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주는 4월 중 가장 바쁜 한 주였습니다. 월요일(23일)은 레드스타킹 정기 모임, 목요일(24일)은 우주지감 정기 모임, 금요일(25일)은 ‘치유의 전복적 대화’ 토론회, 토요일(26일)은 ‘꽃보다 페미니즘’ 2강이 있었습니다. 일요일(27일)은 《과학혁명의 구조》 읽기 두 번째 모임이 있는 날인데 책을 읽지 않아서 불참했어요. 써야 할 후기가 잔뜩 밀려 있습니다. 오늘 근로자의 날이라 쉴 수 있어서 좋네요. ^_^
* 김재인 《인공지능의 시대, 인간을 다시 묻다》(동아시아, 2017)
우주지감 ‘나를 관통하는 책읽기’ 예순 한 번째 모임 선정도서는 《인공지능의 시대, 인간을 다시 묻다》(동아시아, 2017)입니다. 오전 모임은 4월 24일 화요일, 오후 모임은 4월 26일 목요일에 진행되었습니다. 저는 오후 모임만 참석했어요.
저는 이 책을 읽었을 때 ‘각주주검(刻舟求劍)’이라는 사자성어를 떠올렸어요. 물속에 떨어뜨린 칼을 찾으려고 그 위치를 뱃전에 표시해 놓았다가 나중에 그 표시를 보면서 칼을 찾는다는 뜻인데요, 변화하는 현실에 어둡고 낡은 것만 고집하는 상황을 비판할 때 인용됩니다. 《인공지능》은 서울대학교 공대생을 위한 교양 과목 강의 내용을 엮어 작년에 나온 책입니다. 저자가 몇 년 동안 강의를 하고, 강의한 내용을 정리한 책이 나올 동안에 세상은 엄청나게 많은 변화가 일어났어요. 우리는 잠시만 한눈을 팔아도 엄청나게 많은 변화가 이뤄지는 세상에 살고 있어요. 그래서 《인공지능》을 읽었으면서도 미래의 인공지능 시대를 전망한 저자의 해석이 갇혀 있다는 느낌이 들었어요. 과연 내일의 문제(인공지능의 시대)를 어제의 해법(철학)으로 풀어낼 수 있을까요? 이 책이 인공지능의 등장을 두려워하는 사람들에게 일시적으로 ‘위안’이 될 수 있을지 몰라도 인공지능과 함께 살아갈 미래를 논하기에는 부족하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 에드문트 후설 《유럽학문의 위기와 선험적 현상학》 (한길사, 2016)
* 에드문트 후설 《현상학의 이념, 엄밀한 학으로서의 철학》 (서광사, 1988)
* 피에르 아도 《고대철학이란 무엇인가》 (열린책들, 2017)
* 섹스투스 엠피리쿠스 《피론주의 개요 (천줄읽기)》 (지만지, 2012)
어떤 현상에 대한 분석, 특히 인공지능과 그 미래를 둘러싼 논의는 정확한 정보가 아닌 선입견 또는 잘못 알려진 정보에 의존할 가능성이 많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진지한 논의 진행에 걸림돌이 되는 편견과 잘못된 정보에 벗어나려면 인공지능의 시대를 인식하는 우리의 태도는 ‘판단 중지(epochē, 에포케)’해야 합니다. ‘판단 중지’라는 용어는 현상학을 발전시킨 독일의 철학자 에드문트 후설이 제시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만 사실 이 용어는 고대 그리스 시대에 활동한 회의주의자들이 즐겨 썼습니다. 가장 대표적인 회의주의자는 고대 그리스의 철학자 피론입니다. 그래서 회의주의는 그의 이름을 따서 ‘피론주의’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피론은 많은 탐구를 해도 그것이 최종 진리라고 판단해서는 안 된다고 주장했습니다. 우리가 판단해야 할 대상, 즉 인공지능은 기술 종류, 발전 상태와 조건 등이 워낙 다양합니다. 인공지능을 바라보고 그것에 대해 일률적으로 판단하거나 설명할 수 없어요. 낙관적이면 낙관적인 것만 보이고, 비관적이면 비관적인 것만 보게 됩니다. ‘판단 중지’는 보고 싶은 것만 보는 자기중심적 마음을 경계합니다. 따라서 저는 인공지능 시대에 대한 김재인 씨의 입장(인간의 능력을 뛰어넘은 초인공지능이 실현하기가 쉽지 않다)에 동의하지 않았어요. 우리가 마주해야 할 인공지능 시대의 미래를 낙관적으로도, 비관적으로도 보지 않았습니다.
서론이 길어버렸네요. 이제 본론으로 들어가서 《인공지능》을 읽은 우주지감 멤버들의 의견 및 감상을 얘기해 보도록 하죠. 닷새가 지난 뒤에 후기를 쓰려고 하니까 어렵네요. 속기를 했습니다만 그 날 저녁 책방을 가득 채운 말들을 온전히 기억해내기가 힘드네요. 아무튼 생각나는 대로 써보겠습니다.
인공지능 시대의 미래를 비관적으로 보고, 이를 걱정하는 분들이 많았어요. 창식 쌤은 미래 사회에 ‘기계를 가진 자’와 ‘기계를 가지지 못한 자’로 구분되는 빈부 격차 문제가 일어날 거라고 말했습니다. 이러한 구도가 만들어지는 결정적인 원인이 바로 돈과 자본입니다.
완진 쌤은 인공지능이 발달하는 세 가지 요인을 언급했는데요, 하드웨어와 CPU, 그리고 ‘실수’였습니다. 인공지능도 실수와 결함이 있습니다. 알파고가 이세돌과 대전할 때에도 4번째 대국에서는 엉뚱한 실수로 패배했죠. 그런데 인공지능은 시행착오를 스스로 학습하여 실수를 줄이면서 발전을 거듭합니다. 창식 쌤은 인공지능이 실수를 통해 배우는 것, 즉 실수라는 경험도 학습하여 발전하는 인공지능의 향상이 때론 무섭게 느껴질 때가 있다고 말했습니다.
성은 쌤은 인공지능 미래에 대한 논의 없이 인공지능의 향상을 지나치게 긍정적으로만 보고, 거기에 이끌려 따라가는 듯한 사회적 분위기를 염려했습니다. 성은 쌤은 지금 현 상황을 율곡 이이의 ‘십만양병설’로 비유해서 설명했는데요, 우리 사회가 미래 변화에 대처하지 못하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영신 쌤은 인공지능의 시대를 사는 인간이 ‘기계의 노예’로 전락될 위기에 놓여 있다고 말했습니다. 영신 쌤은 인공지능이 ‘인간의 존엄성’을 침해할까 봐 걱정했습니다. 영신 쌤도 성은 쌤과 마찬가지로 인공지능의 발전으로 세상은 완전히 달라지고 있는데도 아무런 준비도 대책도 나오지 않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영신 쌤은 이러한 사회적 분위기가 지속된다면 미래 세대들은 ‘준비 없는 미래’를 맞이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습니다.
저자는 인공지능 시대에 인간이 할 수 있는 활동이 ‘창조성’을 유지하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무언가를 창조하는 일은 인공지능이 할 수 없는 일이기 때문이죠. 정희 쌤은 우리가 할 수 있는 창조적인 일로 ‘독서’를 꼽았습니다. 반면 은경 쌤은 우리 사회는 여전히 ‘창조성’을 발현하기에 시간적으로, 환경적으로 모두 부족하다고 말했습니다. 우리 사회를 지배하는 ‘새로운 것에 대한 두려움’, ‘실패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 등이 창조성의 발현을 억누릅니다.
인공지능 시대를 마냥 두려워만 할 필요는 없다고 말한 분이 있었어요. 호순 쌤은 이 책의 제일 마지막 문장(“이렇게 사는 건 재미있거든요.”, 367쪽)을 인용하면서 오히려 인공지능 시대가 오면 재미있는 삶이 펼쳐질 것 같다고 말했습니다. 동익 쌤은 다양한 양상으로 변화하고 전개되는 세상 속에 다양한 삶을 선택할 수 있고, 그것을 존중하는 마음가짐이 잃지 않길 바란다고 말했습니다.
창식 쌤이 다음 달부터 베트남에 거주하면서 일을 하게 됐어요. 4월 독서 모임이 창식 쌤의 마지막 우주지감 모임이 되었네요. 토론을 마치고 난 후에 창식 쌤을 위한 송별회를 했습니다. 송별회 음식은 ‘야식 삼인방’이라 할 수 있는 치킨, 족발, 떡볶이였습니다. 새벽 12시까지 우주지감 멤버들은 음식들을 맛나게 먹으면서 화기애애하게 대화를 나누었습니다.
‘나를 관통하는 책읽기’ 5월 선정도서
* 오전 모임 : 2018년 5월 29일
화요일 오전 11시
* 저녁 모임 : 2018년 5월 31일
목요일 저녁 7시 30분
* 장소 : 책방 <읽다 익다>
(오전 모임, 오후 모임)
다음 달 5월 우주지감 ‘나를 관통하는 책읽기’ 선정도서는 움베르토 에코의 《장미의 이름》(열린책들, 2009)입니다. 이 ‘어려운 책’을 누가 고른 거죠? 이 책을 또 읽게 될 줄이야…‥. 에코가 이야기 위에 수놓은 《장미의 이름》 속 지식들을 제대로 이해하고 싶어서 4월 말부터 유럽 중세사 관련 책을 읽기 시작했어요. 이러다가 중세철학도 공부해야 할 판입니다. 저는 ‘계획 독서’를 하면 늘 실패했는데요, 다음 달 모임에 불참하면 《장미의 이름》 읽기에 실패했다고 보시면 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