흡하다고 느낄 것이다. 이 책의 저자는 프록시마 센타우리 근처에 빛나는 또 하나의 별, 알파 센타우리(Alpha Centauri)를 언급하지 않았다. 알파 센타우리 또한 태양과 가까운 별이다. 프록시마 센타우리는 60만 년에 한 바퀴씩 알파 센타우리 주변을 돌고 있다.[주4]




* 85

 




 그러나 파달카의 이야기는 조금 다르다. 그는 시속 27,500km로 지구를 돌고 있는 궤도 전초 기지인 미르 국제 우주 정거장에서 879일 동안 지상에 있는 우리보다 훨씬 빠르게 시공간을 돌진했다.



미르 국제 우주 정거장의 오자. 미르(Мир, Mir)는 러시아어로 평화를 뜻한다.






[1] 참고문헌마쓰바라 다카히코이인호 옮김 물리학은 처음인데요수식과 도표 없이 들여다보는 물리학의 세계》 (행성B, 2018년)

 


[2] <윤초, 2035년까지 폐지된다“IT 기업에게 희소식”> 이정현 기자, 지디넷코리아, 20221121일 입력.

 


[주3] <들쑥날쑥 지구 자전 속도표준시 끼워 맞추던 윤초사라지나> 홍석재 기자, 한겨레, 20231213일 입력, 14일 수정.



[주4] 참고문헌: 플로리안 프라이슈테터, 유영미 옮김 100개의 별, 우주를 말하다: 불가해한 우주의 실체, 인류의 열망에 대하여(갈매나무, 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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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것도 아닌 일로
나탈리 사로트 지음, 이광호.최성연 옮김 / 지만지드라마 / 202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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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A-





말은 무기다라는 제목의 책이 있다. 이 책은 말 잘하는 기술을 알려주는 자기계발서다. 이 책을 쓴 일본인 저자는 말을 잘하려면 자기 생각을 먼저 정리하라고 당부한다. 머릿속 생각이 뒤죽박죽 헝클어진 상태로 말하면 입 안에서 말이 배배 꼬인다. 상대방은 꼬여서 풀리지 않는 말을 제대로 알아듣지 못한다. 생각 정리가 잘 된 말은 상대방의 마음을 움직이게 만드는 강력한 무기다.


하지만 정교한 무기가 되어야 할 말이 때론 무기력해질 수 있다. 상대방이 말귀(馬耳)’라면 신중한 생각 끝에 나온 말도 마이동풍(馬耳東風)으로 흘려듣는다말의 무게는 상당히 가벼워서 침소봉대(針小棒大)’가 되기 쉽다. 바늘 크기만 한 단어를 몽둥이로 만들어 버리는 사람도 있다. 단어가 확 커져 버리면 의미도 확 달라져 버린다. 침소봉대된 단어는 대화를 방해하는 걸림돌이다. 대화가 원활히 이루어지려면 걸림돌을 빼내야 한다. 그런데 대화에 참여한 상대방이 침소봉대된 말에 지나치게 확신하면 문제의 돌을 빼내려고 하지 않는다. 말을 확대해석하는 사람은 자기 생각에 반하는 상대방을 공격한다. 말은 누가 하느냐에 따라 위험한 무기가 된다.


프랑스 작가 나탈리 사로트(Nathalie Sarraute)희곡 아무것도 아닌 일로무기력한 말이 대화하는 등장인물들을 깊은 수렁으로 빠지게 만드는 상황을 그리고 있다. 희곡에 나오는 인물들은 이름이 없는 남자 1’남자 2’. 두 남자는 서로를 잇고 있는 관계를 끊어지지 않게 하려고 대화를 시도한다. 하지만 그들의 입에서 나온 말은 무기력하다극 중간에 남자 3’여자 1’이 나타나 두 사람의 대화에 참여한다. ‘남자 3’여자 1’은 꼬여버린 두 남자의 대화를 풀기 위해 중재자로 나서지만, 도움을 주지 못한다대화가 진행될수록 말다툼으로 변질되고, 공감의 폭이 좀처럼 좁혀지지 않는다. 두 사람이 서 있는 관계의 동아줄은 점점 얇아진다. 계속 늘어나는 두 사람의 무기력한 말은 관계의 동아줄 위에 널브러져 있다. 너저분한 말들은 튼튼했던 두 사람의 관계 동아줄을 한순간에 끊어버릴 힘을 지닌 위험한 무기가 된다. 희곡은 두 남자에게 이득이 없는 무의미한 언쟁만 계속 보여준다.


아무것도 아닌 일로를 무대 위에 올린 연출가들은 원작을 충실히 따르기보다는 자신의 해석에 맞춰 새롭게 변형시켰다. 원작에서는 말이 오고 가는 장면이 주를 이룬다. 어떤 연출가는 두 남자의 대화를 좀 더 생생하게 전달하기 위해 퍼포먼스를 추가하기도 했다. 내가 만약 연출가라면 두 남자의 대화를 결투하는 상황으로 표현하고 싶다.







희곡 텍스트를 이미지로 재현하면 스페인의 화가 프란시스코 고야(Francisco Goya)의 그림 곤봉 결투』(1820~1823년)와 흡사하다. 그림 속 두 남자는 상대방을 죽일 심정으로 곤봉을 휘두른다. 그런데 두 남자의 싸움터는 수렁이다. 두 남자의 눈에는 죽이고 싶은 상대방만 보일 뿐이다. 자신들이 수렁으로 빠지고 있는 위태로운 상황을 모르고 있다. 곤봉 결투이겨도 의미 없고, 서로의 몸과 정신을 소진하게 만드는 갈등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아무것도 아닌 일로허구라고 볼 수 없는 비극이다. 가벼운 일상적인 대화가 어느 순간부터 상대방을 향해 무기를 휘두르는 결투 같은 언쟁으로 변하는 상황이 누구에게나 찾아올 수 있다. 연극 속 말다툼을 구경하는 우리 역시 언젠가는 비극의 주인공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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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amoo 2023-12-15 17: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마지막 문단이 인상깊네요. 맨 아래 고야의 그림은 처음 보는데, 보는 즉시 음, 고야풍이군..이라고 생각했는데, 역시 고야 그림이네요~

고야 그림은 따로 그림책을 아직 구비하지 못했는데, 생각난 김에 고야 그림 도록을 갖춰놓아야 할 듯합니다..ㅎㅎ

cyrus 2023-12-18 06:37   좋아요 0 | URL
도록은 아니지만, 고야가 쓴 편지와 판화집이 실린 《고야, 영혼의 거울》을 권해드리고 싶어요. 이 책에 관한 제 글 몇 편 있어요. ^^
 
글 쓰는 여자들의 특별한 친구 - 문학적 우정을 찾아서
장영은 지음 / 민음사 / 202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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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대 없이는 못 살아 나 혼자서는 못 살아.

헤어져서는 못 살아 떠나가면 못 살아.

 

- 패티 김 그대 없이는 못 살아(1974) 노랫말 -



금속이 단단해지려면 단련 작업을 거쳐야 한다. 불에 달구고 나서 세게 두드리면 된다. 엄청 뜨거운 색을 띤 금속을 차가운 물에 담근다. 이 과정을 담금질이라고 한다. 한 편의 글이 제대로 완성되려면 글의 구성 재료인 글쓴이의 생각이 단련되어야 한다. 생각을 단련하는 일은 생각보다 쉽지 않다. 내 머릿속에 오랫동안 박힌 편견이나 거짓 정보를 세게 두드리면서 빼야 하기 때문이다. 이걸 빼지 못하면 좋은 글이 나올 수 없다. 글이 완성되었다고 해서 다 끝난 건 아니다. 글을 담금질해야 한다. 글쓴이의 주관적 감정이 너무 많이 들어간 글은 매우 뜨겁다. 글이 지나치게 뜨거우면 문장이 녹아내려서 엉성한 비문(非文)으로 변질되거나 논리적 구멍이 생긴다. 이런 글은 물렁물렁하다. 매우 연약해서 잊히기 쉽다. 반면에 완성도가 단단한 글은 독자의 뇌리에서 떠나지 않는다. 정확하고 냉철한 지성을 가진 독자는 글 속의 열기를 식혀줄 뿐만 아니라 비문과 논리적 구멍을 잘 찾는다.


글 쓰는 여자들의 특별한 친구글을 쓰면 뜨거워지는 여자와 뜨거운 글을 담금질하는 친구들의 우정을 주목한 책이다. 이 책에서는 쓰기와 읽기가 교직 되면서 한 편의 글을 완성하는 여성들의 우정 문학적 우정이라고 부른다.


버지니아 울프(Virginia Woolf)의 뜨거운 글은 자신보다 여섯 살 어린 캐서린 맨스필드(Katherine Mansfield)가 담금질했다. 울프는 맨스필드의 세심한 논평에 감탄하면서도 그녀가 글을 발표하면 자신은 더 뛰어난 글을 쓰려고 노력했다. 인류학자 마거릿 미드(Margaret Mead)루스 베네딕트(Ruth Benedict)도 상대방이 쓴 글을 담금질하는 관계를 이어왔다. 울프와 맨스필드, 미드와 베네딕트, 이 네 사람은 글 쓰는 뜨거운 친구를 위해 믿을 만한 독자가 되어주었다. 잘 썼으면 칭찬해 주었고, 물렁물렁해진 글을 두드리는 비판도 아끼지 않았다.


살아있는 인간끼리 만나야만 우정이 맺어지는 건 아니다. 이미 글을 뜨겁게 쓰면서 살다 간 사람도 친구가 될 수 있다. 오직 기록으로만 남은 친구를 직접 만나면서 말을 걸 수 없다. 하지만 살아 있지 않은 사람을 깊이 알아가면서 느끼는 친밀감은 어느 한쪽만 치우치는 일방적인 관계로 변하지 않는다. 또한 이런 형태의 우정은 금방 사라지지 않는다. 우리는 대면하는 경험이 있어야 우정과 친밀감이 생긴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한나 아렌트(Hannah Arendt)는 익숙한 생각을 뒤집는다. 아렌트는 자신보다 몇 세대 먼저 태어나고 살다 간 라헬 파른하겐(Rahel Varnhagen)을 절친한 친구라고 소개한다. 아렌트는 자신처럼 유대인 여성으로 살아온 라헬에 친밀감을 느꼈다. 라헬을 만나면서 뜨거워진 아렌트는 친구를 위한 전기(傳記)를 썼다. 이때부터 그녀는 유대인으로서의 자의식을 발견했고, 유대인 문제에 본격적으로 관심을 쏟는다.


사랑이든 우정이든 관계가 포근하면 두 사람이 함께 덮은 공감대 이불은 점점 두꺼워진다. 하지만 둘 다 만족할 수 있는 관계의 적당한 온기를 계속 유지하기가 쉽지 않다. 관계의 절대 온도는 없다. 상대방의 단점과 한계가 보이기 시작하면 공감대 이불은 얇아지고 관계의 온도는 차가워진다. 자신과 반대되는 온도를 가진 사람을 만나면 마음이 시리거나 얼얼할 수 있다. 그렇지만 자신을 진정으로 믿고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면서 생기는 정신적 아픔은 성장통이 될 수 있다. 진실한 우정은 나보다 더 잘 되길 바라는 상대방의 단점이 멋진 장점이 될 수 있도록 계속 두드린다. 이런 좋은 친구를 곁에 두지 못하면 창작의 고통이 더 크게 느껴진다. 그러면 글을 쓸 수 없다. 담금질을 거친 문학적 우정은 두 사람의 능력을 더욱 빛나게 해 준다. 끈끈하게 엮인 우정을 먹고 자란 글은 튼튼하다.





cyrus의 주석



* 130

 

 호메로스의 오뒷세이아와 프랑스아 드 페늘롱의 텔레마코스의 모험에 등장하는 멘토르는 남성이다. 오뒷세우스는 트로이 전쟁에 나가며 자신의 아들 텔레마코스를 친구 멘토르에게 부탁했고, 멘토르는 기꺼이 텔레마코스의 스승이자 친구가 되었다.

오뒷세이아의 멘토르가 성숙하고 덕망 높은 남성을 상징하는 데 반해, 텔레마코스의 모험에서 멘토르는 다른 존재로 등장한다.[] 전쟁에서 돌아오지 않는 아버지를 찾아 모험을 떠나는 텔레마코스를 돕기 위해 지혜의 여신 미네르바가 멘토르로 변신해 텔레마코스와 함께했다는 프랑수아 드 페늘롱의 설정은 흥미롭다. 자연스럽게 스승과 친구의 자리를 왜 그토록 오랫동안 남성들이 차지했는지에 대해 의구심이 든다.


 가까이에서 아테네가 다가왔는데, 체격과 음성이 멘토르와 흡사한 여신은 그에게 날개 돋친 말을 쏘았다


- 김기영 옮김, 오뒷세이아》 (민음사, 2022년), 

2267~269행, 44쪽 -



[오뒷세이아에 묘사된 멘토르도 미네르바(그리스 신화의 아테네)가 변신한 인물이다.




* 245





제임스 조임스 제임스 조이스(James Joy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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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삭매냐 2023-12-05 10:2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고저 ˝조임스˝에서 빵 터짐요~~]

조이긴 조이는 작가네요 증맬루.

cyrus 2023-12-07 06:29   좋아요 0 | URL
문학동네에서 <율리시스> 나왔던데 어제 바로 주문했어요.. ㅎㅎㅎㅎ

stella.K 2023-12-05 11: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진짜 글은 혼자선 못 쓰지. 내가 여기에 낙서 같은 글이라도 올리는 건 봐 주는 사람이 있기 때문이다. 글치않아도 찜한 책이야. 나중에 혹시 중고샵에 나오면 그때나 사 볼ᆢㅋ

cyrus 2023-12-07 06:30   좋아요 1 | URL
누님과 한 지역에 살았으면 제가 책 빌려주고 싶어요. ^^

그레이스 2023-12-07 06: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실제로 <오뒷세이아>에서도 아테네가 멘토르로 변신해서 텔레마코스의 여행을 돕는데,,, 프랑스와 드 페늘롱의 특별한 설정이라고 말할만한 변주가 있을까 궁금합니다.

cyrus 2023-12-07 07:05   좋아요 1 | URL
<텔레마코스의 모험>이 두 권으로 번역되어 있는데, <오뒷세이아>의 멘토르와 어떤 차이가 있는지 확인해 보고 싶어요. ^^

얄라알라 2024-01-07 21: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와!!! 제 고민에 대한 답이 담겨 있어서 그럴까요?
작년말부터 요즘, 최근 읽은 글 중에 가장 쏘옥 쏘옥 마음에 와서 박혔어요.
고맙습니다 cyrus님!!

cyrus 2024-01-08 06:36   좋아요 1 | URL
글을 쓰고 싶은 사람은 많아요. 그런데 상대방의 글을 꼼꼼하게 읽는 사람은 많이 없어요. 사실 저 또한 글을 쓰고 싶은 사람에 속해 있어서 상대방의 글을 내 글을 보는 만큼 읽진 않아요. 그리고 글쓴이에게 글에 대해서 의견을 내는 것도 조심스러워요. ^^;;
 
소피의 세계 (합본) - 소설로 읽는 철학
요슈타인 가아더 지음, 장영은 옮김 / 현암사 / 201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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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점  ★★☆  B-




[대구 서점 <일글책> ‘하루 10분 벽돌 책 함께 읽기’ 프로젝트 

네 번째 책(2022년 11~12월)]


[대구 인문학 책방 <읽다익다> 명상과 낭독선정 도서]





소피의 세계읽기 쉬운 철학책을 주제로 꾸민 도서 큐레이션의 단골 책이다. 이 책은 1991년 노르웨이에서 처음 발표되자마자 베스트셀러가 되었다. 국역본은 199412월에 첫선을 보였다. 청소년을 위한 철학책 소피의 세계는 성인도 접근하기 어려운 철학책 출간이 주를 이루던 당시 90년대 초중반 출판 시장에서 단언 돋보이는 책이었다.

 

소피 아문센(Sophie Amundsen)은 노르웨이의 어느 마을에 살고 있는 소녀다. 소피는 이름이 없는 발신인이 보낸 의문의 편지를 받는다. 편지에 알쏭달쏭한 질문만 적혀 있다.너는 누구니?’ 편지를 보낸 사람은 자신을 철학자라고 소개한 알베르토 녹스(Alberto Knox). 철학자는 소피를 위해 철학사의 주요 인물과 개념들을 편지에 담아서 알려준다. 소피의 철학 수업은 가장 오래된 철학적 질문이 적힌 편지 한 통에서 시작된다. 철학을 풀어낸 소설에 등장인물들의 정체를 추리하게 만드는 추리물 요소까지 잘 섞여 있어서 이야기를 끝까지 보게 만든다.

 

2015년에 출간 20주년을 맞아 합본으로 된 소피의 세계전면 개정판이 출간되었다. 노르웨이 인명과 지명을 외래어 표기법에 맞춰 고쳤으며 일부 문장과 단어를 새로 수정했다고 한다. 하지만 사람도, 책도 시간이 지나면 늙는다. 한 사람의 인생에 큰 영향을 끼친 가치관은 시간이 흐르면서 녹이 슨다. 가치관이 형성하는 데 유용한 영양분이 되어준 책 속의 지식은 점차 텁텁한 맛으로 변한다.

 

녹스는 소피와 소설 밖 독자들에게 한 가지 슬픈 사실을 상기한다. 우리는 성장하면서 중력의 법칙에만 익숙해지는 게 아니라 동시에 이 세계 자체에 길들고 있다는 사실을. 책 소개하는 도서 큐레이터가 철학을 공부하기 시작한 독자에게 소피의 세계를 추천했다면, 그 사람은 오래돼서 녹슨 소피의 세계에 완전히 길들어진 상태일 수 있다. 그리고 소피의 세계에 여전히 고쳐야 할 내용들이 있다는 사실에 한 번도 의심하지 않았을 것이다. 늙어버린 책을 읽으면 머릿속 생각과 지식도 같이 늙는다. 지적 노화는 의심하고 질문하는 습관을 잊어버리게 만든다.

 

책 속 인물은 영원히 늙지 않는다. 그들은 얼굴에 늘어나는 주름을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하지만 그들이 옳다고 믿는 지식으로 꾸민 생각은 노화를 피할 수 없다. 녹스의 정신은 녹슬어 늙었다. 그가 소피 아문센에게 가르쳐준 것들 일부는 낡고 편협하다.

 

녹스는 이성의 중요성을 틈틈이 강조한다. 그는 소크라테스(Socrates) 이성을 강하게 믿은 명백한 합리주의자로 평가한다. 그런 다음에 소피스트(Sophist)를 소크라테스와 정반대되는 () 철학적 노선을 따른 학파로 분류한다. 오랫동안 소피스트는 철학적이지 않은 불한당으로 취급받았다. 녹스는 이성과 합리주의를 긍정적으로 바라보는 주류 철학사에 길들어 있다. 최근 연구에 따르면 소피스트 역시 소크라테스와 마찬가지로 말(logos)과 덕(arete)의 정의와 역할에 관심이 많았다[주1]. 소피스트에게 말은 그저 돈벌이를 위한 도구가 아니었다. 소크라테스가 철학적 대화법인 산파술의 창시자로 알려졌지만, 가장 유명한 소피스트인 프로타고라스(Protagoras)도 질의응답으로 철학을 하는 방식을 시도했다.

 

녹스는 실제보다 과장된 신화로 알려진 뉴턴의 사과일화를 언급한다(308). 뉴턴은 사과나무 아래에서 중력의 심오한 실체를 단 몇 분 만에 알아차리지 않았다. 과학은 우연한 순간에 의해 발전하지 않는다. 과학 역시 철학과 마찬가지로 어떤 현상을 의심하고 검증하는 행위들이 차곡차곡 모여져서 만들어진 학문이다.

 

녹스는 제대로 된 과학 수업을 받아야 한다. 특히 다윈(Charles Darwin)의 진화론을 다시 배워야 한다. 그는 다윈이 인간을 비열한 생존 경쟁의 결과로 만들었다고 주장한다(598). 녹스는 다윈이 자신의 책 종의 기원에서 밝힌 진화론다윈의 영향을 받아 정치적인 관점이 들어간 다른 형태의 진화론을 명백히 구분하지 못하고 있다. 후자는 자신을 진정한 다윈주의자라고 말하지만, 실은 우생학자에 가깝다. 다윈의 진화론과 다윈주의자의 진화론은 같지 않다[주2].

 

녹스는 프랑스 혁명의 구호자유, 평등, 박애라고 표현했다(458). 박애는 원래 의미와 동떨어진 표현이다. 서양 학문을 접한 우리나라 근대 개화기 지식인들이 동시대 일본 지식인들의 번역을 그대로 따라 쓴 게 박애.박애로 잘못 알려진 프랑스어 ‘fraternité’형제애연대감을 뜻한다. 그런데 형제애로 번역하면 혁명에 참여한 여성을 차별하는 기준이 된다. 실제로 세상을 바꾸려고 거리에 나선 여성들은 프랑스 혁명 이후에 자유평등을 보장받지 못했다.

 

녹스는 소피 아문센에게 비판적인 사유를 가르치려고 했다. 부모 세대의 가치 체계뿐만 아니라 방대한 철학사를 압축한 이 책 또한 비판 대상이다. 녹스 선생! 똑바로 앉아 있어요? 불멸의 존재인 당신이 해야 할 일은 끊임없이 공부하는 것입니다. 자신의 지적 노화를 스스로 이해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답니다.[주3]





[1] 참고 문헌: 강철웅 옮김 소피스트 단편 선집》 

(아카넷, 2023), 2

 

[2] 참고 문헌: 양자오, 류방승 옮김 종의 기원을 읽다》 

(유유, 2013)


[3] 녹스가 소피에게 한 말을 패러디한 문장이다.

 

 소피야! 똑바로 앉아 있니? 네가 남은 철학 수업에서 철학자와 소피스트의 차이를 이해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단다. (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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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ella.K 2023-12-04 10: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헉, 별점이 넘 짠데? ㅋ 이 책이 첨 나왔을 때 인기 대단했지. 나도 그 틈바구니에서 읽었고. 맞아. 어떤 책은 시대를 거스르지만 지금 이 책을 다시 읽는다면 어떨지 모르겠어. 하지만 이 책은 그저 철학에 좀 더 가까이 가게하는 안내서 정도로만 생각하지 대단할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아. 적어도 나는. 오히려 그 이후 내가 철학을 좀 가까이 하게될까 싶었는데 역시 그건 아니더군. 재미있게 읽었다고는 말할 수 있지만 나와 비슷한 철학 문외한에게 적극 권하지는 못 할 것 같다. 이후로 비슷한 책이 많이 나왔겠지만 어느 책이 좋은지 난 잘 모르니. 잘 읽었어.^^

cyrus 2023-12-04 21:19   좋아요 0 | URL
뒤에 가면 갈수록 3부의 현대철학 내용이 빈약했어요. 하이데거는 철학 전공자도 공부하기 어려운 철학자예요. 저자가 그걸 염두에 두면서 쓴 건지 모르겠는데 녹스 선생은 하이데거를 거르고 실존주의에 관해 설명했어요. 참고문헌이 없는 것도 아쉬웠어요. 그래서 평점을 깎았어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