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로 박사의 섬 문예출판사 세계문학 (문예 세계문학선) 87
허버트 조지 웰즈 지음, 한동훈 옮김 / 문예출판사 / 201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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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궁 속의 침팬지에게 인간의 줄기세포를 주입한다. 그 침팬지는 인간의 뇌를 가지면서 태어난다. 사람처럼 생각하고 행동할 수 있다. 그렇다면 이 침팬지는 사람인가, 동물인가.

 

동물의 생체실험은 대체로 소량의 유전자를 동물에게 주입하거나, 인간의 세포나 조직을 동물에게 이식한다. 인간의 유전자나 체세포를 갖도록 조작된 동물들은 인간의 질병 치료에 유용하게 활용되고 있다. 하지만 동물에게 인간의 특질을 부여하는 생체실험은 얘기가 달라진다. 한때 영국에서 동물의 생체실험 규제에 관한 논란이 있었다. 일부 과학자들은 인간의 세포나 유전자를 소량 이용하는 실험은 유지하되 인간과 동물의 경계를 허무는 실험에 대해서는 완전 금지를 주장했다. 인간 유전자를 섞은 동물의 배아를 14일 이상 배양하거나, 인간의 정자나 난자를 동물의 것과 섞어 교배하는 실험을 할 수 없다. 동물 생체실험을 반대하는 과학자들은 침팬지, 고릴라, 오랑우탄 등 영장류에 실험을 한다면 심각한 문제가 일어날 수 있다고 말한다.

 

과학자들이 우려하는 생체실험의 위험성은 영화 '혹성탈출: 진화의 시작'에 나오는 침팬지를 연상시킨다. 영화에서 과학자 윌 로드만은 알츠하이머병에 걸린 아버지를 치료하기 위해서 손상된 인간의 뇌를 회복시켜주는 큐러라는 약을 개발한다. 이 약의 임상실험 대상은 침팬지. 윌의 보호 아래 자란 침팬지 시저는 인간의 지능을 가지게 된다. 시저는 자신이 인간과 다른 존재라는 것을 자각하면서 다른 유인원들과 함께 인간들을 역습하기로 한다.

 

인류는 생명공학을 통해 판도라의 상자를 여는 데 성공했다. 신의 영역을 넘어선 인간은 자신들의 영생을 위해 우성 유전자를 지닌 복제인간을 만든다. 이미 멸종된 동물을 복제하는 시도도 한다. 그러나 상자 안에는 우리가 원하던 미래의 희망만 있는 것은 아니다. 상자가 열리는 순간 해악도 한꺼번에 튀어나왔다. 영화 '혹성탈출'에서처럼 인간의 지능을 가진 동물이 우리를 공격하거나 우성 유전자만 선호하고 높은 가격으로 거래하는 일도 발생할 수 있다. 생체 실험 문제에 늘 윤리적 논란이 따라다닌다.

 

유전자 조합과 생체실험의 윤리적 담론을 주제로 한 영화에서는 인간이 파멸을 몰고 오는 경우가 대다수였다. 특히 여러 차례 영화로 리메이크된 허버트 조지 웰스의 『모로 박사의 섬』은 과학적 생체실험을 다룬 문학적 효시라 할 수 있다.  

 

모로 박사는 인간과 동물을 결합하는 실험을 통해 새로운 생명체로 인류를 재창조하려는 야욕을 품는다. 그러나 그의 생체실험은 너무나도 잔인하다. 한번은 그가 실험하려고 했던 개가 가죽이 심하게 벗겨지고 사진가 훼손된 채 발견되어 잔인무도한 생체실험의 진실이 밝혀지게 된다. 이로 인해 모로 박사는 과학계 동료들로부터 멸시를 받지만, 생체실험에 대한 열망을 포기하지 않는다. 영국을 떠나 야생동물들이 사는 남태평양의 무인도에 정착한다. 이곳은 모로 박사의 거대한 생체실험 연구실이 되고, 그 결과 태어난 것은 사람도 짐승도 아닌 괴상한 반인반수였다. 인간이라고 말할 수 없을 정도로 이상한 외모의 피조물들이 섬 여기저기에 나타난다. 우연히 이 섬에 정착하게 된 에드워드 프렌틱은 악몽 같은 나날을 보낸다. 그는 모로 박사에게 실험의 위험성을 경고했으나 박사는 귀담아 듣지 않는다. 박사는 미쳐버렸다. 그의 머릿속에는 오로지 실험에 대한 생각뿐이다.

 

"연구자가 지적 열정을 쏟는다는 게 어떤 의미인지 당신을 모를 거요! 그 지적 열망이 가져다주는 기묘하고 무색투명한 기쁨을 당신을 모를 거요! 당신 눈앞에 있는 것들은 더는 동물이 아니라 같은 인간이오. 하지만 골칫덩이지! 내가 바란 게 하나 있다면 한 생명체가 어디까지 적응할 수 있는지 그 한계치를 알아내는 일이었소." (108쪽) 

 

인간으로 개조하는 동물들은 자신을 태어나게 해준 모로 박사를 위대한 조물주라고 생각한다. 박사는 이 섬에서 신처럼 군림한다. 하지만 다시 동물로 퇴화하는 자신의 피조물들에게 살해당한다.   

 

소설은 자연의 섭리를 거스른 인간에게 '파멸'을 벌한다. 지적 목표를 위해서 윤리를 무시한 과학의 위험성은 인류의 미래를 파괴한다. 신의 영역을 넘어선 인류의 갈망은 인간성 상실의 또 다른 모습이다. 모로 박사는 20세기에 현실로 되살아났다. 아니 그보다 더 극악하다. 모로 박사는 동물을 대상으로 했지만, 독일 나치와 일본 731부대의 생체실험은 인간을 실험 대상으로 삼았다. 마취하지 않고 신체를 절단하는가 하면 독극물과 세균을 강제로 주입하는 등 끔찍한 짓을 저질렀다. 이들은 과학의 발전과 진보라는 핑계로 인간의 존엄을 무시하는 생체실험을 진행했다. 실험대상의 고통을 외면했다. 모로 박사도 생체실험을 당하는 동물들의 고통을 사소한 것이라고 일축한다. 이 지구상에는 고통을 느끼지 않는 생물이 많다고 말하면서 생체실험의 정당성을 강조한다. 반인반수들은 단지 야생 본능이 살아나서 박사를 공격한 것은 아니다. 이들은 오랫동안 잔인한 인간성이라는 족쇄에 묶여 있었다. 과학만능주의와 인간지상주의로 만들어진 족쇄는 피조물들을 괴롭혔다, 박사는 자신의 피조물에게 주입하기를 원했던 인간성이 파멸의 씨앗으로 될 줄 몰랐다.  

 

인류는 지금처럼 알게 모르게 찔끔찔끔 진화에 개입하는 식이 아니라, 의도적으로 개입할 수 있는 위치에 올랐다. 모로 박사처럼 외딴 섬에 숨어서 실험할 필요도 없어졌다. 나날이 세계 곳곳에서 새로운 합성 생물이 등장할 것이다. 그런 식의 과학 발전은 과연 좋은 것일까, 나쁜 것일까? 인간은 한계가 설정되어 있으면 그것을 넘고 싶은 욕구가 끓어 넘치는 존재다. 과학이 지금 가능성으로 제시하는 미래의 여러 대안을 접하면 왠지 움찔한다. 인류의 미래를 걱정했던 웰스도 그랬을 것이다. 인간과 동물의 경계가 무의미해지는 실험이 성공한다면 인간이라는 개념 차제가 모호해지지 않을까. 인류 비슷한 피조물이 왠지 음험해 보이는 눈빛을 하고 다가올 때, 우리가 환영하는 표정을 지을 것 같지는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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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피북 2014-12-31 00:5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별개의 이야기일 수도 있지만 영화 아일랜드가 떠오르기도 하네요. 자신의 복제 인간을 만들어두고 필요시 장기 적출하는 내용의 영화도 공포스러웠는데, 인간과 동물의 복합 유전자로 탄생된다면 정말 만만찮은 문제들이 발생할꺼 같아요. 총균쇠라는 책에서 읽다가 들던 생각인데 그리스 로마 신화에 나오는 신화중에 반신반인의 이야기가 왠지 허구적인 일만은 아니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해봤습니다. 윤리적 개념이 없던 시대 이기도 했거니와, 원래 신화라는게 아주 허구적인 사상에서 출발하지는 않다는것도 책을 통해 알게 된터라 그런 생각을 하게 되었어요^^

cyrus 2014-12-31 11:50   좋아요 1 | URL
생각해보면 신기하죠. 신화에서 나올법한 상상의 이야기가 현실에서 이루어지는 것을 보면요. ^^
 
로숨의 유니버설 로봇 - 카렐 차페크 희곡 10대를 위한 책뽀 시리즈 4
카렐 차페크, 조현진 / 리잼 / 201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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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형 로봇은 인간과 어느 정도로 닮아야 할까. 위에 있는 사진을 보라. 얼핏 보아서는 그저 쌍둥이 같지만 두 사람(?) 중 하나는 로봇이다. 어느 쪽이 로봇일까. 사진 속 진짜 사람은 일본의 로봇전문가 이시구로 히로구시다. 그가 만든 로봇의 이름은 제미노이드(Geminoid)이다. '쌍둥이'를 뜻하는 어원 'gemin-'과 '인조인간'이라는 뜻의 'android'를 결합한 말이다. 실제로 이 로봇은 그의 얼굴 윤곽부터 피부색, 머리카락, 턱수염과 눈썹처럼 미묘한 부분까지 똑 닮았다. 키도 자신과 똑같이 재현했다고 한다.

 

시력이 큰 문제가 없는 이상, 우리는 이 사진 속에 로봇과 인간을 구분할 수 있다. 풀린 듯한 눈동자, 어색한 표정 같은 미세한 차이에서 묘한 위화감을 느끼게 된다. 인간을 닮은 기계를 보면서 두렵고 섬뜩한 느낌을 받는다. 이런 위화감으로 인한 호감도 하락을 로봇 공학자들은 '불쾌한 골짜기(uncanny valley)'라고 부른다.

 

로봇에 대한 인간의 이미지는 처음부터 좋지 않았다. 로봇, 이제는 아주 익숙해진 이 말이 처음 사용된 것은 1921년 구 체코슬로바키아의 한 희곡에서였다. 극작가 카렐 차페크가 쓴 『로숨의 유니버설 로봇』이라는 희곡에서 처음 사용된 말이다. 체코어로 노동, 혹은 노역을 의미하는 'Robota'라는 단어에서 a자를 빼 만든 신조어다.

 

로숨은 인간과 똑같은 로봇을 처음으로 만든 발명가이자 해양생태학자다. 그는 직접 로봇을 만들어서 무신론을 증명해 보이고자 했다. 이때 만들어진 로봇은 인조인간 정도에 불과했다. 그러다가 로숨의 아들이 노동하는 로봇을 만들게 된다. 본격적으로 로봇 산업이 시작된 것이다. 로숨 부자는 작품에 등장하지 않고, 로봇 회사의 이름으로 언급될 뿐이다. 로숨 유니버설 로봇 회사의 사장인 해리 도민의 목표는 인간을 대신하는 값싼 기계 노동자를 만드는 것이다. 이 희곡에 등장하는 로봇은 마치 사람처럼 옷을 입고 있다. 서막에서 로봇을 묘사하는 내용이 언급되는데 무표정한 얼굴에 눈동자는 한 곳만 바라보는 듯한 표정을 짓는다. 이것은 인간과 구별하기 위한 영혼 없는 기계의 특징을 나타내고 있다.  

 

 

 

 

 

라디우스와 헬레나가 대화를 나누는 극중 장면 (70쪽)

 

 

 

희곡의 배경은 로봇이 노동자로서 인간의 지배를 받는 사회이다. 그러다가 점점 로봇은 노동을 통해 지능이 형성되고, 반항정신을 가지게 된다. 라디우스라는 이름의 로봇이 처음으로 인간의 명령을 거부하기 시작한다. 몇몇 인물들은 점점 인간에게 반항하는 로봇을 경계하고 무서워한다. 그렇지만 도민은 로봇 생산의 야망을 포기하지 않는다. 1막에서 로봇 생산을 중단하기를 강력하게 주장하는 유일한 인물은 도민의 아내 헬레나다. 그녀는 처음부터 로봇이 인간처럼 정당한 대우를 받길 원한다. 로봇 생산을 중단하는 것만이 인간과 로봇이 평화롭게 공존하는 길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1막에서 로봇에 의해 인간이 멸망하는 불행한 조짐을 느낄 수 있다. 로봇들의 반란이 일어나는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도민과 로봇 회사에 소속된 일행들은 로봇 사업의 성공을 기념하는 향연을 펼친다. 도민의 다음 목표는 국적과 피부색, 언어가 다른 로봇을 만드는 공장을 세우는 것이다.

 

결국, 로봇은 인간을 멸망시키는 데 성공한다. 인간 전복을 꾀하는 라디우스와 그가 이끄는 로봇들의 저항에 파괴된 도민의 로봇 회사는 프롤레타리아와 부르주아의 계급 갈등을 연상시킨다. 그렇다고 차페크가 이 희곡 작품을 통해 단지 맑시즘을 표방하려는 것은 아니다. 일단 마르크스가 생각했던 계급투쟁의 역사적 발전 단계대로 피지배자, 노동자였던 로봇은 지배자 인간과의 싸움에서 승리한다. 세상은 인간의 명령을 받지 않고 평등하게 일하는 로봇만 살아남았다. 그러나 로봇은 세상의 고아(Rabota)가 되고 만다. 자신들을 만들어 줄 인간이 없기 때문이다. 로봇들은 유일한 생존자 알뀌스뜨에게 로봇을 만드는 방법을 알려달라고 하지만, 소용없는 일이다. 로봇과 인간의 싸움에서 과연 로봇이 최종 승자라고 볼 수 있을까? 과학기술에 대해 끝없는 욕망과 오만으로 인해 인간은 로봇에게 패배한 것은 사실이지만, 로봇은 인류의 시대를 종식함으로써 자신들의 복제품을 더 이상 만들어질 수가 없게 된다. 로봇와 인간, 이 둘 중 누구도 세상의 승자라고 단번에 정하기 어렵다. 승자는 없다. 이 작품의 결말은 인류가 자초한 과학의 암울한 비극을 예언했다고 보는 것이 더 적절하다.  

 

비록 희곡은 로봇이 득세하는 어두운 미래를 묘사하고 있지만, 차페크는 일말의 희망을 암시하면서 막을 내린다. 남자 로봇 쁘리무스와 여자 로봇 헬레나는 인간의 감정을 지니고 있다. 두 개의 로봇은 아담과 하와가 되어 폐허가 된 세상을 회복할 수 있는 사랑과 평화의 부활을 알린다.  

  

지금도 과학자들은 인간형 로봇을 끊임없이 개발한다. 로봇이 인류의 미래에 '대체 인간'의 역할을 할 수 있으리라는 기대 때문이다. 짐을 들어 나르는 일꾼이 된다거나 하는 잡무부터 외로움을 느끼는 사람들의 친구가 되어준다거나 하는 기대다. 물론 군사적인 목적도 포함하고 있다. 그러나 인간형 로봇이 개발되면 개발될수록, 이는 묘한 딜레마를 불러일으킨다. 로봇이 너무 인간과 닮게 되면 사람들은 정체성에 도전받는 느낌이 들게 된다. 지금은 가벼운 조크로 여길 수도 있지만 기계가 인간처럼 느껴지고, 인간이 로봇으로 오해하는 상황도 발생할 수도 있다. 나는 차페크의 결말이 너무 안이하게 끝났다는 느낌이 든다. 희곡 작품을 읽는 독자 혹은 무대 공연을 본 관객들에게 또 다른 생각거리를 제공해주는 열린 결말 같다. 감정을 가진 로봇은 인간에 의해 파괴된 세상을 구원할 수 있을까. 인간의 자리를 대신한 로봇의 후예들은 휴브리스(Hubris)의 비극을 피할 수 있을까.

 

 

 

 

※ 체코어 Robota는 ‘노예’, ‘노역’ 이외에도 이리저리 떠돌면서 갈 곳 없는 고아라는 뜻도 가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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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ualia 2014-12-25 11:1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는 로봇 스스로는 인간한테 반란을 일으키지 않으리라 생각합니다.

인간 또한 로봇인간으로 진화해나가리라는 것은 생명의 진화사를 살펴보면 필연적일 것 같습니다. 인간과 로봇은 공진화 혹은 융합진화해갈 것 같아요. 인간성, 인류의 도덕과 윤리 개념도 인간 의식의 확장/진화와 함께 진화하리라고 봅니다. 인간과 로봇의 미래를 부정적이기보다는 긍정적으로 바라보고 싶네요.

qualia 2014-12-25 11:21   좋아요 0 | URL
‘로그인’ 상태에서 위 댓글을 써서 올렸는데, ‘로그아웃’ 상태로 입력이 되더군요. 제가 댓글 작성할 때, 알라딘에서 설정한 로그인 시간을 초과했나봅니다. 그래서 작성자가 익명으로 표기되더군요. 그래서 다시 로그인해 익명 처리된 댓글을 지우고, 댓글을 새로 올렸습니다.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cyrus 2014-12-25 16:26   좋아요 0 | URL
qualia님, 댓글 감사합니다. 저는 이런 의견이 있을 거라고 생각했어요. 제 생각이 충분히 반박될 수 있는 여지가 있으니까요. 제가 이 책을 읽으면서 <카렐 차페크 평전>도 같이 읽었어요. 그 책에 차페크의 작품을 해설한 내용이 있습니다. 실제로 차페크는 로봇의 미래를 비관적으로 보는 시선이야말로 작품을 제대로 읽지 못한 사람의 해석이라고 여길 정도로 작품 결말에 드러난 자신의 희망을 믿었다고 합니다. qualia님의 의견처럼 인간과 로봇의 공진화로 이루어졌으면 좋겠어요. 제가 글에서 인간과 로봇이 공존하는 미래를 비관적으로 표현했지만, 사실은 낙관적인 미래가 왔으면 좋겠습니다.
 
지구에서 달까지 - 경이의 여행, 개정판 쥘 베른 걸작선 (쥘 베른 컬렉션) 5
쥘 베른 지음, 김석희 옮김 / 열림원 / 200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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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을 지금으로부터 53년 전인 1961년 4월 12일 오전 6시 7분으로 돌려본다. 우리는 인류 최초의 우주인 유리 가가린을 태운 보스토크 1호 발사장면을 만나게 된다. 가가린이 지구 한 바퀴를 돈 다음 무사히 착륙했을 때 세계인은 경악했다.

 

과학 발전에 있어 상상력은 무엇보다 중요하다. 우주 개발에서도 많은 과학자들에게 상상의 날개를 펴게 했던 공상 과학 소설이 있다. 로켓이 추진되는 원리를 이론화한 러시아의 치올코프스키는 이 공상 과학 소설’을 쓴 작가의 존재를 높게 평가했다. “이 발상의 첫 씨앗을 뿌린 것은 위대한 판타지 작가 쥘 베른이었다. 베른이야말로 내 생각의 인도자였다.” 이 소설로 인해 많은 이들이 우주여행을 꿈꾸기 시작했고, 마침내 꿈을 이룰 수 있게 되었다.

 

『지구에서 달까지』는 미국의 남북 전쟁이 끝나자 할 일이 없어진 대포 제작자들이 ‘대포 클럽’이라는 모임을 만들고, 달까지 날아가는 포탄을 제작해 발사한다는 내용이다. 포탄이 우주를 날아다니는 이야기는 속편 격인 『달나라 모험』으로 이어진다.

 

소설은 대형 포탄이 만들어지는 과정을 상세하게 묘사한다. 특히 포탄이 달에 정확하게 도달할 수 있는 최적의 발사 위치와 날짜, 시간을 정확하게 계산하고 있다. 길이가 300 m나 되는 거대한 대포에 지름 3m, 높이 4m의 포탄이 제작된다. 이 무거운 포탄을 멀리 날려보내려면 화약 20만 kg이 필요하다. 베른은 포탄을 초속 12 km의 속도로 달을 향해 쏘아 올리면 발사한 지 4일 만에 달에 도착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포탄은 정확히 12월 1일 밤 10시 46분 40초에 발사된다. 만약에 날짜와 시간이 조금이라도 늦게 되면, 18년을 더 기다려야 한다.

 

 

 

 

 

포탄의 이름은 콜럼비아드. 이곳에 탑승하게 되는 사람은 총 3명. 처음으로 달에 포탄을 쏘아 보내는 생각을 한 대포 클럽 회장 바비케인, 그의 아이디어에 매료되어 적극적으로 달나라 여행에 동참한 프랑스인 아르당 그리고 바비케인을 싫어하고 달나라 여행 계획마저 반대한 캡틴 니콜까지. 포탄이 만들어지는 과정 내내 캡틴 니콜은 바비케인의 계획이 과학적으로 근거가 없고 과장되었다고 비난한다. 자존심이 센 바비케인이 반대 여론을 형성하는 니콜을 그냥 가만히 지켜보지 않았다. 이 두 사람은 끝이 보이지 않는 갈등과 논쟁을 참지 못해 결투를 신청한다. 이 사실을 알게 된 아르당은 두 사람의 결투를 막는다. 결투에서 바비케인이 사망한다면, 달나라 여행이 물거품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아르당은 극적으로 두 사람의 결투를 막는데 성공했고, 지독한 갈등 관계를 청산하기 위해서 자신과 함께 달 여행을 하자고 제안한다.

 

 

 

 

 

만약 베른의 상상처럼 사람이 포탄에 실제로 탑승한다면 어떻게 될까? 아마 발사되자마자 무서운 가속도 때문에 몸무게가 몇 천 t이나 돼 납작해져 사망하게 된다. 베른도 이 점을 걱정했는지 발사 충격을 물로 만든 쿠션으로 해결하려 했지만 그럼에도 실제로 살아남을 사람은 없을 것이다. 베른은 우주에서 희박한 산소 문제를 과학적 원리를 인용하면서 그럴듯하게 설명하지만, 이 문제 또한 쉽게 해결되는 것이 아니다.

 

 

 

 

 

 

"다시 한 번 말하면 지구에서 달까지 편안하고 쾌적하게 여행할 수 있을 거라고 말해도 지나친 과장이라고는 생각지 않습니다. 그 열차는 충돌하지도 탈선하지도 않을 것입니다. 승객들은 꿀벌이 날아가듯 일직선으로 빠르게 목적지에 도착할 테고, 피곤하지도 않을 것입니다. 20년 안에 지구인의 절반이 달을 여행하게 될 것입니다!" (192쪽)

 

 

그렇지만, 이 작품은 과학적 지식과 풍부한 상상력이 결합하여 지구에서 달까지의 비행 속도와 시간, 포탄이 발사할 수 있는 조건을 설득력 있게 묘사했다. 베른의 공상 과학 소설이 그저 아동을 위한 흥미 위주의 작품으로 오해해선 안 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바비케인의 달나라 여행 아이디어는 과장되고 허술해 보일지 몰라도, 축약된 아동문고 버전이 아닌 완역본을 직접 읽어보면 베른의 치밀한 전개에 감탄한다. 그 당시에 나온 최신 천문학 지식을 동원하여 그 누구도 생각하지 않았던 달나라 여행을 문장으로 실현한 것이다. 비록 상상력에 근거한 내용이라고 하지만, 훗날 우주 개발의 개척자들에게 우주여행의 꿈을 심어 준 위대한 발상의 씨앗이 되었다.

 

그리고 베른은 과학 지식을 독자들이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서술했다. 이 작품이 나오자마자 베스트셀러가 된 이유가 있다. 베른의 공상 과학 소설이 지금까지도 성공할 수 있었던 중요한 이유가 바로 과학에 문외한인 독자도 읽게 만드는 쉬운 글쓰기에 있다. 지구의 자전 으로 인해 달의 앞면만 보는 현상을 식탁으로 비유를 해서 설명한 문장을 보면, 베른의 문장력에 감탄하게 된다. 이렇게 쉽게 설명하다니.

 

“당신네 식당에 들어가서, 식탁의 중심을 계속 바라보면서 식탁을 한 바퀴 돌아라. 식탁을 다 돌았을 때는 당신 자신의 자전축을 중심으로 한 번 돌았을 것이다. 당신의 눈은 식당의 모든 점을 지나쳤을 테니까. 식당은 하늘이고, 식탁은 지구이고, 당신은 달이다!” (58쪽)

 

그러나 이 소설은 인간이 과학 진보의 힘을 우주로 펼치려는 야심찬 계획을 단순히 찬양하지 않는다. 베른은 나날이 발전되는 근대 문명을 예찬하면서도 화려하고 눈부신 진보의 불빛에 가려 미처 보지 못한 어두운 그림자를 주시했다. 작품 곳곳에 과학문명 사회의 오점을 암시하는 듯한 내용을 찾을 수 있다. 바비케인이 자신의 달나라 여행 계획을 전 세계적인 계획으로 만들기 위해 모든 나라에 협력을 요구하는 장면은 세계를 움직이는 힘이 이제 종교에서 과학으로 넘어갔음을 암시한다.

 

또 베른은 진보의 법칙을 믿고 오만해진 인간을 풍자하기도 한다. 바비케인이 달나라 여행 계획을 공식 선포한 뒤에 사람들은 달을 ‘금발의 포이베’(달의 여신)이라는 별명을 붙인다. 그리고 이미 달을 정복한 것처럼 열띤 분위기에 취한다.  

 

달이 제 소유라도 되는 듯이 편안하게 대하는 사람도 있었다. 금발의 포이베(달의 여신)는 그 대담한 정복자들 손에 들어가 벌써 미국의 영토가 된 것 같았다. 하지만 그들은 이제 겨우 포탄을 보낼 계획을 세우고 있을 뿐이다. 아무리 상대가 위성이라 해도 이런 식으로 교섭을 시작하는 것은 좀 무례하지만, 문명국들이 흔히 쓰는 방식이다. (36쪽)

 

지구의 위성인 달은 제국주의적 욕망이 투영되는 순간, 지구의 식민지로 바뀌게 된다. 여기서 달을 향해 쏘는 포탄은 단순히 미지의 영역인 우주를 알아내기 위한 과학적인 목적이 아니다. 원래 포탄은 적을 무력화시켜 지배하기 위해 절대적으로 필요한 무기였다. 지구 다음으로 또 하나의 영토가 될 수 있는 달을 지배하려는 문명국의 야욕으로도 볼 수 있다.

 

『지구에서 달까지』는 공상으로 여겨졌던 우주여행의 꿈을 무럭무럭 자라게 해준 희망의 씨앗이면서도, 우주에서도 세계질서 구축을 지향하기 위한 지배권을 뻗치려는 강대국의 욕심을 불러일으키는 불행의 씨앗이다. 지금까지 인류는 희망의 씨앗 속에 있는 영양분, 베른의 상상력 덕분에 우주의 비밀을 푸는 엄청난 수준으로 발전했다. 지금도 계속되는 도전과 모험의 우주 탐사는 과학 연구 목적으로만 실행되지 않을 것이다. 우주를 지배해야 자가 세계를 지배한다는 말이 있다. 인류가 우주의 비밀을 알기 시작하는 ‘우주의 시대’를 넘어서  ‘우주 개발의 시대’로 접어들었다. 강대국이 우주 탐사에 막대한 비용과 자원을 투자하는 이유가 있다. 언젠가는 지금보다 우주 탐사 및 개발 사업이 한층 더 발전된다면 우주에 쏘아 올리는 인공위성이나 로켓이 경쟁국을 견제하기 위한 포탄이 될까봐 쓸데없는 기우를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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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버트 조지 웰스의 단편선집(『허버트 조지 웰스 : 눈먼 자들의 나라 외 32편』/ 현대문학, 2014년)에 ‘아이피오르니스 섬’이라는 제목의 작품이 있다. 소설의 줄거리를 간략하게 요약하자면 화석 조류 아이피오르니스를 만난 남자의 경험담이다. 상상 속의 동물이나 다름없는 아이피오르니스를 웰스는 상상력으로 복원했다. 소설 속 주인공은 아이피오르니스가 살았던 섬에 거대한 화석 알을 발견한다. 그런데 그 알에 아이피오르니스 새끼가 부화한다. 남자는 새끼를 정성스럽게 키운다. 새끼는 남자를 어미라고 생각하면서 졸졸 따라다닌다. 시간이 지날수록 새끼는 빨리 성장했다. 이제 남자의 몸집보다 클 정도로 자랐다. 그러나 다 자란 아이피오르니스는 점점 야생의 본능이 드러나기 시작했다. 거대한 몸집과 발톱으로 남자를 공격한다. 남자는 아이피오르니스의 공격에 속수무책으로 당하지만, 사투 끝에 섬을 탈출하는 데 성공한다. 그러나 아이피오르니스의 공격에 남자는 흉터가 남을 정도로 치명적인 상처를 입었다.

 

 

  

 

 

 

 아이피오르니스(왼쪽), 화석이 된 아이피오르니스의 알(오른쪽)

 

 

아이피오르니스는 아프리카의 마다가스카르에 서식했던 거대한 새이다. 학명은 Aepyornis maximus. 키는 약 3m 정도에, 무게는 450kg 이상 나갔다고 한다. 몸집이 큰 편이었는데 날개 뼈가 작고 퇴화하여 하늘을 날지 못했다. 생김새와 특성이 타조와 비슷하다. 영어권 나라에서는 아이피오르니스를 ‘Elephant Bird’라고 부르기도 했다. 웰스의 소설에서는 아이피오르니스는 인간을 공격할 정도로 무시무시한 힘을 가진 ‘괴물 새’로 묘사되어 있는데 사실 몸집이 큰 것만 빼면 적으로부터 공격당하기 쉬운 존재였다. 특히 아이피오르니스의 알은 지름이 30cm 이상이나 될 정도로 컸기 때문에 마다가스카르 원주민들의 그릇으로 사용되었다. 아이피오르니스가 매우 겁이 많은 편이라서 어두운 습지에 주로 살았다. 정확하게 언제부터 절멸되었는지 알 수 없다. 멸종 시기를 대략 추정하면 19세기 중반으로 잡고 있다.

 

남자는 자신이 애지중지 키웠던 아이피오르니스를 ‘괴물’이라고 말한다. 새의 공격성을 강조하기 위해서 신드바드의 로크 이야기까지 언급한다.

 

흉터 난 남자가 말했다. “당신 말이 맞습니다. 놈은 정말로 괴물이었으니까요. 신드바드의 로크 이야기는 아이피오르니스에 대한 전설 가운데 하나였죠. 그런데 사람들이 그 뼈를 찾아낸 게 언제죠?” (웰스  ‘아이피오르니스 섬’ 중에서, 『허버트 조지 웰스 : 눈먼 자들의 나라 외 32편』 81쪽)

 

 

로크는 『천일야화』(앙투안 갈랑 판, 열린책들 / 2010년)에 나오는 전설상의 새이다. 신드바드는 두 번째 여행에서 로크를 만나게 된다. 처음에 신드바드는 태양을 가릴 정도로 거대한 물체를 보게 된다. 그것은 알을 품고 있는 로크였다. 신드바드는 터번으로 로크의 거대한 다리에 자신의 몸을 묶었다. 로크가 하늘로 날아오를 때 함께 실려가 무인도를 탈출할 수 있었다. (앙투안 갈랑 『천일야화』 2권, 353~355쪽)

 

 

 

 

 

 

 

 

 

 

 

신드바드는 다섯 번째 여행에서 또다시 로크를 만난다. 신드바드는 로크의 알이 있는 무인도에 정박했다. 그는 이미 로크의 존재와 알을 본 적이 있어서 동료 선원들에게 로크의 알을 절대로 건들지 말라고 경고했다. 그러나 선원들은 배고픔을 이기지 못해 알을 깨고 나온 새끼 로크를 죽여 구워 먹는다. 마침 두 마리의 로크가 나타나 둥지를 침입한 선원들을 공격한다. 신드바드와 선원 일행은 배에 올라 로크의 섬을 탈출하게 되지만, 로크는 하늘 위에서 큰 바윗덩어리를 떨어뜨려 신드바드가 탄 배를 명중시켰다. 배가 침몰하여 선원들은 사망하고, 신드바드만 살아남는다. (앙투안 갈랑 『천일야화』 2권, 391~393쪽)

 

신드바드 일행이 로크의 섬에 도착해서 새끼 로크를 잡아 먹는 장면은 웰스의 ‘아이피오르니스의 섬’ 줄거리 일부와 흡사하다. 이 작품의 남자도 아이피오르니스 섬에 정착하고 난 뒤에 부화되지 않은 알을 먹으면서 목숨을 부지한다. 그러다가 마침 알에서 아이피오르니스 새끼가 깨어나 키우게 된다. 남자와 아이피오르니스의 첫 만남은 이렇다.   

 

로크는 신드바드의 이야기 이전인『천일야화』 1권에 처음 등장한다.

 

“이 로크는 어마어마한 크기의 흰색 새로, 그 힘으로 말할 것 같으면 들판에 있는 코끼리를 들어 올려 산꼭대기에 잡아다 놓고 쪼아 먹을 정도라고 합니다.” (앙투안 갈랑 『천일야화』 1권, 276쪽)

 

앙투안 갈랑은 주석에 마르코 폴로의 『동방견문록』에 로크가 언급되어 있다고 적었다.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상상동물 이야기』(까치, 1994년-절판)『동방 견문록』에서 묘사된 로크에 관한 내용을 인용했다.

 

 

 

 

 

 

 

 

 

마다가스카르 섬 주민들은 1년 중 특정 기간이 되면 남쪽에서 굉장히 몸집이 큰 새가 날아온다고 이야기한다. 그런데 이 새의 이름이 로크라는 것이다. 새의 생김새는 독수리와 비슷한데 크기는 독수리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크다. 로크는 대단히 힘이 좋기 때문에 발톱으로 코끼리를 낚아채서 하늘로 들어 올렸다가 높은 곳에서 떨어뜨려서 잡아먹는다. 로크를 본 사람에 따르면 날개 길이는 한쪽 끝에서 다른 쪽 끝까지가 열여섯 걸음이나 된다고 한다.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 『상상동물 이야기』 로크 편, 140~141쪽)

 

폴로는 중국으로 간 황제의 사절들이 로크의 깃털을 가져온 적이 있다고 기록했다. 흥미롭게도 로크가 마다가스카르 섬에 사는 새로 소개하고 있다는 점이다. 그 새가 바로 마다가스카르 섬에서 서식했던 아이피오르니스가 아니었을까. 그런데 아이피오르니스는 날 수가 없는 새이다. 이러한 오류는 『동방견문록』이 무용담 전문 작가였던 루스티첼로의 덧칠을 거치면서 당시 유럽인의 흥미를 유발할 만한 과장에 비롯된 것일 수 있다. 폴로는 처음으로 마다가스카르를 유럽에 널리 알렸지만, 직접 그곳을 방문한 것이 아니었다. 원나라에서 귀국 도중 만난 아랍인들로부터 전해들은 이야기를 마치 자신이 직접 경험한 것처럼 썼다. 당시 아랍상인들은 이미 마다가스카르에 무역 기지를 설치면서 교역을 하고 있었다.

 

아이피오르니스는 17세기부터 널리 알려지기 시작했다. 그전에는 아이피오르니스를 로크와 같은 전설의 새와 비슷한 동물로 생각했다. 당시 사람들은 아이피오르니스 같은 거대한 몸집의 새를 본 적이 없어서 ‘괴물’로 오해하기 쉬웠다. 특히 상상력이 더해지면서 인간을 공격하고, 코끼리를 잡아먹는 무시무시한 존재로 둔갑했다. 원래 아이피오르니스는 낯선 적을 몹시 두려워하고, 날지 못하는 약점이 있다. 인간은 한때 그를 괴물로 여기면서 두려워했지만, 상상력이 주는 방어 효과는 오래가지 못했다. 아이피오르니스에게 인간이야말로 진짜 ‘괴물’이었다. 그리고 근대의 ‘괴물’ 인간은 자연을 파괴하는 힘을 키워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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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버트 조지 웰스 - 눈먼 자들의 나라 외 32편 현대문학 세계문학 단편선 6
허버트 조지 웰즈 지음, 최용준 옮김 / 현대문학 / 201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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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이런 공상을 빠지곤 해. 오늘 내게 무슨 일이 벌어질 거란 공상.”

(H.G. 웰스 「기묘한 난초의 개화」 중에서, 56쪽)

 

 

 

공상과학소설은 19세기에 태어난 21세기 장르이다. SF처럼 자기 시대와 불화하며 다른 시대를 앞서 선취하는 장르는 찾아보기 어렵다. 자기의 시대로부터 망명하여 새로운 세기를 예비하는 그 특유의 선취성은 때로 경박한 오락의 수단으로 활용되면서 주류문학으로부터 신뢰를 얻지 못하는 빌미를 제공하기도 했다. 허버트 조지 웰스가 타임머신이라는 황당무계한 소재를 상상했을 때, 사람들은 터무니없다고 치부했다. 하지만 불과 10년 후 아인슈타인의 상대성 이론이 나오면서 이 황당한 상상력은 가능성이 되었다.

 

웰스는 쥘 베른과 함께 과학소설의 원조로 평가받는다. 베른이 할아버지라면, 웰스는 아버지라고 할 수 있다. 지금도 웰스의 영향력은 21세기 작가들에게 영감을 제공해준다. 베르나르 베르베르가작가로 정식으로 데뷔하기 전에 웰스의 작품들을 사숙하면서 소설과 과학을 익혔다. 그가 발표한 소설에 웰스가 연상되는 흔적을 발견할 수 있다. 『개미』에서 ‘상대적이며 절대적인 지식의 백과사전’의 저자로 나오는 천재 곤충학자의 이름이 에드몽 웰즈다.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상상력은 웰스가 없었다면 탄생하지 않았을 것이다.

 

웰스는 자신의 단편소설들이 신사의 서재보다 요양소 침대나 치과의 응접실, 기차 같은 곳에서 읽히기를 바랐다. 그렇다고 이 단편선집이 시간을 때우기 위해 오락성 짙은 내용만 모아 놓은 것이라고 생각한다면 착각이다. 한 세기 앞선 웰스의 상상력을 한 눈에 확인할 수 있다. 

 

「담장에 난 문」은 웰스의 단편 중에서 가장 많이 알려진 작품이다. 흔히 SF 단편 모음집에 ‘벽문’이라는 제목으로 소개되기도 했다. 벽 속에 현실을 뛰어넘은 미지의 세계를 아름답고 경이롭게 묘사하고 있다. 어느 날 어린아이가 우연히 집 근처 벽 안에 있는 초록색 문을 열고 들어가니 거기에 또 다른 세계가 펼쳐진다. 그 세계는 매우 아름답고 행복하며 어린이 눈으로 봐도 현실보다 달콤하다. 벽 속에 펼쳐진 정원에는 아름다운 자연 풍경에 큰 흑표범 두 마리가 살고 있다. 아이는 그곳에서 행복한 산책을 경험한다. 벽 속의 신비로운 세계를 묘사한 이 장면은 에드거 앨런 포의 단편 「요정의 섬」이나 「이른하임의 영토」에 연출된 환상적인 풍경 분위기와 흡사하다. 웰스는 포처럼 환상의 세계를 구체적 묘사를 통해 영사기처럼 보여 준다.

 

정체를 알 수 없거나 기존의 생태 방식을 뛰어넘는 괴생물체가 등장하는 작품들은 전혀 고루하게 느껴지지 않는다. 「기묘한 난초의 개화」는 존 윈덤의 1951년 작 소설 『트리피드의 날』에 인간을 살상한는 괴식물의 등장을 예고한다. 평범하게 보이는 난초가 인간의 목숨을 위협하는 내용은 자연을 지배하면서 문명의 진보에 들뜬 인류의 어리석음을 경고하고 있다. 「바다의 침입자」는 지나가는 배를 촉수로 공격하는 두족류(오징어, 낙지가 여기에 속함)가 등장한다.

 

영화에 나오는 괴물은 3D 기술의 등장 덕분에 한층 더 실감 나게 연출이 가능하다. 요즘에 나오는 괴물영화와 비교하면 「바다의 침입자」는 괴물의 형상을 생생하게 느낄 수 없다. 하지만, 인간을 공격하는 촉수 괴물과 살아남기 위해 안간힘으로 버티면서 맞서는 인간의 대결은 짧은 분량에도 불구하고, 결말을 궁금하게 만들 정도로 긴장감이 느껴진다. 「개미 제국」은 웰스의 단편작품들 중에 많이 알려져 있지 않지만,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개미』 시리즈가 탄생되는데 적지 않은 영향을 준 작품이다. 여기서 『개미』 줄거리가 형성되는 단초를 발견할 수 있다. 베르베르의 소설에 나오는 개미들은 ‘손가락들’이라고 불리는 인간을 정복하려고 한다. 웰스는 베르베르가 태어나기 전에 이미 작은 생명체 개미가 인간의 수준이 돼서 전쟁을 치르는 장면을 상상한다.

 

 

인간들이 책과 기록으로 지식을 모았듯이 개미들이 곧 지식을 모으기 시작하고 무기를 사용하고 거대한 제국을 만들고 계획적이고 조직화된 전쟁을 치른다면? (「개미 제국」 중에서, 554쪽)

 

 

웰스는 과학의 진보가 이루어낸 문명의 위대함을 예찬하면서도 그에 대한 인류의 맹목적인 믿음 또한 경고한다. 「발전기의 왕」은 기계가 작동되는 문명이 인간의 정신을 지배하는 암울한 미래상을 암시한다. 「도둑맞은 세균」은 생물학 무기와 세균전이 초래하게 될 위험성을 경고한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웰스의 작품은 비관주의 성향으로 짙어졌는데 1890년대 후반에서 1900년대 초반에 발표된 단편에서도 언젠가 다가오게 될 과학 문명의 그늘이 드리워져 있다.

 

웰스의 유명 장편 『타임머신』『투명 인간』을 재미있게 읽어 본 독자라면 단편소설도 만족스러울 것이다. 웰스의 SF 문학 세계에 입문하는 독자는 단편소설을 먼저 읽어보면 좋다. 작품을 읽고 나서 즐겁고 유쾌한 기분이 든 독자가 있다면 웰스 본인에게는 무척 만족스러워 할 것이다.

 

단, 책에 아쉬운 점 하나가 있다면 독자에게 생소한 용어나 인명에 대한 주석이 없는 것이다. 간혹 글에 과학 관련 용어나 웰스와 동시대에 활동했던 인물이 언급된다. ‘크레오소트’(「아르피니오스 섬」), ‘두족류’(「바다의 침입자」), ‘섭동’(「별」), ‘블라바츠키 부인’(「기적을 행하는 남자」)은 인터넷으로 검색해도 누구나 쉽게 이해되는 설명을 찾을 수 있다. 상세한 주석은 독자가 백 년 전에 나온 글을 읽으면서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된다. 고루한 이야기라도 독자가 전혀 거리감 없이 재미있게 읽히기 위해서는 주석의 역할도 무시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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