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상의 미술 - 몽환적이고 신비로운 모든 것의 시각 자료집
S. 엘리자베스 지음, 박찬원 옮김 / 미술문화 / 2024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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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협찬받고 쓴 서평이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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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5점  ★★★☆  B+








장막을 걷어라.

나의 좁은 눈으로 이 세상을 더 보자.

 

접어드는 초저녁

누워 공상에 들어 생각에 도취했소.

 

다들 행복의 나라로 갑시다.

 


- 한대수 행복의 나라(1974) 노랫말 일부 -



사진은 1977년에 재발매된 한대수 1<멀고 먼 길> 앨범 앞표지다.





상상화는 그리기 쉽다. 내 생각과 상상한 것을 그대로 그리면 된다. 어떻게 보면 상상화는 꾸밈이 전혀 없는 솔직한 그림이다. 하지만 완성된 상상화는 온통 검다. 알록달록하게 색칠해도 상상화는 까맣다. 다른 사람의 눈에 비친 상상화는 어두컴컴하다. 상상화를 그린 사람은 자신이 무엇을 그렸는지 잘 안다. 그렇지만 다른 사람들은 이해하지 못한다. 도대체 뭘 그린 거야?” 그들은 깜깜한 상상화를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몰라서 눈앞이 깜깜하기만 하다.


비현실적인 상상화는 이상하고두렵고불쾌하고난해하다이해하기 힘든 상상화는 오해를 불러일으킨다. 까만 상상화가 낯선 사람들은 상상화를 그린 사람의 내면과 정신세계를 의심한다. 아름다움을 찾을 수 없는 상상화는 모든 사람에게 환영받지 못한다우리 눈은 실물과 실체를 보는 것에 익숙하다익숙하지 않은 것이 시야에 들어오면 눈동자가 좁아지면서 저절로 눈꺼풀이 감긴다그래서 상상화가 항상 까맣게 보이는 것이다.


우리는 세상을 바라보는 눈을 창문으로 비유한다. 그러나 우리 눈은 낯설고 익숙하지 않은 세상을 흔쾌히 받아들이지 못한다. 이상하다고 느낀 물체나 존재에 거부감을 느낀다. 보기 좋고, 친숙한 세상만 보려고 하는 눈은 항상 열려 있는 창문이 아니라 장막이다.

 

상상화의 매력을 모르는 사람은 환상의 미술: 몽환적이고 신비로운 모든 것의 시각 자료집검은 책으로만 보일 뿐이다. 반대로 상상력이 흘러넘치는 사람은 이 책이 깊고 광활한 검푸른 바다로 보인다. 그들은 공상에 취한 상태다. 익숙해서 지루한 일상을 잠시 잊어버리고 환상의 검푸른 바다로 풍덩 뛰어든다환상의 미술솔직 과감한 상상화를 보지 못하게 만드는 장막을 걷어내는 책이다. 이 책을 쓴 저자는 오컬트, 죽음, 공포와 같은 어둡고 음산한 주제로 한 예술 작품을 좋아한다


바다에 들어가기 전에 반드시 준비 운동을 해야 한다. 몸이 물에 적응하는 시간이 필요하다. 환상의 바다는 쉽게 들어갈 수 있는 곳이 아니다. 이곳에 예술가들의 상상력을 먹고 자란 괴물이 득시글거린다. 환상의 바다를 처음으로 유영하는 사람들은 잠자는 예술가들이 세운 드림랜드를 헤맨다상상하는 일을 시간 낭비로 여기는 사람이 환상의 바다로 무턱대고 뛰어들면 눈동자가 깜짝 놀라서 갑자기 눈이 감겨버린다. 환상의 바다로 본격적으로 뛰어들기 전에 눈 풀기 독서를 해야 한다상상력이 부족하면 눈이 뻑뻑해진다. 이미 출간된 저자의 또 다른 책들, 오컬트 미술: 현대의 신비주의자를 위한 시각 자료집》(하지은 옮김, 미술문화, 2022년)어둠의 미술: 무섭고 기괴하며 섬뜩한 시각 자료집》(박찬원 옮김, 미술문화, 2023년)은 환상의 바다를 자유롭게 헤엄치는 데 필요한 상상력을 한껏 끌어 올려준다.


상상하는 것은 현실에서 도피하는 행위가 아니다. 새로운 현실을 확장하는 일이다. 상상하는 것은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혁신적인 일이 아니다. 기존의 유를 새로운 유로 바꾸는 일이다. 상상하면서 환상의 세계를 그리는 예술가들은 개방된 세계를 묘사한다. 개방된 세계는 현실적인 것과 비현실적인 것, 과거와 현재, 아름다움과 추함, 인간과 비인간이 혼재되어 있다개방된 세계에서는 어떠한 제한도 없이 상상력을 펼칠 수 있다. 상상력은 이상하고, 환영받지 못한 사물과 존재를 특별하게 만들어 준다상상력이 충만한 예술가는 자신의 작품을 이해하지 못한 주변 사람들의 반응에 신경 쓰지 않는다. 예술가에게 상상력이란 실패에 대한 두려움을 잊게 만드는 담력이다.







<cyrus의 주석>

 



* 13

 




 느릿느릿 걷고 힘이 센 퉁명스러운 성격의 외눈박이 거인, 장난스럽고 심술궂은 마법을 부리는 반짝반짝 날개 달린 자그마한 존재, 빛을 발하는 뿔이 달린 말을 닮은 짐승, 그 외에도 인어, 미노타우로스, , 난쟁이, 스핑크스, 사티로스, 백조 아저씨[주1], 잠 귀신! 키클롭스의 흙투성이 동굴에서부터 버섯들이 빚어낸 요정의 반지, 그리고 세상의 끝 어두운 숲에 숨겨진 마지막 유니콘까지. 모든 문화에는 환상적인 생명체에 관한 신나는 이야기들이 존재한다.

     

[원문]


 Lumbering one-eyed giants with surly personalities and prodigious strength; diminutive, winged beings twinkling with magic both mischievous and malicious; luminous equine beasts with shimmering horns, elusive and rare. Mermaids and minotaurs, dragons and dwarves! Sphinxes, satyrs, swan maidens and even the Sandman from the Cyclops’ dusty cave to the mushroom-spotted faerie rings to the last unicorn hidden in a dark wood at the end of the world, there are clamouring, tales of fantastical creatures to be found in every nook and cranny of every culture.

   


[1] 백조 아저씨는 오역이다. ‘maiden’처녀, 아가씨를 뜻한다. 백조 처녀(Swan maiden)’ 전설은 우리나라의 민담 선녀와 나무꾼과 비슷하다. 하늘에 내려온 백조가 여자의 모습으로 목욕하고 있었는데, 이를 훔쳐본 남자는 백조의 깃옷을 감춘다. 여자는 원래 백조의 모습으로 돌아가지 못하고, 남자의 아내가 된다.





* 47

 




 보리아 삭스는 상상의 동물: 괴물, 불가사의, 인간(2013)에서 모든 유인원에는 설인이 어느 정도 들어 있고, 모든 말에도 페가수스가 조금 들어 있다. 남성과 여성은 천사 같은 면도 있고 악마 같은 면도 있다. 켄타우로스, 늑대 인간, 마법사 맨드레이크[2], 스핑크스 같은 면도 있다라고 쓴다.

 


[2] 맨드레이크(mandrake)는 전설에 묘사된 식물 이름이다. 전설에 따르면 교수형을 당한 사람의 몸에 나온 정액에서 피어난다. 맨드레이크의 뿌리는 사람 형상과 닮았다. 맨드레이크를 뽑으면 뿌리가 비명을 지른다. 이 비명을 들은 사람은 미치거나 죽는다. 맨드레이크는 해리포터와 비밀의 방에 나온다. 맨드레이크는 중세 시대 마법사들이 마법의 약을 제조할 때 사용한 약초였다. 식물 이름이 아니라면 필 데이비스(Phil Davis)와 프레드 프레드릭스(Fred Fredericks)의 만화 <마술사 맨드레이크>(Mandrake the Magician, 1934년부터 2013년까지 연재)에 나오는 동명의 주인공 이름일 수 있다. 원서에 ‘mandrake’라고 적혀 있는데 맨드레이크는 대중적으로 널리 알려진 전자의 의미에 가깝다.






* 72~73

 

 지크문트 프로이트의 무의식에 관한 20세기 이론은 경계를 허무는 초현실주의자들에게 특히 깊은 영향을 미쳤다. 그들은 새로운 현대 신화를 추구하는 가운데 괴물 같은 기괴함을 포옹하여 강렬하고도 불안한 이미지를 만들어 냈으며, 꿈과 악몽에서 영감을 얻어 대체 현실의 끔찍한 장면이 연상되는 광경을 그려냈다. 살바도르 달리, 호안 미로, 파블로 피카소와 같은 선구자들은 악마와 유령으로 구성된 어둡고 환상적인 동물원을 창조했는데, 그것은 인종차별주의, 민족주의의 너무나도 현실적인 위협과 파시즘의 폭력을 상징하였다. [3]




[3] 살바도르 달리(Salvador Dali)는 온갖 기행을 일삼은 괴짜로 유명하다. 달리는 히틀러(Adolf Hitler)를 찬양했는데 그 일이 문제가 되어 초현실주의자 그룹에 제명당했다.





* 111

 





J. J. 그랜드빌 J. J. 그랑빌(Grandville)






* 143


 





 『백설 공주이야기를 소름 끼치도록 뒤틀린 반전으로 재해석한 닐 게이먼의 단편 , 얼음, 사과[주4]는 공주와 계모를 경쟁 관계로 보고, 실제로는 그리 사악하지 않은 여왕이 뱀파이어 같은 의붓딸 때문에 공포에 질려 이 괴물로부터 왕국을 구하기 위해 애쓴다는 내용이다.

 


[주4] 1995년에 발표된 닐 게이먼(Neil Gaiman)의 단편 소설 원제는 ‘Snow, Glass, Apples’. 소설의 모티프는 그림 동화집(Grimm’s Fairy Tales)에 실린 백설 공주. 게이먼의 단편 소설 제목의 ‘Glass’는 원작 동화 속 계모가 소유했던 말하는 거울을 상징한다. 따라서 소설 제목은 , 거울, 사과. 이 소설은 닐 게이먼 베스트 컬렉션(정지현 옮김, 하빌리스, 2023)에 수록되어 있다.






* 203

 




 만일 타임머신이 있다면 어디로 가고 싶은가? 선사시대를 목적지로 해서 트리케라톱스와 익룡과 잠시 시간을 보내다가 티렉스에게 잡아먹히기 전에 돌아오고 싶은가? [주5]



[주5] 타임머신이 현실적으로 실현 불가능한 기계라는 사실을 잠시 제쳐두고, 똑똑한 타임머신이 실용화된 세계에 살고 있다고 상상해 보자. 공룡을 만나고 싶으면 타임머신에 선사시대로 가자고 부탁하면 안 된다. 만약 타임머신이 당신의 부탁을 들어준다면 그 기계는 정품이 아니다. 정품이 아닌 타임머신을 타다간 짝퉁 과거로 가거나 현재로 영영 돌아오지 못할 수 있다. 선사시대에 가면 공룡을 볼 수 없다. 공룡은 이미 멸종되어 사라졌고, 그 대신에 두 발로 걷는 인류의 조상들을 만날 수 있다. 우리의 조상님들을 만나 보고 싶으면 목적지를 선사시대로 하면 되고, 트리케라톱스와 티라노사우루스를 보려면 백악기로 가면 된다.





* 더 읽어보기, 236

 

Dinotopia: A Land Apart from Time, James Gurney, 1992 [주6]

 

Fairs and Elves(The Enchanted World), Colin Tuubron, 1984

Wizards and Witches(The Enchanted World), Brendan Lehane, 1984 [주7]

 

Fantasy, The Literature of Subversion, Dr Rosemary Jackson, 2008. [주8]



[주6] 1993년에 다이노토피아: 공룡 나라 여행(오경아 옮김, 디자인하우스)이라는 제목의 번역본이 출간되었다.

 

[주7] 분홍개구리라는 출판사가 총 아홉 권으로 이루어진 <인챈티드 월드>(Enchanted World) 시리즈를 번역 출간했다. ‘Fairs and Elves’의 국역본 제목은 요람을 흔드는 요정(박종윤 옮김, 2005)이다. <인챈티드 월드> 시리즈 전권 모두 절판되었다.

 

[주8] 로즈마리 잭슨(Rosemary Jackson)의 저서 <Fantasy: The Literature of Subversion>1981년에 출간되었다. 국역본 제목은 환상성: 전복의 문학(서강여성문학연구회 옮김, 문학동네, 2001)이다. 현재 절판되었다.





* 책 뒤표지

 






이 책에 프란시스코 고야(Francisco de Goya)의 그림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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얄라알라 2024-02-23 15: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거울과 얼음의 차이는 많이 나는데^^;;

살바도르 달리 하면 ‘숟가락? 스푼과 낮잠‘ 일화가 압도적이어서 그것만 떠오르는데 히틀러랑 얽힌 사연도 있군요

cyrus님 어떻게 이런 고퀄 분석을 하실수가요. 번역가분들이 cyrus님 모셔서 강의하실 기회를 만들어주셔도 진짜 유익할 것 같아요^^

cyrus 2024-02-26 06:29   좋아요 1 | URL
달리의 작품 중에 <히틀러의 수수께끼>라는 제목의 그림이 있어요. 그림을 보면 왜 저런 제목을 붙인 건지 알 수 없어요... ㅎㅎㅎ

저는 전문가가 아니라서 전문가들 앞에서 가르칠 수준은 아니에요. ^^;;

감은빛 2024-02-27 17: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와! 그런데 알라딘에서 글 쓰면서 어떻게 이렇게 이미지들을 깔끔하게 예쁘게 넣으신 건가요? 저는 이미지를 넣으면 편집이 잘 안 되던데요. 신기하네요.

cyrus 2024-03-01 10:01   좋아요 0 | URL
사진을 편집하는 과정이 번거로워요. 사진 이미지 크기를 작게 조절해요. 사진 원본을 올리면 너무 크게 나오거든요. 그렇다고 사진이 너무 작으면 글씨가 작아지는 경우가 있어서 일단 보기 좋게 크기를 조절한 다음에 알라딘 블로그에 올려요. 마음에 들 때까지 사진 크기를 조절하고, 알라딘에 올리고, 다시 지우고.. 저는 이 과정을 반복해요. ㅎㅎㅎ
 
COSMOS 우주에 깃든 예술
로베르타 J. M. 올슨.제이 M. 파사쇼프 지음, 곽영직 옮김 / 북스힐 / 202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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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5점  ★★★☆  B+





 “엄밀히 말해그대도 엄밀히 말하기를 고집하시기에 말인데전문가는 아무도 실수를 저지르지 않아요. 누군가 실수를 하는 이유는 지식이 달리기 때문인데, 지식이 달리는 한 그는 전문가가 아니니까요. 따라서 어떤 전문가도 어떤 현인도 실수를 범하지 않으며, 어떤 치자도 치자인 한 실수를 범하지 않아요.”


(플라톤, 천병희 옮김, 국가1341a, 55)

 




코스미그래픽: 인류가 창조한 우주의 역사(Cosmigraphics, 마이클 벤슨 저, 지웅배 옮김, 롤러코스터, 2024년)는 예술이 된 매혹적인 우주를 모은 화보. 이 책의 생김새는 우량아와 비슷하다판형이 크다. 게다가 양장본이라서 두께는 얇은데도 제법 무게감이 느껴진다그런데 눈에 확 띄는 책의 몸집과는 달리 내실은 좋지 않다책 속에 고쳐야 할 것이 많다.[주1] 책에 화려한 도판들이 독자의 눈길을 사로 잡고 있어서 가 나지 않는다. 


사실 코스미그래픽이 나오기 전에 이미 우주 그림들을 한가득 모은 책이 출간된 적이 있다. 그 책은 바로 코스모스(Comsos). 코스모스? 칼 세이건(Carl Sagan)이 쓴 그 유명한 과학책? 제목과 주제는 비슷하지만, 내용은 다르다아주 유명한 칼 세이건의 코스모스》보급판(홍승수 옮김, 사이언스북스, 2006년) 벽돌 책이다.[주2] 제목만 같은 코스모스코스미그래픽의 생김새와 비슷한 널빤지 책이다. 널빤지 코스모스의 부제는 우주에 깃든 예술이다.


코스미그래픽의 저자는 널빤지 코스모스의 존재를 알고 있다. 저자는 자신의 책에 널빤지 코스모스의 저자 이름을 언급했다.



코스미그래픽》 314쪽


 미술사학자 로베르타 올슨과 천문학자 제이 파사코프의 분석에 따르면, 그림 속 앉아 있는 노아의 왼쪽에서 하늘을 가리키는 사람은 므두셀라이며 그의 아버지 에녹이 점성술적 징조에 관한 내용을 써놓은 두루마리를 쥐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로베르타 올슨(Roberta J. M. Olsen)제이 파사쇼프(Jay M. Pasachoff)1985년부터 예술과 천문학의 관계를 연구하기 시작했다천문학적 현상이 주는 영감이라는 이름의 학술회의를 진행하기도 했다두 사람이 처음 만난 이듬해에 핼리 혜성(1P/Halley)76년 만에 나타났다. 오래전부터 사람들은 밤하늘에 나타난 혜성을 묘사했다. 널빤지 코스모스에도 혜성을 묘사한 그림들이 실려 있다.


이탈리아의 화가 조토 디 본도네(Giotto di Bondone)1301년에 혜성을 목격했고, 프레스코화 <동방박사의 경배>(1305년)에 혜성을 그려 넣었다조토는 세 명의 동방박사를 위해 예수가 태어난 마구간으로 인도한 베들레헴의 별(Star of Bethlehem)을 혜성처럼 묘사했다전문가들은 조토가 본 혜성이 핼리혜성이라고 주장한다.


예술가들은 어두운 밤하늘을 바라보면서 눈으로 빛나는 영감을 건졌다. 멕시코의 화가 디에고 리베라(Diego Rivera)일식(日蝕)에 매료됐다. 그는 프리다 칼로(Frida Kahlo)와 함께 지붕 위에 올라가서 일식을 관측했다고 한다독일의 판화가 알브레히트 뒤러(Albrecht Düre)는 자택에 천문관측소를 설치했다. 그는 연작 목판화 묵시록(1511)에 혼돈을 상징하는 유성을 그렸다.


플라톤(Plato)국가에 등장하는 트라시마코스(Thrasymachus)는 정의에 대해 소크라테스(Socrates)와 대화를 나눈다. 트라시마코스는 전문가는 실수하지 않는 사람이라고 주장한다그의 주장은 틀렸다. (삼단 논법으로 반박하자면) 전문가는 사람이다. 사람은 실수한다. 전문가는 실수한다. 지식이 부족해서도 실수하고, 지식이 많이 있어도 실수한다.


코스미그래픽과 널빤지 코스모스의 역자 모두 과학 전문가. 코스미그래픽의 역자 지웅배는 천문학자 겸 과학 해설자(science communicator). 널빤지 코스모스의 역자는 곽영직 교수. 곽 교수는 다작하는 과학 전문 저술가. 그가 직접 쓴 과학책, 번역서, 감수한 책들이 상당히 많다.[주3]


공교롭게도 코스미그래픽과 널빤지 코스모스, 두 책 모두 겉은 보기 좋으나 속에 흠이 많다. 널빤지 코스모스코스미그래픽못지않게 오자와 오류가 있다책 제목은 코스모스인데 책을 펼쳐 보면 카오스(Chaos, 혼돈)’역자들만 실수하는가? 이 책의 편집과 교정을 맡은 출판사 직원도 실수한다.






<cyrus의 주석>

 




[1] 코스미그래픽서평, <안녕하세요, 지구인. 제 목소리 들리십니까?>(2024년 1월 23일 작성)

https://blog.aladin.co.kr/haesung/15244507



[2] 칼 세이건의 코스모스번역본은 두 가지 버전이 있다. 2004년에 처음 나온 책은 판형이 큰 널빤지 책이다. 정가는 5만 원이다. ‘벽돌 책으로 알려진 코스모스보급판이다.



[3] 곽 교수가 쓴 책 중에 칼 세이건의 코스모스읽기(세창출판사, 2021)가 있다.





* 16, 19





보르기아 보르지아(Borgia)

 



* 33





단테의 낙원 단테의 천국(paradiso)




* 75





1851년 프랑스 쿠테타 1851년 프랑스 쿠데타





* 84

 

 리베라는 그의 아내 프리다 칼로[4]를 비롯해 몇몇 사람들과 함께 지붕으로 달려가 일식을 관측했다.

 


[4] 이 문장을 이렇게 고쳐 쓰고 싶다. “프리다 칼로의 남편 리베라는 프리다를 비롯해 몇몇 사람들과 함께 지붕으로 달려가 일식을 관측했다.” 리베라의 역겨운 여성 편력을 생각하면 프리다 칼로의 남편이라는 표현을 쓰고 싶지 않다.




* 88, 91





알렉산드르 브로딘의 오페라 <이고르 왕자

알렉산드르 보로딘(Aleksandr Borodin)의 

오페라 <이고르 공(, Prince Igor)>


오페라 제목을 이고르 왕자라고 쓰는 사람들이 있다. 이렇게 써도 틀렸다고 볼 수 없다. 그래도 가장 많이 알려진 제목은 이고르 공이다.

 




* 98, 133, 199, 275







고대 로마의 작가 플리니우스가 쓴 자연의 역사(Natural History)

[주5]



[주5] 국내에 알려진 플리니우스(Plinius)의 책 제목은 박물지.





* 160


드니 디드로의 스물여덟 권짜리 백과사전[주6]


[주6] 백과전서로 알려진 방대한 분량의 저작물은 드니 디드로(Denis Diderot)가 혼자 쓰지 않았다. 달랑베르(Jean Le Rond d’Alembert), 볼테르(Voltaire)가 포함된 100여 명의 지식인이 백과전서 집필에 참여했다. 디드로와 달랑베르는 백과전서의 공동 편집장이다.

 





* 206





우루술라 우르술라(St. Ursula)




* 133쪽






* 207





베르길리우스의 전원시 아이네이스』 

베르길리우스의 서사시 아이네이스[주7]



[주7] 아이네이스전원시가 아니다. 트로이의 장군 아이네이스가 긴 여정 끝에 로마를 건국하는 과정을 그린 장편 서사시. 전원시는 전원에서 사는 삶을 주제로 한 시다. 지금까지 알려진 베르길리우스의 또 다른 작품이 총 열 권으로 이루어진 전원시(Eclogues). 그런데 이 책 133쪽에 <Eclogues>가 한 차례 언급되는데 곽 교수는 작품 제목을 시선(詩選)’으로 오역했다.




* 217

 




 심지어 현실적이었던 사회주의 화가 -프랑수아 밀레[주8]단테의 코메디아의 큰 불Inferno[주9]5편을 나타내기 위해 상상력이 풍부한 캔버스화인 <유성>을 그렸다.

 


[주8] 저자들이 밀레(Jean-François Millet)사회주의 화가로 착각했다. 밀레1850년에 <건초를 묶는 사람들>을 살롱에 출품한다. 살롱전에 관람한 기자들은 그의 작품을 비난하면서 밀레를 사회주의자로 단정했다. 밀레는 자신에 관한 전기를 쓴 친구 알프레드 상시에(Alfred Sensier)에게 보낸 편지에 기자들의 비평에 불쾌감을 드러냈다. 밀레는 사회주의뿐만 아니라 공화주의와 민주주의도 배격했으며 비평가들이 자신을 어느 당파로 규정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았다. (참고문헌: 즈느비에브 라캉브르 외, 밀레, 창해, 2000)



[주9] 단테의 코메디아(La Divina Commedia Di Dante Alighieri)’는 단테 사후에 붙여진 신곡의 원제. <Inferno>신곡1부인 <지옥> 편이다.




* 242, 243

 




 우리은하는 어떻게 형성되었을까? 베네치아의 르네상스 화가 야코포 틴토레토가 상상력을 발휘해 그린 것처럼 비너스가 흘린 젖[주10]에 소용돌이치는 나선 형태를 더해 만들어진 것은 틀림없이 아닐 것이다.



[주10] 인용문은 틴토레토(Jacopo Tintoretto)의 그림 <은하수의 기원>을 언급한 내용이다. 틴토레토는 그리스 신화로 전해지는 우리은하의 기원을 묘사했다. 신화에 따르면 제우스(Zeus)는 전쟁에 참전한 암피트리온(Amphitryon)으로 변신하여 그의 아내 알크메네(Alcmene)와 동침했다. 알크메네는 임신하여 헤라클레스를 낳았다. 제우스는 아기 헤라클레스를 불사신으로 만들려고 헤라(Hera)가 잠든 사이에 젖을 물리게 했는데, 잠에서 깬 헤라는 아기를 밀쳐냈다. 이때 헤라의 가슴에 흘러나온 모유는 밤하늘에 뿌려져 은하수(Milky Way)가 되었다고 한다. 틴토레토의 그림에 묘사된 여신은 비너스(Venus)가 아니라 헤라다. 그림 오른쪽에 헤라를 상징하는 공작새가 있다.





* 253

 




 태양계의 주요한 행성들의 이름은 고대 그리스 로마 올림픽 신들[주11]의 이름을 따라 지어졌다.

 


[주11] 올림픽이 아니라 올림포스(Olympos)’. 올림포스는 열두 명의 신이 모여 있다고 전해지는 산의 이름이다. 올림픽은 고대 그리스의 올림피아(Olympia) 제전에서 유래된 단어다.





* 254




 

 갈릴레이는 지역의 유력 인사들에게 자신의 페르스피실룸으로 베네치아에 있는 마르크스 바실리카[12]의 종탑을 보여 주고, 이 도구로 바다 멀리에 있는 배를 얼마나 더 잘 볼 수 있는지를 확인시켜 이것이 상업적이나 군사적으로 큰 가치가 있다는 것을 증명했다.

 


[12] 마르코 바실리카(Basilica San Marco)





* 271





이탈리아의 미래학자 겸 화가였던 자코모 발라 [주13]



[주13]이탈리아의 미래주의(Futurism, 미래파, 미래주의자) 화가였던 자코모 발라(Giacomo Balla). 미래주의는 20세기 초 이탈리아에 유행한 근대 예술 유파다. 미래주의 예술가들은 과거와 전통 예술을 거부하고, 기계의 역동성을 찬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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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관에 갑니다
미리엄 엘리아.에즈라 엘리아 지음, 신해경 옮김 / 열화당 / 202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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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미술을 무지[1] 좋아합니다. 하지만 현대미술은 무지 어려워요. 그래서 나는 현대미술에 무지[2]해요.










현대미술이 어려워도 괴롭혀도 나는 안 울어요. 참고 또 참지, 울긴 왜 울어요? 울면 바보예요. 나는 웃으면서 미술관에 갑니다라는 책을 읽습니다.


미술관에 갑니다5살 미만 유아를 위해 쇠똥구리 출판사가 펴낸 배움 책시리즈 첫 번째 책입니다쇠똥구리 출판사는 영국의 조그만 마을 똥골(Dunging)’[3]에 있는 교육 전문 출판사입니다출판사의 신조는 배움은 똥에서 온다입니다


본문 밑에 새로운 낱말이 있어요. 책에 나온 모든 낱말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아이가 받아쓰기 시험 성적을 잘 받기를 원한다면 이 책을 권하세요. 아이가 단어를 완전히 이해할 때까지 반복적으로 쓰도록 하세요. 교육비를 최대한 아끼면서 자녀에게 조기 교육을 해주고 싶은 현명한 부모라면 배움 책시리즈를 선택하세요.







미술관에 갑니다는 부모와 자녀가 함께 읽을 수 있는 책입니다. 현대미술이 아무리 어렵다고 해도 요즘 나오는 작품들의 가격은 계속 치솟고 있습니다. 미술품 하나 사들이세요. 당신이 소유한 미술품의 가격이 상승하면 매력적인 상품이 되거든요. 당장 미술품을 살 돈이 없으면 아이에게 미술품에 투자하는 방법을 가르쳐주세요. 그러려면 제일 먼저 현대미술을 알아야 해요. 미술관에 갑니다는 현대미술의 모든 것을 알려 줍니다. 이 책을 읽은 자녀는 미술품을 가지고 노는 벤처 자본가가 될 수 있습니다.


자녀와 함께 미술관에 가길 원하는 부모는 미술관에 갑니다를 반드시 읽어야 합니다. 미술관을 죽도록 즐기는[4] 방법을 알 수 있어요. 현대미술을 어려워하는 자녀에게 죽도[5]로 때리면서 가르치지 마세요. 자녀가 이 책을 읽고 난 다음에 미술관에 같이 가도 늦지 않습니다. , 자녀가 미술관에 갑니다를 반복해서 읽어야 합니다. 자녀가 미술관을 좋아하도록 세뇌[6]해야 합니다.


이 책의 주인공 수전(Susan)(John)은 엄마와 함께 미술관에 갑니다. 엄마는 술은 싫어해도 예술은 좋아해요. 미술관에 간 엄마는 예술에 취해 기분이 좋은 상태예요. 하지만 수전과 존은 미술품을 볼 때마다 머리가 어질어질해서 쓰러질 지경입니다.







현대미술을 처음 접하는 아이들은 이 책을 보자마자 당혹스러워할 겁니다. 그러면 당신은 자녀에게 이렇게 얘기하세요. 이해 안 되는 게 좋아.”







만약에 자녀와 미술관에 같이 가게 되면 부모인 여러분이 직접 도슨트가 되십시오. 호기심 반 의문 반을 품은 자녀가 부모에게 끊임없이 질문을 할 겁니다. 당신은 친절하게 대답해 주세요. 되도록 어려운 용어를 섞으면서 말하세요. 아이들은 부모의 말이 무조건 옳다고 생각합니다. 당신이 대답을 잘하면 아이들은 현대미술을 의심하지 않을 것입니다. 하지만 제대로 알고 싶어서 질문을 계속하는 아이가 있을 거예요. 더 이상 대답하기가 곤란하면 아이에게 스마트폰으로 직접 검색해 보라고 말하세요요즘 아이들은 책보다 스마트폰을 더 좋아하거든요. 


미술관에 갑니다를 구매하기 전에 신중하게 생각하세요. 당신의 자녀가 이 책을 수백 번 지겹도록 읽었는데도 현대미술을 모르겠다고 말할 수 있어요. 책값과 자녀가 이 책을 읽는 데 허비한 시간이 아까울 거예요. 그렇지만 쇠똥구리 출판사는 이 상황에 대해서 절대로 책임지지 않습니다.







현대미술을 이해하지 못한 아이를 꾸짖지 마세요현대미술을 모르겠다고 솔직히 말한 아이는 지혜롭답니다. 본인이 무지하다는 것을 잘 아는 자녀는 미래에 소크라테스(Socrates) 뺨치는 철학자가 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아이에게 현대미술 대신에 철학을 공부하도록 권장해 보세요. 쇠똥구리 출판사는 올해에 어린이를 위한 철학책 시리즈를 선보일 예정입니다. 시리즈 이름은 개똥철학 배움 책입니다. 쇠똥구리 출판사는 신조를 철저히 지킵니다비록 중소 출판사이지만, 직원들은 구텐베르크 은하계를 지탱할 정도로 똥이 단단합니다.


쇠똥구리 출판사에서 일하는 모든 직원은 미술관에 갑니다미술책이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우린 이걸 기서[7]라고 부르기로 했어요.

 




<새로운 낱말 사전>

 


[1] 무지: 아주 대단히

[2] 무지: 無知. 아는 것이 없음

[3] Dunging: 비료를 뿌리는 행위, 배설

[4] 죽도록 즐기기: 미국의 평론가 닐 포스트먼(Neil Postman)의 저서 제목

[5] 죽도: 대나무로 만든 칼. 한때 교사들이 선호했던 사랑의 매’였음.

[6] 세뇌: 가스라이팅

[7] 기서奇書, 내용이 기이한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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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니데이 2024-02-10 09:1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cyrus님 올해도 건강하고 좋은 한 해 되시기를 바라겠습니다. 새해복많이받으세요.^^

cyrus 2024-02-11 19:16   좋아요 1 | URL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서니데이님. 설 연휴 잘 보내고 계시죠? 벌써 마지막 연휴 하루가 남았어요. 시간이 금방 흘러가서 아쉽지만, 마지막 날도 즐겁게 보내세요. ^^

stella.K 2024-02-10 10:4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아, 맞아. 세뇌라고 하면 될걸 어느 때부턴가 가스라이팅이라는 말이 가스같이 화~악 퍼졌어. ㅋ 역시 책을 많이 읽더니 언어유희가 장난이 아니군. 죽도 가지고 널 죽도록 패 줄 수도 없고. ㅋㅋㅋ 암튼 명절 연휴 잘 보내라.^^

cyrus 2024-02-11 19:18   좋아요 0 | URL
제 글을 잘 읽어 보면 개그 포인트가 여러 개 있어요. ㅎㅎㅎ 마지막 연휴 하루 남았지만, 내일 좋은 하루 보내세요. ^^
 
출산의 배신 - 신화와 비극을 넘어서
오지의 지음, 박한선 감수 / 에이도스 / 202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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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점  ★★★★  A-









산다는 건 그런 게 아니겠니.

원하는 대로만 살 수는 없지만

알 수 없는 내일이 있다는 건 설레는 일이야.

두렵기는 해도 산다는 건 다 그런 거야.

누구도 알 수 없는 것.


 

- 여행스케치 <산다는 건 그런 게 아니겠니>(1994) 노랫말 중에서 -




Ignorance is bliss. 모르면 행복하다. 이 말을 반대로 뒤집어 보자. 알면 불행하다. 정말 그렇다. 부정적인 상황을 직시하면 불안하다. 아무것도 모르는 상태라면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마음이 편해진다.

 

모르는 게 약이다. 불편한 진실을 알고 나면 기분이 찝찝하다. 그럴 때 눈 딱 감고 ‘몰라(mola)라는 약을 꿀꺽 삼키면 된다. ‘몰라는 약국에 팔지 않는다. 모든 사람이 스스로 이 약을 지어서 처방한다. ‘몰라는 우리가 살아가면서 감기약보다 제일 많이 먹은 약이다꼭 알아야 하는데, 이런저런 이유로 알고 싶지 않을 때 몰라를 꺼내 먹는다미혼인 사람들이 회피하고 싶은 대화 주제가 결혼이라면 기혼자들이 부담스러워하는 대화 주제는 출산과 육아다. 이들 모두 연휴 기간에 평소보다 더 많은 양의 몰라를 먹는다. 


출산은 인간의 삶이 본격적으로 시작되는 출발선이다. 이때가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순간이지만, 한편으로는 처음으로 맞닥뜨리게 되는 인생의 최대 고비다. 출발선을 통과하기도 전에 죽는 아기가 있다. 출발선을 너무 빨리 넘어선 아기는 오래 살지 못한다. 의사들은 이 아기를 미숙아로 진단한다.


우리는 출발선을 무사히 통과해서 지금까지 잘살고 있다. 그런데 출산을 생소하게 여기거나 불편해한다. 여자들은 아이를 낳지 않으려고 한다. 그녀들은 국가 소멸로 이어지는 저출산 현상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정작 두려워하는 것은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아픈 산고(産苦). 그뿐만 아니라 출산 후에 일어나는 몸의 변화에 거부감을 느낀다. 예전의 날씬한 몸으로 되돌리기 힘들다막연한 두려움이 커질수록 출산을 피한다출산이 어떻게 이루어지는지 자세히 알고 싶어 하지 않는다. 출산을 실제로 알고 나면 더 무섭다이럴 때 모르는 게 약이라고 믿는 사람들은 ‘몰라를 남용한다. 출산에 대한 두려움을 잊은 그들은 행복하다. 의도적으로 무지를 복용하는 일에 익숙한 사람들은 출산이 남의 이야기로 들린다.


남자들에게 임신과 출산은 입 밖으로 먼저 꺼내기 쉽지 않은 대화 주제이다. 요즘 남편들도 출산 휴가를 사용할 수 있고(회사 눈치 보느라 마음 놓고 활용하지 못하는 배우자들이 여전히 있다), 임신한 아내를 위해 몸에 좋은 음식을 만들 줄 안다. 그래도 임신과 출산에 대해 모르는 게 많다남자들은 임신과 출산을 경험하지 않아서 신체적 · 정신적 변화를 알지 못한다.


출산의 배신: 신화와 비극을 넘어서는 출산과 양육의 세계를 덮고 있던 무지와 외면의 베일을 확 벗긴 책이다저자는 산부인과 의사다. 임신, 출산, 육아 경험이 있으며 누구보다도 임신과 출산에 대한 전문적인 지식을 갖춘 전문가다. 그렇지만 저자는 산부인과 의사가 알고 있어야 할 지식과 엄마로 살아가면서 경험하는 현실이 확연히 다르다는 사실을 깨닫는다지식과 현실이 서로 어긋나면서 생긴 거대한 틈에 빠진 저자는 출산과 양육이 왜 힘든 일이 되었는지 이야기한다.


저자는 임신과 출산이 어떻게 이루어지는지 본인의 경험에 과학적 지식을 입혀서 설명한다임신, 출산, 육아 활동을 아우르는 삶을 전문 용어로 재생산이라고 한다저자는 여성의 재생산 활동이 인간이 살아가는 데 있어서 매우 중요한 일인데도 불구하고 출산과 양육의 부정적인 면모만 두드러졌다고 지적한다


인구 늘리기에만 골몰한 국가는 여성에게 출산을 강요한다. 심지어 출산과 육아를 한 번 경험한 여성에게도 아이를 더 낳아달라고 재촉한다. 국가의 명령에 충실한 사람들은 여성들에게 갖가지 요구사항을 제시한다. ‘여자는 어머니가 되면 자식을 위해 희생해야 한다. 그것이 바로 진정한 모성이다. 몸이 아프더라도 자식 건강이 우선이다.’ 아이와 함께 산전수전 겪어봤으니 다음 출산과 육아도 잘할 거라고 믿는다. 반면 자신들이 요구한 것을 실행하지 못하면 비난하고 질책한다. 아이가 건강하게 자라지 못하면 엄마의 양육 방식을 문제 삼는다. 아직도 많은 사람은 불임의 책임을 여성에게만 떠넘긴다우리 사회는 여성의 재생산 활동을 제대로 알지 못하면서 일단 해보라는 식으로 밀어붙인다이러한 분위기 속에서 여성에게 아이를 낳으라고 강요하는 것은 도둑놈 심보.


출산의 배신출산과 육아가 여성만 하는 일이 아니라 모두가 하는 일이라고 강조한다. 여기까지만 보면 이 책이 출산을 장려한다고 생각할 수 있겠다. 하지만 이 책은 여성에게 희생을 요구하는 출산 문화를 비판한다. 출산과 육아는 상당히 까다롭고 힘든 일이다. 왜냐하면 예상하지 못한 상황이 일어날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재생산 활동이 생각보다 아름답지 않으며 상식대로 이루어지지 않음을 알아야 한다우리는 예측 불가능한 상황을 불편해하고 견디지 못한다. 그래서 출산과 육아는 힘든 일이라고 막연하게 생각한다. 출산과 육아라는 단어를 들으면 호기심보다는 두려움을 더 크게 느낀다출산과 육아를 바라보는 관심이 점점 줄어들수록 모르는 게 더 많아진다출산과 육아를 모르는 것은 절대로 약이 될 수 없다. 오히려 우리에게 독이 된다무지함이 지속되면 우리 삶에 아주 밀접한 단어인 출산과 육아가 희미해져서 보이지 않게 된다그뿐만 아니라 임산부와 어머니의 삶도 제대로 보지 못한다. 출산에 대해서 누구나 편안하게 이야기할 수 있어야 한다우리는 출산이라는 인생의 첫 출발선을 넘은 다 큰 애들아닌가



출산한다는 건 그런 게 아니겠니. 

원하는 대로만 살 수는 없지만, 

알 수 없는 내일이 있다는 건 설레는 일이야.






   ※ cyrus의 주석

 

 


* 38

   




 재생산과 연관된 호르몬의 파고는 확실히 평소와 다른 감정 상태를 만든고[주1] 평소에 하지 않을 법한 행동을 하게 만든다.

 


[1] 만들고의 오자.





* 196~197




 

 암컷은 언제나 스스로 낳은 아기가 분명한 자기 자식인 것을 알 수 있지만, 수컷은 상대적으로 그렇지 않다. 특히 우리의 유인원 친척들처럼 다부다처제나 할렘[2]을 이루고 살아간다면 더욱 확신이 떨어진다.



[2] 할렘(harlem)’은 빈민가의 대명사로 알려진 미국 뉴욕에 있는 지역 이름이다. 중동 국가의 일부다처제로 잘못 알려진 용어하렘(harem)’으로 표기해야 한다. 하렘은 무슬림 여성들만 모여 있는 방을 뜻한다. 그런데 동양 문화를 과대평가한 18~19세기 유럽 지식인들, 소위 오리엔탈리즘(orientalism)에 빠진 그들은 하렘을 퇴폐적인 일부다처제로 왜곡해서 묘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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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인형의 화학 공부 - 완전히 새로운 화학 입문
여인형 지음 / 사이언스북스 / 202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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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점  ★★★★  A-






물리학, 화학, 수학. 자연과학대를 굳게 지키는 것은 이공계 삼 대장이다. 자연과학대 소속 학생들은 삼 대장을 무찔러 넘어서야 한다. 전부 날려버리지 않으면 성적이 날아간다. 대장 한 명을 상대하는 것도 버거운데 대장 두 명이 합세하면 공부해야 할 양이 많아진다.[주1] 물리학과 수학은 최강 단짝이다. 이 둘이 만날 때마다 이론과 법칙들이 태어났다. 두 대장이 과학사를 썼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똑똑한 아인슈타인(Einstein)도 오랫동안 호흡을 맞춘 물리학과 수학을 동시에 상대하느라 애먹었다치열한 지적 결투 끝에 아인슈타인은 승리했고, 과학사에 길이 남을 위대한 승전보를 남겼다. 거기에 담긴 내용이 특수상대성이론이다.[주2]


물리학과 수학이 너무 어려운 학문으로 많이 알려지다 보니 화학 공부의 어려움이 덜 알려진 편이다. 이공계 삼 대장이 어려운 이유 중 하나는 교과서 특유의 딱딱한 문체다. 교과서 문장은 눈으로 따라가기 벅찰 정도로 길고(만연체), 눈을 피곤하게 만들 정도로 건조하다(건조체)여기에 전문 용어까지 가세하면 공부하기가 수월하지 않다공부할 시간이 부족한 학생들은 용어의 의미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채 외운다.

 

여인형의 화학 공부(약칭 화학 공부’)교과서 같지 않은 화학 교과서. 이 책은 화학 교과서가 맞다. 저자 여인형은 화학 교과서를 집필한 이력이 있는 대학교수다. 저자는 학생들을 가르치면서 사용한 화학 교과서와 교재의 문제점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국내에 출판된 화학 교과서 대부분은 외국의 과학 교과서를 번역한 것이거나 외국 교과서의 주요 내용을 참고해서 쓴 것들이다. 번역하는 과정에서 원문과 용어의 의미가 달라질 수 있다. 교과서 저자 또는 역자의 글쓰기 역량이 부족하면 피해를 보는 건 학생들이다. 단점이 많은 화학 교과서를 만난 학생들은 삼중고를 느끼면서 공부한다. 방대한 화학 이론과 생소한 전문 용어를 이해하는 것도 힘든데, 계속 읽어도 도무지 알 수 없는 이상한 문장이 공부를 방해한다.


저자는 《화학 공부》에서 기존 화학 교과서와 차별화된 글쓰기를 시도한다. 그는 화학을 우리말로 설명하거나 풀어 쓰면 학생들이 시간적 · 정신적 부담을 덜어내면서 공부할 수 있을 거로 생각한다. 그래서 이 책의 원래 제목은 국어로 읽는 화학이었다공부하다 보면 반드시 외워야 할 화학 지식이 있다. 특히 화학을 공부하는 사람들이 가장 많이 암기하는 것이 주기율표에 나오는 원소들이다저자는 자신만의 암기법을 알려준다화학 공부》를 처음부터 끝까지 순서대로 읽지 않아도 된다이 책을 화학 사전’처럼 읽을 수 있평소 궁금했거나 알고 싶은 화학 이론이나 용어가 색인(찾아보기)에 있는지 찾아본다.


교과서는 지식을 가르치려고 한다. 독자의 수준을 배려하지 않은 채 설명한다. 하지만 화학 공부는 지식을 가르치기 전에 그 지식이 우리 삶에 가까이 있다는 사실을 알려준다. 화학 지식은 교과서나 연구실에만 있는 건 아니다. 화학에 흥미가 있으면 우리 주변에 일어나는 여러 가지 화학 작용을 확인할 수 있다우리 가까이에 있는 화학이라면 재미 삼아 공부해 볼 만하다.




 


[주1] 만화 <원피스>에 나오는 해군 대장 삼인방을 패러디했다. 가장 유명한 해군 대장 3인은 볼사리노, 사카즈키, 쿠잔이다. 이 세 사람의 높은 인지도 때문에 한때 삼 대장 관련 밈이 유행했다.

 


* 자연과학대를 굳게 지키는 것은 이공계 삼 대장이다.


→ 그 눈 아래에서 처형대를 굳게 지키는 것은

해군본부 최고 전력

3인의 해군 대장’ 

(<원피스> 원작 550해군본부중에서)

 


* 전부 날려버리지 않으면 성적이 날아간다.


해군 대장이든 사황이든 간에 전부 날려버리지 않으면!!!

난 해적왕이 될 수 없다고!!! (몽키 D. 루피의 대사)




[2] 필자가 쓴 B. 캐럴(Sean B. Carroll)우주의 가장 위대한 생각들: 공간, 시간, 운동》(김영태 옮김, 바다출판사, 2024년) 서평을 참고할 것. 간략하게 설명하자면, 아인슈타인은 리만 기하학을 이용해 특수상대성이론을 유도하는 데 성공했다. 

 




* 56~57

 




 수소 원자에서 전자의 운동을 행성의 공전에 비유하고, 전자는 불연속적인 각운동량 값만을 가질 수 있다는 모형을 처음 제시한 과학자는 네덜란드 물리학자 닐스 보어(Niels Bohr)였습니다. [3] 그 모형은 수소 원자의 방출 스펙트럼을 근거로 양자화 개념을 제시한 훌륭한 것이었습니다. 또한 그는 음전하를 띠는 전자와 양전하를 띠는 원자핵 사이의 거리를 적절하게 유지하면서 전자가 등속 원운동을 한다고 가정해 수소 원자의 반지름(52.9m)도 구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보어 모형에는 수소 원자의 다른 특성, 그리고 수소보다 더 많은 전자를 가진 원자의 특성을 설명하지 못한다는 약점이 존재했습니다. 더구나 양자 역학에 따르면 전자는 원운동을 하면서 일정한 고정된 궤도를 따라서 원자핵 주위를 돌고 있는 것이 아니며, 원자핵으로부터 보어의 수소 반지름만큼 떨어진 위치에서 전자를 발견할 확률이 가장 크다는 식으로 서술되어야만 했습니다.


[3] 태양 주위를 공전하는 행성처럼 원자핵 주변에 원운동을 하는 전자 모형을 처음으로 제시한 과학자는 어니스트 러더퍼드(Ernest Rutherford). 하지만 러더퍼드 원자 모형은 수소 원자의 스펙트럼을 설명하지 못했다. 그리고 원운동을 하는 전자는 에너지를 방출하는데, 에너지를 잃은 전자는 원자핵과 충돌한다. 따라서 러더퍼드 원자 모델을 따르는 모든 원자는 안정적인 상태로 유지되지 못한다. 닐스 보어는 러더퍼드 원자 모형의 문제점을 보완하기 위해 양자 개념을 도입한 원자 모형을 제시했다. 보어가 네덜란드 물리학자로 잘못 소개되었다. 보어는 덴마크 출신이다.





* 60



 


 전자가 파동이라는 사실의 이해는 파동 방정식의 발명으로 이어졌습니다. 파동 방정식은 1926년 오스트리아 물리학자 에르빈 슈뢰딩거(Erwin Schrödinger)가 고안했고, 그것으로 1932 노벨 물리학상을 받습니다. [4]

 

[4] 슈뢰딩거가 노벨 물리학상을 받은 연도는 1933년이다. 이 해의 노벨 물리학상은 공동 수상자가 나왔는데, 또 다른 한 명은 폴 디랙(Paul Dirac)이다. 1932년 노벨 물리학상 수상자는 베르너 하이젠베르크(Werner Heisenberg).





* 88

 

 그는 노벨상을 받는 행운은 없었지만, 화학 분야에 정말로 많은 기여를 했습니다. 미국의 명문 캘리포니아 대학교 버클리 캠퍼스에 화학과를 설립한 사람이기도 합니다. [5]

 

[5] 미국의 화학자 길버트 뉴턴 루이스(Gilbert Newton Lewis)는 캘리포니아 대학교 버클리 캠퍼스 화학과를 설립한 사람이 아니다. 화학과가 처음으로 설립된 날짜는 1872312일이다. 길버트 뉴턴 루이스는 1912년에 미국 캘리포니아 대학교 버클리 캠퍼스 화학 대학 제2대 학장으로 임명되었다. (출처: “A brief history of the University of California”, chemistry.berkeley.edu)





* 559


영국 과학자, 로버트 보일(Robert Boyle, 1627~1691) [주6]

 

[주6] 로버트 보일은 아일랜드인이다. 위키피디아(Wikipedia)는 보일을 Anglo-Irish natural philosopher, chemist, physicist, alchemist and inventor’로 소개한다. 앵글로 아일랜드의 조상 대부분은 아일랜드로 이주한 잉글랜드 출신이다.





* 561~562

 

 프랑스 과학자, 자크 샤를(Jacques Charles, 1746~1823)의 이름을 딴 샤를의 법칙(C)은 일정한 압력(P)에서 기체의 부피(V)는 절대 온도(T)에 비례한다는 뜻입니다. [주7]

 

[주7] 샤를-게이뤼삭의 법칙또는 게이뤼삭의 제1 법칙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샤를은 1787년에 기체의 팽창 현상을 연구했으나 논문으로 발표하지 않았다. 프랑스의 물리학자 게이뤼삭(Joseph Louis Gay-Lussac)은 샤를의 실험 결과를 인용해서 1802년에 기체 팽창의 법칙을 발표했다.





참고 문헌

 





* 615


로얼드 호프만, 같기도 하고 아니 같기도 하고(이덕환 옮김, 까치, 1995) [주8]

 

빌 브라이슨, 거의 모든 것의 역사(이덕환 옮김, 까치, 2003) [주9]

 





* 616


최무영, 최무영 교수의 물리학 강의(책갈피, 2008) [10]



[주8] 초판 발행 연도는 1996이다. 2018년에 개정판이 출간되었다.

[주9] 2020년에 개정판이 출간되었다.

[10] 2019년에 개정판이 출간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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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1-24 12:08   URL
비밀 댓글입니다.

cyrus 2024-01-25 07:03   좋아요 0 | URL
안녕하세요. 제 의견이 틀릴 수도 있습니다. 제 의견도 검토해서 고쳐야 할 부분이 있거나 더 보완해야 할 내용이 있으면 알려주세요. 다시 정리해서 쓰겠습니다.

2024-01-25 10:16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4-01-26 23:16   URL
비밀 댓글입니다.

cyrus 2024-01-27 20:46   좋아요 0 | URL
가끔 책을 너무 많이 읽는 삶에 단점이 있다고 느껴요. 이 책 저 책에 관심을 두면 한 권의 책을 끝까지 읽지 못하거든요. 그리고 책 좋아하는 이미지가 상대방이 호감을 느낄 수 있는 매력이 될 수 없거든요. 누군가는 잘난 척하는 사람으로 볼 수 있고, 또 다른 사람은 책 밖에 몰라서 대화를 재미없게 한다고 생각할 수 있어요. 인제 와서 독서의 재미를 완전히 포기하는 건 늦었구요.. ㅋㅋㅋ 이대로 살아가려고요.

페크pek0501 2024-01-28 13: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좋은 책 같습니다. 그런데 6백 쪽이 넘네요. 요즘 벽돌책이 많이 나오고 많이 팔리는 것 같습니다.
이런 책을 완독하고 나면 완전 뿌듯하겠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