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워드 필립스 러브크래프트는 후대 공포문학에 많은 영향을 준 작가이다. 47년이라는 길지 않은 생애를 살다 갔으며 은둔적인 생활을 하면서 정신이상자로 매도되기도 했다. 러브크래프트는 어렸을 때 조숙했다. 그의 독서 벽은 독특한 암흑 신화, 즉 크툴루 신화(Cthulhu Mythos)의 초석을 세우는 든든한 기반이 되었다. 러브크래프트 사후에 오거스트 덜레스가 완성한 크툴루 신화는 하나의 세계관으로 격상되었다.

 

크툴루 신화의 성공에 힘입어 러브크래프트는 ‘공포문학의 아버지’로 인정받았지만, 최고의 찬사를 너무 많이 받은 탓에 그에 관한 불편한 진실이 묻히는 경우가 있다. 러브크래트프의 소설과 크툴루 신화에 열광하는 사람이라면 러브크래프트가 문제 많은 사람이라는 것을 꼭 알아야 한다.

 

러브크래프트는 극단적인 외국인 혐오증(xenophobia)이 있는 인종차별주의자다. 그가 인종차별주의자라는 사실을 알고 있지 않아도 그의 작품들을 꼼꼼하게 읽어보면 인종차별주의적인 면모를 확인할 수 있다.

 

 

 

* 그 집에 있는 그림

(The Picture in the House, 《러브크래프트 전집 1》 38쪽)

 

“생각할수록 그림들이 정말 희한해. 앞쪽에 있는 이 그림을 좀 보게. 이렇게 큰 이파리를 늘어뜨린 나무를 본 적 있나? 그리고 이 사람들, 흑인일 리가 없어. 내 생각에는 아프리카에 살긴 해도 아메리카 인디언과 비슷한 부족일 것 같네. 이쪽에 원숭이처럼 생긴 사람도 있잖아. 반은 원숭이고 반은 사람인지 모르겠지만, 이런 사람들이 있다는 얘기는 한 번도 듣지 못했어.”

 

원문 : "Queer haow picters kin set a body thinkin'. Take this un here near the front. Hey yew ever seed trees like that, with big leaves a-floppin' over an' daown? And them men—them can't be niggers—they dew beat all. Kinder like Injuns, I guess, even ef they be in Afriky. Some o' these here critters looks like monkeys, or half monkeys an' half men, but I never heerd o' nothing like this un."

 

 

19세기 유럽인들은 다른 대륙에 사는 토착 원주민들 또는 이방인들에 대한 편견을 ‘과학’이라는 경지에 올려놓는 억지를 부렸다. “강한 자가 모든 것을 차지한다”는 약육강식 이론은 동물의 세계뿐 아니라 인간의 역사까지 설명하는 자연 불변의 법칙이며 숙명으로 자리를 잡았다. 그래서 나름의 방식으로 살고 있던 원주민들을 ‘야만스러운 짐승’으로 여겼고, 그들을 처참하게 학살하고, 노예로 만들고, 그들의 땅을 빼앗았다. 유럽인들은 강한 힘을 가진 자신들이 약한 인종을 지배하는 것이 불변의 자연법칙이며 숙명이라고 전 세계 사람들을 세뇌해왔다. 이처럼 어두운 시대의 그늘 속에 살았던 러브크래프트도 예외가 아니었다. 늘 서재에서만 틀어박혀 지낸 러브크래프트에게 아프리카 대륙은 미지의 세계인 동시에 더 나아가 인간을 위협하는 야만인들이 사는 무시무시한 세계였을 것이다. '아메리카 인디언'으로 옮긴 원어는 ‘Injuns’이다. 이 영단어는 상당히 안 좋은 의미가 있다. 아메리카 원주민을 비하할 때 쓰는 속어다.

 

 

 

* 벽 속의 쥐 (The Rats in the Walls, 《러브크래프트 전집 1》 113쪽)

 

 

역자 정진영 씨는 원문의 ‘Nigger Man’‘고양이 깜씨’로 번역했다. 그리고 이 단어에 대한 주석을 달았고, ‘러브크래프트를 인종차별주의자로 보는 단적인 예’로 설명했다. 과거에 흑인 차별이 심했을 때, 백인들은 흑인을 비하하는 단어인 ‘Nigger’를 많이 썼다. 오늘날 이 단어를 사용하는 것은 인종차별을 의미하는 것이다. 특히 공개적인 자리에서 이 단어를 사용했다간 평생 감당하기 힘들 정도로 비난받는다.

 

 

 

 

 

 

 

 

 

 

 

 

 

 

 

 

 

 

 

황금가지 번역본보다 먼저 러브크래프트 작품들을 소개한 동서 미스터리 북스의 《공포의 보수》에 『벽 속의 쥐』가 수록되어 있는데, 《공포의 보수》의 역자는 주인공 델라포어의 고양이 이름을 ‘네로’라고 썼다. 《공포의 보수》 113쪽에 보면 확인할 수 있다. 동서문화서 번역본은 일본어로 번역된 것을 중역한 것이다. 1970년대에 박혜령이 부른 동요로 널리 알려진 ‘검은 고양이 네로’와 연관성이 있다. ‘검은 고양이 네로’는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전 세계에 엄청나게 큰 인기를 끌었는데, 일본은 우리나라보다 일찍 이 노래를 번안해서 불렀다. 러브크래프트의 작품을 번역한 일본인이 흑인을 비하하는 의미가 담긴 검은 고양이 이름 때문에 일부러 ‘네로’라고 썼을 것이다. 그리고 일본어 번역본을 참고한 《공포의 보수》의 역자는 ‘네로’가 워낙 우리나라에도 친숙한 이름이기 때문에 그대로 옮긴 것으로 추정한다. 그런데 《공포의 보수》 114쪽에는 고양이 이름을 ‘깜돌이’라고 썼다. 136쪽에는 다시 ‘네로’로 썼다. 역자 한 사람이 쓴 문장이 맞는지 의문이 들 정도다. 이래서 동서문화사 번역본이 러브크래프트 마니아들로부터 외면받은 이유가 있다.

 

 

 

* 크툴루의 부름 (The Call of Cthulhu,《러브크래프트 전집 1》 148~149쪽)

 

 

웹 교수는 48년 전에 고대 비문 발견에는 실패했지만 그린란드와 아이슬란드를 탐사한 일이 있다고 했다. 그때 그린란드 서부 해안의 고원 지대에서 쇠락한 에스키모 부족을 만났다. 그들의 종교는 악마를 숭배하는 기묘한 형태의 이교로서 무엇보다 극도로 잔인한 특성을 가지고 있어 웹 교수는 간담이 서늘해지고 말았다. 다른 에스키모 부족들은 그 종교에 대해 거의 몰랐고 설렁 거의 아는 이가 있다고 해도 몸서리를 치며 입에 올리기 꺼려했다.

 

 

 

* 북극성 (Polaris, 《러브크래프트 전집 3》 15쪽)

 

 

이누토스는 땅딸막한 황색의 흉악한 악마로서 5년 전에 미지의 서쪽에서 나타나, 우리 왕국의 국경지대를 유린했고 결국 도시들을 포위했다. (중략) 그 땅딸막한 종족들은 전투력이 막강했다. 키가 크고 눈이 회색인 우리 로마인들이 명예를 존중하여 무자비한 정복을 자제해 온 반면, 그들은 전혀 그렇지 않았다.

 

 

러브크래프트가 묘사한 이방 민족이나 혼혈 민족은 원주민을 침략하고 약탈하는 흉악한 존재 또는 악마숭배론자들이다. 이누토스(Inutos)는 에스키모(Eskimo)로 잘 알려진 이누이트(Innuit)를 모델로 한 가상 종족이다. 에스키모는 ‘날고기를 먹는 사람’을 의미하고, 이누이트는 ‘인간’을 의미하는 단어이다. 전자는 캐나다 원주민들이 붙인 이름인데, 북극 원주민을 비하하는 의미가 있다. 러브크래프트는 이누이트를 악마를 숭배하고, ‘인간’의 모습과 거리가 먼 무자비한 종족으로 묘사했다. 특히 『북극성』에서 ‘키가 크고 눈이 회색’인 로마인과 ‘땅딸막한 종족’인 이누토스를 비교하는 묘사에서 백인우월주의적 성향을 엿볼 수 있다.

 

 

 

 

* 고 아서 저민과 그 가족에 관한 사실

(Facts Concerning the Late Arthur Jermyn and His Family, 《러브크래프트 전집 4》 157쪽)

 

 

웨이드 경은 가문에 전해지는 불안증 면에서도 유별났다 .아프리카로 다시 여행을 떠났을 때, 기니 출신의 볼썽사나운 흑인 여자(원문: loathsome black woman from Guinea) 외에는 누구도 자신의 어린 아들 곁에 얼씬하지 못하게 했다.

 

 

작년에 브렉시트 찬성론자이자 친 트럼프 인사로 알려진 나이절 패러지 영국독립당(영국의 극우 정당) 전 대표는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을 ‘역겨운 생물체(loathsome creature)’라고 심한 발언을 한 적이 있다. ‘loathsome’은 ‘혐오스러운’이라는 의미를 뜻하기도 한다.

 

 

 

* 레드 훅의 공포 (The Horror at Red Hook, 《러브크래프트 전집 4》 372쪽)

 

체구가 땅딸막하고 전매특허처럼 눈이 째진 이들 무리는 야릇한 미제 옷을 걸쳐 입고 기괴한 분위기를 자아내며, 시청 인근의 부랑자와 뜨내기 폭력배들 사이에서 무수히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

 

 

* 레드 훅의 공포 (《러브크래프트 전집 4》 378쪽)

 

경찰이 현장을 급습하는 동안, 눈이 째진 동양인들(원문: squinting Orientals)이 문마다 몰려들어 소극적으로 저항했을 뿐이다.

 

 

* 레드 훅의 공포 (《러브크래프트 전집 4》 391쪽)

 

아시아의 원숭이들이 공포의 전율에 맞춰 춤을 추고(원문: Apes danced in Asia to those horrors), 무너져가는 벽돌집마다 숨어든 수상한 자들 사이에 암적인 요소들이 둥지를 틀고 퍼져 나가고 있다.

 

 

러브크래프트의 전 작품과 그가 남긴 수많은 분량의 편지를 연구한 인도계 미국인 비평가 S.T. 조시(S. T. Joshi)는 『레드 훅의 공포』를 ‘끔찍하고 나쁜(horrendously bad)’ 작품으로 평가했다. 『레드 훅의 공포』는 러브크래프트의 외국인 혐오증이 노골적으로 드러난 작품이다.

 

러브크래프트가 크툴루 신화의 성공으로 불멸의 명예를 얻었어도 인종차별주의와 외국인 혐오에 대한 비판은 피할 수 없다. 이게 얼마나 심각하냐면, 그의 문학을 선호하는 작가들도 러브크래프트의 인종차별 문제를 그냥 지나치지 않는다. 스티븐 킹은 러브크래프트의 인종차별적인 면모를 비판했고, 《사이코》의 작가이자 러브크래프트와 편지로 교류했던 로버트 블록은 러브크래프트의 흑인 차별이 서구사회를 지배했던 구시대적 인식이었기 때문에 별 문제가 없다고 옹호했다.

 

러브크래프트는 어렸을 때부터 극단적인 인종차별주의자가 될 수밖에 없는 환경에서 성장했다. 일단 그가 외출을 멀리하고, 책을 너무 많이 읽은 것이 문제였다. 책 속에 있는 세상이 어린 러브크래프트가 세계를 이해하는 유일한 통로였다. 그는 인종에 대한 서구의 편견을 비판 없이 그대로 흡수했고, 죽을 때까지 인종에 대한 편견이 얼마나 잘못된 건지 깨닫지 못했다. 그의 은둔 생활은 타인과의 친밀한 관계를 제대로 형성하지 못하게 만든 원인이었고, 성장하는 과정에서 자신의 외모와 언어가 다른 민족을 두려워하는 감정으로 형성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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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1-10 16:57   URL
비밀 댓글입니다.

cyrus 2017-01-10 17:09   좋아요 2 | URL
제가 러브크래프트 작품을 읽기 시작한 때가 2011년이었습니다. 오랫동안 글을 여러 번 읽었는데도 인종차별적인 표현을 발견하지 못했습니다. 최근에 러브크래프트 관련 자료를 검색하다가 알게 됐습니다. 이미 외국에서는 러브크래프트 문학을 비판하는 논의가 이루어졌습니다. 국내에 러브크래프트 작품이 알려지게 된 시기가 다른 나라에 비해 늦은 편입니다. 그래서 러브크래프트 작품에 관한 비판 논의가 많이 알려져 있지 않습니다. 아쉬운 소리를 더 하자면 우리나라에 러브크래프트 평전조차 나오지 않았습니다. 암울한 출판시장 현실과 장르문학의 인지도를 생각하면 나오기 힘들어 보입니다.

지금행복하자 2017-01-10 17:1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작품은 작품이고 비판받아야 할 점은 분명히 비판 받아야죠~

cyrus 2017-01-10 17:15   좋아요 0 | URL
맞습니다. 박사모가 평소에 생각하고 다니는 것처럼 책을 읽으면 항상 좋은 것, 자기가 믿고 있는 것만 보려고 합니다.

책한엄마 2017-01-10 22: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에 말씀하신 차별적 요소가 있던 책이 바로 이 러브크래프트군요-

이렇게 사람은 외부 영향을 많이 받는 존재라는 생각이 들어요.
러브크래프트가 현 시대에 살고 요즘 책을 읽으며 집 안에 있었더라면 그 시대와 다룬 사상을 가지고 있었을 거라고 확신합니다.

cyrus 2017-01-10 22:17   좋아요 1 | URL
러브크래프트가 사람 만나는 것을 싫어해서 지인들과 편지로 주고 받으면서 지냈어요. 그래서 생전에 그를 한 번도 만나지 않고, 편지를 주고 받아서 친하게 지낸 작가도 있어요.

러브크래프트가 이 시대에 살아서 작가가 되지 못했으면 키보드워리어가 되었을 것이고, 작가였다면 우익 계열 쪽으로 활동했을 겁니다. ^^;;

캐모마일 2017-01-11 01: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수많은 공포증후군과 결함이 있엇던 작가로 알고 있긴 했었는데, 덕분에 인종차별 요소 알고 가네요. 전집은 갖고 있지만 유명한 편만 흥미위주로 읽어서 파악을 못했나 봅니다.

cyrus 2017-01-11 10:39   좋아요 0 | URL
저도 처음에 러브크래프트 전집을 읽었을 때 인지도 높은 작품 위주로만 봤습니다. 전집 4권은 단편이 많은데, 작품의 퀄리티가 1~3권보다 떨어집니다. 그래서 4권을 제대로 보지 못했어요.

캐모마일 2017-01-11 01:4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장점뿐 아니라 결함과 오점까지 알고 종합적인 판단을 하는 게 작가를 알아가는 과정 같습니다. 공포와 편견, 결함 속에서 크툴루 신화의 토대가 완성됐나 봅니다.

2017-01-11 10:40   URL
비밀 댓글입니다.

잠자냥 2017-01-11 13: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항상 쓰신 글에서 많은 것 배웁니다!

cyrus 2017-01-11 18:12   좋아요 0 | URL
부족한 글을 좋게 봐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

transient-guest 2017-01-20 14: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갑자기 러브크래프트가 싫어집니다 그런데 은근 많죠 그런 서구작가들 그 시대엔 특히

cyrus 2017-01-20 15:30   좋아요 0 | URL
저도 이 사실을 알게 됐을 때 실망했습니다. 많이 부끄러웠어요. 지금까지 이 사실을 모르고, 알라딘 서재에서 러브크래프트 좋아한다고 자주 언급했으니까요... ㅎㅎㅎ
 

 

 

 

※ 불쾌감을 주는 사진이 있으므로, 주의 바랍니다!

 

 

 

 

 

 

 

 

 

 

 

 

 

 

 

 

 

 

 

 

 

험프티 덤프티(Humpty Dumpty)는 루이스 캐럴의 소설 《거울 나라의 앨리스》에 나오는 달걀이다. 그는 높은 담장 위에 위태로운 자세로 앉아 있다가 떨어져 깨져버린다.

 

 

 

 

 

 

 

험프티 덤프티는 캐럴이 독창적으로 만든 캐릭터가 아니다. 원래 영국의 전래동요집 《마더 구스》에 나오는 캐릭터로 고집불통에 유식한 체를 잘하는 성격으로 묘사되었다. 《마더 구스》의 험프티 덤프티 노랫말은 《거울 나라의 앨리스》에 인용되었다.

 

 

 

 

 

 

영국의 그림책 작가 케이트 그리너웨이가 그린 《마더 구스》에는 험프티 덤프티 동요가 단 두 줄로 되어 있다. 오랜 시간동안 동요가 전승되는 과정에 내용이 많이 달라졌다.

 

노랫말의 전통적 해석에 따르면 험프티 덤프티는 권위 의식과 자만심에 빠져 현실을 직시하지 못한 왕을 의미한다. 오만한 왕의 권위가 추락하면 신하들도 그 박살 난 권세를 회복할 수 없다.

 

험프티 덤프티의 생김새는 기이하다. 팔과 다리가 짧은 뚱보의 모습이다. 그런데 험프티 덤프티는 자신의 외모가 잘생겼다고 착각한다. 지금까지 영화나 광고에서 험프티 덤프티를 멋있게 혹은 귀엽게 실사로 구현해봤지만, 역반응이 생겼다.

 

 

 

 

 

 

1933년 파라마운트가 제작한 영화 <Alice In Wonderland>는 인기 배우들이 총출동한 작품임에도 불구하고, 흥행 성적은 저조했다. 소설에 등장하는 기이한 모습의 캐릭터들이 실사로 완벽하게 구현하지 못했다는 평이 있다. 흑백 분위기 때문인지 W.C. 필즈가 분한 험프티 덤프티가 그로테스크하게 느껴진다.

 

영화가 나온 지 50년 후인 1983년 영국에 아이들의 동심을 깨뜨린 초콜릿 광고가 선보였다. 킨더 초콜릿(Kinder Chocolate)사는 달걀 모양의 초콜릿 킨더 서프라이즈(Kinder Surprise) 제품을 홍보하기 위해 험프티 덤프티를 내세웠다. 그런데 그 생김새가 참...

 

 

 

 

 

 

누리끼리한 맥반석 달걀 같은 형체가 이상야릇한 미소를 짓는 모습에 아이들은 ‘언캐니 밸리(Uncanny Valley. 불쾌한 골짜기)’를 느꼈을 것이다. 우리에게는 사람과 닮은 인형이나 로봇을 보고 징그러움이나 무서움을 느끼는 심리가 있다. 이러한 역반응 때문인지 초콜릿 광고는 방영 금지되었다고 한다.

 

 

 

 

 

 

덤으로 킨더 서프라이즈는 아이들이 피해야 할 위험한 제품으로 낙인 찍혔다. 제품 포장을 뜯어보면 노란색 플라스틱 통이 있고, 플라스틱 통 바깥에는 초콜릿이, 안에는 장난감이 들어있다. 그런데 아이들이 초콜릿을 삼켰다가 기도가 막혀 질식사한 사고가 일어나자 미국에서는 유해성을 이유로 이 제품을 수입 금지 목록에 포함했다.

 

자고 일어나면 달걀 가격이 치솟고 있다. 조류독감이 장기화되면서 달걀이 품귀 현상을 빚고 있다. 요즘 연말 분위기를 ‘삶은 달걀’이라는 단어로 비유할 수 있다. 일상적이고 안온한 삶은 연약한 달걀과 같다. 불의의 사고가 덮친 일상의 균형은 달걀처럼 깨지게 마련이다. 일상의 균열이 만들어낸 파문은 우리의 마음을 불편하게 만든다. 그보다 더 고통스러운 사실이 있다면, 깨지기 일보 직전에 처한 한국산 험프티 덤프티의 존재이다. 한국산 험프티 덤프티는 박근혜다. 그녀는 청와대 관저 담벼락 위에 편안히 앉아 있다가 바닥으로 떨어져 곤두박질쳤다. 그래도 완전히 깨지지 않았다. 박근혜를 여전히 추종하는 신하들과 박사모들은 박살나기 직전 그녀의 권위를 회복하기 위해 안간힘을 쓴다. 하지만 이전의 상태로 일을 되돌릴 수 없다. “어떤 사람들은 생각이 아기만도 못 해!”라고 루이스 캐럴의 험프티 덤프티는 말하고 있다. 이 말은 유치하고 어리석은 행동이라는 죄를 저지르고, 후안무치한 박근혜에게 해당한다. 그녀처럼 우리 사회가 상식과 논리 결핍이 계속된다면, 아마도 험프티 덤프티와 똑같이 산산조각이 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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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12-22 15:01   URL
비밀 댓글입니다.

cyrus 2016-12-22 16:25   좋아요 1 | URL
험티 텀티가 캐럴의 험프티 덤프티를 모티프로 한 캐릭터입니다.

통풍 진단 이후로 닭고기보다는 달걀을 많이 섭취하고 있었습니다. 당분간 달걀을 먹을 수 없다고 해서 크게 불편한 점은 없습니다. ^^;;

겨울호랑이 2016-12-22 15:0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연의도 ‘킨더 조이(?)‘ 초콜렛을 좋아해서 저도 종종 구입합니다. 아이들에게 인기있는 제품인 것 같아요.

cyrus 2016-12-22 19:01   좋아요 1 | URL
킨더 조이를 킨더 서프라이즈의 자매품으로 보면 됩니다. ^^

양철나무꾼 2016-12-22 19: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 예전에 ‘마더구스‘를 부분 번역한 일이 있어서요,
그런 내용을 가진 책이 어떻게 어린이용인지 의아해 한 적이 있었습니다.
근데, 저 킨더 서프라이즈 맛나는데, ㅋ~.

cyrus 2016-12-22 19:19   좋아요 0 | URL
마더 구스 동요 중에는 동심파괴에 가까운 노랫말이 있긴 합니다. 어떤 동요는 분위기가 암울하기도 하고요. ^^;;

transient-guest 2016-12-24 05: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박근혜씨가 얼굴에 계속 무엇인가를 넣는다면 외모도 험프티 덤프티처럼 변할지 모르겠네요..ㅎ

cyrus 2016-12-24 09:22   좋아요 0 | URL
속은 완전히 썩어버린 사람입니다. 썩은내가 진동하는데도 뻔뻔하게 버티는 모습이 한심스럽습니다. ^^;;
 

 

 

 

 

 

 

http://m.bboom.naver.com/board/get.nhn?boardNo=9&postNo=2336870&entrance=

 

 


누군가가 나를 쫓아오는 꿈을 꾸면 이상하게 내 몸이 무겁게 느껴진다. 이게 무슨 말인지 이해 안 되는 분은 링크의 GIF 파일을 보면 된다. 파일 속 주인공이 어떻게 달리는지 보시라. 양다리를 흐느적거리면서 걸어간다. 사람마다 차이가 있겠지만, 꿈속에서 빠르게 달리는 일이 불가능하다. 아무리 힘껏 달리고 싶어도 양다리에 모래주머니가 달린 것 같은 느낌을 지우지 못한다. 어떻게 보면 이런 꿈도 악몽에 속한다.

 

 

 

 

 

 

 

 

 

 

 

 

 

 

 

 

 

 

하워드 필립스 러브크래프트는 꿈, 특히 자신이 생각하는 악몽에서 영감을 받아 공포소설을 썼다. 그 작품들 중 하나가 <데이곤(Dagon)>이다. 이 소설의 주인공은 사방으로 끝없이 펼쳐진 진흙 개펄 한가운데에 누워 있다. 두려움에 빠진 주인공은 진흙 개펄에 빠져나오기 위해 젖 먹던 힘을 다해 필사적으로 기어간다. 그렇게 해서 주인공이 발견한 것은 좌초된 보트이다.

 

 

 

 

 

 

 

 

 

 

 

 

 

 

 

 

 

 

 

 

일반적으로 소설이나 영화 배경으로 나오는 진흙 수렁은 인간의 목숨을 위협하거나 무시무시한 곳 혹은 괴생명체가 사는 것으로 전해지는 장소로 설정된다. 코난 도일의 장편소설《바스커빌 가의 개》는 음침한 황무지가 펼쳐진 마을을 배경으로 한 작품이다. 마을 주민들은 황무지의 진흙 늪지대를 금단의 장소로 여긴다. 이곳에 한 번 빠지면 살아남기 힘들고, 진흙 늪지대 부근에 정체불명의 울음소리가 울려 퍼진다.

 

그런데 어떤 독자가 진흙 개펄에 빠진 <데이곤>의 주인공이 보트로 향하는 과정이 비현실적인 일이라고 생각했던가 보다. 당연히 그렇게 생각할 수 있다. 왜냐하면, 진흙 수렁에 빠지면 이동하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오히려 이동하는 과정에서 체력이 고갈된다. 그렇게 오랜 시간 동안 수렁에 헤어 나오지 못하면 아사(餓死)에 이를 수 있다.

 

러브크래프트는 <데이곤을 옹호하며>라는 글을 써서 독자가 의문을 제기한 묘사에 대해 해명했다.

 

“화자는 진흙 속에 반쯤 몸이 잠겨 있지만, 기어서 갈 수 있습니다! 기어가는 끔찍한 과정이 전부 생생한 꿈으로 남아 있어서 잘 압니다. 아직도 그 끈적끈적한 진흙이 나를 빨아들이는 것 같은 걸요!” (《러브크래프트 전집 1》 발췌 인용)

 

러브크래프트는 악몽 같은 순간을 그대로 묘사했을 뿐이다. 그도 꿈속에서 자신의 몸이 제대로 움직이지 못하는 불쾌한 경험이 겪었을 것이다. 악몽을 경험하면 몸을 움직일 수 없게 된다. 그래서 러브크래프트의 소설 속 주인공들은 자신의 눈앞에 악몽과 같은 상황을 겪는 순간에도 도망치지 않는다. 독자들이 우스갯소리로 ‘무서우면 도망치지 왜 그걸 끝까지 지켜보고 있느냐?’고 지적할 정도다. 이러한 클리셰가 러브크래프트 소설의 한계로 보고 있지만, 러브크래프트가 꿈인지 현실인지 분간하기 힘든 끔찍한 공포에 지배당한 인간의 감정을 실감 나게 표현한 것으로 옹호하고 싶다.

 

알 수 없는 곳에서 무작정 달리는 꿈 다음으로 가장 기이한 분위기를 자아내는 것이 갑자기 아래로 추락하는 꿈이다. 고층 건물에서 뛰어내려 본 적이 없는데도 그 꿈을 꾸고 나면 진짜 아래로 추락하는 기분이 든다.

 

 

 

 

 

 

 

 

 

 

 

 

 

 

 

 

 

토끼를 쫓던 앨리스가 아주 깊숙한 우물 바닥 아래로 한없이 추락하는 모습은 누구나 한 번쯤 겪어봤을 법한 일이다.

 

토끼 굴은 똑바로 뻗어 있는 게 꼭 수평 갱도 같았다. 그런데 느닷없이 푹 하고 길이 꺼졌다. 하도 불시에 닥친 일이라 앨리스는 뭐라도 붙잡거나 저항해 추락하지 않도록 해볼 틈이 없었다. 이윽고 앨리스는 자신이 아주 깊은 우물 바닥으로 떨어지고 있다는 걸 깨달았다. (《주석과 함께 읽는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17쪽)

 

 

인간은 현실의 진흙 구덩이 속에서 뒹굴고 다투면서 살아간다. 그렇지만 소설가는 좀 특별하면서도 다르다. 소설가는 이 세계 너머에, 또는 그 안쪽 깊이에 이 세계와 다른, 혹은 똑같을 수도 있는 또 하나의 세계를 만든다. 그것은 꿈꾸기를 통해서만 이루어지는 세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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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ureka01 2016-12-21 22:3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매몰되는 일..보통 중독성이 심한 것들.도박..도벽...음주...지독한 섹스..마약...다 진흙에 한번 빠지면 자력으로 나오기가 무척 어려운 것들이죠....

cyrus 2016-12-22 08:58   좋아요 2 | URL
현실의 고통을 잊기 위해서 마약, 음주, 섹스에 탐닉하기 쉬운데 오히려 마 음에 공허감을 유발할 뿐입니다. 그래서 중독 증세에 시달리면 정신적으로 더 피폐해집니다.
 

 

 

 

 

 

 

 

 

 

 

 

 

 

 

 

 

 

아토다 다카시의 <공포의 연구>에 등장한 다지마 케스케는 문예 평론을 쓰면서도 공포문학에 조예가 깊은 사람이다. 다독가이기도 하는데, 그의 모습에서 에도가와 란포가 연상된다. 공포와 추리. 언뜻 정반대 편에 있는 듯 보이는 이 두 장르는 사실 본질에서 맞닿아 있다. 바로 비이성과 광기의 산물인 범죄를 종착역(공포) 또는 출발점(추리)으로 삼고 있다는 점이다.

 

다지마 게스케는 인간이 공포심을 느끼는 원인을 초자연적인 현상에서 찾지 않는다. 그는 예상하지 못한 곳에서 기분을 거스르는 소리가 사람의 신경을 곤두서게 하기에 충분하다고 말한다.

 

어른이 귀신 영화를 보고 정말로 무섭다고 생각하는 것은 귀신이 휙 하고 얼굴을 드러낼 때가 아닙니다. 정말로 무서운 것은 아무런 소리도 없이, 아무도 없어야 하는데 갑자기 미닫이문이 슬그머니 열린다거나... 혹은 관 안에 넣었음에 분명한 방울이 으쓱한 밤중 어딘가에서 찰랑찰랑 하며 울려온다거나... 그런 것이 정말 무서운 겁니다.” (<공포의 연구 - 혹은 에필로그풍의 소품> 중에서, 436~437)

 

공포는 상상의 산물이다. 학습된 기억과 경험으로 인해 두려움을 느끼고, 무서움이라는 감정으로 사람을 불안에 떨게 한다. 귀신이 등장하지 않아도 귀신이 나올 다음 장면을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공포를 느낄 수 있다. 아토다 다카시의 공포소설은 독자의 상상력을 자극하는 심리적 공포에 초점을 맞춘다.

 

다지마 게스케가 밤중에 울리는 관 속의 방울소리를 언급하는데, 사실 아토다 다카시가 이 기묘한 현상을 소재로 손바닥 소설을 쓴 적이 있다. 이 소설은 정태원 씨가 번역한 공포특급 6이외에도 수많은 괴담집에서 소개되었다.

    

 

 

방울 소리 (아토다 다카시, 정태원 번역)

 

 

, 이것이 미라의 무덤인가?”

 

비석에 조각된 글을 확인하면서 남자가 말했다. 침엽수가 높이높이 자라고 있어서 황혼에 가까워진 햇빛은 거의 지상에 닿지 못하고 있었다. 비석은 이끼가 잔뜩 끼여서 조각된 글조차 확실히 보이지 않았다.

 

어떻게 된 거야?”

 

여자가 물었다. 두 사람은 N산 깊은 곳에 오래 전 밀교의 절터가 있다는 사실을 알아내고 하이킹을 겸해서 물어물어 찾아온 것이다. 오래 전 역사책에 이름이 남아 있는 고찰도 지금은 겨우 주춧돌 흔적만 찾을 수 있을 뿐이다.

 

아무래도 이 비석이 산을 개척하신 고승의 무덤 같군.”

 

그게 미라야?”

 

그래.”

 

산 속은 너무나 고요해서 새소리 하나 들리지 않았다.

 

옛날의 고승들은 산 채로 흙 속에 묻혀 미라가 되는 것을 인생의 마지막 고행이라고 생각하고 있었어.”

 

그래?”

 

이 분도 기록에 의하면 7×7, 49일 간의 질식 끝에 떡갈나무 관에 넣어져서 이 무덤 아래 묻혔다는 거야.”

 

잔혹하구나.”

 

수행이니까 어쩔 수 없지. , 손에는 방울을 쥐고서 죽통으로 공기구멍을 만들어 두지. 살아 있는 동안은 이따금 방울소리가 들려오는 거야.”

 

두 사람이 얘기하고 있는 사이에도 황혼이 더욱 짙어가고 있었다.

 

기분이 어째 안 좋네. 그만 돌아가자.”

 

이미 3백 년 전의 일인걸 뭘. 파보면 멋진 미라가 나올 거야.”

 

싫어, 그런 얘기 그만해...”

 

두 사람은 무덤을 뒤로 하고 방금 왔던 길로 돌아섰다. 순간, 남자의 발이 멈췄다. 여자의 얼굴도 창백해졌다.

 

등 뒤의 땅 속에서, 딸랑, 희미하게 방울소리가 들렸다.

 

 

    

괴담집을 보면 초반에 으스스한 분위기로 시작하다가 막판에 허무한 웃음을 주는 이야기 한 두 편은 꼭 있었다. 아토다 다카시가 쓴 것으로 알려진 <저주의 나이프>는 재미있는 반전이 있는 이야기다. 어렸을 때 <저주의 나이프>와 흡사한 이야기를 괴담집에 본 적이 있다. 사람들이 어렸을 때 접했던 괴담 대부분은 전문 작가가 만든 것이다. 그래서 창작 괴담은 그저 그런 시시한 창작물이 아니다. 창작 괴담은 공포소설로 확장되는 진정한 출발점이기 때문이다.

 

 

 

저주의 나이프 (아토다 다카시, 정태원 번역)

 

 

그런 바보 같은 질문을 믿다니... 좀 더 진지하게 부인과 헤어질 생각을 할 수 없나요?”

 

어느 맨션 안. 여자가 소파에 몸을 비스듬히 누이고 이마에 내려온 머리카락을 쓸어 올리며 남자에게 핀잔을 주고 있다. 여자는 27, 8. 남자는 40세 정도 되었을까?

 

그렇게 간단하지 못한다는 걸 잘 알잖아! 그보다 말이야, 마누라가 죽어준다면 얘기는 훨씬 간단하지.”

 

여자가 코웃음을 쳤다.

 

, 정말로 죽어준다면 말예요. 저주가 내려서 죽다니, 도대체 그런 말도 안 되는 생각을 하다니요?”

 

아니라니까, 이것은 진짜 정통 집시들이 대대로 전해 내려오는 방법이라니까. 지금까지 성공했던 예가 얼마나 많은지 몰라. 그러니까 내가 그 많은 돈을 투자해서 이 나이프로 빌려오지 않았겠어?”

 

남자는 그렇게 말하며 가방 속에서 가느다란 나이프를 꺼냈다. 나이프 날에 서로 뒤엉킨 두 마리의 뱀이 조각되어 있었다. 예리하게 날이 선 칼끝이 괴이한 빛을 발하고 있다. 자세히 살펴보면 군데군데 기분 나쁜 핏자국까지 있다. 과연! 이 혼자만 본다면 지금까지 수명의 생명은 거뜬히 저주하며 죽였을 것 같기도 하다. 여자는 전혀 내키지 않는 듯한 표정으로 나이프를 건네받고 이리저리 살펴봤다.

 

이 나이프로 어떻게 할 거야?”

 

죽어줬으면 하는 사람의 사진에다 이 칼을 사정없이 꽂는 거지. 마침내 사진이 피를 흘리면 그걸로 끝장이야. 그 사람은 3일 이내에 몸에서 피가 모조리 빠져서 죽는다는 거야.”

 

말도 안 돼.”

 

어때? 해볼 만하잖아? 마누라 사진까지 준비해 왔다니까. 일단 해보자고. , 그럼 내가 들고 있을 테니까 찔러봐.”

 

여자는 여전히 코웃음을 치며 나이프를 손에 들고 계속 바라보고 있더니 갑자기 남자가 들고 있는 사진의 가슴 언저리를 노리고 힘차게 푹 찔렀다. 다음 순간, 여자의 안색이 하얗게 변했다. 입술이 공포로 부르르 떨렸다. 대체 어떻게 된 일이지! 사진의 가슴께에서 붉은 피가 뚝뚝 번져나오기 시작했다. 여자가 몸서리를 치며 소리질렀다.

 

아악!”

 

그때 남자가 말했다.

 

~ 손수건 없어? 내 손등이 찔렸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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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ureka01 2016-08-26 13: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cyrus님 덕분에 알라딘 리뷰의 지평이 넓어지는 느낌이랄까요.^^...

cyrus 2016-08-26 15:12   좋아요 1 | URL
이달의 뜬금없는 댓글로 선정합니다. ㅎㅎㅎ

많이 알려져 있지 않아서 그렇지 알라딘에 조용히 활동하면서 서평을 잘 쓰시는 분들이 있습니다. 예스24에도 수준 높은 글을 쓰시는 분들이 있었어요.

카스피 2016-08-26 22: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 돌아가신 정태원님의 번역이네요.참 추리소설에 애정이 많으셨던 분이시지요.

cyrus 2016-08-27 14:23   좋아요 0 | URL
작년부터 정태원님이 번역한 책을 모으고 있습니다. 알라딘에 검색해도 나오지 않는 책들도 있었어요. 잊힌 그분의 업적을 알라딘 서재에서의 기록으로나마 복원하고 싶습니다. 누군가가 기록하지 않으면 영원히 잊히니까요.

카스피 2016-08-28 21:57   좋아요 0 | URL
그러시군요.저도 정태원님이 번역하신 책을 좀 갖고 있는데 역시 추리소설에 애정이 많으신 탓에 다른 번역가들이 번역한 책보다 수월하게 읽을수 있는것 같습니다.
 
냉장고에 사랑을 담아 아토다 다카시 총서 1
아토다 다카시 지음, 유은경 옮김 / 행복한책읽기 / 2008년 4월
평점 :
절판


 

 

공포에는 묘한 매력이 있다. 무섭고 섬뜩하면서도 왠지 모르게 호기심을 자극한다. 우리는 무서움에 떨면서도 불빛에 몰려드는 나방처럼 공포영화에 탐닉한다. 무서운 영화를 보면 소름이 돋고 식은땀이 흘러 서늘해진다. 공포감이 교감신경을 흥분시키는 작용을 한다. 이 흥분 작용 때문에 순간적으로 적은 양의 땀이 분비되고 땀은 체외로 나오자마자 바로 증발, 체온을 빼앗아 간다. 바로 이런 이유로 서늘한 느낌이 든다. 귀신이 지나가면 서늘한 기운이 느껴진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과학적으로 근거가 없다.

 

 

 

 

귀신이 정말 존재할지도 모른다는 뉘앙스를 풍긴 공포물이 가장 무섭게 느껴질까? 꼭 그렇지만 않다. 단순한 착시 현상이거나 귀신의 실체가 조작으로 밝혀지면 실망과 허무감이 느껴진다. 우리는 본능적으로 사람 얼굴과 닮은 형상을 찾으려는 경향이 있다. 이를 파레이돌리아(pareidolia)이라고 한다. 예컨대, 화성에서 십자가, 인간 얼굴 형상, 사람 신체 형상을 찾아내는 것들은 바로 이런 인간의 심리를 반영한다.

 

귀신이 등장하는 ‘깜짝 공포’보다 상상력을 자극하는 공포야말로 더 무섭고, 진한 여운이 남는다. 러브크래프트나 스티븐 킹 같은 공포소설 작가들이 쓴 작품에 공통점이 있다. 일상생활 중 한 번쯤 공포를 느끼거나 이상한 상상력을 불러일으켰음 직한 장소와 소재를 적절히 활용, 인간의 불안의식과 공포를 극대화하는 연출방식을 사용한다. 일본의 장편소설(掌篇小說, 손바닥 소설)의 대가 아토다 다카시 역시 기묘한 상상력을 통해 현실에서 느낄법한 서늘한 공포를 선사한다. 그의 첫 단편집 《냉장고에 사랑을 담아》 에필로그 격으로 수록된 <공포의 연구>는 소품에 가까운 소설이지만, 공포소설의 기본 설정을 알려주는 ‘공포소설론’으로 볼 수 있다.

 

“공포의 문학에서도 가장 무서운 광경은 펜으로 쓰기보다는 독자들의 상상력에 맡기는 편이 알 수 없는 공포가 퍼져서 더욱 효과를 높일 수 있습니다.”

 

(<공포의 연구 - 혹은 에필로그풍의 소품> 중에서, 445쪽)

 

표제작 <냉장고에 사랑을 담아>는 인간의 잘못된 확신과 강박에서 비롯된 잔혹한 결말이 인상 깊은 소설이다. 작가는 결말에서 나오는 주인공의 대사와 행동이 정확히 무슨 의미인지 묘사하지 않는다. 결말을 보고 있는 독자들의 상상력에 맡긴다. <기묘한 나무>는 현실과 환상의 경계가 무의미한 소설이다. 이 소설에 죽은 육체를 재생시키는 오무 나무가 등장한다. 아내가 죽은 후, 아내의 조카에 애정을 느낀 남자는 조카의 빼어난 외모를 닮은 여자를 재생시키기 위해 오무 나무 씨앗을 구한다. 씨앗이 나무로 무럭무럭 자라나는 데 필요한 것은 조카의 시체. 남자는 자신이 살해한 조카를 흙에 묻은 뒤에 오무 나무 씨앗을 심는다. 여성 신체와 닮은 오무 나무가 자라나는 데 성공했지만, 나무 표피에 나타난 얼굴은 조카가 아닌 아내였다. 남자는 기대한 것과 다른 현상을 이해할 수 없게 되는데, 소설 속 남자와 그를 지켜보는 독자들조차 전혀 생각하지 못한 반전의 결말이 기다리고 있다. <나는 먹는 사람>은 폭식과 탐식의 무한 욕망에 사로잡힌 주인공의 이야기다. 이 주인공은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탄탈로스(Tantalos)와 에리직톤(Erysichton)을 반쯤 섞은 특이한 인물이다. [주1]

 

《냉장고에 사랑을 담아》는 독자에게 서늘한 공포를 안겨주는 데는 어느 정도 성공했다. 귀신보다 사람이 더 무섭다는 현실적인 교훈(?)을 보여주는 블랙 코미디다. 하지만 이 책에 작가의 재능이 발휘되는 손바닥 소설이 많이 나오지 않는다. 비교적 분량이 짧은 소설은 <해초>, <마음의 여로>, <공포의 연구>다. 특히 <해초>는 손바닥 소설에 가깝다. 본문이 고작 5쪽에 불과하다. 인물 간의 대화나 상세한 묘사(특히 벌거벗은 여체나 성애 장면을 묘사한 것)를 과감히 줄였더라면 지금보다 더 서늘한 기운의 농도가 높은 작품이 되었을 것이다.

 

<공포의 연구>에 외국 작가가 쓴 공포 단편소설들이 언급된다. 결말까지 나오기 때문에 읽기 전에 주의할 것.

 

 

* W.W. 제이콥스의 <원숭이 손> [참고1]

 

* 오카모토 기도의 <기소의 여행자> [참고2]

 

* 에드거 앨런 포의 <긴 상자> [참고3]

 

* 로알드 달의 <여주인>

 

* 휴 월폴의 <은가면>

 

* 래스키의 <탑>

 

* 사키의 <열린 창> [참고4]

 

 

 

 

[주1] 탄탈로스는 신들의 음식을 훔친 죄로 영원한 굶주림과 갈증에 시달리는 벌을 받았다. 에리직톤은 아무리 음식을 먹어도 허기를 느끼는 저주를 받았다.

 

[참고1] <윌리엄 위마크 제이콥스-원숭이 손>

(2016년 5월 17일 작성, http://blog.aladin.co.kr/haesung/8499730)

 

[참고2] 《괴몽 : 일본 환상소설 단편집》(페가나북스, 2011년, e-Book)에 수록, 제목은 ‘키소에서 온 나그네’

 

[참고3] 《에드거 앨런 포 전집 2 : 공포 편》(코너스톤, 2015년)에 수록, 제목은 ‘직사각형 상자’

 

[참고4] <사키-열린 창문>

(2016년 5월 29일 작성, http://blog.aladin.co.kr/haesung/85253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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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ureka01 2016-08-25 14: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사람때문에 죽은 사람은 많았거든요..네 맞습니다..사람이 귀신보다 더 무섭 ㄷㄷㄷㄷㄷ

cyrus 2016-08-25 14:49   좋아요 1 | URL
가족도 믿을 수 없는 세상... 진짜 말세입니다... ㅠㅠ

카스피 2016-08-26 22: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뭐 예전 중국고전보면 호랑이보다 사람이 더 무섭다는 말도 있더군요^^;;

cyrus 2016-08-27 14:31   좋아요 0 | URL
그래서 사람이 사람보다 큰 호랑이를 사냥했죠... ㅎㅎㅎ 그래서 우리나라에 살았던 호랑이들 절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