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3년 한뜻출판사가 펴낸 공포특급90년대 공전의 히트를 기록한 괴담집이다. [참고1] 괴담 신드롬의 열기에 힘입어 후속작이 등장했다. 1994년에 공포특급 2가 나왔고, 공포특급 3은 공포를 주제로 한 국내 작가들의 단편들을 모은 책이었다. 공포특급 4는 독자들이 보낸 무서운 실화 위주로 엮은 책이었다. 공포특급 5[참고 2]공포특급 6은 외국 공포문학 작품들을 수록했으며 각각 세계 편일본 편으로 내놓았다.

 

 

 

 

 

 

공포특급 5공포특급 6에 수록된 작품들은 추리소설 번역가 정태원 씨가 엄선하고 번역했다. 이 두 권의 책은 공포특급인기가 한풀 꺾였을 때 나왔다. 그렇다 보니 공포특급 5공포특급 6이 전작보다 인지도가 떨어지는 편이다. 하지만 정태원의 공포특급은 공포 문학이라는 장르 자체가 생소했던 90년대에 외국 유명 작가들의 공포소설을 소개한 귀중한 자료이다. 그 전에도 외국의 공포소설들이 소개되었지만, 조악한 편집으로 만들어진 아동용 괴담집에 수록되었다. 저자 소개가 생략된 채 민간 괴담처럼 소개되다 보니 어렸을 때 읽었던 무서운 이야기들이 소설이라는 사실을 뒤늦게 아는 경우가 있다. 그 대표적인 사례가 모파상의 단편소설이다. [참고 3]

 

정태원 씨는 공포특급 6서문에서 일본추리작가협회장을 지냈던 아토다 다카시, 이쿠시마 지로를 만났던 일을 술회하고 있다. 정태원 씨는 이 두 작가를 만나면서 장르문학의 꽃이 피지 않았던 척박한 90년대 문학 현실을 지적했다. 사실 아무리 유능한 작가라도 공포소설을 쓰는 일이 쉽지 않다. 공포소설을 많이 쓴 아토다 다카시도 공포소설 쓰기의 어려움을 토로한다.

 

 

공포라는 것은 순간적이고, 생리적이고, 비논리적인 성질을 갖고 있다. 그러나 정통소설의 표현은 지속적이고 사색적이며 논리적이기 때문에 공포소설을 쓴다는 것은 상당히 어려운 작업이다. 영상표현으로는 어두운 조명이나, 낡은 성, 문이 으스스하게 열리는 효과음 등으로 공포를 자아낼 수 있지만 문장표현으로는 여간해서 독자를 만족시키기 힘들다.” (공포특급 6서문 중에서)

 

....  (스티븐 킹 재평가행)

    

 

 

 

 

 

 

 

 

 

 

 

 

 

 

 

 

아토다 다카시(1935년 출생)는 호시 신이치(1926~1997)와 함께 단편소설보다도 짧은 쇼트 쇼트(short-short, 우리말로 풀이하면 공포 콩트)’ 소설로 정평이 난 작가다. 1978년 단편집 냉장고에 사랑을 담아가 나오키상 후보에 올랐고, 이듬해 단편집 나폴레옹광으로 나오키상을 수상했다. 1993년부터 1997년까지 일본추리작가협회장으로 활동했다.

 

 

 

 

이쿠시마 지로(1933~2003)끝없는 추적으로 나오키상을 받은 추리소설가다. 일본 판 <엘러리 퀸 미스터리 매거진> 편집장으로 활동하는 등 외국 추리 소설을 번역했다.

 

 

 

    

 

지로의 또 다른 대표작 한쪽날개의 천사는 이혼 경력이 있는 작가가 소프랜드(Soap land, 일본의 성인업소)에서 일하는 한국 여성을 만나 재혼하는 과정을 다룬 자전적인 소설이다. 이 소설은 큰 화제를 불러일으켜 영화로도 제작되었으나 지로의 두 번째 결혼 생활은 오래가지 못했다. 지로는 1989년부터 1993년까지 일본추리작가협회장을 지냈다.

 

공포특급 6에 아토다 다카시의 공포 콩트가 많이 수록되었다. 그에 비하면 이쿠시마 지로가 쓴 콩트는 두 편, 호시 신이치의 콩트는 고작 한 편에 불과하다. ‘일본 편이 아니라 아토다 다카시 편이라고 해도 어색하지 않다. 공포특급 6에 수록된 작품은 다음과 같다.

    

 

 

※ 국내에 작품이 번역된 일본 작가는 이름에 굵은 표시를 했음 

    

 

* 사라진 공터 (아토다 다카시)

 

* 흰 팔 (아토다 다카시)

 

* 마을집회 (아토다 다카시)

 

* 9번 홀 (아토다 다카시)

 

* 인형 과자 (아토다 다카시)

 

* 도깨비불 (아토다 다카시)

 

* 안개 속의 여인 (아토다 다카시)

 

* 웃는 백골 (아토다 다카시)

 

* 목걸이 (아토다 다카시)

 

* 아파트의 귀부인 (아카가와 지로)

 

* 금색핀 (호시 신이치)

 

* 창문 닦는 남자 (구로이 센지)

 

* 어느 버스 승객들 (나카이 히데오)

 

* 손님 (오오야부 하루히코)

 

* 가족탕 (아토다 다카시)

 

* 웃는 해바라기 (아토다 다카시)

 

* 화염이 사라질 때 (아토다 다카시)

 

* 스타 탄생 (아토다 다카시)

 

* 검은 홈런 (아토다 다카시)

 

* 벚꽃 여인 (아토다 다카시)

 

* 장기이식 (아토다 다카시)

 

* 주의부족 (아토다 다카시)

 

* 엿보기 (아토다 다카시)

 

* 위기 (모리 요코)

 

* 예언 (모리 요코)

 

* 스쳐 지나간 남자 (모리 요코)

 

* 인형 (스즈키 미치오)

 

* 거울아, 거울아 (스즈키 미치오)

 

* 유령배달 서비스 (스즈키 미치오)

 

* 머나먼 아버지 (스즈키 미치오)

 

* 흐느껴 우는 전화 (아토다 다카시)

 

* 붉은 달 (아토다 다카시)

 

* 여인의 레이스 뜨기 (아토다 다카시)

 

* 색다른 결투 (아토다 다카시)

 

* 유괴 (아토다 다카시)

 

* 저주의 나이프 (아토다 다카시)

 

* 방울소리 (아토다 다카시)

 

* 하늘을 나는 미라 (아토다 다카시)

 

* 404호실 (아토다 다카시)

 

* 상자 속의 당신 (야마가와 히사오)

 

* 시멘트통 속의 편지 (하야마 요시키)

 

* 곤충도 (히사오 주란)

 

* 어두운 바다, 어두운 목소리 (이쿠시마 지로)

 

* 유전 (이쿠시마 지로)

    

 

 

 

 

 

 

 

 

 

 

 

 

 

 

 

 

 

 

 

 

 

 

 

 

 

 

 

 

 

 

 

 

 

 

 

 

 

 

 

 

 

 

    

 

 

국내에 알려진 일본 작가들의 이름이 보인다. <아파트의 귀부인>을 쓴 아카가와 지로는 삼색 털 고양이 홈즈시리즈와 세 자매 탐정단시리즈 등을 쓴 일본의 추리소설가다. 국내에 출간된 삼색털 고양이 홈즈시리즈의 번역은 정태원 씨가 맡았다. 구로이 센지는 에곤 실레, 벌거벗은 영혼의 저자이기도 한 소설가다. 나카이 히데오는 일본 추리소설 3대 기서 중 하나인 허무에의 제물을 남겼다. 하야마 요시키는 게 가공선의 작가 고바야시 타끼지에게 영향을 준 일본 프롤레타리아 문학을 대표하는 작가다. 공포특급 6수록작 중 다른 단편선집에 소개된 작품이 히사오 주란의 <곤충도>와 하야마 요시키의 <시멘트통 속의 편지>. [P.S 1]

 

아토다 다카시의 <저주의 나이프><방울소리>는 저작권을 무시하고 만든 아동용 괴담집에 소개된 적이 있다. [P.S 2] 공포특급 6에 있는 이야기들을 하나하나씩 소개하지 못한 게 아쉬울 따름이다. 예상치 못한 결말이 있는 작품 몇 편을 제외하면 나머진 그저 그런 느낌을 주는 이야기들이다. 하지만 유명 일본 작가들의 공포 공트를 소개한 책이라는 점에서 공포특급 6는 존재의 가치가 있다.

    

 

 

 

[참고 1] “우리나라 괴담집의 원조” (공포특급 1서평, 2016229일 작성)

[참고 2] “정태원의 공포특급” (공포특급 5서평, 2016425일 작성)

[참고 3] “국내에 소개된 모파상의 공포소설” (201687일 작성)

[P.S 1] 호이 신이치의 <금속핀>플라시보 시리즈에 수록되어 있는지 확인하지 못했다.

[P.S 2] 이 두 편의 작품은 따로 페이퍼로 소개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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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yo 2016-08-24 19: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대박, 어릴 적에는 어느 집엘 놀러가나 이 책이 있었어요. 특히 저 한쪽 눈만 빨간 여자가요.

cyrus 2016-08-25 11:47   좋아요 0 | URL
저 책을 아는 분이 계실 줄 몰랐습니다. 공포특급 후속작이 망한 책이라서 존재감이 없어요. ^^;;

yureka01 2016-08-24 23: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글로 통해 상상력으로 공포를 만들어내는 문장이라니....글의 한계는 어디까지 일까 싶어요.ㅎㅎㅎ

cyrus 2016-08-25 11:50   좋아요 0 | URL
공포소설을 쓰는 일이 정말 어렵습니다. 그냥 소설을 쓰는 것보다 더 어려울 겁니다. 아마도 공포소설 작가들이 제일 무서워하는 것이 독자일 겁니다. 정말 열심히 써서 완성한 기가 막힌 이야기가 독자들이 썰렁하다고 하면 작가 입장에서는 허무하게 느껴지죠. ^^;;

transient-guest 2016-08-25 02: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 한번도 못 본 책들이 대부분입니다만 `허무에의 제물`은 갖고 있네요. 공포도 제대로 explore되지 못한 장르네요, 한국에서는...ㅎ 예전에 읽은 동유럽 작가의 마녀이야기가 생각나는데, 고골의 `마녀의 관`으로 나오네요. 이거 국민학교 1학년 때 처음 보고 한 동안 화장실 가는 것도 무서웠던 기억이 납니다.ㅎ

cyrus 2016-08-25 12:23   좋아요 0 | URL
나중에 일본 추리소설 3대 기서를 읽어보고 싶습니다. t-guest님이 언급하신 고골의 <마녀의 관>의 원제가 <비이(Viy)>라는 괴담일 겁니다. 이 작품에 나오는 비이가 뱀파이어와 흡사합니다. ^^

블랙겟타 2016-08-25 14: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 어릴때 저희집에도 공포특급1,2 까지는 있엇거든요. 근데 버렸는지 지금은 없지만요 ㅎㅎ;; 그 시리즈가 6까지 나왓었군요. 저도 몰랐네요.

cyrus 2016-08-25 15:50   좋아요 0 | URL
<공포특급>을 지금까지도 소장하는 사람이 많지 않을 거예요. 생각날 때마다 읽을 책이 아니잖아요.... ^^;;

부진아 2022-08-14 23: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언급하신 모파상의 소설 제목을 알 수 있을까요?

cyrus 2022-08-15 10:53   좋아요 0 | URL
제목이 ‘물 위’입니다. ‘물 위에서’라는 제목으로 번역된 적이 있고요, 모파상 단편 선집에 자주 실린 작품입니다.
 
보르헤스의 상상 동물 이야기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 지음, 남진희 옮김 / 민음사 / 201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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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날 갑자기 속초에 포켓몬이 출몰하기 시작했다. 속초에서 ‘포켓몬 GO’를 플레이할 수 있다는 소식에 전국 각지의 게임 유저들이 속초로 몰려들었다. ‘포켓몬 GO’ 열풍에 속초시청 둥 지자체가 신바람이 났다. ‘포켓몬 GO’는 위치 정보를 기반으로 현실 세계를 탐험하면서 포켓몬을 잡는 게임이다. 인간의 상상력 덕분에 진짜로 포켓몬 트레이너가 현실에 나타난 것이다. 그러나 포켓몬 트레이너가 등장하기 전에 이미 희귀한 동물을 잡으려는 사람들이 있었다. 그들이 바로 신비 동물학자(cryptozoologist)다. 신비 동물학의 최대 관심사는 네시, 예티, 빅풋 등 3대 괴물이다. 신비 동물학은 자연과학에 초자연적인 요소가 가미되어 있어 사실과 허구가 뒤엉킨 연구 분야다. 신비 동물학은 공식 과학으로 인정받지 못하지만, 그 세력이 만만찮다. 기이한 생명체가 지구상에 존재할 거라고 믿는 사람들이 세상에 적지 않은 것이다.

 

아르헨티나의 소설가 보르헤스는 ‘칼과 쟁기가 팔의 확장이라면, 책은 기억과 상상력의 확장’이라고 했던가. 현실에 존재하지 않는 것들을 기록한 책은 오늘날의 독자들에게까지 기억과 상상력을 전염시켰다. 보르헤스의 《상상동물 이야기》는 인간의 무한한 상상력을 보여주는 아름다운 책이다. 시인 말라르메의 말을 빌리자면, 상상력의 세계는 한 권의 아름다운 책에 이르기 위해 만들어졌다. 보르헤스는 동서양 신화, 전설, 문학 속에 감춰진 상상력을 포착했다. 그는 모든 이념이나 현상을 인간들이 상상력으로 최대한 짜 맞춘 환상이라고 생각했다. 보르헤스에게 세상은 현실과 가상으로 쉽게 나뉘지 않는다. 혼재되어 있을 뿐이다. 동서고금의 신화 속 동물들의 이야기를 펼쳐놓은 《상상동물 이야기》는 현실과 가상이 확연히 구분되지 않는 인간 삶의 불합리한 틈새를 들춰낸다. 독자는 그 틈새에 피어오르는 상상력의 마력에 도취한다. 상상력은 이성으로 딱딱하게 굳어진 독자들의 두뇌를 간질이다.

 

 

 

 

 

《상상동물 이야기》는 1994년에 나왔던 까치 출판사 번역본의 개정판이다. 까치 출판사 번역본은 1967년에 발표된 스페인어판과 1969년 영역판을 참고했다. 스페인어판에는 총 116편의 글이 수록되었고, 영역판에 네 편의 글[주1]이 새로 추가되었다. 모두 합하면 총 120편이다. 이번에 나온 민음사 번역본은 스페인어판만 참고했다. 그런데 역자 후기에 보면 스페인어판은 총 117편으로 구성되었다고 적혀 있다. 아마도 ‘1967년 판 서문’까지 합산한 것으로 보인다. 구판의 어색한 번역체 문장들이 매끄러운 문체로 다듬어졌다.

 

 

 

 

 

 

까치 번역본의 가장 큰 특징은 투박한 느낌이 나는 삽화다. 흑백으로 그려진 방식은 괴물의 그로테스크한 모습이 부각되는 효과를 주었다. 반면에 민음사 번역본의 그림은 단순한 형태로 표현되어 있다. 중국 신화에서 비를 부르는 새로 알려진 상양(商羊)을 묘사한 두 번역본의 그림을 비교해보시라.

 

 

 

 

개정판에 사소한 오류가 보인다. 구판에서는 불사조(피닉스)의 수명이 1,461년이라고 되어 있다. 그런데 개정판에는 1,446년으로 나왔다. [주2] 북유럽 신화에나오는 운명의 여신들은 세 자매다. 맏언니 우르드(Urd, 과거), 둘째 베르단디(Verdandi, 현재), 막내 스쿨드(Skuld, 미래)는 인간의 운명을 결정짓는 일을 담당한다. 그런데 우르드를 ‘우르스’, 베르단디를 ‘베르찬디’라고 잘못 썼다. [주3] 구판의 발음 표기를 고치지 않은 채 그대로 옮겨 썼다.

 

 

 

[주1] 카번클, 1964년에 제인 리드 부인이 런던에서 알았고 보았고 만났던 것에 대한 경험적 보고, 칠레의 동물들, 과거 숭배자들

 

[주2] '불사조' 편, 까치 132쪽, 민음사 52쪽

 

[주3] '노르넨' 편, 까치 179쪽, 민음사 21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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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08-05 16:12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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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08-05 16:15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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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파상의 오를라(La Horla)는 많이 알려지지 않은 단편소설이지만, 모파상이 쓴 최고의 작품이라고 생각한다. 이 소설을 읽게 되면 모파상의 대표작 비곗덩어리목걸이가 아무것도 아니라는 사실을 알게 될 것이다. 오를라는 두 가지 버전으로 된 소설이다. 모파상은 1886년에 발표한 것을 개작하여 이듬해에 공개했다. 등장인물과 사건 전개는 똑같지만, 형식과 결말이 다르다. 두 번째 버전은 일기 형식으로 되어 있다. 1886년에 나온 소설은 오를라 1’(오를라 제1), 개작한 소설은 오를라 2’(오를라 제2)이라고 부른다.

 

오를라의 주인공은 이름이 알려지지 않은 환자다. 그는 원인을 알 수 없는 열병에 걸리고 나서부터 기묘한 형체에 대한 두려움에 시달린다. 이 환자는 불가사의한 존재가 밤낮으로 자신을 따라다닌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사람들은 환자의 주장을 믿지 않는다. 왜냐하면, 환자는 신경 증상과 정신 착란에 시달렸기 때문이다. 심지어 환자는 보이지 않는 존재에 오를라라는 이름을 붙이기도 했다. 그의 주장이 헛소리로 느껴지는 것도 당연지사.

 

환자의 진술에 따르면 오를라는 인간의 눈에 보이지 않는다. 특이하게도 오를라는 물과 우유를 마신다고 한다. 환자는 자기 전에 물과 우유를 탁자 위에 놓았는데, 다음 날 아침에 물과 우유가 없는 빈 병을 확인했다. 환자는 몽유병에 걸리지 않았고, 집의 하인들도 물과 우유에 손대지 않았다. 도대체 누가 한밤중에 물과 우유를 마신 걸까? 환자는 오를라가 마셨을 거로 확신했다. 그는 언젠가 오를라가 자신의 목숨을 앗아갈 수 있다는 생각에 두려워한다. 오를라에 대한 공포가 커질수록 환자는 과대망상 수준에 이른다. 그는 오를라가 인간을 위협하는 무시무시한 존재라고 믿는다.

 

그는 누구일까요? 여러분, 그는 이 지구가 인간 다음으로 기다리고 있는 존재입니다! 우리의 지위를 빼앗기 위해, 우리를 굴복시키기 위해, 우리를 삼키기 위해 오는 존재입니다. 그는 마치 우리가 쇠고기와 멧돼지 고기를 먹듯이 그들은 우리를 삼켜버릴지도 모릅니다. 수세기 전부터 인간들은 그 존재를 예감했고, 그 존재를 두려워했고, 그 존재를 예고했습니다! 보이지 않는 존재에 대한 두려움은 우리 조상들의 머릿속을 끈질기게 따라다녔습니다. (오를라오를라 제1’ 37)

 

오를라는 미지의 존재에 대한 두려움으로 인간의 정신이 파멸해가는 과정을 긴장감 있게 묘사한 수작이다. 특히 오를라 제2은 제1판보다 인물의 정서 변화가 뚜렷하게 드러나 있다. 일기 형식의 제2판은 마치 실제 정신병 환자가 직접 쓴 수기와 같은 느낌이 난다. 실제로 모파상은 오를라를 쓰기 직후에 정신 착란의 징후가 있었다. 그런데 소설의 공포 분위기를 깨는 작품 설정이 있는데, 오를라를 물과 우유만 마시는 투명 흡혈귀로 설정한 점이다. ‘설정 구멍으로 봐야겠지만, 오를라를 쓰고 있을 당시 모파상의 정신 상태가 메롱이었음을 고려하면서 읽어야 한다. 참고로 오를라 1판과 2판 모두 수록된 단편선집이 많지 않다. 절판된 모빠상 괴기소설 광인?(장원출판사)이라는 책에도 오를라두 가지 버전이 수록되어 있다. 1996년에 나온 이 책이 오를라를 처음 소개한 모파상 단편선집일 가능성이 있다.

 

 

 

 

 

 

 

 

 

 

 

 

 

 

 

 

 

 

 

 

 

 

 

    

 

 

 

 

 

 

 

 

러브크래프트는 비평서 공포문학의 매혹에서 모파상의 오를라를 극찬했다. 러브크래프트 역시 미지의 존재에 대한 두려움을 소재로 공포소설을 남겼는데, 그의 대표작 크툴루의 부름은 모파상의 영향을 받고 쓴 작품으로 보인다. 크툴루의 부름에 등장하는 헨리 앤서니 윌콕스라는 남자는 오를라의 주인공 환자의 모습을 닮았다. 윌콕스는 조각을 공부하는 젊은 남자인데 어렸을 때부터 기묘한 꿈에 사로잡혔고, 신경이 예민한 성격이었다. 그 역시 정신 상태가 정상이 아니다. 오를라의 주인공처럼 열병에 걸리면 기이한 환영을 목격한다. 윌콕스는 자신보다 거대한 괴물이 자신 주변을 배회한다고 말했다. 괴물에 관해서 설명하면 혼수상태에 빠졌다. 윌콕스가 무서워하는 괴물은 크툴루다.

    

 

크툴루에 대한 설명이 있는 잡문

 

<Colla[book]ration #7 신들의 세계 : 던세이니 X 러브크래프트>

http://blog.aladin.co.kr/haesung/7369281

 

<러브크래프트 덕심으로 대동단결!>

http://blog.aladin.co.kr/haesung/8539616

    

 

이미 크툴루를 여러 차례 소개한 적이 있어서 자세한 설명을 생략한다. 간단하게 말하면, 크툴루는 문어 머리에 촉수가 여러 개 달린 외계 생명체이자 고대의 신이다. 크툴루의 부름에 크툴루를 추종하고, 그의 부활을 위해 비밀 의식을 진행하는 이교도들이 등장한다.

 

버트런드 러셀은 나는 왜 기독교인이 아닌가라는 책에서 종교의 일차적 기반은 두려움이라고 했다. 당연한 말이지만, 인간은 스스로 감당할 수 없는 미지의 존재에 대하여 가장 두려움을 느낀다. 미지에 대한 두려움은 공포와 신화를 낳았다. 모파상과 러브크래프트는 러셀보다 먼저 공포 본능이 우리 삶에 미치는 막대한 영향력을 알고 있었다. 무엇보다도 놀라운 점은 진리를 파악한 모파상과 러브크래프트, 이 두 사람은 제 정신이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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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거서 2016-07-20 19: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단순한 질문입니다. 소개한 작품이 잘 알려지지 않은 작품 중에서 최고인 것이지요? 모파상의 작품 전체에서 최고라면 대표작 비곗덩어리와 목걸이처럼 이미 널리 알려졌을 것이라 생각하는데 혹 그동안 알려지지 않은 다른 이유가 있을까요?

cyrus 2016-07-20 20:15   좋아요 1 | URL
`오를라`라는 소설을 최고라고 높이 평가한 것은 제 주관적인 생각입니다. 제가 첫 문장을 마치 기정사실을 알리듯이 쓰는 바람에 글을 보는 분들에게 혼동을 주는 것 같습니다.

모파상이 쓴 단편소설의 수가 엄청 많습니다. 그래서 대표작들을 포함한 단편선집이 많이 나오는 편입니다. 모파상의 단편 중에는 환상적이면서도 기괴한 분위기를 연출하는 이야기들이 있습니다. 그래서 이런 소설들은 옛날에 어린이들을 위한 `무서운 이야기 모음집` 같은 책에 소개되곤 했습니다. 원전의 일부가 잘리거나 작가 이름이 밝혀지지 않은 채 그저그런 공포 이야기로 소개한 거죠. 지금은 좀 나아졌지만, 그때는 공포문학에 대한 인식이 낮았습니다. 그렇다보니 `오를라`가 러브크래프트가 극찬한 작품임에도 국내에서는 널리 알려지지 못했습니다. 공포소설을 마이너로 취급하는 인식 탓에 단편선집에 수록되는 경우가 적습니다.

제 답변이 오거서님의 궁금증 해소에 도움 되었는지 모르겠습니다. 정말 좋은 질문을 하셨습니다. ^^

프레이야 2016-07-20 20: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좋은 정보 고맙습니다

cyrus 2016-07-20 20:17   좋아요 0 | URL
좋게 봐주셔서 고맙습니다. ^^
 

 

 

여름에 맞춰 공포영화를 개봉하고, 대형 서점들도 여름이면 공포나 미스터리 사건을 소재한 책을 모아 특별 코너를 만든다. 게임 역시 마찬가지라서 이맘때면 공포 게임에 관련된 소식들이 다른 때보다 많이 나온다. 우리는 보통 게임을 할 때 공포를 느끼는 게임을 가리켜 ‘공포 게임’ 혹은 ‘호러 게임’이라 부르며 마치 정형화된 장르처럼 말한다. 그런데 실제 공포 게임을 살펴보면 그렇게 생각하기엔 뭔가 애매하다는 것을 쉽게 알 수 있다. 공포 게임은 장르처럼 불리지만 기존 장르와는 다른 영역에 걸쳐 있기 때문이다.

 

 

 

 

 

 

 

 

 

 

 

 

공포 게임에 관해 이야기를 하다 보면 ‘러브크래프트’라는 이름을 자주 듣게 된다. 러브래크래프트는 크툴루(Cthulhu) 신화라는 세계관에 근거한 다수의 공포 소설들을 쓴 미국의 소설가다. 상대적으로 박했던 생전의 평가에 비해 크툴루 신화에 대한 후대의 평가는 갈수록 높아지고 있다. 크툴루 신화에 깊은 인상을 받은 후대 작가들은 러브크래프트가 죽은 후에도 그의 설정들을 그대로 빌려와 크툴루 신화를 새롭게 창작했다. 여기에 동참한 작가로는 어거스트 윌리엄 덜레스, 로버트 블록(앨프레드 히치콕 감독의 영화 ‘사이코’의 원작자), 클라크 애슈턴 스미스 등이 있다. 특히 덜레스는 크툴루 신화를 체계적으로 정리한 일등 공신이다. 그는 러브크래트프의 작품을 출판하기 위해 ‘아컴하우스’라는 출판사를 설립했다. 덜레스의 노력이 결실을 맺어 크툴루 신화는 수많은 서브컬처 마니아에게 영향을 끼쳤다. 공포 장르의 콘텐츠뿐 아니라 SF 판타지와 같은 미국 문화와 다수의 일본 장르문학, 라이트노벨까지 러브크래프트의 영향을 찾아볼 수 있다. 러브크래프트의 영향을 받은 유명한 작가와 영화 제작자로는 존 카펜터, 스티븐 킹, 클라이브 바커 등이 있다. 공포/SF 게임으로는 <어둠 속에 나 홀로>, <악마성 드라큘라>, <퀘이크>, <아케인> 등이 러브크래프트 문학의 영향을 받은 대표적 게임으로 꼽힌다.

 

게임 이야기를 하나 더 하자면, 올해 TRPG <크툴루의 부름> 한국어판이 나올 예정이다. 게임을 안 하는 사람에게는 낯설고 흥미롭지 않은 이야기다. 그러나 게임에 관심 없지만, 러브크래프트 소설을 읽어본 사람에게는 귀가 솔깃한 정보이다.

 

 

 

 

 

 

‘TRPG’는 ‘Table-talk Role Playing Game’의 약자다. ‘RPG', 즉 ’롤플레잉 게임‘은 많이 들어봤을 것이다. 롤플레잉 게임은 게임 플레이어가 직접 게임 속 주인공 혹은 캐릭터가 되어 게임 내에 주어진 역할이나 규칙을 따르는 방식이다. 사실 RPG의 원조가 TRPG다. 컴퓨터가 없던 시절 여러 사람이 탁자에 모여 각자 맡은 캐릭터를 연기하는 게임이 등장했는데, 그 게임 방식이 바로 TRPG다. 현재는 컴퓨터 롤플레이 게임을 RPG라고 부른다. TRPG를 즐기는 데 필요한 준비물을 간단하다. 주사위, 보드 판, 룰북(게임을 진행하는 데 도움이 되는 규정을 모아놓은 책)을 챙긴 뒤에 사람 여러 명을 끌어들이면 된다.

 

 

 

 

 

<크툴루의 부름>은 러브크래프트의 단편소설 제목으로도 알려졌다. 크툴루가 처음 등장하는 작품이기도 하다. 크툴루 신화에 따르면 크툴루는 우주에서 날아와 지구를 지배했던 고대의 신이다. 생김새는 흉측한 괴물과 비슷하다. 대부분 거대한 문어 머리에 여러 개의 촉수가 꿈틀거리는 형태로 그려진다. 크툴루 신화 속 고유명사는 인간이 발음할 수 없는 외계 언어다. 크툴루는 인간이 발음하기 쉽게 설정한 표기에 불과하다. 그래서 크툴루를 ‘쿠툴후’, ‘크풀루프’, ‘크투루후’ 등으로 번역되기도 한다.

 

<크툴루의 부름 TRPG>는 크툴루 신화를 소재로 한 호러 TRPG다. 게임 진행 방식도 소설 줄거리와 똑같다. 크툴루를 만나거나 그의 울음소리를 들은 자는 공포에 휩싸여 미쳐버리거나 죽게 된다. 게임 플레이어는 크툴루의 존재를 추적하면서 점점 미쳐나가는 과정을 즐긴다. 1981년에 처음 나온 이후로 현재까지 6판까지 나온 TRPG계의 스테디셀러다.

 

<크툴루의 부름 TRPG> 최신판 제작을 담당하는 회사는 국내에서 가장 오래된 TRPG 출판사 초여명이다. (알라딘 검색창에 ‘초여명’을 입력하면, 꽤 많은 TRPG 롤북이 나온다) 올해 4월 말에 한국어판 출판을 위한 소셜 크라우드 펀딩을 시작했는데, 시작한 지 30분 만에 목표금액을 달성했다. 그리고 한 달도 안 돼서 모금액 1억 원을 돌파했다. 이 기록은 역대 국내 게임 소셜 크라우드 펀딩 사례 중에선 최고 금액이다.

 

 

 

 

<크툴루의 부름 TRPG> 소셜 크라우드 펀딩 금액 신기록 달성 관련 기사에 달린 댓글이다. 공감 수를 많이 받은 댓글 두 개를 보시라. 이 댓글을 보는 사람이 러브크래프트 마니아라면 웃음이 절로 나올 것이다. 무슨 말인지 모르겠다고? 날씨가 무더운 여름밤에 특별한 독서를 원한다면 러브크래프트 소설에 ‘입덕’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다. 힌트는 알려줬다. 황금가지 출판사의 《러브크래프트 전집》을 읽어 보면 댓글 내용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이해할 수 있다.

 

 

 

 

 

 

 

 

 

 

 

 

 

 

 

 

 

※ 세 번째 댓글의 ‘기어와라 냐루코’는 일본에서 발표된 라이트 노벨 이름이다. 정확한 이름은 <기어와라! 냐루코 양>이다. 라이트 노벨 작가 아이소라 만타는 음침한 크툴루 신화를 명랑한(?) 소녀들이 등장하는 라이트 노벨로 패러디했다. 주인공 냐루코는 크툴루 신화의 사신으로 알려진 니알라토텝을 소녀화한 캐릭터다. 기존의 크툴루 신화를 좋아했던 마니아들은 고대 신들이 미소년, 미소녀로 탈바꿈한 설정에 큰 충격에 빠졌다고 한다. 12권 전권 정식 발매되었다.

 

 

 

 

 

 

 

 

 

 

 

 

 

 

 

 

 

 

 

※ 러브크래프트의 소설을 읽어도 크툴루 신화에 등장하는 신들을 구분하기가 어렵다. 크툴루 신화나 관련 용어를 체계적으로 정리한 책들을 참고하면 된다. 책을 읽어도 허전함을 느낀다면 러브크래트트 전집 번역에 참여한 적이 있는 류지선 씨의 블로그(gaya.egloos.com)를 참고해도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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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umus 2016-06-04 22: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크툴루 신화 정말 기괴하죠ㅎ꼬리꼬리한 치즈 먹는 느낌이랄까요? 이상한데 자꾸 손이 가는

cyrus 2016-06-05 20:06   좋아요 0 | URL
포스투무스님의 표현이 재미있어요. 러브크래프트 소설의 애매모호한 설정 때문에 처음부터 다시 읽은 적이 많았습니다. ^^
 

 

 

 

 

 

 

 

 

 

 

 

 

 

 

 

 

 

 

 

 

 

 

 

 

 

 

 

 

 

 

 

 

페가나북스 무크지 창간호를 보다가 ‘플레이버와이어(Flavorwire)’라는 외국 웹사이트를 알게 되었다. 플레이버와이어는 미국에서 만들어진 대중문화 사이트다. 이 사이트에 책, 영화, 대중가요 등 다양한 문화를 주제로 다룬 기사들을 볼 수 있는데, 기사 내용이 리스트 형식이다. 예를 들면, ‘세상에서 가장 재미있는 책 50권’, ‘세상에서 가장 슬픈 내용의 영화 30편’ 같은 방식으로 되어 있다. 플레이버와이어에 재미있는 내용의 기사가 많은데, 내가 가장 흥미롭게 본 것이 <Flavorwire 50 of the Scariest Short Stories of All Time>이다. 우리말로 옮기면 ‘플레이버와이어가 선정한 가장 무서운 단편소설 50선’이다. 이 글은 2014년에 작성되었다. 사실 이 기사 내용을 알리고 싶어서 지난주에 단편 공포소설을 소개하기 시작했다. 그 첫 번째 작품이 윌리엄 W. 제이콥스의 <원숭이 손>이다. 이 작품은 ‘가장 무서운 단편소설 50선’에 포함되었다. ‘가장 무서운 단편소설 50선’ 중에 번역된 작품을 엄선하여 매주 한 편씩 소개하고 싶다. 이번 주에 소개할 두 번째 작품 역시 ‘가장 무서운 단편소설 50선’에 선정된 것이다.

 

 


No. 2 사키 – 열린 격자문 (The Open Window)

 

 

 

 

 

 

 

 

 

 

 

작품 전문 출처는 《스레드니 바쉬타》(43~48쪽, 페가나북스)

 

 


분량이 아주 짧은 작품이다. 이 작품 원문이 대한교과서 <고등 영어 I> 교과서에 실려 있다고 한다. 페가나북스 대표가 사키 단편집 제작을 준비하다가 이 사실을 발견했다. 이 작품은 흔히 ‘열린 유리창’이라는 제목으로 알려졌다. 사키의 단편소설을 번역한 페가나북스 대표(다시 한 번 말하지만, 페가나북스는 1인 전자책 출판사다. 출판사 대표가 작품을 혼자 번역한다)는 ‘열린 격자문’으로 번역했다. 원문에는 ‘French window’로 적혀 있다. 실제로 프랑스식 창문은 여닫이 형식으로 되어 있다. 사소한 단어까지 세밀하게 번역한 페가나북스 대표의 노력이 돋보인다.

 

줄거리를 간략하게 요약하면 이렇다. 조카가 프램턴에게 격자문을 내다보는 이모와 관련된 으스스한 이야기를 들려준다. 저녁만 되면 이모는 3년 전에 행방불명된 남편과 두 아들이 돌아올 거라 믿는다. 조카는 열린 창문을 뚫어지게 바라보면서 죽은 이들을 기다리는 이모의 모습을 볼 때마다 섬뜩한 기분이 느껴진다고 말한다. 신경이 예민한 프램턴은 소녀가 들려주는 무서운 사연을 쉽게 믿어버린다. 이모는 프램턴에게 조금 있으면 가족들이 사냥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올 거라고 말한다. 프램턴은 조카가 얘기한 대로 곧 펼쳐질 무시무시한 상황에 불안해한다. 때마침 열린 창문 밖에서 인기척이 느껴졌다. 행방불명되었다던 세 사람이 이모의 집 쪽으로 걸어오고 있었다. 죽은 이들의 영혼이라고 생각한 프램턴은 무서움에 벌벌 떨면서 황급히 집 밖으로 나가 도망친다. 집으로 돌아온 세 사람은 도망가는 프램턴이 누구냐고 묻는다. 이모는 유령을 만난 것처럼 겁에 질려 도망가는 프램턴을 이상한 사람으로 취급한다. 그러자 조카는 프램턴이 과거에 잊지 못할 충격적인 경험을 겪고 난 후 트라우마에 시달렸다고 말한다.
 

작품 전문을 읽어보면 알겠지만, <열린 격자문>의 결말은 허무하다. 조카가 들려준 무서운 이야기는 전부 ‘뻥’이다. 이 작품이 왜 ‘가장 무서운 단편소설’로 선정되었는지 이해가 되지 않는 독자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열린 격자문>은 공포소설, 괴담, 무시무시한 음모론이 어떻게 만들어지는지를 보여주는 중요한 작품이다. 공포소설은 일상적으로 만나는 대상과 공간을 이용, 인간의 내면에 잠재된 공포의식과 공격적 본능을 끌어낸다. <열린 격자문>의 조카는 일상생활 중 한 번쯤 공포를 느꼈음 직한 상황을 적절히 활용하여 프램턴의 불안의식과 공포를 극대화하는 데 성공한다. 지극히 일상적인 순간이 무시무시한 악몽으로 둔갑시킨 데에 이 소설이 갖는 특별한 매력이 있다. 괴담과 음모론이 발생하는 이유도 그렇다. 불안한 사회일수록 허구의 이야기들은 인간의 음습한 심리를 파고들기 쉽고, 괴담과 음모론이 마음 놓고 춤을 출 수 있다. 괴담들이 사람들의 불안 심리를 쉽게 파고든다. 근거 없이 눈덩이처럼 부풀려진 괴담의 위력에 지배당한 대중은 진위를 가리지 못할 정도로 이성을 잃는다. 프램턴이 사실을 제대로 확인하지 않고, 부리나케 도망가는 것처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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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ureka01 2016-05-29 14: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ㄱ 동네에 늪지대는 악어가 사나...그런 늪지대가 있는 음습한 곳은 땅값도 낮겠네요...ㅎㅎㅎ별상상 다 합니다.ㅎㅎㅎ

cyrus 2016-05-29 18:19   좋아요 0 | URL
상상력의 힘이 무섭습니다. 어느 정도냐면 한 사람의 일상생활을 방해하기까지 합니다. 90년에 ‘빨간 마스크’ 괴담이 유행했을 때 골목길에 혼자 못 가는 아이가 많았어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